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포럼 <트럼프의 미국과 탈단극의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참관기] 포럼 <트럼프의 미국과 탈단극의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리영희재단 사무국
지난 9월 17일, 리영희재단은 “트럼프의 미국과 탈단극의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차태서 교수를 모시고 강연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국제정치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차태서 교수의 문제의식을 직접 듣고자 재단 회원과 시민들이 ‘공간리영희’의 자리를 가득 메웠다. 포럼은 정욱식 리영희재단 상임이사의 사회로 약 2시간 동안 밀도 있게 진행되었다.
차 교수는 오늘의 국제정세를 “단극의 종언 이후 다극으로 넘어가는 겨울”이라 규정했다. 지난 30년간의 탈냉전 시대는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 아래 한국이 안보와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누렸던 ‘여름’이었지만, 이제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의 혼란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20년의 위기’에 비유하며, 패권 이행 시기 자유세계 질서의 상승과 하강을 재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 사회가 정체성을 두고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으며, 그 결과 미국의 국제적 역할 의지가 실제 국력보다 더 빠르게 쇠퇴해서 ‘킨들버거 함정’으로 이어지는 세계적 리더십의 공백을 낳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동맹에게 더 많은 비용 분담을 요구하고, 국제 문제 개입을 최소화하며, 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역외 균형 전략’을 펼쳐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 한국이 동맹국인 미국에 의해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연루의 딜레마’와, 정작 필요할 때 버려질 수 있는 ‘방기의 딜레마’에 동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런 ‘겨울’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 담론의 즉각적 실현이 아니라, 잠정적 타협(Modus Vivendi)을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 세력 균형을 모색하는 ‘성찰적 현실주의’의 지혜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질의응답]
정욱식(이하 정): 트럼프가 시진핑이나 푸틴을 본인과 거의 동급 혹은 약간 밑에 있는 포커판의 플레이어로 인정하는 얘기를 좀 많이 해왔는데요,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는 꽤 끊임없이 김정은한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넘버3 정도 대우를 하는 것 같아요. 트럼프의 특성상 그렇게 김정은한테 계속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걸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강대국 정치의 귀환, 그리고 이 강대국의 핵심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자기가 상대해 보겠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데, 한참 좀 떨어져 있어 보이는 조선의 김정은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표명하고 만나자고 하는 트럼프의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
차태서(이하 차): 물론 (북한이) 경제력으로 보면 한참 떨어지는 플레이어이긴 합니다. 근데 러시아에 대해서도 이 사람이 넘버2라고 표현한 걸 보면 그의 머릿속에서의 파워 순위는 일단은 핵무기의 보유 여부인 것 같아요. 김정은에 대해서도 뉴클리어 파워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었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북한에 대한 순위도가 트럼프의 머릿속에서는 경제력 순위에 비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전 세계에서 9등 안에 드는 거잖아요. 그 9개 중에서 계속 얘기해온 피스 메이커이자 문제해결사로서 문제를 해결했을 때 가장 빛이 나고 노벨 평화상에 근접할 수 있는 게 북한문제다라는 식의 생각이 복합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런 급이 되는 핵 강대국들이 존재하고, 다른 한쪽의 카테고리에는 동맹국들이 있는 것 같아요. 동맹국들이라는 게, 원래 우리가 알던 조 바이든 같은 미국 대통령들이 했듯이 대우해 줘야 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여지껏 우리를 ‘등쳐먹은’ 애들이기 때문에, 뭔가 손을 봐주고 그동안 등쳐먹은 걸 다시 받아내야 되는 존재인 거죠.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카테고리랑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가 머릿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 관련해서 오늘 발표에는 안 나왔습니다만 최근에 황해문화에 그런 내용의 글을 좀 쓰셨는데요, 트럼프가 구상하는 일종의 강대국 협조 체제 및 협상 구도에 있어서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화두로 꺼내고 있는 것이 미중러 중심의 핵군축 협상이고, 여기에 김정은도 가끔 좀 껴라고 하면 이건 전통적인 한반도 비핵화의 접근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사실 세계 핵 군축이라든지 세계 비핵화는 주로 조선의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서방 세계에 대한 대항론으로서 조선 측에서 많이 얘기해 왔는데 지금 트럼프가 부분적으로 유사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북미 간의 군비 통제 협상과, 글로벌 차원 특히 미중러 중심의 핵 보유국들 사이에서 핵 군축 협상의 어떤 연결고리에 대해서 혹시 고민을 해 보신 게 있는지.
