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 '아아(亞阿)의 물결' 1~5편
아아의 물결 ①
조선일보 1965. 6. 6.
「반둥」에서 「알제이」까지
「유색」만의 공동광장
강렬한 저류… 반식민·비동맹
아세아와 「아프리카」의 72개 독립 및 독립예정국가가 한 자리에 모이는 제2차 아아회의가 10년 만에 「알제리」 공화국 수도 「알제이」 시에서 이달 29일부터 개최된다. 정부는 여태까지 친공적이라고 배격해오던 대(對) 아아회의관을 바꿔 적극적으로 이에 참석할 의사를 밝혔으나 초청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렇게 중요한 아아회의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성격의 회의인가, 앞으로의 국제정세변동에 적응하여 한국과 아아회의와의관계는 어떠해야할 것인가. 그리고 아아회의에 참석할 경우 한국은 어떤 입장에 서게 될 것인가. 대한민국의 국가적 지위와 대외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제2차 아아회의를 5회로 나누어 여러모로 다루어본다. <편집자 주>
아아회의는 아세아와 「아프리카」 양 대륙의 신생독립국가 인민들이 백인 지배권에 대하여 인간적, 정치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유색인종 만의 정부급 공식회의이다.
제1차 회의는 1955년 4월 18일부터 24일까지의 1주일 동안 「인도네시아」 공화국 「반둥」 시에서 개최되었다. 이것이 아아회의가 「반둥」 회의라고도 불리는 연유이다.
세계 인구의 반을 점하면서도 2차 대전까지 구미 및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세계정치의 담당자가 못 되고그 희생물의 위치를 강요당했던 전후 신(新)독립국 29개국 대표가 구(舊) 식민지인민의 단결과 미해방민족의독립을 촉구하려는 목적으로 회합하여 유색인종에 의한 제3세력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반둥」 회의는 이에 앞서는 중간적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다. 즉 1954년 4월 28일과 같은해 12월 19일의 두 차례에 걸쳐 「실론」국 수도 「콜롬보」에서 당시 미소군사진영의 중간에서 중립세력의 지도자로 인정됐던 인도 「버마」, 「파키스탄」, 「실론」, 「인도네시아」 등 5개국 수상이 「네루」 인도수상의 「이니시에이티브」에 의해 회의창설, 회의목적, 참가국을 결정했던 것이다.
「반둥」 회의는 다음 4개 주요 목적을 위해 개최되었다. ① 아아국가의 친선·협력을 촉진하고, 공동이익의 조장을 위한 선린우호 관계의 수립. ② 참가국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공동으로 논의한다. ③ 이미 독립한 인민의국가적 주권 확립과 미해방민족의 독립을 지원한다. ④ 양 대륙국가의 단결의 힘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한다.
제1차 회의의 밑바닥을 흐르는 기본사상은 신생국 지도자들의 강렬한 「내셔널리즘」·반식민주의·반제국주의·전쟁반대로 표현된다.
참가국대표의 자격은 원칙적으로 각료급으로 되어있었으나 대부분의 국가는 국가원수 또는 수상을 파견함으로써 인류사상 최초의 유색인종만의 모임에 의의를 부여했다.
신생국가로서의 정치적 미숙과 정치·사회제도의 상이 때문에 구체적 문제의 해결이나 견해일치란 쉬운 일이아니었다. 따라서 회의는 기본사상에서 출발하는 아아국가사회의 원칙과 지침을 합의하는데 그쳤다. 참가국은주최국 정부의 초청에 의한다는 원칙에 따랐다.
초청된 29개 국가가 모두 참석했다.
「반둥」 회의가 열린 1955년의 「유엔」 가입국 수는 60, 이 가운데 아아회의의 대상이 되는 독립국가로서의「유엔」 가입국은 겨우 아세아 8개국(호주, 「뉴질랜드」 제외), 중동, 「아랍」 6개국, 「아프리카」 2개국에 불과했다.
정치·사회제도의 차이에서 오는 참가국 간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반둥」 회의를 꿰뚫는 강렬한 반식민·중립·비동맹적 사상적 이유에서 남「아프리카」 연방은 인종격리정책 때문에, 중화민국(대만)과 대한민국은 그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대한 신흥국가들의 혐오감 때문에 처음부터 초청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북한은 몽고와 함께회의 속에 분쟁을 불러들이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초청되지 않았다.
