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과 삶 속의 앎 / 이마마사 하지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6-03-05 23:53
조회
510

우상과 삶 속의 앎



 


 


 


 



이마마사 하지메(돌봄노동자 겸 독립연구자)


지금 생각해도 참 엉뚱하고 창피한 일이다. 자민당 총재 경선 연설회에서 “외국인이 사슴을 찬다”는 발언이 나왔다. 근거 없는 억지였지만, 그녀는 일단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다른 후보들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었으니 그 점은 차치해 두자.

그런데 결국 큰 사고를 쳤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만에 대해 중국이 무력을 행사하고 전함을 동원해 해상 봉쇄를 시도할 경우, 일본은 이를 ‘존립 위기’ 사태로 규정해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하는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양국의 긴장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 국내에서는 중국과 시진핑에게 악역을 떠넘기고, 다카이치를 일본을 지키는 정의로운 여주인공으로 프레이밍하는 데 성공했다. 일석이조다. 한술 더 떠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모두 ‘반일 빨갱이’로 몰아세워 악마화하는 인터넷 여론까지 형성되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젊은 층의 팬덤 하위문화인 ‘오시카츠(推し活)’가 성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시’는 ‘추천하다’, ‘지지하다’ 혹은 ‘최애(가장 사랑하는 대상)’를 뜻하며, ‘카츠’는 활동을 의미한다.

2026년 1월 19일, 다카이치는 중의원 해산을 선포했고 2월 8일 치러진 선거에서 자민당의 대승을 이끌었다. 이 압승의 배경에는 다카이치 사나에를 향한 ‘오시카츠’ 팬덤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최초의 여성 수상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녀의 활기찬 웃음은 어두운 안색의 노회한 정치인들과 대조되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이 정도일 줄은 투표한 이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당 354석 대 야당 111석. 중의원에서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3분의 2 의석수를 훌쩍 넘긴 수치다(참고로 참의원은 여당 47석, 야당 78석이다).

정치인이 어떤 문제를 일으켜도 방패를 치며 무조건적으로 비호하는 집단, 그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박근혜와 윤석열에게 맹렬한 충성심을 보였던 이들 말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들과 비교하면 다카이치 팬덤은 지극히 온순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상황이 다르기에 단순 비교는 어렵다.

여기에 더해 기본적으로 평온한 분위기를 조성해 준 이데올로기 세력이 의도치 않게 ‘사나에 오시카츠’를 도왔다. 바로 ‘중도개혁연합’이라는 기이한 이름의 키메라 정당이다. 한쪽에는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던 보수 성향의 공명당, 다른 한쪽에는 일본 최대 노조 ‘연합’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옛 민주당 세력인 입헌민주당이 있다. 물과 기름 같은 이 두 당이 전략적으로 합당한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샐러드드레싱도 아닌데 왜 물과 기름을 섞느냐고.

자신들이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임을 표방하는 ‘극중도(極中道 extreme centre)’라는 개념이 있다1).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이 대표적이며, 프랑스 혁명 이후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난 경향이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와 기존 권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즉 현대 신자유주의 통치의 ‘트로이 목마’인 셈이다.

민중은 자신들이 바보 취급당할 때 이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크다(정작 함께 바보가 되거나 미쳐주는 지도자에게는 관용적인 듯하지만). 극중도를 표방하는 당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미움과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프랑스의 마크롱이 그렇고 미국 민주당이 그렇다.

일본에서도 그들의 차례가 왔다. 중도개혁연합은 미움을 샀고, 다카이치는 환호를 받으며 승리했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무력화되고 트럼프의 천하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미·일 양국에서 리버럴 세력이 몰락한 것이다. 솔직히 그들은 거리에서 민중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발을 뺐던 집단이다. “보도를 걷고 신호를 지킵시다”, “경찰관의 지시를 따르십시오”라며 훈계하던 이들이 대체 어떻게 ‘헌법’을 논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 그 “파시즘”이 다시 도래한 것일까? 아니다. 알베르토 토스카노는 “후기 파시즘(late fascism)”이라는 명칭을 주며 그것이 무기력과 무능력의 짜증을 낼 뿐인 “노망(senile)”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2).

현재 세계의 기이한 점은 겉보기에 전혀 다른 체제들이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작년 봄, 중국의 예술가 그룹들이 자국 내 자율 공간들을 탐방하는 행사에 일본·중국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다. 행선지 중 한 곳은 인구 천만이 넘는 후난성의 성도, 창사(長沙)였다.

