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제로섬적 대결구조에서 경제전쟁으로」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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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1-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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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로섬적 대결구조에서 경제전쟁으로」(1993년, 『좌우』)


-전환기 동북아정세의 성격과 남북관계1)

지난 몇 해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진행 중인 전 세계적 변화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세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에서부터 긴 역사적 퍼스펙티브의 방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아야 한다. 눈앞의 변화에 휩쓸리고 긴 안목을 잃어버린다면, 그 속에 있는 본질과 전모, 그리고 역사적 전망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나는 21세기를, 프랑스혁명의 이상이 200년의 격동 끝에 실현의 단계로 다가서는 ‘제4의 변혁’의 시대로 본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사적인 대변혁은 길게 볼 때 근대사회의 첫 인류사적 변혁이었던 꼭 200년 전의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긴 억압의 계급적 사회에서 인간을 해방하기 위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과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정치적 대변혁과 함께 19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물질적 생산력의 놀라운 고양, 즉 산업혁명과 맞물려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인류사적 변화를 일으켰다.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아야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놀라운 역사적 대변혁은 바로 그 자본주의의 모태에서 생성된 자본주의의 구조적ㆍ내면적ㆍ본질적 모순에서 제기된 두 가지 대사건이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후진국러시아 사회에서 레닌에 의해 이루어지는 무산자혁명, 볼셰비키혁명은 두 번째의 거대한 역사적 대변혁이다. 이제 인류사의 거대한 강줄기의 한 부분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상을 지향하는 무산자계급의 폭발적 에너지로 발동함으로써, 인류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커다란 강줄기로 나뉘어져서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지배적 조류 속에서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무산계급의 이상주의적 사상과 정치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세력과 에너지가 발동되었는데, 그것이 파시즘이다. 1920년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서부터 독일의 히틀러, 스페인의 프랑코,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중국의 장개석, 일본의 천황주의에 이르기까지 후발자본주의를 휩쓴 ‘파시즘’이라는 흉물이다.
21세기로 넘어서면서 대항적 체제로 탄생한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의 쌍생아였다. 여기서 자본주의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쌍둥이 자식인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목숨을 건 투쟁 속에서 어느 쪽인가의 편을 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본래적으로는 파시즘이 자본주의의 본령이지만, 자본주의의 쌍생아 중 더 난폭하고 위협적인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일시적인 전략 전환을 선택하면서 공산주의와 손을 잡고 파시즘을 타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으로 해서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파시즘은 사라졌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아들인 사회주의의 이념과 이상주의는 그것의 현실적 타당성으로 해서 전 세계적인 힘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서부터 세기말에 이르기까지의 근 100년의 역사는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와 공산주의라는 아들이 목숨을 건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위기

이제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생성시킨 막강한 물질적 생산력을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즉 항시적이고 총체적이며 제도적인 조직화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행복, 생존양식 등 각종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흐름은 거의 20세기 초부터 최근 몇 해 전까지 인류사의 거대한 맥을 이루면서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두 개의 체제ㆍ집단ㆍ이념ㆍ가치관ㆍ생활방식의 구조적 갈등구조를 통해 지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공산주의가 이룩하고자 한 이상향이나 그것이 동원하려 했던 수단과 방식은 인간 개개인의 본질적인 인간성이라 할 수 있는 자유의 추구, 개인의 소유욕의 표현인 무한한 물질적 생산과 부의 축적 본능에게 패배하고 만다. 이것이 몇 해 전 우리 눈앞에서 전개됐던, 프랑스혁명 이후 세 번째의 역사적 대변혁이다.
마르크스가 구상하고 레닌, 스탈린이 실천적으로 적용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가치관과 방식은 앞서 언급한 배경과 이유로 인해 부정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만족할 만한 제도와 이념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첨병이자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미국 사회를 볼 때 자본주의 또한 이미 중병에 걸려 있는 상태다. 그 중병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의 제도와 구조, 인간 생존양식의 골수에까지 파고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정치제도와 생산방식으로서의 사회주의는 환상으로 끝났지만, 사회주의가 지향하고 인류 모두에게 제기했던 많은 이념과 가치, 인간다운 사회와 생존양식이라는 가치는 병든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불변의 처방효과로 남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주의의 ‘제도적’ 붕괴를 보고 ‘자본주의의 승리’로 단정하면서 갈등의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생각 없는 지식인들은 후쿠야마의 아류가 되어 ‘역사의 종언’을 신의 계시처럼 복창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제도로 변혁되는 ‘새 역사의 시작’이 바로 ‘21세기의 역사’라고 나는 보고 있다.

민족주의의 부활

또한 현재 세계는 민족주의의 부활로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 해체된 소련 제국의 판도 위에서 피비린내 나는 민족주의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고, 유럽국가뿐만 아니라 중동아랍지역, 아프리카지역에서도 역시 민족적ㆍ인종적 갈등이 고양되고 있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었다고 믿었던 부르주아 민주주의국가인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에서는 극우 파시즘의 리바이벌도 나타나고 있다.
구소련 제국의 판도에서 일어난 민족주의의 분출은 스탈린적 민족정책의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스탈린은 민족이라는 인간의 독특한 집단적 생존체의 고유한 특성과 에너지를 무시하고, 무산 프롤레타리아라는 ‘국제주의적 동질적 존재’의 계급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려고 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 민족의 특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노동계급으로서의 하나의 거대한 국제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계급의 에너지보다도 더 끈질기고 더 뿌리가 깊으며, 더 감성적인 민족주의를 인위적으로 억압했기 때문에 소련 제국의 해체 후의 공백기에서 비로소 민족주의의 자기존립 시대가 온 것이다.
한마디로 오늘날 세계정세의 특징은 일면으로는, 세계주의 혹은 국제주의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인위적인(냉정적인) 양극체제하에서 편입되었던 민족주의의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고, 다른 면에서는 반대로 EC, 북미 자유무역협정 등 모든 지역에서의 블록화 추세 속에서 민족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지역통합 경향이 상충하는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정세는 결말을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인류사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지구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정세의 불안정 요인

먼저 북쪽의 국가들, 즉 구소련(러시아), 중국, 북한의 경우 각자가 추구하는 방식이 일관된 형태로 저마다 역할을 하면서 전개될 것 같다. 북방지역의 질적인 구조변화는 적어도 20~30년 정도 오랜 기간을 요할 것이다. 변화는 지속적이고 단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대단히 장기적인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관심인 남쪽, 즉 한반도의 이남과 일본, 미국 또한 불안정한 요소가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 내의 모순이 골수에까지 미친 상태인데, 아직도 미국은 경제력, 군사력으로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을 지배하려는 존재다. 미국은 여전히 대결주의적 본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진영에 이겼지만, 자신 또한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미국은 중동전쟁 이후 소위 ‘신세계질서’를 자신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구축하려고 한다. 미국의 ‘신세계질서’ 구상은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 즉 군사적 헤게모니하에서 미국의 이익에 합치된 형태로 세계질서를 고쳐나가는 것을 말한다. 클린턴 정부든 또는 어떤 대통령의 정부든, 미국이 진정으로 지구상의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것이 환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본은 당분간 중국, 북한, 베트남, 캄보디아 등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동북아 태평양지역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 예상되나, 미국의 현저한 군사적 패권주의의 대리 역할은 계속되리라고 본다. 이러한 일본의 역할은 미국과의 협동적 군사체제를 통해서 가능하다. 미일관계는 부분적인 경제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구소련 제국과 중국 내의 변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이 미일의 이익에 합치되는 상태로 완결될 때까지(그렇게 된다고 가정할 때) 동북아시아에서 냉전시대의 군사태세와 전략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의 구조적 변화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변화요인은, 구소련과 중국의 ‘시장경제화’를 통한 대변혁이 남북한에 직접 작용하는 효과다. 기존의 남북 대립적 구도 속에서 북한의 보루이자 후원자였던 중국이 이질적인 존재로 변화함으로써 북한의 내외적 불안요소가 증대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보다는, 미국의 이른바 ‘신세계질서’라는 패권주의의 일환으로서 북한의 전면적인 굴복과 정권 해체를 목표로 한 대북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데서 생기는 불안요인이다. 그것은 미국이 소련에 대해 무제한적인 군비경쟁을 강요하여 소련의 물질적 생산능력을 완전히 파탄시켰던 방법으로, 경제적으로 우세한 남한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격차 폭을 더욱 증대시켜서, 동시에 그 바탕 위에서 한국의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증강시킴으로써 북한에 대해 무제한적인 군비경쟁을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편승한 정책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 본다.

냉전적 흡수통일 불가능하다

구소련과 중국의 남북한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한러 수교와 한중 수교에서 볼 수 있듯이 냉전시대의 흑백논리에 입각한 전면적인 상호부정과 대립이라는 ‘제로섬적인’ 대결구조는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한국 수교에서 보여지듯이 정치ㆍ이데올로기의 요소보다는 경제적ㆍ물질적 요소가 결정적인 규정력을 갖고 그 어떤 요소보다도 상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미 구소련 및 중국의 남한과의 관계는 북한보다도 더 근접했다. 이 상황변화는 남한에게 유리하지만, 이에 대응할 북한의 몸짓을 정확히 진단하기는 아직 어렵다.
남북 인구 내부에서도 통일의지와 실천이 상당한 정도로 합의되었고 진행되고 있다. 남북한이 전쟁에 의하지 않는, 일정한 합의 기반을 가지는, 돌발사태를 배제한 점진적인 형태의 통일방식이 요구된다. 다만 문제는 어느 쪽이 우위에 서는 통일방식이냐이다. 물론 답변은 뻔하겠지만, 구소련이나 중국은 인접한 국가의 안전을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원치 않을 것이다. 독일통일의 경우처럼 북한의 체제붕괴와 같이 한반도에서의 ‘힘의 진공’상태가 갑자기 발생해서 준비 없이 휘말리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한 기간을 두고 한반도에서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서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그 속에서 어느 쪽 체제가 우월하건 그들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은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민족 내적 합의와 단결이 절실할 때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분단민족 내부의 평화적 생존양식에 대한 합의와 실천의지다. 모든 문제에 대해 주변 강대국들의 작용이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강대국 중심의 관점보다는 우리의의지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남북관계에서의 긴장완화 노력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미국의 헨리 키신저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소련, 중국 등의 사회주의국가들과 남북한에 대한 교차승인을 제창한 바 있다. 오늘에 이르러 소련은 국내의 정치적 불안으로 다급하니까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한과의 국교정상화를 단행했고, 중국은 미국ㆍ일본의 북한 승인을 전제로 남한과의 수교를 결정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끝까지 몰아붙여서 수교하는 것을 정책기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ㆍ일의 북한에 대한 승인과 수교는 아직 결실을 맺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지목, 적극 공세를 취하고 있어 동북아지역에서의 불안전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첫째, 이미 남북한이 쌍방을 승인하고 UN 동시가입도 이루어진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도 북한에 대해 국가승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분명한 입장이 요구되는 남북한의 국제적 상황이다.
둘째, 현재 남한의 군사비는 북한의 약 2배 이상(남한 약 110억 달러, 북한 약 40억 달러)으로 그 격차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북한과의 합의에 의한 새로운 관계발전 양식을 제안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소련에 대해무제한적 군비경쟁 추구로 소련의 물적 토대를 파탄시켰던 방법으로 북한의 경제위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골목에 몰린 고양이 앞의 쥐’처럼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아주 위급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바로 최근 북한이 IAEA의 핵사찰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 것도 단순한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중국과 구소련의 핵 군사적 보호가 철회된 급격한 국가안보의 위기에 대한 자위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제한 군비경쟁 중단해야

셋째,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자 한다면 그것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핵무기를 갖고자 했던 논리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미국이 군사적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독자적인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박정희 정권의 논리와 다름없다. 더구나 소련 및 중국과의 군사동맹이 사실상 해체되고 경제원조도 거부되고 있는 마당에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우월한 군사력과 미국이라는 세계적인 군사대국의 위협 앞에서 어떤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무기를 개발하려 했다 하더라도 당연한 대응조치가 아닐까? 10배나 되는 남한의 압도적 경제력과 무제한적 군비경쟁 정책에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군사적 대응 노력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저렴하고 질적 효과도 있고 ‘정치적 힘’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한반도 국제정치 지형에서 위력적인 외교카드로 이용될 수 있는 핵무기의 독자적 개발은 북한으로서는 최선의 정책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넷째, 결과적으로는 남한만이라도 미국의 월등한 군사적 보호를 누리는 토대 위에서 무제한적 군비경쟁 정책을 스스로 중지하는 의사를 분명히 표명함으로써 위기구조를 완화할 수 있다. 최소한 2~3년 내에 군사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가 나와야 한다. 북한의 공포, 두려움, 위협을 제거하는 그 같은 조치로 북한의 핵무기정책의 백지화 내지 수정을 유도해보는 시도는 가치가 있다. 이것은 남한 자체로 봐도 이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군비(軍費ㆍ軍備)감축은 남북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전환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국가 내부의 왜곡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곳곳에서 투영된 비생산적인 군사통치체제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의도처럼 남한의 공업력과 군사기술 수준으로 대규모 군수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면, 남한은 결국 날로 커지는 미국의 ‘무기시장’이면서 동시에 ‘무기상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남한이 북한에 대해 군사력 우위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면 결과적으로 미국-일본의 군사동맹체제내의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민족 내부의 문제가 외국 군사력에 힘입어 해결되는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급변하는 동북아정세의 ‘탈냉전’구조 속에서 이제 낡은 방식의 대결구조는 청산되어야 한다.



1) 편집자주: 이 글은 월간사회평론19934월호에 실렸던 것이다. 저자는 당시의 동북아정세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이 잡지사의 기자가 제시한 질문에 답변했는데, 그 답변을 사회평론사의 편집국에서 정리한 것이다.



 


3-5. 상고이유서1)(1978년 11월 26일, 역설)

본적: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 318–3
주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화양동 16–64
성명: 이영희
연령: 1929년 12월 2일생(49세)
적용법령: 반공법

사실적 사항

이 사람은 애당초 본인의 저서에 대한 반공법의 기소가 부당하며, 그 후 제1심, 제2심의 판결이 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까닭에 상고했습니다. 이제 상고의 이유를 저서 집필에서 제2심판결까지의 각 단계에 대한 간략한 사실적(事實的) 사항과 종합적 견해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하겠습니다.
먼저,
(1) 집필, 저술의 동기ㆍ목적 등에 대하여
(2) 집필, 저작 과정, 내용, 구성, 성격에 대하여
(3) 경찰, 검찰의 조사ㆍ조서에 대하여
(4) 하급심의 판결 및 과정에 대하여
이상에 대한 간략한 사실사항이 끝나면 각 항목의 사실에 관한 본인의 견해와 이 사건에 대한 입장과 주장을 종합적으로 진술하도록 허용해주십시오. 본 피고인은 법률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며, 한 사람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평소에 법을 개의(介意, 괨意)하고 살지도 않은 까닭에 법률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상고이유의 순수한 법률 측면은, 본인의 이 상고이유를 보완할 변호인(복수)의 그것을 원용(援用)합니다.
본건은 300페이지가 넘는 저서 2권, 그 속에 수록된 약 50편의 글이 관련되어 있는 까닭에 공소장과 판결문이 긴 만큼 이 상고이유서도 다소 길어지겠습니다. 부득이한 일이오니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집필동기, 목적 등에 대하여

본인은 1957년부터 71년까지 신문사ㆍ통신사의 외교담당 기자로서 그리고 외신부장으로서, 주로 동북아지역 특히 중국(공)을 주요소로 하는 지역정치 문제를 연구했고, 1972년 한양대학교로 직을 옮긴 후부터는 동대학교 부설 ‘중소문제연구소’창설을 도와 상임 연구위원(교수직 겸임)으로 중공연구에 종사해왔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친 직후 정치ㆍ사상적 조건의 특이성으로 인하여 모두 중공연구를 위험시하고 기피하던 1957년부터 77년에 구속되기까지 22년 동안 중공을 학문적ㆍ시사적 연구대상으로 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중공을 연구하기 시작한 동기는, 본인이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국군에 입대하여 57년에 예편하기까지 7년간의 절반인 3년 반을 최전방에서 중공군과 전투한 시기의 전쟁경험이었습니다. 중공연구는 예편과 동시에 직을 택한 언론계에서 실무적으로, 그리고 대학연구소에서는 학문ㆍ이론적으로 계속하게 된 것입니다.
20년간의 중국연구 과정에서 날이 갈수록 절감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일반대중은 두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는 대학생 심지어 교수들까지 그리고 지도적 사회계층의 지식인들이 중공에 대하여, 전문가적 입장에서 볼 때 전적으로 허구이거나 왜곡된, 아니면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땅에서의 정치ㆍ군사ㆍ문화적 상황 발전과 변화가 한반도에 작용한 역사적 사실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조차 없겠습니다. 옛 중국의 역성혁명과 왕조의 교체 하나만 들더라도 그것이 이 땅의 왕조와 민중에게 정치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이 민족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그와같은 지정학적ㆍ문화적ㆍ전통적상호작용 관계는, 중국본토에 공산정권 생활양식이 확립되었다고 해도 조금도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은, 우리 민족 생존의 기본적 상식에 속하는 사실입니다. 6ㆍ25전쟁에서의 중국의 정치ㆍ군사적 개입은 지난 2,500년간 수없이 반복된 중국민족의 간섭(또는 교섭)관계가 20세기의 오늘에서도, 그리고 예상할 수 있는 상당한 장래에 걸쳐서도 한ㆍ중 양 민족과 국가 사이에 어떤 형식이건 접촉관계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싫건 좋건 우리의 주관적 입장과 희망과는 상관없이 그 상호작용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이 인식은 정권과 국민일반, 지도적 계층이나 서민에게 자리보호의 한 생존본능처럼 뿌리깊이 인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본토에서의 변화 과정과 오늘의 현실상태에 대해 이 나라는 지식인도 무식인도 없는 한결같이 몽매하고 무지한 실정입니다. 단순히 아는 바가 없어 지식적으로 백지상태이고 반응양식(反應樣式)에서 중립적이라면 이제부터라도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며 진실에 입각한 합리적 관찰ㆍ비판ㆍ판단ㆍ평가를 위한 지적 작업을 시작함에 아무런 저해요인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에 관한 이 나라 국민의 일반적 지식은 상대방이 ‘공산주의’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취해진 정책적 억압ㆍ위험시ㆍ왜곡 때문에 30년간의 선입ㆍ고정관념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러합니다. 조금 관심이 있다는 사람의 경우는 과대평가와 그에 따르는 장래의 공포감을, 어떤 사람은 과소평가와 장래에 대한 방심 및 소위 ‘중국부재론’에 이르기까지 극단적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극단론은 모든 다른 경우에도 그렇듯이, 중공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근거도 없고, 그런 까닭에 위험스러운 것입니다. 진실은 그 어느 중간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실은 그것이 정보(information)이건 지식이건 정치ㆍ사상적 이유로 우리 국민에게 거부되어왔습니다. 이 결과로 피해를 입는 것은 중공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이라고 본인은 확신합니다. 오늘날 이 사실을 부인하기에는 국제정세 전반 특히 동북아지역 정세는 너무도 옛날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과학적 인식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의 안전 및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길이라고 본인은 확신했습니다. 이 신념이 문제의 저서『8억인과의 대화』를 편역 출판하게 된 동기입니다.
본인은 그와 같은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함에 있어서 제일의적(第一義的)으로는 교수들과 대학생 그리고 이어 지식인 계층에게 정확한 중국관계의 지식을 공급함으로써 그들의 고정관념을 씻고 몽매(蒙昧)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수 있다면 그것은 중국 연구가로서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중국에 대한 올바르고 통찰력 있는 국민적 창의력이 형성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의 안보와 발전을 염원하는 한 시민으로서의 ‘나라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학자로서 자신이 연구ㆍ축적한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지식인으로서의 특혜에 대응하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8억인과의 대화』를 편역하게 된 동기와 목적입니다.
다음 공소장에 제기된 사회비평 형식인 에세이「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와「다나까 망언에 생각한다」및 평론「모택동의 교육사상」은 본인의 평론집『우성과 이성』에 수록된 30편 가까운 평론ㆍ수필ㆍ논문 가운데 일부입니다.
그 글들은 지난 10년 동안에 여러 신문ㆍ평론지ㆍ잡지 등의 청탁에 응해서 집필ㆍ발표된 것입니다. 그 글들은 시간적으로나 주제로서나 또 내용상으로도 아무런 상호 관련성이 없이 그때그때의 요청에 의해 쓴 것들입니다. 이처럼 10년간에 걸친 각기 자기완결적인 글들을 다만 한 권의 책으로 모았다는 것뿐이며, 집필의 목적 및 동기, 글의 내용에 일관된 맥락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들은 어떤 뜻에서나 어떤 의도에서도 하나의 목적이나 결론을 내기 위해서 엮어질 수 있는 성격의 글들이 아닙니다. 각지 단편적ㆍ자기완결적임을 강조해둡니다.

