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은 미래지향적인가? / 남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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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5-01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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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은 미래지향적인가?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1. ‘국익을 위한 결단’의 의미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일관계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통해 한국 외교는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일관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1965년 체제’의 부활이다.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로 이뤄진 한일정상회담의 숨은 그림은 ‘(경제)안보’였다. 주목 받았던 강제동원 문제는 열흘 전인 3월 6일에 발표한 ‘정부 해법’을 확정한 내용이었고, ‘구상권 포기’까지 명언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형해화시키는 내용으로 ‘처리’되었다. 대신 안보와 경제 협력 증진을 위한 양국의 노력에 방점이 찍혔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기대되는 한일협력의 분야를 거론하면서 경제 등 기타 현안에 앞서서 안보를 가장 먼저 거론하면서 안보협력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국익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1965년 체제’에 장착되어 ‘집요저음’으로 작용해 왔던 ‘과거사-(경제)-안보’ 교환구조가 부활했다. 즉 과거사를 봉인하고 경제협력을 매개로 한일관계를 안정화하여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구축, 작동시키는 구조가 복원된 것이다. 동시에 1990년대 이후 구축되고 있던 ‘역사화해-평화구축’의 연동 구조가 붕괴되었다.


2. '좋았던 시절(아베)'의 '1965년 체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일본에 파견된 ‘정책 협의단’과 만난 자리에서 아베 신조 전 수상은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 측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아베 전 수상의 본심은 1965년 체제로의 복귀를 요구한 것이었다. 도쿄대학 교수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2021)는 안전보장과 경제협력, 즉 ‘안보경협’이 ‘1965년 체제’의 기본이었다고 파악했다. ‘1965년 체제’의 성립으로 역사 청산의 과제는 후면으로 내밀리게 되었다. 한덕수 총리가 강제동원 과제를 ‘돌덩이’에 비유한 데서 ‘1965년 체제’의 부활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6일의 박진 외교장관의 입장 표명과 3월 16일의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은 ‘1965년 체제’에 가까스로 살아 있던 마지노선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그 마지노선이라는 것은 1910년에 이르는 모든 조약과 협정들이 ‘원천’ 무효라는 입장, 즉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그 논리적 귀결로 내려진 대법원 판결)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수용한 결과, ‘제3자 변제’라는 방식으로 일본 측의 배상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이는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그 동안 우리 역대 정부가 일관해서 주장해 온 ‘불법적 식민지배’라는 입장을 후퇴시킨 방식이다. 


3. 봉인된 ‘과거사’, 봉인 해제된 ‘지정학’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원칙적 입장을 봉인한 이면에서 그 동안 봉인되었던 ‘지정학’이 부활했다. 2022년 9월 27일 아베 신조 전 수상의 국장(국가장례)에서 그 징후가 보였다. 아베 국장에 참가한 한덕수 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국제법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이라고 하여 일본 측 인식을 수용했다. 그날 국장에서는 스가 전 수상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의 심정에 빗대 추도사를 읽었다. 야마가타는 주권선 이익선 개념으로 구성되는 일본 지정학을 창안한 사람이다, 이토는 안중근 의사에 저격당할 때까지 이를 실행에 옮겼던 당사자다. 국제법은 이들이 한국을 길들이는 유효한 수단이었고 국제법으로 그 침략적 행동을 포장했다.


스가 전 수상의 이와 같은 발언의 배경에 아베 내각 시기부터 이미 부활의 징후가 보이던 지정학적 구상이 있다.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와 호소야 유이치(細谷雄一) 등의 ‘새로운 지정학’ 그룹이 대표적이다.(北岡伸一・細谷雄一, 『新しい地政学』(東洋経済新報社, 2020) 이들의 ‘새로운 지정학’에서 한국은 배제의 대상이다. 한국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징용공’ 문제에서 ‘자기주장’을 전개하며 국제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기타오카는 일본 주도의 ‘서태평양 연합’ 구상을 제기하기도 했다(北岡伸一, 『西太平洋連合のすすめ−−日本の「新しい地政学」』. 東洋経済新報社, 2021) 여기에 한국은 제외되어 있다. 조약, 선언, 합의를 지키지 않는 국가이며, ‘법의 지배’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자 ‘극동 1905년 체제’라는 용어가 등장했다.(千々和泰明, 『戦後日本の安全保障』, 中公新書, 2022) 극동지역질서를 둘러싼 전전과 전후의 연속성에 주목하면서 ‘미일-한미 양 동맹’의 구축이 현실로 존재하는 질서라며, 그 기원으로 러일전쟁의 결과 체결된 포츠머스조약을 꼽는다. 조선, 대만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옳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편에서 대국들의 사정에 따라 소국의 희생 위에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것이, 당시 국제정치에서의 냉엄한 현실이라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 나아가 3.6 정부해법이 제시되어 한미일 안보협력 긴밀화가 가시화하자, 한반도 유사 시 일본의 역할과 관련해 일본이 한미연합사의 의사결정과정에 행위자로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村野将, 2023.3.8.)


4. 러우전쟁의 현실과 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본의 ‘새로운 지정학’ 구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일본의 안보론자들은 “국제법 무시의 선제적 공격의 개시라는 분명한 ‘악’과 이에 저항하는 명백한 ‘선’의 대립”이 러우전쟁의 특징이라 보고,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전쟁 할 수 없는 나라’여서는 곤란하다며, 헌법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鶴岡路人 14) 한편 2022년 6월, 아시아안보회의 샹그릴라대화 기조강연에서 기시다 수상은 일본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계속할 수 있는가, 아니면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변경이 일어나는 가운데 (중략)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가는가”의 선택지 앞에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과 주장이 일본에서 2022년 12월에 채택된 ‘국가안보전략’ 문서에 반영되어 있다. 작년 말에 발표된 한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여기에 우리 국익을 동기화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강제동원 문제는 ‘돌덩이’ 치우듯 대일외교의 과제 리스트에서 삭제되었다.


그런데 러우전쟁의 이면에서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밖에 서려는 국가들이 조직화하고 있고,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실은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한국전쟁으로 지구적 수준에서 냉전체제가 확정되는 이면에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를 잇는 공간에서 ‘비동맹’ 운동이 개시되었던 것이다. 1954년 네루와 저우언라이가 평화5원칙을 발표하고,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평화10원칙* 채택된 것이 그 효시였다. 일본은 여기에 참석해서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상대로 중일관계를 시동했다. 같은 시기 북일관계에서도 시동을 걸고 있었다. 일본은 냉전체제의 안에 서면서도 밖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역사청산의 과제를 봉인하고, 일본의 ‘새로운 지정학’에 자신의 국익을 동기화하여 신냉전의 전위 역할을 자처하는 가운데, 일본은 새 버전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고 ‘글로벌 사우스’로 나가기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1955년 반둥회의 당시 사진. 이 회의에서 일명 '반둥 10원칙'이 채택되었다. (사진 출처는 Universal History Archive/UIG via Getty Images)


* 반둥회의에서 채택된 평화 10원칙(이른바 반둥 10원칙)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기본적인 인권과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존중


  2. 모든 국가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


  3. 모든 인류의 평등과 크고 작은 모든 나라의 평등을 승인


  4. 타국의 내정에 불간섭


  5. 유엔 헌장에 의한 단독 또는 집단적인 국토방위권을 존중


  6. 집단적 방위를 강국 특정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7. 침략이나 침략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는 타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을 침범하지 않는다.


  8.국제 분쟁은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


  9. 상호 이익과 협력을 촉진


  10. 정의와 국제 의무를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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