『회의 참가는 어느 특정국가가 딴 특정국가의 국가적 지위에 대한 견해를 변경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다국가회의의 원칙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곧 앞으로 있을 제2차 회의에서의 남북한대표 동시참석에 따르는 대한민국정부의 대북괴 관계에 유리한 근거가 되어주는 것이다.
아아회의의 성격으로서 결의의 구속력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이 회의에서 표명된 일부 참가국의 견해는 딴참가국이 희망하지 않는 한 딴 국가를 구속하거나, 딴 국가에 의해서 수락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양해로 해결된다.
이것은 또 앞으로의 회의에서 있을 「외군철수」 등 한국에 불리한 의제나 결의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의 「면책」 조항적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동의 광장」을 마련하는데 성공한 제1차 아아회의는 아아국가의 국제적 활동의 지침인 「10개 원칙」을 채택하였다. <禧>
제1차 회의 참가국(29)
인도, 실론, 중화인민공화국(중공), 네팔, 일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버마, 필리핀, 태국, 북월남(월맹), 남월남, 라오스,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이상 아세아 15),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토이기, 애급, 시리아, 이디오피아, 레바논, 수단, 예멘, 요르단(이상 중동 및 아랍 11), 리베리아, 리비아, 황금해안(이상 아프리카 3)
「반둥」 평화 10개 원칙
① 기본인권 및 「유엔」 헌장 목적과 원칙의 존중
② 모든 국가의 주권과 영토의 보전
③ 모든 인종과 대소국가의 국가적 평등
④ 타국에 의한 내정 불간섭
⑤ 「유엔」 헌장에 의거한 단독 또는 집단적 방위의 권리
⑥ 집단방위협정을 대국의 특수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말 것
⑦ 타국의 영토 및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말 것
⑧ 모든 국제분쟁을 「유엔」 헌장과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할 것
⑨ 상호이익과 협력의 증진
⑩ 정의와 국제의무의 존중

아아의 물결 ②
조선일보 1965.6.8.
「반둥」에서 「알제이」까지
국제정세의 방향타
그 비중
열 살짜리 거동(巨童)... 약소민족방패로
「맘모스」발언군... 「유엔」쥔 68개국
「반둥」에서 탄생한 제1차 아아회의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아아회의를 통해서 결속한 아세아와 「아프리카」 국가는 국제정치의 담당자로서 어느만큼 강대해졌는가.
고(故)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은 이미 1960년 9월 12일 제15회 「유엔」총회에 보낸 총장연차보고 제5항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아세아·「아프리카」 세력은 이제 세계의 5대국을 합친 세력에 대등한 힘이 되었다. 양대륙인민들의 要望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유엔」의 기능을 확장, 강화해야 한다.』
아아세력의 단결과 힘을 측정하는 가장 쉬운 척도는 「유엔」이다. 지난 10년 동안 아아지역내의 독립국은 60개국을 넘게 되었다. 더욱이 「아프리카」 신생구가수 16개국이 대량으로 가입한 60년도의 제19차 총회는 「아프리카 총회」라고까지 불렸다.
양지역의 독립국은 아세아·중동지역 31개, 「아프리카」 지역 37개, 합계 68개국으로써 전세계독립국 백27개의 과반수를 제압하게 되었다. 「유엔」 내의 세력분포도 급속히 변모하였다. 전체 가입국 백14개국 가운데 금년 1월 탈퇴한 「인도네시아」를 제외하더라도 58개국은 과반수를 제압하고 있다.
아아세력을 무시한 「유엔」의 운영이나 결의는 이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60년 12월 14일 제15회 총회는 아아 43개국 공동제안의 「식민지독립선언」을 찬성 89, 반대0, 기권9의 전회일치로 가결시켰다. 채택된 선언은 『모든 형태의 식민지제도를 조속히 그리고 무조건으로 해방·독립시킬 것』을 요구한 것으로, 역사적중요성으로 1948년 제3회 총회의 세계인권선언에 못지않은 것이었다.
