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5호 / 김현대
김현대 /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사장
이번호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소개할 분은 김현대 이사입니다.
- ‘한겨레 1호사원 김현대’로 스스로를 소개하던 이사님은 요즘은 ‘신뢰언론 한겨레 사장 김현대’로 소개하시던데요. 햇수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한겨레에서 보내셨습니다. 안국동 시절이었겠네요, ‘한겨레’라는 이름 이전, 마치 잘 태어나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은 아이의 태명과도 같은 ‘새신문’으로 불리던 시절, 창간기금을 모으러 뛰어다녔던 28살 청년 김현대 얘기를 먼저 간단히 부탁합니다.
한겨레신문 창간이 1988년 5월 15일이고, 주식회사 한겨레신문사 설립은 한해 전인 1987년 12월 15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입사 날짜는 한겨레신문사 설립보다 두달 앞선 1987년 10월 1일로 돼 있습니다. 회사가 생기기도 전에 입사를 했다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 한겨레의 공식 인사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10월 1일은 한겨레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새신문창간사무국이 처음 문을 열었던 날이에요. 그날 선배 해직기자들만 있던 사무국에서 28살 막내로 창간기금 모금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이라면, 1987년 12월 16일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을 때의 ‘절망적인’ 분위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사무국 사람들 모두 맥이 풀렸고, “이제 모금은 끝났다”는 자조와 패배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끝이구나 싶을 때가 끝이 아니더군요. 끝이라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더라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는 한판승부가 아닙니다’라는 우리 광고 카피가 상처입은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지요. 한겨레신문 창간을 통해 민주화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자는 마음이 모아졌고 50억원 창간기금 모금으로 이어졌습니다. 궁즉변(窮卽變)이란 말처럼, 정말로 궁할 때 큰 변화가 일어나더군요. 선배들이 “50억원은 모았는데 정작 신문을 못 찍어내는 건 아닐까” “신문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1년은 넘길수 있을까” 걱정하시던 모습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한겨레는 처음부터 상상과 불가능의 지경에 도전했고, 그랬기에 그전까지 세상에 없던 신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창간을 이끈 선배들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던 것이 저한테는 큰 복이었습니다. “시민의 염원을 모아야 한다.” “언제라도 새로운 한겨레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선배들의 그런 말씀을 더 가슴에 새기게 되더군요.
- 기동취재팀장, 사건총괄팀장, 전략기획실장, 미디어사업기획부장, 한겨레21 선임기자 등을 하다가 누가 봐도 힘든 시기에 2020년 3월, 제32기 주주총회에서 사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한겨레를 수식하는 단어가 주로 정론지였다고 기억하는데 이사님은 신뢰저널리즘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강조하기 위함인가요?
한겨레가 진보 정론지이기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고 보수권력에 맞서는 선명한 진보언론으로서 한겨레는 지난 30여년 기득권과 성역을 깨는 역할을 다했습니다. 늘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제가 대표이사가 된 뒤로는 기후변화팀, 젠더팀, 불평등팀, 빅테크팀을 신설했습니다. 지금 시대의 진보 가치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구체적인 의지의 표현입니다. 독자들 사이에 논란이 없진 않으나, 저는 한겨레가 변함없이 뚜렷하게 진보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공식적인 자리에 설 때마다 ‘대한민국 대표 신뢰언론 한겨레 발행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제가 신뢰저널리즘을 말하는 것은 진보정론지 한겨레가 이제 신뢰언론 한겨레로 대체돼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보정론지 한겨레이면서 동시에 가장 신뢰받는 언론 한겨레의 저널리즘 원칙에도 충실하자는 말입니다.
한겨레는 진보정론지의 가치를 더 분명하게 더 큰 목소리로 외칠 것입니다. 동시에 “Facts are sacred”란 저널리즘의 원칙에도 한없이 충실한 대한민국 대표 신뢰언론의 길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한겨레는 태생적으로 어떤 정파나 자본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국민주 언론사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확증편향이나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롭게, “오직 진실”만을 보도할 수 있습니다.
신뢰저널리즘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는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을 일상 보도에서 늘 새기자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기사의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저널리즘 원칙을 철저히 지키자는 것입니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익명보도를 하지 말고, 모양 갖추기가 아니라 취재원 입장에서 반론을 충실히 담아주고, 오보를 냈을 때는 최초 보도만큼 충분히 정정보도를 하자는 것입니다. 한겨레는 이를 위해 저널리즘책무실을 설치했고 아주 잘 다듬어진 취재보도 준칙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불신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한겨레 또한 신뢰한다는 독자들 못지않게 불신한다는 독자들이 많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겨레부터 먼저 치열하게 자기반성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1988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창간호가 인쇄기에서 떨어져 나오고 있다.
