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본 동아시아식 개발주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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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5-12-06 01:00
조회
416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본 동아시아식 개발주의 경험



 


 


 


 



박은하(경향신문 베이징특파원) 


2025년 12월 현재 캄보디아 범죄단지 문제는 세간의 관심사에서 한 발 비껴나 있다.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 그룹 회장 천즈는 잠적했으며, 범죄 조직들은 캄보디아의 깊숙한 오지와 미얀마와 베트남 등지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계 범죄 조직에 납치·감금당해 강제노동을 한 피해자들이 누구나 여러 번 접했을 법한 수많은 금융사기와 로맨스 스캠 문자를 발신한 장본인, 즉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난감한 진실은 공분의 방향을 빠르게 바꿨고, 나아가 냉담과 무관심을 정당화했다.


불행한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와 범죄단지에서 벌어진 휴먼 트래피킹(human trafficking) 범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캄보디아 범죄단지는 ‘실패 국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란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훈센 가문의 장기집권과 극심한 부패는 캄보디아의 그늘이며 범죄의 핵심 토양을 제공했다. 부패한 현지 공권력이 지금도 범죄 조직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타당하다. 그러나 범죄 조직과 공권력의 결탁은 국가가 완전히 무너져서가 아니라 의욕적으로 경제 개발을 추진한 결과다.

이 글의 내용 대부분은 호주 멜버른대의 중국학자 이반 프렌체스키니 등이 지난 9월 출간한 <스캠 : 동남아 사기 범죄 단지의 이면>(<Scam : Inside South East Asia’s Cybercrime Compounds>)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스캠>이 말한 첫번째 ‘이면’은 다음과 같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극빈국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인터넷, 통신장비 등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서만이 보이스피싱 범죄가 가능하다. 인프라를 갖춰가는 과정, 그것이 개발이다.

범죄단지의 허브, 오늘날 시아누크빌의 기원은 중국과 캄보디아 정부가 2006년 시작한 시아누크빌 경제특구 조성에서 시작한다. 외국 자본을 유치해 수출 제조업 국가로 거듭나려는 캄보디아와 자국 제조업체의 저비용 생산기지를 찾으려는 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특정 지역에 자원을 몰아주고 규제를 풀어 현지의 저렴한 노동력과 외국자본의 활발한 활동에 기대 경제를 끌어올리는 방식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선전에서도, 그 이전 한국의 마산수출자유지구나 제주 관광개발에서 해온 방식이다. 시아누크빌 경제특구 사업은 중국이 2013년 시작한 일대일로 사업과 연결되면서 더욱 커졌다. 

2010년대 중국 내에서의 개발 방식이 캄보디아에서도 재현됐다. 투자기반 성장, 즉 부동산 기반 성장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발 금융위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중국은 4조위안의 막대한 경기부양 자금을 풀었다. 당시 미국 언론이 ‘개혁개방 시기 자본주의가 중국을 구했지만 이번엔 중국이 자본주의를 구했다’는 찬사할 정도였다.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막대한 자금은 부동산과 설비투자로 흘러들었다. 이 현상 자체가 일대일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중국 자본의 해외 진출을 통해 내부의 과잉중복투자를 막고 잉여자본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일대일로 사업이 비판받는 점은 부채와 더불어 현지의 노동력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데려온 자재와 인력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중국 측으로서는 ‘중국의 돈’으로 진행되는 개발 사업에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중국 기업의 속도와 관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지 인력과 일하는 대신 중국 인력과 일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업기반이 마련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확장한 캄보디아의 부동산은 중국인을 위한 휴양, 관광 거점이 됐다.

시아누크빌에는 대거 이주한 중국 노동자들을 위한 식당, 휴양, 오락시설들이 생겨났다. 가장 인기를 끈 것은 중국에서 금지된 도박이다. 캄보디아는 외국인 대상 카지노를 허가제로 운영하는데 캄보디아의 중국인 전용 도박장이 이윤이 되면서 우후죽순 생겼고, 이권을 봐주는 부패의 고리도 생겨났다. 중국계 범죄조직이 개입한 이 도박장들은 캄보디아 현지 이주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본토 주민들과 연결해 온라인 도박 서비스로 더욱 큰 돈을 벌었다. 도시 생태계의 건강함을 고려하지 않고 자본에 내맡긴 결과 시아누크빌은 ‘도박 도시’가 됐으며 이 역시 중국식 개발의 식민주의적 성격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자국민의 도박을 엄금하는 중국이 두고 보지 않았다. 시진핑 정권 2기인 2018년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반부패 운동을 벌이면서 마카오 카지노 자본과 도박과 연결된 범죄조직들이 캄보디아로 건너왔다. 중국인 대상 온라인 도박장은 더욱 번성했고 도박으로 벌어들인 돈이 다시 더 빠른 인터넷 연결망, 대형 스크린, 컴퓨터 장비 등 도박 인프라에 재투자됐다. 중국의 압박으로 훈센 정권은 2018년 도박 산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지만 소용없엇다. 2016년 두테르테 정권 출범 이후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입지가 좁아진 필리핀 범죄조직들도 노하우를 갖고 캄보디아에 합류했다. 