중국대표권 문제의 표결은 아아세력을 가장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중공의 중국대표권(가입)을 반대하는 미국과 서방측 입장은 60년 제15회 총회에서 찬반의 차가 8표로 줄어들었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중국대표권변경 문제를 「중요(실질)사항」으로 지정, 헌장 제18조에 의해 3분의2 다수법안을 제출하게 되어 부결시킬 수 있었으나, 63년도 제18회 총회에서는 찬성 41표, 반대 57표, 기권 12표로 3분의2의 선에 차츰 육박하여 유회(流會)한 작년도 제19회 총회에서는 3분의2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착을 낳게까지 하였다.
정치적독립의 전제인 경제적 자립을 위한 아아국가의 단합된 압력은 마침내 64년 3월부터 6월까지 「제네바」에서 후진국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무역개발회를 실현시키고 선진공업국가들로 하여금 그것을 「유엔」의 상설기구로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아세력의 토대와 역할은 「유엔」뿐이 아니다. 오히려 그밖에서의 국제정치에서 약소, 신생국가인민들의 권익을 수호하는 방패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소와 미소를 중심으로 하는 대립적인 냉전체제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아아세력은 또다른 비동맹중립국가회의의 형태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비동맹회의 참가국은 61년 9월 「베오그라드」 제1차 회의의 25개국에서, 제2회 「카이로」 회의에서는 57개국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유고슬라비아」와 중남미 몇 나라를 제외하고서는 그 핵심은 아아회의 국가인 것이다.
그밖에도 아아인민단결회담, 중립국경제회의, 아아경제협력기구 등 모든 분야서의 제3세력 활동은 아아회의국가와 「반둥」 10개원칙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알제리」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의 해방전쟁을 위한 지원, 전체 「유엔」회원국에 의한 군축회의, 63년 7월의 부분적핵금지협정의 실현, 「콩고」 내란의 중재, 외군기지 철수를 위한 압력, 그리고 최근에는 월남전쟁무조건협상을 위한 「베오그라드」 회의결의 등, 국제정세의 방향을 잡는 주요한 국제적 현상은 아아세력의 역할에 의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에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이 예언한대로 금년에는 아아세력의 지역적 발언권을 반영하기 위해 「유엔」 안보이사회와 경제사회이사회의 이사국을 증가하는 「유엔」 헌장개정이 실현된다.
지난 5일 「버마」 국회의 비준으로 이미 과반수인 76표에 가까운 75개국이 이를 비준했으며, 증가되는 이사국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을 아아지역국가로 보지 않으려는 아아회의에서 채우게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통일정책과 합법성주장의 유일한 근거가 되어온 「유엔」도 이같이 해서 점점 그 체질을 개선하는 단계에 놓여있다.
성장하는 아아국가사회에서 고립했던 한국의 집권자들이 「알제리」회의에의 적극적 참가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동기가 여기에 있다. <禧>

아아의 물결 ③
조선일보 1965.6.11.
「반둥」에서 「알제이」까지
세 분파 ... 강한 분열징조
주목할 15개 불어사용국의 동태
그러나 아아국가세력의 성장을 과시한 지난 10년은 아아사회의 분열과 고민의 10년이기도 했다. 해결해야만 할 과제도 많다. 「반둥」 회의로써 아아회의의 단결을 과시했던 아아세력에는 동서냉전체제의 해체 과정에 따라 내부적 단결에도 분해 현상이 일어났다. 「반둥」회의 때만 하더라도 신생독립의 정열이 반식민지와 반제국주의노선으로 반사(反射)적인 단결을 가져올 수 있었으나, 독립의 햇수를 거듭함에 따라 아아국가사회는 국가이익과 지도권 쟁탈의 갈등으로 세포분열을 하려는 징조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제10주년기념대회는 크게 나누어서 아아회의국의 세 갈래의 저류를 보여주었다.
▲ 급진파 = 주로 중공, 「인도네시아」, 「가나」 등 사회주의 혁명세력으로서 평화공존을 부인하고 일부 신생국가의 「부르조아」적 정권을 「민족해방전선」 조직으로 전복하려는 세력이다. 북한, 월맹, 「말라위」. 「콩고」. 「모리타니아」 등이 이에 추종하여 총수 15개국에 미달하는 소수이지만, 중공의 2회의 핵실험은 아아세력의 유일한 핵국가로서 발언권은 가장 강하다.
