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형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 서보혁
한반도형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서보혁(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제의식
올해 들어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 정책은 ① 남북 간 평화공존의 제도화, ② 한반도 공동성장의 기반 구축, ③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등 3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달성할 추진 전략으로 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의 포괄적 접근, 국민-국제사회와 함께 하는 열린 정책 추구를 제시하고,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재정립 및 평화공존 제도화 등 6개 중점 추진과제를 밝혔다. 정부는 위 정책의 추진 원칙으로 ① 북한체제 존중, ② 흡수통일 불추구, ③ 적대행위 불추진 등 셋을 언급하고 있다. 이같은 현 정부의 대북 혹은 한반도 정책은 지난 시기 민주당 정부가 표방한 비핵·평화체제 구상보다 그 목표에서 하향 조정된 것이지만 전반적인 방향은 유사하다.
정책 목표의 하향 조정은 김정은 정권이 남한-어떤 성향의 정권이든-을 더이상 민족의 일부 혹은 통일의 상대로 간주하지 않고, “적대적 두 국가관계”, “교전국 관계”로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런 입장을 밝힌 이래 북한은 남북 합의, 남북 간 교류협력사업(철도·도로연결 사업 포함), 북한 내 통일 관련 법제 및 건축물 등을 폐기해왔다. 그리고 휴전선 일대에 방벽과 초소를 늘려온 것도 확인되었다. 나아가 북한은 한반도와 그 일대를 핵공격 할 수 있는 무력과 군사교리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평화체제가 아니라 평화공존을 전면에 내선 것은 합리적이다. 물론 정부는 그 둘을 연속선상에서 보고 있다.
평화공존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용어이지만 그것을 특정 시기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로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우리들은 평화라는 용어도 한반도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데, 평화공존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그 말과 함께 써온 (평화)공영과는 어떤 관계인지 의문이 든다. 정책 측면에서는 대북정책 목표를 평화공존이라고 할 때, 그러면 비핵화는 어떻게 되고 나아가 통일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증이 올라온다. 마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북관계를 “한국-조선관계”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평화공존의 한 표현이자 북한의 대남 적대적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아래에서는 평화공존에 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 용어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그 적용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에서 평화공존이 점하는 위치와 의의, 그리고 우리의 과제도 토의해보고자 한다.
평화공존이란?
중고등학교때 세계사 과목을 좋아했던 이는 평화공존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례가 후루시초프의 평화공존론일 것이다. 후루시초프는 스탈린 사후 그의 통치 방식을 비판하며 공산권은 물론 자유진영으로부터도 관심을 모았다. 그는 소련 내적으로는 스탈린을 공포정치, 비밀정치로 비난했고, 밖으로는 자유진영과의 과도한 군비경쟁을 비판했다. 그는 군비경쟁을 줄여 경직된 소련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제 활성화를 추구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서방 진영과의 관계개선, 곧 데탕트를 필요로 했으니 그 논리가 평화공존론이다. 그의 평화공존론은 마오쩌뚱으로부터 ‘수정주의’라로 비난받으며 중소분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후루시초프의 평화공존론은 1950년대 중반-1960년대 중반까지 미소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듯하였지만 다른 국제관계에서 더 꽃피워 갔다. 그것이 비동맹 진영에서의 평화공존론이다.
약소민족들이 대거 해방과 독립을 획득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였다. 일부 독립 국가들이 냉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많은 국가들은 비동맹·중립을 기치로 별도의 국가군, 소위 제3세계 진영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평화공존론이 비동맹·중립운동 속에서 꽃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동서 진영 간 평화공존은 신생 독립국가들의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신생 독립국가군 중 중국과 인도는 정치체제와 국가 규모 등에서 눈에 띄었다. 두 나라의 협조관계는 더 눈에 띄었다. 1954년 중국과 인도는 상호 무역 협정을 맺었는데 협정 서문에 ‘평화공존 5대 원칙’을 명문화했다. 이 원칙이 이듬해 인도네시아에서 가진 반둥 회의를 거쳐 비동맹 운동의 핵심 가치로 확산되었고 나아가 현대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으로 발전하였다. 이때 제시된 평화공존 5원칙이 ① 영토 보전과 주권 존중, ② 불가침, ③ 내정 불간섭, ④ 평등과 상호 호혜, ⑤ 평화적 공존이다. 여기서 평화적 공존은 “차이점과 갈등 요소가 존재하더라도 전쟁이 아닌 평화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의 번영을 추구한다”는 의미였다. 중국이 외교적 언사로 널리 이용하는 구동존이(求同尊異)가 평화공존을 말하고, 평화학에서 중시하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 평화공존에 기반하는 공영도 위 5항에 담겨 있다. 물론 평화공존 5원칙을 공동 개발한 중국과 인도는 이후 무력 충돌까지 빚으며 그 원칙을 스스로 위반하기도 하였다.
