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미국군사동맹체제의 본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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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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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미국군사동맹체제의 본질」1)(1996년 『이론』, 신화)


 


 


쉼없이 학구적 정진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온 서울대학교 김진균 교수의 새 연구결과인 『군신과 현대사회 : 현대 군사화의 논리와 군수산업에 대한 연구』(문화과학사)의 서평을 『이론』지 편집자로부터 청탁받았지만, 이 글은 ‘서평’이라기보다는 그 책의 주제에 관련된 나의 개인적 ‘의견서’(意見書)다.
8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국내적으로 개방과 개혁, 국제정책으로는 미ㆍ소 군사대립과 세계 냉전의 종식, 핵 및 재래식 군사력의 일방적 감축을 발표하면서 세계 평화시대를 선언했을 때, 이 평화 지향적 사태 발전에 제일 당황하고 두려워한 것이 미국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정부와 공산당이 소련군 병력 50만 즉시 감축, 일부 전략 핵미사일의 해체, 동유럽 주둔 중거리 핵미사일의 본국 철수, 대서방 공격 전력의 주축인 상당수의 전폭기와 탱크의 물리적인 절단ㆍ해체 등의 결정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의 오랜 반공 동맹국가 정부들을 포함해 전 인류가 ‘악의 제국’(레이건)의 대담한 변신과 세계적 군사대결 체제의 종식을 열렬히 환영했다. 지구상의 모든 선의의 인간들은 반세기에 걸친 무거운 군비 부담에서 벗어나고 무엇보다도 제3차 (핵)전쟁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을 고르바초프에게(또는 신에게) 감사했다.
고르바초프는 마르크스ㆍ레닌ㆍ스탈린주의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전쟁 불가피론’을 배격하면서 양 체제의 공존, 협력, 공영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통한 인류평화의 실현을 호소했다. 이제 미ㆍ소 양 핵 초강대국 간의 ‘영원한 군사대결’의 시대는 물러가고, 인류의 염원인 평화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40억 인류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살았다”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때 “평화가 온다니 큰일났다!”고 공포에 질린 나라가 있었다. 미국이다.
고르바초프 선언 직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한 미국 하원의원의 글은 ‘평화를 두려워하는’ 미국 내 지배세력들의 당혹감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소리였다. 지금은 출신 주와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그 하원의원의 글은, 고르바초프의 일방적 군비감축과 군사대결 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바로 미국의 군수산업에 미칠 ‘부정적 효과’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군수산업과 군사시설이 경제적 기반인 것으로 보이는 그 주(州)의 하원의원은 소련의 평화노선이 미국의 군비증강 계획과 군수산업을 ‘위태롭게’하고, 대량실직사태를 초래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후퇴와 사회적 불안을 초래할 것이니 반드시 환영할 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때부터 『뉴욕 타임스』에는 소련의 평화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의 글들이 오랫동안 계속 실렸다. 새로운 평화의 조건에서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그들은 ‘leadership’이라는 용어를 썼지만)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큰 담론에서부터, 국방성 예산으로 유지되고 번영해온 산업ㆍ금융ㆍ정치 이권들의 ‘어두운 미래’에 관한 중간적 담론과, 심지어 ‘평화’와 ‘행복’이 동의어여야 할 AFL CIO를 비롯한 노동조합들의 간부들과 이론가들 사이에서 냉전 종식이 과연 환영할 일이냐 아니냐를 언쟁하는 낮은 차원의 담론이 그치질 않았다.
그것이 마치, 암흑에 길든 눈이 광명에 노출되는 것을 겁내는 생리적 반응과도 같아 보였다. 물론 평화의 가능성을 환영하는 진보적(liberal)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평화의 가능성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래서 다가올 변화 앞에서 뒷걸음치는 두려움 섞인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바로 군사력과 군수산업, 군수자본의 논리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실체를 현지에서 확인하는 것 같은 귀중한 체험이었다. 나는 당시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대학의 초빙으로 부교수 발령을 받고, ‘코리아 민족과 외세의 갈등 100년사’라는 3학점 강좌를 한 학기 동안 강의하고 있었다.