그곳에서 모택동의 흉상을 보았다. 익숙한 모습이 아닌 젊은 시절을 조형한 것이라는데,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샹쟝(湘江)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거대한 콘크리트 조형물의 위엄은 러시모어 산의 조지 워싱턴 같았고, 외모는 K-팝 아이돌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기념관 서점이었다. 모택동의 저서 대신 레닌, 빌 게이츠, 푸틴, 미셸 오바마, 카네기, 시진핑 등 온갖 ‘위인’들의 전기만이 가득했고, 많은 이들이 그 책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중국 창사(長沙)의 모택동 조형물(사진: 필자제공)




대립 관계인 양국의 문화적 상동성을 엄밀히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중국의 사례는 단지 모택동이 지닌 극단적 양가성을 해소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인민 통치’를 앞세운 ‘탈정치화’가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공간은 성공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주입하는 상징물들로 가득했다.

광저우에서 창사, 베이징, 톈진으로 이어진 여행에서 나는 중국의 전혀 다른 이면을 보았다. 시속 350km로 달리는 고속철도 한편에는 팬데믹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대안 공간들이 있었다. 그곳의 실천이야말로 발터 벤야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말하는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이었다3).

어느 자율 공간에 전시된 목판화들은 그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고 있었다. 팬데믹 봉쇄 속의 비극과 투쟁들, 가자 학살에 항의하며 분신한 미군 애런 부슈널, 그리스 부채 위기 투쟁, 팔레스타인의 상징 ‘한달라’, 그리고 전태일. 재단운영자들이 동의할지 모르겠으나, 이것이야말로 리영희 선생이 강조한 ‘모택동 교육사상’의 실천이 아닐까 싶었다4). 베이징에서 만난 한 지식인은 혁명의 가장 큰 걸림돌이 다름 아닌 ‘교육’이라며, 창사에 세워진 모택동의 학교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기도 했다.


중국 대안공간 지도(사진: 필자제공)



여행 직후 한국으로 돌아와 윤석열 탄핵 집회에 잠시 참석했다. 그곳은 이미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팬덤 문화’의 또 다른 활용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깃발 아래 아이돌 노래(‘다시 만난 세계’)와 민중가요가 디제잉을 통해 어우러졌고, 무대 영상은 역사적 투쟁의 기록을 비췄다. 거기에는 실천적 교육이 있었고, 적어도 아직 ‘우상’은 없었다.

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다. 전반기는 서울에서, 후반기는 한국인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지방에서 보냈다. 그러다 아이들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그들을 따라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한국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공정한 경쟁이 공평한 서열을 만든다는 시스템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을 뿐인데, 대안을 찾으려 할 때마다 선택지는 하나씩 지워져 갔다. 그리하여 감행하게 된 이사는 절반의 귀국이자 절반의 이민이었다.

삶은 여전히 평탄치 않다. 일본에 왔다고 아이들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주부, 농사, 번역을 하며 탈-임노동의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장애인 활동보조원이자 시간강사로 일한다. 다행히 고립되지는 않았다. 이곳의 벗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출신, 성별, 연령, 모국어, 신념은 제각각이지만 말이 통하는 친구와 동지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숲속 숙소와 텃밭 가꾸기(사진: 필자제공)



2000년대 ‘글로벌 저스티스 운동’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이들, 그리고 최근 5년 사이 반자본주의·반권위주의 흐름 속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자율 공간을 만들고 활동 중이다. 도쿄를 넘어 여러 지역 간의 연락망도 확장되고 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활동가이자 지금은 나의 ‘사장님’이 된 분이 말했다.

“오랜만에 파도가 오는 것 같아.”

단언컨대 이러한 흐름이 현재 일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하지만 이것은 알 수 있다. 각자도생의 삶에 우리 스스로가 종속되는 한 우리는 극중도가 준비한 폐쇄공간 너머의 지평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상상해 본다. 우리의 균사(菌糸)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계를 뒤덮고 있다. 


____
1) 타리크 알리의 저서 『극단적 중도파』(장석준 역, 오월의봄, 2017)를 참고할 것. 역사 속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해 개념화한 프랑스 혁명사 학자 피에르 세르나(Pierre Serna)는 현대 정치를 분석하는 데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음 논집을 참고했다: 酒井隆史、山下雄大 編著、『エクストリーム・センター』、以文社、 2025).

2) 토스카노는 후기자본주의, 후기 파시즘이라고 명명한다고 이러한 현상들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다고 경고한다. https://proteanmag.com/2023/11/29/late-fascism-an-interview-with-alberto-toscano-part-2/ 

3) 그들의 등장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익명 지음, 홍명교 옮김,『탕핑주의자 선언』, (미디어버스, 2025). 

4) 마오쩌둥의 교육 사상은 존 듀이의 영향을 받아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교육 사상은 이후 소련화 과정을 거쳤으며, 이러한 경향이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다음 논문의 요지이다. 肖立岩、「毛沢東の学習論に関する一考察」、東京大学大学院教育学研究科紀要
第37 巻、1997年。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mao/selected-works/volume-1/mswv1_16.htm, https://www.marxists.org/chinese/maozedong/marxist.org-chinese-mao-19370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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