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독일식’ 한반도 통일방안 비판」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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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1-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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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독일식’ 한반도 통일방안 비판」(1987, 역설),


 


 


글의 목적 및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

정부는 1982년 1월 22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여러 해에 걸쳐서 발표 또는 제의해온 여러 가지 통일방안을 최종적으로 종합한 것으로 해석되는 ‘남북기본관계잠정협정’의 체결을 북한에 제의했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이 협정을‘기본협정’또는 다만 ‘협정’으로 약칭한다.)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이 ‘기본협정’안은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사이에 1972년 11월 8일에 정식 조인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간 관계의 기본에 관한 조약’(앞으로 이 글에서는 ‘동서독기본조약’또는 ‘조약’으로 약칭한다)을 바탕으로 삼았고 그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정부는 분열된 코리아(한ㆍ조선) 민족 및 그 영토의 통일을 동서독 관계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구상이다. 즉 국제정치에서 ‘독일방식’이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독일방식의 법적 토대가 되는 동서독기본조약을 구체적으로 비교ㆍ검토 및 비판함으로써 과연 그것이 이 반도민족의 통일 달성을 위한 정형(定型) 또는 준거(準據)가 될 수 있는가를 밝혀보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① 동서독기본조약과 기본협정 각기 방안의 발상과 전개의 역사적 과정 및 배경.
② ‘조약’과 ‘협정’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찾기 위한 축조적 비교 검토.
③ 동서독의 경우와 남북(한)의 경우 그 적용 및 실천상의 문제점 검토.
그리고 종합적으로 또 결론적으로
④ 동서독방식에 의한 남북관계의 해결(해결이라고 한다면)이 결과할 궁극적 형태와 양상, 민족통일의 이념과 목표에 비추어본 그 결과적 형태의 타당성 여부 검토.
이 비판작업의 논리적 순서로는 ①의 동서독기본조약 체결과 남북협정 제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배경 및 과정을 별개 항목으로 상세히 기술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역사적 파악 없이는‘조약’이나‘협정’의 정신과 구체적 비교 분석에 충분을 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사적 측면의 설명만도 별개의 논문으로 다루어야 할 만큼 복잡하고 많은 분량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것을 축조적 검토 과정에서 관련된 부분과 연결시켜서 기술하기로 한다.

동서독 조약과 남북협정 제안

검토 순서로 ‘협정’제안을 먼저 보아야 할 것이나 그것의 발상적 토대로 믿어지는 것이 동서독조약이므로 먼저 ‘조약’의 정신ㆍ구조ㆍ내용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동서독기본조약(정식 명칭: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간 관계의 기본원칙에 관한 조약)
(1972.11.8 조인)



전문(前文)
조약체결 쌍방은 평화유지에 대한 그들의 책임에 유의하여, 유럽의 긴장완화와 안전보장에 기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현존하는 경계선을 기준으로 한 모든 유럽국가의 국경불가침 및 그들의 영토보전과 주권존중이 평화를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양독은 그들 상호관계에서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그 사용을 마땅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민족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기본문제들에 대하여 이해의 차이에 대한 적대감정 없이 역사적 현실에 입각하여,양독 주민들의 복지향상을 목적으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간의 협조를 위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로,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제1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동등한 권리의 토대 위에서 정상화된 선린관계를 발전시킨다.
제2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유엔헌장에 명시되어 있는 제반목표와 원칙, 특히 모든 국가의 주권ㆍ평등ㆍ독립ㆍ자주ㆍ영토보전의 존중, 인권보호 및 차별대우 금지 등을 지향한다.
제3조 유엔헌장의 정신에 따라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그들의 분쟁문제를 오로지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해결하며 무력위협과 무력사용을 포기한다.
쌍방은 현재 존재하며 또 앞으로도 존속할 쌍방 간의 경계선의 불가침성을 재확인하고 각기 영토보전을 전면적으로 존중할의무를 지닌다.
제4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양국의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국제적으로 대표하거나 또는 자국의 명의로 상대방을 대신하여 행동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제5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유럽국가들 간의 평화적 관계의 발전을 촉진시키며 유럽의 안전보장 및 협력에기여한다.
쌍방은 관련 국가의 안전보장을 저해하지 않고 유럽에서 병력 및 군비를 감축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효과적인 국제통제 아래 전면적이고도 완전한 군비축소를 달성할 목적으로 세계의 안전보장에 기여하는 군비제한과 군비축소의 노력, 특히 핵무기와 기타 대량 살상무기 분야의 군비축소 노력을 지지한다.
제6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국가권력이 각자의영토 내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양국은 국내 및 대외문제에서 상대방 국가의독립과자주성을 존중한다.
제7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양국의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현실적인 인도적 문제들을 타결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한다. 양국은 이 조약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호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경제ㆍ학문ㆍ기술ㆍ통행ㆍ법률 부문의 교류, 우편ㆍ전화ㆍ보건ㆍ스포츠ㆍ환경보호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촉진시키고 발전시키는 협정을 체결하기로 한다. 이에 대한 세부사항은 추가의정서에서 정한다.
제8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상주 대표부를 교환한다. 대표부는 각기 상대방의 정부 소재지에 설치하기로 한다. 대표부 설치와 관련된 실제 문제들은 별도로 해결한다.
제9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과거 양국이 각기 체결한 조약 또는 양국에 관계되는 양국간 및 다국간의 조약은 이 조약에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제10조 이 조약은 비준절차를 밟아야 하며 비준각서를 교환한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
위의 내용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조약체결 쌍방의 전권대표는 이 조약문에 서명한다.




이 조약문에는 ‘추가의정서’가 붙어, 합하여 ‘조약’을 구성한다. 의정서에는 본조약의 각 항 합의사항의 구체적 집행방법과 방식이 규정되어 있다.

다음 ‘남북협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 ‘전문’부분에서,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가장 합리적인 길은 남북한 간에 민족적 화합을 이룩하여 민족 전체의 통일의지를 한데 모아 통일헌법을 채택하고, 그 헌법에 따라 통일국가를 완성시키는 것.”
“통일헌법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는 쌍방 주민의 뜻을 대변하는 남북 대표로 가칭 ‘민족통일협의회의’를 구성케 하여 통일민주공화국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헌법을 기초케 하도록”하고,
“통일헌법안이 마련되면 쌍방은 남북한 전역에 걸쳐 민주방식에 의한 자유로운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통일헌법을 확정ㆍ공포하고, 그 헌법이 정하는 데 따라서 총선거를 실시,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를 구성”하고,
“통일조국의 정치이념과 국호(國號), 대내외 정책의 기본 방향, 정부 형태와 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의 방법ㆍ시기ㆍ절차 등은…… 통일헌법을 기초하는 과정에서 토의ㆍ합의할 문제”이며,
“우리가 구상하는 통일헌법 초안은 민족통일협의회의에서 제시될 것”임을 밝힌 다음, 그 회의에서 북측도 통일헌법 초안을“정정당당하게 내놓고 우리 측의 초안과 비교ㆍ검토하는 가운데 하나의 단일안을 만드는 데 동의하여야 할 것”이라고 제의했다.
그리고 그 방식에 따라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의 실천조치로서 다음과 같은 7항목의 ‘잠정협정’체결을 제의한 것이다.



첫째, 쌍방은 장차 통일국가가 수립될 때까지는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호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둘째, 쌍방은 쌍방간 분쟁문제 해결에서 모든 형태의 무력 및 폭력의 사용 또는 위협을 완전히 지양하고 모든 문제를 상호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셋째, 쌍방은 상호관계에서 현존하는 상이한 정치질서와 사회제도를 상호 인정하며 서로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네째, 쌍방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전쟁방지를 위하여 현존 휴전체제를 유지하면서 군비경쟁의 지양과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조치를 협의한다.
다섯째, 쌍방은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과 불편을 해소하며 민족적 신뢰와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사회적 개방을 추진해 나가기로 한다. 쌍방은 이산가족의 인도적 재회문제를 포함해서 남북 간의 자유로운 인적 왕래와 다각적인 교류를 촉진할 수 있도록 교역ㆍ교통ㆍ우편ㆍ통신ㆍ체육ㆍ학술ㆍ교육ㆍ문화ㆍ보도ㆍ보건ㆍ기술ㆍ환경보존 등 제분야에서 협력하며 이를 통하여 민족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구체적인 노력을 경주하기로 한다.
여섯째, 쌍방은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상ㆍ이념ㆍ제도의 차이에 구애됨이 없이 전 세계 모든 나라와 각기 체결한 모든 쌍무적 및 다자간 국제조약과 협정을 존중하며 민족의 이익에 관한 문제에서는 서로 협의한다.
일곱째, 쌍방은 각료급 전권대표를 임명하여 각기 서울과 평양에 상주연락대표부를 설치한다. 쌍방은 상호협의에 의하여 연락대표부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정하며 자기 측 관할영역에 주재하는 상대편 연락대표부의 임무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편의와 협조를 제공한다.
본인은 북한 측이 하루 속히 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 간의 회담에 호응하여 이 자리에서 이상의 모든 문제들에 관하여 허심탄회한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독일방식과 잠정협정의 정신

