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D검사와 이교수의 하루」
10-5. 「D검사와 이교수의 하루」(1986년 『외국문학』, 역설)
D검사와 이교수의 하루
2층 서재의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던 이 교수는 천천히 책을 무릎에 내려놓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연히 눈길을 돌렸던 앞집 슬래브 지붕 위 하늘의 구름을 봤기 때문이었다.
5월 초의 어느 날 오전, 그가 속해 있는 대학에서는 아침부터연거푸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전 인천에서 있은 학생과 노동자들의 데모에서 다소 귀에 거슬리는 구호를 외쳤다고 해서 세상이 왁자지껄 소란한 때다. 신문과 텔레비전들이 입을 모아 야단들이었다.“ 노동자가데모를하는것은반국가적이다…….”입가졌다는 사람마다 떠드는 꼴이 마치 당장에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 양 소란스러웠다. 전화 소리가 또 울렸다.
대학본부 직원의 목소리는 금세 숨이 넘어갈 듯 다급했다.
“이영희 교수댁입니까?”
“예, 난데요…….”
“오늘부터 전체 교수의 비상근무 소집령이 내렸습니다. 개교기념 축제 주간이어서 학생들이 모이는데, 교수님들이 지정된 장소에 나와서 학생들의 동태를 살펴주셔야겠습니다. 곧 출근해주셔야겠습니다.”
교무처 직원의 휘— 하고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수화기에서 새어나왔다. 그러고는 충실한 직원답게 마지막 전달사항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교수님들을 위해서 점심식사는 학교 측에서 제공한다고 합니다. 회식장 입구에서 단과대학별로 출석을 점검한답니다.”
그는 마지막 사항이 더 중요하다는 듯 강조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 교수는“잘들 논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서재로 올라온 것이었다.
사실은 출판사가 청탁한 원고를 쓸 생각으로 그날 아침 학교 연구실에 나갈까 하던 참이었다. 마침 개교 기념 축제주간이어서 수업은 없고, 원고마감은 벌써 지난 상태였다.
이 교수는 학교에 나가려던 생각을 돌려 서재로 올라가 자기의 저서『우상과 이성』을 책장에서 꺼내 들었다. 그 책을 낸 출판사가 연번호 100호 출판기념으로, 자신의 책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원고마감을 알리는 출판사의 전화가 여러번 있었다. 편집부 여직원이 원고를 독촉하는 음성이 또 그의 귀에서 울렸다. 이 교수는 중얼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쓸까?’
책을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하다 말고 창 밖으로 눈을 돌린 이 교수의 상체가 소파 속에서 가볍게 떨리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앞집 슬래브 지붕 위에 멀리 푸른색을 배경으로 떠 있는 구름을 응시하고 있었다. 멋대로 변화하며 푸른 바탕에 흰 무늬를 한가하게 수놓고 있는 구름의 형상이 마치 책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있는 두 사람같이 보였던 것이다. 아마 그 자리 그 순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모양은 세 개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뿌우연 형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몇 개의 구름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교수의 두 눈 속으로 꽉 차 들어온 구름의 모양은 그의 머릿속에서 책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있는 한 사람의 공안검사와 포승에 묶인 몸으로 마주 앉아 있는 반공법 피의자로 굳어져 있었다. 그는 10년 전인 1977년 12월 어느 날의 환상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공안검사는 얼굴이 빤질빤질 기름이 돌고, 불그스레한 좋은 혈색이 신체에 넘치는 영양을 말해준다. 나이는 마흔이 될까말까. 그 앞에 빳빳한 나무의자에 등을 대고 꼿꼿이 앉아 있는 피의자는 헝클어진 머리에 희끗희끗한 게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검사보다 열 살쯤 위는 되어 보인다.
검사의 위엄 있는 커다란 책상 위 정면에는 군대의 지휘관들이 겉모양을 돋우기 위해서 애용하는 것과 같은 흑단으로 만든 명패가 놓여 있다. 두 자는 족히 되어 보이는 기다란 명패에는 금박으로 ‘검사 D○○’라고 쓰여져 있다.
말없이 마주 보고만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다. 분위기로 미루어 여태까지 무엇인지 격론을 벌이다 말고 잠깐 서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순간 같다. 방안은 스팀의 효과로 훈훈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냉랭하다.
의자에서 삐걱 하는 소리가 나고 검사가 몸을 책상 앞으로 밀면서 입을 연다. 그의 음성에는 독기가 서려 있다.
“이 교수, 그래『우상과 이성』이라는 책 속의「농사꾼 임군(林君)에게 보내는 편지」1) 글이 모택동식 농민혁명을 교사ㆍ선동한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D검사는 책상 위에 펼쳐 있는 책의 어느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스타카토로 묻는다. 그리고 피의자의 얼굴을 노려본다. 그눈에는 피의자의 마음속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자신감이 빛나고 있다. 노련한 공안검사임이 분명해 보인다.
“대답해보시오. 우리나라 농촌이 언제 오늘처럼 풍요한 때가 있었소? 텔레비전이 없는 집이 어디 있소? 생활은 일일권이구…….”
검사는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한다.
“피고인은 농민에게 자기 권리를 위해 뭉쳐 싸워야 한다구 했지않았소? 농촌문화는 서울문화의 식민문화이고 서울문화는 쓰레기양키 문화의 소비장이니까 농촌문화는 양키 문화의 시궁창이라구?…… 그래서 힘을 모아 일어서라구?”
검사의 음성은 높아지면서 떨려 나온다.
D검사는 다시 한 권의 책을 내놓고 페이지가 접혀져 있는 부분을 펼친다.
“이것 보시오, 이 교수! 당신은「모택동의 교육사상」에서 모택동이 중국농민과 노동자의 낡은 의식을 개조해서 기존의 지식인ㆍ유산자 위주의 제도를 뒤엎었다고 쓰지 않았소?” 이 교수라고 불린 피의자가 입을 열려고 하자 검사는 급히 손을 저으며 막는다.
“내 말 들어보시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는 우리 사회에서와 같은 교육을 받은 인텔리가 제도를 움직이는 한 진정으로 농민이나 노동자를 위한 정책 발상을 할 수 없다고 했고, 그래서「모택동의 교육사상」에서와 같이 농민의 의식을 개조하여 권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지 않았소? 이것이 모택동을 고무ㆍ찬양하고 한국농민의 모택동식 혁명을 교사ㆍ선동한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
그러고는 책상을 오른손 손바닥으로 한 번 딱 내리친다.
“대한민국의 국체 부인, 해외 공산주의 고무ㆍ찬양, 농민혁명 교사ㆍ선동…… 이거야 반공법이 규정한 바로 그대로지! 반공법 위반이 아니고 뭐요. 여부 있나!”
검사는 자신의 논리구성에 적이 만족하는 눈치다. 의자의 높은 머리받이에 뒷머리를 기대고 비스듬히 몸을 빼면서 피의자를 여유 있게 바라본다. 그는 속으로 ‘여부 있나!’로 맺은 자신의 화술의 점수를 매기면서 흐뭇해하는 눈치다.
