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논리』 발간 50주년 기념 토론회 인사말 / 백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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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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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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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전환시대의 논리』 발간 50주년 기념 토론회 인사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인사말이라고 해서 『전환시대의 논리』가 간행되던 당시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 저에 대한 주문인데, 김효순 이사장께서는 제 기억력이 그야말로 초롱초롱하게 살아 있다고 그러셨지만 그것은 일종의 가짜뉴스고요(청중 웃음). 제가 지금 기억나는 것은 책 내고 나서 ‘호수그릴’(레스토랑)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는 것 외에는 그때 누가 오셨는지 별로 기억이 없습니다. 김이사장님께서 언론인답게 자료를 다 들춰보고 확인해주시니까 저도 일부 기억이 새로워지기도 합니다.


저희가 『창작과비평』이라는 잡지를 시작한 것은 1966년인데 그때는 잡지만 내고 출판을 안 했습니다. 그러다가 74년에 비로소 출판등록을 하고 창비신서라는 걸 내기 시작했죠. 창비신서 1호가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현대편』이고 둘째권이 방영웅 소설집, 셋째권이 황석영의 『객지』였는데 황석영씨가 원고 준비가 잘돼 있어가지고 그 책이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그래서 세권을 그렇게 내고 나서 리영희 선생 책을 한권 내자고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그때 논객으로서, 지식인으로서 한창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알려져 있었지요. 그래서 선생님 글을 모아서 내자고 그랬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리영희 선생이 굉장히 겸손하신 분이에요. 아 내 글, 그런 걸 지금 모아 내면 팔리겠냐, 누가 읽겠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틀림없이 팔리고 많이 팔릴 겁니다 하고 그때 질렀는데 제 말이 딱 맞았어요.


제 말이 딱 맞아서 굉장한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 알려진 얘기지만 특히 학생들 간에, 뜻있는 학생들이 전부 그 책을 읽고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지요. 그때 학생운동 하는 친구들 집을 경찰에서 덮쳐서 수색을 해보면 집집마다 이 책이 나오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게 무슨 책인지 몰랐어요. 그리고 지금 보면 박정희 시대가 엄혹하긴 했지만 출판에 대한 통제는 좀 약했습니다. 나중에 자기들이 그걸 반성하고(청중 웃음) 전두환 시대에 가서는 더 엄격해졌는데, 그래서 백영서 교수나 유홍준 교수 등 여러 사람이 옥중에서 이 책을 받아 읽었다 그러는데, 그때 민청학련사건이 나서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그게 특별히 교도관들이 몰래 갖다준 게 아닐 거예요. (청중석: 집에서 보내줬어요) 그렇게 정상적으로 반입돼서 정상적으로 읽고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개안의 경험을 했는데. 당국에서는 그야말로 점진적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야 참 큰 문제가 하나 있구나, 리영희라는 인간이 있어서 지금 문제학생들을 전부 이렇게 오도하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을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는 이 사람을 한번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유신 끝날 때까지 전혀 건드리지 않았어요.


리영희 선생이 언론기사가 아닌 저술작업으로 걸리신 것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창비에서 77년에 『8억인과의 대화』라는 책이 나왔고 거의 동시에 한길사에서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우상과 이성』은 말하자면 『전환시대』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글모음인데, 『8억인과의 대화』는 그때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주로 서양의 지식인, 학자, 외교관 이런 사람들이 중국을 방문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글들을 리영희 선생님이 엮어서 번역하신 겁니다. 1977년에 그 두권이 정식으로 문제가 되어서 재판을 받고 결국 리영희 선생은 그걸로 실형을 2년 사셨고 저는 1심에서 실형을 받았습니다만 법정구속은 안되었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기 때문에 옥살이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8억인과의 대화』에서 말하자면 리영희 선생이 그 당시에 중국 당국에서 발표하는 또는 중국에서 초청한 사람들이 중국 당국에서 보여주는 걸 주로 보고 와서 쓴 글들을 모아서 번역하셨기 때문에 문화대혁명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을 그 후에 많이 받으셨고 리영희 선생 스스로 그때 자기는 참 충분히 전체를 볼 만한 정보도 없었고 철학적ㆍ역사적 식견도 부족했다고 공개적인 발언을 하고 반성을 하셨어요. 지금 『전환시대의 논리』 50주년을 맞아서 『전환시대의 논리』 발간 당시의 생각도 많이 나지만, 저는 또 『8억인과의 대화』 때문에 선생님과 함께 재판을 받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8억인과의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다시 읽어보지는 못했고요.