▲ 온건파 = 아아회의에 속하면서도 동서군사진영감에서 「적극적 중립」 노선을 표방하는 비동맹 국가들이다. 인도, 「실론」, 「유고슬라비아」, 「알제리」, 「아랍」 공화국 등을 중심한 평화공존정책으로 급진세력과 대립한다. 중소이념분쟁, 월남전쟁, 「말레이지아」 등 문제에서도 중공보다 훨씬 온건하며 아세아10개국, 「아프리카」 약30개국의 지지를 받아 아아회의의 주류를 이루는 세력을 구성하고 있다. 「네루」 수상이 없는 온건파는 국가수에 비해 통솔력은 약화된 형편이다.
▲ 친서방파 = 아세아에서 일본, 「필리핀」, 태국,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촘베」 대통령의 「콩고」(레오폴드빌)를 비롯하여 합계 10개국 정도로서 우리 정부지도자들이 『이 회의에 나가 직접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도 이 세력에 기대는 바 컸다. 그러나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있으면서도 토이기(土耳其), 「파키스탄」 등 자주의식이 강한 몇몇 국가들은 아아회의의 일반노선에서는 온건세력에 서 있다.
지역내의 이해관계에 따르는 대립집단이 있다. 「아프리카」의 친중공적 기수인 「가나」의 「엔크루마」 대통령노선에 반발한 15개 불어사용국(「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 공동기구=OCAM) 가운데 9개국은 5월 26일 「낫세르·은크루카」 영도하의 36개국 「아프리카」 통일기구(OAU)의 9월회의 불참을 결의하고, 나아가 아아회의의 「보이콧」으로써 친서방적감정을 밝혔다. 이 9개국은 대부분 한국과의 외교관계가 있는 국가로서 아아회의에 앞서는 우리 정부의 잠재적 지지국가들이다.
또한 「이스라엘」 문제로 「튀니지」 「모로코」 「리베리아」 등 국가는 지난 5월 중순 「낫세르」 대통령을 비롯한 그밖의 중동14개 국가와 공개적으로 분열했다.
한편 아세아에서는 「말레이지아」에 대해 억지에 가까운 적대정책을 취하는 중공 「인도네시아」 북한월맹 등과 일본 「파키스탄」 인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가국가가 대립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말레이지아」 문제에서 협조하는 「파키스탄」과 인도는 영토 분쟁으로 「파키스탄」은 중공데, 인도는 일본과 더불어 아세아의 친서방, 반급진 진영을 구성하고 있다. 「수카르노」 주은래 김일성 호지명의 아세아 급진파가 주수상의 「아프리카」 순방을 통해 현재 「아프리카」 다수 국가를 회유하는 외교공작을 전개하고 있는 때를 같이해서 「알제리」의 「벤·벨라」 수상은 아아회의국가에 친서를 휴대한 특사를 파견하여 「티토」 「벤·벨라」 「낫세르」 「샤스트리」(인도)의 온건세력 구축에 분주하다.
「알제리」 국회 외교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벤·벨라」 사절단이 7일 북평(北平) 경유 평양을 방문한 것도 이와같은 배경에서 「알제이」에서의 29일 제2차회의를 앞둔 아아회의의 고민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2차회의는 「반제국, 반식민」의 혁명노선에 초점을 두는 급진세력과 「평화공존, 경제발전을 위한 협조」에 역점을 두는 온건 및 서방국가세력과의 대립이 적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모든 대립에도 불구하고 회의의 세로운 의제인 월남전쟁에 관해서만은 미국정책 규탄을 통일노선으로 결속할 전망이 뚜렷하다. 9일에 끝난 15개국 대사급준비회의가 월남정부와 월남에 파군지원하는 한국을 초청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도 월남문제에 대한 아아회의의 강경한 태도를 반영한다. <禧>

아아의 물결 ④
조선일보. 1965.6.12.