- 70년대 일간지 내에서도 <동아>는 정치, <조선>은 경제, <한국>은 문화 등 제각기의 다른 강점을 지녔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사님을 인터뷰하기 전 몇몇의 친구들과 한겨레를 보는 이유, 한겨레의 강점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는데 르포기사(특히 연초에 실리는), 책소개, 국제관계 기사, 몇몇의 칼럼 등을 꼽았습니다. 남미에서의 새로운 정치흐름을 다루는 기사가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고요. 모든 분야에 양질의 기사를 생산할 수는 없는 한계 속에서 한겨레가 집중하고 이사님이 말한 언론의 언론 역할을 할 분야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르포기사, 책소개, 국제기사, 그리고 몇몇 칼럼이 한겨레 강점이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가 저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한겨레가 정치와 정책 분야 보도에서 가장 인정받는 언론사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내년 35돌을 맞는 한겨레가 이제는 대한민국을 끌어가는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사로 존중받아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갈 길이 멉니다. 지금보다 경제와 사회 정책 각 분야의 기사 품질을 훨씬 끌어올리고 양도 늘려야 합니다. 국제기사를 보강하기 위해 올해 유럽 순회특파원 파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미를 포함한 글로벌의 흐름을 충실히 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현실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인적 투자가 늘 모자랍니다.
저는 국민주 언론이라는 한겨레의 정체성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의 신뢰와 품질을 뒷받침할 수 있는 뉴스룸의 독립성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사님은 선임 당시 주총에서 직원들의 선거로 뽑히는 마지막 대표이사가 되도록 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1년 뒤 주총 전에는 한겨레를 아끼는 외부인사들이 사원에 의한 사장직선제를 개선할 방안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제안서를 보내온 걸로 발표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독자들은 사실 사장 선출방식이나 지배구조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좋은 언론, 나를 깨우는 언론, 한겨레에 관심이 있지요. 문제는 그 둘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걸로 진단되기 때문일 텐데요. 사장직선제 일반이 아니라 20여년간 시행돼온 한겨레에서의 사장직선제는 어떤 한계상황에 부닥쳤고, 개선을 위한 논의 진행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나요?
한겨레를 아끼는 원로분들의 제안문 취지에 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대표이사 직선제가 선거과정의 편가르기로 인한 경영의 실패를 낳았고, 지면의 논조 갈등을 야기한 언론의 실패를 낳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또 사외 국민주주의 의견을 반영할 정당한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는 근본문제도 제기하셨습니다.
오랜기간 직선제를 경험한 내부자로서 말씀드리자면, 가장 큰 문제는 경영의 연속성이 아주 쉽게 깨진다는 점입니다.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글로벌 언론사들은 10년 이상에 걸쳐 조 단위의 투자를 지속한 끝에 디지털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처럼 3년마다 대표이사 선거를 치르는 언론사에서는 10년 장기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요. 신뢰저널리즘을 구축하고 정치정책 보도에 자원을 집중한다는 등의 장기 편집방향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결국 대표이사나 편집국장은 단기과제에 집중하게 되고, 임기 3년째가 되면 다음 선거 준비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한겨레는 직선제를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에 늘 실패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들이 선거제를 대체할 더 나은 제도를 찾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절대다수 사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지 못했습니다.
직선제를 대체할 완벽한 제도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폐해가 확인된 만큼 더 나은 제도를 찾는 공동의 노력을 구체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제가 2021년 주총에서 직선제를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이듬해 주총까지 만들어 보고드리겠다고 주주분들께 말씀드렸습니다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다음 경영진의 과제로 넘기게 됐습니다. 그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 뉴스레터 3호 이병남 이사님 인터뷰에서 이병남 선생님은 “좋은 선배, 본받고 싶은 선배를 찾는 후배들의 바람은 의외로 크다”는 말씀을 하면서 후배에게 인정받는 선배, 후배에게도 할 말은 하는 선배가 되도록 평소에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현대 이사님은 21년 주총에서 편집국의 선후배들이 참여하는 공감토론회를 정례적으로 열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선후배간의 갈등은 이제 종차(種差)로까지 얘기되고 어느 집단에서나 제기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공감토론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종차 간의 연대방법이 찾아지나요?
