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대 미디어와 저널리즘’  참관기 - 희망의 조각을 찾아서 / 박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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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4-10-31 19:19
조회
293

‘전환의 시대 미디어와 저널리즘’  참관기


희망의 조각을 찾아서



 


 


박채린 (<뉴스어디> 대표)


‘전론(논)이 뭐지?’


“내일 전론 50주년 토론회 일정인데 혹시 참관하고 글 하나 쓸 수 있는가?” 은사님의 제안을 받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알았지만 <전론>으로 줄여 부르는 줄은 몰랐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무도'가 생각났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예능 프로그램 시청자를 보면 “사고정지증 환자를 보는 듯한 딱한 심정이 되어버린다”(텔레비전의 편견과 반지성)라고 적으신 게 떠오르긴 하나, 예능 <무한도전>의 그 ‘무도’가 맞다. 학창 시절 우리의 즐거움이었던 ‘무도', 내 또래는 스스로를 ‘무도세대’라 칭한다. ‘전논’도 비슷할 것 같다. 학창 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한 ‘전논', 그래서 ‘전논'이라는 줄임말이 더 익숙한 ‘전논세대’가 ‘다시, 전환의 시대’의 저널리즘에 대해 어떤 ‘아이디얼(ideal)’, 어떤 ‘실천적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지 궁금해하며  창비로 향했다.



참관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다시, 전환시대를 맞으며'라는 현수막 아래서 나올 거라고는  예상 못한 발언들이 나와 실망스러웠다"이다. 이날 토론회 제목은 ‘다시, 전환시대를 맞으며'이다. 전환시대를 맞는 게 어렵다고 토로하는 자리가 아닌, 전환시대를 잘 헤쳐 나가기 위해 중지를 모으는 자리여야 했다. “좀 더 아이디얼리스트가 되자는 것”, “오늘의 이 현실을 수정하지 않으면 내일의 현실이 우리를 구속할 것”이라는 <전론>의 재해석과 발전적 고민이 주된 논의여야 했다.


“열정적인 기자, 굉장히 능력 있는 국장 간부와 그리고 비전 있는 경영진이 우연히 한날한시에 한 자리에 만났을 때 저널리즘의 성공 사례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과 꿈을 갖고 있습니다. 될지는 모르겠어요. 하여튼 그런 모델이 많이 나오고 성공했으면 좋겠고요"


지금보다 더 나은 저널리즘을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말로 들렸다.


“리영희 교수님께서는 박정희 정권의 탄압이 너무 컸기 때문에 언론사의 수익 구조라든지 언론사의 경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영세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언론의 물적 토대가 강하면 그 정파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구매자로부터 직접 돈을 얻는 구조가 형성된다면 기업에 대해서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봅니다"


맞는 말이다. 쳇GPT도 “한국 사회가 더 나은 언론을 못 만드는 이유가 뭐니?”라는 질문에 ‘수익 구조의 문제'를 꼽는 걸 보니 이미 관련 데이터도 인터넷상에 차고 넘치는 듯하다. 지금쯤이면, <전론> 50주년 기념 토론회라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하게 되기까지 어떤 시도를 했는지, 실패와 실패 그 이후는 어떠했는지 이야기할 때가 아닌가. 시간 제약 탓도 있었겠지만, 이날 토론에서는 실패, 실험 이야기 같은 건 없었다. 이를 지적하는 발언이 있었다.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본산인 미국 같은 데서 시도됐던 수많은 저널리즘 이데올로기, 예를 들어 프리시전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되게 정교한 저널리즘 내지 탐사 저널리즘 같은 것도 그 일환이고요. 뉴 저널리즘도 있고요. 피스 저널리즘, 공공 저널리즘, 협력 저널리즘도 있습니다. 이 수많은 것 중에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는데, 한 100개쯤 되는 목록 가운데 늘어난 한국 저널리즘 매체가 실험하고 있는 건 뭐냐, 저는 몇 개  없다고 생각합니다”  


