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겨울 공화국'을 낭독하며 '자유'를 말하다/ '대화' 출판기념회 강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15 19:03
조회
1448
금요일 저녁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한창 만발하고 남쪽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는 주말을 놀러가야 할 시간에 이렇게 별로 도움도 안 될 얘기를 들으려고 오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난 사실은 주최 측에서 강연회를 금요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400석을 잡았다 길래 좀 나무랐습니다. 왜 400석을 잡냐? 200석도 빌 거라고. 금요일 저녁에 누가 내말 들으려고 오겠냐고 내가 탤런트도 야구선수도 아닌데 예상보다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이런 책을 쓰게 된 거냐하면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 왔는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세상의 부러운 것이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한 가지가 글도 잘 쓰면서 말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약간의 사상을 가지고 있고 그 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데 말을 하는 것은 늘 두렵습니다.

지금의 나의 이야기도 멋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장 폴 사르트르의 ‘겨울공화국’이라는 짧은 글을 읽겠습니다.
(사르트르의 "La R'epublique du silence")
1942년부터 1945년까지 3년 2개월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와 평등의 상징적인 프랑스 국민들이 포악하고 야만적인 히틀러 나치에 지배를 받을 때 그 시달림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빼앗길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어떤 심정이었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자유란 어떤 것인가를 쓴 겁니다.

(책을 들고)
우리들은 독일에 점령 하에 있을 때처럼 자유로운 때가 없었다. (굉장히 역설적이죠?)
우리들은 온갖 권리를 상실하고 무엇보다도 말할 권리를 상실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마디의 반론도 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노동자로서 유태인으로서 전쟁의 포로로서 대량적으로 강제 연행을 당하였다..
벽에,신문에, 스크린에, 온갖 곳에 억압자에 의해서 덧씌워진 우리 자신의 더러운 얼굴들,생기없는 얼굴을 바라봐야 했다.
이런 모든 이유들로 하여 우리들은 자유였던 것이다.(굉장히 역설적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억압과 억압자의 독액(毒液)이 우리의 뇌와 사고의 골수까지 빠져들었을 때 그 독액을 품고서 올바른 사고 하나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정복자가 되는 일이었고 전능한 경찰이 우리들에게 침묵을 강요하였기에 우리들의 말하는 한마디는 근원적인 선언과 다름없었다.
그것은 고귀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쫒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거동은 모두가 참여(engagement)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투쟁 사이사이의 당했던 가혹한 정세는 인간의 조건이라 불려지는 찢겨진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살아야할 것에 우리는 처해졌다.

추방, 포로생활, 더욱이 행복할 시기에는 교묘하게 은폐된 죽음, 어디서 어떻게 죽는지 모르는 죽음, 우리들의 이런 것을 관심의 끊임없는 대상으로 삼아 그것들을 피할 수 있는 우연적인 것도 아니고,끊임없이 밀어닥쳐 마지않느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사실은 외부에 있는 위협조차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고 있었다. 그것들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몫을, 우리들의 숙명을,우리들 인간현실로서의 깊은 근원을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순간마다 우리들은 '인간은 모두 죽는 것이가" 라는 평범하고 짧은 한마디의 뜻을 어김없이 살고 있었다. 더구나 각자 자기자신에 관한 선택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행해지기 때문에,"차라리 죽는 편이.......'하는 그런 형태로 항상 표현될수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수도 없는 거짓없는 현실 그 자체이었다.

난 여기서 나치의 정면으로 투쟁한 진정한 레지스탕스의 전사들이었던 엘리트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4년 동안 밤낮으로 그들의 우리의 대한 비인간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거역하면서 살아가야했던 프랑스인 모두의 심정과 삶을 말하는 것이다.

(책을 내려 놓고)

읽어본 분도 있겠지만 1944년 프랑스가 나치에게 해방되었을 때 쓴 유명한 겨울공화국에 대한 글입니다.

왜 이 글이 감동적인 것이냐? 우리는 모두가 누구나가 자유인이고자 원하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것은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형벌을 말한다. 자유인=형벌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인일 수 없는 자유일 수 없는 거북한 상황에서 운명적인 상황이던, 현대적인 정치상황하에서의 억압에 의한 탄압에 의한 반인간화에 대한 비인간화 던, 비안간화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일어나고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길 원하고서 한다면 그것은 바로 형벌 받는 거 아닙니까.