저서의 내용ㆍ구성ㆍ성격, 저자의 집필과 발간작업상의 조치에 대하여

이에 대한 기술(記述)에 앞서 한 가지 부기해둘 일이 있습니다. 재판에 증거물로 제시되어 있는 2권의 책『8억인과의 대화』와『우상과 이성』은 본 상고이유서 작성을 위해서 본인이 참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은 서울구치소의 서적영치(차입) 불허(不許) 결정 때문에 참고할 수 없는 채 본 상고 이유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책 내용의 상세한 자료 인용이나 일자 등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기억에 따라 기술함을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8억인과의 대화』는 본인 자신의 집필이 아니라, 저명한 서방세계 국가의 중공 연구가들과 인간생활 각 분야에 걸친 세계적 최고권위자들의 중국 방문ㆍ시찰기를 선정, 번역ㆍ편집한 것입니다. 전기(前記) 제1항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본인의 동기와 목적이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능력의 한도 내에서 가장 정확하고 공정하며, 전문가와 권위자들의 세계에서 학구되고 현장적(現場的)으로 확인ㆍ논증된 중국에 관한 진실과 객관적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충실ㆍ정직하게 전달ㆍ소개하는 것을 기본과제로 삼았습니다.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구체적 원칙을 세웠으며, 집필의 각 단계와 전 과정에서 어긋남이 없이 따랐습니다. 원칙에 따라서
① 글의 원저자는 서방국가 특히 한국의 우방국가 시민만을 선택했고 사회주의권의 시민은 제외했습니다.
② 그 필자들 속에서도 각기의 연구나 활동분야에서 중공과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고 학자적 성실성에서 세계적 평가를 받는 사람만을 다시 추렸습니다.
③ 연구가적 공정성ㆍ성실성과 아울러 각기의 전공분야에서 세계적 최고 권위나 독특한 자격을 가진 사람만을 골랐습니다. 내용의 높은 수준 때문입니다.
④ 그 작업으로 축소 선택된 저자들 가운데 다시 영국 왕립중국 연구원 원장 맥파커 박사처럼 우리나라 정부의 초청으로 내한한일이 있는 학자를 우선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공개적으로 초청한 중공 전문가는 많지 않아, 이 책에는 많이 수록할 수는 없었습니다.)
⑤ 이렇게 엄선된 필자와 저서 속에서 다시 글 내용의 학문적 수준ㆍ비편파성ㆍ객관성ㆍ진실성 등에 대해 세계의 유수한 중국 연구 전문지들이 일치해서 높이 평가한 글들만을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⑥ 원저의 번역에서는 본인(편역자)의 주관적 견해나 원문과 우리말 사이의 번역 기술상의 편차(원뜻의 확대ㆍ축소ㆍ이탈 등)를 최대한으로 막기 위해서 원문대로 취사함이 없이 전문 완역을 했고, 거의 ‘word to word’식으로 번역했습니다.
⑦ 이상과 같은 원칙적 주의를 다하고 나서, 이어서 각 편의 머리부분에 필자, 원전 출처, 출판사 및 출판연월일, 시찰시기와 목적, 그 여비(旅費)의 부담자, 방문자격, 발췌한 글의 성격, 글 전체속의 위치, 학계의 평가, 읽을 때 유의할 일……을 참고자료로서, 본인이 입수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상세하게 ‘편역자 주’로 부기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세한 주를 달아주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글의 전후관계ㆍ배경ㆍ수준 등, 이를 테면 원전(原典)의 ‘이력서’를 소개함으로써 독자가 자칫 천박하고 성급한 평가나 결론 같은 것을 내리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⑧ 본인의 주관적 견해나 평가 및 입장 같은 것은 모두 배제했습니다. 다만, ‘편역자 주’외에 독특한 중공사회의 용어나 논증적 사실ㆍ자료 등 우리 독자들의 이해에 필요한 간략한 해설 메모를 각주 형식으로 적어주는 데 그쳤습니다. 편역자가 원저 내용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글을 비평하기 위해서보다는 엄정한 기준에 따른 높은 수준의 글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더욱이 한국학자의 현 중국연구 전반적인 수준이 이 책에 수록한 세계 최고급의 외국 중국 전문가들의 현지보고를 비판할 수준이 아니라는 학자적 양심에서입니다. 글 가운데 간혹 우리 독자들에게는 새롭거나 의외인 중공의 발전상ㆍ장점 같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글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권위자들의 평가와 판단답게 장단점, 밝음과 어두움, 웃음과 울음, 발전과 낙후 등의 예리한 비판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문에 대한 소아병적이고 비학문적인 삭제나 사족(蛇足)은 금기일 뿐더러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상과 이성』에 수록된 글들 중에서 검찰이 골라서 기소한 내용의 부분은, 본인이 과거 언론인으로서 사회의 비판적 직업 기능을 수행하고 있던 당시 현실비판 형식으로 집필ㆍ발표했던 것들입니다. 그밖에 한 편은 한양대학 재직 중 중국문제 연구가로서 중국 관계 글을 발표한 가운데 평론 내지 에세이식으로 쓴 한 편입니다.
1971년 발표한 것을 위시하여 77년 것까지 8년간에 발표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발표될 당시에 신문이면 신문 검열당국이, 잡지면 잡지 검열당국이 검열하여 문제될 것이 없기에 발표 후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묵은 글들을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출판사 측의 요청에 응하여, 과거에 인쇄된 신문ㆍ잡지를 그대로 넘겨주어 한 권의 책에 수록ㆍ발행된 것입니다. 각 권마다에 그 첫 발표연월과 발표지명이 밝혀져 있고, 글 내용의 성격분류로 수필ㆍ단문ㆍ평론ㆍ논문 등으로 장이 나뉘어 있습니다. 이 책의 글들은 앞서의『8억인과의 대화』와는 달리, 각기 독립된 가벼운 내용의 글이므로 글을 연결짓는 어떤 일관된 동기도 연관성도 목적도 없습니다.
「다나까 망언에 생각한다」는 1974년『세대』(世代)지 4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다나까 일본수상의 대한(對韓) 망언을 규탄 비판함과 동시에, 한국인 스스로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면서 민족정기와 민족주체성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우리 국민생활의 각 분야에 걸쳐서 검토 비판한 내용입니다. 「모택동의 교육사상」은 1976년 11월호『대화』지에 게재된 평론으로서 ‘문화혁명’의 의미를 모택동의 교육사상의 측면에서 해명해달라는『대화』의 요청으로 쓴 것입니다. 이 글 속에서 모택동에 대한 에드가 스노의 인물평은『8억인과의 대화』에 실은 스노의 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검찰은『8억인과의 대화』의 신문 과정에서 그 글은“문제될 것 없다”고 말하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는 1976년(책이 없어 게재일 미상) 성남시(城南市) 소재 ‘가나안농군학교’의 도시산업 분야 중간 지도자 정신훈련 강습용의 토론ㆍ논의 재료로 쓰기 위한 청탁을 받고 집필하여, 동학교 기관지『가나안』에 발표되었던 것입니다. 김(이름 미상) 목사2)가 창설, 운영하는 이 ‘가나안농군학교’는 ‘막사이사이’사회사업상을 받은 도시ㆍ농촌 개척자 양성기관입니다. 이 글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 당시 동학교가 정부 관리를 포함한 각계의 많은 중간 지도자의 ‘정신 재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산업 각 분야의 ‘새마을 지도자’인 이 피교육자를 위해 썼던 본인의 가벼운 글을, 2년이 지난 후에 ‘농민혁명을 선동했다’고 기소하는 것도 부당하거니와, 유력한 증인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 이심(一, 二審)이 공소를 받아들인 것은 더욱이나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제1심의 심리기록을 특별히 주의해서 검토해주시기를 각별히 부탁드립니다. 기소장은 특히 이 글을 가지고 전후의 의미적ㆍ문장적 맥락을 무시하고 대목 대목을 끊어내어 연결시켜서 원문의 뜻과는 전연 무관할 뿐더러, 심지어 정반대의 뜻으로 ‘결론’이라는 것을 조작해냈습니다.
글을 읽는 상식에서 벗어남이 이에 더할 수가 없습니다. 계획적이고 악의적인 견강부회로써 기소문의 총 결론을 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급법정들의 과오가 반드시 대법원의 고차적이고 공정한 판단으로 시정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습니다.

조사기관의 신문ㆍ조사에 대하여

1977년 11월 23일, 아침 7시 30분경에 집에서 연행되어 25일 심야까지 3주야를 불면ㆍ속행으로 조서작성을 위한 신문이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리 작성해놓은 것으로 보이는 대본(臺本)대로, 부르는 대로 ‘공산주의를 고무ㆍ찬양ㆍ동조했다’는 취지의 자술서를 받아쓰도록 요구했습니다. 본인은“그런 용어도 아는 바없고 글의 내용도 그렇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를 거절했습니다. 강요와 거부로 일주야가 지난 뒤, 그러면 본인의 의사대로 진술서인가를 써보라기에 앞에 기술한 제1항ㆍ제2항의 집필동기, 목적, 저서내용, 원저자의 선택에 쏟은 세심하고 엄격한 원칙과 기준, 그리고 순수한 학구적 공헌욕(貢獻慾)에서 발행한 사실, 그리고 ‘고무ㆍ찬양ㆍ동조’와는 반대로 ‘나라사랑’의 한 방법으로 객관적이고도 균형 잡힌 중국 소개에 불과하다는 진술서를 썼습니다. 조사관 백(白, 이름 미상) 경위(警尉)는 그것을 상부에 가지고 갔다오더니“이것은 안 된다”고 말하고, 다시 미리 작성해둔 내용과 형식에 따라서 자필로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때에는 이미 계속적인 신문이 3일째가 되었고 한 잠도 자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시달린 결과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그 이상 자기의식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곳은 처음 본인의 거주지 관할인 성동경찰서에서 왔다고 가볍게 따라간 것과는 달리, 후에 알게 되었지만 치안본부 대간첩조사ㆍ공작의 ‘대공분실’이었습니다. 4명의 관리가 2명씩 교대로 감시하는 밀실에서의 분위기는 간첩 또는 그 협력자를 만들려는 듯한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본인은 반공사업에 누구 못지않게 찬동하는 시민이므로 연행에서부터 신문 과정까지 오히려 자발적으로 협조했습니다. 그런데도 육체적ㆍ물리적 피해는 안 받았습니다만 간첩이나 ‘공산주의자’로 ‘만들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속된 긴장, 극도에 달한 정신ㆍ육체적 피로에다가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포’가 겹쳐 결국 사전 준비된 방향과 내용대로의 진술형식을 대체로 복사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같이 해서 쓰여진 것이 세 번째의 자술서이며, 그것이 경찰의 증거로 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억압ㆍ위협적 분위기 속에서 인간적 저항의 힘을 상실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받아쓸 수밖에 없는 문서를 자의(自意)에 의한 것인 양 재판에 제시하고, 그것을 재판부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재판에 본인은 승복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소위 ‘고무ㆍ찬양’운운의 해석기준에 관해서입니다. 조사관은 이에 관한 본인과의 논쟁이 벌어지자, 중공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웬만한 식생활의 현장묘사가 바로 고무ㆍ찬양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방침과 내용은 공산사회에서는 제대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다고 되어 있지 않다. 교과서 내용과 상위하는 것은 고무ㆍ찬양이 된다.”마찬가지로 모택동이나 그밖의 중공 지도자들의“인간적 자질, 지도자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과 중공사회의 운영과 경제기구 및 활동이“그런 대로 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와 묘사(갈브레이스의 말)도 모두 반공법의 고무ㆍ찬양이라고 시인하기를 강요했습니다. 소위 자술서에서 시인을 강요한 반공법 제4조 1항의 해석기준은“공산사회ㆍ경제가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시관(國是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교육하는 내용 및 평가와 다른 것은 그 객관적 진실 여부는 문제가 안 된다. 진실 묘사 그 자체가 고무ㆍ찬양ㆍ동조의 행위가 된다”,“ 모택동에게 인간적 자질, 지도자적 능력이 있다는 말이 고무ㆍ찬양이 아니고 뭐냐!”
검찰(檢察) 신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인은 치안국 조사관의 그 기준은 부당하며 따라서 그 조서ㆍ자술서 들은 시인할 수없다고 했지만 검사는“객관적 진실은 문제가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ㆍ표현해도 반공법 위반이다”를 유일한 기준으로 고집했습니다. “반공법 조사는 검사가 위반이라고 하면 위반인 것다. 당신은 법률을 모르지 않는가. 피의자의 주장은 판사 앞에서 하면 된다. 여기선 시인만 하는 것뿐이다”라고 하여 심문과 조서가 작성되었습니다. 본인이 주장하는 유리한 진술은 반공법 조서의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며, 반공법 관계 조서의 작성 방법도 아니라고 검사는 일방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검사는 조서의 맨 끝장에 이르렀을 때, 본인이 정부의 대중공정책 작성 과정에서 자문적(諮問的) 협력을 한 사실과,정부의 중공정보분석 목적을 위한 연구 역할을 담당한 사실 한 가지만을 한두 줄 적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 조서의 공정성을 꾸미기 위한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치안본부와 검사는 본인의 반공법 위반 신문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유신체제’에 대한 본인의 반대 입장과 태도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유신체제 반대자는 ‘공산당’이라는 정의로 진술서 작성을 유도했습니다. 또 검찰조서를 보면 나타날 일이지만, 정작 반공법위반 조사는 1일에 1매 또는 고작해서 2매 쓰는 분량과 시간이었습니다. 20일간 오전 오후에 걸렸던 ‘검취’(檢取)는 실제로는 ‘유신체제’반대의 추궁으로 시종했습니다. 유신 지지를 조건으로 하는 사건의 원만한 해결도 제시되었습니다. 반공법을 들고 나온 행정권력의 본인에 대한 조사행위의 진의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 노골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사담당 황(黃) 검사는 신문 과정에서“이 교수가 반체 제인사로 지목된 사람이 아니고 정부와 친한 관계였다면 이 책들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더욱 구체적 사실들을 다음 항목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1, 2심 심리와 판결에 대하여

저는 소송법상의 절차나 조문ㆍ법규 등은 모릅니다.그러나 법조문에 앞서는 민주사회의 법적 통념과 일반적 상식의 차원에서조차 우선 제1심의 판결은 상궤(常軌)를 벗어난 것이라고 믿습니다. 2권의 저서 중 하나인『우상과 이성』의 10년간에 걸친 글 중에서 문장의 뜻과 흐름의 맥락을 제멋대로 거두절미하여 연결, 엮어 가지고 ‘모택동식 농민혁명을 책동했다’라는 최종결론을 조작해낸 검사의 기소장은 길이가 14매, 자수(字數) 8,286자의 장문입니다. 제1심 공판은 증인(2인)의 증언까지를 합쳐 11회인가 그 이상 걸렸습니다. 피고인 측의 진술과 증인 증언, 변론, 제출자료 등 재판기록은 상당한 분량에 달합니다.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은 제1심 판결문의 ‘이유(판결이유)’부분의 길이가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히 14매, 자수로서 8,286자입니다. 십수 회의 공판에서 7명의 변호인이 변호하고 2명의 피고인이 진술한 만 6개월간의 법적 자료에서 피고인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단 한 가지의 사안(事案)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국내 언론기관은 재갈을 물리어 있어 한마디도 보도하지 못했지만 외국보도기관의 기사(법정취재)를 보아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법정 안에 걸린 시계 같은 무생물을 묘사하라 해도 검사와 판사의 글짓기의 길이ㆍ표현ㆍ글자수가 꼭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판결이유는 기소장에서 글자 하나, 마침표 하나, 말 순서 하나 틀림없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진실로 경이적인 솜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실은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8,286자의 그 복잡하고 많은 내용의 기소장을 한 자의 고침도 없이 복사한 것입니다.
10여 회의 심리를 담당한 판사가 언도공판(言渡公判)에서 형량만 말하고 판결이유는 말하지 않겠노라고 맺은 것이,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1만 자에 가까운 기소장을 그대로 복사해놓고서야, 일말의 양식과 양심이 있는(또는 용기가 있는) 법관이라면, 그것을 수백 명의 방청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읽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2심은 그 판결이유를 그대로 추인(追認)했습니다. 본인의 집필과 저서 속에서 그려내어 기소한 그런 표현ㆍ내용ㆍ묘사와 동일하거나 같은 뜻의 글들이 일간신문ㆍ잡지ㆍ방송 보도기사로 보도되고 출판된 지 오래이며, 그 분량은 방대합니다. 심지어『모택동』제목하의 미국의 슈람(Schram) 교수 저서가 번역ㆍ출판되어 전국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지 4년이 넘습니다. 그 내용은 본인의 두 책 특히『8억인과의 대화』와 상당 부분이 중복되는 것입니다. 본인의 변호인단은 김상협(金相俠) 교수의『모택동사상』을 비롯해서 그와 같은 내용을 입증하는 수많은 출판물을 자료로서 제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내용의 글에도 상이한 법률 적용이 있다는 이른바 ‘이중(二重)의 법기준’을 목격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의 신문내용, 그 목적과 방향, 법원에서의 8,286자의 판결문, 이중의 법기준…… 등을 종합할 때, 이 사건에 시종일관 정치적 의도, 적어도 법률 외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를 수긍하시리라고 믿습니다.“당신이 반체제인사가 아니라 친정부적 교수였다면 이 저서들이 문제되지는 않았을 것이오”라는 검사의언명은 그 확신을 더욱 확고히 해줍니다.
그의 말은 본인의 사건의 성격을 그 이상 분명히 할 수 없을 만큼 적나라하게 단적으로 밝혀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려져야 할 핵심입니다.
이 모든 사실과 상황을 통해서 종합될 수 있는 것은, 이 재판의 판결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법원의 권위 및 법관의 양심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논리적 귀결입니다. 이 사건의 전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나 수많은 방청객들이 도출하는 불가피한 결론은, 본인의 이 재판이 과연 법원과 법관에 의해서 주관 결정되는 것인지, 행정권력의 대리인에 의해서 주관 결정되는 것인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없는 깊은 회의에 빠져버렸다는 불행입니다. 이 나라의 최고 재판인 대법원에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국법의 존엄성을 믿고 있는 본인과 많은 선량한 시민이 품는 이 회의가 깨끗이 풀어지는 것이올시다.
또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기소 내용의 결론부는 이 나라에 모택동식 농민혁명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법률에 깊은 지식은 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것을 선동했다면, 반공법 4조 2항 정도의 대항조치로서가아니라,형법ㆍ국가보안법의내란죄(음모ㆍ책동 등)가 훨씬 적절한 법률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그렇다 가정하더라도 그 책동이 ‘고의적’이고 ‘직접적’이어서 내란적 범죄행위가 본인의 저서의 결과라는 책임이 구명ㆍ입증되지 않는 한 그런 결론과 판결은 증거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농민혁명이란 1930년대 또는 그 후의 중국처럼 인구ㆍ산업ㆍ문화ㆍ정치의 구조가 어느 측면에서나 90퍼센트 이상 압도적으로 농민ㆍ농업ㆍ농촌적ㆍ전통적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정치사가 고증하고 있는 교과서적ㆍ초보적 지식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또는 본인이 이 글을 집필한 1976년) 이미 중진 공업사회로 접어든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단계에 있습니다. 농민혁명 따위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 선진사회 구조입니다. 모택동식 농업혁명을 낳게 한 조건은 우리나라의 이조 말기에 이미 통과했습니다.
본인은 20년간 중국문제를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중국 농업혁명의 가능조건과 현재 한국의 제반조건을 얘기하면서 과학적 근거와 이론을 들어가며 그런 백일몽 같은 글을 쓸 만큼 무지하지는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상의 모든 엄연한 사실에 아랑곳없이 재판부는 기소장을 한글자의 수정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상으로써만 보더라고 1심, 2심 재판은 피고인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입장과 권리와 이익을 전적으로 무시했음이 확실합니다.
이상으로써 사실사항에 관한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본인의 이 사건에 대한 종합적 견해를 진술하겠습니다. 주관적 의견의 일반론적 개진(開陳)의 형식을 취하겠습니다. 따라서 기술식(記述式) 평문체(平文體)를 사용하겠사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종합적 견해

무릇 한 시대 한 사회의 구성원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관념이나 사상 및 제도를 비판하거나, 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그와 같은 행위와 인간은 만행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진정한’용기있는 자임을 잘 알고 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과 제도는 그 사회 지배세력의 이해관계를 주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신념체계와 제도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자에게 언제나 물리적인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권력체계를 장악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적 절차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것은 언제나 소수자의 권력이게 마련이다. 그 소수권력의 이익을 위한 ‘특수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다수를 위한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자는 언제나 이 물리적 형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사고(思考)도 행동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류사의 전 과정을 볼 때 역사는 지배세력과 피지배 대중, 지배적 가치관과 마이너리티적 이상주의,정통과 ‘이단’……등의 모순ㆍ갈등ㆍ대립관계가 인간의 창조적 진보와 행복의 영역을 부단히 확대하고 심화해가는 원동력이었음을 가르쳐준다. 여기에 마이너리티의 입장, 비주류의 문제의식, 권력에 의해 ‘공인’된 ‘제도적 사상’에 대한 반(反)권력 측의 ‘이단’적 개혁사상의 존재가치가 있다. 한 사회 속에서 그 두 입장이나 사상은 상호 반발ㆍ배척하는 가운데 새로운 통일과 발전적 고양을 구현하는 ‘협력자’인 것이다. 그 양자(兩者)는 협력적 상대자(partner)이지 적(enemy)이 아니다. 이 사상과, 그것을 지속적으로 또 점차적으로 효능화시키는 제도와 생활양식이 민주주의임을 우리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국민을 소외시키는 반공법

이 원칙에 적용해볼 때 반공법과 그 적용 방법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발견했다. 그에 대한 교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반공법은 그 입법정신과 목적을 배반하여 이 나라의 시민과 사회 전반 그리고 마침내는 국가ㆍ민족의 창조적 발전에 거대한 장애요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본인의 책 2권에 대한 반공법의 기소와 재판의 1년간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창의적 인간이기를 원하며, 동시에 이 나라의 국가적 안녕과 발전을 충심으로 걱정하고 갈망하는, 나라를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그 우려되는 바가 아무리 오늘의 지배적 관념과 상충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위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집단에 대한 봉사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따름이며, 그 관념과 방법은 지도자와 정부 및 관료들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철학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조사ㆍ심문 과정에서는 반공법과 그 규제 대상의 내용은 정부의 통일견해로 정해진 것이며, 검사나 조사관이 ‘반공법 위반이다’하면 위반인 것이지 일절 반대ㆍ비판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같이 해서 일단 기소된 사건에 대해 법원과 법관이 어느 만큼의 독자성과 양심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앞서의 사실사항에서 상세하게 지적했듯이, 법원과 법관은 8천여 자의 기소장의 글자 하나, 마침표 하나에 손도 대지 못했다. 그 과정, 배경, 절차적 상황은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반공법은 집권자에 의해 ‘신성 불가침’하고 ‘절대적’인 규범임을 넘어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 어떤 반대와 비판과 회의조차 일절 허용하지 않고 오직 복종이 있을 뿐이라면 그것은 법률이기보다는 종교라고 함이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충족할 수 없는 깊은 욕구, 이를테면 영생이나 자연의 위협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죽음의 공포 등 인간적 약점을 토대로 인간이 창안해낸 것이다. 인간의 자기보호의 필요성의 산물인 것이다. 신(神)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지만, 약한 인간이 자기보호와 이룩할 수 없는 욕구를 위해 초인간적ㆍ초자연적 신을 숭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 능력의 산물인 신은 절대화되고 추상화되어버림으로써 인간에게서 독립하여 그 자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 결과, 앞에서 인간의 절대복종이라는 ‘인간소외’현상이 생겨난다. 즉 인간(또는 사회ㆍ국가)이 자기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창제(創制)해낸 것이 거꾸로 제도화되고 추상화된다. ‘절대적 존재’가 됨으로써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우상화되고 또 권위가 부여됨으로써 주물(呪物)적 마력을 발휘하게 되면, 종교나 관념이나 법률이나 제도나 이데올로기……는 그 창조자인 인간(사회ㆍ국가)을 거꾸로 지배해버리게 된다. 이로부터 인간성(주체ㆍ창조성)의 회복이 절실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 현대의 인간고(人間苦)다. 반공법은 민주주의 이념ㆍ제도ㆍ관념ㆍ생활양식, 즉 시민의 다양한 개성ㆍ사상의 발전원리 및 설득에 의한 사회질서…… 등 가치를, 그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생겨난 법률로 이해한다. 무조건 복종이 아니라 이성적(최소한 합리적) 판단을 장려하고 ‘다수’견해에 못지않게 ‘소수’견해도 존중ㆍ보호하는 사회를 위한 수단으로서 제정된 것이 반공법이라고 국민들은 알고 있다.
중공문제에 대한 의견에서는 북한간첩 문제를 주 임무로 하는 대공반 경찰관에 못지않게, 7년간을 공산군과 싸운 예비역 소령이고 20년간 중공문제를 연구한 교수의 견해도 존중되고 보호돼야하지 않겠는가.
‘내란을 선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회비판적 에세이를, 사회와 나라가 잘 되기를 원하는 나라 사랑의 한 방법으로 지식인들에게 농촌과 농민을 생각하자고 쓴 글을 반공법으로 처벌한다면, 반공법은 그것으로써 시민과 사회와 국가를 소외시킨 존재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공인한 궤도(軌道)와 범주의 고정적 가치체계 속에서만 나라를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체 국민을 소외시킨 것이다. 국가제도의 이데올로기만이 용인되는 사회라면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특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정치적 반대자의 애국심은 그 표현과 실천의 기회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반공법의 기능일 수는 없다. 관용과 ‘상대적 권리’의 개념으로 지켜져야 할 사회질서는 오직 권력자의 강제수단에 의해서만 유지될 것이다.
이것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교회)가 미신적 ‘종교과학’(그릇된 확신)으로 그 많은 위대한 두뇌와 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헛된 노력을 연상시킨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생각하는 애국의 방법만이 유일한 나라 사랑이라고 애국심을 ‘독점’하는 ‘정치적 종교’는 진심으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지식과 몸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을 소외시키게 마련이다.
반공법은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조건과 수단이고, 그 목적은 창의적 시민을 길러 관용과 상대주의의 폭넓은 가치관을 설득과 이해로써 통합하는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던 것인데, 그것이 현재와 같이 운용된다면 마치 종교의 한 형태처럼 ‘인간소외’의 공인체제가 되어버릴까 염려스럽다.
반공법을 진정 변화하는 내외정세에 부응해서 본래의 의도대로의 ‘국민의 법률’로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즉 신앙화된 것을 ‘비(非)신앙화’할 것, ‘절대화’된 것을 ‘상대화’할 것, 특수주의 이데올로기로 ‘신성 불가침’화된 것을 비판대상의 영역으로까지 ‘격하’할 것 등이다. 그럼으로써 잃을 것은 지성과 애국심을 소외시켜온 억압과 공포감이요, 얻을 것은 인간지성의 개화(開花)와 명랑한 민주사회의 구현이다. 비판과 반대는 지지와 독단만큼 민주사회ㆍ민주적 개인을 기르는 영양제다.