앞으로 굽혔던 허리를 펴면서 피의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그런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 검사님이 방금 인용한 글은 첫째, 내 문장 그대로도 아니려니와, 둘째로 그것은 각기 다른 시기에 쓰여진 다른 글이 아닙니까? 어떻게 별개의 글들을 한 줄로 묶어서 그런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그는 열심히, 그러나 논리적으로, 검사의 ‘여부 있나’를 반박해 나간다. 문장이란 문맥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 문장을 멋대로 거두절미해서 이어 붙이는 게 아니라는 것, 더구나 그 글의 하나는 본인의 글이 아니라 에드가 스노라는 중국 전문학자의 글이라는 것, 백보를 양보해서 한국의 농촌현실에 그런 측면이 있지 않느냐는 것 등등을 강조한다. 혁명을 선동한 대목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두 권의 전혀 다른 책 속에 수록된 몇십 편의 글속에서 검사가 필요한 몇 줄씩을 연결하여 결론짓는 것이 반공법의 해석이냐고도 따진다. 말하고 있는 그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스친 듯 눈이 빛난다.
“검사님의 논법으로 한다면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이 소학교 열 살 때 글짓기 시간에 쓴 글에 쇠 금(金)자가 있다고 합시다. 중학교 때 쓴 일기의 어딘가에 날 일(日)자가 있고, 대학교때 쓴 연애편지에 이룰 성(成)자가 있다 합시다. 충분히 있을 수있지요. 10년간의 글을 모조리 뒤져서 그것들을 뜯어 맞추면 김일성이 어쩌구저쩌구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간단한 일이지요. 이게 반공법의 문장작성 방식입니까? 도대체 공산주의자를 만들려는 것이 반공법입니까, 아니면 예방하려는 것이 반공법입니까?”
이 교수는 처음의 이론적인 문장론보다도 뒷부분의 비유에 더힘을 주었다. 그도 앞서 검사가 ‘여부 있나!’라는 자기의 표현에 도취된 것처럼 자신의 비유에 만족한 듯 검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본다.
D검사는 형세가 역전되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며 생각을 굴린다. 재빨리 공격으로 반전하지 않으면 중견 공안검사의 권위가 위태롭다. 이론이나 논리는 법을 쥔 사람이 개의할 바가 아니다. 그는『8억인과의 대화』와『전환시대의 논리』를 가지고 공격을 하면 꼼짝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피고인은 답변을 준비하고 있는 듯 말이 없다. 두 팔목에 두 겹으로 묶였던 포승의 둥그러미에는 녹 낀 두 개의 수갑이 매달린채 풀려서 무릎 위에 놓여 있으나, 팔은 검사실에 들어올 때대로 두 겹으로 결박되어 몸통 둘레에 단단히 묶여 있다.
몇백 번 빨아서 퇴색하고 줄어든 죄수복은 팔목과 발목에서 각기 두 어치나 올라와 있다. 죄수복만큼이나 낡고 때묻은, 단단하고 굵은 포승으로 결박되어 있는 것이 고통스러운지 그는 가끔 몸통과 팔을 비비적거리곤 한다.
검사는 책장을 아무렇게나 넘기면서 여기저기서 주워 읽는다. 윌리엄 힌튼의「열매의 분배」,솔즈베리 기행문「중공 여성의 성도덕」, 야마다 게이지의「새로운 타입의 지식인」등 손가락에 짚이는 대로 몇 구절씩 읽는다. 그러고는 책을 내려놓으면서 피고인을 또 한 번 노려본다.
“이래도 반공법 위반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학교의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 교수? 우리나라 국정교과서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인민이 굶주리고, 헐벗고,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지도자들은 억압과 탐욕으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지옥과 같은 사회로 기술되어있어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기술되어 있어요. 그래도 고무ㆍ찬양이 아니라고 우깁니까?”
그는 ‘고무ㆍ찬양’이라는 법률용어를 힘주어 발음한다.
피의자는 허리와 팔의 뼈를 막무가내로 죄어 들어오는 형틀의 압력을 느낀다. 그는 부자유스러운 손으로 팔의 윗부분과 허리에 휘감겨 있는 딱딱한 밧줄을 가볍게 더듬어 만져본다. 악의적이고 허황한 논리에 분노를 느낀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적어도 심한 과장입니다. 반공국가의 우리로서 공산국가 사회가 진실로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사실은 반드시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난하기는 하지만 먹을 것은 먹고,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입을 것도 입고 있습니다. 병이 나면 치료도 받고 있는 것이 객관적 사실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묘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과 인식착오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 쓴 글이 고무ㆍ찬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의 진실을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과 30년 전의 냉전의식을 토대로 해서 신앙처럼 믿고 있는 인식착오는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진실을 진실대로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전환시대의 논리』나『8억인과의 대화』에 실린 글들의 참뜻입니다.”
나무의자에 반듯한 자세로 결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피의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 말의 반응을 상대방의 얼굴에서 읽으려는 듯 D검사를 응시한다.
D검사는 펜을 들지 않은 왼손바닥으로 또 책상을 딱! 하고 내리친다.
“무슨 말을 해요. 객관적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아요. 우리나라 학교의교과서에 쓰여 있는 대로냐 아니냐가 문제인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처음에 심문을 시작했을 때의 회유적인 온유함을 잃고 노기를 띠고 있다. 피의자는 ‘고무ㆍ찬양’이라는 낱말이 반공주의의 이 나라에서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번 음미하려는 듯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눈을 감는다. 그러나 D검사의 독기 어린음성이 그의 눈을 뜨게 한다. 네 눈동자가 마주친다.
“이 교수, 이것 봐요!”자유를 빼앗긴 피의자를 한참 동안 노려본 D검사는 위엄을 가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당신은 이 책 내용이 이북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의 이야기라고 우기지만 마찬가지 이야기예요. 당신은 반공법이 북괴에만 적용되는 줄 알지만 모든 해외 공산주의에 다 적용된단 말이에요. 중공이면 죄가 안 되는줄 알아? 어림도 없지.”
D검사는 ‘어림도 없지’라는 자신의 표현에 다시 한번 적이 만족해하며, 일은 그 한마디로 끝났다는 표정이다. 피의자는 자기에 대한 호칭이 ‘이 교수’에서 당신으로 바뀐 의미를 머릿속에서 씹어본다. 앞서 검사가 내뱉은 ‘어림도 없지’와 연결시켜본 문장적함축이 갑자기 불길하게 느껴진다. 검사의 호된 추궁에 잠시 잊고있던, 아침에 나온 추하고 음산한 서대문의 냉랭한 감방과 녹슨 차디찬 철문이 망막에 커다랗게 떠오른다.
“이것 봐요, 이 교수! 당신은「해방 32년의 반성」이라는 글에서 이런 소리를 했단 말이야. ‘유엔총회에 대한민국 대표와 함께 동시 초청되어 처음으로 등단한 북괴 대표가 그의 첫 연설을 영어나 외국어로 하지 않고 우리의 민족어로 했다’고 쓰고, 이데올로기의 차이나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볼 때, 그것은 한국인으로서 반가운일이다’이렇게 말했단 말이야. 이것이 바로 북괴 고무ㆍ찬양이 아니고 뭣이오. 어때?…… 안 그래요? 북괴 대표의 연설을 한국인으로서 반가운 일이라고?”
D검사는 이것으로 피의자의 덜미를 꽉 쥐었다는 승리감으로 다시 노려본다. 검사의 독기 어린 시선을 맞은 이 교수는 입을 한 절반 벌린 채 할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D검사는 자기를 바라보고만 있는 피의자에게 짜증을 낸다.
“북괴를 찬양하다니 될 말이요?”
단정적인 법률용어를 들은 이 교수는 그제서야 정색을 되찾고,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대꾸한다.
“검사님, 그렇다면 이 민족의 대표는 어떤 국제회의에서든지 영어나 기타 외국어로 연설을 해야지, 자기 민족어로 하면 안 된다…… 그래야 반공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겁니까? 게다가 이데올리기와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떠나서라고 단서까지 붙였지 않았습니까?”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잇는다.