동서독기본조약은 동서독의 합의의 결과적 내용이고 우리 정부의 제의는 일방적 의사표시이므로 정치적 무게나 법적 구속력의 차원에서 그대로 비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우리 정부의 거듭된 정책이나 구상으로 미루어, 또 남북한 문제 해결에서독정부 대표들의 자문과 협의가 빈번했던 사실로 미루어 독일방식에 한반도적 특성을 가미하여 수정한 것이 우리 정부의 구상이라는 가정하의 비교ㆍ검토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첫째로 주목되는 것은 두 방식에 전문과 조약문의 일관성ㆍ유기적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동서독기본조약의 전문은 동서독이 다 같이 현존(그 당시)하는 경계선을 그대로 ‘국경’으로 인정하여, 독일민족의 영토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상의 ‘독일분단의 합법화’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현존하는 경계선을 기준으로 한 모든 유럽 국가의 국경불가침 및 그들의 영토보전과 주권존중이 평화를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전문 제3항)가 그것이다. 여기서 동서독의 경우를 직접적으로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유럽 국가의……’의 일괄적 표현 속에 간접적으로 그러나 충분히 지리적 구체성을 함축시켜 표현했다. ‘국경불가침’ ‘영토보전’ ‘주권존중’의 합의로 그 기본합의는 더욱 확고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 같은 정치적ㆍ법적 규정은 동서독을 각기 별개의 독립ㆍ주권 국가로 상호 인정하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합의이다. 그 합의는 바로 그 뒤(제4항)에서 용의주도하게, 그리고 더욱 확실한 표현으로 보완되어 있다. 즉“양독은 그들 상호관계에서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그 사용을 마땅히 포기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이 결정은 또 다음(제5항)에서 상호간에 상대방의 ‘국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완결된다. ‘두 국가’는 각기 상대방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승인하고 ‘상이한 견해에 대한 적대감정 없이’역사적 현실을 승인하는 바탕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원칙과 정신의 합의는 ‘민족문제를 포함한’모든 견해차에 적용된다. 여기서 ‘민족문제’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민족통일’또는 통합문제다. 독일민족의 통일은 상호합의에 의해서 거론될 필요도 없고 또 법적으로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본조약에 명기된 것보다도 오히려 명시적
표현에서 빠진(빼버린) 부분의 의미이다. 동서독기본조약의 전문
에도 그렇고 본문 어디에도 이것이 ‘잠정’적이거나 ‘일시’적이거나, 또는 어떤 조건ㆍ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수정’될 수 있다는 등의 단서가 없다. 다시 말하면 한 민족 속에 생긴 두 개의 국가는 자의에 의해서 독일민족의 ‘항구적 분열의 고정화ㆍ합법화ㆍ제도화ㆍ이념화’가 결정된 것이다. 두 독일국가의 이 같은 의사에 반하여 그들에게 불가항력적 사태변화가 발생하여 독일민족의 재통일을 실현시키기 전에는, 그리고 그 조건 외에는 독일민족의 분열은 이로써 ‘영구화’된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체계와 상황적 조건이 한반도의 경우와 상이한 독일적 요소다. 그것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전문의 첫머리(제1,2,3항)에서 기본조약의 대전제로 명시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제2차 대전 종결 후 유럽대륙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한 소위 ‘얄타체제 질서’는 그 체제의 지배국인 소련과 미국이 다 같이 수정ㆍ변화를 원치 않는 까닭에 현존 경계선은 변경될수 없다. 그 분계선은 바로 유럽의 ‘심장부’에 놓인 독일을 양분했다.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대유럽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독일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독일이 단일국가로서 어느 한쪽 진영에 편입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독일은 바로 ‘유럽의 심장’이다. 유럽의 ‘얄타질서’적 대립세력의 세력균형은 독일의 분단유지로써만 가능하다. 영토적 차원에서만도 한쪽 독일에 의한 다른 쪽 독일의 병합1)은 유럽 세력균형의 파괴를 의미한다. 인구 차원에서 8천만의 통합된 독일민족의 정치적 향배는2) 더욱 결정적 요소가 된다.
제2차 대전 종결 후 분단된 독일민족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련 지배하에 편입된 동독과 소련은 사회주의적 통합을, 미국 지배체제하의 서독과 미국이 자본주의적 통합을 지향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어느 형태의 통일이건 어느 한쪽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서독은 그 영토ㆍ인구ㆍ경제력 모든측면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소련으로부터 동독의 이탈을 꾀했다. 아데나워 정책이다. 반대로 동독은 비무장 중립화 통일(오스트리아식)을 제창했으나 서독을 북대서양동맹 군사기구에 편입시키려는 미국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무장ㆍ중립화’통일을 가능케 할 ‘라파츠키’안이 있었다. 지리ㆍ역사ㆍ문화적으로 ‘중부 유럽’을 구성하는 독일 주변 국가군(현 동서분계선의 동측과 서측의 전통적 유럽 국가들)이 각기 유럽 외 세력인 미국과 소련의 지배(내지는 규제력)에서 벗어나 ‘유럽독립체’를 이룩하는 구상으로서 1963년 폴란드의 라파츠키 외상이 제창한 안이다. 중부 유럽 국가들의 전체적 비무장화ㆍ중립체제화 속에서 독일민족의 군사적 위험성을 제거하면 미ㆍ소와 주변국가들도 독일의 통일에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라는 발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협조체제를 중요시한 서독 아데나워 수상의 대결노선으로 라파츠키안은 백지화되었다. 미국이 거부한 것은 제2차 대전 종결 이후에 형성ㆍ고정된 현 유럽의 세력구조하에서는 어떤 형식과 형태의 독일통일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동서독기본조약의 전문(前文)이 말하는 독일민족의 ‘운명’적 현실이다.3)그것이 전문에서 ‘……역사적 현실에 입각하여’로 집약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반도민족의 문제를 이것과 비교해보자. 소위 독일방식을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정책입안자에게 다음의 사실은 참작할 가치가 있다.
첫째는, 한반도 민족이 통일된 단일 정치단위로서 내정을 관리하고 밖으로 자주독립의 실체와 노선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주변 열강은 반드시 통일적 국가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역사적 실증이다. 한말 구(歐)ㆍ미(美)ㆍ청(淸)ㆍ노(露)ㆍ일(日) 등 제국주의 열강은, 가능하면 한반도의 독점적 지배를 원했지만 열강 간의 세력균형과 이해조정의 ‘타협적’방식으로 반도국가의 ‘완충국가’적 기능을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론적이고 가정적이기는 하지만(오직 가정으로) 남북 어느 일방적 주도하의 통일국가가 열강의 세력구조와 이해관계 구조 속에서 그 같은 주체적 노선을 견지한다면(이것이 중요한 조건이었지만) 열강들은 적어도 통일독일에 대한 것과 같은 파국적 결과를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는, 그 같은 자주독립ㆍ완충적 기능을 견지하지 못할 경우에 비로소 분할의 발상이 생긴다는 역사적 경험이다. 허약하고 내적 통치력을 상실한 이왕국(李王國)의 사실상의 분할적 지배를 청ㆍ일이획책한것, ‘ 로마노프–야마가다(山縣) 비밀협정’으로38도선에서의 분할을 합의했던 러ㆍ일의 획책이 그것이다. 1945년 8월 미ㆍ소에 의한 잠정적 양분정책도 한반도 민족이 ‘자주적 정치ㆍ행정능력을 갖출 때까지’의 신탁통치였지 통일국가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셋째는, 둘째에서 요구된 ‘자주독립ㆍ완충’적 역할과 기능을 국제화하는 중립화 통일이다. 이 방식은 우리 민족사상 아직 실현된바 없는 형태의 통일국가의 존재양상이다. 그것이 ‘무장’중립화일 수도 있고, 더 적극적 형태로는 ‘비무장’중립화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반도민족의 자주적 판단에 따라야 할 문제다.4) 그러나 주변 열강으로서는 그것을 반대할 ‘장기적’이유는 없어 보인다. 미국 외교정책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상원외교위원회의 마이크 맨스필드 의원은 다음과 같이 오스트리아형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시했다.5)
① 1955년에 이룩된 오스트리아의 통일방식을 따라 미ㆍ소ㆍ중 3개국에 의해서 보장되는 중립화로 남북을 통일시킨다.
② 그 제1단계 조치로 남ㆍ북 전역에 걸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기 위한 상호 합의의 기초를 형성하기 위해 직접 관계되는 당사자, 즉 남ㆍ북 코리아의 관계자들의 회담을 열도록 도울수 있을 것이다.
1971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극동분과위원회에서 한반도의 중립화 가능성에 관해“미국 정부 내에서 가끔 검토된 바 있다”는 증언이 있었고, “남ㆍ북한 모두에 적용되는 방식”임이 밝혀졌다.6)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한반도 해결방안으로 중립화를 제안한 바있고(1964.1.31), 아놀드 토인비 교수도“미국과 중국을 설득하여 그들의 중간지대로서 한반도를 중립국으로 통일하게끔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로버트 케네디(전 미국 법무장관)는 한국의 통일방안에 대해 언급하면서“코리아 민중이 원한다면 중립화도 무방하다”는 견해를 표시했다.7)
일시적으로는 미국의 레이건 정부처럼 대소전략으로서의 전 우주적ㆍ무제한 대결정책 때문에 남한의 군사기지를 포기하는 중립화는 원치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장기적인 국제정치 환경에서 본다면 그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될 수 있는 해결방법이다. 이 점은 여하한 형식과 형태이건 독일민족의 통합된 단일국가화에 반대하는 유럽국가들의 태도와는 다르다. 통일독일은 주변국가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우리의 경우는 ‘주로’ 우리들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독일문제의 분단 합법화 방식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통일된 이 반도국가가 중립노선을 견지하거나 ‘중립화’형식을 택할 때, 이 나라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길 약소국가나 민족은 동북아지역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의 국가적 존재가 주변 국가들에게 작용하는 관계는 특히 프랑스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의 역사가 그 배경을 이룬다.
프랑스는 제2차 대전 종결 후의 처리에서 독일의 장기적 분할점령을 원했다. 그 후 미국의 대소 대결정책의 일환으로서의 서독재군비에 완강히 반대한다. 통일된 독일은 두말할 것도 없고, 분단된 상태의 서독 하나에 대해서도 프랑스는 그 군사적 존재를 허용할 수 없었다. 미국 주도하의 서유럽 군사동맹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의 서독 가입을 반대했다. 그 대신 (비유럽 국가인) 미국을 제외한 서방유럽 국가들끼리의 서구동맹(WEU)을 구성하여 제한된 군비의 서독을 그 속에 묶어두려 애썼다. 미국과 서독 정부의 아데나워 대통령의 반대로 서독의 NATO 가입이 결정되었을 때, 프랑스는 ‘군사화된 서독’의 위협을 제거하는 조치를 강력히 요구했다. 프랑스의 안전보장과 대독 군사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몇백 년의 적대적 역사를 가지는 프랑스의 숙원이었다.
1955년 연합국의 독일점령을 공식 종결짓는 파리조약에서 프랑스는 다음의 조치를 조건으로 동의했던 것이다.
① 서독은 독자적 군대를 보유할 수 없으며, 서독군은 NATO에 편입되고 NATO의 지휘하에 둔다.
② 서독은 서구 동맹기구 속에서의 군비제한과 군비통제를 수락한다.
③ 서독은 서방국가(들)에 대한 무력행사의 포기를 명문으로 공개 선언한다.
④ 서독의 통일노력은 오직 평화적 수단으로 추진할 것을 공개적으로 서약한다. 통독은 영ㆍ미ㆍ불의 공동책임으로 한다.
⑤ 서독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 연합국 군대가 계속 서독 영토에 주둔한다.
미ㆍ영은 프랑스의 요구에 따랐고 서독은 그 요구를 수락했다. 인접 프랑스의 서독에 대한 역사적인 공포심은 다음의 사실로 더욱 실감난다. 서독군 중 지상군 병력은 1985년 현재 32만 5,200명이다(국경경비대 병력 제외). 그런데 서독 영토 내에 분산 주둔하고 있는 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벨기에ㆍ네덜란드ㆍ프랑스 6개국 혼성 지상군 병력은 32만 6,200명이다(서베를린시 주둔 경비병력제외). 즉 서독 지상군 병력보다 동맹국 지상군 병력이 1,000명많다.8) 그리고 줄곧 그렇게 유지되어왔다. 실제 전투능력의 차원에서 보면 1,000명의 병력차는 ‘상징적’의미밖에 없다. 그러나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재무장한 인접국 독일민족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의지의 표시’인 것이다.
이상의 모든 사실의 종합적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① 여하한 유럽(동과 서) 국가도 동ㆍ서독일의 재결합과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② 서방 측으로서는 NATO의 강화는 필요하지만 어떤 국가도
서독 군사력의 일정 수준 이상의 강화는 주변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③ 따라서 평화적 방법이건 무력에 의해서건 독일통일은 유럽의 현존질서와 안정을 파괴한다. 그것은 곧 제3차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④ 따라서 서독을 소련과 동유럽(바르샤바조약 군사동맹)으로부터 보호하는 서방 군사력(기구)은 동시에 서유럽(동유럽까지도)을 서독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이중적 임무와 역할을 하는 구조다. 이것이 ‘Security for Germany, Security from Germany’ 적 유럽체제인 것이다.
마치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가 북한으로부터의 남한 보호이면서 동시에 남한에 의해 가능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행위를 억제ㆍ저지하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1954.11.17 발효)을 인준한 미국 의회는 이 조건을 남한(대한민국) 정부에 수락하게 했다.9)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동서독기본조약의 ‘전문’은 ‘독일통일은 불가능하다’는 합의를 천명한 것이다. 그 사실 인식은 바로 ‘역사적 현실에 입각하여’의 뜻이다. 또 군사적 방법에 의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평화적 방식’의 통일도 전체 유럽의 안전과 안정을 파괴한다는 인식을 토대로 해서 이 전문의 정신(특징)은 국가(정부)적 차원에선 ‘통일’을 위한 논의는 일절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통일의 날을 기약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완전한 외국’이 될 것을 합의했고, 바로 그 완전한 외국으로서의 관계를 설정한 것이다. 소위 ‘선화해(先和解)ㆍ후통일(後統一)’도 아니다. 그것은 ‘독일 영구분단 합법화’의 민족 자체적 서약이다. 조약 본문은 다만 그것을 조문화하는 구체적 합의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일민족(一民族)ㆍ이체제(二體制)ㆍ이국가(二國家)’도 아니다. ‘이민족(二民族)ㆍ이체제ㆍ이국가’다. 즉 ‘하나의 독일민족’은 정치개념으로는 이 기본조약 이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관해서는 뒤의 본문 비교ㆍ비판 과정에서 상술한다.)