법집행 관리의 지적 수준

다음으로 그 운용의 개선에 관해 제언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진실’이 ‘반국가’ ‘비(非)애국’으로 배격되고, 거꾸로 허위ㆍ허구ㆍ왜곡이 ‘합법’과 ‘애국’으로 조장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앞에서 누누이 언급했듯이, 행정권력의 대행 관리들은 ‘중공(또는 이른바 적성국가)에 관해서는 사실이나 진실이라도 반공법 위반이다’라는 뜻의 ‘유권적(有權的) 법해석’을 고집하고 있다. 그 구체적 기준으로,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것, 지도자가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경제와 사회적 기능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 등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것이 북한에 대해서의 반공법 적용 기준이라면, 그 나름의 어느 정도 강변(强辯)을 허용할 수 있는 상황적 여지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중공에게 그래봐야 무슨 정치적ㆍ사상적 이득이 있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경제학회 회장이 상해(上海)에는 뉴욕시보다 양적으로 많은 의료시설이 있다고 보고한 대목이 끝까지 문제되었다. 갈브레이스 박사의 그 기행문에 대해서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조사 검사의 ‘고무ㆍ찬양론’의 근거였다. 그런 원저의 보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의 편역자의 주석을 붙여야 하며, 그랬으면 ‘반공법으로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8억인과의 대화』속의 모든 글에 ‘사실이 아니다’ ‘사실과 다르다’는 편역자의 가필(加筆)ㆍ삭제(削除)ㆍ단서(但書)ㆍ변명(辨明)…… 등을 하라는 법률강의를 들었다.
세계 최선진 경제대국의 ‘경제학회 회장’이 직접 시찰하고 확인하고 쓴 보고서를 한국인이 서울에 앉아서 ‘아니다’라고 해야 합법적이라는 논리는 기상천외로만 들린다. 미국인 자신이 미국인의 이해와 견지와 현지(現地)적 증거에 입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흥분하고 앞장서서 부정해야 할 절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야말로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적’인 한국인이 돼야 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학자와 학문적 연구, 타인의 학문적 저술에 대한 근거 없는 삭제ㆍ가필 등의 행위가 학문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쯤은 이해하는 법운용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반공법의 이름으로 이런 행위가 강요된다는 것이 바로 문제점이다.
이런 경험은 법집행 관리들의 지적(知的) 수준의 문제와도 관계 되므로 행정부는 그 면도 배려하면 폐단을 어느 정도는 배제할 수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법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취조검사는 중공에 관한 책을 읽기는 본인의『8억인과의 대화』가 처음이라고 실토했다. ‘배우는 바가 많았다’면서, 그래서 반공법을 다루는 공안부 검사들에게 압수한『8억인과의 대화』20여 부를 한 부씩 나누어 읽기를 권했다는 말이었다. 본인으로서는 과외의 영광인 셈이지만, 그 말로 미루어 공안부 검사의 중공 지식이 직접 보고 듣고 연구한 미국 경제학회 회장보다 못하리라는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지식으로 국내문제나 북한 관계 문제도 아닌 중공에 관한 일에 반공법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이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공법을 다룬다는 이 검사는 또 압수한 책에 관한 신문 과정에서『자본론』에 이르자 그 저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반공법을 다룸에 있어 검사의 말이 ‘유권적’이라고 하는 처지에『자본론』이 어떤 저서이며, 그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면, 중공(또는 문제에 따라서는 어떤 나라에 관해서건) 생활상의 지극히 구체적인 사실(이를테면 상해시의 환자 수용능력, 침대수)에 관해, 그 수가 얼마면 고무ㆍ찬양이 되고 얼마(어떤 수치)면 아니라고 판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결국은 그런 (지적) 상태에서는 모든 진실과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반공법 해석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하여

지식욕은 인간본능이다. 이 생산적인 본능을 한 시대의 지배세력이 어떻게 방향 짓고 어떻게 대처했는가의 형태에 따라서 그 민족 그 국가의 인류문화 속에서의 지위와 가치가 결정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국가의 중요한 기능과 소임은 그 구성원의 과학적 인식능력을 적극 보호ㆍ육성하는 것이다. 오늘의 중국인민이 ‘굶고 있다’는 것으로 된, 반공법에 따르는 교과서로 교육받은 우리의 제2세들의 인식능력을 상상해보라. 그래가지고서는 세계의 많은 민족과 국민이 치열하게 겨루는 진보의 경쟁에서 존경받는 인간형을 양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세계관으로 자란 시민과 국민은 인류의 문화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일그러진 방침과 내용의 교육에서 어떻게 개방적이며 창의적인 인간이 태어날 수 있겠는가? 강대하고 발전하는 이웃나라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하면 형(形)을 살게 하는 그런 법률을 고치거나, 아니면 그 기준이 된다는 국민교육 교과서를 고치거나 해야할 일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상고이유서를 여기까지 쓰다가 눈을 돌려 본 서울구치소의 얼룩진 벽에는 ‘대통령 박정희’의 이름으로 된「교육헌장」이 붙어있다. 잠시 손을 멈추고 읽어보니,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은 곧 나라 안팎의 진실과 새로운 지식을 ‘있는 그대로’의 내용과 상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미덕이다. 진실과 사실을 허위로 제시하거나, 허위와 조작을 진실로 가르치는 교육과 법에서는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은 육성되지 못한다. 그런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도 나올 수가 없음은 당연하다.
국민이 내외의 진실을 아는 것을 어째서 두려워해야 하는가? 넓은 세계적 시야를 가진 국민, 안팎의 진실을 통찰하고 있는 지식인, 자(自)국과 타(他)국의 장ㆍ단점을 허심탄회하게 관찰ㆍ비교할 줄 아는 자각된 대중, 그것을 통해서 자기성찰을 할 줄 아는 의식 높은 개인…… 이것은 정부나 집권세력의 명예다.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결코 아니다.
이 사람은“우리나라 교육방침과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라고 고무ㆍ찬양의 근거를 제시한 그 조사관리가「교육헌장」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북한 관계와 현 정치정세, 그밖의 각종 ‘정치적 이유’를 들어 억압의 필요성을 ‘애국’의 이름으로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십분 이해할 수도 있는 애국심의 발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에 대해서는, 미국의 정치가ㆍ학자ㆍ외교관ㆍ교육자로서 코넬대학 창설자의 한 사람이며 동대학 초대총장이던 앤드루 디킨스 화이트 박사가 참으로 적절한 경고를 한 것이 기억난다. 그의 말의 ‘종교’를 정치ㆍ국가ㆍ집단ㆍ권력ㆍ권력자 또는 소수 특수주의적 이데올로기…… 등으로 바꾸어놓고 읽으면 된다.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과학(지식ㆍ학문)에 가해진 간섭은, 그것이 아무리 양심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근대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종교와 과학 쌍방에게 다같이 참을 수 없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것도 예외없이 말이다(진한 글씨는 원전에서 인용). 이와는 반대로 모든 자유스러운 지적 탐구는, 그것이 어느 단계에서는 한때 종교에 대해서 위험스러운 것으로 비치는 일이 있다 해도 끝내는 예외없이(진한 글씨는 원전에서 인용) 종교와 과학의 양쪽에 최선의 결과를 선사했다.




다음은, 그렇다면 국민은 어느 시기에 이르면 내외의 여러 가지 사실과 진상을 알 권리를 인정받을 것인가 하는 데 문제가 미친다. 조사과정에서 되풀이 논쟁의 씨가 된 것은“그런 것은 대중에게 알릴 단계와 시기가 아니다”라는 견해였다. 국민은 중국의 진실에 대해서(같은 논리로 외부세계의 진실에 대해서) 지성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지적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소위 ‘현실주의자’임을 자랑스럽게 자처하는 일부학자나 지도자들은“그것은 국민의 지적 수준이 향상된 후에 알아도 될 일이다. 지금 수준에서는 이상론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을 ‘시기상조’론의 근거로 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본인의 심문에서도 그것이 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임의(任意)의 순간에서의 ‘현실’이 사실은 ‘역사적 현실’임을 알지 못한다. 1978년 11월 21일의 우리나라 대중이 그와 같은 지적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해방 이후 32년 동안 교조주의적 반공정책으로 대중의 사상적ㆍ지적 훈련을 금지ㆍ억제해온 역사적 결과인 것이다.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존재하는 것은 모두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사상ㆍ정치이론의 영역에서 중공이건 무엇이건, 우리 국민일반이 그것들을“소화할 수 없는”수준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민일반의 생물학적 뇌조직이 열등한 것도 아니며, 모두가 후천적으로 인식기능에 장애를 일으킨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지적 소화능력’이 생래적으로 지도자들이나 관료들보다 열등하다는 논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할 것이다. 유일한 답변은 지난 50여 년간 그와 같은 기회가 봉쇄되고 박탈되었던 ‘역사적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권리의 문제만 나오면 반드시 시기상조의 이유를 국민의 소화능력 미개발에서 찾으려는 것은“현실주의”같으면서 사실은 엄청난 ‘비현실적’인 것이다.
“국민이 무식하니까 이 교수의 책을 읽혀서는 안 된다”면,이 순간부터라도 국민의 지적 소화능력을 향상ㆍ강화하기 위한 사상적 관용정책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그 실천이 이르면 이를수록 국민의 사상적 깊이와 폭은 그만큼 빨리 향상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국민을 책(責)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국민은 지적ㆍ사상적 저개발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반공법을 지배하는 한 10년후에도 50년 후에도『8억인과의 대화』정도의 책이 ‘특수지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국민의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정부와 지도자의 불행이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자기 문제를 자기능력으로 해결할 줄 모르는 대중을 다스려야 할 지도자가 불행하지 않고 어떻겠는가?
이 나라의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국민대중을 그토록 긴세월 ‘지적 무능력자’로 처박아둔 정치적ㆍ도의적 책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대중의 지적 혜택의 수혜자가 아니라면.

지식의 사회적 본성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반공법의 현재의 운용은 지식의 사회적 본성을 ‘비사회화’하려는 강한 경향이 있다. 심문과정에서의 관리의 관심으로 보아 본인은 다음의 이유에서도 반공법 위반이 되었다. 즉“그와 같은 연구는 연구실 안에서나 하라는 것인데, 그 결과를 연구실 밖으로 전하거나 책으로 출판하니까 문제다.” 검사의 ‘위법기준론’의 후반부는“그런 지식은 훗날 정부가 필요로 할 때 정책 자료로 쓰이기 위해서 이용돼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현대지식의 어떤 것은,(기술도 포함해서)정치단위인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 국경을 벗어나면 국익에 반하는 용도에 쓰일 가능성이 있는 그런 것들이다. 작게는 산업지식의 그런 것처럼. 정부의 통일적 견해를 대표한다는 그 반공법 담당검사의 지식관은 이런 것이다. 즉 지식이란 어떤 것이건 ‘정부의 필요’를 자격의 제1요건으로 한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지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만인(萬人)에 의해서 요구되는 것이고 만인의 행복의 조건이되는 정신적 보화(寶貨)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개인이나 한 연구소 또는 정부가 독점할 수 있는 ‘이기적 소유물’로 간주하는 관념이다.
지식이란 그 본성으로서 느닷없이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아무런 앞뒤의 연관성 없이 착상되고 발표되는 그런 생산물이 아니다. 한 두뇌의 지식적 부가가치는 그에 앞서는 일련의 많은 지적 노력의 릴레이식 발전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 발전의 계보가 분명히 체계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지식과 사상의 전 체계를 어느 한 학자나 연구자가 무(無)에서 착상하여 그 완성까지 종결짓는 그런 마술은 불가능한 것이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두뇌의 뇌분비작용의 결과로서 지식이나 그 결집(結集) 형식인 저서ㆍ이론ㆍ사상 등은 이루어진다. 즉 지식이나 저술은 ‘역사적ㆍ사회적’ 인간정신의 산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각도에서 보아도 역시 그렇다. 지식탐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동시대의 알고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ㆍ물질적 협력을 받고 있다. 연구수단인 선행(先行)적 지식ㆍ기술을 학교교육과 선생을 통해서 습득했을 것이다. 호남평야의 어느 농부가 땀 흘려 가꾼 쌀과 고기를 먹고, 청계천 다락방의 여공의 손을 거친 옷을 입고, 강원도의 지하갱에서 광부가 캐낸 석탄을 피우는 연구실에 앉아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의 논문을 참고 삼는 가운데 지식은 생산되는 것이다. 그 지적 생산물은 필연적으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타고난다. 그것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독점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의 지식에 도움을 준 농부ㆍ광부ㆍ여공ㆍ제본공……의 모든 동시대적 동포에게 그 지식의 혜택은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식의 ‘사회성’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만인에게 돌리는 행위가 ‘지식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성ㆍ사회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학문과 지식은 어용(御用)화된다. 『8억인과의 대화』가 연구실 안으로 퇴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일반에게 널리 읽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허가와 소요(所要)’만이, 지식이 개인두뇌와 연구소에서 나올 수 있는 조건이라는 관료적 사고가 지식과 교수와 지식인 전반의 ‘어용’화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 가치관이 반공법이라는 권력적 공인을 받음으로써 국민일반의 지성적 향상은 저지되는 것이다. 지적ㆍ정신적 소산은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 지식인은 자신의 성장에 기여한 무명(無名)의 대중을 자기와 같은 수준의 지적ㆍ정신적 기쁨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글을 쓰고 발표하고 출판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본인의 저서들이 설사 반공법에 위반(검사의 기준으로 하면)되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지식이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는 믿음에는 아무런 변함도 없다.
반공법이, 대한민국의 기밀(機密)을 출판ㆍ유포하는 행위를 방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의 정보(information), 그것도 오늘날 세계의 공통적 상식이 되어 있는 ‘사실’과 ‘진실’을 국민이 아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용된다면 건전한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식과 정보란 예나 지금이나 인간 상호간ㆍ민족간ㆍ국가간의 교류를 통해서 인류의 발전을 촉구하는 매개물이다. 중공의 그것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 어느 사상체계건 그 자신만으로 자기충족ㆍ자기완결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전능한 개인ㆍ민족ㆍ국가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영원히 없을 것이다. 지식의 접촉과 교류를 거부하는 개인ㆍ정부ㆍ국가ㆍ민족은 정신적으로 침체에 빠지며 인류문화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금세기에 들어와 급속한 현대화를 이룩하려는 후진국가들은 경제사회적 분야에서 연차적 ‘몇 개년(何個年) 경제사회 개발계획’을 중요한 전략적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른바 ‘5개년 경제계획’ 같은 것이다. 이것은 본시 공산주의 소연방에서 레닌과 그 후계자들이 창안ㆍ시도했던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도 벌써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마치는 가운데 ‘중진국가’대열에 들어선다고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계획경제를 수단으로 채택한 나라의 정부나 지도자가 그 발상지(發祥地)의 호적조사(戶籍調査)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이미 인류 공동의 지적 재산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이론의 일부를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가 채택하고 있고, 공산주의 동독에서 일반화한 플라스틱 차체(車體)는 우리의 남북한 관계와 같은 서독에서 시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관적 소망이야 어떻든 소련ㆍ중국 등을 위시한 공산권 세계나 국가가 가까운 장래에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과 자본주의권 국가들은 이런 인식하에서 앞을 다투어 공산체계ㆍ국가와의 공존(共存)관념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본다. 중공에 대한 세계적 동태는 새삼 여기서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제는 중공에 관한(즉 공산권에 관한) 지식과 정보들을 반공법과 견주어보지 않고서도 읽고 듣게 해도 무방할 만큼은 우리 국민의 반공의식이 굳다고 믿는다. 경제ㆍ사회ㆍ문화ㆍ정치ㆍ군사적 측면에서의 국민적 자신도 충실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계적인 기적’을 이룩했다고 정부가 주장하는 조국 근대화, 중화학공업화, 중진국화, 국민생활수준의 극적 향상, 100억 달러 수출, 국민소득 4,000달러…… 등등의 자랑은 거짓이거나 속임수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국민의 자신감을 좀더 신뢰해도 좋을 만한 조건 성숙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만한 성장을 한 사회에서 상해시의 의료시설 운운의 보고가 아직도 반공법 위반이니“적성국 찬양ㆍ고무ㆍ동조”니 하는 말은 우습지 않을까?
반공법의 현(現) 운용은 이 나라 국민의 진취성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국민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다른 국민의 성취ㆍ업적과의 비교ㆍ반성을 통해서 자기성장의 계기로 삼는다. 남의 우수함을 수용하고, 자신의 부족과 결점은 남의 경험을 거울삼아 개선해나가는 데 국가와 민족의 비약의 길이 있다. 만약 상해시 병원의 환자 병상수가 많거나 의료시설이 좋다면 우리는 그것을 시기하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자기기만을 일삼지 말고, 우리의 의료시설 개선ㆍ충실화를 위한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진취성이라는 것이다. 진취적 국민은 무한한 수용능력을 기를 것이지 남의 장점과 성취에 눈을 감는 패배주의ㆍ자기기만적이어서는 안된다. 반공법의 운용, 사실은 그 법의 4조 2항 자체가 패배주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검사는 말했다. “1967년까지는 북한의 공업ㆍ경제 등이 남한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관한 사실도 반공법으로 금지해야 했다”고. 그러나 지금 그 수준은 우리가 월등 우세해졌다는 말까지 그는 덧붙였다. 사실 이 말은 중요한 핵심이 된다. 여태까지 이 상고이유서에서 그 법과 운용에 관해 많은 의견을 진술했지만, 그 법이 어떤 법이며, 어떻게, 왜 그렇게 운용되고 있는지는 이 검사가 스스로 설명해준 셈이다. 즉 어느 한 시점까지의 국가적 패배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검사 말대로 또 정부와 국민의 지난 십수년간의 노력의 결과로 이제는 패배주의는 사라지고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단편적 지식ㆍ정보에 대해서까지 반공법으로 방패삼을 시기와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취적인 나라를 위해 반공법의 운용방식에 대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막스 베버가 평생에 저술한 40여 권의 책 가운데 한국에 관해 언급한 것이 꼭 한 군데 있다.그의 유작(遺作)『사회경제사』제5편이다. (그의 저서를 빠짐없이 섭렵하지 못했으니 장담할 수 없지만 다른 교수들의 견해도 그러했다.) 불과 5,6행에 불과한 이 한국민족에 관한 평은, 한국 지배계급(그는 구한말을 지적)이 외부세계의 상이(相異)한 문화와 사상 및 변화ㆍ발전을 요사시(妖邪視)하고, 그것이 국민에게 ‘전염’될 것을 두려워해서 법으로 탄압하는 반동적 자세를 취한 까닭에 마침내 세계사조 문명에 뒤떨어져 망국(亡國)의 비운을 맛보게 되었다는 요지의 짧은 글이다. 남의 나라의 학자에게서 지적받을 필요도 없이 너무도 쓰라린 우리 자신의 민족적 경험이다. 이 과거의 민족적 비운(悲運)은 오늘의 법의 운용에 진취적으로 반영될 때 비로소 교훈적 가치가 있다.

