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제복과 유행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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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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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제복과 유행의 사상」(1976년, 우상)


 


 


한 가지 복장의 여학생


 


자기가 남성이다 보니 여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별로 부끄러워할 일은 아닐 것 같다. 최근의 국제 조사 결과나 서울 특별시의 인구동향 같은 공식 발표에도 나타나듯이 인구의 반을 약간 넘은 수를 여자가 차지하고 있으니, 눈을 뜨고 하루의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피로에 지쳐서 잠자는 순간까지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것도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이다. 이제 나이도 사십을 몇 해쯤 넘고 보니, 학생시절처럼 뭇 여성이 선녀나 여신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관심이 끌린다는 사실에는 큰 변화가 없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도학자연한다고도 할지 모르지만, 얼마나 되었을까, 하여간 이 즈음에는 여자를 성적(性的)인 심미(審美)의 각도에서보다 그 사회적 관계에서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어차피 단테와는 처음부터 딴별을 타고났으니 뭇 여성을 베아트리체처럼 사랑할 자격은 없다. 여자를 볼 때 그 아름다움의 예술성과 같은 것의 뒤에 보이는 사회관계나 시대정신 같은 것을 생각하는 남성은 영원히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난 몇 달 동안은 직장을 바꾼 탓에 비교적 이른 아침에 출근길을 나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여성은 여학생이다. 아무런 화장도 인공적 조작도 하지 않고 대체로 조물주와 부모가 이어준 그대로의 용모를 보여주는 여성이다.


해방 전, 남의 나라의 치하에서지만 같은 나이 또래의 여학생이 여신처럼만 보이던 시절의 여학생들은 저렇게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고작해야 책과 노트 몇 권에 도시락 정도의 가벼운 짐이었으니까 요새처럼 도서관이라도 차릴 것 같은 책가방의 중량 때문에 척추가 한쪽으로 굽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문자 그대로 트렁크만한 책가방을 힘겹게 운반하고 있는 여학생들을 볼 때마다 무슨 공부를 저렇게도 많이 가르치는 것일까를 가끔 생각하게 된다. 공부하는 것의 실효성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많은 양의 지식을 필사적으로 암기하고 난 우리나라 여학생들의 진정한 여성해방 의식이나 여성다운 덕성이 얼마나 풍요해지고 높아졌는가를 생각해서다(이것은 바로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자 중고등학생들의 그 획일적인 복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사회의 모든 여학생이 한 가지 모양과 한 색채의 제복(制服)을 입어야 한다는 발상은 획일적인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제복의 사상’이라 부르고 싶다. 최근에는 이 지나친 ‘제복화’에 대해서 몇몇 학교가 색채와 디자인에서 다소의 ‘수정주의’를 보여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일정한 큰 규격 속에서의 변형이지, 그 학교 전체로서는 역시 제복임이 틀림없다.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나 특수한 복장이라는 것은 그 사회 그 시대의 특수한 관념을 반영해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오늘날 군대와 경찰을 제외하고 여학생에게 제복을 강요하는 나라가 몇이나 되는 지 궁금하다. 그리고 만약 있다면 그 나라의 지배적 사상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 모르긴 하지만 민중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민주주의의 정신으로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획일적 사상이란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개인의 인격을 부정하는 것으로 위험시할 줄 아는 국가나 사회에서는 어린 여학생에게까지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제복을 강요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남자 중고등학생들이 검은 단일색의 제복과 제모차림으로 떼를 지어 가는 것을 볼 때, 나는 숨막힐 것만 같은 압박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더구나 어린 중학생들이 이런 제복 차림으로 ‘거수경례’를 하는 것을 볼 때, 그 어린것이 학생이 아니라 군인이나 경관같이만 느껴져서 언짢아진다. 어째서 반갑게 웃으면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라든가 아니면 말없이 그저 고개를 숙여서 경의와 애정을 표시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웃다 말고 입술을 깨물고 눈살을 부릅뜨고 ‘직립부동’의 자세로 경의를 표해야만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교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강요된 경의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권위에 대한 자발적인 경의를 표시하는 형식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획일적 ‘사상’이 획일적 ‘형식’을 통해서 획일적인 ‘권위’에 대해서 획일적으로 ‘강요’되는 동작이 아닐까 싶다. ‘경례를 안 하면 처벌한다’는 규칙에 얽매인 경례일랑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하는 쪽과 받는 쪽의 사이에 새로운 ‘자연스러운’존경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남녀 학생의 제복화를 정당화하는 이론 가운데 자유스러운 복장보다 제복값이 싸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양복지의 제복이 4,5천 원이라는 사실과, 흔히는 계절마다 두 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요사이 대량생산으로 값싸고 다양하면서 개성도 살릴 수 있는 옷이 안 된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언젠가 지난 입학기에, 중학교에는 추천으로 입학했으나 집이 가난해서 교복을 사지 못한 여학생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만약 제복이 아니라 요새 그 흔한 값싼 옷으로 등교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대체로 제복이란 군대나 경찰처럼 계급질서 사회의 외형적 표시이다. 본래의 발상이 그러하다. 그 사회는 개인적 사고와 사상 및 행동의 자유보다 전체의 그것을 선행시키는 질서를 요구한다. 말하자면 ‘제복의 사상’이다. 그리고 그 전체라는 이름의 사상이나 명령은 그 집단의 상관의 의사 표시다. 궁극적으로 집단을 지배하는 세력이나 개인의 의사와 사상을 그 집단의 구성분자에게 집단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제복 값의 문제보다도 ‘제복주의’가 오랜 시일을 두고 시민의 자유스러워야 할 사상적ㆍ인격적 발전을 제약하게 되는 인간적ㆍ사회적ㆍ국가적 해독의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벌써 제복을 벗겼어야


