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정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 박우정 (2014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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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4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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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재단은 "리영희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됐음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재단의 주요사업 가운데 하나인(현재로서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업일 테지만) 리영희상도 "리영희 정신을 당해연도에 가장 잘 구현하고 실천한 사람이나 조직"에 드리기로 내규로 규정해두고 있습니다.



재단 쪽의 이런 생각과 별도로 리영희 선생을 존경하는 일반시민들도 '리영희 정신'이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리영희 정신'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거의 비슷한 관념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가장 대중적으로(?) 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리영희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굽힘없이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견지하는 이성적이고 용기있는 자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 리영희 선생 스스로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 했던 것은 애국이나 국가 이런 게 아냐, 진실이야 진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 속에 리영희 정신의 고갱이가 들어있음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리영희 정신을 가장 압축적이고 함축성있게 표현한 경구와도 같은 귀절입니다.



그렇다면 왜 '리영희 사상'이 아니라 '리영희 정신'을 우리는 기리고 되새기려고 하는 것일까요? 리영희 선생을 외국언론은 '사상의 은사'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붙였고 리 선생 본인도 그 칭호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리영희 선생은 뚜렷한 사상을 간직하고 있었고 글에서 분명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숨길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리영희 선생이 사상가로 우리에게 기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그의 사상에서 독창성이나 계승할만한 뚜렷한 체계를 발견하기가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가 특정한 사상을 선호하고 그의 글쓰기의 밑바탕에 그것이 깔려있었음은 사실이지만, 그가 그 특정한 사상체계나 내용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가하거나 발전시켰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 그는 늘 그 사상이 세계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에 날카로운 관심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높은 기대를 갖고 추적하고 관찰하면서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열정적이었던 예가 대표적입니다.



이렇듯 '사상의 은사'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또한 실제로 청년학생들과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에게 지대한 사상적 영향을 주고 의식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리영희 사상'이 아닌 '리영희 정신'으로 기억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리영희를 가장 리영희 답게 규정하는 것은 그의 사상체계가 아니라, 현실에 맞서 싸우는 이성과 용기로 무장된,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원천적이고 독보적인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이 그의 인격과 완벽하게 결합돼 수미일관한 실천을 추동하면서 당대인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 사상이란 것은 오히려 리영희 정신의 일부로서만 의미를 지닐 뿐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리영희 정신'은 우리가 '작가 정신' '예술가 정신' '장인 정신'이라 할 때와 똑같은 함의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정신'에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가 붙는 것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리영희'라는 관형사가 여기선 그리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적실성을 지닌 듯 합니다.



췌언이 길어졌습니다만,제가 말하고자 하는 본론은 우리가 리영희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자고 한다면 앞서 규정한 리영희 정신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지난 12월 1일 제2회 리영희 시상식 인사말에서 리영희 정신의 재규정을 시도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여러분들에게 제안하려고 합니다.



저는 리영희 정신을 재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목적의식을 갖고 최근 <대화>를 찬찬히 읽었습니다. 그 결과 리영희 정신을 1.당대성 2.당파성 3.도저성 4.헌신성 5.민중성 이렇게 다섯가지 특성 또는 지향성의 유기적 통일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각 경향성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실줄 압니다.  리영희선생은 늘 당대 즉 현재적 문제나 쟁점을 논제로 삼아 그 핵심적인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베트남전쟁이 그러했고 중국 문화대혁명이 그러했으며, 남북한의 전쟁수행능력 비교, 북방한계선이 법적인 경계선이 아님을 입중하는 논문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당파성을 숨기지 않았고 그것에 충실했습니다. 현실상황과 자신의 관계를 설정할 때 자신의 이념적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중립 속에 숨는 지식인의 비겁을 질타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그러나 자신의 테제나 주장을 폄에 있어 완벽에 가까운 객관적 증거와 자료를 제시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고 그 뿌리를 파헤치는 도저성, 즉 철저한 객관성과 과학성을 방법론적인 무기로 활용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늘 지배권력이 조작/날조한 담론 도그마 이념 즉 시대적 우상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을 자신의 글쓰기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수구 냉전적 기득권세력의 사상적 이념적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충격을 불러왔습니다. 그런 작업은 권력의 탄압과 처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선생은 그러한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을  민중과 사회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로 받아들이고 늘 고난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상이 시상식 때 제가 리영희 정신을 재규정하면서 제안한 내용이었습니다만, 여기에 한가지를 추가해야만 리영희 정신이 좀더 온전하게 개념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확고한 현세주의, 현세성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무신론자로 자처하셨습니다. 비록 종교에 개방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만 본인은 철저한 무신론자임을 공언하면서 인간의 이성을 의지해 자유 평등 정의 등 인간의 궁극적인 이상을 현세에서 실현하는 것을 궁극목표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가 외람되이 리영희 정신을  재규정할 것을 제안하는 것은 오로지 진실을 추구하는 것만을 리영희 정신으로 표상할 경우 실제의 리영희 정신의 온전성과 스케일을 자칫 축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제안이 모두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학문적으로 깊이있게 다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분이 리영희 선생의 정신 사상 업적을 논의한 글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미흡한 부분도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감히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을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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