이중기준의 법 적용과 판사의 경향성

법의 운영에 차별이 없어야 함은 민주사회의 기본적 법원칙이다. 동일한 가벌(可罰) 내용에는 동일한 법적 대응이 있다는 생활적 상식이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기준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사건은 그 정신과 원칙에 위배되는 이중 삼중 기준의 선택적이며 자의(恣意)적인 차별을 받았다.
먼저『8억인과의 대화』에 대해서 말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중국 연구소가 많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지난 약 10년 동안 해마다 몇권 정도의 중공 관계 저술이 출판되었다. 그 저서ㆍ논문ㆍ보고ㆍ토의록……들은 취급한 주제는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중국을 다룬 점에서는“중국인민은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현장묘사를 반공법 4조 2항의 고무ㆍ찬양ㆍ동조로 판정하는 검찰과 법원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 어느 하나도 반공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은 같은 분야의 연구가로서 그 내용들을 읽고 알고 있는 까닭에 단언할 수가 있다.
사실사항(事實事項) 관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 나라에는 현재 미국인 교수 슈람 박사가 지은『모택동』(김동무(金東武) 옮김)이 4년째 공공연히 전국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 내용은『8억인과의 대화』의 내용과 상당한 분량이 중복되고, 실질적으로 또는 유사한 표현ㆍ평가ㆍ판단이 들어 있다. 이것만이 아니지만 한 실례로 들 뿐이다. 그밖에 중공에 관한 (국내)신문ㆍ잡지ㆍ방송의 기사는 방대한 양에 달하며 그것들을 모두 모은다면 대(大)도서관에 넘칠 것이다.
본인과 변호인단은 그 사실을 입증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한 분량의 세심하게 수집되고 분류된 증거자료를 법정에 제출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모택동』은 그 역자가 군(軍)관계 민간인 교관이라 ‘보안사령부’의 (검열) 출판허가까지 얻어서 발행된 것이다. 반공법적 규제권한에서 경찰, 검사,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는 대동소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 『8억인과의 대화』와 많은 내용이 같다는 것은 이 사람 자신이 그 번역자를 위해서 국내 신문에 서평을 써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제2심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회피했다.



(판결문은 말했다) “……위 주장(피고인과 변호인들의)과 같이 슈람의 저서인『모택동』이 이미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우상과 이성』에 실린 글들은 이미 국내에서도 각종 정기간행물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이들을 그대로 한데 묶어 위 책자로 발행한 사실 등은 일전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나, 『8억인과의 대화』에 실은 글의 내용이 위 적시된 글들의 내용과 유사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또한 위에 든 사실들만을 가지고 피고인에게 있어 그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범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오인함에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위 첫째 주장은 이유 없고…….”




이 사람은 중국 연구가의 한 사람으로서 슈람의 저서 같은 것이 이처럼 행정부ㆍ군ㆍ사법부의 승인을 받게 되는 것을 기뻐할 뿐이다. 다만 비전문가인 판사가 아니라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연구가의 눈에 동일 또는 ‘유사한 내용’으로 인정되는 글이라면 다른 사람의 책에 있을 경우에도 행정 권력기관과 법원은 마찬가지로 관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사건의 재판은 또 하나의 걱정거리를 드러내주었다. 반공법을 다루는 판사의 경향성이다. 행정권력에 대한 경향성이다. 제2심 재판장은『8억인과의 대화』의 피고인들에 대해, 슈람의『모택동』번역 출판처럼“정부기관에 왜 ‘사전검열’을 받으려고 생각 안했느냐?”고 물었다. 헌법에도 법률에도 없는 ‘사전검열’은 행정권력의 횡포(불법적 권리 남용)가 아닌가? 그런데 헌법에 엄연히 규정되어 있는 학문과 출판의 자유(권리)를 행사하려는 시민에게, 그 권리와 자유의 보호자여야 할 사법부의 법관이“어째서 사전검열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전검열’을 스스로 청해 나간다는 것은 시민에게 법적 권리와 민주주의적 자유를 자진해서 포기하라는 권고와 다를 것이 있을까? 본인의 사건은 이런 법 관념의 재판장에 의해서 결론지어졌다. 무릇 어떤 제도, 어떤 사회에서나 시민의 권리ㆍ자유에 대응하는 국가권력은 강력하고 조직적인 제어장치가 없는 한(있을 경우조차), 무한정으로 비대화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경향과 실례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정치ㆍ사회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본다. 국가권력과 시민의 자유ㆍ권리가, 권력의 분명한 정당성이 없이 대체로 균형 있는 대립을 했을 때는 법은 마땅히 시민의 권리를 편들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사회의 법정신인 줄 안다. 하물며 시민의 권리가 압도적으로 열세한 경우에서랴. 행정권력을 편드는 재판의 문제점이다. 사실 이 사건의 1, 2심을 거치는 공판의 현장에서 언제나 느낀 것은, 판사에게서 재판을 받고 있는지 검사에게서 재판을 받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심정의 착잡함이었다.

현대판 이단재판소

다음의 문제로 옮겨간다. 이해(理解)의 편리를 위해 다음과 같은 가상을 해보자. 어떤 사람의 긴 생애에서 국민학교 때의 글짓기 연습장에서 ‘김’(金)자를, 중학교 때 물리 노트에서 일(日)자를, 고등학교 시절의 연애편지에서 성(成)자를 그리고 대학 졸업논문 속에서 만(萬)자 등을 골라낸다. 그것을 이으면 ‘김일성 운운’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긴 생활 속에서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쓰인 그 당시에 그 자체로서 자기완결적인 글과 글자를 들추어 연결하면 우리는 만들고 싶은 어떤 문장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으로 상(賞)도 줄 수 있고 벌(罰)도 줄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사건과 관련된 핵심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우상과 이성』에 관해서는 전혀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내용은 명명백백하다. 1971년부터 77년까지 아무런 상호 연관성 없이 써서 발표한 30편의 글 속에서 머리 자르고 꽁지 잘라 한 구절씩 엮어가지고“……라고 결론을 내려, 결국 노동자ㆍ농민ㆍ영세민들이 자기들을 위한 정치ㆍ사회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현 정치ㆍ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ㆍ기업가들ㆍ지식인들을 타도하는 길밖에 없다는, 즉 노동자ㆍ농민ㆍ영세민들을 주축으로 하는 혁명을 해야 한다고 선동함과 동시에 농민 중심의 모택동의 공산혁명 사상을 은연중 찬양 고무하여 중공의 활동을 찬양 고무했다”라고 공소장의 결론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그대로 판결문(의 결론)이 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문장의 악의적 조작인가. 문제의「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은 신변잡화를 줄거리로 삼아 사회비평을 겸한 가벼운 에세이다. 시종일관하는 주의(主意)도 없고 더군다나 ‘결론’따위는 애당초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부처님, 이 나라를 굽어보소서! 이 나라에는 법적으로는 출판검열 제도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모든 정기간행물과 출판물이 ‘당국’의 검열을 받고 있음은 지식인 사회에서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라 사후적인 것으로 안다. 재판관 자신이 사전검열을 왜 받으려 하지 않았는가를 물은 것도 정부의 눈이 항시 출판물 위에 빛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74년 4월에 검열되어 나간「다나까 망언에 생각한다」와 76년 말의「모택동의 교육사상」, 그리고 같은 해의「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가 단순히 한 책 속에 묶여 나왔다는 변화만으로 갑자기 고무ㆍ찬양이 되고 ‘농민혁명’선동이 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해묵은 낡은 것을 추려내어가지고 반공법으로 엮는 의도 속에 무언가 음흉한 것을 느끼게 한다. 어째서 형벌을 받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끔 좀 투명하고 솔직하면 좋겠다. 다음은 바로 그 문제에 관해서다.
제1심 판사는 판결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판결이유’를 말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걸친 심리과정에서 두 피고인은 충분한 소명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피고인들의 그 충분한 주장과 변론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판결의 이유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ㆍ백 두 피고인에 대한 형량 언도.) 이 사건은 그 성격이 김지하(金芝河) 사건, 한승헌(韓勝憲) 사건과 같아서 대법원이 두 사건에 유죄를 판결하고 있으므로 그 판례에 따라 유죄를 선고하는 것입니다. 두 분은 항소해서 잘 되도록 하십시오.




시인 김지하 사건과 한승헌 변호사 사건은 이 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불가사의’한 사건이다. 이 두 사람을 법의 이름으로 기소하여 판결할 때까지의 과정ㆍ절차에서의 그 많은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상식으로는 점점 더 알 수 없어지는 것이 이 두 사건이다.
“충분히 밝혀진 피고인들의 입장과 주장”을 10여 회의 심리를 통해서 청취한 판사로서, 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들은 수많은 방청객들이 빤히 보는 앞에서 검사의 기소장 14매, 8,286자를 그래도 판결이유라고 낭독하기는 거북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그런 성격의 사건”이란 것이 문제다. 재판은 그에 대해 개운한 해답을 하지 못한 채 지나가고 말았다. 아무런 죄상(罪狀)의 지적도 설명도 없이“대법원 판결이 유죄니까 유죄”라는 것도 고통을 당하는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결형식이다. 재판장도 딱히 밝히기를 꺼리는 듯한 불투명한 ‘그런 성격’의 재판 결과 피고인은 유죄가 되고, 몇 해를 형무소에서 살아야 하며, 나오면 전과자 그것도 ‘반공국가’에서 ‘반공법’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이 불투명한 판결이유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중세 유럽세계의 불가침의 권위였던 로마교황이 이단재판소에서 교황의 금기를 건드린 지동설(地動說)의 갈릴레오에게 내린 명쾌하고 확신에 찬 판결문을 생각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의 주위를 회전하지 않는다는 제1의 명제는 신학적으로 우매(愚昧), 불합리 및 허구며, 명백히 성서에 반하는 까닭에 이단이다. 또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명제는 철학적으로는 불합리하고 허구이며, 신학적 견지에서는 적어도 올바른 신앙에 반한다.




적어도 이 정도의 조리 있고 확신에 찬, 이론적이고 철학적 구명(究明)을 다한 나머지의 판결이라면, 어떤 피고인에게도 불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60년 전인 (서기) 1615년, 이단 심문소의 지하실에서 내려진 선고다. 360년 후의 우리 재판이 여기서 한 점의 진전도 없이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있으니 유죄’라고 끝난다면 피고인은 다만 하늘(天)을 우러러볼 따름이다. 악명 높은 그 이단 심문법정도 ‘그런 성격의 사건’이라는 말로 얼버무리지는 않았다. 우리 국민이 사법부와 법관에게 거는 최후의 기대는 그 간절함이 눈물겨울 정도다. 반공법에 의한 ‘이단’을 이 사회에 가득 채우는 일에 협력하는 사법부와 법관이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주체적ㆍ독립적 자세와 슬기로운 판단이 요청되는 것이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다소라도 정치적 성격이거나 정부의 이해관계 또는 체면에 관련된 사건의 재판에서 법원과 법관이 얼마나 독립적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만하다.

‘통치행위’론의 위험성

“반공법 조서는 검사의 질문에 ‘예’하는 것이 그 내용이 되며, 피해자의 주장이나 해명은 판사 앞에서 하라”고 잡아뗀 검사는 이런 말을 했다. “ ‘유신헌법’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검사들은 긍정과 부정이 반반이었고 판사들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현재에는, 유신체제를 적극 지지하는 검사는 약 80퍼센트인데 비하여 판사는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이런 분석이었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들린다. 검찰에서 기소만 하면 유신체제비판 내지 반대자는 재판을 하나마나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검사가 80퍼센트의 형량을 생각하면 판사는 90퍼센트의 벌을 생각할것이 틀림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8,286자의 기소장을 복사한 채로 판결이유로 내놓는 판사나 그것을 그대로 추인하는 상급 재판장을 보면서, 본인은 그 검사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모를 일이다. 법률은 사회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한다.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법률이라는 것은 제정 당시의 환경이 변하면 그 정도에 따라서 법의 폐기ㆍ수정 또는 적어도 운용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법정에서 강조했다. 반공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려는 그 사이에 국내외 조건의 급격하고도 광범위한 변화상을 낱낱이 지적했다. 중국인의 일상적인 생활양태를 주로 묘사한 내용인『8억인과의 대화』를 다룸에 그와 같은 주ㆍ객관적 상황변화를 참작해야 한다는 뜻의 법률론이 변호인들에게서 제기된 것은 당연하다. 법정은 이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정부가 그동안 주ㆍ객관적 상황변화에(대해서) 대응한 조처들은 모두 ‘통치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들어보자.



……둘째, 우리나라 정부가 국내외 정세변화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위 주장과 같은 여러 가지 새로운 조처를 취했음은 공지의 사실에 속하는 바이나 이는 법원의 판단대상이 될 수 없는 일종의 통치행위에 속하는 것으로서 형법 제20조 소정의 사회상규와 동일시할 수 없음은 설명을 요하지 않는 것이니, 설령 피고인의 행위가 중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함으로써 위 조처에 어느 정도 부응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여도, 이를 가지고 사회상규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고 달리 위 주장을 인정할 자료가 없으므로…… 이에 대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이 사람은 법률전공이 아닐 뿐더러 법률해석학적ㆍ기술적 법률론을 운위할 깊은 소양은 가지지 못했다. 다만 ‘통치행위’란 법률적 개념이기에 앞서 정치(학)적 개념이므로 이에 대한 깊은 관심은 없을 수 없다. 이 용어와 개념은 특히 1930년대의 파쇼 초기시대에 나치 독일, 파쇼 이탈리아, 천황제 파쇼 군국주의 일본, 프랑코 총통 스페인…… 등 국가에서 법적 추궁을 배제하기 위해서 자주 쓰였음을 알고 있다. 파시즘 체제의 집권자들이 그 절대적 독재권력을 기정사실화해가는 과정에서 취한 크고 작은 내외행위를 ‘통치행위’라고 강변했다. 법은 다만 그것이 법원의 판단대상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추인하고 묵인하는 사이에 파쇼권력은 프랑켄슈타인이 됐던 역사를 우리는 안다.
본인의 재판 판결과 그 역사적 현상 사이에 유추할 내용은 없을 줄 안다. 그런 전제하에 말하더라도, ‘통치행위’라는 낱말이 구체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7ㆍ4남북성명’과 그에 앞서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 북한대표의 서울왕래…… 등, 당시의 일련의 남북 정치외교 접촉에 대해서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안다. 야당과 정계ㆍ언론계에서 그 정치적ㆍ헌법상 책임의 규명문제가 논의되었을 때, 정부는 ‘통치행위’라는 한마디로 모든 논박과 비난을 침묵시켜버렸다. 그 합헌 여부가 헌법재판 형식으로 제청된 일도없고, 정치적 ‘통치행위’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공에 대한 접근노력이라든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명호칭이라든지, 심지어 어부송환 등까지를 합친 외교행위들을 모두 ‘통치행위’의 개념이나 정의로 면책해버릴 수 있는 것인가는 아직 미제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치ㆍ외교적 행위라고 해서 행정부의 대외(對外)행위를 하급법원이 그렇게 간단하게 ‘통치행위’로 일괄처리(단정)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본인이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우려다. 즉 검사가 정확하게 분석했듯이, 검사들보다 이 나라의 판사들이훨씬 적극적인 ‘유신경향’이라면(개인적으로는 자유지만) 지난 몇 해처럼 정부와 정부의 정치적 조처가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될 경우, 그와 관련이 있는 소송사건 또는 어떤 형태로건 정부 및 정책이 쟁점이 되고 있는 사건에서 법원은 으레 ‘통치행위’이론으로 정부나 지도자를 면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근거 없는 공론을 일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과 실례를우리는 금세기의 파시즘 흥망사에서 아주 똑똑히 봐왔다. 독일의 나치체제는 국내적으로는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이라는 신화로 각종 정치적 범죄행위를 자행하고, 밖으로는 ‘민족생존권’이론이라는 해괴한 것을 내세워 침략과 파괴의 야만행위를 정당화했다. 그 모든 범죄행위가 ‘통치행위’라는 법적 ‘재가’(裁可)로 정당화되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와 일제군부가 역시 그러했다. 정부의 내외 정치ㆍ외교행위에 대해 ‘통치행위’의 성스러운 후광(後光)을 부여하는 일이 자칫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역사에 물어 보자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파시즘 국가들에서도 각급 법관들은 민주주의 국가들의직업적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어렵고 긴 수업과정을 거쳐서 그 명예로운 의자에 앉은 것이다. 그렇지만 행정권력에서 독립적이어야 할 그들의 법관으로서의 지위와 기능은, 그들이 지배세력의 소위 ‘통치행위’를 합법화하고 법적 승인을 부여하는 과정에 정비례해서 약화되어갔다. 그 나라들에서 마침내는 사법부가 행정권력의 단순한 한 기관으로 전락해버린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국가는 소수의 권력광(勸力光)들의 사유물화(私有物化)되고 말았다. 금세기 전반부에 괴물처럼 나타나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고, 수천만의 인간을 무덤까지 동반해간 이들 파쇼체제가 법적 측면에서 남긴 교훈은 자못 귀중하다. 즉 권력자와 정부는 기회만 있으면 그 행위를 ‘통치행위’라는 신비스러운 주술(呪術)적 슬로건으로 법적 추궁을 무장해제하면서 기정사실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법의 임무는 바로 이와 같은 권력의 타락을 초기단계에서부터 방지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프랑켄슈타인은 법의 뚜껑을 열어주면 벌써 법을 삼키게 되는 것이다.
책을 출판하려는 학자와 출판사에게 권력의 ‘사전검열’을 자진해서 받았어야 할 것이라는 시민 권리관과 그의 판결이유의 ‘통치행위’운운에서 금세기의 어두운 한 장면을 연상했다. 우리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다만 남의 민족의 과거사일 뿐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처벌기각(處罰棄却) 사유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2심 결정에 대해 최고심의 현명한 판단을 고대하는 마음에서 이와 같이 기우(杞憂)의 일단을 표명했다.

지도층의 인식 정지증

다음으로 반공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은 좀더 높은 지적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8억인과의 대화』의 구절들을 중공에 대한 고무ㆍ찬양이라고 고집하는 검사의 판단근거는 다음과 같은 자기체험이었다.



당신이 전문가라고,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6ㆍ25때 열네 살이었는데, 그때 중공군인들을 직접 보았어요. 그게 어디 사람 같았어? 똥뙤놈이야! 똥뙤놈! 25년이 지났다고 해서 똥뙤놈이 별수 있겠어?




자기의 14세때의 경험과 인상을 근거로 하여 그 책은 ‘적성(敵性)계열의 찬양’이 틀림없게 되었고, 법원은 역시 14세의 (지적)판단에 따라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론적ㆍ과학적 인식에서의 반론은 14세의 인식 정지증(停止症) 앞에서 모든 논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제2차 대전이 끝나 패전 파시스트 일본의 점령군 책임자로 온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일본인의 지적 인식능력은 아홉살 수준”이라고 평한 유명한 말이 있다. 일곱 살 수준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맥아더의 평은, 일본인 대중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 판단력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모하고 광적인 정치와 전쟁을 국민에게 강요했던 그 지도자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지도자와 그 관료ㆍ군세력을 두고 한 말이다.
1억의 국민대중을 송두리째 아홉 살의 지능적 ‘치매증’환자로 만들어버린 것은,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을 위시한 온갖 억압적 법률과 법체제로 국민의 지적 개발의 기회를 억압하고 그 권리를 박탈한 탓이다. 현대 세계정치사에서 일본의 지배세력만큼 옹졸하고 졸렬하고 편협하고 광신적이며 편집광(偏執狂)적인 집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야만적일 만큼 잔인하고, 자신과 자국(自國)을 외부세계의 실제적 현실에서 차단해놓고, 천황과 ‘국가’의 이름으로 국수주의적 애국심을 종교화(실제로 신도(神道)라는 것이 이것이다)하여 모든 이의(異議)와 비판을 탄압했던 것이다. 물질적 기술분야는 어느 정도 발전은 했지만 지적ㆍ사상적ㆍ정신적 인간은 극도로 왜소화했다. 외부세계의 지식ㆍ사상ㆍ사실적 정보는 ‘비(非)국민’적 또는 ‘적성’(適性)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천황을 신격화하여 그 권위를 이용해서 권력을 농단(壟斷)한 지배군부는, 그들 이익의 ‘특수주의’이데올로기를 마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인 양 스스로 착각하고 국민에게 강요했다. 그로 말미암은 국내의 누적되는 모순ㆍ긴장ㆍ부조리ㆍ불만이 폭발점에 이르게 되면 그것을 ‘위험사상’이니 ‘외부세력’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수법을 썼다. 그러고도 국내정세의 안정과 해결이 어렵게 되자 국민의 시선과 관심을 밖으로 몰기 위해 주변 약소국가에 대한 군사적 간섭ㆍ침략을 꾸몄다. 그리고 그 대외적 모험을 애국주의로 숭배시키려고 시도했다. 그 첫 희생물이 한국민족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것이다. 국민대중은 집권군부와 그 전위적 어용 지식분자들에 의해 독점된 매스컴의 허위선전에 속아, 50년에 걸친 국가 총파탄의 길로 몰려나갔다.
국민의 불만을 돌려, 집권세력에게 향하는 적개심을 ‘가상적’(假想敵)을 외부에 설정하는 것으로 배출시키는 것이 그 수법이었다. 이데올로기와 제도가 다른 미국ㆍ영국ㆍ중국 및 그밖의 민주적 국가들은 ‘적성계열’로 규정했다. 소위 모든 ‘적성국가’적 사상ㆍ지식ㆍ정보ㆍ습관ㆍ사고……를 ‘적성계열’의 ‘고무ㆍ찬양ㆍ동조’로 처벌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온통 ‘밀고자’와 ‘상호감시자’로 만들었다. 일본군부 지도자들에게 ‘적성국가’나라들의 민주주의적 강점과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전혀 국민들에게 알릴 수 없는 지식이었다. 그 ‘적성계열’의 국민은, 일본군부 세력 같은 전제(專制)ㆍ무법(無法)적 권력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싸운 전통이 있다는 사실, 지도자들은 넓은 세계적 인식을 갖고 있으며,국민들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자발적으로 결속하고 있다는 장점, 그것은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양식 및 토론과 설득으로 국민적 통합을 이룩한 결과라는 사실…… 이런 모든 것은 그들에게 있어 ‘적성’적인 지식이자 사상이며 정보였다.
이처럼 유치한 인식능력밖에 없는 지배세력과 그 하부 집행 대리관료들의 인식수준은 이런 것이었다. “그 서양놈들, 중국 ‘짱꼴라’들, 내가 열네 살 때 보았는데 그게 인간이야? 단결심도 없고 개인주의이고…… 형편없어. 지금인들 별수 있을라구! 그들은 적성계열이야. 그들에 대한 것은 글이건 말이건 무엇이건 모두 고무ㆍ찬양이야. 사실ㆍ진실의 여부는 문제가 아니야. 그저 그것만으로도 적성계열의 고무ㆍ찬양인 거야!”
일본의 장래를, 진정으로 올바른 인식능력으로 걱정한 양심적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던가. 9세의 세계관, 인식능력 수준! 그것은 위에서 장황하게 지적한 바와 같은 발생학적 법칙의 결과다. 그와 같은 발상, 같은 사고방식, 같은 지도이념, 같은 이데올로기, 같은 법체제, 같은 법률, 같은 법운용을 하는 나라에서는 꼭 같은 과정으로 꼭 같은 결과를 맛보았다. 이탈리아ㆍ독일과 그밖의 수많은 나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국민적 비극은 국민의 무지(아니 지도층의 자기기만적 무지)에서 온다.
그들의 눈에는 외부의 지식을 추구하는 ‘지식인’은 ‘위험분자’
였다. 지식인의 진정한 기능이자 사명인 학문ㆍ사상ㆍ신앙ㆍ양심의 자유, 폭력의 반대, 그 모든 것의 사회ㆍ정치적 보장인 언론ㆍ보도ㆍ출판의 자유권…… 등 민주주의적 가치관과 그 구체적 제도들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고서도 국민이 9세 수준이 아닌 지적ㆍ정신적ㆍ도덕적 인격발전을 하리라고 기대한다면 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결국 일본의 지도세력과 국민은, 그들이 형편없는 ‘적성계열’이라고 무조건 위험시하고 또 멸시했던 그 상대에 의해서 일패도지(一敗塗地)당하는 것으로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본인이『8억인과의 대화』와『우상과 이성』을 집필 또는 편역한 가장 중요하고 애절한 동기는, 그와 같은 나의 일제시대의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오늘의 우리 자신에게 살리고 싶은 데 있었다. ‘진실을 아는 국민’ ‘진실에 토대한 인식능력이 있는 시민’이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적 국민이다. 그런 민주주의 정신의 소유자만이 진정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사회를 기르고 지켜갈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본인은 이상과 같은 생각으로 글을 써왔다.
『우상과이성』속의글들은우리사회와우리자신의반성을, 『8억인과의 대화』는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의 개안(開眼)을, 이 지적ㆍ정신적ㆍ인격적 작업을 하려는 것이 그 2권의 글의 목적이다. 감상적인 반공 ‘주의’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 반공 ‘사상’을 위한 내용을 부여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불행하게도 본인은 이 사건의 전 과정을 통해서, 본인을 힐난하고 심문한 조사관들과 유죄판결을 내린 재판장들에게서, 진정한 ‘사상’으로서의 반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히스테리’적 감성론에 가까운 반공을 많이 보았다. 그들에게는 ‘지성적 시민’이야말로 공산주의를 이기는 기둥이라는 확신보다는, 어떤 절망적인 공포감(6ㆍ25로 고정관념화된)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자기들은 ‘반공전문가’이니 이론적 문답이 일절 무용(無用)이라는 태도에,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역사적 상황의 변화