도박 시티를 근절하지 못했던 것은 개발 효과로 경제가 꾸준하게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캄보디아 경제는 2013년 이후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까지 연평균 7.3% 성장했다. 물론 도박경제가 이끈 것이 아니라 나이키 의류공장을 비롯해 수많은 제조업 시설이 캄보디아로 건너온 결과이기도 했다. 다만 부패 역시 경제성장 속에서 성장한다. 개발의 수혜를 가장 먼저 입고 일어선 경제 엘리트들이 생겨나면 정치-관료 엘리트들과의 결탁은 더욱 끈끈해진다. 부패 해결은 경제성장 자체가 아니라 힘이 커진 시민사회가 민주적 주도권을 갖고 정치를 압박할 때 가능하다. 한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확인된 경로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는 미약했고, 잡음 속에서도 성장의 꿈은 계속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꿈을 깼다. 중국의 봉쇄정책으로 인해 시아누크빌 경제를 지탱하던 중국인 노동자들과 관광객들이 뚝 끊겼다. 아울러 임대료가 이미 폭등한 가운데 호텔, 레스토랑, 아파트, 산업단지 등이 공동화됐다. 중국 경제가 급격히 침체하면서 온라인 도박 수익도 예전같지 않았다. 하지만 개발은 인프라를 남겼다. 온라인 도박에 쓰이던 인터넷망, 통신장비 등은 보이스피싱 인프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시아누크빌의 4대 범죄 단지 중 하나인 망고 단지는 원래 망고 가공공장이던 시설을 전환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공동화된 인프라의 전환 과정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중국인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으니 중국 범죄조직은 처음에 스캠 범죄를 실행할 이들로 대만인을 유인했다. 코로나19 봉쇄 해제 이후 중국 본토인들이 다시 타깃이 됐다. 여기서 도박 범죄는 휴먼 트래피킹 범죄와 결합하게 된다. 휴먼 트래피킹은 흔히 인신매매로 번역되지만 휴먼 트래피킹의 개념이 더 포괄적이다. 휴먼 트래피킹은 착취를 목적으로 사기, 취업유인, 등을 동원해 사람을 이동시키고 은닉하며 궁극적으로 통제력을 빼앗는 과정을 말한다. ‘캄보디아에서 범죄 가담한다는 걸 알고 자발적으로 간 사람이 왜 인신매매의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휴먼 트래피킹이란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캄보디아 스캠단지의 위성사진(출처: 국제앰네스티)


휴먼 트래피킹 범죄가 성업하려면 취약한 존재들이 필요하다. 올해 1월 중국에서 유명 배우 왕싱이 영화 촬영 제의 사기에 속아 태국에 갔다가 미얀마 범죄조직에 납치됐다 사흘만에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동남아 등지에서 중국인 범죄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174명의 가족 487명이 자신의 가족들도 구해달라고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을 보면서 누가 휴먼 트래피킹의 타깃이 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성명에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조손가정에서 자라며 10대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온 안모씨는 여동생 등록금 마련을 위해 중학교 때 친구와 함께 미얀마로 향했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도 취업이 되지 않아서 국경을 넘은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연예계에 데뷔한다고, 어떤 이는 물류센터 전산관리자로 일한다고 생각하고 길을 떠났다. 캄보디아 범죄단지로 건너 간 한국 청년들도 대부분 지방 출신으로 알려졌다. 특정 대학에서 수십명이 가담한 사례도 있었다. 결국은 불평등이다. ‘어머니 병원비’와 같은 사연이 아니더라도 ‘비도덕적 세상에 살 길은 없으니 비도덕적으로 한 탕 하겠다’고 건너간 이들조차 불평등의 산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캄보디아에서의 휴먼 트래피킹-스캠 범죄가 정확히 얼마나 수익을 거뒀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범죄조직계에 신시장을 개척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2020년대 초부터 한국의 조폭, 일본의 야쿠자·한구레, 그리고 아프리카나 남미 조직마저도 캄보디아로 몰려가 스캠 범죄에 합류했다. 프란체스키니는 <스캠> 출간 기념 팟캐스트 대담에서 ‘납치’와 ‘강제노동’, 그리고 각국 범죄조직들이 몰려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사기 범죄의 잔혹성이 짙어졌다”고 전한다. 경북 대학생의 죽음으로 이어진 납치 피해자에 대한 구타, 고문 등이 단적이다.

