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후기-1] '반 이슬람 인종주의'로 하나 된 버마 (2013. 10. 11 작성)

작성자
재단 사무국
작성일
2018-10-11 06:46
조회
1517

사원, 학교, 마을, 학생. 이슬람에 관한 모든 존재가 총체적으로 공격받은 메이크틸라 학살 이후 이 지역 무슬림들의 생활 기반은 회복 불능에 빠졌다. 4천여 난민은 여전히 캠프에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고, 폭동으로 입은 인명 및 재산 피해에 대한 보상은 없다. 대신 관료들의 으름장만 이어지고 있다.


 


‘969 운동’ 세력 10월 폭력사태에도 개입


 


학살 첫날 메이크틸라로 ‘출장’ 갔던 만달레이 주지사 우예민은 4월12일 이 지역 무슬림 대표들을 불러 무슬림 책임론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에는 만달레이주 치안 담당 우초무 대령이 다시 200명가량의 무슬림 대표를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무슬림 원로 나잉웅(가명)에 따르면, 우초무는 공터로 남은 학살 현장은 이제 정부 소유이며 그곳에 아파트 등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단다. ‘살던 곳으로 하루속히 돌아가길 원한다’는 난민들의 의견을 전하자 우초무 대령은 이렇게 응대했다. “당신들은 지금 말할 주제가 아니니 듣기만 하라.”


메이크틸라 학살은 아라칸주의 반로힝야·무슬림 폭력의 연장선이자 종교 변수에 집중된 폭동의 확산을 예고했다. 이후 바고, 샨주, 몬주, 그리고 8월24일 중북부 사가잉 지방까지 곳곳에서 약 30건의 크고 작은 폭동이 발생했다. 그리고 기사를 쓰는 10월2일 현재, 아라칸주 탄드웨(산도웨이라고도 함. 135개 인종으로 인정받는 캄만 무슬림 대거 거주)에서도 5일째 폭동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번에는 한 무슬림 주민과 그의 집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불교도 주민 사이의 언쟁이 불씨가 됐다. 폭도의 칼에 찔려 사망한 94살 무슬림 할머니를 비롯해 사망자 수가 9~25명에 이른다는 얘기가 돌고 있고, 수십 채 가옥과 모스크 등이 불타고 있다. 8월 중순께 <한겨레21>은 탄드웨 주민 3명의 이름과 함께 이들이 랑군으로부터 1억차트(약 1억원)의 돈을 송금받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특검으로 계좌라도 털지 않는 한 검증하기 어려운 정보였다. 바로 그들의 이름이 지금 폭동을 주도한 인물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모두 ‘969 운동’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들이다.


‘969 운동’은 끝없는 ‘혐오 스피치’와 ‘헛소문’으로 반무슬림 폭동에 불을 지르는 세력이다. ‘969 운동’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원이 하나 있다. 바로 급진 불교민족주의 전통을 지닌 만달레이 마소예인 사원이다. 이 사원의 승려들은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강타한 뒤 구호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최근에는 중북부 지방 토지 수탈(Land Grab)의 상징적 사례인 ‘라파다웅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했다. 2003년 초크세에서 종교폭동을 선동한 죄로 수감생활을 하던 중 지난해 대통령 사면으로 석방된 위라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사원의 주지승이 됐는지는 안갯속이다. 다만 반독재 저항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마소예인 사원이 최근 ‘969 운동’의 ‘본부’ 노릇을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슬람 혐오+불교민족주의+소수민족극우주의=?


 


서부 아라칸주에서도 ‘969 운동’이 왕성하다. 그러나 변수가 하나 더 있다. 라카잉민족개발당(RNDP)의 인종주의적 프로파간다가그것이다. 이 인종 변수가 또다시 분열을 낳는 지점이다. 예컨대 중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반무슬림 폭동을 막기 위해 종교 간 하모니 캠페인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만달레이 88세대’(랑군 중심의 88세대와 다르다) 도아마니는 단연코 선도적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로힝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벵갈리들은 버마 시민이 아니다. 라카잉주를 점령해서 벵갈리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카렌주와 달리 라카잉주에는 내전도 없는데 그들은 불쌍한 척 난민인 양 주장하며….”