그러한 자유는 형벌이라는 것을 앞으로의 역설적인 유명한 뜻이 프랑스 나치시대만의 프랑스인에게 주어졌던 생존의 삶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지난날 살아왔던 생존해 와야 했던 적어도 지식인들 삶이 그러한 상황 하에서 형벌을 전재로 하지 않고 형벌을 각오하지 않고 자유라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개인 뿐 만아니라 민족으로서 국민으로서 말한다면 지난 100년 동안, 일제식민지하에서 우리는 나치하의 프랑스인 것 같은 그런 억압과 비인간화 비인간적 존재 될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 이제 우리는 자유라고 태극기를 흔들었지만 실제로 우리들은 그 일제시대의 그 군인들 우리를 수탈하고 우리들을 비인간화했던 그런 제도와 사상과 그리고 모든 유대에 의해서 민족반역자 친일파 세력집단에 의해 유린당해왔어요.

그 뒤를 이은 군부독제는 그야말로 나치나 다름없는 종류의 억압자였고 인간을 근원적으로 거부하고 자유로운 인간, 자유라는 개념, 자유라는 삶의 본질, 자유라는 것의 추락, 자유라는 것의 사상을 근원적으로 거부하고 부정하는 그 군부 독재 하에서 자유이고 잘 할 때 우린 형벌을 각오해야 했고 형벌을 각오 하지 않고 않고서는 자유인이 될 수 없던 것입니다.

지식인은 흔히 우리 신문이나 연설에서 나오는 자유..., 자주 이렇게 경박스러운 개념으로 사용하는 자유가 아닌 고귀한 용어로 우리는 정말로 무게 있게 나치 하에서의 한마디가 형벌이고 한 가지 행동이 죽음이고, 목숨이 갖는 상황에서 자유라는 것이 비로서 진정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것을 지식인 적어도 그런 생각으로 살아야합니다.

인간이 자유인임을 거부하는 제도, 정권, 사상 그 모든 것들이 허위입니다.

그 진실 억압자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허위와 거짓말과, 가면 말하자면 모든 것을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강요할 때 진실에 씌어놓은 가면을 벗기는 지식인들의 역할이고 사명이고 임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지식인 아닌 대중이라는 것은 그 억압자가 인간을 부정하기 위해서 인간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이런 것을 거부하고 통치하기 위해서 지배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온갖 거짓이 하나의 신화로서 존재했던 것이죠

우리사회에서 일제시대에는 두말 할 것 없고 식민지하에서의 모든 것을 일제의 지배자의 편리와 이익과 권위에서의 거짓이었으니까 해방 후에 우리는 해방이 됐다는 생각, 자유로워졌다는 생각, 민주주의가 됐다는 생각 하에서 사는 우리 대한민국 사회 국가 또한 진실이 없는 가식과 허위만이 지배했던 그런 속에서는 우리는 자유인일 수 없다는 것이죠.

나는 오늘 산에 가고 싶으니까 갔고, 하루 결근하고 싶으니까 했고, 연애하고 싶으니까 했고 난 자유였다. 이런 차원의 자유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되기 위해서 우리의 지난날의 생존의 조건과 환경은 마치 중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이 말 한거와 같은 사항입니다.

큰 무쇠로 된 방이 있는데 그 속에 사람들이 갇혀서 질식한 상태서 숨을 못 쉬니까 죽어가고 있는데 살고 있는 줄 생각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지난날 살았던 사회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들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우린 죽어 있었지요. 왜냐하면 죽어있다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 자유로운 사상, 자유로운 정신, 자유로운 인간성이 아닌 것은 사실은 비인간이고 비인간은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한 사항에서 노신은 말합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 정신이 아직 몽롱해지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일어나서 무쇠의 벽에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서 산소와 햇볕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이 죽어가는 사람들 살릴 수 없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 가.