나 개인의 지적 행보에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사회(국가)의 군사적 성격에 대해서 초보적 인식을 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초에 라이트 밀스의 『파워 엘리트: 대중 사회의 이론』을 읽고부터다. 특히 그중 제8장, 9장, 10장에 걸친 군대ㆍ기업ㆍ정치 권력집단의 미국적 생태에 대한 인식이 그 시발점이다. 밀스의 이 책에 관해서는 『군신과 현대사회』의 여러 집필자들이 곳곳에서 언급하고 인용하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이권 집단 세력에 대한 그의 분석과 비판은 해방 후 무거운 ‘미국 숭배증’에 중독되어 있던 남한의 지식인에게는 적지 않은 해독제 역할을 해주었다. 고전적 마르크스 이론서들의 추상적 개념이나 정의를 읽으면서 파악하기 어려웠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태가 시야에 부각되었다. 『파워 엘리트』에 대해서 미래학자 다니엘 벨과 마르크스 이론가들 등 좌우로부터 비평이 있기는 했지만, 30여년 전의 나의 낮은 지적 인식으로는 그것으로도 미국에 대한 인식의 눈이 크게 뜨이는 하나의 계몽이었다.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군사적 성격에 대한 초보적 인식의 눈을 세계적 규모의 인식으로 넓혀준 것이 『먼슬리 리뷰』에서 1960년대 후반기에 나온 해리 매그도프의 『제국주의 시대』(The Age of Imperialism: The Economics of U.S Foreign Policy)다. 미국 ‘신제국주의’의 대외적 권력팽창을 미국의 경제ㆍ금융 체제의 의지 및 원리와의 일체적 기능으로 분석하고 서술한 『제국주의의 시대』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경고적인 고별연설로 유명해진 미국 ‘군산복합체’(‘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세력의 친군사적, 군사분쟁ㆍ전쟁 애호적 속성을 실증적으로 논증한 역작이었다. 한국에서 『군신과 현대사회』의 필자들이 대부분 젊은 세대의 학자인 탓인지, 미국 사회의 군사화를 주로 1990년대 이후의 문헌과 자료들에 근거해서 ‘현재’적 실상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매그도프의 이름과 『제국주의의 시대』가 책의 어느 장에서도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못내 미흡해 보이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군신과 현대사회』의 부제인 “현대 군사화의 논리와 군수산업에 관한 연구”의 제1차적 및 직접적 대상인 미국 군수산업과 ‘군산복합체’에 관한 본격적인 실증적 해부작업은 1970년 시드니 렌즈의 『군산복합체』(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가 세상에 나옴으로써 새 단계로 옮아갔다. 시드니 렌즈의 『군산복합체』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에 탄생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미국의 군산복합 권력에 관한 연구의 전사(前史)를 구획한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드니 렌즈의이역작은 『군신과 현대사회』의 각 장과 그 필자에 의해서 1990년대 이전의 소수의 참고문헌 가운데 하나로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그 문헌적 가치는 지금도 변함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식 ‘민주주의’ 세계구조 속에 편입된 수십 개 나라의 10여 억 인간들, 특히 미국의 반예속적 하위동맹 국가들의 미국 숭배적 엘리트들의 머리에 주입됐던, 미국 사회에 대한 허구적 인식을 미국인 학자 시드니 렌즈가 바로잡아준 지적ㆍ학문적 공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마르크스주의 계통의 이론 서적을 통한, ‘미국’에 대한 다분히 추상적인 파악이 렌즈의 논증으로 수정ㆍ보완됨으로써 구체적 인식으로 발전했다. 미국이라는 국가ㆍ사회ㆍ체제에 대한 이 인식의 고양은 ‘지적 희열’, 바로 그것이었다. 미국식 민주주의, 미국식 평화주의, 미국식 인권사상, 미국식 정의, 미국식 자유, 미국식 평등사상, 미국식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 미국식 약소민족ㆍ국가의 주권과 평등개념…… 등등, 1960년대 초반까지 나의 지적ㆍ사상적 수평을 아직도 희미하게 덮고 있던 ‘미국’에 관한 많은 허구적 인식이 말끔히 세척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 대한 무지를 깨친다는 것, 그것은 굉장한 기쁨이었다.
이때 읽은, 지금은 낡아버린 나의 책, 렌즈의 『군산복합체』(岩波版 日本譯本)에는 페이지마다 ‘미국’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인식의 비약을 말해주는 많은 밑줄과 많은 ‘!’ 표시와 많은 코멘트가 원문분량만큼이나 적혀 있다. 정말로 종교적 깨달음과 같은 지적 희열이었다.
미국 군산복합 권력을 대표하는 대기업가 출신이며 미국의 베트남전쟁 주도자인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다음과 같은 공식적 발언 옆에 그은 밑줄과 많은 ‘!’표가 지금도 당시의 나의 감동을 말해준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나 극동 및 유럽의 군대에게 미국 무기를 증여하거나 판매함으로써 그들을 펜타곤에 비끄러매었다.