저는 리영희 선생 스스로 그런 성찰을 하고 반성을 하셨으니까 그걸 괜한 반성을 하셨다고 말할 생각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 책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되풀이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성찰해볼 것 중의 하나는 『8억인과의 대화』를 그 당시에도 그렇지만 그 후에 문화대혁명의 실상이 더 밝혀지고 하면서 아주 잘못된 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것도 한번 우리가 검토해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전환시대의 논리』는 주로 미국의 주류 언론인, 자유주의적인 주류 언론에서 한 얘기를 자료로 삼아가지고 선생 특유의 방식으로 그 디테일을 샅샅이 뒤져서 서로 상충하는 대목도 찾아내고 지나가는 말처럼 숨겨져 있는 엄청난 진실을 끄집어내고 그래서 베트남전쟁이라든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적대정책이라든가 또 우리 국내 실정에 대해서 쓰신 글이지요. 어떻게 보면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고 봐요. 그러나 제가 아는 리영희 선생은 그런 주류 자유주의 언론인들의 언설을 이용해가지고 진실을 밝히는 게 목적이었지 그런 주류문화에 동조하신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정확한 내용을 모르기는 하지만 지금 엄청난 변화가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걸 실감하시고 거기서 뭔가 새로운 길을 우리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분 특유의 방법이라고 하면 당신이 문화대혁명을 직접 긍정하거나 하는 것보다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주류 지식인들이 중국 가서 보고 온 얘기를 뽑아서 소개하는 그런 방식을 택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게 번역이다보니까 첫째, 백승욱 교수가 ‘공학도적인 글쓰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공학도적인 글쓰기를 하실 공간은 없었어요. 그냥 번역을 하는 거지. 그런데 소위 자유민주주의 세상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어떤 세계에 대한 당신의 갈망이 투영이 돼서 당시 사건에 대한 판단이 부정확했던 건 본인도 인정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분이 그런 과오를 인정했다고 해서 그야말로 옳다구나 하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은 완전히 틀린 일이었다든가 리영희 선생이 그때 정말 완전히 착각을 하고 실수하셨다 이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지 않나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가 문화대혁명에 대한 저의 생각을 길게 얘기할 자리는 아닙니다만, 리영희 선생 스스로 당신이 그때 과학적으로 이걸 보는 게 부족했다고 그러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문화대혁명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해석을 제시한 분은 중국사람 중에 원톄쥔이라고 있죠, 한국식 발음으로는 온철군(溫鐵軍). 그분은 중국이 근대화하고 중국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는 게 소위 본원축적의 과정을 거쳐서 자본주의가 성립하는데 대개는 식민지를 수탈하거나 또는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거나 그래야 되는데, 중국은 그 길이 다 막혀 있었어요. 그런데도 워낙 인구도 많고 농민들의 노동력도 풍부하고 한 상태에서 그것을 동원하는 기제가 문화대혁명이었고 사회주의 이념이었다고 해석했어요. 저는 그것이 가장 방불하고 과학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리영희 선생은 그런 과학적인 해석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런 해석에 따라 돌이켜보면 리영희 선생도 그런 중국의 발전을, 대전환을 가능케 해준 이상주의를 상당히 공유하고 계셨고 우리가 그것을 우리 나름으로 전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사실 저는 이상주의라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상주의하고, 우리가 꿈을 갖고 사는 것은 구별해야 된다고 보거든요. 꿈은 몸으로 꾸는 것이고 이상은 우리가 머리로 만들어내는 거기 때문에, 그 몸에 충실해야지 이상주의에 치우치는 것은 항상 과오의 또는 환멸의 위험이 따른다고 봅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역사의 과정을 더 과학적으로 인식하면서 어떻게 이상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꿈을 꾸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갈까 그런 공부가 지금 중요할 때라고 생각하고요.


오늘 이 모임의 제목이 ‘다시, 전환시대를 맞으며’라고 되어 있는데 저는 이 제목이 이중으로 적절한 것 같아요. 하나는 지금이야말로, 사실은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를 내실 때만 해도 격변의 시대고 전환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더 중요한 대전환의 시대라고 보기 때문에 그 점에서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리영희 선생은 앞으로는 이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이 필요 없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도 여전히 필요하거니와 특히 리영희 선생 같은 분이 오늘의 전환시대를 살면서 시대의 진실을 밝혀주는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는 이중적으로 적절한 제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와주신 모든 분들께 환영 말씀을 드리고, 오늘 수고하실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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