남북()기본관계협정전문의 정신

‘협정’제의의 전문(前文)은 ‘제의 설명’의 성격이다. 따라서 독일조약의 전문처럼 동ㆍ서독일 쌍방의 합의와 서약의 성격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1982.1, 현재)의 일방적 상황인식과 구상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통일에 대해서 어떤 민족관과 역사적ㆍ현실적 인식, 그리고 철학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에는 충분하다.
비핵심적이고 비본질적인 수식어를 제외하고 정리하면, 이 제의 설명은 통일까지의 절차와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골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통일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다.
② 쌍방(남북)이 각기 선출한 대표로 ‘민족통일협의회의’(가칭)를 설치한다.
③‘민족통일협의회의’가 통일헌법을 기초한다.
④ 이 통일헌법안을 ‘쌍방은 남북한 전역에 걸쳐’……국민투표로 확정ㆍ공표한다. (이 항목은 남북이 ‘각기’의 영역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인지 쌍방이 공동으로 ‘남북한 전역에 걸쳐’관리ㆍ실시하는 것인지 문장이 애매하다.)
⑤ 이 헌법에 따라 총선거 실시, 통일국회 선출, 통일정부 수립.
⑥ 국가의 이념ㆍ국호ㆍ정부형태ㆍ국회구성ㆍ국가정책, 총선거의 방법ㆍ시기ㆍ절차는 ‘협의회의’가 헌법기초 과정에서 정한다.
이 제의의 정신은 독일의 그것이 분단의 합법화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어디까지나 민족통일 지향적이다. 통일목표 달성까지의 제반과정도 세심한 청사진으로 설계되었다. 남쪽 정부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설계도를 제시한 것이 처음이라는 데서 그 의의는 크다. 이에 앞서는 제의들은 그 실천 가능성 여부는 고사하고 이같은 구체적 내용을 전혀 담지 않은 선전효과적인 성격이 짙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들은 다만 북쪽의 더 구체적 내용의 제안에 대해서 그때그때 내놓은 것이라는 인상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오직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1954년 5월 22일, 휴전협정의 규정에 따라서 제네바에서 개최된 처음이고 마지막인 한국전쟁 참전국 전체가 참석한 회의에서 변영태(卞榮泰) 외무장관에 의해 제출됐던 14개 항목 통일방안이다.
남쪽의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입장과 통일방안의 역사적 변화를 알기 위해서 참고적으로 그 전문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1. 통일ㆍ독립ㆍ민주한국을 수립하기 위하여 여기(에) 관한 UN 결의의 규정에 따라 UN 감시하에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2. 자유선거는 자유선거를 수락하지 아니한 북한에서만 실시하고, 남한에 있어서의 선거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절차에 따라 실시한다.
    3. 선거는 이 제안을 채택하고부터 6개월 이내에 실시한다.
    4. 선거 전, 선거 중 및 선거 후,선거감시와 관계 있는 UN 인사는 선거 전 지역을 통하여 자유 분위기 조성을 돕고, 선거관찰을 하도록 활동ㆍ연설 등에 충분한 자유를 갖는다. 한국 당국은 UN 인사들에게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5. 선거 전ㆍ중ㆍ후, 제 입후보자, 이들의 운동원 및 이들의 가족들은 민주주의 제국가에서 인정되고 보장된 운동ㆍ연설 등의 자유와 기타 인권을 향유한다.
    6. 선거는 비밀ㆍ보통ㆍ성년 투표의 기초 위에 실시된다.
    7. 전 한국의 입법원(立法院)의석은 전 한국의 인구비례에 의한다.
    8. 전 선거구의 인구에 대한 정확한 비례로 대의원의 수를 할당할 목적으로 UN 감시하에 조사를 실시한다.
    9. 전 한국 입법원은 선거 직후 서울에서 집회한다.
    10.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전 한국 입법원의 입법사항으로 남겨놓는다.
    a. 통일한국의 대통령을 새로이 선출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 하는 문제.
    b. 현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에 관한 문제.
    c. 군대의 해산에 관한 문제.
    11. 대한민국의 현존하는 헌법은 전 한국 입법원이 개정할 경우를 제외하고 효력을 발생한다.
    12. 중공군은 선거일 1개월 전에 한국으로부터 완전히 철수한다.
    13. 대한민국으로부터 UN군의 일부 철수는 선거 전에 출발할 수 있으나 한국의 통일정부가 성취되고 UN이 확인한 전 한국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기 전에 UN군이 완전히 철수해서는아니된다.
    14. 통일ㆍ독립ㆍ민주한국의 보전과 독립은 UN이 보장한다.10)




