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지역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이유 / 윤원섭
기후위기를 지역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이유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그 사업을 왜 하는 거예요. 누가 보겠어요?”
중앙지의 한 기자가 던진 말이었다. 빈정 섞인 말투 속에는 언론 생태계에 대한 회의감이 깊게 배어 있었다. 현장 기자들이 기획 취재를 시도할 여력이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가 말한 사업은 바로 ‘지역언론 기후보도 취재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리영희재단과 녹색전환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했다. 지역언론이 각자의 지역성을 살려 기후보도를 기획·취재할 수 있도록 언론사당 40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후위기란 거대한 담론을 지역언론을 통해 지역의 구체적 문제와 연결하고, 시민의 삶 속에 다가가기 위한 첫 실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가 틀렸다. 나는 이 사업을 하며 지역언론의 중요성을 너무 절실하게 느꼈다.
지역에서 시작된 작지만 단단한 시도
재단과 연구소가 시행한 올해 첫 지역언론 기후보도 취재 지원사업에는 총 5개 언론사가 선정됐다. 언론사당 400만 원. 숫자만 보면 작은 돈이지만, 그 안에는 지역언론이 기후보도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선정된 언론사들의 기획보도 주제는 중앙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고 풍부했다.
먼저 고양신문은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 교통이 답이다’를 주제로, 경기 고양시의 교통 불평등과 탄소배출 구조를 분석했다. 해당 보도를 기획한 남동진 기자는 “올해 상반기 확정된 고양시 탄소중립기본계획 내 수송(교통) 분야 감축목표가 부실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기획을 출발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 부분은 건물과 수송 부문에 집중돼 있다. 고양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2020년 기준 고양시 전체 온실가스 중 수송 분야 비중은 3분의 1 이상. 배출량 역시 전국 평균 대비 약 3배에 달했다.
고양신문은 여러 연구기관이 내놓은 연구 결과물을 기반으로 심층적인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를 통해 문제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동시에 기자들이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직접 이용하며 끊긴 도로와 긴 배차 간격 등 시민들이 겪는 불편을 체감하는 현장 취재를 병행한 것이 눈에 띄었다.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 역시 교통을 주제로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 매체는 ‘경북 청송 무료버스’를 중심으로 교통복지와 탄소감축 효과를 검증했다. 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올해 7월 기준 청송 등 전국 15개 기초지자체에서 전면 무상버스 정책이 시행 중이다. 최근 무상버스는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과 지역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해법으로 주목받으며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뉴스민은 무상버스 정책에 보완 과제가 있다고 봤다. 수송 부문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가용 이용자들 역시 대중교통 이용으로 전환해야 한다. 실제로 무상버스를 통해 탄소배출량이 감축되는 것이 맞는지 모니터링도 돼야 한다. 나아가 지자체는 단순 요금 인하나 무료 정책을 넘어 대중교통 노선·배차·환승·정시성 등 운영 품질을 높여야 한다.
이에 취재진은 청송과 대구 그리고 전남 신안 등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며 비교 취재를 진행했고, 일상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규모를 확인하고 감축계획까지 세울 수 있도록 녹색전환연구소가 개발한 ‘1.5°C 계산기’를 활용해 무상버스 이용자들의 교통 부문 배출량과 감축량을 모두 검증했다.
강원 지역언론인 원주투데이는 ‘폭염 속 어린이 놀이터’를 주제로 기획보도에 나섰다. 원주시는 강원도 내에서도 어린이 인구와 놀이시설이 많은 도시다. 그러나 인구감소의 흐름 속에서 어린이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 가운데 날씨는 계속 더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원주투데이 취재진은 여름 폭염 속 야외 놀이시설의 온도를 직접 측정했다. 현장에 나간 김윤혜 원주투데이 기자는 예상보다 더 뜨거워서 놀랐다고 회고했다. 취재에 함께한 한 어린이는 “친구들과 만나도 놀이터는 너무 뜨거워서 놀지 못하고, 그냥 집에서 핸드폰 게임하는 시간이 많았다”며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친구들과 밖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매체는 기후적응형 놀이터가 전국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봤다. 여기서 기후적응형 놀이터란 폭염 등 변화하는 기후위기에 맞춰 놀이터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놀이터를 단순한 놀이 시설이 아닌, 아이들의 삶과 지역의 놀이 문화를 변화시킬 핵심 시설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김윤혜 기자는 여기에 환경교육과 놀이를 결합해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기후위기를 배우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놓았다.
