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안의 리영희 / 고병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1-01 19:35
조회
1180

리영희 안의 리영희



고병권(철학자)


1.


중국 작가 루쉰의 <“이것도 삶이다”...>라는 글이 있다. 그가 죽음을 한 달여 남겨놓고 쓴 글이다. 이미 폐결핵 말기라는 진단이 나온 터였다. 병세는 조금 나아지다가 다시 더 나빠지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죽음을 떠올리지 않았지만, 살아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썼다. 그러나 글 자체는 어둡지 않다. 오히려 배경에 걸린 죽음의 시간표가 무색하리만치 진한 웃음기가 배어있다.


병세가 조금 호전된 날 아침, 그는 햇살을 받으며 침대 건너편 벽과 책더미를 바라본다. 평소 휴식을 취할 때나 바라보던 것들이다. “나는 이제껏 그것들을 경시하였다. 그것이 삶 속의 한 조각들임에도 차를 마시거나 몸을 긁는 것만도 못한 것으로 쳤고, 심지어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 내 삶에 속하지만 그다지 내세워본 적이 없는 일들, 그런 시간들이 있다.


루쉰은 위대한 인물의 전기를 쓰는 사람들도 그렇다고 했다. 시인 이백(李白)이 얼마나 거침없이 굴었는지 나폴레옹이 얼마나 잠을 적게 잤는지를 강조할 뿐, 이백이 거침없이 굴지 않은 때가 있었고 나폴레옹이 잠을 자야 했다는 사실은 적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거침없이 굴고 잠을 자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거침없이 굴지 않을 때가, 잠을 잘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평범한 것들을 생활의 찌꺼기라고 여겨 거들떠보지 않는다.”


루신의 말처럼 세상의 글들은 대부분 정화(精華) 즉 열매만을 적는다. 잎이나 가지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잎이나 가지가 열매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들이 열매와 깊이 연관된 것도 사실 아닌가. 수박 한 조각을 먹을 때도 갈라진 조국을 떠올리라는 어느 글을 읽고 루쉰은 이렇게 적었다. 이런 생각으로 수박을 먹는다면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뱃속이 반나절은 꾸루룩할 것”이라고, 게다가 수박 한 조각 편히 못 먹는 전사(戰士), 온종일 비장한 얼굴로 먹고 마시는 전사가 어떻게 적과 맞서 싸울 수 있겠느냐고. 전사에게도 비장한 각오 없이 맘 편하게 수박을 먹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일상이 항전의 시간은 아니지만 결코 항전과 무관한 시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2.


리영희의 편지 11통을 읽었다. 1989년 ‘한겨레신문 방북취재 기획 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가족들, 주로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그는 4월 중순에 연행되어 조사가 끝난 5월부터 집행유예로 석방된 9월까지 편지들을 보냈다. 그의 저서들만을 읽은 나로서는 무척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읽어본 적이 없는 리영희가 거기 있었다. 참 지식인, 참 언론인, 시대의 양심, 사상의 은사가 아닌 리영희, 앞서 루쉰의 표현을 따오자면 햇살을 받으며 벽과 책더미를 바라보는 리영희, 수박을 먹는 리영희가 있었다. 정치적 각성의 불을 켜는 리영희가 아니라 가을 햇살에 받으며 가족의 일상을 떠올리고 이불보를 널어 말리는 리영희 말이다.


특히 9월 4일 “여보, 주말을 어떻게 지냈소”로 시작하는 편지는 그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화양동 집에서 당신이 모처럼의 한가를 빨래일로 앉았다 섰다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보았지요. 언제나 그랬듯이 일하는 당신의 발에 와서 감기는 삐삐와 실랑이하는 장면도 그려보았소. 마당은 작지만 이런 쾌청한 날에 그 현관 계단에 앉아서 햇볕을 즐겼던 생각을 해보았지요. 그러면서 두어 시간 철창을 통해 정면으로 비치는 서울구치소의 태양에 얼굴을 맞대고 일광욕을 시켰어요. ... 눈을 감고 얼굴을 쳐들어 태양을 대하면, 가을해의 살이 수천수만 개의 실바늘 같은 가는 침이 되어 간지럽게 얼굴을 찔러 줍니다. 간질간질하게, 따끔따끔하게, 문지르듯 시원하게, 얼굴 전면에 수만, 수백만 개의 실침을 놓아줍니다. 그리고나서 ...수건 여섯 장을 꿰매서 만든 이불보를 빨아 철창에 매어 늘어뜨렸어요. 아직 때가 묻은 것도 아니지만 햇볕이 너무 아까워서 빨았지요.”



물론 이곳은 감옥이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당신 모습을 떠올렸노라고 전하는 편지에는 ‘검열필’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고, 집권세력을 비판한 문장들은 검열관들이 연행해간 듯 삭제되었다. 그러나 나는 삭제된 문장들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은 삭제되지 않은 문장들 속의 리영희다.


내가 책에서 읽은 리영희는 “지식인의 책임을 사적인 삶에서조차 다하려” 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인간형을 자식들에게도 요구했던 엄격한 가장이었다. 큰 아들이 “거의 강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아버님의 요구를 따르기에 너무 벅찼고”, 그런 아버지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리고 딸이 “매사를 논리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대신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고 했을 정도로(권태선, <<리영희 평전 –진실에 복무하다>>).