<스캠>은 스캠 범죄 거점은 세계 어디나 있지만 중국계 범죄조직만의 특징도 있다고 말한다. 납치 피해자이자 범죄 가담자들이 호텔, 공장, 카지노 등이었던 대단지 시설에 입주해 강제노동 형식으로 일하는 것이다. 책은 범죄단지의 강제노동은 “전 세계에 있는 노예제·인신매매 범죄의 보편적 모습을 하고 있다”면서 또한 “중국식 기숙학교나 대규모 공장 인력관리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프란체스키니는 베트남과 인도인의 경우 감금된 피해자들이 집단 탈출하는 사례가 있지만 중국인 피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언급했다. 착취가 가능한 ‘문화적 배경’을 암시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한국계 범죄조직들은 실적이 좋은, 즉 피해자에게 거액을 뜯어내는 데에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인센티브와 휴가를 주고 칭찬도 하면서 길들인다고 한다. 형제복지원 등에서 보이는 대규모 수용·감시와 신자유주의적 인적 관리를 결합한 관리가 범죄조직에도 차용된 것이다. 이 대목은 캄보디아 범죄단지는 동아시아식 경제 개발의 종합적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캄보디아의 범죄단지는 캄보디아가 극빈국인 시절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캄보디아가 중국 자본과 손을 잡고 극빈국에서 탈출해 개도국으로 들어설 무렵 생겨났다. 이는 캄보디아의 특징만이 아니다. 한국의 조직폭력배가 강남개발 와중에 급성장한 것과 유사하다. 미국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 대만의 삼합회 등도 급속한 개발이나 도금시대에 성장했다. 범죄도 인프라가 필요하고 이념이 동원된다. 경제성장과 부패, 범죄의 사슬은 자본주의 발전 자체에서 내재된 것이라 봐야 한다. 캄보디아의 다른 점은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이 급속하게 경제개발을 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사람과 자본의 초국적 이동이 활발한 시대 경제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범죄 조직도 세계화된 모습을 갖췄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이런 경제성장 과정에 동반되는 부작용을 억제하는 힘을 함께 키워낼 수 있느냐, 나아가 어떤 성장인지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 문제에 관심이 없던 부유한 국가들이 휴먼 트래피킹 피해국이 됐다. 이는 한편으로는 부유한 국가들 내부의 불평등 문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불평등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캄보디아 범죄단지 문제 해결, 나아가 글로벌 불평등 해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부패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있으며 더욱 성장하면 민주주의는 자동적으로 이뤄진다’는 신화일 것이다.

현지 경제성장에 분명 기여하는 초국적 기업 실무진들의 사고방식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 근무했던 한 한국인 은행원은 반정부 시위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실각하고 무함마드 유누스 현 과도정부 수반이 새로 방글라데시를 이끌게 된 상황을 목격했을 때 현지 기업인들이 마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고 전했다. "뇌물 줄 대상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가난하고 부패하며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다"고 손가락질받는 국가의 부패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외국 자본 입장에서 글로벌 생산기지 이전을 통해 이익을 내려면 현지의 기업활동은 보호하되 임금상승을 억눌러야 하기 때문에 부패가 구조적으로 필요하다.

캄보디아 부패 문제에 가장 책임 있는 외국 자본은 중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국가라고 책임에서 비껴서 있지는 않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내세우는 투자자로서 중국의 장점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캄보디아를 비롯한 개도국 ODA에서 투명성을 강조하는 편은 아니다. 풀뿌리 언론 지원과 같은 주민 역량강화 사업보다는 개발사업에 치중돼 있다. '일단 배고픔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과 개발의 관점을 공유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캄보디아인 스스로가 어떤 개발인지 선택하지 못한 결과 범죄단지라는 악의 성채가 만들어졌다. 이 범죄단지를 세운 중국계 범죄조직 역시 중국의 개발에서 단련돼 온 존재들이다. 동아시아 개발의 이념과 경험은 어디에서 왔는가. 돌고 돌아 한국의 지방 청년들이 캄보디아로 향하는 결과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 질문들을 무겁게 던지며 성채의 뿌리를 뒤흔들 수 있는 다른 성장 전략, 다른 아시아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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