30년의 세월이 국제정치와 한반도의 현실에 작용한 변화의 흔적이 너무나 뚜렷하다. ‘남북협정’제의에는 UN이 차지할 자리가 없으며 그토록 오랫동안 주장해온 환상적인 북반부에 대한 통치권이 언급된 항목이 없다. 이만큼이나마 우리 정부가 현실인식에 접근했다는 증거다. 서독이 동독의 국가적 붕괴를 기대(예상)하여 그 병합 내지 흡수식 통일을 위해서 온갖 국제적 압력을 가해온 30년의 노력 끝에 현실인식에 도달한 과정과 동일하다.
우리 정부의 ‘잠정협정’제의의 기본이자 그 실천적 제1단계 조치는 남ㆍ북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민족통일협의회의’의 창설이다. 이 협의회의로 하여금 통일 실현까지의 전체 과정을 주관하도록 하자는 안이다.제의문과 본조문 제1항이 남ㆍ북 간의‘호혜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그 대표의 수는 남북의 인구비례가 아니라 ‘국가단위’로서의 동수구성이 된다. 그 방식의 발상이라면 북쪽이 1969년에 처음으로 제시한 바 있고, 그 후 꾸준히 그것을 제안하고 있다. 북한이 최고통치자의 공개발언으로 ‘남한의 내부혁명에의한 조국통일’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믿어지는 기록은 1969년 주석 김일성이 핀란드의 민주청년동맹 대표단의 질문에 답변한 통일방안이 처음이다. 1967년 말(정확히는 11월16일), 김일성은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회의에서의 연설을 통해 10대 정강을 발표했다. 그 속에서‘조국통일문제’에 관한 7항목 방안에서는 여전히 남한 내의 혁명과 그것을 지원하는 북쪽의 ‘혁명기지’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이다. 1969년 핀란드 대표단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처음으로‘남북협의방식 통일’을 제시했다. 여기서 통일실현을 주관할 ‘최고민족위원회’의 구상이 나온다. 그것은“현재 남북조선에 세워진 정치제도는 그대로 두고, 쌍방이 임명하는 동수의 대표들로 최고민족위원회를 구성하여……”통일과정을 수행하자는 것이다. 그 대표들을 각기 정부가 ‘임명’한다는 것과 남쪽 잠정 협정안에서“각기 주민을 대표하는……”이 반드시 선거로 선출된 대표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될 만한 차이는 없다.
문제는, 대체로 같은 기능을 부여한 그 같은 남북협의기구가 수행할 민족의 최종적 목표가 무엇인가에 있다. 이것이 모든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쌍방 집권세력의 궁극적 의도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독일방식’과의 비교연구를 위해서 동ㆍ서독 쌍방의 민족문제해결방안의 비교가 선행해야 했듯이 우리의 민족문제 해결의 연구에서도 북쪽의 구상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앞서의 ‘최고민족위원회’설치안이 제시된 후인 1973년에 그것은 북쪽의 종합방안으로 제시되었다. 우리가 지금 검토하는 ‘남북기본관계잠정협정안’이 나오기 9년 전이다. 북은 그것을 종합적으로 성안하여 1980년 10월 10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방식 통일안을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제의했다.




  1.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북과 남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고, 그 밑에서 북과 남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한다.
    2. 북과 남이 같은 수의 대표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들로 최고 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 북과 남의 지역정부들을 지도하게 한다.
    3. 연방국가의 국호는 통일국가의 이름을 살리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이념을 반영하여 고려민주연방공화국으로 한다.




또한 연방통일정부가 수립되면 다음과 같은 시정방침에 따라 다음의 10대 정책을 집행한다.



① 국가행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성을 견지하며, 자주적 정책을 실시한다(독립ㆍ중립ㆍ비동맹정책).
② 나라의 전 지역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민주주의를 실시하며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한다.
③ 북과 남 사이에 경제적 합작과 교류를 실시하며 민족경제의 자립적 발전을 보장한다(공동투자ㆍ공동시장).
④ 남과 북 사이의 과학ㆍ문화ㆍ교육 분야에서 교류와 협조를 실현하여, 통일적으로 발전시킨다.
⑤ 북과 남 사이에 끊어졌던 교통과 체신을 연결하며, 전국적범위에서 교통ㆍ체신 수단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한다.
⑥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과 전체 인민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며, 그들의 복리를 계통적으로 증진시킨다.
⑦ 북과 남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고, 민족연합군을 조직하여 외래침략으로부터 민족을 보호해야 한다.
⑧ 해외에 있는 모든 동포의 민족적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고 보호한다.
⑨ 북과 남의 통일 이전에 다른 나라들과 맺은 해외관계를 올바로 처리하여야 하며, 두 지역정부의 제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절한다.
⑩ 전 민족을 대표하는 통일국가로서 세계의 모든 나라와 연대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애호적 대외정책을 실시한다.11)




제의의 종합적 형식과 내용의 구성 및 주요항목의 구체성 등으로 미루어 남의 ‘잠정협정안’은 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에 대응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남북기본관계협정안 조문

다음으로 독일의 조약과 우리 정부의 협정안을 축조적으로 검토해본다. 이 협정 본문의 규정은 전문(제의 설명)에서 보았듯이 남ㆍ북이 각기 선출하는 대표들로 하나의 ‘민족통일협의회의’를 창설하여 그것에 의해서 ‘통일정부가 수립될 때까지’의 기간에 걸친 남북 쌍방의 ‘행동원칙’이다. 협의회의 창설을 언제까지 완료하자는 잠정적 시한의 제시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각 단계의 전진적 조치ㆍ결정과정을 통과할 대체적 일정표의 제시도 없으므로 실제적으로는 ‘무기한’적인 셈이다. 그 많은 단계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입장차로 인한 갈등과 대립을 예상케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 제의가 실제로 무기한적 성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그 대립과 갈등과 이해관계 차를 어느 정도까지 줄이고 좁힐 수 있는가의 문제가 이 본 조문의 실천 여하에 달렸다는 정도밖에 이 협정 제의 전문에는 아무 언급도 없다. 이 협정의 전문에 그토록 간절한 문장으로 표현된 ‘평화적 민족통일’의 정신과 구상과 조약 본문의 규정이 독일조약처럼 부합일치하면 그 기간은 단축되고 어려움은 감소ㆍ극복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전문의 정신과 구상과 본문 조약의 규정들이 전후 모순되거나, 상호 갈등하거나, 또는 총체적으로 상이한 목표를 지향하게끔 꾸려져 있다면 통일의 실현은 출발부터 가망 없는 시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그런 목적으로 전체적 내용이 구성된 것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도 분석할 수 있다. 어쨌든 그 여러 가지 가능성은 본 조문의 검토에서 검증될 수밖에 없다.

제1항

“쌍방은 장차 통일국가가 수립될 때까지는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상호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이 항목의 핵심은 남북의 ‘호혜평등’원칙이 천명된 것이다. 국가 간의 호혜평등은 국가의 주권 독립성을 상호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성립된다. 그것에 정치적ㆍ법적 효과를 부여하려면 상대방의 정식 국호를 칭해야 한다. 그러나 ‘잠정협정’안의 전문에서나 본조문에서 국호 호칭이 없다 하더라도 호혜평등적 관계의 유지를 희망한 것은 그 묵시적 인정이라고 해석된다. ‘협정’안의 7개 항의 첫머리는 모두 ‘쌍방’으로 시작되고 있다. 동서독의 경우는 이미 합의된 조약이므로 상호의 국호를 명기함으로써 호혜평등의 법적 근거를 부여하고 있다.
1948년의 건국ㆍ정부수립 이후 일관해서 북의 국가적 인정을 거부해온 남의 기본입장은 1972년 7월 4일의 역사적 ‘남북공동성명’에서 사실상의 호혜평등 관계에 들어갔다. 분단 26년 만에 그리고 남쪽이 북쪽과의 모든 대등한 접촉과 대응을 거부해온 기본입장의 일대 변화였다. 그 성명의 제2항은“……서로 상대방을 중상ㆍ비방하지 않으며……”라고 합의함으로써 그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다가 바로 이듬해인 1973년 6월 23일 ‘남북한 UN동시가입’을 제창한 박정희 대통령의 소위 ‘6ㆍ23선언’에서는“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해둡니다”라고 단서를 붙였다. 그러나 UN의 산하기구는 독립ㆍ주권국가가 아닌 지역이나 단체도 가입할 수 있지만 투표권을 갖는 정식 가입은 주권ㆍ독립국가의 자격과 권능이 조건이므로,동시가입을 제안한 것 자체가 그 전제하의 제안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국제법상 인격으로서의 ‘국가의 요건’은 일반적으로“① 영구적 주민 ② 명확한 영역 ③ 정부 및 ④ 타국과의 관계를 체결할 능력의 소유”로 규정하고 있다.12) 개별 국가의 개별적 입장 때문에 그 요건을 갖춘 국가를 ‘국가’로 승인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래도 국제법상으로는 여전히 그것은 국가인 것이다. 7ㆍ4공동성명이나 6ㆍ23선언에서 서로가 합의한 내용 또는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도 위에서 본 ‘국가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비로소 성립된다. 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합의ㆍ공동성명ㆍ제안……은 불필요하며 또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잠정협정안’에서 국호가 명시되지 않은 것은 ‘사실 문제’에서라기보다는 남쪽의 정치적 이유에서라고 해석함이 옳다. 또 본조문 제7항에서“쌍방은 각료급 전권대표를 임명하여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한다”고 제의하고 있다. ‘대표부’는 형식적으로 정식 국가승인 관계는 아니나 사실상 그 경우의 ‘대사관’을 말한다. 명칭의 차에 불과하다.
이상과 같은 해석으로 해서 상호의 국가명(국호) 문제가 제기된다. 역시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이 ‘잠정협정안’은 그것이 합의되어 성문화될 때에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표시돼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그처럼 정식 구호로 명기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13)