선후배들이 마주하는 토론회는 한차례 열리고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편집국에서 자주 토론회를 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뿐더러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지난해 이후 편집국장과 주요 간부들이 제법 많이 젊어지면서 선후배들 간의 간극이 그전보다 조금은 좁혀진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저는 편집국의 최고참 중에서 편집국장이 배출되는 종전의 서열관행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수직적인 하향식 구조로 편집국 구성원들을 끌고 갈 수 없다는 점은, 여러 언론사에서 젊은 기자들의 퇴사가 속출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직적 선후배 문화가 강한 언론사일수록, 젊은 기자들의 이탈이 더 뚜렷합니다.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후배 젊은 기자들의 이탈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한겨레 편집국의 수평적인 문화가 그나마 젊은 기자들에겐 비빌 언덕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 창간 초기를 돌아보면, 대다수 경영과 편집 간부들이 40대 중반 이하였습니다. 가장 젊은 기자와 편집국장의 나이 차가 15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전반적인 젊음의 힘이 한겨레 초기 성공을 이끌었던 큰 동력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 이사님은 디지털 후원회원제를 경유, 유료독자화하는 데서 디지털언론 시대의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저도 질문을 하기 위해 후원 가입을 했는데 절차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관심분야의 도움되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온다면 한 달에 만원 내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대형 마트도 자기가 필요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익숙한 곳에 가게 되듯이 아직은 종이신문을 펼쳐놓고 바로 필요한 면을 찾아 면 전체를 훑어보는 익숙함과 재미가 더 큰 게 사실이지만 디지털화면으로 보는 게 링크에 익숙한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종이편집을 그대로 디지털 화면에 옮겨놓는 방식이 아닌 어떤 편집을 추구하는지요?
후원 가입절차가 쉽지 않았다는 말씀이 가장 아프네요. 지속적으로 관심 가는 글이 올라온다면 월 만원 후원할 수 있겠다는 말씀에는 용기를 얻습니다. 후원제를 시작하면서 안팎의 비판 많이 받았습니다. 모든 후원절차가 디지털에서 진행되는데요. 후원자들의 이용 편의성, 후원 마케팅, 그리고 후원을 요청할 만한 기사 품질 향상까지 제대로 준비돼 있느냐 하는 지적이었지요. 이른바 ‘개문발차’를 했습니다. 후원제 하기에 미진한 점투성이였지만, 먼저 시작부터 했습니다. 한겨레 문화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제대로 준비하자면 제 3년 임기 내에 첫걸음 떼는 것조차 쉽지 않겠다고 냉정하게 판단했던 거지요. 후원자 분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지만, 가게 문을 열어놓고 하나하나 보완해가기로 했습니다. 그게 후원제를 훨씬 더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는 ‘한겨레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금도 그 판단이 맞았다는 생각입니다.
후원제, 정확하게 말하면 구독모델일 텐데요, 한겨레가 그 길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신문 광고수입을 대체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여전히 대기업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신문 광고수입이 한겨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급전직하로 떨어질 수 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수입원이라는 냉정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원제와 유료화를 포함한 한겨레형 구독모델을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실험하고 진화시켜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하나는 디지털 후원제 또는 구독모델이 젊은 독자층과 만나는 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디지털에서는 독자들의 관심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쌍방향 대화를 수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겨레 독자의 대종은 여전히 50~60대입니다. 디지털 구독모델 가동을 통해 한겨레는 20~30대 젊은 독자들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후원자 또는 유료구독자로 확보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게 지속가능한 한겨레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회사 전반의 ‘종이편집을 디지털화면에 옮겨놓는 방식’이 아닌 그 이상이 어떤 편집이냐고 물으신 데 대해서도 먼저 반성을 하게 됩니다. 독자들이 가장 편리하게 디지털 한겨레에 접근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기술 인프라를 아직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인 게지요. 멀리 보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지난해 이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WCMS, APP, ERP, CRM 같은 디지털 도구들의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데이터분석센터도 올해 중에 출범할 것입니다. 내년 봄이면, 독자들의 한겨레 뉴스 이용이 한결 편리해지지 않을까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 김효순 이사장님 취임 후 한겨레 전현직 직원분들이 어떤 ‘공갈협박’을 받으셨는지(ㅎㅎ) 많은 분들이 재단 후원회원이 되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리영희재단에 바라는 바를 듣고 싶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한겨레 창간의 어른’이십니다. 잘 모시지 못해 늘 죄송할 따름입니다. 한겨레는 그냥 한겨레가 아닙니다. 시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언론이기에 지금까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 창간의 어른이나 창간주주들을 모시는 데는 많이 소홀했습니다. 받기만 했지 드리는데는 아직도 익숙하지 못합니다. 리영희재단과 더 두텁게 소통하는 있는 길을 지속적으로 찾아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긴 시간 감사합니다. 모두가 말하는 언론계의 비상한 시기에 무기력을 떨치고 제기되는 문제를 드러내고 한 발 나아가고자 하는 김현대 사장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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