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표 이야기 - 마음에 새긴 리영희 선생님 / 남궁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3-03 04:54
조회
823

장서표 이야기 마음에 새긴 리영희 선생님 


                                                                                                                                                                             


 


 


 


 


남궁산 (판화가)


리영희 선생님을 추억하면 가장 먼저 <전환시대의 논리>가 떠오릅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뵌 건 1980년 초반 대학생 때였지요. 물론 글로써 말입니다. 문학잡지 <창작과비평> 지면에서였습니다. 당시 데카당한 화가 지망생이었던 저는 새 책을 사볼 돈이 없어 헌책방을 뒤져 세상의 내면과 외연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특히 폐간되거나 판매금지된 <사상계>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뿌리깊은나무> 등 잡지의 과월호를 헐값으로 구해 보던 시기였습니다. 잡지에 실린 시, 소설 등 문화기사가 주된 관심사였지요. 그러다 <창작과비평>에 실린 베트남전쟁에 관한 선생님의 글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단행본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4년에 출간되어 이미 당시에는 전설의 금서가 되어 있었지요. 정가보다 몇 배의 웃돈을 주고 겨우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구입한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꺼내 펼쳐보니 마지막 페이지의 판권에는 ‘1975년에 발행한 3판, 정가는 1,300원’으로 인쇄되어 있군요. 책은 거의 50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이미 짙은 황토색으로 바랬습니다. 대충 넘겨보니 촘촘한 검은색 활자들 밑에 간간이 그은 밑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직 역사적 지식이 짧았을 때였으니 처음 접하는 어려운 내용을 독해하느라 힘들기도 했고,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읽던 기억이 나는군요.


제가 보관 중인 <전환시대의 논리> 속에는 선생님의 육필로 쓰인 두 장의 우편엽서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중 한 장은 1995년 9월의 것으로, 전시 후에 보내드린 장서표의 여분을 받으시고는 고맙다는 말씀을 적어주셨지요. 장서표 판화가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작은 일에도 잔잔히 마음 쓰시는 배려에 감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은 2003년 12월의 소인이 찍혀 있군요. 이 엽서는 연하장으로 보내주셨는데 앞면의 주소란에 힘겹게 쓰신 삐뚤빼뚤한 글씨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이 당시 선생님은 독재정권의 오랜 탄압과 감옥살이 후유증으로 뇌출혈이 찾아와 투병 중이셨지요.



리영희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엽서


선생님을 실제로 처음 만나뵌 날과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강연장이나 문화행사장이었겠지요. 하지만 1995년 인사동 화랑에서 열린 저의 장서표 개인전 때 ‘리영희 장서표’도 등장했으니, 그즈음이지 싶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장서표는 책 소장자의 연관 이미지를 담은 소형판화입니다. 그 전시는 장서표 판화만으로 열었던 첫 장서표 전시회였습니다. 이때 리영희 선생님은 전시장에 오셔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지요. 덕분에 전업작가로의 길을 고민하던 서른 초반의 애송이였던 저는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과 개성의 민둥산에서 나무를 심던 날이 기억이 납니다. 2006년 봄에 열린 북녘 나무심기 행사 자리에서 였습니다. 지난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이라는 단체에서 마련했더군요. 행사가 펼쳐진 곳은 경의선 기찻길에서 멀지 않은 곳인 개성공단 초입 민둥산이었습니다. 저는 금단의 북한 땅을 밟고 있다는 것 때문에 흥분하기도 했지만, 선친의 고향인 개성에 와 있다는 사실에 내내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선친이 어릴 적 뛰어놀던 곳이 여기 어디쯤이 아닐까 추측하며 생각에 젖어 있는데 마침 평안북도가 고향인 선생님은 “이곳은 일제강점기 중학생 때 기차로 지나친 곳”이라며 감회에 젖어 말씀하셨지요.


선생님은 불편한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계셨지만, 잣나무 묘목을 손수 골라 심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 곁에서 호미를 챙기고 흙을 파는 등 도움을 드리고자 했으나 미소를 지으며 사양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2006년 봄에 열린 북녘 나무 심기 행사 장소에서 리영희 선생님과 함께...


2010년 겨울, 연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지요. 하지만 여전히 리영희 선생님은 저의 가슴에 계십니다. 선생님이 2000년대 초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 삶의 정신이 ‘simple life, high thinking’이야. 간소한 생활 속에 높은 사유, 사상이 나올 수 있거든. 풍요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물질적인 충족에 빠져버릴 위험을 경계하는 뜻이야. 물질생활은 검소하게, 정신생활은 고매하게 하자는 거지.”


저는 이 말씀을 지침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시대의 모순을 꿰뚫고 숨겨진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글쓰기로 세상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독재권력에 맞서다 여러 차례 구속, 해직을 반복하면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지요. 역사에 직면한 지식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몸으로 실천하면서 후학들에게 역사의식의 새싹을 돋게 해주셨지요. 저는 리영희 선생님의 장서표에 그 새싹을 새겨 넣었습니다. 벌써 30여 년 전 일이군요.


저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리영희 선생님의 고매한 정신과 온화한 미소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



리영희 장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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