 


제복과 대열의 여성에게도 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그 자체로서 미의 구현이므로 어느 곳 어떤 환경에 있건 본래적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로테스크한 것이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경제적이라는 이유가 제복을 정당화했던 해방 후의 조건은 해소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정부가 주장하듯이 그리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분명히 느끼듯이, 대량생산으로 인한 옷을 가지고 학생들을 제복의 획일화에서 해방시켜야 할 때가 지난 지도 이미 오래인것 같다. 획일적인 제복은 획일적인 사고와 생활습관을 요구하고 또 결과하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 감수성이 가장 강렬한 시기를 보내는 남녀 학생들이 머지않은 훗날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도 그들은 역시 제복의 사상을 그 아들 딸에게 허용하거나 강요하는 오늘의 순환을 되풀이할 것만 같다.


「페이톤 플레이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미국의 한 남부 마을에서 부락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 쫓겨났던 한 젊은 남녀가 몇 해 후에 사필귀정으로 오해가 풀려서 돌아오게 된다. 부락 주민들은 교회에 모여 남부사회의 전통적인 직접민주주의의 관례에 따라 추방을 결정했던 과거의 부락투표를 번복하고 두 젊은이를 환영하자는 주민투표를 한다. 모든 표가 찬성인데 단 하나의 반대표가 나왔다. 놀라움과 의혹으로 술렁이는 주민들 앞에 나온 반대표의 주인공은 바로 청년의 아저씨였다. 그는 “나는 만장일치라는 획일주의를 싫어해. 반대가 없는 사회란 살맛이 없어”라고 외치고는 큰소리로 통쾌하게 웃는다. 표결 결과에 따라 장내로 인도되어 들어온 청년과 아저씨는 뜨거운 포옹으로 서로 기뻐한다. 장내의 모든 주민이 박수와 갈채를 보낸다. 얼마나 멋지고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인가.


형식의 획일주의는 사상의 획일주의의 외적 반영이므로 형식적획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이견ㆍ비판ㆍ반대가 용납되지 않는다. 한 가지로만 생각하고 한 동작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지배자에게 민중을 예속시키는 사회정신이 생겨날 위험성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나치 독일, 파쇼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 등지에서 신물이 나도록 목격한 바 있다.


획일주의는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사상이다. 그것은 한 사회, 한 국가, 한 민족의 생활의 종합적 활동인 정치에서 국민의 폭넓은 사상과 시민의 비판력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정치적 비판력을 봉쇄하려는 세력은 반드시 어떤 구호 밑에 민중을 획일주의로 얽어맸던 사실을 역사는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지배하에서 살아온 40대 이상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교복이라는 이름의 제복이 어떤 뜻을 갖는가를 스스로의 체험에서 새삼 생각하게 된다.


