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가 정답이다 / 이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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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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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2.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가 정답이다 -‘서울-샌프란시스코 딜레마’에 답한다



 


 


 


이삼성 (한림대 명예교수)


1. 무차별 군비경쟁의 시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은 북한 핵무장이 일단락된 해였다.


2009년 1월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김정일 사후 나이 어린 김정은의 북한이 붕괴하길 기대한 듯 어떤 적극적 한반도 평화 전략도 모색하지 않았다. ‘전략적 인내’로 포장된 전략 부재는 한국에 잇달아 등장한 보수적 정부들이 몰두한 대북한 군사적 압박과 어울려 북한의 핵무장 완성을 촉진했다. 그것은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비대칭적 군비경쟁 심화의 결과였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은 공공연한 선제타격론을 앞세운 가운데, 한미동맹의 핵확장억제를 전제한 이른바 3축체계 투자를 본격화했다. 북한은 핵무기체계 완성을 향해 매진했다. 마침내 2017년 북한의 수폭실험 성공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그리고 ICBM까지 성공으로 귀결되었다. 이에 트럼프의 미국은 최대의 군사적 압박과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참하는 강력한 유엔 제재를 이끌어내어 한반도 전쟁 위기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2017년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랜서’)는 한반도를 여섯 차례 드나들었다.


그렇게 깊어져간 겨울 뒤 2018년 봄 한반도 평화체제의 희망이 부풀어 올랐었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의 만남, 판문점 선언, 그리고 9.19 군사합의, 여기에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합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봄 문재인 정부 끝 무렵의 남북관계는 20206월 북한의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상징되는 단절이었고 그 공백은 군비경쟁이 메꾸었다. 이는, 남북관계 파탄의 근본 원인을 전적으로 북한의 기만, 그리고 문 정부의 순진한 환상과 무능으로 돌리면서 북한과 모든 대화를 거부하는 명분으로 삼는, 보수 진영 관점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윤석열의 극우 정권과 극우 대북정책의 등장을 뒷받침한 한 요인이 되었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과거 북한과의 모든 대화를 ‘가짜 평화쇼’로 치부했다. 2018년 ‘한반도의 봄’이 시작된 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미국 전략자산들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다시 빈번하게 한반도를 누비기 시작했다.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 자주 실시되는 것과 함께였다. 2022년 8월 하와이에서 한미일 3국 해군이 ‘태평양 드래곤 훈련’(Pacific Dragon exercise)을 벌였다. 세 나라 미사일방어체제 통합 운용이 목표였다. 그 다음 달(2022년 9월)엔 핵항모 로널드 레이건호가 한반도에 진입했다. 그 해 10월 초 북한은 일본 영공을 지나는 중장거리미사일(IRBM)을 쏜다. 201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를 기화로 한미동맹은 그 며칠 후 일본을 끌어들여 3국이 함께 이번엔 한반도 동해상에서 미사일방어훈련을 벌였다. 다음 달(2022년 11월)엔 B-1B 전략폭격기가 한미 연합훈련에 참여했다. 2017년 11월 2일 이후 5년 만이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이 합의없이 무산된 직후부터 남북한간 군비경쟁은 다시 가시화했다. 김정은이 하노이에서 빈손으로 기차를 타고 평양에 돌아온 지 불과 20여일 후인 3월 말, 문재인 정부는 록히드마틴사의 스텔스 전투기 F-35A 두 대를 인도받아 청주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박근혜 정권은 기습타격 능력을 갖는 이 기종을 차세대 한국 공군력의 주력으로 삼아 총 40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었다. 그 주문이 본격 당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국이 미국 핵무기와 전략자산들을 배후로 두고 재래식 무력을 첨단화하면서 선제타격 능력까지 의도한 군비증강을 계속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북한이 KN-23, KN-24와 같은 신형 단거리미사일(SRBM) 시험발사를 다시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19년 5월이었다. 그 해 10월에는 SLBM인 북극성-3호를 시험발사했다. 문재인 정권 말기인 2022년 1월 총 F-35A 40대가 모두 한국에 도착한다. 문재인 정부가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며 남북한 군비경쟁은 가속됐다. 남북 간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 경쟁도 가열되었다. 한국이 사거리 500킬로미터의 SLBM 수중발사에 성공한 것은 2021년 9월이었다. 이에 맞대응하며 북한은 바로 다음 달 사거리 5-600킬러미터의 새로운 SLBM을 시험발사했다. 문재인 정부 후반에 전개된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의 한 단면이었다.