“검사님 논리대로 한다면 이 민족이 민족적 긍지와 자주성을 상실한 상태가 훌륭한 일이고, 이 민족에게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민족어가 있다는 것을 세계 최대의 인류의 대회의장에서 당당히 과시한 것을 옳다고 하면 반공법이 된다…… 이런 건가요?”
여기까지 단숨에 말한 이 교수는 이제는 검사의 말에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나무의자에 몸을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D검사의 안락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에 이 교수는 어지러워지던 머리를 몇 차례 짧게 흔든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D검사는 몸을 일으켜 실내를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방 한끝에서 멈추어 창틀에 기대어 선다.
“이것 봐요! 당신이 뭐라고 변명하든, 무슨 학문적 이론을 내세우든 검사가 ‘반공법 위반이다’하면 위반인 거요. ‘우상과 이성’이라니, 누가 우상이고 누가 이성이라는 말이야! 건방지게시리!”
D검사는 이 교수의 책이름이 바로 자기를 겨냥한 것으로 생각한 듯 소리를 지른다. 반들반들하던 그의 얼굴의 잔 근육들이 입가에서 실룩거린다.
검사의 느닷없는 소리에 놀란 조(趙) 계장이, 검사와 하나 건너있는 책상에서 필기하고 있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상관의 얼굴을 바라본다. 피의자의 뒤, 얼마쯤 떨어진 의자에 앉아 있던 두사람의 교도관들도 뭔가 소곤거리던 귓속말을 뚝 멈추고 검사와 피의자를 번갈아 바라본다. 방 한구석 책상 위에 엎드린 자세로 무료하게 낙서를 하고 있던 여직원 타자수도 몸을 일으켜 놀란 얼굴로 방안을 살핀다.
이 교수는 책이름을 잘못 지었다는 가벼운 후회와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애써 그것을 감추며 짐짓 태연한 자태를 취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 대한 검사의 호칭의 변화와 노기 띤 음성이 반공법의 조문과 구형량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측정해본다— 6개월은 더 추가하려는 것일까, 아니 1년일지도 모르지,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아 6개월일 수는 없을 거야.
이런 생각과 함께 그의 눈은 또 자신도 모르게 허리와 두 팔을 죄어맨 색 바랜 오랏줄을 더듬어보고 있다. 수천 명의 몸을 묶었을 굵고 딱딱한 반공법의 끈이 더 큰 힘으로 두 팔과 옆구리로 죄어드는 것을 느낀다.
바락 소리를 지른 검사도 실내에 흐르는 긴장감에 당황한 듯 천천히 발을 옮겨 높은 등받이 의자에 돌아와 머리를 기대고 앉는다. 무거운 침묵과 억눌린 정숙이 여섯 사람이 자리잡은 열 평 남짓한 검사실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순간 여섯 인간이 미라로 진열된 방안에는 고대 이집트 박물관의 정일(靜逸)처럼 모든소리가 정지해 있다.
반공법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 교수는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짙은 불안감이 오히려 증발하듯 두개골 밖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다. 이상한 일이다. 검사실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멈추지 않았던심장의가벼운 고동도가라앉기 시작한다. 마음과 머릿속에 신선한 공기가 흘러드는 듯 차분히 가라앉는다. 20일 전 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 세 사람의 사복경찰관에 의해서 연행돼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맛보는 마음의 안정이었다.
그는 검사실에 묶여 들어온 뒤 줄곧 몇 시간을 D검사의 눈과, 손에 쥐어진 펜대에 머물고 있던 눈길을 밖으로 돌린다. 처음으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만한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섣달의 잎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돌담 너머로 내려다보인다. 덕수궁 안뜰인 것을 알 수 있다. 어린이 놀이틀인 크고 둥근 공중회전차의 울긋불긋한 철재 골격물이 정지한 채 서 있다. 까마귀 두 마리가 앙상한 정원 숲 위를 날며,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검사실 창문틀 한쪽으로 들어왔다가는 한참 날갯짓을 치다가 다른 쪽 밖으로 자취를 감추곤 한다. 그는 눈 아래 보이는 덕수궁 뜰의 등나무 그늘을 찾던 지난 여름의 기억을 회상한다.
마음의 진정을 회복한 탓인지 방음벽에 뚫린 이중창 너머로 소음이 아련히 들려온다. 검찰청 건물과 덕수궁 사이의 샛길을 달리는 자동차들이 내는 소음이리라. 모든 높고 낮은 음정의 소리가 합쳐져, 만물이 생겨나던 창세기의 우주에 찼던 혼돈처럼 우웅— 하는 소리로만 전해져 온다. 가끔 유달리 높은 경적 소리인 듯 낮고 둔한 단절음이 바깥세상에서의 인간의 활동을 전해준다. ‘밖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구나……’그에게는 그것이 현실같이 느껴지질 않는다. 아득한 옛날의 꿈을 더듬는 것 같다. 겨우 20일의 격리일 뿐인데, 그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낀다. 함께 숨쉬고 부딪치고 미워하고 사랑했던 저 밖의 사람들과 다시는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는 무거운 고립감에 빠져든다. 넓은 세상에서 공간을 같이하는 인간은 마주 앉은 검사와 조 계장, 옆에 비켜 있는 여사무원,그리고 뒤에 그림자처럼 앉아서 보이지 않는 간수 두 사람, 합쳐서 다섯뿐이다.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각기 갈 곳을 향해 사라질 것이다. 온 세상에 자기만이 묶인 채 팽개쳐질 것이다.
이 교수는 조금 전에 내면에 가득했던 안정과 평온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다시 영원한 고통과 불안과 괴로운 몸부림만이 남을 자기의 운명에 생각이 미친다. 냉혹한 반공법의 사슬에 묶인 몸이면서도 편안한 시절에는 한낱 허황한 신화나 재치 있는 우화로 넘겨버렸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죽음의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 그의 감은 눈의 망막을 가득 채우고 나타나 보인다. 신화의 책장에서 꿈틀거리던 프로메테우스는 검푸른 때묻은 죄수복 속의 두 죽지를 두 겹으로 묶고 다시 허리를 두 둘레로 결박하고 남은철사의 끝에 두 팔목이 두 겹으로 묶인 위에 다시 정교한 톱니로된 자물쇠가 채워진 묵직한 수갑을 차고 있었다. 열 겹 스무 겹의 결박줄은 등뒤로 돌려져 하늘에 닿은 이끼 낀 바위에 칭칭 감겨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발끝에서 심장부를 지나 축 늘어진 머리를 넘어 천천히 훑어 올라가던 이 교수의 시선이 바위의 한 점에서 순간 얼어붙는다. 몇억 년 묵은 이끼가 긁혀져 떨어진 바위의 흰살갗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있다. 피는 바위살에 새겨진 글자에서 흐르고 있었다. 글자는 바위를 덮은 검푸른 이끼와, 뜯겨진 이끼가 그 뒤에 드러낸 순백의 살갗과 섬뜩한 색의 대조를 이루면서 새겨져 있다. 그 세 글자가 그의 시야를 꽉 채운다.
‘반공법’
그 글자는 이 교수에게 1977년의 현실을 생각하게 했다. 폭정과 탄압이 온갖 요사스러운 이론과 궤변을 동원하여 모든 진실과 순정을 짓누르고 있었다.이 교수는 자기 힘으로 시대를 변혁할 수있다고 믿을 만큼 과대망상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지식으로 조그마한 십자가를 져야겠다는 신념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는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회상한다.