반면 출퇴근길이나 길거리에서 보는 여성들의 복장에서 이 사회의 민주주의의 한 측면을 느낀다.적어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성에게서는 외견상 남자에게 예속된 여성이나 계급적 제약에 얽매인 여성은 찾아볼 수 없다. 형식적으로는 평등화된 생활 형태를 반영해 복장에서 빈ㆍ부의 별 큰 차이나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찾아볼 수 없다. 옛날처럼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에게는 금지되었거나 일정한 표지로 인간을 차별하는 방법이 없어진 것만도 큰 진보라 하겠다. 남자와 여자가 무리를 짓는 직장이나 버스 속에서도 이 민족의 해방은 여성의 해방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어느 한 사람이 입어서 보기 좋으면 누구나 입어서 무방하게 되었으니 모두가 복장에서 어떤 특정 권위를 인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것으로 누구나 전체의 일부가 되고 전체에 속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전체와의 연대감이 부지중에 형성된 것은 기쁜 일이다.


 


의상의 국제성이란 무엇인가


 


의상의 국제성은 한복에서뿐 아니라, 오히려 양장에서 더욱 그러하다. 뉴욕 여성계에서 유행하는 구두 양식과 파리의 최신 패션이 다음날에는 그대로 명동의 양장점과 구둣방에 전시되게 되었다. 한마디로 한국 여성의 의상은 국민적이거나 민족적이기에 앞서서 국제적이 되었다. 이것이 자랑할 일인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지, 고민에 가까운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작년 가을, 남ㆍ북 적십자회담의 현장을 취재한 신문기사에서 남ㆍ북의 여기자가 대화하는 장면을 읽은 기억이 있다. 어느 신문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꽤 자상하게 묘사한 기사 가운데, 우리측 여기자의 옷을 보고 “뉴욕에서 온 것 같군요. 조선(한국) 사람 같지 않군요”라고 말하는 북쪽 여기자의 말을 읽으면서 어쩐지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것을 느꼈다. 마치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이 나라를 평해 “승용차가 많군요. 뉴욕 같군요”라는 말을 들을 때와 같은 착잡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 취재기자가 그 기사에서 우리 여성의 옷차림의 세련됨과 고급 양장 디자인을 우쭐해서 자랑하는 데는 충분히 수긍이 갔지만 그것은 그 기자 개인의 문제이기보다 사회적 문제인 듯싶었다.


그래서 유명한 역사학자 에두아르트 푹스의『풍속의 역사』를 뒤져보았더니 과연 그렇구나 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모드라는 것은 개인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지니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그 본질을 이해하려 한다면 모드의 사회적 동기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사회의 높은 계급이나 계층이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에게서 자기를 구별하려는 노력이다. 자기보다 하층의 계급과 혼동되는 위험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여성의 모드는 자기와 같은 것을 따르는 하층 여성의 모드를 파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고안되는 하나의 계층적 제안이다.


말하자면 계층적ㆍ신분적 허영심의 경주인 것이다. 그것은 한쪽에서는 조금이라도 앞섬으로써 자기와 자기에 대한 경쟁자를 구별하려는 노력이고, 딴 쪽에서는 새로운 모드로 상대방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요새의 여성 복장은 확실히 일반적으로는 과거와 같은 사치성은 줄어든 듯하다. 아마도 ‘놀고 먹는 여성’이 줄어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양이 눈알보다도 더 빠르게 변화하는 그 여성모드의 유행은 ‘돈 있는 자와 가난한 자’의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이용될 뿐 아니라, 맹목적인 유행 기풍은 재산상(돈)의 능력 없는 여성에게 굴욕감을 자아내게 마련일 것 같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실제로 월급 6,000원의 여직공에게 6,000원의 옷과 구두와 장식품을 사도록 강요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숨김 없는 현실이다.


