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2호 / 최영묵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8-09 04:55
조회
1418


 


 


 


최영묵 선생님은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이고, 2011년 재단 창립 때부터 이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2015년에 출간된 선생님 저서 <비판과 정명> 리영희의 언론 사상을 중심으로 얘기를 듣고자 합니다.


1.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오래 묵은 '방세'를 정산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 ᄒ 기왕에 여러 권의 리영희 평전 또는 관련 글이 나와 있음에도 비판과 정명을 쓰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쎄요. 이런저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실 오래전에 리 선생님이 <역정>을 쓰셨고, 강준만(<리영희-한국현대사의 길잡이>), 김만수(<리영희, 살아있는 신화>), 김삼웅(<리영희 평전>) 씨의 책들이 이미 나온 상황이었죠. 거기에다가 2006년 임헌영선생과 어렵게 인터뷰를 진행하여 <대화>라는 ’구술 자서전‘도 냈기 때문에 선생님의 삶과 저술 관련 주요 사안들이 거의 정리되었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을 읽으면서 각 책별로 뭔가 아쉬움이 남았어요. 특정 입장에서 리 선생을 바라보려 하거나 사실관계에 오류가 많은 책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리 선생님 작고 5주기에 즈음하여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기하고 리영희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선생님 연구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지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의 관계나 저서의 상황에 대해 좀 더 알고있는 부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비판과 정명> 서문에 썼듯이 방세를 ’정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2. <비판과 정명>에는 단행본으로 묶이지 않은 리영희의 글이 망라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매 글마다 최초발행 년도, 매체, 재수록 매체 등이 정리되어 있어서 각 글마다의 출생기록 포함 이력서가 첨부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특히 <우상과 이성>은 판이 달라지면서 수록 내용이 바뀌는 걸 추적하셨는데 <우상과 이성> 변천사를 부탁합니다.


<우상과 이성>은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리영희 선생님의 ‘분신’과 같은 저서라 할 수 있습니다. 1977년 11월 21일 초판이 나왔고 1980년 3월 10일 ‘증보판’이 나왔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우상과 이성>이 나온 직후인 1977년 11월 23일 남영동에 있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가 12월 27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됩니다. <8억인과의 대화>와 <우상과 이성>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우상과 이성>에서 검찰이 문제삼았던 글은 「다나까의 망언을 생각한다」 「모택동의 교육사상」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찬 박군에게」 등이었습니다. 「다나까 망언」이 친일파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라면 「모택동교육사상」은 적성국가 수괴와 제도에 대한 고무찬양 혐의를 들씌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상과 이성> 초판은 곧바로 판매금지가 됩니다. 이틀 살고 간 셈이죠. 저자나 출판사나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 선생은 박정희가 암살된 후 1980년 1월 9일 출소합니다. 당시 리 선생은 책을 다시 내고 싶은 생각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집요하게 리 선생을 설득합니다. 암튼 김 사장과 잘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우상과 이성>은 신군부체제에서 <증보판 우상과 이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물론 재판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글이나표현을 삭제하거나 변경되었죠. 이 ‘검열판’<우상과 이성>은 1980년대에만 10만 권 이상 판매됩니다.



<우상과 이성> 초판



최영묵 교수가 중고책방에서 발견한 <우상과 이성> 초판. 공안관계자가 소지하고 메모했을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3. “그러한 억압과 억압자의 독액(毒液)이 우리의 뇌와 사고의 골수까지 빠져들었을 때 그 독액을 품고서 올바른 사고 하나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정복자가 되는 일이었고 전능한 경찰이 우리들에게 침묵을 강요하였기에 우리들의 말하는 한마디는 근원적인 선언과 다름없었다. 그것은 고귀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쫓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거동은 모두가 참여(engagement)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2005년 <대화>출판기념회에서 독자에게 사인하고 있는 리영희


3.리영희 선생은 2005년 <대화>출판기념회에서 떨리는 손으로 사르트르의 <침묵의 공화국>(당시는 착오로 '겨울 공화국'이라고 소개합니다)을 들고 위의 내용을 읽어 내려갑니다. 선생님은 저서에서 리영희에 대한 몇 가지 열쇳말 중의 하나로 '자유'를 들고 있습니다. 리영희에게 자유는 무엇이었나요?



리영희 선생에게 있어 자유란 실존의 근거이자 지성의 바탕입니다. 자신을 자유인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자유인이란 지적 노력으로 무지와 몽매와 미신의 굴레를 벗어던진 사람입니다. 리 선생은 서양 역사에 등장하는 자유인의 표상으로 소크라테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꼽은 적이 있습니다. 리 선생에 따르면 자유인이 아니면 지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지식인이란 자주적 정신과 양심에 의거하여 인류의 보편적 이상에 복무하는 ‘자유인’이기 때문입니다.