제2항

“쌍방간 분쟁문제 해결에서 모든 형태의 무력 및 폭력의 사용 또는 위협을 완전히 지양……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자고 제의했다.
이것은 남북관계의 중대한 변질을 의미하는 의사표시다. 그러나 동시에 몇 가지 중대한 모순도 내포하고 있는 조항이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정부)의 1973년 6ㆍ23선언을 우리 정부가 부정하지 않아 그것이 그대로 유효하다면 이 제2항과 상충된다. 6ㆍ23선언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강조한 것은 북쪽 영역이 아직도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쪽의 정권은 다만 ‘일시적으로 행정권이 공백상태인 지역의 반란집단’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무력행사를 포함하는 행동이 정당화된다. 합법적이기조차 하다. 호혜평등은 대등ㆍ평등한 ‘국가’사이의 행동양식임이 여기서 확인된다. 따라서 이 ‘잠정협정안’제시 이전의, 이에 상반되는 입장이나 주장은 이것으로써 실효됐음을 의미한다. 독일조약의 제2조와 제3조에 해당한다.
이 제2항은 또 현존하는 ‘휴전협정’(1953.7 체결)의 효과와 저촉된다. 휴전협정은 법적으로는 ‘전투행위를 일시 정지한 상태’를 규정한 것이다. 그 협정의 규정과 서약에 위배되는 행위가 있을 경우에는 타방은 그 협정의 규정에 구속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언제든지 전투행위를 재개할 권리를 보유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이 제2항에서 휴전협정과 관계를 언급함이 없이‘모든 형태’의 무력 및 폭력의 사용이나 위협을 ‘완전히 지양’하기로 제의했다.
수식적으로치우친감이있는문장구성이기는하다. ‘모든’이라는 수식어는 ‘조약용어’나 ‘법적 용어’는 못 된다. 그렇게 예외없는 또는 무조건의 규정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용어를 썼다는 것부터 이‘잠정제의’가 법적인 성격이기보다는 정치적 선언의 성격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경우에 ‘무력’은 주로 휴전선을넘어서의군사력사용을의미하고 ‘ 폭력의 사용’은1983년의 랭군폭발사건처럼 반도영역 밖에서의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한 가해행위로 해석된다. 반도 내적 차원에서는 휴전선을 넘어서 상대방 영토 내에서의 테러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쨌든 이 같은 행위의 ‘모든 형태의……’를 ‘완전히’지양하자는 것은 조문 그대로 해석한다면 휴전협정의 ‘100퍼센트 이행’이거나, 뒤집어 말해서 휴전협정이 실효 내지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진정 ‘모든 문제를 상호대화와 협상으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휴전협정을 없애는 방향으로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잠정협정안’에서는 그것이 없다. 이 점이 문제로 남는다. 북쪽은 시종일관 휴전협정을 그 협정이 규정한 대로의 ‘강화조약’으로 대치하여 무력행사와 폭력행위의 사용 및 위협이 없는 상태로 정상화하자고 요구하고 있다(이 문제는 제4항에 다시 연결된다). 휴전협정을 존속시키는 조건에서는 무력의 행사는 정당화되고 경우에 따라 합법적인 것이다.
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UN헌장 제6장의 규정 그대로다. 만약 남쪽이 그전처럼 건국의 법적 근거를 유엔총회의 결의에 의거하는 것으로 북쪽에 대한 국제법상 우위를 주장하려면 이 조항은당연히 원칙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구속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UN헌장 제6조, 제33조, 제34조, 제35조는 이 문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원칙과 규정은 독립국가 상호간의 관계 규정이지, 남쪽이 북쪽을 ‘존재하지 않는 국가’로 취급하고 있거나, 또는 ‘휴전협정’으로 규제되고 있는 ‘전쟁상태’의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남쪽이 그 ‘잠정협정안’제2항에서 제의하는 대로의 정신이라면 먼저 북쪽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거나 휴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대치한 뒤에 비로소 그 같은 원칙이 적용되는 관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독일조약에서는 제3조에 UN헌장을 인용하여 이것을 규정하고 있다(제4항에서 상술한다).

제3항

“……현존하는 상이한 정치질서와 사회제도를 상호 인정하며 서로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이 제의는 구체적으로, 그리고 단적으로 말하면 남쪽이 북쪽의 사회주의적 정치ㆍ경제ㆍ사상적 제도에, 북쪽이 남쪽의 자본주의적 그것들에 서로 반대ㆍ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법과 국제정치적 원칙으로 말하더라도 이것은 ‘호혜평등’인 국가관계에서는 지극히 원리적인 것이다. 먼저 국제법 내지 조약상 견지에서는“여하한 국가도 타국의 내정 또는 외정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14) 또 제2차 대전 종결 후의 해방ㆍ독립국가들 간의관계를 규정하는 일반적 원리로 인정되고 있는 반둥회의(1955)결의 5개 원칙의 하나로 이것은 오늘날 국가관계의 기본원리로 확립되어 있다. 이 원칙은 이미 여러 차례 남ㆍ북 간에서 시인된 바있다. 북쪽은 고려연방공화국안에서 그것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고, 또 쌍방은 7ㆍ4공동성명 전문 제3항에서 다음과 같이 서약한바 있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제3항의 정신이 진실이기 위해서는 각기 상대방의 이념ㆍ체제ㆍ제도에 대한 반대ㆍ중상ㆍ비방을 일삼는 내국적 법률,규정, 지시, 교육, 공개ㆍ비공개적 선전…… 등을 폐지 또는 중지해야 한다. 북쪽은 남쪽의 자본주의ㆍ개인주의ㆍ의회제도…… 등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그런 조치를 취해야 하고, 남쪽은 북쪽의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원리와 정책 및 특성에 대해서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남ㆍ북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이 조항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국내법의 개정이 따라야 하고, 상대방의 체제ㆍ제도ㆍ이념ㆍ관습…… 등에 관해 언론이 제약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남ㆍ북 간에 되풀이 발표되어온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상호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15)
여기서 ‘정치질서’와 ‘사회제도’란, 남에서는 자본주의, 의회민주주의, 복수정당제도, 그에 입각한 선거방식, 정부구조…… 등을말한다. 북에서는 일당 지도체제적 각종 방식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 서로 비방ㆍ중상ㆍ반대를 말아야 한다. 다만 정권과 그 담당자 개인의 도덕성ㆍ적성ㆍ행적ㆍ공과 등도 이 범위에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정치질서’속에 들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회제도’란 남에서는 사유재산제도, 북에서는 사회적 소유제도, 생산과 분배에서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특성을 말한다. 광의로는 그에 입각한 사회ㆍ문화 전반적 생활양식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적 ‘자유와 권리’및 시민으로서의 권리 등도 이에 포함된다. 두 제도의 권리와 자유는 그 개념부터 다르다. 하나는 전체를 도외시한 ‘개인’위주이고, 다른 쪽은 개인보다 ‘전체 구성원’위주다. 이에 대한 이론적 평가는 각기 있어도 좋지만 비방ㆍ중상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협정’의 제의가 실제적 현실에 합치되고 있는지? 내적 실천, 즉 진정한 민족화합을 위한 조치 없이 대외선전적 내지 선언적 효과만을 위한 것인지? 남ㆍ북의 현실은 과연 각기 어떠한가?
독일의 경우는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서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서로 인정하는 바탕에서 협상하고 교류하고 있다. 비방도 반대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기 체제와 제도를 더욱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향상ㆍ발전시키고자 노력한다.
동ㆍ서독의 매스컴은 비방 없이 타방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필자도 1986년 초 동독 당 21차대회가 열렸을 때, 서독의 텔레비전이 그 대회 광경을 매일 뉴스시간에 30분 가까이 아무런 논평 없이 방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동독도 마찬가지다.) 독일인은 주변국가들의 이해 때문에 분단을 합법화했지만, 오히려 ‘민족’으로서는 심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하나의 독일민족’이라는 인식에서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말로는 ‘화합과 긴장완화와 통일’을 외면서 행동은 정반대이지는 않는지? 이것이 잠정협정안의 제3항을 검토하면서 생각해야 할 초점이다.
제3항의 조문은 그밖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북쪽에 ‘내정간섭을 해서는 안 되는’정치질서의 실체가 있다는 사실인식의 입장이다.
남쪽이 북쪽을 ‘미수복의 영역’으로 규정해온 법적 근거는 UN총회가 반도 남쪽(38도선 이남)에 수립된 ‘대한민국’정부를 승인한 1948년 12월 12일의 총회 결의 제195호의 Ⅲ이다. 그런데 이 결의는 당시와 그 후의 국내사정 때문에 불가피했다고는 하더라도 법률적으로는 부당하게 확대ㆍ왜곡 해석되어왔다. 사실은 이 UN총회 결의 제195호의 Ⅲ은 38도선 이북은 ‘백지’로 남겨둔 것이다. 이 결의의 해석 착오는(우리 정부는 의도적으로 그랬지만) 많은 정치인이나 공법학자들조차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관할권이 38도선 이북 전역에 미치는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고 해석하는, 선의의, 그러나 분명히 잘못된 법해석을 해왔다. 현재까지도 그렇다.
그 결의의 해당 부분은 이렇게 규정한 것이다. “UN 한국임시위원단이 감시 및 협의를 할 수 있었던, 전(全)Korea 인민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있는 Korea의 그 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통치력과 사법권을 갖고 있는 합법적인 정부(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정부가 Korea의 그와 같은 지역유권자의 자유의사의 정당한 표현이며, 임시위원단이 감시한 선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 또 그 정부는 Korea에서 유일한 그와 같은 정부라는 것을 선언한다.”즉 대한민국 정부는 UN한국감시 위원단이 선거를 감시할 수 있었던 그 지역에서 (주민은 전체Korea의 majority가 살고 있는) 통치력과 사법권을 갖고 있는 합법정부라는 것이다. 마지막 절에서 ‘그러한 정부’(such government)는 ‘선거가 실시된 그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성을 누리는’그런성격의 정부라는 말이다.
이 결의를 Korea 반도 전역에 대한 것으로 착각(선의로)했거나 왜곡(의도적으로)한 탓에 남ㆍ북 간 관계에서는 물론 대한민국과 대외적 관계에서 적지 않은 물의와 갈등을 빚었던 것이다.
그 예로 1965년에 체결된 한일 국교정상화(기본관계에 관한)조약을 기초할 때, 일본 대표단은 이 유엔총회 결의를 기어이 조문에 넣기를 주장했다. 한국정부 측은 기어이 그 UN 결의를 넣지않고 다만‘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로만 기술하자고 주장해서 오랫동안 회담이 교착된 일이 있다. 결국 일본 측 요구대로 한일 기본조약 제3조는“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 총회의 결의 제195호의 Ⅲ에 명시된 바와 같은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로 결말을 보았다.
사실 국제법으로는 일본의 입장이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승인 및 외국군 철수에 관한 결의’라는 명칭의 그 총회 결의는 마지막 항인 제9항에서“유엔 회원국과 기타 국가는 대한민국정부와의 관계를 수립함에 있어서 본 결의 제2절(항)에 명시된 제 사항을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엔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했을 때 우리 정부가 그 지역이 당연히(유엔 결의에 의해서) ‘대한민국 영토’로 통치돼야 한다고 주장하자, 유엔은 그런 식의 결의 해석을 부인하고 이승만 대통령에게“손을 대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이 분쟁에서 총회결의 제195(Ⅲ)호를 해석한 ‘UN한국통일부흥위원단’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UN한국임시위원단이 관찰을 하고 협의를 할 수 있었던 Korea의 그 부분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합법적 정부로서 UN에 의한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Korea의 그밖의 부분을 합법적ㆍ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정부로서는 UN이 어떠한 기타 정부도 승인하지 아니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대한민국 정부의 효과적인 통치하에 있는 것으로 UN이 인정하지 아니하는, 지금 UN군 점령하에 들어올 Korea의 그부분의 민간통치와 행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임시적으로 UN군 통합사령부가 담당하도록 권고하며……16)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 38도선 이북 즉 UN감시단이 선거감시를 하지 못한 북한지역에 대한 사법행정권을 규정하고 있는 데 대해서 UN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전체 Korea에 걸친 그의 정부의 사법관할권을 주장했다.본 위원단은 UN총회의 195(Ⅲ)호 결의가 북부 Korea에 대하여 UN이 인정하는 정부가 없다고 한 사실을 대한민국 헌법이 단순한 논리적 추론으로 그렇게 규정한 것으로 지적했다.17)