차: 오히려 제가 정욱식 대표님한테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 근데 트럼프가 군비 통제나 핵 군축에 대해서도 단편적으로만 이야기를 해서 사실은 우리가 추측을 해야 되는 영역이긴 한데, 굉장히 트럼프스럽게 얘기를 하긴 해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 핵 군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평화나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죠. 핵무기를 만드는 데 기본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중국 러시아가 모여서 협상을 하면 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것도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해야 되는 게 결국에는 경제적인 관념으로 환원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껏 생각했던 군비 통제라는 건 보통은 우발적인 핵 전쟁의 위험이라든지 주로 안보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해왔는데, 트럼프라는 사람은 확실히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 그럼 관련해서 레이건 같은 경우에도 전략방위구상, 이른바 스타워즈 구상을 발표했었고, 이후에 고르바초프하고 핵 협상에 돌입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않았습니까? 트럼프도 유사하게 우주미사일방어체계 ‘골든돔(Golden Dome)’ 하겠다고 예산을 다 쓰고 있다는데 제가 보기엔 동맹국들한테 비용 청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골든돔으로 상징되는 힘에 의한 평화 구상과 강대국 중심의 핵 군축 협상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고 보시는지, 연결고리가 있다고 하면 레이건의 유산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차: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나 골든 돔이나 다 레이건에게서 차용해 온 건 맞고, 또 그 뒤에 있는 소위 얘기하는 군산복합체나 이런 데서도 그런 레이건의 유산을 가져와서 홍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트럼프 머리에서 ‘레이건의 유산대로 핵 군축을 해야지’ 이런 생각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저는 레이건 같은 경우는 상당한 사상적 깊이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고르바초프와 만나서 핵군축에 합의하고 이런 과정을 보면 본인이 에이블 아처(Able Archer)나 이런 걸 겪으면서 상당한 사상적 전회가 있거든요.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대사처럼 ‘이러다 다 죽는다’ 식의 어떤 충격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고르바초프한테 일정 부분 감화된 측면도 있고 이 사람하고는 믿고 뭔가 할 수 있겠구나라는 어떤 전회 과정이 있거든요. 근데 제가 봤을 때 트럼프는 그런 식의 감화나 평화 군축에 대한 감을 갖고 뭔가를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청중1: 차 교수님 글을 몇 편 읽었는데, 우리나라의 기존 국제정치학자와는 달리 상당히 현실주의 성향과 지정학적 문제의식을 갖고 세계를 보시더라고요. 우리나라 국제정치학 수준에서 현실주의 문제나 지정학 문제에 대해서 말로만 했지 제대로 한 사람은 별로 못 봤는데 차 교수께서는 이런 도구를 가지고 현상을 잘 평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한 게, 지금 우리나라 정치학계나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차 교수님이 분석 틀로 쓰시는 현실주의나 이런 지정학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를 하고 있나요?
차: 몇 가지 다른 측면에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현실주의라는 이론 프레임에 대해 먼저 말씀을 드리면, 제가 한국 학교에 있은 지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한국 학계에 현실주의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본인이 현실주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좀 있는데 그런 분들 얘기를 제가 가만히 듣고 있으면 미국 기준으로는 네오콘인 분들이 많으세요. 본인은 현실주의자라고 말씀하셔서 들어보면 대부분 결론은 자유 민주주의 이런 얘기를 하시거든요. 제가 봤을 때 그건 전형적인 네오콘의 문법이라서 전혀 다른 것 같고요. 그래서 오히려 현실주의적인 사유 방식을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귀하다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현실주의적인 사고를 하면 기존의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위 보수와 진보의 외교 정책과 관련한 논쟁도 굉장히 다른 틀로 접근 가능하고 진짜 그 틀 자체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면 관심사랑은 좀 다를 수 있는데 사실은 이런 이론 논쟁 자체가 저희 학계에서는 이미 많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지금의 국제정치학계, 더 넓게 정치학계 자체는 사실은 이런 이론에 대한 관심보다는 대부분이 굉장히 통계적인 방법론에 매몰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가설 검증이나 통계적인 방법론의 정밀함 이런 걸 따지는 데 집중해 있지, 이런 소위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특히 주니어 학자들일수록 관심이 멀어져 있어서 사실 제대로 된 이론 논쟁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 제가 학계에 있지는 않습니다만 흥미로운 지점은 예를 들면 미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학자라고 하는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나 스티븐 월트(Stephen Walt) 이런 사람들은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잖아요. 근데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국의 현실주의자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결국 기승전 친미, 혹은 미국의 기존 담론에 너무 쉽게 포섭되는 모습들을 많이 본 것 같아서 이렇게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좀 제대로 가야겠구나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아까 조선의 현재와 관련해서 우리가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은 군비 통제, 그 다음에 전략적 안정에 좀 방점을 찍어야 된다라는 부분도 역시 차 교수님의 현실주의적 시각이 강하게 투영돼있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차: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밖에 못 가는 게 현실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죠. 늘 차악을 생각하다보니까.