적어도 우린 희망을 가지고 그 바늘구멍만한 구멍이라도 뚫어 한 두 사람을 희망으로 만들 사명과 임무가 있지 않은가

노신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 어디 될 소리인가 되지 않은 소리 아닌가. 안 된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모든 중국 4,억5천만의 인민대중인데 그대로 안 된다고 하는 말 한마디로 우린 자유인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냐" 이렇게 해서 중국인민은 자유를 향한 대장정 대투쟁으로 환기 시켰습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그런 사회는 인간의 자유인임을 거부하게 하는 제도, 정권, 환경조건, 사상 그 모든 것이 허위이고 그 허위는 하나의 가면을 쓴 신화의 형태로 정해집니다. 정부에서 신화는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것이고 지탄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오로지 따르기만을 해야 하는 거니까요. 이 허위로서의 신화를 가면을 벗기고 살아가는 노신이 말하는 5억 인민 가운데 몇 사람이래도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서 일어나는 사람, 의식이 있는 사람, 사상이 있는 사람, 철학이 있는 사람, 의욕이 있는 사람, 진실을 가르쳐야하는 것이고 햇볕이라는 것, 조그만 공기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호흡을 시켜서 다시 일으키게 전부 허위를 벗긴 진실이라는 것이죠.

진실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자유로운 인간만이 해방된 것입니다. 허위의 권력. 종교권력도 포함합니다.

과거 카톨릭교가 전 인류를 지배할 때 비과학적인 반과학적인 허위와 가면과 그것을 가지고 종교권력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지배했던 가장 전형적인 것과 정치권력은 물론 경제이론에 있어서 어떠한 자본주의적 경제이론에 의한 진실이라고 하는 그런 것 과거 공산주의가 계급투쟁 적이라 세계구성이라 해석하고 강요했던 그러한 그 진실, 오늘날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반진실, 이런 것을 가면을 벗길 때 신화에 정체를 폭로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진리를 찾아낼 때 우린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남이 찾아서 우리에게 주어서 내가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철학적 관점을 가지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력해야 비로소 자유인이 되는 겁니다.

내가 그 동안 4,50년간의 기간에 걸쳐서 책을 써왔고 발언을 하고 가르치고 해왔던 것이 말하자면 이러한 철학적 근거에 의해서 사상에 의해서 신념과 이념에 바탕을 두고 발언하고 써왔던 것이 10여권의 책이 되었고 또 그것은 한 시기 60~90년대에 이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그 허위에 가면을 벗기는 진실을 밝히는 그리고 우리 동료들의, 동포들의, 대중의, 인민의 국민의 그러한 처참한 노예적, 정신적, 사상적, 실체적, 생존적, 노예상태에서 해방하는 자유인으로서의 자유의식과 자유인으로서의 행위에 규범을 약간은 밝혀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유와 형벌이라는 공식에 따라서 저도 많은 형벌을 받아왔고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제한 형벌을 받아오면서 왜 계속 글을 써 왔느냐 그렇게 발언하고 그렇게 행동해 왔느냐 할 때 나는 자유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유인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 생각해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책에서 이런 걸 볼 것입니다. 해방 후 한 시기에 서울의 거리에 많은 가난한 사람이 있고 한편에 많은 부자들이 있을 때 담배를 피는 데 길을 가다가 그 당시 성냥은 작은 솔나무 껍질로 만든 성냥이고 1원입니다.

담배가 피고 싶으면 바로 눈앞에 10만원의 자본을 가지고 깨끗한 가게를 운영을 하는데 눈앞에 있는 가까운 가게를 굳이 피하고 100미터밖에 길바닥에 그냥 멍석을 깔고 담배하고 성냥 몇 개를 놓고 파는 노파가 있을 때 그 편리하고 가깝고 깨끗한 그 가게에 가지 않고 걸어가서 노파의 1원짜리 성냥을 사주는 심정이 있습니다.

왜 그랬냐? 그 정신이 책에 일관되게 지배하고 있는 정신입니다 만은 그 까닭은 많은 자본을 들여서 가게를 차린 이 사람에게서 편리한 1원어치를 사주면 그것은 10000분의 1의 효과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러나 100원어치를 파는 노파에게 1원어치를 사준다면 100분1의 경제적 도움을 준다는 말이죠.

돈을 가진 사람에게 10000분의 1의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 보다 또는 내가 그와 같은 액수의 돈을 가지고 한사람에게 10000분의 1의 도움을 주는 역할과 다른 하나는 100분의 1의 베푸는 것과는 효과가 ‘100배차이’라는 것이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의 사회의 경제적 생활양식과 돈과 물질과 사람의 살아가는 정신, 인간관계 이런 것을 볼 때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없는 뜻입니다. 그런 것이 나의 삶과 인생철학이었고, 사회관이었고, 경제관이었고, 역사관이었고, 민족관 이었던 겁니다.

질문 :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사회주의 붕괴의 문제에 관해서 책에서 많은 대화를 한 내용을 특별히 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분간해야 합니다.