‘이슬람 혐오’와 ‘불교민족주의’, 그리고 라카잉족이 발산하는 ‘소수민족극우주의’(Ethnicnationalism)가 결합한 ‘반이슬람 인종주의’가 지금 버마를 휘감고 있는 유령이다. ‘반이슬람 인종주의’ 앞에선 민주와 반민주, 군인과 시민, 통치자와 대중 간 차이는 별로 없다. 감정이 좋지 않은 라카잉 불교도와 버마 불교도들도 ‘안티 벵갈리(로힝야) 연대’에서는 하나가 된다. 아웅산수찌의 침묵이나, 민족민주동맹(NLD) 당원 일부의 969 참여 그리고 88세대 주류의 ‘민족 우선’ 논리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됨직하다.


다른 한편, 군부독재가 형식적으로나마 사라진 공터를 ‘반이슬람 인종주의’가 채워가는 이면에 정치적 동기가 없을 리 없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설은 강경파 배후론이다. 개혁을 방해하고 혼란을 조성해 군인들을 다시 정치에 불러들이는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혹은 민간 정부라도 과거 실세들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는 구조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준동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반무슬림 폭동이 지난해 4월 보궐선거 이후 나타난 현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혁 이후 처음으로 치른 그 선거에서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NLD는 전체 45석 중 43석을 얻었다. 권력관계의 변화를 예고한 선거였다. 그리고 두 달 뒤인 6월, 아라칸주에서는 많은 의혹을 남긴, 무슬림 남성에 의한 불교도 여성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반로힝야·무슬림 폭동이 이어졌다.


이 시점은 또한 한 인물의 행보가 주목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버마의 최고 갑부이자 전 군사정권 최고실력자 탄슈웨의 측근인 아웅타웅 하원의원. 위키리크스가 유출한 2008년 미 외교부 케이블이 ‘악명 높은 강경파’로 묘사한 아웅타웅은 2003년 5월 아웅산수찌 암살 시도로 해석된 데파인 학살의 배후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데파인 폭력에 동원된 조직은 현 여당(통합단결발전당(USDP))의 전신인 통합단결발전협회(USDA)의 행동부대 ‘스완아신’(‘권력의 정복자’라는 뜻)이다. 기자는 데파인 학살 당시 아웅산수찌의 보디가드였던 전 NLD 당원으로부터 “승복을 입은 이가 수찌의 차량을 멈춰세우더니”라는 증언을 들은 바 있다. 전과자·범죄자는 물론 전투적 승려들도 일부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조직에 최근 생계가 어려워진 빈민·농민들도 동원된다는 후문이다.


 


침묵하는 아웅산수찌에게도 책임은 있다


 


캐나다에 근거를 두고 ‘제노사이드 위험지역 조기경보’ 활동을 벌이는 국제 비정부기구(NGO) ‘센티넬 프로젝트’의 최근 보고서는 스완아신과 타웅타군 같은 민병대 조직이 969 승려들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북부의 타웅타 타운십은 바로 아웅타웅 의원의 지역구다. 돈, 권력, 조직, 그리고 잔혹함 등의 특징이 도드라진 폭동을 두고 분석가들은 요건을 두루 갖춘 아웅타웅 같은 인물이나 그와 연계된 세력을 주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을 제압하지 않는’ 테인세인 정부나 ‘침묵의 아이콘’이 돼버린 아웅산수찌가 책임을 비켜갈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샤프란 혁명 주동자이자 전 승려인 우감비라는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침묵하는 이가 많다는 건 아직 이 사회가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의미한다.”


 


버마=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