나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처럼 살기에 힘겨운 여성은 세상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끔 갖게 된다. 하는 일이 고되거나 가난하다는 뜻에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명동이나 종로 네거리에 서서 젊은 여성들의 유행이 바뀌는 속도에 현기증이 날 때 느끼는 기분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구의 스커트가 짧은가를 다투던 여성들이, 어느 나라에선가 선보였다는 신문의 해외토픽 기사가 나오자, 하룻밤 사이에 땅을 질질 끄는 ‘맥시’라는 것으로 스커트의 길이를 다투고 나온다. 하루 늦은 ‘비국제파’는 그 길로 양장점으로 달려가고 돈 없는 여성은 무슨 수를 내어서라도 그 다음날에는 ‘맥시’를 입고 나와야 한다. 사흘 뒤에도 미니를 걸치고 나오면 ‘돈 없는 여자’로 취급되거나 ‘세련되지 못한 여자’로 낙인이 찍히게 되거나 하니, 바쁘다.


이런 풍조 탓인지 작년 겨울에는 온통 맥시 오버가 장안 거리를 누비는 것을 보게 되었다. 스케이트 장수, 내의 장수, 연탄장수가 망했다는 60년 만의 더운 겨울이라는데 그 소련군 여장교의 외투보다도 긴 오버를 끌고 다니는 풍경은 단연 가관이었다. 여자의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여자는 언제나 신비로운지도 모른다.


그 전해 겨울은, 그것은 또 무슨 몇십 년 만의 추운 겨울이라는 데 미니 스커트보다도 짧은 오버코트가 유행했으니 말이다. 미를 과시하려는 여성의 욕망은 맥시 오버 속에서 땀으로 목욕을 하는 정도나 미니 오버로 독감을 앓는 것쯤은 도시 문제가 아닌 성싶다.


불쌍한 월남 농민이 수우(水牛) 가죽을 벗겨서 만든 수우 가죽 점퍼 하나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다음날은 수우 가죽 코트여야 하고, 수출품 검사에서 폐기처분된 가발이라도 무슨 배우가 썼다 하면 모두가 가발을 써야 미인 행세를 하게 된다.


 


미인대회에 비친 우울


 


그전에는 매니큐어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쌀 일고 빨래 문지르는 동안에 한쪽으로 닳아져서 살과 손톱 사이에 핏색이 드러나 있는 집사람의 손톱을 본 다음부터 매니큐어한 손톱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소련의 문화상은 여자다. 이 여문화상이 몇 해 전 일본을 방문한 일이 있다. 일본 신문기자들은 공산주의자도 매니큐어를 하는가고 물었다. 소련 문화상은 “공산주의라고 여자가 미를 모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매니큐어를 미로 취급한다면 손톱이 자랄 사이도 없이 닳아져버리는 일하는 여성은 아무 곳에서도 구제될 수 없는가 보다. 그러니 패션쇼니, 무슨 신문사가 신문 장사를 위해 벌이는 ‘미스 코리아’대회가 시골 밭갈이 처녀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을 수밖에. 눈약 장수가 후원하는 ‘미스 눈’인가 하는 미인대회를 위해서 들뜬 여성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눈까풀을 만지작거려야 한다.


미인대회라는 것은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동경의 대상이겠다. 그 상품과 선전도 적지 않거니와 은가마에 올라타게 된다는 희망인들 오죽하랴. 그런데도 텔레비전에다 신문, 잡지가 덩덜아 떠들어대는 미인대회라는 것을 볼 때마다 오히려 우울해지니 딱한 일이다. 소위 ‘교양미’라는 것까지도 아울러 심사한다고 하니, 자기의 후천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노력 없는 일이 무슨 영광이냐는 말은 좀 지나치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많은 기준에 들기 위해서는 모든 여성이 다 가능하다 해도 한 가지 절대로 자격이 없는 여성이 있다. 생산하는 여성이다. 노동하는 여성이다. 마음과 정신보다는, 육체를 가꾸기 위해서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화장품을 갖추어야 하고, 티끌만한 상처 하나 없는 비단결 같은 피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생산하는 여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오직 소비하는 여자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이다. 선천적으로는 그런 신체적 조건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후천적으로 그럴 수 없는 여자의 경우, 그것은 그 여성 자신의 죄가 아니라, 놀고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을 해도 미인대회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야 하는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많은 여성이 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이 사회제도의 책임이 아닐까. 그래서 여성의 미를 찬양한다는 미인대회란 무슨 뜻이 있는 것이냐를 늘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에서도 5월이면 미인을 뽑는다는 ‘메이 퀸’인지 뭔지 하는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명분이야 무엇이든 실제적으로는 그러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미스코리아’예선에 나가는 기분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 많은 ‘영광의 미인’들이 얼마 안 가서 황색 주간지에 추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무슨 호텔의 7층에서 떨어져 죽고, 얼굴에 빙초산 세례를 받았다는 등의 신문기사를 볼때, 나는 비로소 찾고 있던 뜻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더욱 우울해지기도 한다. 근로하는 여성, 생산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영광을 주는 대회는 왜 없을까 하고.


