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5. 베트남 인민에 먼저 사과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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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3-0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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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94.3.5.  베트남 인민에 먼저 사과할 일

 

1년 전, 베트남민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수교가 발표된 뒤부터 나는 가끔 밤잠을 설친다. 얼마 전부터 한국의 기업(가)들이 한국 근로자 임금의 5분의 1이라는 싼 임금 노동시장에서 재벌이 되기를 꿈꾸며 베트남, 베트남으로 몰려간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런 날이 더 잦아졌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도 20년이 지났다. 오늘의 30대 이하는 처절했던 베트남전쟁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 윗 세대들도, 지난날 "인류의 양심에꽂힌 가시"라고 불리던 베트남인민의 영웅적 민족해방전쟁의 교훈을 잊은 지 오래다. 지금 한국인에게 "베트남"은 첫째가 돈벌이요, 둘째가 20년 전의 "파월군인"의 노스탤지어를 재현하는 관광이고, 셋째는 헐값으로 여성 육체를 음미하는 행락인 듯하다.


30년전 한-일 국교 이후 남한에 몰려든 일본인들이 침을 흘렸던 그 세 가지 유혹이다. 뜻있는 한국인은 일본인들의 그런 작태를 보면서 분노했다. 그러나 너무도 가난했던 탓에 한국 국민은 눈물을 삼키면서 그 치욕을 참았다.


이제 푼돈이나 만지게 된 한국인이 마치 20년 전의 일본인들처럼, 또는 미국이라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처럼 으스댔던 "파월군인"의 기분으로 베트남에 들랑거리기 시작했다. 심심치 않게 베트남의 유혹이 화제가 되는 뉴스를 보고 읽는다. 가난한 베트남으로 가자! 통일된 베트남이 왜 가난한가?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미국 공군의 융단폭격으로 "쑥밭"이 되었다면, 베트남은 "자갈밭"이 되었다. 미국과 "동맹군"들이 10년 전쟁기간에 베트남 땅 위에 퍼부은 폭탄은 5백만 톤이다. 지상전투에서 뿜어낸 포탄과 로켓탄이 7백만~8백만 톤, 합계 1천2백만 톤을 넘는다. 북한을 집 한 채 없이 초토화했던 미국의 폭탄량은 49만5천 톤이었다. 베트남은 북한에 비해서 25배(폭격만은 10배)의 피해를 입은 셈이다. 또 태평양전쟁 중 일본 본토에 대한 "초토화"라고 했던 폭격이라야 고작 16만 1천4백25톤이었다(원자폭탄제외). 베트남은 그 30배의 폭격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런 폭격 뒤에 무엇이 남을 수 있으며, 무엇이 자랄 수 있었겠는가? 베트남이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참전국가로서 미국을 도와 이 파괴를 그들에게 넘겨준 책임의 일부를 외면할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전쟁 3년간에 일본이 미국의 전쟁 노력에 협력함으로써 "전쟁특수"를 누리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한다. 다른 민족의 불행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했다고 규탄했다. 일본인이 한국전쟁에서 번 돈은 21억 3천8백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베트남 민족의 내란에 뛰어들어서 번 돈은 어떤 성격의 돈인가? 얼마나 벌었는가? 여기서 파월군이 미국의 "용병"이었는가  아닌가의 시비는 접어두자. 1964~71년의 8년간, "파월군"병력은 연 31만 3천 명. 파월군은 개개 군인의 월급, 전지수당, 전사자 보상을 미국 정부에서 받았다. 그리고 한국군 현대화, 과학기술연구원, 기타 명목으로 받은 돈을 합쳐 약 10억 달러로 추산됐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월남파병"을 유도하기 위해서, 같은 해에 한-일 청구권조로, 그리고 유·무상 원조와 차관 명목으로 8억 달러를 제공케 했다. 미국 쪽에서 보면 일종의 "월남파병 보조금"격이었던 것이다. 이 일본돈을 제외하더라도, 한국기업·상인들이 베트남전쟁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일로서 번 돈까지 합치면, 바로 일본인이 한국전쟁에서 번 금액과 맞먹는다.


우리는 일본인의 "부도덕"성만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한번 반성해볼 일이다. 물론 한국군의 피해는 컸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전한 전쟁의 결과로 베트남인은 사망자 1백90만, 부상자 4백50만, 난민 9백만의 재화를 입은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베트남전쟁은 "반공 성전"이었다고 강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전쟁이 "반공 성전"이었다면, 철저히 반공적인 미국 군인이 어째서 1965년 한 해에만도 4만 2천2백20명이나 탈영을 했을까? 미국 청년들이 그 전쟁을 "불의, 부도덕"한 전쟁으로 단정하고 징집을기피·거부 또는 해외도피한 수가 8년 동안 57만 명에 달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한국인이 베트남에 돈벌이하러가는 것은 베트남인민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돈벌이에 앞서서 한국은 어떤 형식으로건 사과의 표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