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줄 알았던 피마리드와 스핑크스가 룩소르 문명의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했을 때 나의 무지에 대한 놀라움! 룩소르의 나일 강 동쪽 아멘 라 신전의 강가 언덕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았다. 유구한 세월을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 건너 서쪽 대안에 있는 4,000년 역대 왕조의 '왕과 왕비의 지하무덤' 계곡 너머로 해가 저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약간 감상조로 옆에 앉아 있던 아내에게 말했다.
"인간의 권세와 영화라는 것도 저런 것 아니겠어?!"
그런데 뜻밖에 윤영자의 대꾸는 사뭇 달랐다.
"그래도 한번쯤 누려볼 만하지 않을까요?"
- 「스핑크스의 코」 중, 『리영희 산문선 희망』 210-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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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부(富)와 거리를 둔 삶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생을 이어가기 위해 자존심을 두고 책 외판원으로도 생활했던 선생님이었습니다. '딸깍발이'의 정신은 오롯이 살아 사모님과의 여행에서도 이성을 추구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위 글을 읽으며 살포시 미소를 지어봅니다. 이성의 탐구자였던 선생님의 경탄 앞에서 생의 영화를 누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사모님의 솔직한 이야기. 글을 자유롭게 이어가던 중에 선생님은 급히 그 이야기를 끊곤 다시 본류로 돌아갑니다. 아마, 미안함이 남아 있었겠죠. 평생 글쟁이, 딸깍발이 옆에서 살아온 사모님은 이성의 힘 앞에서 본인의 고생을 덜할 한탄의 이야기를 꺼낸 듯합니다. 선생님은 그걸 오롯이 글로 옮겼습니다. 별다른 부언이 없어도 그 이면에는 사모님에 대한 미안함을 담고 있었겠죠. 이 대목을 읽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어봅니다. '사랑'은 격렬한 감정이라지만, 은근한 배려라는 걸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래서 리 선생님과의 과거를 회상하는 윤 여사님의 얼굴이 그리 담담하게 보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