다음은 우리의 주체적 자의식(自意識)과 역사적 상황변화의 관계가 제기하는 문제다. 동시에 반공법 제정이 필요했던 당시의 상황, 또는 상황이라고 주관적으로 생각했던 그 상황과 오늘의 현실상황 사이의 변화가 우리 국가ㆍ사회 생활의 존재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반공법도 그 조건의 변화와 함께(적어도 그에 뒤따라서나마) 변화해야 할 것이라는 필요성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사회가 객관적 ‘환경’의 변화에 의해 피동적으로 변화하기만 하는 존재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과 사회에 자의적 변화를 가하고, 그 사회(또는 자신)의 변화가 개인에게 작용하며, 주객관(主客觀)의 변화가 다시 인간의식에 작용하는 변증법적인 존재양식을 법칙으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란 엄격하게는 영원히 변화(진보이기를!)하는 미완성적 존재다. 마찬가지로 사회ㆍ제도ㆍ국가……도 사회적 발전법칙에 순응할 때 가장 건전하고 생산적일 수 있는 것이다. 반공법도 그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내부적 변화(발전)는 물질적 부문에서는 눈부신 바가있다. 이 사실만도 이 법의 제정 당시의 남북한 경제ㆍ공업수준의 실상과는 이제는 판이한 우리의 현실적 우월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와 앞으로 문제될 일은 국제사회에서의 이 나라의 존재양식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당시와 같은 냉전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6ㆍ25 당시와 같은 이른바 ‘대공성전’(對共聖戰)론은 한 시기의 정치적 신화로서 덜레스 미국무장관과 함께 사라져갔다. 중ㆍ소 등을 중심으로 한 국제 공산주의의 ‘한덩어리 바위’관은 미신이 되었다. 중ㆍ소 대립과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의 성장으로,이제는 가장 완미(頑迷)한 공산주의자도 그 미신을 버린 지 오래다. 중ㆍ소 관계는 오히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립시켰던 전통적 국제관계 이론을 수정하게 했다. 당장에 지구상에서 일소(一掃)될 것이라던 공산주의도 확립된 듯하며, 당장에 소멸될 것이라던 자본주의도 소멸될 기미는 없다. 반공법 담당검사들의 편협한 지식과 환상적인 희망과는 거꾸로 위의 현실은 굳어만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격돌한 미ㆍ중 양국은 오히려 어쩌면 한ㆍ미 관계보다도 우호적인 듯(다소의 과장으로)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평화조약 조인은 두 나라사이에 근 100년간 지속됐던 특히 지난 50년간의 침략과 원수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과 미국ㆍ일본 및 그 우방국가들과의 이해관계는, 중공에 대한 그 나라들의 이해의 고려로 조건지어지고 제약받고 있음을 안다. 이 상태는 중국의 강화ㆍ발전으로 앞으로 더욱 촉진되고 지속될 것이라는 게 세계의 일치된 견해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체결하려던 대륙붕ㆍ해저 석유자원 개발 등주요한 협력안에 일본이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원자력 개발이 원자탄 생산으로 연결될까봐 미국이 그토록 경계조치를 취하는 것은 누구를 의식해서인가?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남북 존재양식을 모색하는 우방 정부들은 어째서 북경과의 합의를 제1차적 조건으로 중요시하는가? 중국의 이른바 ‘세계질서 개편’철학을 따르는 많은 제3세계 국가들과, 그에 반대해온 그리고 아직도 소극적인 한국과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14세 때 본 똥뙤놈”관으로 중공을 보는 지능정지증과 14세의 지식수준으로 반공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안이한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령 소련에 대해서는 나라의 대통령이 항공기 사고와 관련해 공식적 사의를 표하고, 소련의 발전상은 아무런 제한 없이 보도 저술되고…… 등은 어떻게 해명하려는가? 반공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공산주의 소련에 감사를 타전(打電)하다니! 그것도 ‘통치행위’인지는 모르지만 ‘중공인들이 밥을 먹고 산다’도 반공법 위반이라는 관료적 논리에서 본다면 그것은 불가사의다. 소련은 ‘국외 공산계열’의 정의에서 해제 되었는가?
동북아의 일각에 위치한 한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과 법률적 반응방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중공이 지난 3, 4년간 외국 관광객에게도 문호를 널리 개방한 탓에 중국 내의 생활상은 지금 세계국민학생의 상식이 되어가고 있을 정도다. 악마만이 사는 곳도 아니며 선인(仙人)들만이 사는 곳도 아닌, 평범한 중국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만 ‘위험물’이 되어야 할 비밀은 아닌 것이다. 가릴수록 폭발력이 커지는 것, 그것이 지식ㆍ사상이며 막스 베버가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고를 여기서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6ㆍ25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도 ‘14세’의 인식으로 중국에 관한 글을 탄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발전을 저지당하고 지식의 발전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누구일까? 막스 베버가 세상에 소개한 구한말 지배세력의 그런 사고와 자세는 그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의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생존에 크게 작용할 중국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안전을 강화하는 것임을 새로이 인식해야겠다.
본 사건을 재판하는 제2심 재판부는 반공법이 제정된 당시 상황과는 오늘날의 상황이 판이하다는 인식을 판결문 속에서 시사했다. 정부가 상황변화에 대한 대응조처들을 취하고 있다는 외교ㆍ정치적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와 같은 재판부의 건전한 인식을 본인이 알게 된 기쁨과는 달리, 그것들은“법원의 판단대상이 될 수 없는 일종의 통치행위에 속하는 것으로서, 설령 피고인의 행위가 중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함으로써 위 조처(통치행위)에 어느 정도 부응한 결과를 가져왔다 해도, 이를 가지고 사회상규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단정지을 수 없고……”라고 유죄를 추인했으니, 이는 전적으로 부당한 판결이다.
본인은 중국연구가로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이 문제를 논하는 것은 삼갔다. 깊은 지식이 없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남ㆍ북한 관계 역시 7ㆍ4성명, 6ㆍ23선언 등 소위 ‘통치행위’의 불가피성으로 미루어 반공법 제정 당시나 국토분단의 상황이 이미 아닌 것은 분명하다. 정부나 집권자만이 ‘통일문제’나 남북한의 새로운 생존양식에 관해서 결정을 내리려는 ‘독점적 통일론’이 아니라, 국민의 폭넓은 이해와 지지를 위해서도 통일론은 국민대중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다양한 창의(創意)를 흡수하기 위해서도 이에 대한 반공법의 운용에는 변화가 요청된다.

결론

여기까지의 상고이유 진술을 총괄하여 본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① 본인에게 적용된 반공법은 그 입법정신에 어긋난다.
② 본인에게 적용된 반공법 제4조 2항“국외 공산계열의 고무ㆍ찬양ㆍ동조는 저서의 내용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계획적인 (어떤) 타목적(他目的)을 위해서임이 분명하다.
③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조문의 자의적(恣意的) 확대해석과 행정권력 대행관료들의 무식에서 결과된 부당한 것이다.
④ 재판에서는 차별적인 이중기준 법적용의 과오를 범했다.
⑤ 법원이, 부당하게 작성된 조서류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피고인 측의 많은 유리한 증거ㆍ증언ㆍ자료를 일절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
⑥ 헌법상의 학문ㆍ언론ㆍ출판의자유와권리의전면적 침해다.
⑦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이어야 할 민주주의의 일반원칙에 위반된다.
⑧ 본인의 대중공 정책 수립 과정에서의 정부사업에 대한 학문적 협력을 참작해야 한다.
⑨ 저서의 동기ㆍ목적을 전적으로 무시ㆍ왜곡했고, 내용을 거두절미하여 결론을 날조했다.




이상으로 상고이유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 서면에 의한 진술은, 본인을 이 나라의 최고ㆍ최후의 법적 권위 앞에 서게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간접적인 형식으로나마 국가 최고재판 앞에서 소견을 진술하고 나서 법정을 떠남에 앞서 다음과 같은 간절한 희망을 존경하는 대법관님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장 효능적이고 적극적인 반(反)공산주의 방법은, 민주주의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국민 하나하나의 가슴속에 심도록 하는 것 입니다. ‘반공주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정적 개념이며, 민주주의만이 긍정적ㆍ적극적 개념입니다.
반공은 조건이고 민주주의는 목적이자 이상입니다. ‘반공주의’가 국시(國是)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도 가령(또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만) 공산주의가 없어진다면, 그에 ‘반’대하는것으로 존재가 조건지어졌던 반공주의도 같이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국시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그 자체의 근거로 존재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사회도 국가도 그와 같은 독자적 이념을 국시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임은 재언(再言)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공의 이유로 민주주의적 이념ㆍ권리ㆍ자유ㆍ생활방식을 억압하게 되면,그 사회의 인간(시민)은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왜소ㆍ편협해지고 타락하여 발랄한 창의적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언제나 잠재적 의존 상태ㆍ미개발 상태에 머물게 되며, 잠재적 공포감 때문에 정상적인 세계관을 배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국가의 타락을 초래합니다. 일본ㆍ독일ㆍ이탈리아를 비롯한 과거의 파쇼체제 국가의 전례와 교훈을 지루하게 인용한 것은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수단으로서 반공법이 다른 법률로 대체될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견해라면 굳이 이견을 제시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 운용은 전적으로 개선되고 변화한 주ㆍ객관적 상황ㆍ조건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조건과 수단이 목적과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불행한 상태가 예상됩니다. 실제로 반공주의만을 지상(至上)으로 하는 국가활동 탓으로, 한국을 ‘국제적 고아’로 부르는 세계적 칭호가 들려온 지도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모순과 부조리와 긴장과 불안을 억누르는 방법으로 정치권력은 무제한으로 집중되고, 외부에 공포의 대상을 설정하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는 듯 보입니다.
나라의 어려움이 과연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민의 욕구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그 욕구를 억제하는 것으로 이익을 삼는 사람들의 권력욕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 장기적 안목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의 어딘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의 현실은 오늘에 앞서는 30년간의 억압적 언론ㆍ출판정책의 ‘역사적 결과’입니다. 반공법의 근본적 운용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이상론’이 아닙니다. 반대로 그것은 역사ㆍ사회적 배경과 주ㆍ객관적 조건변화에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현실주의’적 요청입니다.
그 모든 희망을 충족할 수 있는 만능약은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많은 것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있습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출판과 언론의 폭넓은 자유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회는 언제까지나 반공법 또는 그와 같은 억압적 법률의 필요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법률과 운용에 개선을 원하지 않는다면 언론과 출판등 민주적 내용이 개화하는 사회는 요원한 먼 꿈일 수밖에 없을것입니다.
존경하는 대법원 판사님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면서 이만 법정을 물러갑니다. 안녕하십시오.
1978년 11월 26일

여기에 찍은 무인(拇印)은 본인의 무인이 틀림없음
이영희
이를 확인함, 교도(矯導) 김동석


3-4. 「제로섬적 대결구조에서 경제전쟁으로」(1993년, 『좌우』)


-전환기 동북아정세의 성격과 남북관계1)

지난 몇 해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진행 중인 전 세계적 변화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세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에서부터 긴 역사적 퍼스펙티브의 방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아야 한다. 눈앞의 변화에 휩쓸리고 긴 안목을 잃어버린다면, 그 속에 있는 본질과 전모, 그리고 역사적 전망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나는 21세기를, 프랑스혁명의 이상이 200년의 격동 끝에 실현의 단계로 다가서는 ‘제4의 변혁’의 시대로 본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사적인 대변혁은 길게 볼 때 근대사회의 첫 인류사적 변혁이었던 꼭 200년 전의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긴 억압의 계급적 사회에서 인간을 해방하기 위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과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정치적 대변혁과 함께 19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물질적 생산력의 놀라운 고양, 즉 산업혁명과 맞물려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인류사적 변화를 일으켰다.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아야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놀라운 역사적 대변혁은 바로 그 자본주의의 모태에서 생성된 자본주의의 구조적ㆍ내면적ㆍ본질적 모순에서 제기된 두 가지 대사건이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후진국러시아 사회에서 레닌에 의해 이루어지는 무산자혁명, 볼셰비키혁명은 두 번째의 거대한 역사적 대변혁이다. 이제 인류사의 거대한 강줄기의 한 부분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상을 지향하는 무산자계급의 폭발적 에너지로 발동함으로써, 인류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커다란 강줄기로 나뉘어져서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지배적 조류 속에서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무산계급의 이상주의적 사상과 정치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세력과 에너지가 발동되었는데, 그것이 파시즘이다. 1920년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서부터 독일의 히틀러, 스페인의 프랑코,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중국의 장개석, 일본의 천황주의에 이르기까지 후발자본주의를 휩쓴 ‘파시즘’이라는 흉물이다.
21세기로 넘어서면서 대항적 체제로 탄생한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의 쌍생아였다. 여기서 자본주의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쌍둥이 자식인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목숨을 건 투쟁 속에서 어느 쪽인가의 편을 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본래적으로는 파시즘이 자본주의의 본령이지만, 자본주의의 쌍생아 중 더 난폭하고 위협적인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일시적인 전략 전환을 선택하면서 공산주의와 손을 잡고 파시즘을 타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으로 해서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파시즘은 사라졌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아들인 사회주의의 이념과 이상주의는 그것의 현실적 타당성으로 해서 전 세계적인 힘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서부터 세기말에 이르기까지의 근 100년의 역사는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와 공산주의라는 아들이 목숨을 건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위기

이제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생성시킨 막강한 물질적 생산력을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즉 항시적이고 총체적이며 제도적인 조직화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행복, 생존양식 등 각종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흐름은 거의 20세기 초부터 최근 몇 해 전까지 인류사의 거대한 맥을 이루면서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두 개의 체제ㆍ집단ㆍ이념ㆍ가치관ㆍ생활방식의 구조적 갈등구조를 통해 지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공산주의가 이룩하고자 한 이상향이나 그것이 동원하려 했던 수단과 방식은 인간 개개인의 본질적인 인간성이라 할 수 있는 자유의 추구, 개인의 소유욕의 표현인 무한한 물질적 생산과 부의 축적 본능에게 패배하고 만다. 이것이 몇 해 전 우리 눈앞에서 전개됐던, 프랑스혁명 이후 세 번째의 역사적 대변혁이다.
마르크스가 구상하고 레닌, 스탈린이 실천적으로 적용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가치관과 방식은 앞서 언급한 배경과 이유로 인해 부정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만족할 만한 제도와 이념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첨병이자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미국 사회를 볼 때 자본주의 또한 이미 중병에 걸려 있는 상태다. 그 중병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의 제도와 구조, 인간 생존양식의 골수에까지 파고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정치제도와 생산방식으로서의 사회주의는 환상으로 끝났지만, 사회주의가 지향하고 인류 모두에게 제기했던 많은 이념과 가치, 인간다운 사회와 생존양식이라는 가치는 병든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불변의 처방효과로 남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주의의 ‘제도적’ 붕괴를 보고 ‘자본주의의 승리’로 단정하면서 갈등의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생각 없는 지식인들은 후쿠야마의 아류가 되어 ‘역사의 종언’을 신의 계시처럼 복창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제도로 변혁되는 ‘새 역사의 시작’이 바로 ‘21세기의 역사’라고 나는 보고 있다.

민족주의의 부활

또한 현재 세계는 민족주의의 부활로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 해체된 소련 제국의 판도 위에서 피비린내 나는 민족주의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고, 유럽국가뿐만 아니라 중동아랍지역, 아프리카지역에서도 역시 민족적ㆍ인종적 갈등이 고양되고 있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었다고 믿었던 부르주아 민주주의국가인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에서는 극우 파시즘의 리바이벌도 나타나고 있다.
구소련 제국의 판도에서 일어난 민족주의의 분출은 스탈린적 민족정책의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스탈린은 민족이라는 인간의 독특한 집단적 생존체의 고유한 특성과 에너지를 무시하고, 무산 프롤레타리아라는 ‘국제주의적 동질적 존재’의 계급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려고 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 민족의 특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노동계급으로서의 하나의 거대한 국제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계급의 에너지보다도 더 끈질기고 더 뿌리가 깊으며, 더 감성적인 민족주의를 인위적으로 억압했기 때문에 소련 제국의 해체 후의 공백기에서 비로소 민족주의의 자기존립 시대가 온 것이다.
한마디로 오늘날 세계정세의 특징은 일면으로는, 세계주의 혹은 국제주의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인위적인(냉정적인) 양극체제하에서 편입되었던 민족주의의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고, 다른 면에서는 반대로 EC, 북미 자유무역협정 등 모든 지역에서의 블록화 추세 속에서 민족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지역통합 경향이 상충하는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정세는 결말을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인류사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지구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정세의 불안정 요인

먼저 북쪽의 국가들, 즉 구소련(러시아), 중국, 북한의 경우 각자가 추구하는 방식이 일관된 형태로 저마다 역할을 하면서 전개될 것 같다. 북방지역의 질적인 구조변화는 적어도 20~30년 정도 오랜 기간을 요할 것이다. 변화는 지속적이고 단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대단히 장기적인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관심인 남쪽, 즉 한반도의 이남과 일본, 미국 또한 불안정한 요소가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 내의 모순이 골수에까지 미친 상태인데, 아직도 미국은 경제력, 군사력으로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을 지배하려는 존재다. 미국은 여전히 대결주의적 본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진영에 이겼지만, 자신 또한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미국은 중동전쟁 이후 소위 ‘신세계질서’를 자신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구축하려고 한다. 미국의 ‘신세계질서’ 구상은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 즉 군사적 헤게모니하에서 미국의 이익에 합치된 형태로 세계질서를 고쳐나가는 것을 말한다. 클린턴 정부든 또는 어떤 대통령의 정부든, 미국이 진정으로 지구상의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것이 환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본은 당분간 중국, 북한, 베트남, 캄보디아 등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동북아 태평양지역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 예상되나, 미국의 현저한 군사적 패권주의의 대리 역할은 계속되리라고 본다. 이러한 일본의 역할은 미국과의 협동적 군사체제를 통해서 가능하다. 미일관계는 부분적인 경제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구소련 제국과 중국 내의 변혁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이 미일의 이익에 합치되는 상태로 완결될 때까지(그렇게 된다고 가정할 때) 동북아시아에서 냉전시대의 군사태세와 전략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의 구조적 변화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변화요인은, 구소련과 중국의 ‘시장경제화’를 통한 대변혁이 남북한에 직접 작용하는 효과다. 기존의 남북 대립적 구도 속에서 북한의 보루이자 후원자였던 중국이 이질적인 존재로 변화함으로써 북한의 내외적 불안요소가 증대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보다는, 미국의 이른바 ‘신세계질서’라는 패권주의의 일환으로서 북한의 전면적인 굴복과 정권 해체를 목표로 한 대북공세가 강화되고 있는 데서 생기는 불안요인이다. 그것은 미국이 소련에 대해 무제한적인 군비경쟁을 강요하여 소련의 물질적 생산능력을 완전히 파탄시켰던 방법으로, 경제적으로 우세한 남한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격차 폭을 더욱 증대시켜서, 동시에 그 바탕 위에서 한국의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증강시킴으로써 북한에 대해 무제한적인 군비경쟁을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편승한 정책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 본다.