2. <핵무력정책법>과 <워싱턴 선언> 이라는 마주 달리는 열차

윤석열 정부는 군비증강을 가속하는 것은 물론 출범하자마자 이명박·박근혜 때 시작한 공격적 군사전략인 선제타격론을 복원시킨다. 그것은 북한의 핵무기체계 첨단화와 대량화를 촉진하는 것은 물론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추는 핵 독트린을 아예 법으로 만들게 이끌었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때인 2022년 1월 11일 신년기자회견에서부터 문재인 정부가 버렸던 선제타격론을 부활시켰다.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6월 한국 공군은 F-35A 스텔스 전투기 등을 동원한 ‘도발원점 타격훈련’ 실시계획을 밝혔다. 다음 날 윤석열은 국무회의에서 ‘한국형 3축 체계 복원·강화’를 언급하면서 선제타격 개념에 기초한 킬-체인(Kill Chain)을 포함한 선제타격 능력 확보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북한은 그 해 1월부터 극초음속 미사일, 단거리미사일, 중장거리미사일, ICBM 등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수십 차례 시험 발사했는데, 주종은 단거리미사일이었다. 북한은 20229월 적의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판단될 때 핵 선제타격까지 허용하는 핵무력정책법을 제정했다. 이에 2022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는 2021년 회의와는 달리 북한의 전술핵 위협을 강조했다.


2023년 4월 13일 북한은 고체연료를 사용한 3단계 ICBM 화성-18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한다. 액체연료를 사용한 ICBM의 발사준비 시간은 최소 30분 이상에서 몇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고체연료 ICBM은 그것이 15분 이내로 줄어든다. 그만큼 발사준비 상황을 숨기기도 쉽고 이동하기도 쉽다. 킬-체인 같은 개념의 선제타격 전략을 더욱 무용지물로 만들뿐 아니라 북한의 의도에 대한 오인과 오판에서 비롯되는 핵전쟁 위험도 더 커진다. 그로부터 보름 후인 426일 한미동맹은 핵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한미 간 핵 관련 협의를 제도화한다는 내용의 워싱턴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이 현무와 천궁 등을 비롯한 3축체계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시험하는 동안 북한은 한국의 3축체계와 미국의 미사일방어를 무력화하기 위한 미사일 첨단화를 추구했다.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 개발이 대표적이다. 2021년부터 이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북한은 2024년 4월 중장거리급 HGV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단거리미사일인 KN-23(이스칸데르형)도 요격 회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들이다.


남북 간 군비경쟁 고도화를 실증하는 최근 상황 하나는 규모 6-7천톤급에 10여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전략핵잠수함을 북한이 개발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러 군사관계가 긴밀해지면서 러시아의 군사과학기술이 북한에 이전된 효과로도 추정되고 있다. 한미동맹의 미사일방어체제를 더욱 무의미하게 만드는 동시에 북한 핵무력의 생존가능성과 2차 타격 능력을 높이게 된다. 이로써 역설적이지만 북한의 SLBM 기반 확장은 한미동맹의 SLBM과 맞물려 일방의 핵선제타격 시도를 억제함으로써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성을 높일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 자체의 고도화와 군비경쟁 격화, 그리고 미일동맹의 전략자산 한반도 배치 증가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한 핵전쟁 가능성이 더욱 일상화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대북전단 금지법은 윤석열 정부 들어 사실상 집행이 중단되었다.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그 법을 위헌 판결했다. 대북전단 살포행위는 고삐가 풀려 북한을 더욱 자극했다. 이 상황은 오물풍선 등 북한의 대응을 유발했고, 군사적 긴장은 더 증폭되었다. 문재인 정부 남북 정상외교의 마지막 유산이었던 9.19 군사합의도 결국 폐기되었다. 2023년 11월 윤 정부가 이 군사합의를 부분적으로 폐기하면서 북한의 대응이 뒤따랐다. 결국 2024년 6월 4일 윤 정부는 남북 군사합의를 전면 파기한다. 보름 후인 6월 19일 북한은 러시아와 유사시 서로 군사원조를 약속한 「전면적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북한군 파병을 진행한다. 또한 동중국해와 한반도 서해상에서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긴장 또한 더 높아졌다. 대분단 기축관계의 긴장이 미중 패권경쟁 본격화로 인해 심화하는 조건에서 한반도 소분단체제의 긴장이 더 악화되어가고, 이는 다시 대분단체제 전반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작동했다.