이와 같은 여성 유행은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남자를 포함해서,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남성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권력을 쥔 것은 남자였다. 계급의 주인도 남자였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을 착취해서 토지와 돈을 소유한 것도 남자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성들의 상식이 되어 있는 양장의 복장과 화장과 액세서리는 그 세련되고 완성된 형식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프랑스의 전체주의 시대에 이르게 된다. 반드시 루이 14세를 지적할 필요도 없이 그 시대의 유럽은 군주와 제후들을 중심으로 지배계급이 귀족사회를 형성해 민중의 빈곤은 아랑곳없이, 오히려 민중의 피와 땀을 짜낸 재화로 방탕ㆍ사치ㆍ부패ㆍ타락ㆍ음탕의 극을 이룬 생활을 하고 있던 때다. 이들 귀족, 장군, 고급 승려, 그리고 자본주의의 부흥기에 접어든 신흥 상업, 생산업을 지배하는 봉건귀족들의 낭비생활은 그들 주변에 떼를 지어 모이는 ‘귀부인’들과의 방탕으로 밤낮을 지새우는 것이었다. 하층계급에서 빨아 올린 재화를 물쓰듯이 뿌리는 음탕한 귀족들은 향락을 찾아서 모여드는 고급 창녀화한 ‘귀부인’들의 복장과 액세서리의 유행을 자극했다. 그러기에 여성의 미의 이상이라는 것도 옷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옷에 집중되었다. 이 때부터 옷이 없이는 여성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옷은 바로 사람(여성)이 되었다. 말하자면 방탕한 귀족의 애총 속에서 향락을 지속하기 위해서 ‘귀부인’들은 언제나 귀족들의 성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재주가 필요했다.


그 필요성은 복장과 액세서리의 끊임없는 변형과 유행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귀족, 지배계급의 ‘성의 애완물’이 된 ‘귀부인’들의 두뇌에서 오늘의 우리가 보는 모든 유행이 고안되어 나온다. 머리를 장식하는 가발도 이때 고안된 것이지만, 푹스의『풍속의 역사』에 의할 것 같으면 그 높이가 3엘레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1엘레가 약 60센티미터니 1미터 80센티미터의 가발을 쓰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단숨에 그렇게 높아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유행의 변천과 ‘발전’의 결과였다. 더 권세 많은 귀족과 더 돈 많은 탕아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 변화무쌍하게 변모하는 가발에는 온갖 장식이 가해졌다. 어느 여성이 더 빨리 그리고 더 희한하게 이것을 꾸미는가가 그들 사이의 필사적인 경쟁이 되었다.


머리의 장식과 대응하는 것으로 긴 치맛자락이 고안되었다. 가발의 장식 경쟁으로 결정된 관등의 상하에 따라 치맛자락도 12미터 내지 13미터의 길이가 되었다.


 


성적 자극의 경쟁


 


하이힐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복장 중의 한 가지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귀부인’들이 발명한 가장 혁명적인 성공이다. 가발과 치마 길이로 경쟁하던 그들은 다음에는 자기들의 육체를 어떻게 하면 가장 성적으로 보이게끔 할 수 있는가에 머리를 짠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하이힐을 발명했다. 하이힐은 그들 ‘고급 매춘부’들의 몸매를 전체적으로 바꾸어버렸다. 즉 배가 들어가고 가슴이 나오게 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히 그런 성적 자극이 강한 몸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몸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연히 엉덩이가 튀어나올 뿐 아니라 그 곡선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무릎을 굽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전체 자세는 훨씬 젊고 반듯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 앞 자세로 말미암아 유방은 터질 듯이 드러난다. 이 모든 자세는 ‘적극성’을 풍기게 되는데, 그것은 몸의 여러 부분 가운데서도 유방을 가장 도발적으로 나타내 보이게 한다.