100개의 저널리즘을 실험하고 도전하는 과정이 한국 저널리즘에 있었다면 무엇이 바뀌었을까. 토론자가 말한 ‘몇 개'의 도전은 무엇일까.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를 애써 떠올려봤다. 첫째는 나를 시민기자로 만들어준 오마이뉴스의 도전이다.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한 캠프에 처음 기사를 써봤다. 생나무(채택되지 못한 기사)가 되긴 했지만, ‘내가 주목한 게 기사가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걸 경험했다.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 이 도전도 <전론>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이 나라의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이보다 차라리 공장노동자나 농사꾼이나 지게꾼이 뭣인가를 느끼고 분발해서 기자가 될 수 있는 길이 트여 있었다면 우리의 기자 풍토가 오늘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기자풍토 종횡기」)


또 다른 경험은 한겨레 ‘큰 지킴이'다. 한겨레를 응원하는 시민 모임을 ‘큰 지킴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학원 국어 선생님이 큰 지킴이셨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한겨레에서 큰 지킴이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는데, 선생님은 한겨레 기획위원을 역임한 홍세화 선생님과 우리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놀랍게도 홍세화 선생님께서 서울에서 학원이 있는 부산까지 오셨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은 안 난다. 그런데 그 이후의 변화는 생각난다. 나는 한겨레를 읽고 지지하는 10대가 되었다. 이 경험도 <전론>과 관련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토론회의 이 발언을 들으며  떠올렸다.


“전환시대의 논리이기도 하지만 전환시대의 운동 논리로서 결과적으로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중략) 새로운 실험 그리고 새로운 문제의식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내는 그런 힘입니다. (중략) 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저는 왜 중요하다고 보냐면 당시 저널리스트들이 자기 스스로 성찰하는 힘이 굉장히 강력했고 그걸 실천하고자 하는 나름의 자생적 노력들이 있었고 거기에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시민적 지지가 결합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나는 한국 저널리즘의 도전 덕분에 언론에 관심이 많은 성인으로 성장했다. 언론의 도전과 함께 성장한 시민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저널리즘을 공부할수록, 뉴스를 뜯어볼수록 언론에 기대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아졌다. 나의 시야는 과거보다 넓어졌는데, 언론은 머물렀다. 50년 전 <전논>이 지적한 언론의 핵심적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다고 패널들도 입을 모았다.


“당시의 이야기들이 50년 전의 이야기들인데도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 거의 대부분 유효하다는 것이 좀 부끄러웠습니다. 특히 현실에 빠지지 말고 아이디얼리스트가 되라든지 추종을 능사로 삼지 말라, 객관적 보도에 건전한 주관을 더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와 지금 언론 상황, 특히 기성 언론을 이야기하면 그 「기자 풍토 종횡기」 이런 거 보면 그때랑 지금이랑 달라진 게 없고 한국의 언론 환경, 미디어 생태계 하나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정말 비참한 이야기죠”


언론이 영리 기업화되고 있다는 지적, 사익 추구에 더 골몰한다는 비판은 오래됐다. 그럼에도 나아진 게 없고, 의미 있는 시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수익 구조 문제에 관해 ‘독자 탓’, ‘포털 탓’만 나온 것도 실망스러웠다. “독자들은 돈을 안 낸다”, “한국의 언론사가 낙후되고 영세하고 보잘것없다면 우리 사회의 역량과 사회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들처럼 취재하면 한국에서 그 기자는 잘린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서운한 말이다.


나는 차별화된 기사를 내놓는 매체에 나의 너무 작고 소중한 용돈과 월급을 떼어내 장기간 후원했다. 이 매체는 포털에 많은 기사를 내지 않는다. 언론사 대신 시민단체에도 후원을 시작했다. 지역언론 보다 더 열심히 지역 문제를 파고들고, 변화를 만들고 있는 시민단체다. 이 단체는 전국을 다니며 순회 토론회를 하고, 지역민들과 조례 제정 운동을 펼친다. 한 기성 매체의 구독을 중단했더니 전화가 왔다. 정부 광고가 줄어 힘들다며 조금만 더 신문을 봐달라고 했다. 포털에서 공짜로 기사를 볼 수 있어 구독을 연장 안 한 게 아니다. 나의 한정된 자원 안에서, 그 역할에 나름의 우선순위를 매겨 작은 돈이나마 보탠 것이다. 6년 동안 50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퓰리처상을 받을 만한 그런 기사를 내놓는 그런 언론사가 아니라서 돈을 내지 않은 게 아니다.  