필자는 2010년대 후반 이후 현재까지의 동아시아는 대분단체제의 ‘탈냉전기 제3국면’에 속해 있다고 보는데, 이 국면의 동아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전야의 유럽과 닮은꼴로 볼 수 있는 다섯 가지 양상을 주목해왔다. 2019년 이후 한반도에 긴장이 다시 깊어져 온 상황은 그 닮은꼴을 더 짙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2018년에 꽃피었던 짧았던 봄 뒤에 찾아온 한반도의 겨울은 그렇게 깊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 후반 남북관계 실패와 그에 힘입어 등장한 윤석열 정부 3년에 더 고도화한 군사적 긴장은 핵무력정책법과 워싱턴선언이 대립하는 실존적 핵 위기의 한반도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놓았다. 여기에 12.3계엄이라는 윤석열 정권의 친위쿠데타의 실행과 그 실패, 그리고 뒤따른 정치사회적 혼란, 그리고 윤석열 정권이 일부 군부를 움직여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유도하려 했던 정황들은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평화로운 일상이 얼마나 허약한 조건 속에 있는가를 충격적으로 일깨워주었다.


3. 한국외교가 한반도 평화 진전의 동력을 만들다 멈춰서는 곳


2018년 한반도의 봄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9.19군사합의를 그나마 유의미한 성과로 남긴 채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패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겨울을 맞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장기적인 군비경쟁 선도 전략을 염두에 두고 중거리핵폐기협정(INF Treaty)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게 되는 상황, 그러니까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기축관계의 긴장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정부의 비전과 노력의 한계는 없었는지를 동시에 돌이켜보아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2017년 12월 중순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의 전환을 기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트럼프 행정부가 호응하며 북미 정상회담까지 추진하게 된 변화의 동력은 세 가지 차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은 북한의 핵무장 완성이라는 새로운 현실 역학의 변화, 둘째는 한국 외교의 방향 전환, 그리고 셋째는 구조적인 교착상태에 처한 국제문제를 기존의 관성을 벗어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현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트럼프의 성향이었다. 그것이 싱가포르에서의 북미간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낳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북한 비핵화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명문화한 합의였다.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접촉은 그 해 5월 중순에는 중단 위기를 맞았었다. 이 위기를 벗어나 정상회담 동력이 살아난 것은 524일 트럼프 행정부가 국무장관 폼페이오의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증언을 통해 미 의회의 비준을 받는 평화조약의 체결을 북한에 약속하고 북한이 이에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싱가포르 회담까지의 트럼프 외교는 마이크 폼페이오 같은 협상파가 이끌었으나, 회담 후에는 신보수주의자인 존 볼턴과 전통적 매파인 국방장관 짐 매티스 등이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평화조약 체결을 통해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가역적인 안전보장 장치가 상호주의적으로 함께 진전될 때만 북한이 핵무장의 갑옷들을 단계적으로 해체할 동기를 갖게 될 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원리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안의 강경파들은 북한은 애당초 신뢰할 수 없는 정권이라는 근본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북한이 비핵화 선행조치들을 취할 때만 미국이 보상을 제공한다는 과거의 정책으로 트럼프 외교를 돌려놓았다.


강경파들이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장악한 사이에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9.19 군사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트럼프 외교의 방향을 다시 되돌려 한반도 평화체제를 진전시킬 수 있을 대담한 외교적 노력은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9.19 합의 후 가진 귀경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은 북한 비핵화 완성 후의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못박았다. 종전선언만을 거론했다. 이미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의 관점에서는 비핵화 진전에 불가결한 전제조건은 조약 수준의 평화협정이지 종전선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을 뒤로 미루는 명분으로 활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남북관계는 한계에 도달했고, 한국외교는 더 이상 북미관계 진전의 동력도 될 수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철을 반복했다. 한국 보수정권의 대북 강경노선에 장단을 맞추면서 동아태지역 동맹체제 관리와 한반도 군비경쟁에 몰두하는 ‘전략적 인내’로 일관했다. 트럼프 2기는 1기에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관성을 넘어선 방식으로 현상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과 대담한 흥정을 시도할 수 있다. 그것이 한반도 비핵화에 기여하는 것이 되려면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싱가포르선언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한 평화체제 구성의 핵심은 마이크 폼페이오가 2018524일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에 약속했던, 미 의회의 비준을 받는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담한 협상의 시작이다. 폼페이오가 그 청문회에서 약속한 평화조약의 정신은 미국과 북한이 서로에게 불가역적인 보장을 다같이 주고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방향 전환을 위한 노력은 말할 것도 없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우선 트럼프 2기 행정부 안의 근본주의 세력이 저항할 것이다. 한국에 진보적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 해도 문재인 정부가 빠졌던 비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의 전철을 피하기 어렵다. 윤 정부의 묻지마식 돌쇠형 대북정책과 상호작용하며 깊어진 남북간·북미간 첩첩이 쌓인 상호불신과 함께 더욱 확대된 북한 핵무장으로 말미암아 한반도 비핵화의 희망은 거의 사라져버린 상태이다.