그들은 이 자세로 남자의 앞에 섬으로써 “자, 내가 제일 예쁘지요. 거기는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이고 당신에게 특별히 보여드리고 싶은 곳이에요. 그것은 당신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환상에 그리는 곳이지요. 다 알고 있어요. 자, 마음껏 보세요”라는 말을 말없이 할 수가 있었다.


이 효과 때문에 하이힐의 높이 경쟁이 시작되었다. 뒤축의 높이는 마지막에는 22 내지 15췌르에 달했다고 한다. 1췌르는 엄지손가락의 너비 정도였다니까 발끝으로 서 있는 자세였다고 생각하면 전체의 몸매와 앞가슴의 도발적인 모양을 상상할 수 있겠다.(하기는 하이힐이 이처럼 높아진 데는 이중의 목적과 용도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에는 루이 14세의 궁중에도 변소시설이 없었을 때이기 때문에, 파리 시민은 요강 같은 것에 일을 본 뒤에 그것을 한길에 마구 버렸다고 한다. 비가 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갠 날도 앞뒷집에서 버린 오물 때문에 뒤축으로 걸어 다녀야 했다는 설이다.)


다음은 데콜테가 출현할 판이다. 유럽에서는 그보다 앞서는 르네상스시대에는 ‘귀부인’이나 서민이나 할 것 없이 여성은 유방을 통째로 드러내놓고 살았다고 한다. 마치 손이나 얼굴을 가리지 않은 것처럼 유방도 별로 가리지 않았다. 그 당시의 여성 복장은 차라리 ‘나체의 장식품’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루이 14세의 동시대인 전제정치시대에 와서는 ‘노출된 유방’, 말하자면 일부분을 살짝 가린 듯하면서 대부분을 드러내 보이는 더욱 세련된 디자인이 고안되었다. 노출된 유방보다도 훨씬 관능적인 도발을 위해서 여성의 복장은 앞가슴을 이리 파고 저리 넓히고, 아래로 조이고 위를 벌리는 식으로, 온갖 방법이 유행했다.


이 관능적 도발을 더욱 고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다음에는 코르셋이 여성의 머리에서 발명될 순서가 되었다. 딱딱한 고래뼈로 만든 것으로 허리 위를 졸라맴으로써 유방은 “마치 육욕의 흥분 상태에 있는 것처럼 비쳤다”고 어떤 책에는 묘사되었다. 이제 비로소 여성의 유방은 매달린 형태가 아니라 ‘서 있는 형태’의 최고의 관능적 미를 찾게 된 셈이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다. 하여간, 그 후 오늘날까지 약 200년 동안 귀족, 지배계급의 ‘애완물’로서의 궁중 ‘귀부인’들이 발명한 여성의 복장은 서민들에게 퍼지고, 하층 서민들이 채택하면 이제는 귀족이 사라진 상층계급의 여성이 새로운 유행을 발명함으로써 정치ㆍ경제ㆍ사회적 구분을 과시하기 위한 경쟁이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뚜렷한 공통된 특징은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나 인격(간)적으로 예속되는 도가 높을수록 그 여성이 육체의 일부분을 더 많이 드러내 보이려는 노력이 유행했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시대일수록 여성 복장의 시대적 유행도 그러했다는 사실이 양장의 풍속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이 상용하게 된 양장은 결코 ‘남성의 예속물’시대의 그 기원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그러면서도 유행의 역사는 여성의 고유의 미를 위해서보다 남성의 애총을 위해서 경쟁하는 여성의 노력의 표현이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좋은 뜻에서건 나쁜 뜻에서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된 육체밖에 가진 것이 없는 여성에게 남성이 요구한 결과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제도로서나 개인의 경제ㆍ정치ㆍ사회ㆍ문화적 측면에서나 여성이 남성의 예속에서 진정으로 해방된 사회에서는 여성이 육체를 드러내 보이려는 경쟁적 유행이나 하이힐을 반드시 신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그만큼 적다고 할수 있겠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회일수록,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렇지 못한 여성일수록 노출과 장식과 하이힐의 유행적 풍조에 뒤지지 않으려는 의욕과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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