“……선생님의『전환시대의 논리』와『우상과 이성』을 읽다 말고, 너무도 두려워져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괴로움에 떨면서 꼬박 밤을 샜습니다”라고 쓴 대학생의 심경을 생각해본다. “……고등학교까지의 주입식 학교교육으로 구축된 신념체계가 저의 내면세계에서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거꾸로서 있던 온갖 사물과 관계와 색깔들을 제 모습 제 색깔대로 볼 수있다는 것은 차라리 형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학생들과 젊은 지식인들이 비슷한 경험을 그에게 토로했다. 그런 젊은이들을 만나고 그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교수는 괴로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 시대를 헛되게 살지는 않았다는 자기확인으로 자위하곤 했던 것이다.
지금 공안검사의 앞에 묶여 나와 있는 순간에도 그는 추궁의 대상이 되고 있는「베트남 35년 전쟁의 총평가」라든가「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비교적 긴 글은 물론, 「0.17평의 삶」같이 원고지 10여 매밖에 안 되는 단문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자기확인으로 용기를 얻고 있다.
D검사는 피의자의 책이름이 바로 자기를 겨냥해서 작명된 것으로 생각하는 눈치다. 이 교수는 책이름을 달리 지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다시 가벼운 후회감에 사로잡히며, 책의 서문을 쓰느라고 머리를 짤 때의 고민을 반추해본다. 그는 그 서문에서 노신의 글한구절을인용했다.“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단단한 방 속에 갇혀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궁리하면서 고민하는”사람의 심정을 썼다. 밀폐된 방안의 사람들은 감각과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까닭에 그 상태를 고통으로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태로 착각하고 살아(죽어)가고 있다. 그런 상태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보는 시력과 생각할 수 있는 판단능력을 되살려주는 것은 차라리 그들에게 죄악일 수도 있지않느냐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주입되고 굳어진 신념체계와 세계관과 가치의식이 새로운 빛과 공기 때문에 내면에서 무너질 때에 겪을 독자의 고통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시대적 역할이랄까, 조금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한 사회의 조그마한 역사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사명감을 자신에게 타이르곤 했다.
괴로움의 연속이었던 지난 10여 년간의 자기 모습과 생각들이 초고속으로 아무렇게나 감겨 돌아가는 필름의 영상처럼 그의 망막 위에 헝클어져 지나가다가 그 필름이 끊어지는 순간, 한참 전에 보았던 프로메테우스가 손에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천공을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크게 삐걱거리는 소리에이 교수는 깜짝 놀라 환각에서 깨어난다. 그는 꿈결 같기도 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환각이 몇 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느낀다. D검사가 크게 몸짓을 하면서 안락의자에서 일어난다. 간수들과 여직원 그리고 계장은 앉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
“자 다시 시작하지!”
D검사는 책상 위에 놓였던 경찰 진술조서철에서 맨 윗부분 꼭지를 손에 들고는 선 채로 들여다보고 있다. 그 서류는 경찰과 검찰에서 수십 번은 거듭 썼을 이력서와 그 관련서류다. 이 교수는 바짝 긴장한다. 환각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온 심경으로는 이제 심문은 제발 그만해줬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또다시 검사의 무지한 모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역겨워진다.
벌써 며칠을 두고 몇십 번은 읽었을 그 피의자 이력서를 들여다보고 서 있는 D검사의 얼굴에 만족의 빛이 피어오른다. 그의 표정은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다. 그것을 눈치챈 이 교수의 표정도 한결 누그러진다. 그는 검사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슴을 죄던 불안이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의 입에서는“후유–하고 한숨이 새어 나온다. ‘아, 오늘은 이것으로 지겨운 모욕에서 해방되는가보다’한나절을 부대낀 지금의 심정으로는 서대문구치소의 똥오줌내 나는 더러운 그 제2동 제6호 감방이 차라리 보금자리처럼 그리워진다. 바깥 기온 영하 12도, 실내온도 영하 4도의 추위는 차라리 멸시와 악의로 가득 찬 검사실의 후끈한 공기보다 쾌적하게만 생각된다. 그런 환상으로 이미 서대문 감방에 가 있던 그의 마음은 다음 순간 D검사의 한마디로 다시 지방검찰청 공안부 제○○호 검사실로 무참히 끌려온다.
“음…… 이 교수 학력은 별거 아니구만.”
그렇게 말한 검사는 자기 말의 효과를 음미하듯 입가에 가벼운웃음을 띤다. 그러고는 서류에서 이 교수의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돌린다.
“최종 대학이 국립 한국해양대학이라…… 음, 그리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 잠깐 가 있었구만…… 그것뿐이지요? 맞지요?”
이 교수는“예”하고 가볍게 대답한다. 그는 D검사의 조금 전의 회심의 웃음의 뜻을 잘못 점쳤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몇십 번 읽었을 이력서를 어째서 새삼스럽게 들고 서 있는지도 짐작이 간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새로운 형식의 모욕이 준비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력서 뭉치를 꼬나 쥔 D검사는 선 채로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어간다.
“최종 대학이 해양대학, 그것도 항해과인데, 어떻게 사회평론이니 문명비판이니…… 그것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국제정치니 베트남전쟁에다 중국혁명까지 논할 수가 있나요? 게다가 당신의 말은 모두가 궤변이에요. 당신은 그 궤변으로 한국의 대학생들과 젊은 지식인들의 사상을 병들게 했어요. 우리가 건국 이후 온갖 힘을 기울여 공고하게 구축한 젊은 세대의 반공사상을 허물어버렸어요. 아주 근저에서부터 허물어버렸어요. 당신이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까? 몽땅 의식화시켜버렸단 말이야. 반성합니까?”
검사의 말투는 분명한 멸시 속에 비꼼과 희롱과 협박의 요소들
을 담고 있다. 이 교수는 이미 대공반 경찰과 여기에 온 뒤에도 몇
번 되풀이했던 대답을 또 한 번 반복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된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맞받아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나는 지금 대학의 교수를 하고는 있지만 한국 대학교육의 민주주의적 시민의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함양하는 교육기능에 대해서는 절망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내가 책에 쓴 그런 지식과 정보와 의식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육에서가 아니라 20년 가까운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와 외신부장으로서의 직업적 훈련의 경력 탓입니다.”
그는 오랜만에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낀다. 반격의 기세를 늦추어서는 안 될 국면에 처했다는 판단이 다급하게 든다.
“그 경력기록에 적혀 있듯이, 나는 6ㆍ25전쟁 첫날부터 자진 입대하여 하루도 어김없는 만 7년을 최전방 일선 전투부대에서 싸운 사람이올시다. 많은 유력자 가정의 아들들이 권세와 돈의 힘으로 자기 나라의 생사를 결판내는 전쟁에서 숨고 도피할 때 말이에요. 나는 그 처절한 극한상황 속의 체험을 통해서 이 나라와 사회의 본질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결심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편과 동시에 신문사에 들어갔지요.그것은 그 당시 대학의 교수들이 상상도 못 했던 살아 있는 많은 정보와 자료와 지식을, 그리고 넓은 시야를 나에게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소.그리고 대학으로 직을 옮긴 후에도 계속 그 정신과 정열과 의지로 연구했지요, 그만하면 그런 글을 쓸 자격이 안 됩니까? 내 자격에 대한 검사님의 질문에 대해서는 따로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내 경력과 저서, 논문을 통해 판단하십시오. ……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말하면…….”
이 교수의 입에서 ‘의식화’라는 말이 나오자 D검사는 반신을급히 일으키며 형무관들을 향해 말한다.