4. 한국 핵무장론의 구도


이에 따라 오늘의 한국 안팎에서 정치권, 언론, 학계에 걸쳐 핵무장론이 광범하게 확산해 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차관보를 역임한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가 2024년 5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한국 안팎의 핵무장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는 트럼프가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고, 콜비는 트럼프 재집권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기용될 것으로 거론될 때였다. 그는 ‘대중국 매파’(China hawk)로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미 안보전략은 중국을 억제하고 그 위협에 대응하는데 집중해야 하며, 한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한국이 스스로 “압도적인 책임”(overwhelming responsibility)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핵무장을 하는 것도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콜비는 한국이 핵무장을 추구하여 심각한 경제적 제재를 당한다면 미국은 한국이 미국과 조율하여 이를 진행하는 한국을 제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콜비는 또한 한국이 북한 위협 대응의 거의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경우 의당 전시작전권(wartime OPCON)을 신속하게 한국에 넘겨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2023년 1월 한국 대통령 윤석열은 핵무장 옵션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윤석열은 다른 자리에서는 한미동맹의 핵확장억제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는 것이 기본방침이며 자체 핵무장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2023년 1월 발언은 2024년 콜비의 말과 어울려 한국 안팎에서 핵무장 불가피론을 크게 확산시켰다. 많은 학자들도 핵무장론을 수용했다. 콜비는 2025년 4월 8일 상원에서 국방부 차관 인준을 받았다.


콜비의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국의 핵무장 이슈는 거론되지 않았다. 미국 정치권에서 한국 핵무장은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피차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콜비 인준 청문회의 양상으로 볼 때, 미국이 중국 억제에 집중한다는 것은 미국이 기존의 핵확장억제 원칙과 군사력 전진배치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동맹체제를 유지하고 그 안에서 동맹국들-특히 일본과 타이완-의 국방비 부담을 더 높이도록 압박하는 전략에 집중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콜비는 앞서 언급한 20245연합뉴스인터뷰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는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친 목표”(impossibly far-fetched idea)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생각해야 할 정책 목표는 북한의 ICBM들의 사거리를 제한하는 등의 군비통제(arms control)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본 것처럼 2025년 3월 콜비의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국 핵무장을 거론하지 않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동아시아에 미국의 국방 자원을 집중하며 동맹국들에 대한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과 그가 2024년 5월 북한에 대해서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정책목표라고 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을 종합하면, 결론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북한과 핵과 미사일 개발의 동결을 포함한 제한된 수준의 군축협상을 모색하면서 한국의 재래식 무장 확대와 미군 주둔비용 부담 확대, 그리고 주한미군의 최소한 일부 감축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판단할 근거가 된다. 그는 20245월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에 주둔한 미군은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문제에 인질로 붙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미군의 역할은 중국에 집중해야 하고 한국에 대한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 미군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왜냐면 중국과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거대한 미사일 위협에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현재의 주한미군은 감축하여 다른 곳에 배치하고 한반도 바깥에서 한국을 중국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에는 한국이 거의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관점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콜비의 논리를 따르면, 주한미군 대폭 감축 내지 철수는 한국 핵무장 지지론과 연결되어 있다. 만일 한국 핵무장이 미국 정치권과 정부 안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면 주한미군 대폭 철수도 본격 거론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인준 청문회에서 의원들과 콜비가 모두 동의했듯이, 동아시아 동맹체제에서 미국의 신뢰성을 유지하고 중국 억제(deterring China)를 위해 미국 군사력 전진배치를 유지한다는 원칙들과도 서로 모순될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 핵무장 모두 그 두 원칙들과 어긋나는 성격을 띠고 있는 데다,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체제 자체와 중국 견제라는 ‘중국 매파’들의 핵심 목표 자체를 크게 동요시킬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도 한국 핵무장 문제도 북한 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예측하기 힘든 반응과 대응을 불러올 것 또한 분명하다.


북한 핵보유의 현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들은 콜비의 북핵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입장이 제한된 수준으로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정책으로 투영된다면, 부정과 긍정의 효과가 함께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 한반도의 궁극적 비핵화를 향한 포괄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대담한 흥정을 트럼프 2기 행정부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반면에 점진적이나마 ICBM 문제 등 콜비도 언급한, 미국 본토 안보에 시급한 장거리 미사일 통제를 포함한 이슈들부터 시작해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평화적으로 관리해나가는 크고 작은 협상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럼으로써 군사적 긴장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북미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접촉 가능성을 언급해온 것은 그런 맥락과도 상통한다.


