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친구 회원의 글(4호) 진영종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7-25 19:57
조회
69


 


재단 친구회원의 글


날카로움과 함께하는 부드러움, 차가움과 함께하는 따뜻함을 지닌 리영희 선생님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영문학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의 스승이시다.


어두운 시대에 빛을 추구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리영희 선생님은 진정한 스승이었다. 그래서 리영희 선생님은 항상 냉철한 이성, 날카로운 지성으로 굽힐 줄 모르는 지식인의 표상이 되어왔다. 물론 맞는 말이다. 리영희 선생님의 이미지는 차가움, 냉철함, 앞서 나가는 사람 등과 같이 외로움, 고독함, 날카로움과 연관되어 우리 사회에 각인되어왔다. 나는 이 자리에서 리영희 선생님의 이미지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날카로움과 함께하는 부드러움, 차가움과 함께하는 따뜻함을 리영희 선생님은 간직하고 계셨다. 두 가지 예를 들겠다.


냉철한 지식인은 흔히 목적지향적으로 하나의 방향을 추구하고 나머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주인공에 관심이 있고, 주변인물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리영희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리영희 선생님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창비문화>1995년 3-4월호 "쉬운 문학,아쉬운 정신" - 자세히 보기). 당시 한국 사회에는 이 소설의 완역판이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축약 번역판을 읽었을 시절이다. 그러고는 프랑스혁명과 장발장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리영희 선생님은 형사 자베르에 관하여 주목하였다.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장발장을 추적하는 자베르에 관하여 비판하지 않았다. 자기가 맡은 바 임무를 그렇게 충실하게 하는 사람이 있냐고 되물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장발장을 추적하면서 권력의 부패와 사회의 부조리를 깨달은 자베르의 고민을 이야기하였다. 과연 자베르는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자살을 택한다. 자신의 임무가 틀렸음을 깨닫지만 떨쳐버리지 못하고, 또 혁명의 길로 들어서지도 못하는 자베르는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다. 그 당시 자베르의 비극적인 죽음의 의미에 주목한 지식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리영희 선생님은 자베르의 삶의 딜레마에 주목한 것이다. 체제 진영의 이쪽 저쪽이 아닌 개인의 처지와 생각을 주시한 리영희 선생님은 일찍이 이런 삶의 모습을 읽어냈다. 이것은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을 볼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리영희 선생님은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다.



2000년에는 총선거가 있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총선시민연대를 꾸려서 자격 없는 후보의 낙천낙선 운동을 벌여서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 이때 낙천낙선의 기준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국가보안법이었다. 나는 당시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으로 선생님과 회의를 한 적이 있다. 한쪽에서는 후보들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을 낙천낙선 기준에 넣자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반대하여 쉽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때 회의에서 리영희 선생님이 발언하였다. “난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사람이오.” 정보당국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은 이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도 있으니, 기준에서 제외합시다. 모두 공감하는 기준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니갓소.” 그렇게 하여 국가보안법은 기준에서 제외되었다. 국가보안법으로 누구보다 고통받았고 그 본질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국가보안법을 기준에서 제외하자는 말씀에 모두 놀랐다. 이처럼 리영희 선생님은 하나의 주장을 위해 다른 관점과 목소리와 관점들을 무시하지 않고, 최대한 감싸안으려는 자세를 가진 분이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 즉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선생님의 자세는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따뜻하게 이웃을 감싸는 인간적인 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우리는 안국동 막걸릿집에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막걸레’를 함께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


나는 리영희 선생님의 냉철함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냉철함이 선생님의 따뜻한 인간적 모습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냉철함과 따뜻함을 함께 갖추신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의 스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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