이 사실은 UN이 한국정부에 대해서 그 당시나 그 후나 일관하게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자의로 이용해왔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일이다. 이 때문에 이 순간까지도 ‘북한’에 대한 ‘유일합법정부’권한을 신앙처럼 믿고 있는 국민이 대다수다.
이 왜곡된 대한민국 정부 영토권 해석 때문에 이제 남북대화를 진심으로 전개ㆍ추진해야 할 국면에 이르러서 마치 북반부를 ‘포기했다’느니 ‘적색집단에 빼앗긴다’느니 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는 의견이 있음은 이 오해 때문이다.
이것은 남한으로서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유엔 결의에 밝혀진 엄연한 사실이다.

제4항

“쌍방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전쟁방지를 위하여 현존 휴전체제를 유지하면서 군비경쟁의 지양과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조치를 협의한다.”
이 항목이 바로 ‘잠정협정안’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항목의 처리방식을 돌쩌귀로 해서 나머지 전체 항목이 회전하게 된다. 이 항목이 7개 항목의 중간에 자리하게끔 전체 구상이 짜여진 것부터 그 중요성을 말해준다. 이 조항이 남북 간에 타협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바로 반도정세가 전쟁상태에서 평화질서로 질적 전환을 이룩할 수 있는가의 열쇠가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쪽 제안이 전체적으로 내포하는 의도ㆍ구상ㆍ계획ㆍ방향ㆍ전망…… 등 모든 필수적 요소들이 이 항목에서 밝혀지게 된다. 엄격히 검토하면 ‘남북기본관계잠정협정’의 동기에서 목표까지가 이 1개 항목에 압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제4항이 합리적이고 또 진정 민족의 불행을 해소하려는 마음으로 구상된 것이면 나머지 항목들은 다만 부수적 의미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제4항에 담겨진 문제에 대한 인식이 민족적 양심에 비추어서 타당하다면 나머지 문제들은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그것이 국제법ㆍ국제적 관습에 비추어서 순리적인 것이라면 전 세계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 제안의 문장 첫 글자에서부터 끝맺음까지에 수놓여진 구구절절 민족애적이고 평화애호적인 수식사들이 진정임이 입증된다. 만약에 그 반대라면 이 제4항만이 자기모순일 뿐 아니라 전체 제의의 진의마저 의심스러워진다. 이 항목은 그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민족의 분단현실을 반영구화하고 있는 6ㆍ25의 후유증, 즉 휴전상태를 어떻게 인식하며,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에 관한 조항이기 때문이다. 말을 바꾸면, 반대로 어떻게 하면 그 상태를 해소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는가 하는 조항일 수도 있다. 독일민족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은 까닭에 우리의 제4항에 직접 해당하는 조항은 없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제3조 제2항에서“현재 존재하며 또 앞으로도 존속할 쌍방 간의 경계선의 불가침성을 재확인하고 각기 영토보전을 전면적으로 존중할 의무를 지닌다”고 합의하고 있다. 이것은 분단된 현 경계를 사실상 영원히 ‘국경’으로 인정한 것이다.
협정안 제4항의 핵심은 이러하다. 즉 제의의 문면(文面)대로 논리화해서 첫부분은,
① 긴장완화와 전쟁방지를 위하여 현존 휴전협정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역원리로 말하면,
② 현존 휴전협정 체제의 유지가 한반도상 남북 간 및 주변지역의 긴장완화와 전쟁발생 위기의 감소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뒷부분은,
③ 현 휴전상태를 유지하면서 군사적 적대상태를 해소하자는제의이다. 역시 역논리를 적용해서,
④ 군사적 적대상태를 해소하려면 휴정협정과 휴전상태가 지속돼야 하는가?
이상과 같은 표면논리와 역논리의 관계가 파악되면 이 제4항의모든 의미가 밝혀질 것이다.
남북관계의 장래 형태를 틀짓게 될 이 제4항은 휴전선ㆍ휴전협정의 법적 해석보다는 훨씬 고차적인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된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 열강의 이해관계의 구도와 동북아 지역에서의 열강 각국의 장기적 군사전략과도 밀접히 연결된다. 사실 이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지리적 범위를 넘는 초강열강의 전 지국적 정책ㆍ전략으로 규정되어왔다. 민족 내부의 내전을 경험하지않은 동서독은 기본조약 제5조에서 ‘유럽에서의 병력, 군사……특히 핵무기와 기타 대량살상 무기 분야의 축소’를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로 충분했다.
‘휴전체제’란 1953년 7월 휴전협정 조인시의 군사적 실세의 선을 분계선으로 하여 잠시 ‘전투행위’를 정지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쌍방 간의 ‘전쟁상태’는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상태를 평화적 상태로 전환해야만 한반도에서 진정한 ‘긴장완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전쟁재발의 위험을 저지할 수 있다. ‘긴장완화와 전쟁방지를 위해서 현존 휴전체제가 유지’돼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현존 휴전(체제)이 전쟁상태인 까닭에 지난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군비경쟁이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진행돼온 실정이다. 그런 휴전체제가 존속되는한 ‘군사적 대치상태’는 당연한 상황논리로서 지속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 제4항은 실제상황과 그 상황의 논리를 거꾸로 결합시키고 있다.
법적인 측면에서는 휴전협정이,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휴전협정을 대치할 것을 다음과 같이 명문으로 요구하고 있다.