“두 사람은 잠깐 나가 있으시오. 나가 있어도 좋아요. 다시 부를테니까.”
간수들은 직무상 피수감자의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더듬더듬 말한다. 그러나 검사의 다그치는 말과 권위에 눌려 슬금슬금 방문을 열고 나간다.
간수들이 나간 것을 확인한 D검사는 급히 묻는다.
“그래, 반성합니까? 반성한다는 뜻만 문서 형식으로 표명하면 사건은 잘 해결될 수 있어요.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협력하겠다고 하면 일은 간단히 끝납니다. 내가 책임집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D검사는 두 눈을 가늘게 하고 피의자를 바라본다.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찬성하고 학생들의 의식화를 ‘바로잡는’글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육법전서의 지식이 미치는 온갖 이론을 동원하여 군사독재체제의 정당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그의 열변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여러 가지 설명과 갖가지 암시로 미루어 이 사건의 동기와 목적이 여태까지 추궁해온 책의 내용보다는 피의자의 유신반대와 반정부적 언동을 금지시키려는 데 있음이 분명해진다. D검사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같은 이론으로 되풀이한다. 그의 요청에 공개적으로 응하기만 하면 사건이 백지화되리라는 것도 거의 분명하다. 검사가 책임진다고 하지 않는가.
듣고있던이교수의심경에잔파도가일고있다. ‘반공법’이떼어진다? 그 혹독한 반공법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럽시다”라고 한마디 하는 순간에 몸과 팔과 손목에 칭칭 감겨 있는 더럽고 단단한 밧줄이 스르르르 풀려버리는 것이다.
집을 나올 때 중태로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께“잠깐 어디 다녀올게요”라고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미 말을 못 하시게 된 어머니는 입술만 떠는 듯 움직였고 눈으로만“어딜 가니 얘야. 곧 돌아오니?”라고 물었다. 그때 이 교수는“잠깐이에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정말 ‘잠깐’일 것으로만 생각했다.
영문도 모르고 부엌에서 뛰어나와 겁에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던 아내의 얼굴도 떠오른다. 아내는“빨리 검사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말하세요”라고 숨가쁘게 간청하고 있다. 그 뒤로 자식들의 얼굴이 세 번 차례로 지나간다. 그들은 어머니의 말을 반복한다. 푸른 하늘과 태양이 눈부시게 비추고, 햇볕을 받으며 책가방을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의 문을 들어가는 교수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때 이 교수의 얼굴을 살핀 사람이 있었다면 그가 생사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 간장을 쥐어짜는 아픔을 겪고 있음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곧 부드러워진다. 결심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의 입에서 조용하게 말이 새어 나온다.
“검사님 말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대답을 하지요.”
검사의 얼굴에 일순간 긴장의 빛이 지나간다. 그의 눈은 피의자의 입을 지켜본다.
“나는 유신체제를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현 정권을 지지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어조로 선언한 이 교수는 그 까닭을 차근차근 설명해간다. 흥분한 기색도 없고 필요 이상으로 꾸민 오만도 없어 보인다. 용기라기보다는 깊은 체념 같은 것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처음부터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질 말았어야 합니다. 군대의 정치적 중립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이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완전한 자유선거로 선출된 민정을 총칼로 쓰러뜨려야 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 후의 현 정권은 영구집권을 제도화했습니다. 그것이 유신체제올시다. 그 대통령은 몇 차례의 강권행사로 사실상의 종신제를 굳혔습니다. 그 개인의 유능 무능은 크게 중요한 요소가 못 됩니다. 판단은 국민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국민에게서 그 기본적 권리를 박탈한 것이 문제입니다. 인권은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습니다. 또 현재의 타락과 부패를 보십시오. 우리 역사상이처럼 심한 예가 언제 있었습니까? 또 비이성적인 맹목적 반공주의를 애국심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민의 건전한 민주주의적 의식을 배양해야 할 인류사적 조류에도 역행하는 것입니다.”
이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는 D검사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그는 급히 손을 흔들며 제지한다. 손에 든 이력진술 서류의 낱장이 부딪치며 차르르 소리를 냈다.
“그만하시오, 그만해! 알았어. 당신의 훈시를 들을 필요는 없소. 그것은 모두 변명이오. 변명은 법정에나 가서 하시오. 나는 반공법 위반만 결정내면 돼요.”
D검사는 다시 등받이가 머리 위까지 높은 의자에 앉아 상체를 쭉 뻗고 기댄다. 크고 육중한 검사 의자는 확실히 그에게 직권적 위엄을 더해주는 것 같다. 검사는 이미 감정을 억누르고 유들유들한 태도로 바뀌어 있다.
이 교수는 검사가 취하는 몸짓과 거동의 능란한 변화에 속으로 감탄한다. 음성의 높고 낮음, 말투의 강온, 감정의 변화를 적절히 가려 쓰는 솜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침부터 몇 시간째 D검사의 숙련된 심문방식에 희롱되다보니 심신이 흐느적거릴 정도로 피로하다. D검사는 이미 그것을 간파하고 있다는 듯이 오만하게 몸을 좌우로 천천히 흔든다. 설득에는 실패했지만 반공법의 칼날은 여전히 자기가 쥐고 있다는 자신감이 우러나온다. 그는 다시 의젓한 여유를 회복한다. 그러고는 책들을 덮어버린다. 무엇인가 새로운 작전을 개시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비웃는 듯한 웃음마저 띠고 있다.
“이 교수, 나는 서울 법대를 나왔어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어요.”
이렇게 이야기의 운을 뗀 D검사는 여전한 냉소의 눈매로 피의자의 표정을 살핀다. 그러나 국립 해양대학 항해과를 나온 반공법 피의자의 표정에는 별 다른 감동의 표시가 일어나지 않는다. D검사는 천천히 흔들던 상체의 운동을 멈춘다. 운동을 멈춘 상체를 높은 등받이 뒤로 쭉 뻗고,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는 한 자네모꼴의 베이지색 방음판으로 되어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말을 잇는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수재라는 말을 들었는데, 서울 법대를 들어가보니까 그게 아닙디다. 놀랐어요. 모두가 하나같이 천재들이었어요. ……정말 천재들이었지…….”
D검사는 감탄조로 ‘천재들’을 되풀이한다. 느긋이 천장을 바라보며 30도가량 뒤로 젖힌 의자 위에서 상체와 두 다리를 일직선으로 쭉 뻗은 D검사는 말을 이어간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난관을 돌파하고 들어온 쟁쟁한 천재들 속에 끼었을 때, 나는 장래의 목표를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는 것으로 작정했지.”
그는 피의자에게 들려주기보다는 자신에게 지난 시절을 회상시키고 있는 것 같다. 황홀경에서의 독백 같기도 하다.
한 책상 떨어져서 필기하고 있던 조 계장은 선망에 찬 표정으로 상관을 바라보고 있다. 대학 때부터 세 번이나 고시에 낙방하고 13년째 검사서기를 하고 있다는 조 계장은 D검사보다 네댓 살 위로 40은 훨씬 넘어 보인다. 조 계장에게 ‘고등고시’라는 말은 이제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사라져버린 꿈, 자기 손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저만큼 밖에서 빛나고 있는 별이다.