냉전적 흡수통일 불가능하다

구소련과 중국의 남북한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한러 수교와 한중 수교에서 볼 수 있듯이 냉전시대의 흑백논리에 입각한 전면적인 상호부정과 대립이라는 ‘제로섬적인’ 대결구조는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한국 수교에서 보여지듯이 정치ㆍ이데올로기의 요소보다는 경제적ㆍ물질적 요소가 결정적인 규정력을 갖고 그 어떤 요소보다도 상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미 구소련 및 중국의 남한과의 관계는 북한보다도 더 근접했다. 이 상황변화는 남한에게 유리하지만, 이에 대응할 북한의 몸짓을 정확히 진단하기는 아직 어렵다.
남북 인구 내부에서도 통일의지와 실천이 상당한 정도로 합의되었고 진행되고 있다. 남북한이 전쟁에 의하지 않는, 일정한 합의 기반을 가지는, 돌발사태를 배제한 점진적인 형태의 통일방식이 요구된다. 다만 문제는 어느 쪽이 우위에 서는 통일방식이냐이다. 물론 답변은 뻔하겠지만, 구소련이나 중국은 인접한 국가의 안전을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원치 않을 것이다. 독일통일의 경우처럼 북한의 체제붕괴와 같이 한반도에서의 ‘힘의 진공’상태가 갑자기 발생해서 준비 없이 휘말리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한 기간을 두고 한반도에서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서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그 속에서 어느 쪽 체제가 우월하건 그들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은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민족 내적 합의와 단결이 절실할 때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분단민족 내부의 평화적 생존양식에 대한 합의와 실천의지다. 모든 문제에 대해 주변 강대국들의 작용이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강대국 중심의 관점보다는 우리의의지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남북관계에서의 긴장완화 노력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미국의 헨리 키신저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소련, 중국 등의 사회주의국가들과 남북한에 대한 교차승인을 제창한 바 있다. 오늘에 이르러 소련은 국내의 정치적 불안으로 다급하니까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한과의 국교정상화를 단행했고, 중국은 미국ㆍ일본의 북한 승인을 전제로 남한과의 수교를 결정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끝까지 몰아붙여서 수교하는 것을 정책기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ㆍ일의 북한에 대한 승인과 수교는 아직 결실을 맺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지목, 적극 공세를 취하고 있어 동북아지역에서의 불안전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첫째, 이미 남북한이 쌍방을 승인하고 UN 동시가입도 이루어진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도 북한에 대해 국가승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분명한 입장이 요구되는 남북한의 국제적 상황이다.
둘째, 현재 남한의 군사비는 북한의 약 2배 이상(남한 약 110억 달러, 북한 약 40억 달러)으로 그 격차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북한과의 합의에 의한 새로운 관계발전 양식을 제안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소련에 대해무제한적 군비경쟁 추구로 소련의 물적 토대를 파탄시켰던 방법으로 북한의 경제위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골목에 몰린 고양이 앞의 쥐’처럼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아주 위급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바로 최근 북한이 IAEA의 핵사찰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 것도 단순한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중국과 구소련의 핵 군사적 보호가 철회된 급격한 국가안보의 위기에 대한 자위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제한 군비경쟁 중단해야

셋째,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자 한다면 그것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핵무기를 갖고자 했던 논리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미국이 군사적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독자적인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박정희 정권의 논리와 다름없다. 더구나 소련 및 중국과의 군사동맹이 사실상 해체되고 경제원조도 거부되고 있는 마당에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우월한 군사력과 미국이라는 세계적인 군사대국의 위협 앞에서 어떤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무기를 개발하려 했다 하더라도 당연한 대응조치가 아닐까? 10배나 되는 남한의 압도적 경제력과 무제한적 군비경쟁 정책에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군사적 대응 노력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저렴하고 질적 효과도 있고 ‘정치적 힘’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한반도 국제정치 지형에서 위력적인 외교카드로 이용될 수 있는 핵무기의 독자적 개발은 북한으로서는 최선의 정책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넷째, 결과적으로는 남한만이라도 미국의 월등한 군사적 보호를 누리는 토대 위에서 무제한적 군비경쟁 정책을 스스로 중지하는 의사를 분명히 표명함으로써 위기구조를 완화할 수 있다. 최소한 2~3년 내에 군사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가 나와야 한다. 북한의 공포, 두려움, 위협을 제거하는 그 같은 조치로 북한의 핵무기정책의 백지화 내지 수정을 유도해보는 시도는 가치가 있다. 이것은 남한 자체로 봐도 이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군비(軍費ㆍ軍備)감축은 남북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전환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국가 내부의 왜곡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곳곳에서 투영된 비생산적인 군사통치체제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의도처럼 남한의 공업력과 군사기술 수준으로 대규모 군수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면, 남한은 결국 날로 커지는 미국의 ‘무기시장’이면서 동시에 ‘무기상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남한이 북한에 대해 군사력 우위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면 결과적으로 미국-일본의 군사동맹체제내의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민족 내부의 문제가 외국 군사력에 힘입어 해결되는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급변하는 동북아정세의 ‘탈냉전’구조 속에서 이제 낡은 방식의 대결구조는 청산되어야 한다.



1) 편집자주: 이 글은 월간사회평론19934월호에 실렸던 것이다. 저자는 당시의 동북아정세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이 잡지사의 기자가 제시한 질문에 답변했는데, 그 답변을 사회평론사의 편집국에서 정리한 것이다.



 


3-5. 상고이유서1)(1978년 11월 26일, 역설)

본적: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 318–3
주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화양동 16–64
성명: 이영희
연령: 1929년 12월 2일생(49세)
적용법령: 반공법

사실적 사항

이 사람은 애당초 본인의 저서에 대한 반공법의 기소가 부당하며, 그 후 제1심, 제2심의 판결이 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까닭에 상고했습니다. 이제 상고의 이유를 저서 집필에서 제2심판결까지의 각 단계에 대한 간략한 사실적(事實的) 사항과 종합적 견해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하겠습니다.
먼저,
(1) 집필, 저술의 동기ㆍ목적 등에 대하여
(2) 집필, 저작 과정, 내용, 구성, 성격에 대하여
(3) 경찰, 검찰의 조사ㆍ조서에 대하여
(4) 하급심의 판결 및 과정에 대하여
이상에 대한 간략한 사실사항이 끝나면 각 항목의 사실에 관한 본인의 견해와 이 사건에 대한 입장과 주장을 종합적으로 진술하도록 허용해주십시오. 본 피고인은 법률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며, 한 사람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평소에 법을 개의(介意, 괨意)하고 살지도 않은 까닭에 법률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상고이유의 순수한 법률 측면은, 본인의 이 상고이유를 보완할 변호인(복수)의 그것을 원용(援用)합니다.
본건은 300페이지가 넘는 저서 2권, 그 속에 수록된 약 50편의 글이 관련되어 있는 까닭에 공소장과 판결문이 긴 만큼 이 상고이유서도 다소 길어지겠습니다. 부득이한 일이오니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집필동기, 목적 등에 대하여

본인은 1957년부터 71년까지 신문사ㆍ통신사의 외교담당 기자로서 그리고 외신부장으로서, 주로 동북아지역 특히 중국(공)을 주요소로 하는 지역정치 문제를 연구했고, 1972년 한양대학교로 직을 옮긴 후부터는 동대학교 부설 ‘중소문제연구소’창설을 도와 상임 연구위원(교수직 겸임)으로 중공연구에 종사해왔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친 직후 정치ㆍ사상적 조건의 특이성으로 인하여 모두 중공연구를 위험시하고 기피하던 1957년부터 77년에 구속되기까지 22년 동안 중공을 학문적ㆍ시사적 연구대상으로 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중공을 연구하기 시작한 동기는, 본인이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국군에 입대하여 57년에 예편하기까지 7년간의 절반인 3년 반을 최전방에서 중공군과 전투한 시기의 전쟁경험이었습니다. 중공연구는 예편과 동시에 직을 택한 언론계에서 실무적으로, 그리고 대학연구소에서는 학문ㆍ이론적으로 계속하게 된 것입니다.
20년간의 중국연구 과정에서 날이 갈수록 절감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일반대중은 두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는 대학생 심지어 교수들까지 그리고 지도적 사회계층의 지식인들이 중공에 대하여, 전문가적 입장에서 볼 때 전적으로 허구이거나 왜곡된, 아니면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땅에서의 정치ㆍ군사ㆍ문화적 상황 발전과 변화가 한반도에 작용한 역사적 사실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조차 없겠습니다. 옛 중국의 역성혁명과 왕조의 교체 하나만 들더라도 그것이 이 땅의 왕조와 민중에게 정치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이 민족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그와같은 지정학적ㆍ문화적ㆍ전통적상호작용 관계는, 중국본토에 공산정권 생활양식이 확립되었다고 해도 조금도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은, 우리 민족 생존의 기본적 상식에 속하는 사실입니다. 6ㆍ25전쟁에서의 중국의 정치ㆍ군사적 개입은 지난 2,500년간 수없이 반복된 중국민족의 간섭(또는 교섭)관계가 20세기의 오늘에서도, 그리고 예상할 수 있는 상당한 장래에 걸쳐서도 한ㆍ중 양 민족과 국가 사이에 어떤 형식이건 접촉관계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싫건 좋건 우리의 주관적 입장과 희망과는 상관없이 그 상호작용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이 인식은 정권과 국민일반, 지도적 계층이나 서민에게 자리보호의 한 생존본능처럼 뿌리깊이 인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본토에서의 변화 과정과 오늘의 현실상태에 대해 이 나라는 지식인도 무식인도 없는 한결같이 몽매하고 무지한 실정입니다. 단순히 아는 바가 없어 지식적으로 백지상태이고 반응양식(反應樣式)에서 중립적이라면 이제부터라도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며 진실에 입각한 합리적 관찰ㆍ비판ㆍ판단ㆍ평가를 위한 지적 작업을 시작함에 아무런 저해요인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에 관한 이 나라 국민의 일반적 지식은 상대방이 ‘공산주의’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취해진 정책적 억압ㆍ위험시ㆍ왜곡 때문에 30년간의 선입ㆍ고정관념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러합니다. 조금 관심이 있다는 사람의 경우는 과대평가와 그에 따르는 장래의 공포감을, 어떤 사람은 과소평가와 장래에 대한 방심 및 소위 ‘중국부재론’에 이르기까지 극단적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극단론은 모든 다른 경우에도 그렇듯이, 중공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근거도 없고, 그런 까닭에 위험스러운 것입니다. 진실은 그 어느 중간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실은 그것이 정보(information)이건 지식이건 정치ㆍ사상적 이유로 우리 국민에게 거부되어왔습니다. 이 결과로 피해를 입는 것은 중공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이라고 본인은 확신합니다. 오늘날 이 사실을 부인하기에는 국제정세 전반 특히 동북아지역 정세는 너무도 옛날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과학적 인식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의 안전 및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길이라고 본인은 확신했습니다. 이 신념이 문제의 저서『8억인과의 대화』를 편역 출판하게 된 동기입니다.
본인은 그와 같은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함에 있어서 제일의적(第一義的)으로는 교수들과 대학생 그리고 이어 지식인 계층에게 정확한 중국관계의 지식을 공급함으로써 그들의 고정관념을 씻고 몽매(蒙昧)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수 있다면 그것은 중국 연구가로서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중국에 대한 올바르고 통찰력 있는 국민적 창의력이 형성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의 안보와 발전을 염원하는 한 시민으로서의 ‘나라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학자로서 자신이 연구ㆍ축적한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지식인으로서의 특혜에 대응하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8억인과의 대화』를 편역하게 된 동기와 목적입니다.
다음 공소장에 제기된 사회비평 형식인 에세이「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와「다나까 망언에 생각한다」및 평론「모택동의 교육사상」은 본인의 평론집『우성과 이성』에 수록된 30편 가까운 평론ㆍ수필ㆍ논문 가운데 일부입니다.
그 글들은 지난 10년 동안에 여러 신문ㆍ평론지ㆍ잡지 등의 청탁에 응해서 집필ㆍ발표된 것입니다. 그 글들은 시간적으로나 주제로서나 또 내용상으로도 아무런 상호 관련성이 없이 그때그때의 요청에 의해 쓴 것들입니다. 이처럼 10년간에 걸친 각기 자기완결적인 글들을 다만 한 권의 책으로 모았다는 것뿐이며, 집필의 목적 및 동기, 글의 내용에 일관된 맥락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들은 어떤 뜻에서나 어떤 의도에서도 하나의 목적이나 결론을 내기 위해서 엮어질 수 있는 성격의 글들이 아닙니다. 각지 단편적ㆍ자기완결적임을 강조해둡니다.

저서의 내용ㆍ구성ㆍ성격, 저자의 집필과 발간작업상의 조치에 대하여

이에 대한 기술(記述)에 앞서 한 가지 부기해둘 일이 있습니다. 재판에 증거물로 제시되어 있는 2권의 책『8억인과의 대화』와『우상과 이성』은 본 상고이유서 작성을 위해서 본인이 참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은 서울구치소의 서적영치(차입) 불허(不許) 결정 때문에 참고할 수 없는 채 본 상고 이유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책 내용의 상세한 자료 인용이나 일자 등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기억에 따라 기술함을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8억인과의 대화』는 본인 자신의 집필이 아니라, 저명한 서방세계 국가의 중공 연구가들과 인간생활 각 분야에 걸친 세계적 최고권위자들의 중국 방문ㆍ시찰기를 선정, 번역ㆍ편집한 것입니다. 전기(前記) 제1항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본인의 동기와 목적이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능력의 한도 내에서 가장 정확하고 공정하며, 전문가와 권위자들의 세계에서 학구되고 현장적(現場的)으로 확인ㆍ논증된 중국에 관한 진실과 객관적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충실ㆍ정직하게 전달ㆍ소개하는 것을 기본과제로 삼았습니다.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구체적 원칙을 세웠으며, 집필의 각 단계와 전 과정에서 어긋남이 없이 따랐습니다. 원칙에 따라서
① 글의 원저자는 서방국가 특히 한국의 우방국가 시민만을 선택했고 사회주의권의 시민은 제외했습니다.
② 그 필자들 속에서도 각기의 연구나 활동분야에서 중공과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고 학자적 성실성에서 세계적 평가를 받는 사람만을 다시 추렸습니다.
③ 연구가적 공정성ㆍ성실성과 아울러 각기의 전공분야에서 세계적 최고 권위나 독특한 자격을 가진 사람만을 골랐습니다. 내용의 높은 수준 때문입니다.
④ 그 작업으로 축소 선택된 저자들 가운데 다시 영국 왕립중국 연구원 원장 맥파커 박사처럼 우리나라 정부의 초청으로 내한한일이 있는 학자를 우선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공개적으로 초청한 중공 전문가는 많지 않아, 이 책에는 많이 수록할 수는 없었습니다.)
⑤ 이렇게 엄선된 필자와 저서 속에서 다시 글 내용의 학문적 수준ㆍ비편파성ㆍ객관성ㆍ진실성 등에 대해 세계의 유수한 중국 연구 전문지들이 일치해서 높이 평가한 글들만을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⑥ 원저의 번역에서는 본인(편역자)의 주관적 견해나 원문과 우리말 사이의 번역 기술상의 편차(원뜻의 확대ㆍ축소ㆍ이탈 등)를 최대한으로 막기 위해서 원문대로 취사함이 없이 전문 완역을 했고, 거의 ‘word to word’식으로 번역했습니다.
⑦ 이상과 같은 원칙적 주의를 다하고 나서, 이어서 각 편의 머리부분에 필자, 원전 출처, 출판사 및 출판연월일, 시찰시기와 목적, 그 여비(旅費)의 부담자, 방문자격, 발췌한 글의 성격, 글 전체속의 위치, 학계의 평가, 읽을 때 유의할 일……을 참고자료로서, 본인이 입수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상세하게 ‘편역자 주’로 부기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세한 주를 달아주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글의 전후관계ㆍ배경ㆍ수준 등, 이를 테면 원전(原典)의 ‘이력서’를 소개함으로써 독자가 자칫 천박하고 성급한 평가나 결론 같은 것을 내리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⑧ 본인의 주관적 견해나 평가 및 입장 같은 것은 모두 배제했습니다. 다만, ‘편역자 주’외에 독특한 중공사회의 용어나 논증적 사실ㆍ자료 등 우리 독자들의 이해에 필요한 간략한 해설 메모를 각주 형식으로 적어주는 데 그쳤습니다. 편역자가 원저 내용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글을 비평하기 위해서보다는 엄정한 기준에 따른 높은 수준의 글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더욱이 한국학자의 현 중국연구 전반적인 수준이 이 책에 수록한 세계 최고급의 외국 중국 전문가들의 현지보고를 비판할 수준이 아니라는 학자적 양심에서입니다. 글 가운데 간혹 우리 독자들에게는 새롭거나 의외인 중공의 발전상ㆍ장점 같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글의 전체 맥락에서 보면 권위자들의 평가와 판단답게 장단점, 밝음과 어두움, 웃음과 울음, 발전과 낙후 등의 예리한 비판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문에 대한 소아병적이고 비학문적인 삭제나 사족(蛇足)은 금기일 뿐더러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상과 이성』에 수록된 글들 중에서 검찰이 골라서 기소한 내용의 부분은, 본인이 과거 언론인으로서 사회의 비판적 직업 기능을 수행하고 있던 당시 현실비판 형식으로 집필ㆍ발표했던 것들입니다. 그밖에 한 편은 한양대학 재직 중 중국문제 연구가로서 중국 관계 글을 발표한 가운데 평론 내지 에세이식으로 쓴 한 편입니다.
1971년 발표한 것을 위시하여 77년 것까지 8년간에 발표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발표될 당시에 신문이면 신문 검열당국이, 잡지면 잡지 검열당국이 검열하여 문제될 것이 없기에 발표 후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묵은 글들을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출판사 측의 요청에 응하여, 과거에 인쇄된 신문ㆍ잡지를 그대로 넘겨주어 한 권의 책에 수록ㆍ발행된 것입니다. 각 권마다에 그 첫 발표연월과 발표지명이 밝혀져 있고, 글 내용의 성격분류로 수필ㆍ단문ㆍ평론ㆍ논문 등으로 장이 나뉘어 있습니다. 이 책의 글들은 앞서의『8억인과의 대화』와는 달리, 각기 독립된 가벼운 내용의 글이므로 글을 연결짓는 어떤 일관된 동기도 연관성도 목적도 없습니다.
「다나까 망언에 생각한다」는 1974년『세대』(世代)지 4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다나까 일본수상의 대한(對韓) 망언을 규탄 비판함과 동시에, 한국인 스스로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면서 민족정기와 민족주체성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우리 국민생활의 각 분야에 걸쳐서 검토 비판한 내용입니다. 「모택동의 교육사상」은 1976년 11월호『대화』지에 게재된 평론으로서 ‘문화혁명’의 의미를 모택동의 교육사상의 측면에서 해명해달라는『대화』의 요청으로 쓴 것입니다. 이 글 속에서 모택동에 대한 에드가 스노의 인물평은『8억인과의 대화』에 실은 스노의 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검찰은『8억인과의 대화』의 신문 과정에서 그 글은“문제될 것 없다”고 말하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는 1976년(책이 없어 게재일 미상) 성남시(城南市) 소재 ‘가나안농군학교’의 도시산업 분야 중간 지도자 정신훈련 강습용의 토론ㆍ논의 재료로 쓰기 위한 청탁을 받고 집필하여, 동학교 기관지『가나안』에 발표되었던 것입니다. 김(이름 미상) 목사2)가 창설, 운영하는 이 ‘가나안농군학교’는 ‘막사이사이’사회사업상을 받은 도시ㆍ농촌 개척자 양성기관입니다. 이 글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 당시 동학교가 정부 관리를 포함한 각계의 많은 중간 지도자의 ‘정신 재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산업 각 분야의 ‘새마을 지도자’인 이 피교육자를 위해 썼던 본인의 가벼운 글을, 2년이 지난 후에 ‘농민혁명을 선동했다’고 기소하는 것도 부당하거니와, 유력한 증인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 이심(一, 二審)이 공소를 받아들인 것은 더욱이나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제1심의 심리기록을 특별히 주의해서 검토해주시기를 각별히 부탁드립니다. 기소장은 특히 이 글을 가지고 전후의 의미적ㆍ문장적 맥락을 무시하고 대목 대목을 끊어내어 연결시켜서 원문의 뜻과는 전연 무관할 뿐더러, 심지어 정반대의 뜻으로 ‘결론’이라는 것을 조작해냈습니다.
글을 읽는 상식에서 벗어남이 이에 더할 수가 없습니다. 계획적이고 악의적인 견강부회로써 기소문의 총 결론을 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급법정들의 과오가 반드시 대법원의 고차적이고 공정한 판단으로 시정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습니다.