「반둥」에서 「알제이」까지
한국의 좌표
중요한건 「자세」
「월남지원」 적극 설득해야
「알제이」 회의에서 토의될 의제와 한국이 참가 또는 참가 못할 경우의 입장 그리고 아아회의(亞阿會議) 및아아사회(亞阿社會)와 한국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작년 4월 「자카르타」 준비회의 결정에 따라 「알제이」 회의에서는 「반둥」회의 10개 원칙의 재확인이라는 일반의제와 구체적 의제로서 ①식민지(신식민지 문제 포함) ②인종차별 ③「유엔」 개편(신생국가회의 문제 포함) ④ 핵금, 군축, 외군기지 ⑤ 분단국가통일 ⑥ 선후진경제협력 ⑦ 아아회의 상설기구 설치 등 생각 할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논의 될 것이다. 더욱이 월남전쟁 문제는 「반둥」회의 이후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중대 문제로서 중요시 될 것은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참석을 가상할 때, 위의 의제 가운데서 수세에 서게 될 것이 주로 외군기지, 통일방법, 신식민지, 월남파군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일반의제로서의 「방둥」 원칙과 그 밖의 의제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부가 종전의 소극적인 고립정책에서 적극적인 정책으로 자세를 바꿨다면 찬성할 수 없을 만큼 국시나 대한민국 정치외교정책과 어긋나는 문제들은 아니다.
정부로서는 외군기지가 미국의 침략적 군사기지가 아니라 「유엔」 결의에 의한 합법적 「유엔」군이라는 것통일방안에서도 역시 「유엔」 결의에 따르는 통일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유엔」의 이름으로 설득할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다음 신식민지 문제에서 아아국가들을 지배하는 감정은 정치·경제·군사적인 면에서 외부국가의 간섭에 대해이것을 명목상의 정치적 독립과 구분하려는 경향이다. 「콩고」의 「촘베」 대통령을 이 상징으로 여기는 그들은 월남정부도 이 「카테고리」 속에 넣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대한 태도는 무엇보다도 월남전에서의 군사적 개입을 비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참석할 경우,가장 치열한 공격이 이 문제에 집중될 수 있을 것이고 이 문제야말로 정부가 「자유진영국가의 의무」로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던 것이었다. 효과야 있건 없건.
15개국 대사급준비회의의 분위기대로 한국의 참석 없는 24일부터의 외상회의에서 유독 월남과 대한민국에 대한 초청문제가 거부된다면, 한국은 「결석재판」을 받는 격이 된다.
아아회의를 둘러싸고 일어난 최근의 사태는 외교적 노력에는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부는 「자카르타」 준비회의에 앞서 작년 2월부터 회의대책을 세우고 우방과의 협조, 정세진전의 분석, 작년12월의 구아, 아세아주재공관장회의, 그 결과에 따르는 지난2월 이수영, 최두선 씨를 단장으로 하는 「아프리카」 친선사절단 파견 등으로 약한 국력과 국가재원으로써는 할 것을 다했다고 본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를 순방하고 돌아온 양 대표는 6월 3일 국회외무분과위에서의 종합보고를 통해 『우리나라는 대(對) 「아프리카」 외교에서 북괴보다 우위에 서있으나 앞으로의 전망은 반드시 낙관할 수 없다』고 보고하고 명분외교의 지양』을 결론으로 지적했다. 이것은 모든 책임이 외교행위의 졸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사무적 기술로만은 해결 할 수 없는 아아국가사회의 여건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아세아에 있으면서도 월남·대만과 더불어 아세아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많은 아아지역 국가의 한국관인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문제는 한국정치외교의 기본자세가 아아지역국가와 어울리기 힘들다는 데서 이번 아아회의파동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외교전문가들의 말이다. 굳건한 반공노선을 지키면서도 한국은 아아지역 국가사회의 일원이지 서구국가가 아니라는 시대적·지역적 자각과 이 모순된 양 노선을 어떻게 조절하는가가 대한민국이 정면으로 부딪친 국가적 과제이다. <禧>

아아의 물결 ⑤
조선일보. 1965.6.13.