제4조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
60. Korea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서 쌍방 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이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Korea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및 Korea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국 육군대장 마크W. 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인민공화국 주석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
배석자
국제연합군 대표단 수석대표
미국 육군중장 윌리엄 K. 해리슨 2세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
(공동)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南日)18)




이 건의에 따라서 1954년 4월 24일 쌍방 참전국(소련은 별도초대ㆍ참가) 19개국 정치회의가 열렸으나 쌍방 주장이 타협을 못본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후 북쪽은 모든 남북관계 개선과 반도상 민족문제의 해결을 위한 선행조치로서 현존 휴전협정(체제)을 평화조약(체제)으로 대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쪽은 이 제4항의 입장처럼 시종일관 휴전체제의 유지가 긴장완화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와 다른 또 한 가지 요소가 이에 관련된다. 동ㆍ서독간에 휴전문제가 없다는 것 외에, 동ㆍ서독이 기본관계(정상화ㆍ분단고정화)를 수립할 때 서방 연합국(미ㆍ영ㆍ불)과 소련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유럽 국제관계의 제반 법구조를 마련한 사실이다. 베를린시 문제를 비롯해서 폴란드와 독일동부 국경 제정 문제, 프랑스와의 자르 지방 귀속문제, 베를린과 서방통신 문제…… 등 동ㆍ서독이 자체적 관계구조를 설정하는 데 선행돼야 할 조건들이 관계국들에 의해서 해결되었다.
반도의 남ㆍ북 사이에는 독일의 베를린과 같은 난문제도, 제3국과 관련된 국경선 분쟁도 없다. 훨씬 단순한 조건이다. 소련도 중국도 이 반도의 북쪽에 군대와 군사기지를 두고 있지 않으므로 평화조약 체결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없다. 평화조약 체제가 될때 불이익을 보게 되는 관계국은 미합중국이다. 주한 미국군대와 군사기지를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조약 체결에 미국이 반
대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소련과의 동북서 및 북서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대결전략에서 남한의 군사기지와 군사력 주둔은 미국 군사전략의 사활적 요소다. 슐츠 미국무장관이 1983년 서울 방문시에“남ㆍ북한 사이에 어떤 형태의 공존관계를 합의해도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할 용의가 없다”고 공언한 것으로 미루어 평화조약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현재 미국은 한국(남한)을 소련 동부 시베리아와 캄차카만에 이르는 소련 극동전력 중추를 표적으로 하는 강력한 핵미사일ㆍ핵폭격기 기지로 삼고 있다.
평화체제의 수립 여부는 이 민족의 희망과 능력보다는 외국인 미합중국의 압도적 군사이익에 결부되어 있다 함이 옳을 것이다. 이 국면과 관련해서 7ㆍ4공동성명이 의미를 갖게 된다. 분단 26년만에 처음으로 민족의 평화적 통일의지를 전 세계에 선양했던 7ㆍ4공동성명의 정신과 합의가 모든 노력의 지침이 돼야 할 것이다.



남북공동성명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 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상호 비방금지…… 등 세부 합의 6개항 생략)




그러나 이 역사적 합의문서의 정신을 해석하는 데 우리 정부의 입장은 스스로 합의하고 서명한 공동성명의 문구와는 다르다는것이 드러났다. 성명 발표 다음날(7월 5일) 국무총리 김종필이 천명한 공식입장에서 문제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생략)
2. 반공법은 폐지하지 않는다. (북쪽에 관한 ‘사실’(事實)의 지적ㆍ언급도 ‘고무찬양’으로 벌하는 이 법과 상호간 비방을 금지한다는 서약과의 문제)
3. 이 같은 대화는 두 개의 한국을 시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시인한 행위이고, 문장형식도 그 근거 위에서 이루어진 사실과의 문제)
4. (생략)
5. 7ㆍ4공동성명은 북한에 의해 강점되어 우리의 실질 행정권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없도록 하는 방법을 대화로 결합하자는 것이다. 북한과의 공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자세와 입장은 공동성명 제3항을 부정하지 않는지? 공존을 하자는 합의가 아니고 무엇을 하자는 합의였는지?)
6. 7. (생략)
8. 북한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불가침조약은 군사조약이다. 군사작전 지휘권이 외국군 사령관에게장악되어 있는 우리가 그런 조약을 체결하고 서명할 권능이 있는가의 실제적ㆍ법적 문제부터 고려돼야 한다. 휴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대치하지 않고 또는 하려 하지 않으면서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제5항

이산가족의 재회문제를 비롯해서 사회활동의 온갖 분야에 걸쳐서 협력ㆍ교류하자는 제안이다. 그럼으로써“민족적 신뢰와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상호간에 사회적 개방을 하자”는 취지이다.
교류를 촉진하자는 분야와 활동은 전면적이다. 즉 인간ㆍ교역ㆍ교통ㆍ우편ㆍ통신ㆍ체육ㆍ학술ㆍ교육ㆍ문화ㆍ보도ㆍ보건ㆍ기술ㆍ환경보존 등 제분야다. 다만 이 같은 교류와 협조의 경우에 국제적으로 으레 포함시키는 ‘과학’분야가 언급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통상적으로는 ‘과학ㆍ기술’로 연결ㆍ일괄하는 것이 관례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과학은 ‘학술’에 포함됐다고도 할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분리ㆍ독립시키는 분야다. 그렇게 해석하면 과학지식의 교류와 협력만은 제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것이 핵무기 과학에서부터,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경쟁력의 토대가 되는 Know–how까지를 의미한다면 과학이 제외된 것이 단순한 착오나 우연이 아니라 용의주도한 고려의 결과로 보인다. 그런 지식이 현실적으로는 상품화되어 있는 자본주의제도에서 외국정부 또는 다국적기업과의 계약의무를 고려한 탓인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교류ㆍ협조의 대상분야는 독일기본조약이 열거한 분야와 정확히 일치한다. (제7조) 독일 조약에도 ‘과학’만은 빠져 있다. 군사과학의 이용과 상품화(자본화) 과학의 경제적 효용을 고려했음이 분명하다. 독일조약은 추가의정서 10개항과 더불어 일체를 이루고 있다. ‘추가의정서’10항 중 9개항이 바로 본조약 제7조 규정의 각분야 교류ㆍ협조에 관한 절차규정이다.
남과 북이 독일국민들처럼 전면적 정상관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평화조약의 체결이 선행돼야 한다. 앞의 제4항과 관련해서 검토했듯이, 평화조약으로 휴전협정을 대치하지 않는 한 남ㆍ북은 언제까지나 ‘전쟁 당사자’적 관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는 한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수식어로 온갖 분야의 교류와 협조의 필요성을 강조해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평화조약의 체결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면서 남북 간의 정상적 교류와 협력을 노래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니면 관계 정상화 자체를 바라지 않는 의도로 해석될지도 모른다.
전쟁 당사자 사이에 정식 평화(강화)조약의 체결 없이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는 다른 방식은 ‘공동선언’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선언은 평화조약을‘대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화조약 체결 의사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당면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과도적ㆍ잠정적 합의이다. 그 효과는 당연히 제한적이다.
제5항에서 열거한 각 분야의 교류ㆍ협력을 본격화하려면 그 각 분야와 문제의 활동을 규정하는 많은 조약ㆍ협정ㆍ의정서ㆍ각서…… 등의 외교적ㆍ법적 조치가 수반된다. 그것은 평화조약을 근거로 해서만 가능하다. 가까운 예로 태평양전쟁 종결 후 미국과 일본은 1952년 평화조약으로 정상관계를 수립(회복)했다. 중국과 일본은 72년 공동성명으로 양국관계의 기본입장에 합의하여 부분적 관계를 회복했으나 전면적 관계 정상화는 78년의 중ㆍ일 평화우호조약 체결로 비로소 실현되었다. 소련과 일본 사이에는 1956년의 공동선언으로 일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과 일본국 사이의 전쟁상태는 이 선언이 효력을 발생하는 날로써 종결되며, 양국 간의 평화와 우호ㆍ선린관계가 회복”(제1조)됐지만 평화조약의 미체결로 양국관계는 주요 문제에서 아직도 정상화되지않고 있다. 그중 두드러진 하나가 소위 일본의 ‘북방도서’귀속권분쟁이다. 소련은 ‘소ㆍ일 공동선언’제9조에서 소련은 문제의 4개 도서 가운데 2개(하보마이 군도와 시꼬당 섬)를 일본에 인도하는데 동의했지만 ‘현실적 인도는 평화조약이 체결된 뒤’로 규정ㆍ합의하고 있다. 일본이 소련과의 평화조약 체결을 지연ㆍ거부하는한 구 일본영토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이런 것이 ‘전쟁 당사자’사이의 제반관계를 정상화하는 기초로서의 평화조약의 효과다.
1985년 가을에 실행된 남북 간의 이산가족(제1차) 재회는 평화조약이나 공동선언 없이 이루어진 개별적ㆍ잠정적 시도다. 10여개 분야에서 그 같은 초보적 교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리고 더구나 그것이 제도화되어서 지속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평화조약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으면 제5항의 교류와 협력은 자동적으로 뒤따르는 것이다. 평화조약의 체결이 지연되거나 거부된다면 제5항의 그 모든 구체적 관계 정상화를 진심으로 원하는 남한의 의사가 오해될 수 있다. 이것이 남북관계협정안 정신과 전체 구조의 핵심이다.