언제 다시 들어왔는지 피의자의 의자 뒤에 한참 떨어져 벽에 기대앉아 있던 간수들도 아까부터 D검사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론’과 ‘수재론’을 열심히 듣고 있다. 검사의 입에서 ‘고등고시’와 ‘검사’라는 낱말이 발음되는 순간, 두 형무관의 몸이 전기에 닿은 것처럼 긴장했던 것을 D검사는 아까부터 벌써 곁눈질로 알고 있다. 두 형무관 중의 한 사람이 특히 그런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시골음성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무소 간수가 된 후에 8년간을 볕도 안 들어오는 서대문구치소 간수로 ‘반죄수’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이다. 어깨에 잎사귀 두 개를 단 간수들은 자신들을 언제나 ‘반죄수’또는 ‘까마귀’(검은 제복 때문에)라고 비하해 부른다. 정부 직제상 최하급인 그의 꿈은 승진시험에 합격하여 잎사귀 세 개를 어깨에 달아보는 것이다. 잎사귀 세 개는 형무소에서 ‘부장’이라고 호칭된다. 부장은 하루 교대로 형무소에 출근하면 (출퇴근때는 간수 정복을 싸들고 반드시 평복을 입지만) 사동(舍棟)에서는 왕인 것이다. 감방 20개에 처박혀 있는 100명의 죄수를 거느리는 중책이다. 음성군 농가 출신 젊은이의 평생의 꿈은 ‘말똥’하나를 달고 정년퇴직하는 것이다. ‘말똥’은 잎사귀 세 개의 상관이다. 무슨 풀 잎사귀인지도 모르는 뾰족뾰족한 볼품없는 잎새 세 개를 55세까지 달지 못하고 사라지는 간수가 태반인 것을 생각하면 말똥을 싸질러놓은 모양의 둥그스레하고 큼직한 ‘주임’계급장을 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수로서의 온갖 수모와 고달픔을 몇십 년 참고 나야, 몇백 명에 한사람 돌아올까말까 한 직위인 것이다. 게다가 그 ‘말똥’은 황금색으로 도금한 것이어서 어둠침침한 형무소 사동 안 복도의 교차점에 섰을 때 열십자로 뻗은 사동의 저 끝까지 휘황찬란하게 빛나니 말이다. 모든 죄수는 너절한 파렴치범이건 수십억 원의 사기를 치고 들어온 경제범이건, 몇천 만원의 뇌물을 먹고 고랑을 찬 공무원이건 ‘말똥’앞에서만은 설설 기게 마련이다. 기지 않는 죄수는 ‘긴급조치’와 ‘반공법’의 정치범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말똥’을 평생의 꿈으로 삼고, 우선 당장에 잎사귀 세 개를 목표로 하고 있는 그에게는 지금 눈앞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높은 머리받이 의자에 한일 자로 비스듬히 누운듯 앉아 있는 검사, 그것도 출세의 지름길을 달리는 공안검사는 눈부신 존재일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라는 말과 ‘고등고시’가 발음되고 드디어 ‘검사’라는 소리가 귀에 파동을 미친 순간 두 형무관의 온몸에 전기가 흐른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글 타이프가 직무인 여직원만이 예외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타자 교습소를 거쳤다는 그녀는, 커피를 날라온 것을 제외하면 결박된 반공법 피의자가 방안으로 호송되어 들어온 아침부터 줄곧 권태로 몸을 비틀고 있다. 어린 그녀에겐 별로 흥미 없는 화제다. D검사의 이야기에 아무런 경의도 표하지 않는 것이, 피의자가 바뀔 적마다 몇백 번 되풀이 들어온 낡은 이야기라는 반응이 역력하다.
D검사가 ‘서울법대’와 ‘수재’를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 이 교수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그에게는 ‘서울 법대’라는 낱말이 조건반사적으로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한가지 생활경험이 있다. D검사의 도취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그의 연상은 10여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있었다.
그의 몸은 서울시내 광화문통의 길가에 자리잡은 어느 신문사의 널따란 편집국 공간, 중간벽을 등으로 한 외신부장의 의자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요란하게 따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영문 외신기자의 종이 두루마리를 토해내는 네 대의 텔레프린터가 탁자에 받쳐져 있고, 그 위 먼지 낀 회벽에는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다. ‘1965년’의 로마자가 검고 굵게 인쇄되어 있다. 온갖 책자ㆍ신문ㆍ원고지 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몇 개의 낡고 넓은 책상둘레에는 7,8명의 젊은 기자들이 앉아 있기도 하고, 원고를 쓰기도 하고, 텔레프린터와 책상 사이를 바삐 왕래하기도 한다.
한두 사람을 제외하면(물론 부장 자신을 포함해서) 나머지 젊은 외신기자들은 모두 서울대학교를 봄에 졸업하고 들어온 수습기자들이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D검사의 말대로 ‘대한민국 최고 난관’을 돌파하여 서울대학에 들어와, 졸업과 동시에 그 당시 또 하나의 ‘대한민국 최대 난관’의 하나이던 그 일류 신문사의 입사시험을 돌파해 들어와 수습훈련을 받고 있는,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온 ‘수재’들이다.박정자라는 여자 수재를 포함해서 다섯 젊은 수습기자의 얼굴에는 ‘수재’라면 갖출 모든 자질의 요소가 또렷또렷하게 흐르고 있다. 국립 해양대학을 졸업한이 부장은 서울대학 졸업 수재들을 온 정력을 기울여 지도했고, 연일 밤을 새워가면서 신들린 사람처럼 외신기자로서의 직업적기능에 도취되어 있었다. 젊은 수재들은 그의 직업적 선배의 정성과 강렬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의식에 감응하는 듯 보였다.
그들의 관념이 철저한 냉전사상으로 왜곡되고, 편협한 시야일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나라 교육의 일반적 결과였다. 그들 같은 수재도 16년간의 안티(反)교육과 세뇌선전에 노출되고 보면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어쩌면 수재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1960년대는 베트남전쟁, 아프리카 식민지 해방, 중국혁명, 세계적 규모의 반전운동, 여러나라 학생들과 지식인의 사회개혁 현실참여운동 등의 시대였다. 대학을 갓 나와 신문사 외신부에서 시시각각 들어오는 생생한 뉴스와 사건들을 접할 때, 그들 수습기자의 제한되고 왜곡된 세계관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것이 많았다. 그 본질을 파악하기는커녕 해석하기도 힘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몇 달의 수습기간을 마칠 무렵에는 베트남전쟁이 단순한 ‘반공주의와 공산주의의 전쟁’이상이라는 성격을 깨닫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파병이 어째서 세계 도처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가를 알고 경악하기도 했다. ‘월남파병’이 ‘반공의 성전(聖戰)’일 수도 없다는 시대정신적 감각도 갖추게 되었다. 중국대륙에서는 8억 인민이 모두 굶어 죽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식하게 되었다. 어째서 군인 독재국가들에서 민중의 반란이 그치지 않느냐 하는 의문도 풀려가고 있었다. 20세기의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쟁적으로 협력 또는 적어도 공존해야만 인류의 파멸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를 깨닫게 되었다. 어느 한 가지 주의(主義) 또는 반주의(反主義)만이 영원한 진리라는 주장이 허위라는 데도 눈이 뜨이고 있었다.