공산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해요. 우리 남한 사람들은 반공주의가 강하게 스며들어서 뭐든지 좌익, 좌파하면 공산주의 사회주의 전부 동일시하는 데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다른 것이고 공산주의가 붕괴했다는 것은 사회주의가 붕괴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다만 사회주의가 하나의 권력의 형태로서 또는 자본주의와의 관계에서 위상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정확한 해석입니다.

질문 : 독재시대의 탄압을 어떤 의지로 견디셨나요?

리영희 선생 : 내가 어떻게 독재시대의 어려움을 견디었냐 하는 질문에는 자유인이기 위해서는 형벌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유인 될 수가 없다는 것이죠.

형벌을 거치지 않고 자유인이 될 수 있다면 그 사회의 체제는 세상은 벌써 모든 사람이 자유인인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가장 고귀한 자기 긍정이 이뤄질 때 자유인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체제는 오기 힘들 것입니다.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조건이 있기 때문이죠.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지요. 항상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하고 탄압하는 사회에서는 형벌은 혹독하고 자유가 웬만큼 이루어진 서유럽 사회에서는 한국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이 정도의 차이죠.

우리는 누구의 자유이거나 막론하고 보편적인 자유로 우리가 일반화 하기위해서 형벌을 마다하지 않고 해 나가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왜 고통이 없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묻습니다. “많이 잡혀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두려움 없이 잡혀갔느냐” 모르는 말이어요. 우리 한국에서 그 권력에 의해 잡혀가는 것은 가서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학생들, 지식인들 노동자들... 또는 불구가 된다는 거에요.

또는 김근태씨 처럼 죽다가 살아나서 그 범인 찾아내서 정의를 이루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몇 백분의 일에 불과한거죠.

형벌을 받으러 들어 갈 땐 겁이 나죠. 내가 그 고문을 견딜 수 있겠는가 나에게는 심한 고문을 한했지만 학생들 노동자들 무지한 고문을 당했을 때 내가 살기위해서 동료를 밀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엄청난 두려움이 있죠.

그냥 견디어 나가는 거죠. 무슨 영웅적인 특별한 소질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때 그 때 두려움을 참아가면서 견딘 거죠. 그러니까 특별한 자질 있는 건 아니죠. 만약에 안 견디면 난 노예가 된다는 거죠.

정신적인 노예! 포악스러운 자들에 의해서 권력에 의해서 체제에 의해서 사상에 의해서 나의 것은 몽땅 제로가 되고 오로지 저자들의 것 만으로만 신화를 믿고 나 인간자체가 가짜 인간이 된다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 몸부림 친 거죠.

질문 : 자상한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고 그 아쉬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할아버지 입장에서 어떠신지요? 그리고 지금 젊은이들이 취업 등 생활문제에 매달린 점이 많은데 바람직하게 사회에 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을 해 주십시오

리영희 교수 : 아들에게 쓴 편지는 67년 광주형무소에서 살 때 가만히 생각해보니 늘 생각나는 게 우리 아리들에 대해서 다정한 아버지가 못 됐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당시 텔레비전 내용이 난잡하고 포악스럽고 저열하고 도저히 문화라고 할 수 없는 대단히 좋지 않은 프로도 있지만 미국의 저속한 그대로 방영한 때이기도 하고 우리가 국내에서 만드는 것도 만찬가지 이기 때문에 그래서 난 애들에게 텔레비전을 안보였어요.

보인 것은 올바른 만화만 보이고 시간 지나면 장롱 속에 올려놨어요. 그러니가 우리 애들이 이웃집에 가서 보는 거예요. 13평집에서 책 읽고 밤새워 원고를 쓸 때 조용해야 하니까 애들이 뛰거나 텔레비전을 못 보는 것을 짜증을 내고 할 때 엄마가 애들을 업고 나가고 해서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 따스함, 몸에 와 붙는 그런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어요.

나의 굉장한 인간적인 결점에요. 그래서 난 형무소에서 그러한 사실을 편지를 쓰면서 군대간 맏아들에게 그때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 했느냐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써서 보내다오 했더니 이건 겁나는 내용이어요. 말하자면 도저히 아버지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두렵기만 하고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아버지예요. 너무나 가슴이 아픈 일이죠. 그 뒤에 많이 반성했죠. 사랑은, 선은 가까운데서 부터 베풀라고 하지 않았어요?