「반둥」에서 「알제이」까지
국제관례 외면당해
한국초청문제
그동안의 경위
중공 등서 방해공작 「1년계산」에 맹랑한 차질(蹉跌)
정부는 1년 가까이 검토한 끝에 지난 5월말께 「알제이회의」에 참석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하고 대표단인선까지도 구상하여 초청장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알제리」 정부는 초청장을 한국에 보냈다는 간접적인 이야기와 달리, 북괴를 포함한 다른 64개국가에는 초청장을 보냈으면서도 한국에는 아직껏 보내지 않고 있으며 지난 4일부터 닷새동안 열린 15개 상임준비국대사급회의에서 한국초청 문제를 제기하려는 인도 등의 노력을 『「반둥」회의에 참석시킬 수 없는 새롭고 중대한 요소』를 이유로 방해하여 이 문제를 外相회의에 넘김으로써 국제신의와 관례를 크게 깨뜨려 배신했다. 그러면 정부가 1년전에 착수했던 제2차 「반둥」회의 준비에 왜 이와 같은 차질이 생겼는가?
외무부당국자는 『우리가 공산측의 방해공작을 예측못한 바는 아니지만 너무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그 대책을 소홀히했고 또 이미 작년 4월 「자카르타」 외상회의에서 한국을 초청대상국가 C군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당연히 초청될 줄 알았으므로 「알제리」 정부가 그와같이 국제신의를 저버릴줄은 생각지 못했다』면서 외교적인 「미스」를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러나 외무당국의 실책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 아아회의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여건이 우리의 외교노선과 엇갈린데서 오는 작용도 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특히 아아지성(亞阿地城)에서 크게 말썽이 되고 있는 월남전쟁에 파병한 일이나 중동에서 「아랍」 제국과, 또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와 견원지간인 「이스라엘」 및 「말레이지아」와 친교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인도네시아」의 방해공작도 예측할 수 있으며 「아랍」 공화국의 협조도 크게 기대할 수는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외무부가 지난한햇 동안 해외전공관을 통하여 각국의 동태를 면밀히 지켜본 것도 이와 같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 준비활동은 초청장이 오는 경우를 가상해서 참석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자료수집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으며 이 회의의 주최국인 「일제리」 정부나 우리의 대적 상대가 될 북괴의 동향에 대해서 지나치게 어두웠던 것이다.
지난 5월 신현준(申鉉俊) 주 「모로코」 대사가 「알제이에 갔올때만 해도 몹시 우호적이라고 보고했을 뿐 「알제리」 정부의 속셈이나 북괴 및 중공대사관의 동향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그 활동이 피상적이었던 것 같다.
정부가 이 회의 참석 문제를 당면과제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올 무렵이나 한달도 안 되는 셈이다. 외무부당국자들은 부인하지만 정부는 이때 미측과 이 문제를 협의한 것 같으며, 이 무렵 우방 여러나라도 한국이 같이 참석할 것을 권고해와 외무부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외공관으로부터 받은 오백여통의 電文報告를 토대로 참석할 때와 불참할 때의 각각 이해득실을 따져 5월 28일 정일권(丁一權) 총리에게, 다음날에 박대통령에게 각각 보고했다.
외무부 보고에 의하면 참석하는 경우 ① 불참으로 아아지역에서 고립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② 북괴나 중공측의 한국 문제에 관한 일방적인 제기나 공세를 막을 수 있다. ③ 친서방 및 온건파 여러나라와 제휴하여 아아회의의 좌선회를 막는 데 기여한다는 이점을 들 수 있고, 불리한 점으로는 ① 두 개의 한국관에 영향을 준다. ② 반식민, 제국주의 등 우방에 불리한 의제와 월남문제가 논의되기 쉽다는 점을 들어 큰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불리한 영향은 막을 수 있다는 이유로 참석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었으나 결국은 중공·북괴 등의 방해공작을 당한 것이다.
외무부는 아직도 인도 「이란」 「이디오피아」 「아랍」 공화국 등 여러나라가 격분해서 한국초청을 위해 싸우고 있으므로 우리가 일방적으로 태도표명을 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아프리카」의 「오캄」(전 불령 식민국가) 10개국을 포함하여 11개국가가 불참을 선언했고, 앞으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정세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불참문제도 고려하면서도 태도표명을 보류하고 있는 상태인데 최종방침의 공식발표는 24일부터 있을 외상회의 직후가 될 것 같다. <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