이제 이론적인 차원에서 평화공존을 간략히 살펴본다. 평화공존은 가치관, 존재 여건, 지향이 서로 다른 복수의 존재, 그중 일부 경우에는 과거 물리적 충돌까지 경험한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정치집단을 전제한다. 그 위에서 공존을 추구하거나 결과적으로 공존하기도 한다. 미생물의 ‘공생’에서 인간과 우주의 원리를 발견한 린 마굴리스에게 공존은 공영과 동전의 양면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공존은 다른 존재들이 한 하늘 아래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단순하고 정태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그 이상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평화공존의 본질은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상호 존중과 절제를 통해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는 구조적·심리적 틀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평화공존의 원리 혹은 가치는 통합, 통일이 아니라 존중, 인정이라 하겠다. 한 사회에서든 국제적 차원이든 다양성의 존중이 평화공존의 원리인 셈이다.
다양성 존중은 평화공존론이 자유주의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집단이 평화공존보다는 분쟁을 초래하는 사례는 흔하게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이론에 한정해서 토의해본다.
평화공존론의 기원은 크게 철학적 배경과 정치적 배경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철학적으로는 칸트의 1795년 저작 『영구 평화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칸트는 공화주의적 헌법, 국제법에 기반한 자유 국가들의 연맹, 그리고 세계 시민권(cosmopolitan citizenship)이 전쟁을 억제하고 영구 평화를 보장할 것이라고 보았다. 정치적 측면에서 평화공존은 위에서 냉전의 맥락에서 살펴보았지만 그 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레닌과 트로츠키는 ‘평화에 관한 포고령’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 참가국들 사이의 협상을 제안하며 평화공존을 외교적 수사로 활용하였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평화공존을 제안한 것은 평화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신생 소비에트공화국의 존립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위에서 평화공존론의 한 줄기는 자유주의적 정치사상, 다른 한 줄기는 국제정치적 필요의 산물임을 살펴보았다. 이는 평화가 폭력과 큰 거리를 둔 이상적인 가치라기보다는, 둘이 뒤엉켜 싸우며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평화로운 상태가 커져가는 연속체임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결국 오늘날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시대에 평화공존은 인류 전체의 생존,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공생, 그 속에서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실천적 사유의 토대로 재규정할 수 있다. 국제 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해서 인류는 글로벌 내전에 돌입했는지도 모른다. 평화공존은 이제 이상적인 바람이나 정치적 수완을 넘어 인류와 인류 삶의 터전의 회복력을 보장할 제일 원리로 부상하였다. 물론 그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비인간 존재의 생존이 인간의 판단에 의존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평화공존을 향한 인간의 결정은 인간만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평화공존론은 크게 정치사상과 정치적 판단의 의미를 갖고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차원과 측면에서 변화해왔다.
평화공존의 범위와 유형
평화공존의 다양한 의미에 이어 여기서는 그 형태를 살펴봄으로써 평화공존이 다의적이고 그 범위가 폭넓다는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다.(표 참조)
첫째, 지정학적 및 이념적 공존이다. 상이한 정치 체제와 경제 모델을 가진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가장 전통적인 유형이다. 이런 공존은 국제적 차원에서 나타나는데, 군사적 대결 대신 외교와 협상을 선호하며 상호 주권을 인정하는 국제법적 틀 안에서 작용한다. 냉전기 미-소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한반도와 양안, 그리고 중동은 지정학적 및 이념적 공존을 계속 실험하고 있다. 냉전 해체기에 각광을 받은 문명충돌론은 일종의 이념적 대립이라 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해 유세프 쿠르바즈와 에마뉴엘 토드는 『문명의 충돌이냐, 문명의 화해』를 출간하며 문명 간 공존의 가능성을 논증한 바 있다.
둘째는 종교적 공존이다. 다양한 종교 공동체가 서로의 신념 차이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는 주류 종교 간의 대화뿐만 아니라, 동일 종교 내의 분파(이슬람교 내 수니파와 시아파 등) 간의 화해를 포함한다. 종교적 공존은 단순한 관용을 넘어 타자의 종교적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절대 가치로 수용할 때 실현된다. 이라크 사회나 알바니아의 종교적 관용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까지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는 종교 간 대립의 외피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영토와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 주된 분쟁 원인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에서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존해오며 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셋째는 민족적, 인종적 및 언어적 공존이다. 한 국가나 지역 내에서 인종, 피부색, 관습이 다른 집단들이 협력하는 모델이다. 언어적 공존의 경우, 다언어 사회에서 특정 언어의 문화적 독점을 배제하고 다국어‧다문화 교육 등을 통해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의 가치를 보전하는 정책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회적 소외를 방지하고 공동체 통합을 이루는 필수적 요소이다. 다민족 국가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와 풍습을 존중하는 것은 사회적 평화의 근간이다. 한국에서는 노동력 부족으로 다른 언어를 가진 인종과 민족이 들어와 공존하고 있는데, 그에 부응하여 종교적 공존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마지막으로 한 사회에서 개인 간 공존이다. 일상생활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개인들이 갈등을 건설적으로 관리하며 공생하는 상태를 말한다. 개인 간 공존은 모든 공존의 토대이다. 개인 간 공존은 상호 존중, 다양성의 인정을 의미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공존을 학습하고 체험하지 않으면 사회적 차원이든 국제적 차원이든 공존은 흔들릴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 자기 성찰의 태도, 의사소통에의 참여 등이 민주시민의식을 높여준다. 그것은 곧 사회적 평화를 만들어낸다.