한국 안팎에서 한국 핵무장론이 확산해온 추세를 반영하듯, 미국 정치권과 국제정치학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저명 학술지인 『포린어페어즈』도 올해 초 한국 핵무장을 주장하는 논문을 실었다. 그 요지는 고전적인 틀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이 논문 저자들은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으로 인해서 남북 간 핵 능력 격차를 벌려서 한반도의 불안정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 간에 위기가 발생하면 북한은 핵무기로 남한을 협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북한이 절박한(desperate) 상황에 몰리면 한국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다시 또 하나의 고전적인 논지를 끌어들인다. 한반도 위기 시에 미국이 한국을 도울 것인가라는 문제가 내포한 불확실성은 미국이 이에 대한 공약을 더 확고히 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맞물려 동맹을 마비시킬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위의 논문 저자들도 한국 핵무장을 주장할 때 으레 동원되는 ‘서울-샌프란시스코의 비유’를 꺼낸다. 이 비유는 ‘파리-뉴욕의 비유’를 모방한 것이다. 1961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미국 존 케네디 대통령에게 “파리를 위해 뉴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케네디가 답변을 피했다는 에피소드 말이다. 그러면서 위의 저자들은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같은 미국 도시의 위험을 미국 지도자들이 무릅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미국 정부도 미국 의회와 여론도 결코 그러한 위험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한국 핵무장이 유일한 답이며, 미국은 한국이 스스로 핵무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었다.


5. 담대하게 가야할 길


이들의 논리에 대해 필자는 세 가지만 언급해 두겠다. 첫째, 이들의 주장은 미국이 공식적 상호방위 의무와 핵확장억제 공약을 맺고 있는 동맹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을 묵과하는 사태가 전 지구적 동맹체제 전반과 미국의 자기 정체성에 초래할 파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핵을 사용할 경우에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 생태계를 회복불가능하게 만들 수준의 핵교환으로 이어지는 대재앙을 가져오고 말 것이라는 인식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 북한은 물론 극도의 절박한 상황에 몰리면 상대가 어느 나라든 자신의 최후 카드로서 핵을 사용할 것이다. 한국이 핵무장을 한 상황에서도 그 말은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 카스트로가 절박한 마지막 순간에 하바나의 소련대사관을 찾아가 흐루시초프에게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날려야 한다고 간청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상호 핵무장과 그 강화를 통해서 상존하는 위기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극도의 절박한 위기의식에 도달하지 않도록 평화적 관계를 만들어갈 방도를 찾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한이 생각할 때 자신이 상대하는 남한은 비핵국가가 아니다. 미국의 거대한 핵무기 능력과 온갖 전략자산을 등에 업고 있는 존재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그들을 절박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미국이 정말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북한의 보복이 두려워 서울에 대한 북한의 핵공격을 묵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럴수록 한국의 핵무장을 조장하기보다는 북한과 단계적인 군축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국방차관 콜비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북한에게 당장 완전한비핵화를 강요하기보다는 먼저 ICBM과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제한하는 군축협상의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트럼프도 그의 1기 행정부 때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진지한 단계적 방식의 군축을 포함하는 평화협정으로 북한이 미국 도시들을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포함한 장거리 미사일들의 제한이나 해체가 이루어진다면, 미국 사회는 ‘서울-샌프란시스코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럼 한국도 유사시 미국의 핵확장억제 제공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핵무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렇다는 얘기이다.


‘서울-샌프란시스코의 딜레마’라는 것은 어떤 절대적인 하나의 답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후손에게 남북한을 막론하고 세계에서 핵무기 밀도가 가장 높은 한반도를 물려줄 것인가, 그래서 남북이 마침내는 동아시아 전체를 초토화시킬만한 핵무장을 한 채 서로를 철저한 절멸의 공포로 위협함으로써만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한반도, 언제라도 생태계 전체가 한순간에 파괴될 수 있는 그런 한반도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핵무장과 한미동맹의 대북한 핵위협을 상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 나아갈 것인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아직 남아있고, 또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삼성 교수의 4월 22일 <트럼프의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강연록을 편집부에서 2회에 걸쳐 필자의 동의를 얻어 요약 게재합니다.


▶트럼프의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 1. 주한미군과 한반도 전수방위 원칙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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