이 나라의 2,123개 면 가운데 의사가 없는 면이 어째서 절반이 넘는 1,200개나 되느냐는 사회제도와 현실 문제의 본질을 그들이 납득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하다는 중국 상해(上海)의 병원 병상수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미국 뉴욕시의 병상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그들은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부장이, 그것은 미국경제학회 회장 갈브레이스 박사의 현지탐방 후에 나온 글에서의 비교자료에 의한 것임을 확인시켰을 때 그들은 고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나라에서 어째서 일제시대의 친일파ㆍ민족반역자들이 반공을 빙자한 ‘애국자’로 권세와 영달을 누리고 있느냐는 문제에서 그들은 젊은이답게 더욱 괴로워했다. 그 사실과 이 나라의 외세의 존적 자세가 무관한 것이 아님을 깨달으면서 그들은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찾아야 했다. 분단된 남북한의 한민족 간에서 전쟁만이 해결책일 수 없다는 상황지식을 얻었을 때, 학교에서 주입되어온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곤혹을 느끼고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졸업의 수재들 중에서 딱 한 젊은이만은 그 모든 것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그 기자는 번번이 질문했다. 아니 반문이라 함이 옳았다.
“부장님, 베트남전쟁은 자유진영이 공산주의 세력을 무찌르려는 것인데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닙니까?”
김○○이라는 그는 흥분해 있었다. 큰 체구에, 둥글고 유달리 흰 얼굴에 눈이 각별히 작아서 더욱 반들거리는 김군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졸업생이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텔레프린터에서 뜯어낸 외신기사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버트런드 러셀, 아인슈타인, 사르트르…… 등 수많은 세계의 석학들이 베트남 사태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을 비난하는 성명의 기사였다.
어느 날 그는 또 외신기사를 찢어 들고 부장의 옆에 와 앉았다.둥글고 큰 얼굴은 붉게 흥분해 있었다.
“이 부장님, 공산주의자 중에서도 현대의 괴수라고 할 모택동을 유럽이니 일본의 지식인들이 폭군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요. 공산주의를 모르는 탓이지요. 큰일이 아닙니까?”
수습기간을 끝내고 정치부ㆍ문화부 또는 사회부ㆍ경제부 등으로 배치될 때까지 그는 수습을 시작했던 당시의 상태에서 발전하지 못했다.
이 부장은 각부로 배치되어 가는 젊은 후배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그의 가슴은 동시대를 사는 후배들 중의 최고분자들을 몇 사람 배출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만족감으로 뿌듯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로 체제유지적 성격의 공부(교육)에 대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육법전서(괯法全書)로 한계가 지어진 좁은 학문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수재일수록 문제가 크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이 부장은 그것으로써 결론을 내릴만큼 성급하지는 않았고, 하나로 전체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정도는 알 만큼 세상을 살아온 터였다. 그런데도 법대와 고등고시, 게다가 ‘수재’까지 곁들여진 낱말은 그 후부터 그의 머리에 늘 씁쓸한 뒷맛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이 부장의 그 같은 판단이 미숙했다는 것이 현실로 밝혀지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리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정열로 지도했고, 이 사회의 장래를 떠맡을 훌륭한 언론인이 되리라고 기대했던 그 영특하고 곧은 마음씨의 젊은이들이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1974년 신문사에서 쫓겨난 것이다. 법대를 나온 김○○기자만을 제외하고.
악몽 같은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의 언론탄압에 항거하여 신문기자로서의 정도를 지키고자 했던 정○○, 신○○, 백○○ 기자는 힘겨운 언론자유투쟁을 주도한 끝에 밀려나고 말았다.
지극한 동지적 사랑으로 그들과 맺어졌던 직업적 관계는 이 부장 자신이 같은 이유로 1969년 그 신문사에서 밀려남으로써 신문사 밖에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촉망했던 후배들이 패배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가슴을 에는 괴로움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그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한 ‘법대’출신 ‘수재’의 이름이 그 후 10년 후에도 신문지면에서 화려하게 춤추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흘러간 10여 년의 괴로운 회상에서 깨어나 눈을 뜬 이 교수는 D검사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검사는 의미를 가눌 수 없는 웃음을 빙그레 웃는다. 그러고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입을 연다.
“나는 고등고시를 재학 중에 합격했어요. 그 많은 서울법대 학생 중에서 세 사람뿐이었지? 아니, 넷이었구나. 그래 넷이었어. 재학중에 고등고시에 합격한다는 것은 서울법대생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문이 대단했지요.”
그는 마냥 신이 난 음성으로 유쾌하게 말한다.
“육법전서를 거의 한 줄 빼놓지 않고 암송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면 알 만하지요. 입학식 때산 육법전서의 낱장들이 걸레처럼 될때까지 공부했으니까요. 나와 마찬가지로 입학날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한 친구들이 대부분 도중하차했지…… 그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가? 하하하…….”
D검사는 통쾌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교수 쪽으로 몸을 밀어내면서 묻는다.
“이 교수의 이력서와 진술서를 보니까 외국어를 네 가지나 하고, 압수해온 책목록을 보니 굉장히 독서를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만하면 차라리 고등고시 공부를 했더라면 좋았을걸. 아까운데…… 난 말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가난하게 자랐어요. 시골에서 정말 세 끼를 제대로 먹기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모두가 장차 뭔가 될 것이라고들 했지. 나 자신도 기어이 서울대학에 들어갈 결심으로 공부했고,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지요. 다른 사람들은 고등고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도 않습디다.”
그는 몸은 여전히 피의자 쪽을 향한 채 책상 위에 엎드린 자세로, 옆에 있는 조 계장과 멀리 있는 형무관들을 차례로 살핀다. 그들은 감격한 얼굴로 검사의 시선을 맞는다. D검사는 여직원은 살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다시 의자 속에 깊숙이 몸을 파묻는다. 그러고는 자기의 종교가 불교라는 것, 이 교수는 어째서 종교를 갖지 않느냐는 의문, 자기가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약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부처님의 자비정신으로 보살피려 한다는 등의 소신을 장황하게 피력한다.
이 교수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권태를 견딜수 없는 것 같다. D검사의 말 도중에 가끔 딱딱한 의자에서 몸을 가볍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고개를 운동해 보이는 것이 이제는 형무소의 음산한 감방이 차라리 그리워진다는 표시인 성싶다. 그래도 D검사는 또 시작한다.
“그런데 물어봅시다. 이 교수는 어째서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반대하지요?”
그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라는 직명 호칭이 자기 입에서 발음돼 나오는 것과 동시에 책상에 엎드리듯 흐트러졌던 상체를 의자 위에 빳빳이 세운다. 그 동작은 잘 훈련된 사병의 민첩함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말을 잇는다.
“나는 말이지요, 박정희 대통령 각하는 한민족이 낳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지도자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분을 반대하는 이 교수의 사상을 알 수가 없어요. 그런 분이 몇 번을 대통령한다고 해서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분은 종생토록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안 그래요? 대답해보시오.”
답변을 추궁받은 피의자는 피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이 교수의 가슴에서는 벌써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그는 애써 평온을 꾸미면서 대답한다.
“그런 논리대로 한다면 북한에서김일성이평생을 집권한다고 비난하는 우리의 논리는 자가당착이 되지 않을까요? 북한의 대중 국민이나 그 사회의 공안검사들도 그들의 논리로는 김일성을 숭배하고 평생집권을 확신으로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에요.”
이 교수는 말을 끝내면서 온당치 않은 예증을 했구나 하고 후회한다. D검사는 그러나 논리적인 공박을 정면으로 부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는 화제를 돌린다. 그는 여전히 부동자세다.
“내가 박 대통령 각하를 존경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어요. 각하가 언젠가 말씀하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각하는 가난하게 자라 어려서부터 우유를 마셔본 일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고, 그래서 우유를 못 잡수신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말씀입니까. 그런 위대한 지도자가 말이에요. 나는 감격했어요.”
