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영희가 김동춘에게 보내는 서신

김형,
안 표지에 서명하여 역사비평사를 통해서 우송해준 역저 <한국사회노동자연구>를 고맙게 받았습니다. 나의 딸이 연세대 생물학과에 들어가더니(82년) 2학년에 올라가면서 인천구로지역 공장에 들어가 6년간을 거의 소식도 없이 지내고 87 이후에는 복교와 제적을 거듭하다 93년에 졸업이라고 해요. 그래서 언제나 이른바 ‘학출노동자’에 관심이 깊어서, 김형의 책 363 페이지 “대학출신...”부터 읽어보았습니다. 도대체 얼나마 많은 학생들이 ‘학출’로 들어갔던 건지? 지금도 나에게는 그것이 궁금해요. 그 낭만적이고 희생적이고 정의심이 강했던 젊은이들! 그러면서 “혁명”의 꿈의 좌절에 눈물을 머금고 현장을 떠난 젊은이들. 김형의 책 서문에 그들의 일부가 현재의 노동운동의 주요 지도자층을 이루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이탈했거나 남아있거나 나는 나의 딸을 통해서 그들의 “순정”을 고귀하게 여기는 거지요. 궁금해서 러시아 혁명 전시기의 “브나로드”와 “나로드니키”의 수량적 동태를 알고 싶어서 사놓고 30년이 되는 E. H. 카의 <볼셰비키 혁명>을 다시 한번 훑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적과 초지를 달성했느냐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리고 또 학출들의 전술과 행동상의 문제점들을 숙지하면서도 그 시기 노동의 현장으로 꿈을 품고 뛰어들어갔던 학생들을 나는 눈물겹도록 사랑하는 거지요. 대학출신 노동자의 형성과 활동이 좀 더 많은 내용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보내준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몇 줄 적어서 보내는 바올시다.
뜻깊은 추석이 되기를 바라면서 1995년 9월 000 리영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