한반도 분단‧정전체제가 고질적 분쟁(intractable conflict)의 성격임을 감안할 때 평화공존의 유형을 그 수준에 따라 생각해보는 것도 유용하다. 전쟁 경험이나 적대관계를 전제로 하는 평화공존은 그 정도에 따라 적대적 공존> 기능적 공존> 인식적 공존> 제도적 공존 등의 형태로 유형화해 볼 수도 있다. 앞의 두 형태는 분쟁 가능성이 높고 뒤의 두 형태는 상대적으로 협력 가능성이 높다. 3-4단계의 순서가 맞는지, 둘이 단계적인지도 토론할 여지가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남북은 낮은 수준의 공존, 즉 적대적 공존과 기능적 공존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해왔다고 볼 수 있다. 수준별 평화공존 유형은 현 정부가 밝힌 평화공존정책의 목표와 추진전략에 유용한 준거 틀이 될 수 있다.
평화공존의 성공과 실패
평화공존의 뜻이 복수이고 그 유형이 여럿인 만큼 그 사례도 사회적 차원, 양국간 혹은 지역적 차원, 세계적 차원 등으로 다양하다. 냉전시대였던 유럽에서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35개국(미국, 카나다 포함)이 1970년대 중반부터 냉전 해체까지 역내 안보와 협력을 위해 대화를 지속해왔다. 유럽안보협력(CSCE)으로 시작해 냉전 해체 이후에는 공식 조직체계(OSCE)를 갖추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냉전기였던 만큼 CSCE는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전쟁을 막고 전통적인 안보를 넘어 공동안보, 포괄안보 협력을 개척해갔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적 교류를 전개해 공산권의 평화적 전환과 유럽통합의 밑바탕이 되었다.
지역 차원의 또다른 평화공존의 성공 사례는 아세안(ASEAN)이다. 동남아 역내 국가들이 안보에서부터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아세안은 ‘아세안 방식’이라는 독특한 규범을 통해 역내 평화공존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서구의 법치주의적이고 강제적인 갈등해결 방식과 달리 비공식적 협의와 합의, 조용한 외교를 중시한다. 아세안 방식의 핵심은 내정 불간섭과 엘리트 간 신뢰구축이다. 비록 남중국해 영토 분쟁과 같은 심각한 불안 요인이 존재하지만, 아세안은 공개적인 비난보다는 막후 협상을 선호하며 지역 내 군비 경쟁과 대규모 무력 충돌을 성공적으로 억제해왔다.
양국 차원의 평화공존은 러시아와 일본, 인도와 파키스탄, 남북 키프러스, 에디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평화공존 개념의 요소들과 측면들을 고려해 공존의 성격과 형태, 수준을 평가하고 전망해볼 수 있다. 그런 작업은 한반도 평화공존정책에 풍부한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그러나 평화공존이 지속하지 못하고 실패, 붕괴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 원인을 찾는 일이 평화공존을 지속시키는 노력만큼 중요하다. 흐루쇼프가 개시한 미소 데탕트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무너지고 신냉전이 격화된다. 군비경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소련 스스로 평화공존론을 폐기한 것으로 보였고 미국, 일본, 영국 등 서방진영은 강성 보수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았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국제안보정책을 보는 눈과 접근방식에서 대립하였다(소위 현상유지 대 세력팽창). 그 밑바닥에서 상호 불신에 기반한 패권욕이 작용하였다. 현실에서는 각국 내 강경세력의 득세가 두드러졌고 그 결과 상대방과의 대화의 창은 닫혀갔다. 시민사회의 견제와 평화여론이 대결 분위기를 제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사실들은 평화공존을 회복하거나 지속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한 사회에서도 사회적 평화의 붕괴는 다양한 구성원들 사이 상호 존중과 신뢰의 결핍 혹은 급격한 감소에서 비롯된다. 그 계기는 동류 집단의 지위 혹은 이익의 축소와 타 집단 희생양 만들기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불평등에 따른 사회정치적 양극화이다. 위에서 소개한 토드 교수는 『샤를리는 누구인가?』에서 프랑스 사회의 우경화와 이슬람인들에 대한 혐오의 원인을 다양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중간층의 붕괴와 불평등을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공존 어떻게?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의 평화공존과 국제적 차원에서의 평화공존이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정부가 없으므로 불신과 생존 욕구가 두드러지므로 평화공존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거나 일시적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현실주의적 시각이 그렇다. 다만 현실주의 학파에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외교가 중요하다고 보는 그룹도 있다. 반대로 사회적 차원에서도 불평등의 정도에 따라 집단 간 불신과 생존 우선적인 행동 방식이 우세할 수도 있다. 더구나 국제분쟁의 일상화, 기후위기 시대에서 위협인식과 불안감의 상승작용은 평화공존의 길을 어둡게 만들 수 있다. 한 국가 내 사회적 평화공존을 중시해 타 국가의 그것을 무시할 때 그 사회의 평화공존이 가능할까? 또 평화공존이 선의라 하더라도 상대편이 선호하지 않을 경우 평화공존이 가능할까? 여기서 공존·공영이 평화의 실체임을 알 수 있지만 충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공감이 함께할 때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 필자가 이 삼공(三共)을 평화의 길을 닦아갈 집합적 덕목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화공존은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불식시키고 평화를 정착하는 노력의 일환이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예비하는 일이다. 