화성시민신문은 ‘기후변화와 외국인노동자’란 주제를 통해 기후불평등과 주거권 문제를 동시에 조명했다.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루기 위해 시민단체·전문가·당사자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병행하고, 화성시를 비롯한 인근 지자체의 정책 사례를 비교·분석해 취재했다.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기후위기 관점에서 조명하며, 비자 유형·국가별 커뮤니티·고용허가제 등 다양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탐색해 보도물로 풀어냈다.
마지막으로 영등포시대는 ‘산 없는 도시의 기후격차’를 주제로 시작했다가 기획 초점이 영등포 쪽방촌으로 바뀌었는데 쪽방촌의 주거권 문제를 다루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취재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장 내 기온 측정 등이 이루어지고 지역 주민 및 독자들부터도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취재의 어려움, 그리고 배움의 과정
사업은 쉽지 않았다. 모집 시기가 대통령선거 기간과 겹쳐 참여 여건이 제한됐고, 심사위원단이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일부 지역언론의 현실과 괴리가 있었다. 언론사 간의 역량 편차 역시 컸다. 일부는 고급 데이터 저널리즘 기법을 활용했지만, 다른 일부는 주제 설정 단계부터 반복적인 피드백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건 실무자 입장에서의 접근이다.
지역언론 5곳 모두 완성도나 형식에서 차이를 보였으나 공통적으로 기후위기를 지역의 언어로 전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또 설문조사 결과, 사업에 참여한 대다수 언론인들은 지원사업 과정이 귀중한 학습 시간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선정 언론사를 대상으로 열린 기후보도 워크숍에서는 기후정책의 기본 구조, 지역언론의 역할, 데이터 시각화 도구 활용법 등이 다뤄졌다.
참여 기자들은 “대부분의 지역언론에게는 낯선 이야기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제는 기후보도를 기사 아이템이 아닌 관점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이번 지원사업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물은 질문에 김보현 뉴스민 기자는 이같이 회고했다. “그간 기후보도는 주로 현상과 발언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과학적 근거를 검증하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탐색하려는 시도는 시간과 비용의 벽에 가로막히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과 인식을 함께 바꿔나갈 심층보도의 필요성은 분명했고, 이번 기획을 통해 심층보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더 나은 기후보도 위해선 사회 전반 정보 생태계 바뀌어야”
사업이 단순한 지원금 사업으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기후보도를 통해 지역사회가 서로 배우고 연결되는 과정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리영희재단의 김언경 이사는 “이번 사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정건화 위원 역시 “학습과 연대의 구조로 사업이 발전해야 한다”며 “기후보도의 생태계를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사업은 한국 기후저널리즘의 현실과 과제를 동시에 드러냈다. 지역언론의 취재 인력 부족, 짧은 마감 주기, 광고 의존 구조 속에서 기후보도를 지속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기후위기를 자신의 지역문제로 끌어안으려는 기자들의 의지와 열정이 여전히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민이 생긴다. 기후보도는 언론 생태계가 바뀌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사회 전체 미디어 리터러시와 정보 생태계가 바뀌어야 한다. 시민들이 기후위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삶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며, 언론사 내부의 구조적 전환과 새로운 플랫폼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재단과 연구소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본다. ▲언론사 규모별 맞춤형 홍보 및 브리핑 세션 ▲데이터 시각화 교육 ▲자료 및 네트워크 지원 강화 등을 검토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12월 17일(수)에 열릴 ‘2025 기후저널리즘 심포지엄’을 통해 이번 지역언론 기후보도 취재 지원사업의 성과가 더 확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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