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재단은 새로운 전환시대를 맞아,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열린 강좌를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 확장을 위하여 노력해 온 많은 민주주의자들과 더불어, 국내외의 다양한 실험을 탐구하고 나아가 현실적 적용가능성을 탐색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리영희 저널리즘 스쿨 2022] 8강 리영희 선생과 나_손석희
고전이 갖는 현재성이란 이런 게 아닐까라고 말하면서 손석희 선생은 2009년 12월에 했던 리영희와의 인터뷰 녹음본을 들려주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리영희가 자신의 생활원칙으로 소개한 simple life, high thinking. 강사는 베를린에서 훔볼트대학 정문 양옆에 길게 내걸린 인권 피해자 사진들을 보면서 이게 ‘high thinking’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어디서도, 심지어 대학조차도 인간과 세계의 문제를 고민하고 가르치고 배우기보다 자기 이익 또는 자기 진영의 주장만을 강화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겹쳐 보인 듯하다. 강사는 지금의 고착화되어가는 양 진영으로의 분열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는데 high thinking을 인용하면서, 리영희의 ‘양끝에서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 깊은 곳에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는 글을 소개한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의 글을 읽고 감옥에 가거나 죽기도 한 사람들한테 한 말씀 해달라는 말에 리영희는 독자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말했다. 강사 손석희는 그렇게 말하는 것에서 끝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덧붙여지는 리영희의 말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인터뷰 방송 요약본에는 없던 이어지는 말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건 운명이다. 나도, 그들도 피할 수 없었다.”
성문과정 군자치지(聲聞過情 君子恥之). 리영희가 ‘사상의 은사’라는 세간의 평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것은 그가 태생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타자화하고 객관화하려는 노력, 습관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강사는 리영희 인터뷰 중의 이 말을 한 번 더 소개하면서 본인이 자신에게 견지하려는 원칙이기도 하다고 한다.
강의 후 지금의 방송 현실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손석희 사장은 공영방송이 공영방송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방송의 기준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라고 짧게 답하면서 본인은 요즘 현실정치에서는 좀 거리를 두고, 기후위기 문제나 세계적 규모의 인플레이션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이 간다고 질문들을 정리했다.
리영희와의 인터뷰는 산본 자택에서 진행돼서 시간을 알리는 뻐꾸기시계 소리가 인터뷰 중에 그대로 들린다. “저 뻐꾸기는 밤에도 웁니까?”라는 손석희의 질문에, “신통해, 밤에는 안 울어”라고 리영희는 답한다. 손석희는 “그런데 리영희 선생은 밤에도 운 사람이었을 겁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수강생 강좌 후기 | '리영희 선생과 나' 후기
박승호(리영희 저널리즘스쿨 2022 수강생)
지난 상반기의 리영희클럽 2022의 강의들이 너무 좋았기에, 이번 리영희재단 저널리즘스쿨 2022는 그야말로 믿고 신청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동안 내가 만나보고 싶었던 분들의 강의가 세 번이나 포함되어 있어 더욱 기대되었다. 그러나 개인 일정상 많은 횟수 참석하지 못하였고, 좋은 강의들을 놓친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중 강사가 공개되지 않았던 강의를 ‘손석희 사장’이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다행히 일정이 맞아 그 강의를 늘 함께 듣던 친구와 참석해 들을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가장 앞자리 손석희 사장 바로 맞은 편에 앉아 들을 수 있었다. 늘상 TV 속에서만 보던 분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게 되다니! 무언가 벅찬 기분이 들었다.
손 사장께서는 리영희 선생과 당신의 개인적인 인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가장 먼저 말씀해주신 것은 본인이 MBC노조에서 교육부장을 하던 시절 리영희 선생께 강의를 부탁드렸던 에피소드였는데, 그 이야기를 통해 리영희 선생의 깐깐하고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이번 강의의 중심이 되는, 손 사장이 MBC 라디오 <시선집중>을 진행하던 시절에 리영희 선생을 인터뷰했던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2009년 12월 당시의 라디오 방송을 20분가량의 편집본으로 들었는데, 그 속에는 지금도 적용되는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인상적인 이야기가 많았지만 몇 가지 나열해보면, 지성인-지식인의 구분, 진보-보수의 초월, 좌도 우에서 배우고 우도 좌에서 배워야, 심플라이프(simple life)-하이씽킹(high thinking), 엄청난 독서량, 집단보다 개인이 중요함, 충고할 자격이 없다 정도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고도의 전문지식만 가진 ‘지식인’이 아닌 사회공동체에 관심을 가진 ‘지성인’이 되어야 하며,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을 파악하기보다 그것을 초월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또 역사적 분열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좌우익은 둘 다 서로에게 배워야 하며, 국가는 좌우 양 날개로 날아야 한다. 허나 지금은 우익의 날개만 많이 커져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현재의 시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생활태도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무척 많았는데, 리영희 선생은 80평생 심플라이프(검소한 생활)-하이씽킹(이념적으로 사고를 높이 하는 것)을 신념으로 살아오셨다고 한다. 평소 심플라이프도 하이씽킹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부끄러움과 경외감이 드는 이야기였다. 또한 인터뷰를 하던 2009년 당시에도 <레미제라블>을 원서로 다시 읽으셨을 정도로 평생 엄청난 독서량을 가지고 살아오셨다고 하는데, 요즘 점점 더 글과는 멀어지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다. 인터뷰의 마지막 내용은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는 충고였는데, 그 전제는 ‘충고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대가 10~20년 사이 휙휙 변하고,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본인이 경험한 걸 가지고 충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자신의 충고를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전제하에 충고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인터뷰를 들은 후에는 거기 다 담기지 못한 내용을 손 사장의 생각까지 더해 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몇 가지 추려보면, 오바마와 노무현, 안 쓰는 두 단어(지식인, 지도자), 聲聞過情 君子恥之(성문과정 군자치지) 정도가 있다. 우선, 오바마와 노무현을 살펴보면 둘은 각각 미국사회와 한국사회가 소화해내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손 사장은 말했다. 두 사회가 두 대통령을 소화해내지 못했기에 이후 분열이 극단화되었고 그런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었는데 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지식인, 지도자라는 두 단어를 결코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지도자에 관해서는 민주사회에서 지도자라는 게 있을 수 없기에 안 쓴다고 선언까지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리영희 선생이 하신 말씀 중 ‘성문과정 군자치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치면 군자는 그것을 부끄럽게 안다’라 했다. 리영희 선생은 정말 그런 사람이었고, 손 사장 본인도 그러기 위해 항상 그 말을 새기고 있다고 했는데, 나 또한 그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직접 만나본 손석희 사장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생각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잘 정리해서 말할 수 있고, 거기에 재미까지 겸비한 사람이라 느꼈졌다. 리영희재단 덕에 이런 좋은 기회를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무척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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