리 선생이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근 50년간 치열하게 언론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고 김종철 선생은 자유인으로서 ‘자유’를 행사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리영희에게 자유는 양도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권리이고 자유가 없는 노예의 삶은 죽음보다 못한 거였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퇴행의 시기를 맞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도 상당수의 지식인/언론인이 스스로 자유를 버리고 ‘자본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自由人, 자유인: 리영희 교수의 세계인식>이라는 저서를 낼 이야기입니다. 이미 <自由人>이라는 제목으로 한 변호사의 자서전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리 선생이 자신의 저서를 <자유인>으로 쓰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리 선생은 제목을 <自由人, 자유인>으로 변경하여 출판을 강행합니다. 이렇듯 리 선생은 자유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기 때문에 ‘자유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꼭 내려 하셨습니다.


4. 리영희 선생은 수업시간에 <게마인샤프트 게젤샤프트>를 교재로 썼다고 했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강의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도이치 이데올로기>도 수업교재였다고 했고요. 리영희 선생이 중국혁명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건 인간 공동체의 제3의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리영희가 수업시간에 보여준 또는 리영희의 글과 개인적인 만남에서 느낀 공동체에 대한 이상, 꿈 인간관계에 대한 소망이라면 어떤 걸 느끼셨나요?



돌이켜보면 리 선생은 동심에 젖은 이상주의자 기질도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의 개념과 속성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상당히 이론적인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하게 설명하면서 즐거워하셨던 기억입니다. 리 선생님에게 공동체주의, 게마인샤프트, 사회주의는 상당히 호환성이 있는 개념이었습니다. 특히 초기 마르크스주의에 상당한 심취하신 면이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사회주의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셨던 것 같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는 상황에서도 마르크스 초기 사상의 의미를 강조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나오는 저널에 기고도 하고, 농촌운동을 하던 학생들에게 편지글을 쓰거나 주례를 서기도 하셨죠. 원주에서 ‘공동체’를 일구고 있던 장일순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고 따랐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 <리영희 함께 읽기>에서 홍윤기가 ‘영향으로서의 리영희'를 논했다면 선생님은 '방법으로서의 리영희'를 말하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무소속, 경계, 현장, 격려저널리즘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데요, 리영희를 방법으로서 사유하는 것의 내용을 설명해주시지요.


언론학 영역의 유명한 이론 중 하나가 ‘미디어는 메시지다’입니다. 미디어 형식과 내용은 구분할 수 없다는 거죠. 가령 동일한 이야기라고 해도 리영희가 하는 것과 유홍준이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달리 전달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리영희는 리영희식의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엄혹한 시대에 독보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겁니다. 리영희 선생님 메시지의 힘은 사실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전해주는 전투적 계몽주의자 역할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철방’에 갇힌 상황에서 리선생이 그런 계몽자, 선지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비판과 정명>에서는 ‘방법’으로서의 리영희의 실마리를 치밀한 사전 전략(시뮬레이션), 실용성과 현장주의,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경계인, 끊임없는 역지사지와 돌아보기에서 찾아보려 했습니다.


6. 선생님은 리영희에 대한 열쇳말 하나로 또한 '정명'을 들고 계십니다. 하나의 단어는 그것과 연관된 한 무더기의 계열화된 단어들을 끌고 다니지요. 선생님이 썼듯이 중공이란 말에는 기아 전쟁광 죽의장막 강제노동수용소 이런 것들이 따라 나오듯이 말이지요. 리영희가 정명을 통해서 이루려 했던 것과 좀 어렵지만 지금 정명 되어야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명이란 일단 이름을 바로 부르는 겁니다. 단지 어떤 단어를 쓸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범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리영희에게 저널리즘은 비판이고 정명이고 실천입니다. 리영희에게 비판이란 사물과 사상의 화려한 외피를 제거하고 본질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비판의 다음 단계가 이름을 바로잡는 일, 즉 정명(正名)이죠. 이렇듯 정명은 우상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꾸는 실천의 고리입니다. 지금 당장 정명을 해야 할 것으로 꼽아 보자면 친일족벌언론(민족지), 기레기(기자), 허위 조작정보(부실기사), 검비(검찰), 법비(법관), 반민족이권동맹(보수정당)....


7. 선생님은 6/2일 부터 진행하는 2022리영희클럽 리영희와 현장 에서 첫 번째 강의를 맡아주셨습니다. 책에서도 여러 곳에서 언급하셨지만 선생님이 생각하는 리영희 저널리즘의 알맹이 두 가지만 말씀해 주신다면요.


제가 ‘리영희 전기’ 제목을 비판과 정명이라고 했던 것은 ‘비판’이라는 말과 ‘정명’이라는 말이 지식인 리영희 사상의 고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대의 저널리스트 리영희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면 핵심 개념은 현장과 실천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장의 소리를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이고, 동시에 저널리즘은불의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지식인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8. 재단 이사로 그동안의 소회와 앞으로 리영희재단을 통해 하거 싶은 일은 어떤 건가요?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에도 선생님과 관련한 일에서 저는 언제나 ‘조교’였습니다. 그때그때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나름 노력은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이사님들이 리 선생님과 함께 일했던 동료나 후배분들이어서 제가어떤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것도 없이 나름 10여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최근 젊은 이사님들이 몇 분 들어오시니까 재단에 활기가 넘치는 느낌입니다. ‘올드 이사’로서 젊은 이사님들과 함께 재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긴 시간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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