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3호 / 이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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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2-07-26 06:24
조회
934


 


 


 


 


이병남(리영희재단 이사, 전 LG인화원 사장) 


사진제공: 한겨레신문 이정용 선임기자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이번호에 소개드릴 이사는 이병남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2016년 LG 인화원 사장을 끝으로 21년간의 현장에서 퇴임하고 그 해부터 리영희재단 이사로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얼마 전에 출간된 선생님의 두 번째 책 <회사에서 안녕하십니까>를 중심으로 얘기를 듣고자 합니다.


1.글자 몇줄로 씌여진 이력만 보고는 미국대학에서 노사관계, 인사문제를 15년간 연구,강의하고 한국 대기업에서 20여년간 그룹의 인사 및 교육 업무를 하신 분이 리영희재단과는 무슨 인연일까 할 수 있을텐데요. 단지 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한 대학시절의 경험만이 아니라,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점이 리영희와 이병남을 지속적으로 서로 끌어당겼구나’ 하는 점이 반복해서 읽히는데 그건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기사(영웅)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간다”는 비교종교학자 캐런 암스트롱의 글을 인용하면서, “남들이 내어놓은 길만 따라가면 오히려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자기 영혼과 대면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안녕하십니까> p77”


이 특별한 순간은 자신만의 길을 감으로써 진정 특별한 순간으로 오히려 만들어 내는 것일텐데요, 이 점에서 두 분은 닮았다는 느낌입니다. 선생님이 21년간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를 선택의 문제로 삼지 않고 주어진 선택지 모두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찾는 방식으로 (p54) 특별한 순간을 마주해왔다고 생각되는데요.


나는 늘 삶의 본질적인 가치와 시장이라는 현실 속에서, 또 소위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힘든데 억지로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고 생겨먹기를 그렇게 생겨먹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올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성배 신화 속 그 기사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길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을 나설 결심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죠.


지금은 남발되는 단어이지만 혁신革新이라는게 가죽을 새로 가는 거잖아요. 2도 화상만 입어도 얼마나 아파요. 껍데기를 간다고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죠. <Good to Great>라는 콜린스의 책에서 진정한 혁신을 이루어낸, 제일 높은 수준에 도달한 리더들의 공통점은 professional will and personal humility 라고 했어요. 엄청나게 치열하고 치밀하고 집요하게 일하면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겸허함을 함께 갖추고 있더라는. 나는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거기서 겸허함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고 그 어원이 humus예요, 흙. humiliation이라는 단어가 또 생각이 나요. 그것은 모욕을 당한다는 뜻. 그런 것을 갖고 생각을 하다보니 이 humility라는 것이 앉아서 그저 깊은 명상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땅바닥에 굴러서 흙 묻히고 겪어내고, 여기서 생기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예요. 그 길로 우회해야만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 닿을수 있는 것이고요. 이것이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삶인 듯 해요.


2 선생님도 ‘라떼’와 ‘꼰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글을 썼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세대갈등’이 잘못 이름 붙혀진 경우도 있고 실상인 점도 있을 텐데요. 선생님은 “젊은 직원들이 싫어할지도 몰라 전전긍긍하고 지레 포기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설명하고, 필요하면 설득해야한다”고 쓰셨습니다(p161).


요즘 이렇게 말하는 선배는 굉장히 귀한데요. 선생님이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후배를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 그리고 그것이 ‘꼰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이 되기 위해 갖춰야할 것은 어떤 것일까요?


기본적인 마음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걸 마음 속에서 잘 키워서 그 마음을 잘 배양하는 것. 그렇게 하면 조금씩 조금씩 마음 속에서 자라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 문제는, 제가 책 쓰면서 ‘다가가기 어려운 MZ세대,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고 3개월 동안 20~30대 3~4명과 직접 이야기 하면서 알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내 삶을 보호하는 것이 1순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쟁이 불안을 낳고 그 불안이 내것을 지켜야만 한다는 자기 보호 본능을 강화시키고, 그것이 자기 권리에 대한 민감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면이 있고, 다른 한편, 잘 먹고 잘 살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자기 본능에 충실한 것, 그것은 책임감 있는 행동이고 성실한 자세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생명 자체가 갖고 있는 원초적인 거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것이 혼자서는 얻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 속에서 얻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남들에게도 무언가 좋은 일이 생겨야 하잖아요. 모든 이해관계인에게, 더구나 이것이 지속 가능하려면. 그래서 인간존중 이란 것이 우리가 세대를 넘어 가져야 할 공유가치란 겁니다. 선배세대들은 실제로 세상을 그렇게 살아야 하고 후배세대들은 사회에서 그걸 보고 배워야 하고요. MZ세대라고 ‘우리’는 없고 ‘나’ 만 있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도 있어요. 정말 배우고 싶은 선배에 대한 굉장한 목마름이 있어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공유가치에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 5060세대들이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애를 쓰면서 젊은 후배들에게 전수해 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나는 후배들을 만나면, 그들은 그들의 후배를 어떻게 챙기고 있는지 계속 물어봐요.