정: 그렇게 주장하시면 주변에서 좀 욕을 먹지는 않나요?
차: 이게 잘못하면 전형적인 친북 논리가 돼버리죠. 굉장히 재밌는 게 예를 들면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나 존 미어샤이머 같은 사람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계속 얘기했어요. 북한은 핵 포기 안 할 거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라는 목표는 불가능하다고. 그렇다면 결국 미국이 할 수 있는 북미 간의 협상이라는 건 북한의 핵을 인정한 후에 어떻게 하면 북미 관계를 안정화시킬 거냐는 거고, 결국은 수교 협상이나 이런 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줄기차게 했거든요. 근데 그 현실주의자들이 했던 얘기를 국내 맥락으로 들고 오면 영락없는 종북이죠. 근데 우리나라의 현실주의자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얘기 안 하시잖아요. 뭔가 좀 맞지가 않고 이 이야기의 틀이라는 게 묘하더라고요. 미국에서는 그렇게 얘기 안 하는데요.
정: 관련해서 아까 자강을 말씀하셨단 말이죠. 사실 이재명 대통령도 트럼프 만나고 와서 우리가 얼마나 자강을 해야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서 절감하고 왔다 이런 얘기들을 했는데, 이 자강이라고 하는 게 진보 보수를 다 떠나서 이 시대의 유행어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군의 상황도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러면 자강과 대미 종속성의 관계는 어떻게 보세요? 자강이라고 하면 그게 군사력 증강의 방식이 됐든 경제력 증강의 방식이 됐든 어떤 방식이 됐든 간에 이른바 국력을 키우는 프로세스 자체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미국에 대한 과도한 종속에서부터 좀 더 벗어나는 방향성을 갖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일 텐데, 지금 한미 관계의 역동적인 관계를 고려할 때 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자강의 결과가 대미 종속성의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시는지?
차: 지금 같은 상황이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 자체가 점점 디리스킹(de-risking)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열려가고 있는 거죠. 근데 또 현실주의에서 강조하는 개념이자 미덕 중 하나는 안보 딜레마 개념이잖아요. 우리의 자강은 늘 상대의 동일한 자강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우리가 힘을 기르면 북한도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동학이 작동을 하기 때문에, 그 깨달음을 얻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군비 통제 논리가 등장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이게 무한한 자강 대 자강의 맞대응으로 가서는 안 되고 어느 지점에서는 서로가 스톱을 하고 이제 서로 간에 일정한 견제를 하게 되는 단계로 넘어가야 된다라는 것을 현실주의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저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논의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자강 플러스 어느 시점에서는 그것이 안보 딜레마 상황으로 가는 것을 인지하고 군비 통제 논의로 넘어가는 것이죠.
청중2: 두 가지만 여쭤보고 싶어요. 앞서 얘기하셨던 그 강대국의 귀환 정치의 핵심이라고 하면, 저는 이상주의의 파국이나 또는 현실주의의 재림이라고 정리를 했고 그 핵심이 되는 건 세력 균형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냉전기나 신냉전기를 거치면서도 대단히 예외적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세계적 규모의 대파국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거든요. 예컨대 중국과 미국이 전면전을 벌인다든지. 그렇다면 그걸 억제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소위 공포의 균형이라고 하는 핵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지금 100일밖에 안 돼 조금 이른 감이 있습니다마는, 이재명 정부는 현실주의라는 말보다는 실용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현재 상황 하에서 세계 정세를 잘 이용하면서 우리가 현명한 대북 정책이나 대강대국 정책, 중국이나 미국에 대한 외교적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봤을 때 저는 합격점을 주고 싶은데, 이에 대한 차 교수님의 촌평을 한번 부탁드립니다.