기독사상도 우리 동양의 고전도 그렇고 또 인간 만사가 그런건데 사회, 머무는 사람, 대중. 우리민족 이런 사회정의를 위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을 위해서 행복과 사랑을 멀리왔던 것이죠. 나이 들고 노령이 되면 이젠 그렇게 사회적인 활동도 할 능력도 이젠 상실했기 때문에 자연이 자손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 난 그냥 단순해요. 하고 싶은거 하라 이거예요. 자기 능력, 자기 취미, 자기 기능, 재능에 맞는 것을 하라는 거예요. 맞지 않은 일을 하면 절대로 성장할 수 없고 성공할 수 없어요.

부모들이 출세요구로 억지로 되지않은 애들을 피아노, 바이올린을 하루 20시간씩 이과목 저과목 억지로 하는데 결국은 그 애가 심리적인 정서적인 생물학적 적응성에서 발전하는 것이지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어요.

난 그래서 젊은이는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명체거든요. 이 생명체를 어떠한 가방에 넣고 물건을 만들라고 하면 잔인한 인간성이라 생각해요. 젊은이 생명이란 것은 뜨끈하고 물렁물렁하고 언제든지 피어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많아요. 나이가 들면서 한가지 두가지로 좁혀나가야죠.

나에겐 이거구나. 그것이 도움이 안되도 때로는 유명해지진 않아도 자기에게 즐거움과 또 가능하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최고죠.

질문 : 이상적인 체제국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영희 교수 : 이상적인 체제국가는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가까이 접근하는 노력하는 것이지만 역시 이상적인 라는 개념을 동반하는 형태의 집단적 단일체제는 불가능합니다.

토마스 모아가 유토피아라는 글을 썼는데 여러분들에게 꼭 읽기를 권합니다. 이건 황당무게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인간들이 사회체제와 우리 사회의 구조나 철학이나 사상이나 정책이나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바뀌어나 하는 것을 유토피아에서 잘 보여주고 있어요.

물론 그것은 가공적인 이야기지만 상상할 수 없는 훌륭한 지혜, 철학이 그 속에 담겨져 있어요. 그런 것은 중국의 대동사회라는 의미에서의 이상향도 우린 이룰 수 없는 것이지만 대단히 가까이 가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질문 : 선생님의 생애는 위정자들이 만든 ‘신화’의 가면을 벗기는 일에 전념하신 것 같습니다. 생각하시는 현대의 신화는 무엇인지요?

리영희 선생 :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 사회운영, 통치방식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신화입니다. 여기에 대해 사상가와 석학과 지식인들이 논쟁 중입니다.

현실의 국제적 관계에서는 미국이 만드는 ‘부시의 민주주의’가 신화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편협한 가면 뒤에 미국중심의 자유, 민주주의, 정의, 평화 그리고 ‘미국식’ 인권의 본질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뿐 아니라 50억 인류에게 엄청난 신화로 생각 됩니다.

질문 : ‘진주기생’등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입니다. 가벼운 질문입니다. 예전에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습니다. 옛날 언론인들의 음주문화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리영희 교수 : (웃음) 남의 약점 케기를 좋아하시는 분인 모양입니다. 예전엔 술을 마시면 동료기자들하고 ‘끝장을 봤다’고 말해야 겠죠. (웃음) 그때는 4,5 명이 같이 술을 마시고 다음날 한명이 못 나오면 서로 감싸줬어요.

그 사람이 할일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서 해주고 “왔다가 (출입처로)나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동료들이 도와줬죠. 요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정이 없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기자들도 서로 차장이나 간부가 되기 위한 ‘경쟁자’로 서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 기자시절을 돌아보면 일제시대 영향도 있고 해서 ‘지사풍’의 분위기가 기자들에게 있었어요.

질문 : 삶의 철학이나 생활에 기준으로 삼는 원칙이 있으신지요?

리영희 교수 : 간소하게 살고 정신으로 고양을 이루는 것입니다.
영어로 번역을 하면 ‘SIMPLE LIFE, HIGH THINK' 입니다.


지갑에 카드가 10개 있으면 주위가 모두 소매치기로 보인다면서요? (웃음) 간단하고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질이나 사치에 몰입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대신 일하는 것, 즉 쓰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이것도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갑자기 어떻게 될까봐 사위가 사줬는데 1번은 누르면 우리 집입니다. 2번은 아내입니다. (웃음)

내일 꽃피는 계절에 상춘여행 준비들 하셔야 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지루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