조사기관의 신문ㆍ조사에 대하여

1977년 11월 23일, 아침 7시 30분경에 집에서 연행되어 25일 심야까지 3주야를 불면ㆍ속행으로 조서작성을 위한 신문이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리 작성해놓은 것으로 보이는 대본(臺本)대로, 부르는 대로 ‘공산주의를 고무ㆍ찬양ㆍ동조했다’는 취지의 자술서를 받아쓰도록 요구했습니다. 본인은“그런 용어도 아는 바없고 글의 내용도 그렇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를 거절했습니다. 강요와 거부로 일주야가 지난 뒤, 그러면 본인의 의사대로 진술서인가를 써보라기에 앞에 기술한 제1항ㆍ제2항의 집필동기, 목적, 저서내용, 원저자의 선택에 쏟은 세심하고 엄격한 원칙과 기준, 그리고 순수한 학구적 공헌욕(貢獻慾)에서 발행한 사실, 그리고 ‘고무ㆍ찬양ㆍ동조’와는 반대로 ‘나라사랑’의 한 방법으로 객관적이고도 균형 잡힌 중국 소개에 불과하다는 진술서를 썼습니다. 조사관 백(白, 이름 미상) 경위(警尉)는 그것을 상부에 가지고 갔다오더니“이것은 안 된다”고 말하고, 다시 미리 작성해둔 내용과 형식에 따라서 자필로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때에는 이미 계속적인 신문이 3일째가 되었고 한 잠도 자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시달린 결과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그 이상 자기의식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곳은 처음 본인의 거주지 관할인 성동경찰서에서 왔다고 가볍게 따라간 것과는 달리, 후에 알게 되었지만 치안본부 대간첩조사ㆍ공작의 ‘대공분실’이었습니다. 4명의 관리가 2명씩 교대로 감시하는 밀실에서의 분위기는 간첩 또는 그 협력자를 만들려는 듯한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본인은 반공사업에 누구 못지않게 찬동하는 시민이므로 연행에서부터 신문 과정까지 오히려 자발적으로 협조했습니다. 그런데도 육체적ㆍ물리적 피해는 안 받았습니다만 간첩이나 ‘공산주의자’로 ‘만들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속된 긴장, 극도에 달한 정신ㆍ육체적 피로에다가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포’가 겹쳐 결국 사전 준비된 방향과 내용대로의 진술형식을 대체로 복사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같이 해서 쓰여진 것이 세 번째의 자술서이며, 그것이 경찰의 증거로 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억압ㆍ위협적 분위기 속에서 인간적 저항의 힘을 상실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받아쓸 수밖에 없는 문서를 자의(自意)에 의한 것인 양 재판에 제시하고, 그것을 재판부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재판에 본인은 승복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소위 ‘고무ㆍ찬양’운운의 해석기준에 관해서입니다. 조사관은 이에 관한 본인과의 논쟁이 벌어지자, 중공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웬만한 식생활의 현장묘사가 바로 고무ㆍ찬양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방침과 내용은 공산사회에서는 제대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다고 되어 있지 않다. 교과서 내용과 상위하는 것은 고무ㆍ찬양이 된다.”마찬가지로 모택동이나 그밖의 중공 지도자들의“인간적 자질, 지도자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과 중공사회의 운영과 경제기구 및 활동이“그런 대로 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와 묘사(갈브레이스의 말)도 모두 반공법의 고무ㆍ찬양이라고 시인하기를 강요했습니다. 소위 자술서에서 시인을 강요한 반공법 제4조 1항의 해석기준은“공산사회ㆍ경제가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시관(國是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교육하는 내용 및 평가와 다른 것은 그 객관적 진실 여부는 문제가 안 된다. 진실 묘사 그 자체가 고무ㆍ찬양ㆍ동조의 행위가 된다”,“ 모택동에게 인간적 자질, 지도자적 능력이 있다는 말이 고무ㆍ찬양이 아니고 뭐냐!”
검찰(檢察) 신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인은 치안국 조사관의 그 기준은 부당하며 따라서 그 조서ㆍ자술서 들은 시인할 수없다고 했지만 검사는“객관적 진실은 문제가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ㆍ표현해도 반공법 위반이다”를 유일한 기준으로 고집했습니다. “반공법 조사는 검사가 위반이라고 하면 위반인 것다. 당신은 법률을 모르지 않는가. 피의자의 주장은 판사 앞에서 하면 된다. 여기선 시인만 하는 것뿐이다”라고 하여 심문과 조서가 작성되었습니다. 본인이 주장하는 유리한 진술은 반공법 조서의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며, 반공법 관계 조서의 작성 방법도 아니라고 검사는 일방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검사는 조서의 맨 끝장에 이르렀을 때, 본인이 정부의 대중공정책 작성 과정에서 자문적(諮問的) 협력을 한 사실과,정부의 중공정보분석 목적을 위한 연구 역할을 담당한 사실 한 가지만을 한두 줄 적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 조서의 공정성을 꾸미기 위한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치안본부와 검사는 본인의 반공법 위반 신문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유신체제’에 대한 본인의 반대 입장과 태도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유신체제 반대자는 ‘공산당’이라는 정의로 진술서 작성을 유도했습니다. 또 검찰조서를 보면 나타날 일이지만, 정작 반공법위반 조사는 1일에 1매 또는 고작해서 2매 쓰는 분량과 시간이었습니다. 20일간 오전 오후에 걸렸던 ‘검취’(檢取)는 실제로는 ‘유신체제’반대의 추궁으로 시종했습니다. 유신 지지를 조건으로 하는 사건의 원만한 해결도 제시되었습니다. 반공법을 들고 나온 행정권력의 본인에 대한 조사행위의 진의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는 노골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사담당 황(黃) 검사는 신문 과정에서“이 교수가 반체 제인사로 지목된 사람이 아니고 정부와 친한 관계였다면 이 책들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더욱 구체적 사실들을 다음 항목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1, 2심 심리와 판결에 대하여

저는 소송법상의 절차나 조문ㆍ법규 등은 모릅니다.그러나 법조문에 앞서는 민주사회의 법적 통념과 일반적 상식의 차원에서조차 우선 제1심의 판결은 상궤(常軌)를 벗어난 것이라고 믿습니다. 2권의 저서 중 하나인『우상과 이성』의 10년간에 걸친 글 중에서 문장의 뜻과 흐름의 맥락을 제멋대로 거두절미하여 연결, 엮어 가지고 ‘모택동식 농민혁명을 책동했다’라는 최종결론을 조작해낸 검사의 기소장은 길이가 14매, 자수(字數) 8,286자의 장문입니다. 제1심 공판은 증인(2인)의 증언까지를 합쳐 11회인가 그 이상 걸렸습니다. 피고인 측의 진술과 증인 증언, 변론, 제출자료 등 재판기록은 상당한 분량에 달합니다.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은 제1심 판결문의 ‘이유(판결이유)’부분의 길이가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히 14매, 자수로서 8,286자입니다. 십수 회의 공판에서 7명의 변호인이 변호하고 2명의 피고인이 진술한 만 6개월간의 법적 자료에서 피고인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단 한 가지의 사안(事案)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국내 언론기관은 재갈을 물리어 있어 한마디도 보도하지 못했지만 외국보도기관의 기사(법정취재)를 보아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법정 안에 걸린 시계 같은 무생물을 묘사하라 해도 검사와 판사의 글짓기의 길이ㆍ표현ㆍ글자수가 꼭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판결이유는 기소장에서 글자 하나, 마침표 하나, 말 순서 하나 틀림없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진실로 경이적인 솜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실은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8,286자의 그 복잡하고 많은 내용의 기소장을 한 자의 고침도 없이 복사한 것입니다.
10여 회의 심리를 담당한 판사가 언도공판(言渡公判)에서 형량만 말하고 판결이유는 말하지 않겠노라고 맺은 것이,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1만 자에 가까운 기소장을 그대로 복사해놓고서야, 일말의 양식과 양심이 있는(또는 용기가 있는) 법관이라면, 그것을 수백 명의 방청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읽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2심은 그 판결이유를 그대로 추인(追認)했습니다. 본인의 집필과 저서 속에서 그려내어 기소한 그런 표현ㆍ내용ㆍ묘사와 동일하거나 같은 뜻의 글들이 일간신문ㆍ잡지ㆍ방송 보도기사로 보도되고 출판된 지 오래이며, 그 분량은 방대합니다. 심지어『모택동』제목하의 미국의 슈람(Schram) 교수 저서가 번역ㆍ출판되어 전국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지 4년이 넘습니다. 그 내용은 본인의 두 책 특히『8억인과의 대화』와 상당 부분이 중복되는 것입니다. 본인의 변호인단은 김상협(金相俠) 교수의『모택동사상』을 비롯해서 그와 같은 내용을 입증하는 수많은 출판물을 자료로서 제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내용의 글에도 상이한 법률 적용이 있다는 이른바 ‘이중(二重)의 법기준’을 목격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의 신문내용, 그 목적과 방향, 법원에서의 8,286자의 판결문, 이중의 법기준…… 등을 종합할 때, 이 사건에 시종일관 정치적 의도, 적어도 법률 외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를 수긍하시리라고 믿습니다.“당신이 반체제인사가 아니라 친정부적 교수였다면 이 저서들이 문제되지는 않았을 것이오”라는 검사의언명은 그 확신을 더욱 확고히 해줍니다.
그의 말은 본인의 사건의 성격을 그 이상 분명히 할 수 없을 만큼 적나라하게 단적으로 밝혀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려져야 할 핵심입니다.
이 모든 사실과 상황을 통해서 종합될 수 있는 것은, 이 재판의 판결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법원의 권위 및 법관의 양심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논리적 귀결입니다. 이 사건의 전 과정을 통해서 본인이나 수많은 방청객들이 도출하는 불가피한 결론은, 본인의 이 재판이 과연 법원과 법관에 의해서 주관 결정되는 것인지, 행정권력의 대리인에 의해서 주관 결정되는 것인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없는 깊은 회의에 빠져버렸다는 불행입니다. 이 나라의 최고 재판인 대법원에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국법의 존엄성을 믿고 있는 본인과 많은 선량한 시민이 품는 이 회의가 깨끗이 풀어지는 것이올시다.
또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기소 내용의 결론부는 이 나라에 모택동식 농민혁명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법률에 깊은 지식은 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것을 선동했다면, 반공법 4조 2항 정도의 대항조치로서가아니라,형법ㆍ국가보안법의내란죄(음모ㆍ책동 등)가 훨씬 적절한 법률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그렇다 가정하더라도 그 책동이 ‘고의적’이고 ‘직접적’이어서 내란적 범죄행위가 본인의 저서의 결과라는 책임이 구명ㆍ입증되지 않는 한 그런 결론과 판결은 증거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농민혁명이란 1930년대 또는 그 후의 중국처럼 인구ㆍ산업ㆍ문화ㆍ정치의 구조가 어느 측면에서나 90퍼센트 이상 압도적으로 농민ㆍ농업ㆍ농촌적ㆍ전통적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정치사가 고증하고 있는 교과서적ㆍ초보적 지식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또는 본인이 이 글을 집필한 1976년) 이미 중진 공업사회로 접어든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단계에 있습니다. 농민혁명 따위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 선진사회 구조입니다. 모택동식 농업혁명을 낳게 한 조건은 우리나라의 이조 말기에 이미 통과했습니다.
본인은 20년간 중국문제를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중국 농업혁명의 가능조건과 현재 한국의 제반조건을 얘기하면서 과학적 근거와 이론을 들어가며 그런 백일몽 같은 글을 쓸 만큼 무지하지는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상의 모든 엄연한 사실에 아랑곳없이 재판부는 기소장을 한글자의 수정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상으로써만 보더라고 1심, 2심 재판은 피고인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입장과 권리와 이익을 전적으로 무시했음이 확실합니다.
이상으로써 사실사항에 관한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본인의 이 사건에 대한 종합적 견해를 진술하겠습니다. 주관적 의견의 일반론적 개진(開陳)의 형식을 취하겠습니다. 따라서 기술식(記述式) 평문체(平文體)를 사용하겠사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종합적 견해

무릇 한 시대 한 사회의 구성원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관념이나 사상 및 제도를 비판하거나, 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그와 같은 행위와 인간은 만행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진정한’용기있는 자임을 잘 알고 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과 제도는 그 사회 지배세력의 이해관계를 주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신념체계와 제도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자에게 언제나 물리적인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권력체계를 장악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적 절차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것은 언제나 소수자의 권력이게 마련이다. 그 소수권력의 이익을 위한 ‘특수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다수를 위한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자는 언제나 이 물리적 형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사고(思考)도 행동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류사의 전 과정을 볼 때 역사는 지배세력과 피지배 대중, 지배적 가치관과 마이너리티적 이상주의,정통과 ‘이단’……등의 모순ㆍ갈등ㆍ대립관계가 인간의 창조적 진보와 행복의 영역을 부단히 확대하고 심화해가는 원동력이었음을 가르쳐준다. 여기에 마이너리티의 입장, 비주류의 문제의식, 권력에 의해 ‘공인’된 ‘제도적 사상’에 대한 반(反)권력 측의 ‘이단’적 개혁사상의 존재가치가 있다. 한 사회 속에서 그 두 입장이나 사상은 상호 반발ㆍ배척하는 가운데 새로운 통일과 발전적 고양을 구현하는 ‘협력자’인 것이다. 그 양자(兩者)는 협력적 상대자(partner)이지 적(enemy)이 아니다. 이 사상과, 그것을 지속적으로 또 점차적으로 효능화시키는 제도와 생활양식이 민주주의임을 우리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국민을 소외시키는 반공법

이 원칙에 적용해볼 때 반공법과 그 적용 방법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발견했다. 그에 대한 교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반공법은 그 입법정신과 목적을 배반하여 이 나라의 시민과 사회 전반 그리고 마침내는 국가ㆍ민족의 창조적 발전에 거대한 장애요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본인의 책 2권에 대한 반공법의 기소와 재판의 1년간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창의적 인간이기를 원하며, 동시에 이 나라의 국가적 안녕과 발전을 충심으로 걱정하고 갈망하는, 나라를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그 우려되는 바가 아무리 오늘의 지배적 관념과 상충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위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집단에 대한 봉사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따름이며, 그 관념과 방법은 지도자와 정부 및 관료들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철학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조사ㆍ심문 과정에서는 반공법과 그 규제 대상의 내용은 정부의 통일견해로 정해진 것이며, 검사나 조사관이 ‘반공법 위반이다’하면 위반인 것이지 일절 반대ㆍ비판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같이 해서 일단 기소된 사건에 대해 법원과 법관이 어느 만큼의 독자성과 양심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앞서의 사실사항에서 상세하게 지적했듯이, 법원과 법관은 8천여 자의 기소장의 글자 하나, 마침표 하나에 손도 대지 못했다. 그 과정, 배경, 절차적 상황은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반공법은 집권자에 의해 ‘신성 불가침’하고 ‘절대적’인 규범임을 넘어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 어떤 반대와 비판과 회의조차 일절 허용하지 않고 오직 복종이 있을 뿐이라면 그것은 법률이기보다는 종교라고 함이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종교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충족할 수 없는 깊은 욕구, 이를테면 영생이나 자연의 위협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죽음의 공포 등 인간적 약점을 토대로 인간이 창안해낸 것이다. 인간의 자기보호의 필요성의 산물인 것이다. 신(神)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지만, 약한 인간이 자기보호와 이룩할 수 없는 욕구를 위해 초인간적ㆍ초자연적 신을 숭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 능력의 산물인 신은 절대화되고 추상화되어버림으로써 인간에게서 독립하여 그 자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 결과, 앞에서 인간의 절대복종이라는 ‘인간소외’현상이 생겨난다. 즉 인간(또는 사회ㆍ국가)이 자기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창제(創制)해낸 것이 거꾸로 제도화되고 추상화된다. ‘절대적 존재’가 됨으로써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우상화되고 또 권위가 부여됨으로써 주물(呪物)적 마력을 발휘하게 되면, 종교나 관념이나 법률이나 제도나 이데올로기……는 그 창조자인 인간(사회ㆍ국가)을 거꾸로 지배해버리게 된다. 이로부터 인간성(주체ㆍ창조성)의 회복이 절실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 현대의 인간고(人間苦)다. 반공법은 민주주의 이념ㆍ제도ㆍ관념ㆍ생활양식, 즉 시민의 다양한 개성ㆍ사상의 발전원리 및 설득에 의한 사회질서…… 등 가치를, 그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생겨난 법률로 이해한다. 무조건 복종이 아니라 이성적(최소한 합리적) 판단을 장려하고 ‘다수’견해에 못지않게 ‘소수’견해도 존중ㆍ보호하는 사회를 위한 수단으로서 제정된 것이 반공법이라고 국민들은 알고 있다.
중공문제에 대한 의견에서는 북한간첩 문제를 주 임무로 하는 대공반 경찰관에 못지않게, 7년간을 공산군과 싸운 예비역 소령이고 20년간 중공문제를 연구한 교수의 견해도 존중되고 보호돼야하지 않겠는가.
‘내란을 선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회비판적 에세이를, 사회와 나라가 잘 되기를 원하는 나라 사랑의 한 방법으로 지식인들에게 농촌과 농민을 생각하자고 쓴 글을 반공법으로 처벌한다면, 반공법은 그것으로써 시민과 사회와 국가를 소외시킨 존재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공인한 궤도(軌道)와 범주의 고정적 가치체계 속에서만 나라를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체 국민을 소외시킨 것이다. 국가제도의 이데올로기만이 용인되는 사회라면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특수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정치적 반대자의 애국심은 그 표현과 실천의 기회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반공법의 기능일 수는 없다. 관용과 ‘상대적 권리’의 개념으로 지켜져야 할 사회질서는 오직 권력자의 강제수단에 의해서만 유지될 것이다.
이것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교회)가 미신적 ‘종교과학’(그릇된 확신)으로 그 많은 위대한 두뇌와 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헛된 노력을 연상시킨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생각하는 애국의 방법만이 유일한 나라 사랑이라고 애국심을 ‘독점’하는 ‘정치적 종교’는 진심으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지식과 몸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을 소외시키게 마련이다.
반공법은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조건과 수단이고, 그 목적은 창의적 시민을 길러 관용과 상대주의의 폭넓은 가치관을 설득과 이해로써 통합하는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던 것인데, 그것이 현재와 같이 운용된다면 마치 종교의 한 형태처럼 ‘인간소외’의 공인체제가 되어버릴까 염려스럽다.
반공법을 진정 변화하는 내외정세에 부응해서 본래의 의도대로의 ‘국민의 법률’로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즉 신앙화된 것을 ‘비(非)신앙화’할 것, ‘절대화’된 것을 ‘상대화’할 것, 특수주의 이데올로기로 ‘신성 불가침’화된 것을 비판대상의 영역으로까지 ‘격하’할 것 등이다. 그럼으로써 잃을 것은 지성과 애국심을 소외시켜온 억압과 공포감이요, 얻을 것은 인간지성의 개화(開花)와 명랑한 민주사회의 구현이다. 비판과 반대는 지지와 독단만큼 민주사회ㆍ민주적 개인을 기르는 영양제다.

법집행 관리의 지적 수준

다음으로 그 운용의 개선에 관해 제언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진실’이 ‘반국가’ ‘비(非)애국’으로 배격되고, 거꾸로 허위ㆍ허구ㆍ왜곡이 ‘합법’과 ‘애국’으로 조장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앞에서 누누이 언급했듯이, 행정권력의 대행 관리들은 ‘중공(또는 이른바 적성국가)에 관해서는 사실이나 진실이라도 반공법 위반이다’라는 뜻의 ‘유권적(有權的) 법해석’을 고집하고 있다. 그 구체적 기준으로,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것, 지도자가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경제와 사회적 기능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 등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것이 북한에 대해서의 반공법 적용 기준이라면, 그 나름의 어느 정도 강변(强辯)을 허용할 수 있는 상황적 여지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중공에게 그래봐야 무슨 정치적ㆍ사상적 이득이 있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경제학회 회장이 상해(上海)에는 뉴욕시보다 양적으로 많은 의료시설이 있다고 보고한 대목이 끝까지 문제되었다. 갈브레이스 박사의 그 기행문에 대해서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조사 검사의 ‘고무ㆍ찬양론’의 근거였다. 그런 원저의 보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의 편역자의 주석을 붙여야 하며, 그랬으면 ‘반공법으로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8억인과의 대화』속의 모든 글에 ‘사실이 아니다’ ‘사실과 다르다’는 편역자의 가필(加筆)ㆍ삭제(削除)ㆍ단서(但書)ㆍ변명(辨明)…… 등을 하라는 법률강의를 들었다.
세계 최선진 경제대국의 ‘경제학회 회장’이 직접 시찰하고 확인하고 쓴 보고서를 한국인이 서울에 앉아서 ‘아니다’라고 해야 합법적이라는 논리는 기상천외로만 들린다. 미국인 자신이 미국인의 이해와 견지와 현지(現地)적 증거에 입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흥분하고 앞장서서 부정해야 할 절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야말로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적’인 한국인이 돼야 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학자와 학문적 연구, 타인의 학문적 저술에 대한 근거 없는 삭제ㆍ가필 등의 행위가 학문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쯤은 이해하는 법운용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반공법의 이름으로 이런 행위가 강요된다는 것이 바로 문제점이다.
이런 경험은 법집행 관리들의 지적(知的) 수준의 문제와도 관계 되므로 행정부는 그 면도 배려하면 폐단을 어느 정도는 배제할 수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법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취조검사는 중공에 관한 책을 읽기는 본인의『8억인과의 대화』가 처음이라고 실토했다. ‘배우는 바가 많았다’면서, 그래서 반공법을 다루는 공안부 검사들에게 압수한『8억인과의 대화』20여 부를 한 부씩 나누어 읽기를 권했다는 말이었다. 본인으로서는 과외의 영광인 셈이지만, 그 말로 미루어 공안부 검사의 중공 지식이 직접 보고 듣고 연구한 미국 경제학회 회장보다 못하리라는 것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지식으로 국내문제나 북한 관계 문제도 아닌 중공에 관한 일에 반공법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이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공법을 다룬다는 이 검사는 또 압수한 책에 관한 신문 과정에서『자본론』에 이르자 그 저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반공법을 다룸에 있어 검사의 말이 ‘유권적’이라고 하는 처지에『자본론』이 어떤 저서이며, 그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면, 중공(또는 문제에 따라서는 어떤 나라에 관해서건) 생활상의 지극히 구체적인 사실(이를테면 상해시의 환자 수용능력, 침대수)에 관해, 그 수가 얼마면 고무ㆍ찬양이 되고 얼마(어떤 수치)면 아니라고 판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결국은 그런 (지적) 상태에서는 모든 진실과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반공법 해석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하여

지식욕은 인간본능이다. 이 생산적인 본능을 한 시대의 지배세력이 어떻게 방향 짓고 어떻게 대처했는가의 형태에 따라서 그 민족 그 국가의 인류문화 속에서의 지위와 가치가 결정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국가의 중요한 기능과 소임은 그 구성원의 과학적 인식능력을 적극 보호ㆍ육성하는 것이다. 오늘의 중국인민이 ‘굶고 있다’는 것으로 된, 반공법에 따르는 교과서로 교육받은 우리의 제2세들의 인식능력을 상상해보라. 그래가지고서는 세계의 많은 민족과 국민이 치열하게 겨루는 진보의 경쟁에서 존경받는 인간형을 양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세계관으로 자란 시민과 국민은 인류의 문화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일그러진 방침과 내용의 교육에서 어떻게 개방적이며 창의적인 인간이 태어날 수 있겠는가? 강대하고 발전하는 이웃나라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하면 형(形)을 살게 하는 그런 법률을 고치거나, 아니면 그 기준이 된다는 국민교육 교과서를 고치거나 해야할 일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상고이유서를 여기까지 쓰다가 눈을 돌려 본 서울구치소의 얼룩진 벽에는 ‘대통령 박정희’의 이름으로 된「교육헌장」이 붙어있다. 잠시 손을 멈추고 읽어보니,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은 곧 나라 안팎의 진실과 새로운 지식을 ‘있는 그대로’의 내용과 상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미덕이다. 진실과 사실을 허위로 제시하거나, 허위와 조작을 진실로 가르치는 교육과 법에서는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은 육성되지 못한다. 그런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도 나올 수가 없음은 당연하다.
국민이 내외의 진실을 아는 것을 어째서 두려워해야 하는가? 넓은 세계적 시야를 가진 국민, 안팎의 진실을 통찰하고 있는 지식인, 자(自)국과 타(他)국의 장ㆍ단점을 허심탄회하게 관찰ㆍ비교할 줄 아는 자각된 대중, 그것을 통해서 자기성찰을 할 줄 아는 의식 높은 개인…… 이것은 정부나 집권세력의 명예다.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결코 아니다.
이 사람은“우리나라 교육방침과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라고 고무ㆍ찬양의 근거를 제시한 그 조사관리가「교육헌장」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북한 관계와 현 정치정세, 그밖의 각종 ‘정치적 이유’를 들어 억압의 필요성을 ‘애국’의 이름으로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십분 이해할 수도 있는 애국심의 발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에 대해서는, 미국의 정치가ㆍ학자ㆍ외교관ㆍ교육자로서 코넬대학 창설자의 한 사람이며 동대학 초대총장이던 앤드루 디킨스 화이트 박사가 참으로 적절한 경고를 한 것이 기억난다. 그의 말의 ‘종교’를 정치ㆍ국가ㆍ집단ㆍ권력ㆍ권력자 또는 소수 특수주의적 이데올로기…… 등으로 바꾸어놓고 읽으면 된다.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과학(지식ㆍ학문)에 가해진 간섭은, 그것이 아무리 양심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근대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종교와 과학 쌍방에게 다같이 참을 수 없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것도 예외없이 말이다(진한 글씨는 원전에서 인용). 이와는 반대로 모든 자유스러운 지적 탐구는, 그것이 어느 단계에서는 한때 종교에 대해서 위험스러운 것으로 비치는 일이 있다 해도 끝내는 예외없이(진한 글씨는 원전에서 인용) 종교와 과학의 양쪽에 최선의 결과를 선사했다.