차: 첫 번째 질문은 말씀하신 것처럼 공포의 균형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2차 대전까지 강대국 간의 경쟁이 대규모의 전쟁으로 이어지다가 미소 냉전부터 대규모의 전쟁이 없는 가장 큰 원인으로 공포의 균형을 언급을 하고 있죠. 근데 최근에 제가 읽은 논문 중에 좀 흥미롭게 봤던 건, 미소 냉전과 미중 신냉전이 조금 다른 부분 중 하나가, 미중 신냉전 같은 경우는 전술핵과 같은 작은 규모의 핵전쟁이 나기에는 미소 냉전에 비해서 지리적으로 더 위험도가 높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특히 대만 같은 열도 지역에서 국지적인 전술핵 사용이 가능하도록 지리적인 형태가 배치돼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 싱크탱크의 글들이 있더라고요. 미국과 소련 간의 전쟁은 중동부 유럽에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직접적으로 대립해 있는 대륙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잖아요. 근데 지금 미국과 중국 같은 경우는 그런 식으로 대륙 대 대륙의 형태로 연접해 있는 게 아니라 도서 연안 지역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양쪽이 서로 섬에 국한된 행태인 국지전으로 핵전쟁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특히 대만 같은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양쪽 다 갖게 되면, 양쪽 다 군사 수뇌부들은 전면전으로 가지 않는 핵 전쟁 정도는 우리가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굉장히 위태로운 생각을 할 거라고 추측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은 미소 냉전 시절보다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독특한 위험인 거고, 거기에 더해 만약 AI가 이 핵무기 시대에 결합이 된다라고 하면 자동화된 핵 전쟁의 위험이 좀 더 보태지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글들은 최근에 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말씀처럼 평가하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른 감이 있는데 일단은 저는 신중성이 보이는 부분은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감히 지난 정부들을 평가한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이게 상당 부분 이념형적인 측면이 굉장히 강해 보였거든요. 특히 지난 윤석열 정부 같은 경우는, 어떤 특정한 디자인이 딱 존재를 하고 그 이념적인 디자인에 맞추어서 외교 정책을 조립해가는 느낌으로 집행해가는 느낌이 강했고, 그러다 보니까 여러 군데에서 파열음 같은 것이 등장했었는데, 현 정부 같은 경우는 저 같은 현실주의자 입장에서는 그런 디자인에 맞춰서 현실을 욱여넣기보다는 훨씬 신중해 보이고 이런 면에서는 일단 다행스럽게 생각이 듭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은 너무 초기라서 저도 신중하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정: 한반도 문제 해법과 관련해서는 코리아 양국 체제를 말씀하셨고, 그 다음에 비핵화는 먼 훗날에 미뤄 놓고 군비 통제 중심의 접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꽤 오래전부터 얘기를 해 왔었습니다만, 두 국가 체제로 표현하든 코리아 양극 체제로 표현하든 북을 수용하자라고 얘기할 때,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얘기냐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차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코리아 양국 체제로 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차: 여러 가지 조치가 다 복합적으로 따라와야 되는 문제긴 한데, 북한이 얘기하는 식으로 얘기하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겠죠. 가령 작계와 같이 우리의 군 태세 자체가 지금 그 부분에 있어서 북한과의 공존을 위한 포스처를 갖고 있느냐, 아니면 어느 순간 흡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형태로 작동되어 있느냐라는 부분에 있어서 의구심이 해소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국정 철학이나 기본적인 원칙이 애초에 우리가 공존을 하기 위한 형태로 되어 있느냐는 건데, 그러려면 결과적으로는 헌법 문제나 이런 것까지 건드리게 되겠죠. 가장 근본적으로는 그 철학의 문제가 필요할 거고 그것이 반영된 형태로 우리 군의 태세나 국방 원칙이 서있는가 그 부분까지 결국 진행될 것 같습니다.