미국은 6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1,500만 평방마일의 영토에 걸친 40개 이상의 국가에 대한 ‘보호권’을 장악한 것이다. 이 ‘보호령’들의 위성군대(satellite army)를 조종함으로써 미국 체제에 비우호적인 정부를 타도할 수 있다.

이들 ‘보호국’들을 세력권에 매어두기 위해서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점령’을 할 필요가 없다. 대외 원조, 차관 공여, 군사 및 무기 원조를 통해서, 그리고 ‘위성군대’를 조종함으로써 같은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이들 국가를 지배하에 두기 위해서 미국 군대를 파견한다면 미국인 병사 1명당 연간 4,500달러의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전초 군사기지망의 유지전략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500만 명의 동맹국 군대는 병사 1인당 연 540달러로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인 병사 1인분 비용으로 ‘보호국’의 ‘위성군대’ 병사 8명을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제2장, 「기원과 목적」, 43쪽).





이 얼마나 솔직한 자백인가! 그가 말하는 ‘극동’의 ‘보호령’ 중의 하나가 남한(한국)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미국 군수산업과 군사화한 미국에 대한 이상과 같은 한층 깊어진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와 『우상과 이성』(1977)이 씌어졌다.
베트남전쟁(1961~75)으로 더욱 노골화한 미국 군산복합체의 제국주의적 성격은 더욱 많은 연구가들에 의해서 더욱 깊고 넓게 규명되었다. 『파워 엘리트』(라이트 밀스), 『제국주의의 시대』(해리 매그도프), 『군산복합체』(시드니 렌즈)로 이어지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부터 베트남전쟁까지의 ‘현대 군사화의 논리와 군수산업’에 관한 연구가 이 주제와 분야의 학문적 연구의 제1세대라 할 수 있다.
제2세대 연구는 베트남전쟁 종결 이후 냉전체제의 격화를 거쳐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결단으로 군사대결 양극체제와 미ㆍ소의 제국주의 세계 지배체제(Pax Russo–Americana)가 해체되는 1980년대 말에 이르는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 기간에 아이젠하워가 주로 ‘미국 내의 새로운 문제’로 경고했던 군부ㆍ산업의 이권 복합체는 미국의 국경을 밀어내고 ‘세계의 새로운 문제’가 되었다. 이때까지는 미국인 연구가들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던 군산복합체와 국가의 군사화논리가 베트남전쟁 기간 중에 미국식 ‘정의’의 알맹이를 처음으로 보게 된, 세계 각국에서 급속히 늘어난 수많은 연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와해와 소련 제국의 붕괴, 그리고 독일 통일로 시작되는 1990년 이후의 이른바 ‘탈냉전’시대는 진보주의의 전 세계적 통합의 시대다. 이 ‘자본주의 단일시장화’의 세계는 그 속에 편입된 명목상의 사회주의 대국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다. 또한 NICs로 불리는 신생 공업국가들 속의 군수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그에 따르는 중소(中小)국가들의 ‘경제의 군사화’ 경향이 전 세계적 문제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이 ‘문제’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 군산복합 기업인 대우(大宇)는 이미 1989년에 세계의 대군수기업 100개 속에서 65위를 차지했다. 삼성(三星)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제 군산복합체의 성장ㆍ팽창과(경제의 군사화뿐만 아니라) 국가의 군사화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제기되었다.
김진균 교수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새로 개설한 교양과목 ‘현대사회론’ 강좌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의 공동연구 결과를 엮은 『군신과 현대사회: 현대 군사화의 논리와 군수산업에 관한 연구』는 그와 같은 현대의 세계적 문제와 한국의 우리들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학문적 도전이다. 이 주제와 분야의 연구사에서는 제3세대에 속하면서, 한국의 학계에서는 제1세대적 시도이자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 속의 논문들에 수록된 많은 참고문헌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의 한국 내의 연구는 군사학, 군사전략, 군사정책, 무기체제, 군사기술 등 순수 군사분야의 개별적 주제들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종래의 이들 주제별 연구와는 달리 『군신과 현대사회』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및 한국적 일반현상인 ‘경제의 군사화’에 주목한다. 자본주의를 축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군산복합체를 그 중심 범주로 설정”함으로써( 「머리말」, 5~7쪽) 문제의 근원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러나 김진균 교수를 비롯한 이 책의 각 논문 집필자들의 관심은, 끊임없이 전쟁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성장ㆍ팽창하는 “군산복합체의 밑바닥에서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작동시키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일반적 해명이 아니다. 그 주제와 그 수준의 연구라면, 앞에서 서술한 군수산업과 군산복합체 연구의 제1 및 제2세대 단계에서 해답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필자들의 이 집단적 연구 노력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제2세대적 연구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는 연구의 수단 또는 방법론에서, 1990년대에 들어와 핵심적 군사기술로 그 자리를 굳히고 있는 ‘군사 정보통신과 정보통신 체계’(C31 체계)가 경제ㆍ정치를 비롯해 민간활동의 전체 분야를 군사화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다(제3장 「지구화 정보화, 그리고 군사화의 동학: 군사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모색」; 제4장 「미국의 군사 정보통신 체계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C31 체계를 중심으로」; 제10장 「한국군의 정보화: 절반의 성공?」; 제11장 「현대 과학기술과 군사화의 문제」).
이 연구 노력의 다른 중요한 성과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많은 개별항목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한국 국민의 행복과 남ㆍ북 민족의 평화 및 통일 지향적 환경조성에 역기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한 ‘한국 경제의 군사화’ 경향을 논증하고 그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 책 내용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는 중심 주제인 미국 군산복합체 연구(제2, 3, 4, 5, 6장)와 보충적 연구인 일본과 중국의 ‘경제의 군사화’문제(제7, 8장)는 바로 한국 문제들의 분석에 적용하기 위한 사례연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진균 교수가 『군신과 현대사회』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가 현재와 같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국민국가들 사이의 이해 갈등이 현재와 같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면, 남ㆍ북한 사이의 접촉과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더라도 전력 증강사업은 조금도 축소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평화ㆍ군축을 실현하고 남ㆍ북한의 공존과 번영을 바란다면, 군산복합체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적 부분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7쪽).
세계 인류의 전쟁 거부와 평화를 희구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지금 세계의 지역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의 90퍼센트가 미국 무기라는 사실 뒤에 우리는 미국 정책을 움직이는 막강한 군산복합체의 존재를 재확인한다(제5장 「미국 군수산업의 형성, 전개 그리고 전환」). 중동ㆍ아랍지역,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보호국’들과 ‘위성군대’들(맥나마라) 사이의 갈등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전쟁화하는 실례를 우리는 현대사에서 수없이 목격했다.