남북은 현실적으로 또 국제법적으로 국가 간 관계이므로 위에서 소개한 평화공존 5원칙을 적용함이 타당하고 또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천명한 평화공존 정책도 그런 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다만, 5원칙 중 내정불간섭 원칙은 세계화 시대의 맥락, 인간 존엄성 증대의 시각에서 변용할 여지가 있다. 물론 긴장 완화의 막중함을 고려해 신중하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바이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관련 행위자들과 실행 영역이 각각 3차원임을 직시하고 세 방향에서 병행 추진하는 정책 기조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그 3차원이란 대내적 차원, 남북관계 차원, 국제적 차원을 말한다. 정부가 밝힌 평화공존 정책이 3차원을 고려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대내적, 국제적 차원이 미흡해 보인다. 특히, 국민들의 평화의식을 제고하고 정치사회에서의 초당적 정책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진력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지속되고 있지만 민생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평화공존이 북한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평화, 개인 간 평화공존이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한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중이 가능한 조건, 존중할 마음이 생길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누릴 권리로서 생존권이다. 경쟁이 극심하고 사회 복지망이 약한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평화공존 없이 남북 간, 한반도 차원의 평화공존의 길은 지속가능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정부가 밝히고 있는 국제평화에 기여할 인적, 물적 자원을 대폭 확대하여야 한다.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공적개발원조 기금의 확대가 그것이다. 나아가 급증하는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노력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 지적은 러-우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한국의 역할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노력의 크기와 국제사회의 한반도 평화정착 지지도는 명백하게 비례관계에 있다.
그리고 평화공존의 수준과 방식이 다양함을 인정하고 정책 과제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일관되게 전개해나가야 한다. 남북의 경우 일방이 적대적 관계를 선언하고 대화를 단절한 상태에서 과거 교류협력이 활발하던 시기로 곧장 회복하려는 자세는 비현실적이다. 군사적 긴장은 물론 교류협력의 경험을 공존이 아니라 불신의 증좌로 간주하는 일방과의 평화공존은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상대의 호응이 있기까지 인내심 있게, 일관되게 접근해나가야 한다. 평화공존은 호혜성을 행동 원리로, 상호주의를 행동 준칙으로 한다. 일방의 선의는 그것을 촉진하는 기제가 될 수 있지만 그 원리와 준칙을 대체할 수는 없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국익과 동맹의 이름으로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다. 평화공존이 이상과 현실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에서 둘의 균형이 깨질 수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평화공존에 기여할지는 믿음의 영역에 가깝다. 요컨대, 평화공존은 대내적으로는 평화 지도력과 평화 지지 여론, 대외적으로는 공존의 상대가 호응할 정도의 호혜성이 성립할 때 실현가능한 연속 게임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던진 큰 질문, 평화공존이 평화통일을 보장하는가의 문제이다. 평화공존론이 기반하는 자유주의 국제정치관에서 볼 때 공존이 깊어지면 통일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지만, 그 방식과 시점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평화주의’ 관점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종착지는 평화통일이 아니라 통일평화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한반도 환경에서 특수한 중간목표이지만 최종목표는 평화공동체이다. 평화를 수단과 절차, 소극적 평화의 울타리에서 해방시키자. 평-통-평! 이런 점에서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정책은 비전과 목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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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혐중의 시대에 다시 읽는 <8억인과의 대화> / 하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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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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