그런데 이 편지들에는 매사에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는 리영희와는 다른 리영희가 있다. “사랑하는 아내 영자에게”로 시작하는 7월 4일자 편지. “30여 년 만에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고 한 특별한 편지다. 면회 시간에 집안 일로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내에게 낯에 있었던 일을 사과를 하려다 아내가 희생해온 시간들을 함께 떠올린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을 떨군 그는 애정을 가득 담아 다음날 재판정에서 보자는 말을 남긴다. “출입구 가까운 곳에 있다가 잠깐이라도 손만이라도 만져보면 좋겠소.”


편지는 재판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서야 전달될 것이기에 아마도 손을 잡아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내에게 계획을 미리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7월 6일자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글’로서 말하는 사람이지, ‘말’로서 말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글에서 쏟아내는 애틋한 말들을 직접 건네거나 행하지는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막내아들에게 보낸 6월 23일자 편지에서 그는 면회 온 막내아들이 너무 반가워 “왈칵 껴안고 싶으면서도, ... 너를 데리고 온 어른과의 체면이 앞서서 마치 남남처럼 악수만 하였”다고 썼다.


그래도 리영희 안에 이런 리영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라고 쓴 8월 7일자 편지. 도종환의 <접시꽃당신>을 읽고는 “젊은 부부가 .. 참 아기자기하게 산 것 같”다며, “앞으로의 삶에서 [그동안] 그 이루지 못했던 분량만큼 듬뿍 사랑하고 살아야겠”다고 썼다. 8월 31일자 편지에서는 대전의 동창생 모임에 간다는 아내가 탔을 버스를 상상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고 썼다. “[지금쯤] 저기 도로를 버스 타고 내려가고 있을까?”


나는 이 낯선 리영희가 너무 좋다. 서른이 되어가는 큰 아들의 결혼이 너무 늦은 것 같다며 노심초사하는 리영희, 아기 때 몸이 좋지 않았으나 건강히 자라 의사가 된 막내아들을 보고 너무나 대견해 하는 리영희, 딸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맘이 놓이지 않는다면서도 무척이나 딸의 응원을 받고 싶어 하는 리영희. 어쩌면 교도소에 갇혀있었기에 이런 리영희가 풀려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양심적 지식인 리영희, 우상과 싸우는 리영희, “어떤 현세적 권위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경우에야 수긍”한다는 리영희는 교도소에 갇혀서야, 그것도 편지를 통해서만 다른 리영희를 놓아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도 생각해본다. 리영희는 자기 안에 이런 리영희를 보존해왔고, 어쩌면 그 덕분에 철방과 다름없는 세상 속에서 지치지 않고 싸워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3.


나는 리영희를 생전에 단 한 번 만났다. <<리영희 프리즘>>의 저자들과 함께였다. 만남의 장소가 냉면집이어서 이북의 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을 만나면 대화 내용보다는 목소리와 표정을 오래 기억한다. 그날의 리영희는 쇳소리 같은 목소리와 웃을 때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분명 그의 웃음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리영희는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어른을 요구했다고 한다. 큰아들은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 요구는 누구보다도 그 자신에게 먼저 그리고 엄격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을 너무나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시대를 살아왔고 그 속에서 특히 빠른 속도로 어른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도 어린아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편지들 몇 군데서 그의 어린아이가 얼굴을 내비치는 것을 보았다. 이를테면 막내아들에게 보낸 6월 23일자 편지에서 그랬다. 그는 의대생들이 기피하는 일반외과에 지원하려 한다는 막내아들의 말을 듣고는 대학 입시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들은 한양대학을 원했는데 세상모르는 아이처럼 말했다. 한양대학에는 나뭇바닥의 실내농구장이 있어서 거기서 농구를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는 아들의 이런 순진무구함이 병원에서 전공을 택했을 때도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들에게 순진무구함이란 “이해타산의 공리를 앞세우지 않고 뭔가 의미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타산 없이 추구하는 것은 숭고하기까지 한 삶의 태도”라고 격려했다. 아내에게 보낸 8월 31일자 편지에서도 그랬다. 유치원 시절부터 만난 친구들과 4-50년간 변함없이 어울리는 아내를 보며 그는 이렇게 썼다. “당신네 친구들에 대해서 내가 애정과 함께 존경을 품는 까닭은 그처럼 ‘어린마음’을 잃지 않은 어른들이기 때문이오.” 그는 어떤 계산 없이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처럼 즐겁게 만나 어울리는 일에 대해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이처럼 어린아이 앞에서 흐뭇해했고 어린아이를 존경했다. 그에게 어린아이는 경제적 타산보다 앞서는 생명의 순진무구한 운동이었다. 그는 마르크스의 다음 말에 틀림없이 동의했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은 어른을 기쁘게 하지 않는가? 어른은 더 높은 단계에서 어린아이의 진실을 재생산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리영희의 성숙한 인간의 끝에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1989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에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아니다”는 정신을 번쩍 깨우는 선언도 없다. 이 편지들에서 리영희는 가을햇살에 얼굴을 내맡기고, 화양동 마당에서 빨래하는 아내를 상상하며, 마룻바닥에서 농구하고 싶다는 순진무구한 아이를 떠올린다. 이것도 리영희다. 시대의 양심, 사상의 은사는 아니지만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리영희. 루쉰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전사의 일상생활은 매사가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다. 그것이 실제의 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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