3. 선생님은 책에서 온정주의적 태도는 실상은 소통의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을 직면하고 해소할 자신도 의지도 없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p148). 이 또한 요즘 듣기힘든 얘기 같습니다.어떤 스타트업 회사 사무실 곳곳에 ‘말할까 말까 할 때가 완전히 솔직할 때’ 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일테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이랬단 왕따되기 쉽지요. 선생님이 이런 온정주의를 넘어선 ‘진실 말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요.


내가 현직에 있을 때도 겪은 일이지만, 도저히 내부 기준이나 원칙을 봐서 용납할 수 없을 때는 징계를 해야하는데, 어떤 직원 한 명을 징계하자고 주장을 했다가 왕따 당했던 경험이 있어요. 묘하게 밑에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도된 피해의식, 그런 것을 잘 부추겨서 이용하고 그러면서 자기 포지션을 확보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조직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찬 물을 끼얹는 거죠. 나는 아픈 조직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 아픈 조직을 보면 냉소적인 분위기가 많고 불필요한 피해의식을 많이들 갖고 있어요. 근거 없는 피해의식에 대해서, 이건 오도된 것이구나 하고 깨어나길 기대하는데,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목소리를 내면 왕따를 당하고, 그러니 그런 목소리를 안내고,못 내고, 그러면서 세대 갈등, 계급 갈등 비슷하게 되고 그래요.


기본적으로는 일 중심이 아니라 관계중심으로만 조직문화가 쏠리면 진실을 말하기가 어려워져요. 모두 다 그 문제를 느끼나 아무도 책임지고 그 문제를 묻지 않는 상황, 회사뿐만이 아니라 시민단체나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일 수 있죠.


4.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를 다읽고 예전에 선생님과 주고받았던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광주MBC 리영희 3부작을 보고나서인데


“이번에 알게 된 건 리영희는 상황과 사건에서 배울걸 찾는다는 점”


“계속 큰다는 점ㅋㅋㅋ”


“Growing mellow, growing sweet!”


이 책에서도 딱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마주 대하는 하나하나의 사건을 사유와 성찰의 기회로 삼는, 그래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선생님은 ‘은퇴 뒤 삶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성장’이라는 생각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삼기로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평생을 멀리 지냈던 나 자신의 그림자와 친해지고, 저기 한구석으로 밀쳐놓았던 외로움, 열등감, 죄책감에서 벗어나 거리낌 없이 나 자신으로 사는 것”(p265)에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요즘 하시는 일과 생각은 어떤 건가요


요즘 책 나오고 좀 바삐 다니면서 ‘자아 팽창’ 이랄까 밧데리가 방전되는 것도 모르면서 몇 주 동안 바깥에서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드는거예요. 그냥 그 속에서 놀고 있는 거야. 밖으로 발언을 했으면 바로 다시 나의 내면의 고요함 속으로 돌아와 거기에서 딱 중심을 잡고 어떤 에너지 같은 거를 얻고, 그러니까 이게 들락날락을 잘해야 되는 거거든. 그러면서 바깥에서 뭐 할 일 있으면 해야죠.


5.마지막으로 리영희와의 기억 짧게 소개해 주신다면요.


선생님은 이 집에도 오셨고 제가 산본 아파트도 갔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겨울만 되면 기관지 때문에 추워서 동남아를 가신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아니 아파트가 왜 추울까하다가 창호가 문제라는 걸 알게된 거죠. 그래서 창호를 바꿔드렸어요. 그 다음부터는 동남아를 안 가시고 그 다음에 제가 갔는데 거기 베란다 창가에 침상처럼 만들어 놓은데가 있는데 거기 탁 누워계시면서 너무 좋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나요. 그 때 제가 정말 행복했지요. 선생님과의 마지막 기억은 백병원에 계셨을 때, 제가 미국 출장을 가야하는데 마음은 불안불안하고 그래서 병문안을 갔어요. 배에는 복수가 찼고 손발톱이 굉장히 기시더라고요. “선생님, 심심한테 손톱 깎아드릴까요?” 여쭈었더니, “아, 좋지” 하셔서 깎아드렸어요. 그 분이 올곧게 사는 것 자체를 존경하면서도 마지막 몇 년을 가까이 지낼수 있었던 것은 존경이 아니라 좋아해서 였어요. 우리 아버지 연배시고, 29년생. ‘리북’출신이라는 것도 익숙하고. 유머감각이 탁월하시잖아요. 마지막에도 레미제라블 불어로 읽으시고. 나는 그냥 우리 아버지 친척 어른 느낌이었어요. 첫 대면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그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좋았어요. 아마 그때쯤에는 선생님도 멜로 다운되시고, 날카로운 부분도 부드러워지시고 스위트해지셨죠.


좋아하지 않는 스승은 스승이 아니고, 존경하지 않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좋은 말이네요


긴 시간 고맙습니다. 한겨레에 인터뷰하시면서 “내 책을 읽은 사람 5명만 모여서 요청하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하셨는데 뉴스레터 독자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가지고 5명 모아서 코칭을 요청하면 들어주시는거죠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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