이 교수는 아무 말 없이 의자 위에서 또 몸을 좌우로 몇 번 비틀고 머리를 빙빙 돌려서 목의 근육을 풀었다. 순간 D검사의 눈에 불쾌한 빛이 선뜻 지나간다.
그에게도 이 교수의 동작의 의미가 분명해진것 같다.그는 책상위에 놓여 있던『우상과 이성』『8억인과의 대화』를 한쪽으로 밀어 치우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좋습니다. 심문을계속합시다.”
그는 ‘심문’에 힘을 준다. 그러고는 조 계장에게“책들을 가져오시오”라고 명령한다. 잠시 후 조 계장은 무거운 마대주머니 두 개를 힘겹게 끌고 들어와 상관 책상 옆에 책들을 쏟아놓는다. 그것을 본 이 교수의 두 눈에 순간 안개가 감도는 것 같다. 그는 묶인 부자유스러운 손을 올려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책더미는 얼핏 보기에도 200권은 넘을 것 같다.
이 교수는 자기가 연행돼온 후에 많은 책들이 압수되어온 사실은 경찰관에게서 들었지만 다시 대면하기는 처음이다. 마루에 쏟아져 흩어져 있는 책들을 보는 그의 뇌리에는, 10여 년간 가난한 월급생활에서 절약하고 아낀 돈으로 한권 한권 사들이던 때의 고통 섞인 기쁨이 되살아난다. “생활은 어떡하려고 또 책을 사들여와요?”하고 나무라던 아내의 얼굴이 책더미 위에 떠오른다. 아내의 꾸지람을 듣지 않으려고, 대문 밖 기둥 뒤에 포장된 책을 숨겨놓고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가서는, 옷 갈아 입고 다시 나와 기회를 보아서 서재로 들여다 책장에 꽂던 죄책감 섞인 스릴도 되살아난다.
검사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책들이 차츰 안개에 가려지고, 물젖은 유리를 통해 보듯 형태가 일그러지고 뿌우연 모습으로 떠오른다. 그는 다시 힘겹게 묶인 손을 올려 두 주먹으로 눈을 비빈다. 그동안 ‘압수품 목록’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D검사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부해서 252권이구만…… 그리고 대공분실의 의견서를 보면, 여태까지 한 피의자에게서 압수한 불온서적으로는 최고란 말이지. 음…… 많이도 소지하고 있었구만!”
그러고는 피의자를 향해 묻는다.
“이 교수! 이 교수는 장서가 얼마나 되오? 이렇게 많은 불온서적이 있는 것을 보면 책이 꽤 많은 것 같은데……?”
피의자가 세어보지 않아서 정확치는 않지만 한 2천 권쯤 될 것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서류에서 시선을 들어 피의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래요?”
그는 확실히 감동한 기색이다.
“이 교수는 아까운 두뇌를 썩혔어. 난 외국어는 영어 한 가지도 잘 못해요. 그런데 이 교수는 그 많은 책을 읽은 결과가 뭐요? 반국가적 사상을 갖게 된 것뿐 아니요? 두뇌의 낭비였어. 차라리 고등고시를 했더라면 벌써 하고도 남았을 텐데…… 안 그래요?”
서울법대 출신은 정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압수한 서적에 관한 격식대로의 심문이 시작된다. 차례로 책이름을 대고 저자는 누구며, 어떤 사상의 인물이며, 출판사는 어디고, 내용은 뭐며, 언제 어디서 얼마에 사서 어느 정도 읽었느냐는등의 질문이 계속된다. 그에 대한 대답도 계속된다. 조 계장은 분주히 기록한다.
조 계장이 다음 책을 상관에게 건네준다. 두툼한 세 권의 일본어책이다. 책을 받아든 D검사가 격식대로 묻는다.
“이건 뭐요?”
“『자본론』올시다. 일본어판입니다.
검사는 잠시 머뭇거린다.
“『자본론』? 무슨 책이오? 저자가 누구지요?”
그때까지 고분고분 사무적으로 간략하게 대답하던 피의자도 멈칫하는 듯하다. 검사의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사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자 검사가 되묻는다.
“저자가 누구냐니까? 내용은 뭐고?”
그제서야 피의자는 의문이 풀린 것 같다. 검사는 정말『자본론』을 손에 쥐고 그것이 무슨 책인지, 저자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는것이다.
이 교수는 어처구니가 없다. 처음에는 검사가 무슨 흉의를 품고 시치미를 떼고 있지나 않는가 의심했다. 무슨 농담을 하려는가고도 천착해본다. 그러나 D검사의 얼굴과 눈동자에서 그것이 아님을 역력히 읽을 수 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이 교수다. 책의 저자 이름과 책의 성격 내용을 밝혀 대답하면, 모르는 공안검사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 걱정스러워진다. 그는 어색하고 난처해진다. 그는 더듬는다.
“아 아니, 그거야…… 뭐, 말할 필요도 없는……”그는“……없는 일이 아닙니까?”까지 말을 잇는 것이 상대방에 지나친 욕이될 것 같아서 말을 맺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검사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피의자에게 검사는 재차 독촉한다.
“빨리빨리 합시다. 나도 피로해요.”
이 교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다시 더듬는다. 어쩔 수 없이 조소의 빛도 약간 섞인 채,
“그거야……『바이블』이 어떤 책이냐고…… 묻는 거나, 『훈민정음』을 누가 지었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이…… 없지 않겠어요?”
D검사는 발칵 화를 낸다.
“누가 당신과 농을 하자고 했어? 무슨 그 따위 소리가 있어? 빨리 끝냅시다. 나도 피로해요.”
이 교수는 체념한다. 그도 벌써 서대문의 감방이 그리워진 상태다. 빨리 오늘의 수모와 고욕에서 해방되고만 싶다.
“책의 내용은, 모든 경제제도 특히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고…….”
“응, 응…… 그리고 저자는?”
검사는 저자의 이름을 재촉했다.
“칼 마르크스라는 19세기의 독일인 학자입니다.”
D검사는 마르크스라는 이름에 찔끔 놀란 것이 분명하다. ‘피의자 진술서’를 쓰느라고 서류에 떨구고 있던 얼굴을 홱 들어 피의자를 쳐다본다. 그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말이 새어 나온다.
“마르크스!…… 자본론!…… 마르크스?”
D검사는 벌떡 일어선다. 안면근육들이 격하게 짧게 경련한다. 속에서 일어난 어떤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 피의자의 눈에도 역연하다. 섣달의 짧은 해가 저물어가는지 제○○호 검사실의 북창 밖은 어둠이 덮여가고 있다. 이 교수는 물에 젖은 솜처럼 눅신했던 심신이 상쾌해짐을 느낀다.
D검사가 느닷없이 형무관들을 향해 소리지른다. 불그스레하던 그의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
“이 피의자를 호송해서 돌아가시오!”
그러고는 이 교수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문을 쾅 닫고 황급히 검사실을 나가버린다.
이 교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오늘 처음보는 가벼운 미소가 흐른다.
이 교수는 쾅! 하는, 검사가 세차게 닫은 문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주위를 살펴보니 그는 자기 집 2층 서재의 창가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었고, 무릎 위에는 책이 펼쳐진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소파에 앉은 채 긴 환각에 잠겼던 것을 깨달았다.
길 건너 앞집 슬래브 지붕 위로 5월 초의 푸른 하늘이 시원하게 트여 있고, 연한 구름이 형상 없는 무늬를 수놓으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불현듯 출판사의 원고독촉 생각이 났다. 그는 ‘무엇을 쓸까?’라고 중얼거리면서 책상으로 가 원고지를 펴고 천천히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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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 집필생활 30년 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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