언론사 사내에 벤처 붐이 분다는 기사 제목을 보고 기대감을 갖고 클릭했었다. 독자인 내 눈에는 피고용인을 위한 새로운 도전 기회, 고용주를 위한 새로운 사업 모색 기회 정도로 보였다. 부정적으로만 볼 순 없지만, 더 나은 저널리즘, 더 많은 독자와 무언가 해보려는 게 주를 이뤘을 거라는 기대는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이 토론회에서 그나마 몇 가지 의미를 찾는다면  첫째로, 그럼에도 한국 저널리즘에서 <전논>으로부터 시작된 어떤 실험이 진행 중이고, 그것이 시민에게 공유된 점이다.


“저희들은 나름대로 지금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데, 듣기에는 조금 당황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희들이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 언론인들이 기성 시스템에 포획되지 않고 새로운 방식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형식으로 우리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어떤 언론 모델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중략) 결국 리영희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는 그런 사업이기도 하다 그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 프로젝트’를 잘 안다. 참여도 하고 있다. 내게는 이 프로젝트가, 자본이 짜놓은 판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한계를 타파하고자 나온 “아이디얼"하고, 과감한 “실천적 행동"으로 보였다. 성공은 못 하더라도, ‘성공의 어머니'는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년 전 대학생 7명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원래 주제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이 프로젝트로 흘렀다. 공통된 반응은 ‘생각도 못 해봤다, 그런데 독립언론 100개가 생기면 뭔가 달라져 있을 것 같다' 였다. 이후 우리는 원래 주제는 잊고 이 프로젝트에 대해 말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프로젝트의 의의에 공감한  7명 중 누군가가 또 다른 도전을 해보길 기대하고 싶다. 혹은 이날 토론회에서 함께 한 청중 중 누군가가 도전해 볼 거라 믿는다.


두 번째로, ‘공공의 역할'이 대안으로 제시됐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은 이제는 없어진 게 맞다라고 저는 솔직히 생각할 정도로 되게 처참해졌거든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처참해진 게 아니라 제도의, 제도 자체의 본질이 훼손됐습니다. 새로운 제도를 구축해서 뭔가 모색하지 않으면, 사장 뽑는 방식 연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인간들이 공영 언론에 들어오게 만드는,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공적 언론인으로서의 목표를 삼게 만드는가부터 전면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중략) 국가의 도움을 얻건, 공공의 도움을 얻어 그 자본으로 뭔가 시도하는 건 필수적인 일입니다”


“계속 내버려두면 한국의 언론은 더 정파적이 되고 더 영세적이 될 겁니다. 이것을 제거하는 것은 공공의 역할입니다. 공공의 역할이 포털의 기준을 바꾸게 해야 되고, 훨씬 더 객관적인, 훨씬 더 선정적이지 않은 언론에 보상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공공이 이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언론은 점점 더 황폐화될 것이고 기자들은 떠날 것입니다"


공공에는 국가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언론도 포함돼 있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이 이토록 빠르고 쉽게 이뤄진 데에는 이 세 주체가 더 나은 언론을 위해 힘을 더 이상 모으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법이 있어도 예외가 용인되고, 시민의 분노가 있어도 모이지 못하고, 언론이 탄압을 받는데도 이를 보도하는 언론 조차 문제 의식이 없다. 전논의 다음 토론회에서는 공공이 언론 문제에 있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간 어떤 시도와 실패, 성공을 만들었는지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뉴스어디>는 <뉴스타파>가 시작한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미디어 전문 비영리 독립매체. 좋은 보도가 인정받는 상식적인 언론 생태계, 독자의 신뢰에 기반한 '돈'으로 굴러가는 언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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