제6항

남북은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다른 나라들과“체결한 모든 쌍무적 및 다자간 국제조약과 협정을 존중”한다.
이 조항의 진정한 문제는 통일국가가 실현된 뒤에 남북한이 각기 체결한 조약의 취급과 효력문제라기보다는, 현재 남ㆍ북이 각기 체결하고 있는 몇몇 개별적 조약들이 ‘통일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 역할을 할 것인가하는 평가다. 통일 후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 전의 문제인 것이다. 통일 후에 계승할 것인가 소멸시킬 것인가의 ‘사후처방’적 문제가 아니라, 남ㆍ북 각각이 체결하고 있는 그 같은 조약들 가운데서 통일노력을 위해서 긍정적 역할의 것이면 그 효력을 존속시키고, 부정적이거나 적극적으로 방해요소가 되는 것은 소멸시켜야 할 문제인 것이다. 학자들 중에는 바로 이 점을 착각하고 있거나 오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19) 되풀이 강조해야 할 일이지만 모든 조치와 고려는 ‘통일을 실현하는 데 그 존재의 공과’를 점검하는 데 있다.
독일방식은 제9조가 이에 해당한다. 쌍방은“과거 양국이 각기체결한 조약 또는 양국에 관계되는 양국간 및 다자간의 조약은 이(기본)조약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우리 정부의 제6항은 바로 이 제9조를 그대로 옮긴 것 같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규정이지만 그것이 적용되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서 정반대의 기능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독일의 두 정부는 민족의 국가적 분열을 합법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규정하고 합의했다. 우리 민족의 목표는 현존하는 분열ㆍ분단의 합법화와 영구화가 아니라 통일인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 또는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조약들은 서로가 수정하거나 폐기ㆍ소멸시키는 노력을 다해야 도리에 맞는다.
존속시켜서 무방한 조약은 각기 유엔기구와 체결 또는 가입한 국제사회에서의 보편적 조약ㆍ협정 등이다. 세계 국가들의 또는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담은 평화 지향적 협정도 무방할 것이다.
그와 반대되는 것은 주로 군사적 성격의 것이다. 남ㆍ북 각기의 경우는 그 중에서도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 서명, 1954 발효)과 ‘조소 상호원조조약’(1961 발효) 및 ‘조중 상호원조조약’(1961발효)이다.
한미조약은 휴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장차의 북쪽의 군사위협에서 남쪽을 방위하는 목적과, 정전을 반대하면서 군사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 정권의 군사행동을 방지하는 이중목적으로 체결된 것이다. 이 군사조약으로 미국군대는 남쪽의 영토와 영해에 주둔하는 권리를 장악하고 있다.20)
이 군사동맹조약은 대한민국 군대의 ‘작전지휘권’을 UN군(6ㆍ25당시) 총사령관(실질적으로 미국장성)에게 위탁한 ‘한국 육ㆍ해ㆍ공군 지휘권 이양에 관하여 이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 사이에 교환된 서한’(1950.7.25) 그리고 그 후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ㆍ미연합사령부’설치법에 의한 주한미군 사령관에의 동 지휘권 이양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휴전협정의 일방 당사자가 주한 미국군 사령관에 의해서 대표되고 있고, 대한민국 군대의 작전지휘권이 같은 미국군 사령관의 수중에 있으므로 휴전상태, 휴전협정의 수정ㆍ변경 또는 심지어 존속ㆍ폐기의 여부도 그 권한은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에게 있지않다. 따라서 제6항의 의미는 대한민국 정부의 의사보다 미국의 이해관계나 정책 및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고 해석된다. 한 국가의, 그것도 주권ㆍ자주ㆍ독립을 표방하는 국가의 독립과 영토적보전을 보장하는 최후의 물리적 힘인 군대의 작전권이 그 나라 헌법상 원수에 있지 않고 다른 나라의 현지 사령관에게 장악돼 있는것이 문제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군사적 문제가 알파이고 오메가인데 대한민국 국가원수에게 그 군사적 결정권이 없으므로 대외적으로는 군사관련의 조약문제에서그 권능에 의문이 제기될 수있다. 서독군대는 다른 서유럽 가맹국가들과 마찬가지로 NATO동맹기구에 편입돼 있지만 그것은 편성상의 차원에서다. 평상(평화)시에는 그 작전지휘권은 서독에 있고, 전시에는 NATO 최고사령관에게 속한다. 그리고 서독 각군의 장성ㆍ제독은 평상시에도 다른 동맹국들(미국 포함)의 혼성 육ㆍ해ㆍ공군, 또는 지역군의 사령관이 되고 있다. 이 점이 대한민국의 군사적 지위와 다르다.
‘조소 상호원조조약’과 ‘조중 상호원조조약’은 다같이 남쪽에서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로 문민정권이 전복되고 ‘반공을 국시로 하는’군사정권이 수립(1961.5.16)된 직후인 1961년 7월 6일과 7월 11일에 급히 체결되었다. 휴전성립 후 그때까지 북쪽과 중ㆍ소와의 사이에는 군사동맹적 조약이 없었다. 전쟁기간에 참전했던 중국군대는 휴전협정이 체결된 5년 후인 1958년(10월 26일)에 철수했다.

제7항

“각료급 전권대표를 임명하여 각기 서울과 평양에 상주연락대 표부를 설치한다.”
‘전권대표’는 국가를 정식 대표하는 기관이다. 정식 국교관계가수립되지 않은 과정에서 사실상 ‘대사’의 기능을 하고, 영연방의 경우처럼 연방기구 구성국가들 간에서 특수하게 그 같은 명칭을 사용한다. 그런 경우가 아니면서 굳이 이 명칭을 사용할 경우는 상대방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려 할 때다. 이 명칭은 독일조약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사실상의 2개 국가이지만 ‘특수한 관계’임을 함축한 명칭이다.

결론 및 과제

‘남북기본관계잠정협정’안 내용은 우리 정부의 구상으로 밝혀져 있는 ‘남북교차승인’과 ‘별개의 국가로서의 UN 동시가입’에관해서는 언급이 없다.21) 상대방이 그 두 방안을 민족분열의 합법화ㆍ국제화로 간주, 근본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삽입하지 않은것 같다. 이 두 정책은 남북의 별개 국가화다.
앞의 부분에서 상당히 상세한 분석과 비교를 통해서 검토한 결과, 우리 정부(대통령)의 이 제의는 그 정신ㆍ골격ㆍ구성ㆍ항목 내용ㆍ조문문구 표현…… 등에서 동서독기본관계조약을 원형으로 삼은 것임이 분명하다. 동서독의 조약은 독일민족의 국가적 통일의 이상과 목표가 역사적ㆍ현실적 조건으로 불가능하다는 상호 인식하에, 분단을 합법화ㆍ국제화ㆍ제도화한 조약이다. 따라서 그것은 ‘독일 통일방안’이 아니라 ‘독일 불통일방안’이다. 분단합법화방안이다.
대한민국의 종합적 ‘통일방안’으로 해석되는 ‘남북기본관계에 관한 잠정협정’(안)이 독일방식을 토대로 하거나 모방하려 할 때, 거기에는 적지 않은 모순이 수반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점을 수정하여 진정 ‘통일’을 지향하는 방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부 및 비정부적 토의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보인다.



1) 현재 서독측면적은248,630km2, 동독은108,177km22.35:1.양독비교, 서독 내독(內獨)관계성 자료, Facts and Figures.

2) 서독 6,170, 동독 1,680(1981.1, 현재, 위의 자료).

3) 이른바 독일방식의 발상과 그 전개과정의 상세한 내용은 리영희, 독일방식의 발상, 동서독과 남북한, 동아일보사, 1973, 21, 172~189쪽을 참조할 것.

4) 북한은 연방제와 관련된 통일방안에서 남북의 군사력을 각기 10만 이하로 축소할 것(1959.10.25, 1960.8.14, 1960.11.24)을 거듭 제의했고, 63129일 제안에서는 1만명 이하로의 감축을 제의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의 비무장화안으로 볼 수 있다.

5) 미국 국방성 아시아태평양지역 정책자문위원장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 씨도 19661216, 한반도 통일 문제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주변강대국 보장하의 중립화 통일안을 제시했다. 민족과 통일자료편, 사계절, 1985, 452쪽 참조.

6) 이기탁(李基鐸), 통일방식의주관적조건의비교, 앞의책, 491.

7) 중립화 통일에 관한 제의의 상세한 내용은특집70년대와 한국안보(자료편), 합동연감, 합동통신사, 1971, 87쪽참조.

8) Helga Haftendorn, Security and Detente: Conflicting Priorities in German Foreign Policy, Praeger Publisher, 1985, 12(서독 내독관계성 자료, Facts and Figures, p.23).

9) 한미 방위조약 본문 뒤에 미국 의회의 결의로 첨부하게 된 미합중국의 양해사항은 다음과 같다.
어떤 체약국도 이 조약의 제3조 아래서는 타방국(他方國)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조약의 어떤 규정도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 아래 합법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과 합중국에 의해 결정(승인)된 영역에 대한 무력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합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하여 협조를 공여할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진한 글씨필자).

10) 국회도서관입법조사국, 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단보고서(입법참고자료 제23), 96~97.

11) 노중선엮음, 민족과통일, 사계절, 1985, 571~572.

12) ‘ 국가의권리와의무에관한조약’(미주조약), 19341226일발효, 1국가의 요건’.

13) 김명기 교수도 이 문제에 관해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김 교수는……대한민국과 북한이 그간에 각각 체결한 조약의 효과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남한을 대한민국’,북한을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그대로 표시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라는관점에서있다. 김명기(金明基), 남북기본관계잠정협정사안주석, 통일논총52, 국토통일원, 1985, 182~183.

14)‘ 국가의권리와의무에관한조약’, 8불간섭’.

15)‘ 남북공동성명’,2.

16)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단 보고서(1954~1960), 입법참고자료 제23, 1954년도 보고서, 16~17.

17) 앞의 보고서, 같은 자료, 19.

18)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한국외교관계자료집(입법참고자료 제193), 177~178.

19) 김명기 교수는 이 항의 문제를 통일 후의 조약의 계승문제로 보고 있다. “ ‘병합형통일이냐……합병형통일이냐? 정치적 조약이냐 비정치적 조약이냐에 따라 통일한국에 계승되느냐, 소멸되느냐가 결정되게 된다.”위의 논문, 통일논총52, 국토통일원, 1985, 193.

20) 동조약 제3:“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21)민족과통일자료편, 사계절,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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