정: 그러니까 한미동맹의 대북 유사시, 혹은 전시 목표가 어디까지냐 이런 부분, 그 다음에 헌법 말씀도 하셨는데, 개헌 논의는 여전히 잘 건들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영토 조항을 포함한 남북 관계 혹은 한반도 문제에 관련해서 우리가 짚어봐야 될 문제들은 거의 언급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차: 근데 이게 국내 정치인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부분일 것 같아요. 제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요. 저는 비핵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다음 대선 때 대통령 후보가 나와서 ‘국민 여러분 비핵화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포기하고 군비 통제합시다’ 이러면 그 대통령이 당선될까요? 남북 통일 문제도 ‘통일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그냥 투 코리아로 갑시다’ 이렇게 되면 헌법도 아마 그런 선언적인 목표와 의미로 놔두는 걸로 인식하게 되겠죠. 그거를 건드리자고 하는 건 실제 저 같은 학자가 얘기하는 것과 평화 운동가가 얘기하는 것, 실제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얘기하는 것 모두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거를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청중3: 일각에서는 영구 분단 체제 고착화라는 위험성을 얘기하는 분들도 많지 않습니까? 개헌이 되든 투코리아 체제로 갔을 때 잠정적으로 어떤 평화 관리 체제라기보다는 아예 그냥 영구 분단 체제라고 하는 그 리스크가 굉장히 크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좀 해봅니다.
정: 좋은 의견입니다. 아까 차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관점으로 본다면 개헌 쪽보다는 한미 동맹에서 대북 유사시 전시 목표에서 흡수 통일로 해석될 수 있는 작전 계획이라든지 연합 훈련이든지 이런 부분을 떼어내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좀 더 실용적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차: 네, 헌법을 바꾸는 거는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인 입장에선 거의 자살행위 비슷한 일이 될 것 같고, 오히려 작전 계획이나 이런 게 더 현실적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전제가 돼야 될 것은 북한 역시 마찬가지로 군 차원에서 그런 상호 조치를 취해야 되겠죠. 그게 결국은 우리가 문재인 정부 시절 9.19 때 군비 통제로 달성하고자 했던 거잖아요. 가장 실질적인 부분은 결국 군과 관련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 끝으로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탈단극이 어디로 갈 거냐고 할 때, 무극, 다극 체제 등 여러 가지 얘기들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세계 외교사를 비롯해 국제 정치를 공부해오신 분의 입장에서 탈단극 이외의 다극화로 간다고 할 때, 한국의 안전과 비전이란 측면에서 우리가 반길 수 있고 모색해야 할 다극의 형태가 있을까요?
차: 다극으로 가는 건 구조적 경향이고 단극으로 돌아갈 길은 없는 것 같고요. 그리고 미중으로 완전히 세계가 쪼개지는 양극으로 가기도 어려울 것 같고, 다극에 가까운 형태로 갈 것 같습니다. 다극인데 견딜 만한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앞서 제가 발표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군비 통제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미중러가 무한 군비 경쟁으로 가는데 핵군비 경쟁에 AI까지 결합돼서 완전 자동화된 핵 전쟁이 언제 발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가고, 거기에 더해서 우크라이나, 대만 이런 데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터질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제일 견디기 힘들 겁니다. 그게 아니라 함부로 영토 할양을 하지 않는 좀 차가운 형태의 군비 통제가 강대국 간에 작동한다면, 그러니까 구 냉전식으로 치면 1950년대 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일어나는 식의 냉전이 아니라 1970년대와 같이 스톡홀름에서 회의도 하고 미중 간 수교도 하는 식의 상황이 왔을 때 우리가 그래도 견딜 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전 70년대 서독 등이 역할을 했던 것처럼 중견국으로서 군비 통제 과정이나 헬싱키 회의 같은 회의들을 우리가 소집하고 역할을 하는 식으로 새로운 냉전을 견뎌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냉전 시대와 요즘 시대를 비교해 볼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 중에 하나는 군비 통제의 유무인 것 같아요. 군비 통제라는 게 이제 거의 실종된 시대를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데, 차 교수님께서 군비 통제의 중요성, 또 그 속에서 한국의 역할이 필요하단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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