다음은, 그렇다면 국민은 어느 시기에 이르면 내외의 여러 가지 사실과 진상을 알 권리를 인정받을 것인가 하는 데 문제가 미친다. 조사과정에서 되풀이 논쟁의 씨가 된 것은“그런 것은 대중에게 알릴 단계와 시기가 아니다”라는 견해였다. 국민은 중국의 진실에 대해서(같은 논리로 외부세계의 진실에 대해서) 지성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지적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소위 ‘현실주의자’임을 자랑스럽게 자처하는 일부학자나 지도자들은“그것은 국민의 지적 수준이 향상된 후에 알아도 될 일이다. 지금 수준에서는 이상론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을 ‘시기상조’론의 근거로 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본인의 심문에서도 그것이 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임의(任意)의 순간에서의 ‘현실’이 사실은 ‘역사적 현실’임을 알지 못한다. 1978년 11월 21일의 우리나라 대중이 그와 같은 지적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해방 이후 32년 동안 교조주의적 반공정책으로 대중의 사상적ㆍ지적 훈련을 금지ㆍ억제해온 역사적 결과인 것이다.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존재하는 것은 모두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사상ㆍ정치이론의 영역에서 중공이건 무엇이건, 우리 국민일반이 그것들을“소화할 수 없는”수준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민일반의 생물학적 뇌조직이 열등한 것도 아니며, 모두가 후천적으로 인식기능에 장애를 일으킨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지적 소화능력’이 생래적으로 지도자들이나 관료들보다 열등하다는 논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할 것이다. 유일한 답변은 지난 50여 년간 그와 같은 기회가 봉쇄되고 박탈되었던 ‘역사적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권리의 문제만 나오면 반드시 시기상조의 이유를 국민의 소화능력 미개발에서 찾으려는 것은“현실주의”같으면서 사실은 엄청난 ‘비현실적’인 것이다.
“국민이 무식하니까 이 교수의 책을 읽혀서는 안 된다”면,이 순간부터라도 국민의 지적 소화능력을 향상ㆍ강화하기 위한 사상적 관용정책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그 실천이 이르면 이를수록 국민의 사상적 깊이와 폭은 그만큼 빨리 향상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국민을 책(責)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국민은 지적ㆍ사상적 저개발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 반공법을 지배하는 한 10년후에도 50년 후에도『8억인과의 대화』정도의 책이 ‘특수지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국민의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정부와 지도자의 불행이기도 하다. 언제까지나 자기 문제를 자기능력으로 해결할 줄 모르는 대중을 다스려야 할 지도자가 불행하지 않고 어떻겠는가?
이 나라의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국민대중을 그토록 긴세월 ‘지적 무능력자’로 처박아둔 정치적ㆍ도의적 책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대중의 지적 혜택의 수혜자가 아니라면.

지식의 사회적 본성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반공법의 현재의 운용은 지식의 사회적 본성을 ‘비사회화’하려는 강한 경향이 있다. 심문과정에서의 관리의 관심으로 보아 본인은 다음의 이유에서도 반공법 위반이 되었다. 즉“그와 같은 연구는 연구실 안에서나 하라는 것인데, 그 결과를 연구실 밖으로 전하거나 책으로 출판하니까 문제다.” 검사의 ‘위법기준론’의 후반부는“그런 지식은 훗날 정부가 필요로 할 때 정책 자료로 쓰이기 위해서 이용돼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현대지식의 어떤 것은,(기술도 포함해서)정치단위인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 국경을 벗어나면 국익에 반하는 용도에 쓰일 가능성이 있는 그런 것들이다. 작게는 산업지식의 그런 것처럼. 정부의 통일적 견해를 대표한다는 그 반공법 담당검사의 지식관은 이런 것이다. 즉 지식이란 어떤 것이건 ‘정부의 필요’를 자격의 제1요건으로 한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지식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만인(萬人)에 의해서 요구되는 것이고 만인의 행복의 조건이되는 정신적 보화(寶貨)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개인이나 한 연구소 또는 정부가 독점할 수 있는 ‘이기적 소유물’로 간주하는 관념이다.
지식이란 그 본성으로서 느닷없이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아무런 앞뒤의 연관성 없이 착상되고 발표되는 그런 생산물이 아니다. 한 두뇌의 지식적 부가가치는 그에 앞서는 일련의 많은 지적 노력의 릴레이식 발전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 발전의 계보가 분명히 체계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지식과 사상의 전 체계를 어느 한 학자나 연구자가 무(無)에서 착상하여 그 완성까지 종결짓는 그런 마술은 불가능한 것이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두뇌의 뇌분비작용의 결과로서 지식이나 그 결집(結集) 형식인 저서ㆍ이론ㆍ사상 등은 이루어진다. 즉 지식이나 저술은 ‘역사적ㆍ사회적’ 인간정신의 산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각도에서 보아도 역시 그렇다. 지식탐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동시대의 알고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ㆍ물질적 협력을 받고 있다. 연구수단인 선행(先行)적 지식ㆍ기술을 학교교육과 선생을 통해서 습득했을 것이다. 호남평야의 어느 농부가 땀 흘려 가꾼 쌀과 고기를 먹고, 청계천 다락방의 여공의 손을 거친 옷을 입고, 강원도의 지하갱에서 광부가 캐낸 석탄을 피우는 연구실에 앉아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의 논문을 참고 삼는 가운데 지식은 생산되는 것이다. 그 지적 생산물은 필연적으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타고난다. 그것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독점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의 지식에 도움을 준 농부ㆍ광부ㆍ여공ㆍ제본공……의 모든 동시대적 동포에게 그 지식의 혜택은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식의 ‘사회성’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만인에게 돌리는 행위가 ‘지식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성ㆍ사회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학문과 지식은 어용(御用)화된다. 『8억인과의 대화』가 연구실 안으로 퇴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일반에게 널리 읽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허가와 소요(所要)’만이, 지식이 개인두뇌와 연구소에서 나올 수 있는 조건이라는 관료적 사고가 지식과 교수와 지식인 전반의 ‘어용’화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 가치관이 반공법이라는 권력적 공인을 받음으로써 국민일반의 지성적 향상은 저지되는 것이다. 지적ㆍ정신적 소산은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 지식인은 자신의 성장에 기여한 무명(無名)의 대중을 자기와 같은 수준의 지적ㆍ정신적 기쁨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글을 쓰고 발표하고 출판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본인의 저서들이 설사 반공법에 위반(검사의 기준으로 하면)되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지식이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는 믿음에는 아무런 변함도 없다.
반공법이, 대한민국의 기밀(機密)을 출판ㆍ유포하는 행위를 방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의 정보(information), 그것도 오늘날 세계의 공통적 상식이 되어 있는 ‘사실’과 ‘진실’을 국민이 아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용된다면 건전한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식과 정보란 예나 지금이나 인간 상호간ㆍ민족간ㆍ국가간의 교류를 통해서 인류의 발전을 촉구하는 매개물이다. 중공의 그것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 어느 사상체계건 그 자신만으로 자기충족ㆍ자기완결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전능한 개인ㆍ민족ㆍ국가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영원히 없을 것이다. 지식의 접촉과 교류를 거부하는 개인ㆍ정부ㆍ국가ㆍ민족은 정신적으로 침체에 빠지며 인류문화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금세기에 들어와 급속한 현대화를 이룩하려는 후진국가들은 경제사회적 분야에서 연차적 ‘몇 개년(何個年) 경제사회 개발계획’을 중요한 전략적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른바 ‘5개년 경제계획’ 같은 것이다. 이것은 본시 공산주의 소연방에서 레닌과 그 후계자들이 창안ㆍ시도했던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도 벌써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마치는 가운데 ‘중진국가’대열에 들어선다고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계획경제를 수단으로 채택한 나라의 정부나 지도자가 그 발상지(發祥地)의 호적조사(戶籍調査)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이미 인류 공동의 지적 재산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이론의 일부를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가 채택하고 있고, 공산주의 동독에서 일반화한 플라스틱 차체(車體)는 우리의 남북한 관계와 같은 서독에서 시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관적 소망이야 어떻든 소련ㆍ중국 등을 위시한 공산권 세계나 국가가 가까운 장래에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과 자본주의권 국가들은 이런 인식하에서 앞을 다투어 공산체계ㆍ국가와의 공존(共存)관념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본다. 중공에 대한 세계적 동태는 새삼 여기서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제는 중공에 관한(즉 공산권에 관한) 지식과 정보들을 반공법과 견주어보지 않고서도 읽고 듣게 해도 무방할 만큼은 우리 국민의 반공의식이 굳다고 믿는다. 경제ㆍ사회ㆍ문화ㆍ정치ㆍ군사적 측면에서의 국민적 자신도 충실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계적인 기적’을 이룩했다고 정부가 주장하는 조국 근대화, 중화학공업화, 중진국화, 국민생활수준의 극적 향상, 100억 달러 수출, 국민소득 4,000달러…… 등등의 자랑은 거짓이거나 속임수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국민의 자신감을 좀더 신뢰해도 좋을 만한 조건 성숙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만한 성장을 한 사회에서 상해시의 의료시설 운운의 보고가 아직도 반공법 위반이니“적성국 찬양ㆍ고무ㆍ동조”니 하는 말은 우습지 않을까?
반공법의 현(現) 운용은 이 나라 국민의 진취성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국민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다른 국민의 성취ㆍ업적과의 비교ㆍ반성을 통해서 자기성장의 계기로 삼는다. 남의 우수함을 수용하고, 자신의 부족과 결점은 남의 경험을 거울삼아 개선해나가는 데 국가와 민족의 비약의 길이 있다. 만약 상해시 병원의 환자 병상수가 많거나 의료시설이 좋다면 우리는 그것을 시기하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자기기만을 일삼지 말고, 우리의 의료시설 개선ㆍ충실화를 위한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진취성이라는 것이다. 진취적 국민은 무한한 수용능력을 기를 것이지 남의 장점과 성취에 눈을 감는 패배주의ㆍ자기기만적이어서는 안된다. 반공법의 운용, 사실은 그 법의 4조 2항 자체가 패배주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검사는 말했다. “1967년까지는 북한의 공업ㆍ경제 등이 남한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관한 사실도 반공법으로 금지해야 했다”고. 그러나 지금 그 수준은 우리가 월등 우세해졌다는 말까지 그는 덧붙였다. 사실 이 말은 중요한 핵심이 된다. 여태까지 이 상고이유서에서 그 법과 운용에 관해 많은 의견을 진술했지만, 그 법이 어떤 법이며, 어떻게, 왜 그렇게 운용되고 있는지는 이 검사가 스스로 설명해준 셈이다. 즉 어느 한 시점까지의 국가적 패배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검사 말대로 또 정부와 국민의 지난 십수년간의 노력의 결과로 이제는 패배주의는 사라지고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단편적 지식ㆍ정보에 대해서까지 반공법으로 방패삼을 시기와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취적인 나라를 위해 반공법의 운용방식에 대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막스 베버가 평생에 저술한 40여 권의 책 가운데 한국에 관해 언급한 것이 꼭 한 군데 있다.그의 유작(遺作)『사회경제사』제5편이다. (그의 저서를 빠짐없이 섭렵하지 못했으니 장담할 수 없지만 다른 교수들의 견해도 그러했다.) 불과 5,6행에 불과한 이 한국민족에 관한 평은, 한국 지배계급(그는 구한말을 지적)이 외부세계의 상이(相異)한 문화와 사상 및 변화ㆍ발전을 요사시(妖邪視)하고, 그것이 국민에게 ‘전염’될 것을 두려워해서 법으로 탄압하는 반동적 자세를 취한 까닭에 마침내 세계사조 문명에 뒤떨어져 망국(亡國)의 비운을 맛보게 되었다는 요지의 짧은 글이다. 남의 나라의 학자에게서 지적받을 필요도 없이 너무도 쓰라린 우리 자신의 민족적 경험이다. 이 과거의 민족적 비운(悲運)은 오늘의 법의 운용에 진취적으로 반영될 때 비로소 교훈적 가치가 있다.

이중기준의 법 적용과 판사의 경향성

법의 운영에 차별이 없어야 함은 민주사회의 기본적 법원칙이다. 동일한 가벌(可罰) 내용에는 동일한 법적 대응이 있다는 생활적 상식이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기준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사건은 그 정신과 원칙에 위배되는 이중 삼중 기준의 선택적이며 자의(恣意)적인 차별을 받았다.
먼저『8억인과의 대화』에 대해서 말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중국 연구소가 많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지난 약 10년 동안 해마다 몇권 정도의 중공 관계 저술이 출판되었다. 그 저서ㆍ논문ㆍ보고ㆍ토의록……들은 취급한 주제는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중국을 다룬 점에서는“중국인민은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현장묘사를 반공법 4조 2항의 고무ㆍ찬양ㆍ동조로 판정하는 검찰과 법원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 어느 하나도 반공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은 같은 분야의 연구가로서 그 내용들을 읽고 알고 있는 까닭에 단언할 수가 있다.
사실사항(事實事項) 관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 나라에는 현재 미국인 교수 슈람 박사가 지은『모택동』(김동무(金東武) 옮김)이 4년째 공공연히 전국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 내용은『8억인과의 대화』의 내용과 상당한 분량이 중복되고, 실질적으로 또는 유사한 표현ㆍ평가ㆍ판단이 들어 있다. 이것만이 아니지만 한 실례로 들 뿐이다. 그밖에 중공에 관한 (국내)신문ㆍ잡지ㆍ방송의 기사는 방대한 양에 달하며 그것들을 모두 모은다면 대(大)도서관에 넘칠 것이다.
본인과 변호인단은 그 사실을 입증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한 분량의 세심하게 수집되고 분류된 증거자료를 법정에 제출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모택동』은 그 역자가 군(軍)관계 민간인 교관이라 ‘보안사령부’의 (검열) 출판허가까지 얻어서 발행된 것이다. 반공법적 규제권한에서 경찰, 검사,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는 대동소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 『8억인과의 대화』와 많은 내용이 같다는 것은 이 사람 자신이 그 번역자를 위해서 국내 신문에 서평을 써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제2심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회피했다.



(판결문은 말했다) “……위 주장(피고인과 변호인들의)과 같이 슈람의 저서인『모택동』이 이미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우상과 이성』에 실린 글들은 이미 국내에서도 각종 정기간행물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이들을 그대로 한데 묶어 위 책자로 발행한 사실 등은 일전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나, 『8억인과의 대화』에 실은 글의 내용이 위 적시된 글들의 내용과 유사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또한 위에 든 사실들만을 가지고 피고인에게 있어 그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범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오인함에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위 첫째 주장은 이유 없고…….”




이 사람은 중국 연구가의 한 사람으로서 슈람의 저서 같은 것이 이처럼 행정부ㆍ군ㆍ사법부의 승인을 받게 되는 것을 기뻐할 뿐이다. 다만 비전문가인 판사가 아니라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연구가의 눈에 동일 또는 ‘유사한 내용’으로 인정되는 글이라면 다른 사람의 책에 있을 경우에도 행정 권력기관과 법원은 마찬가지로 관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사건의 재판은 또 하나의 걱정거리를 드러내주었다. 반공법을 다루는 판사의 경향성이다. 행정권력에 대한 경향성이다. 제2심 재판장은『8억인과의 대화』의 피고인들에 대해, 슈람의『모택동』번역 출판처럼“정부기관에 왜 ‘사전검열’을 받으려고 생각 안했느냐?”고 물었다. 헌법에도 법률에도 없는 ‘사전검열’은 행정권력의 횡포(불법적 권리 남용)가 아닌가? 그런데 헌법에 엄연히 규정되어 있는 학문과 출판의 자유(권리)를 행사하려는 시민에게, 그 권리와 자유의 보호자여야 할 사법부의 법관이“어째서 사전검열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전검열’을 스스로 청해 나간다는 것은 시민에게 법적 권리와 민주주의적 자유를 자진해서 포기하라는 권고와 다를 것이 있을까? 본인의 사건은 이런 법 관념의 재판장에 의해서 결론지어졌다. 무릇 어떤 제도, 어떤 사회에서나 시민의 권리ㆍ자유에 대응하는 국가권력은 강력하고 조직적인 제어장치가 없는 한(있을 경우조차), 무한정으로 비대화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경향과 실례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정치ㆍ사회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본다. 국가권력과 시민의 자유ㆍ권리가, 권력의 분명한 정당성이 없이 대체로 균형 있는 대립을 했을 때는 법은 마땅히 시민의 권리를 편들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사회의 법정신인 줄 안다. 하물며 시민의 권리가 압도적으로 열세한 경우에서랴. 행정권력을 편드는 재판의 문제점이다. 사실 이 사건의 1, 2심을 거치는 공판의 현장에서 언제나 느낀 것은, 판사에게서 재판을 받고 있는지 검사에게서 재판을 받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심정의 착잡함이었다.

현대판 이단재판소

다음의 문제로 옮겨간다. 이해(理解)의 편리를 위해 다음과 같은 가상을 해보자. 어떤 사람의 긴 생애에서 국민학교 때의 글짓기 연습장에서 ‘김’(金)자를, 중학교 때 물리 노트에서 일(日)자를, 고등학교 시절의 연애편지에서 성(成)자를 그리고 대학 졸업논문 속에서 만(萬)자 등을 골라낸다. 그것을 이으면 ‘김일성 운운’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긴 생활 속에서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쓰인 그 당시에 그 자체로서 자기완결적인 글과 글자를 들추어 연결하면 우리는 만들고 싶은 어떤 문장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으로 상(賞)도 줄 수 있고 벌(罰)도 줄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사건과 관련된 핵심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우상과 이성』에 관해서는 전혀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내용은 명명백백하다. 1971년부터 77년까지 아무런 상호 연관성 없이 써서 발표한 30편의 글 속에서 머리 자르고 꽁지 잘라 한 구절씩 엮어가지고“……라고 결론을 내려, 결국 노동자ㆍ농민ㆍ영세민들이 자기들을 위한 정치ㆍ사회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현 정치ㆍ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인ㆍ기업가들ㆍ지식인들을 타도하는 길밖에 없다는, 즉 노동자ㆍ농민ㆍ영세민들을 주축으로 하는 혁명을 해야 한다고 선동함과 동시에 농민 중심의 모택동의 공산혁명 사상을 은연중 찬양 고무하여 중공의 활동을 찬양 고무했다”라고 공소장의 결론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그대로 판결문(의 결론)이 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문장의 악의적 조작인가. 문제의「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은 신변잡화를 줄거리로 삼아 사회비평을 겸한 가벼운 에세이다. 시종일관하는 주의(主意)도 없고 더군다나 ‘결론’따위는 애당초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부처님, 이 나라를 굽어보소서! 이 나라에는 법적으로는 출판검열 제도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모든 정기간행물과 출판물이 ‘당국’의 검열을 받고 있음은 지식인 사회에서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라 사후적인 것으로 안다. 재판관 자신이 사전검열을 왜 받으려 하지 않았는가를 물은 것도 정부의 눈이 항시 출판물 위에 빛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74년 4월에 검열되어 나간「다나까 망언에 생각한다」와 76년 말의「모택동의 교육사상」, 그리고 같은 해의「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가 단순히 한 책 속에 묶여 나왔다는 변화만으로 갑자기 고무ㆍ찬양이 되고 ‘농민혁명’선동이 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해묵은 낡은 것을 추려내어가지고 반공법으로 엮는 의도 속에 무언가 음흉한 것을 느끼게 한다. 어째서 형벌을 받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끔 좀 투명하고 솔직하면 좋겠다. 다음은 바로 그 문제에 관해서다.
제1심 판사는 판결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판결이유’를 말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걸친 심리과정에서 두 피고인은 충분한 소명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피고인들의 그 충분한 주장과 변론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판결의 이유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ㆍ백 두 피고인에 대한 형량 언도.) 이 사건은 그 성격이 김지하(金芝河) 사건, 한승헌(韓勝憲) 사건과 같아서 대법원이 두 사건에 유죄를 판결하고 있으므로 그 판례에 따라 유죄를 선고하는 것입니다. 두 분은 항소해서 잘 되도록 하십시오.




시인 김지하 사건과 한승헌 변호사 사건은 이 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불가사의’한 사건이다. 이 두 사람을 법의 이름으로 기소하여 판결할 때까지의 과정ㆍ절차에서의 그 많은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상식으로는 점점 더 알 수 없어지는 것이 이 두 사건이다.
“충분히 밝혀진 피고인들의 입장과 주장”을 10여 회의 심리를 통해서 청취한 판사로서, 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들은 수많은 방청객들이 빤히 보는 앞에서 검사의 기소장 14매, 8,286자를 그래도 판결이유라고 낭독하기는 거북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그런 성격의 사건”이란 것이 문제다. 재판은 그에 대해 개운한 해답을 하지 못한 채 지나가고 말았다. 아무런 죄상(罪狀)의 지적도 설명도 없이“대법원 판결이 유죄니까 유죄”라는 것도 고통을 당하는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결형식이다. 재판장도 딱히 밝히기를 꺼리는 듯한 불투명한 ‘그런 성격’의 재판 결과 피고인은 유죄가 되고, 몇 해를 형무소에서 살아야 하며, 나오면 전과자 그것도 ‘반공국가’에서 ‘반공법’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이 불투명한 판결이유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중세 유럽세계의 불가침의 권위였던 로마교황이 이단재판소에서 교황의 금기를 건드린 지동설(地動說)의 갈릴레오에게 내린 명쾌하고 확신에 찬 판결문을 생각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의 주위를 회전하지 않는다는 제1의 명제는 신학적으로 우매(愚昧), 불합리 및 허구며, 명백히 성서에 반하는 까닭에 이단이다. 또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명제는 철학적으로는 불합리하고 허구이며, 신학적 견지에서는 적어도 올바른 신앙에 반한다.




적어도 이 정도의 조리 있고 확신에 찬, 이론적이고 철학적 구명(究明)을 다한 나머지의 판결이라면, 어떤 피고인에게도 불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60년 전인 (서기) 1615년, 이단 심문소의 지하실에서 내려진 선고다. 360년 후의 우리 재판이 여기서 한 점의 진전도 없이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있으니 유죄’라고 끝난다면 피고인은 다만 하늘(天)을 우러러볼 따름이다. 악명 높은 그 이단 심문법정도 ‘그런 성격의 사건’이라는 말로 얼버무리지는 않았다. 우리 국민이 사법부와 법관에게 거는 최후의 기대는 그 간절함이 눈물겨울 정도다. 반공법에 의한 ‘이단’을 이 사회에 가득 채우는 일에 협력하는 사법부와 법관이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주체적ㆍ독립적 자세와 슬기로운 판단이 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