‘보호국’ 내부 혹은 보호국들 간의 갈등 → 미국에 더 충성스러운 ‘보호국’ A에 미국 군사무기의 공급 → 갈등의 전쟁화 → ‘보호국’ B의 미국 무기 요청 → 전쟁의 확대ㆍ격화 → 쌍방의 파괴ㆍ피해 증대 → ‘보호국’ A의 더욱 많은 미국 무기 요청 → ‘보호국’ B의 더욱 많은 미국 무기 요청 → ‘보호국’ A와 B의 동시적ㆍ병행적ㆍ경쟁적 미국 무기시장화 심화 → ‘보호국’ A, ‘보호국’ B…… ‘보호국’ N의 미국 예속화 → 무기ㆍ군수경기의 활성화 → 군산복합 세력의 국가 정책결정권 강화 → 미국 군산복합 권력의 세계지배…….





이 과정과 논리적 구조로 미국의 ‘보호국’ 지배체제는 강화되어 있다. 이것이 미국이 제창하는 이른바 ‘신세계질서’다.
미국 정부예산의 재화ㆍ서비스 구입비 중 76.7퍼센트가 군사관계비다(1947~89). 미국 정부예산의 재화ㆍ서비스 항목 지출 1달러 중 76센트, 즉 4분의 3 이상이 군사관계비다!(154쪽) 미국이 어떤 국가인가를 깨우쳐준다.
미국의 경제와 정부의 이 같은 군사ㆍ전쟁 지향적 성격에 관한 많은 자료의 인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 논문의 집필자들은 아직도 미국 정부의 군사적 경향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한 예로, 미국의 군사예산이 ‘탈냉전’으로 지속적으로 감축될 것이라는 일반적 전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1995년 5월에 발표된 1996 회계연도 예산안에 따르면 미국의 군사비는 1995 회계연도에는 2,526억 달러, 1996 회계연도에는 2,460억 달러, 1997 회계연도에는 2,426억 달러로 줄어들 전망이다”(6장, 「미국 군수산업의 구조전환과 사회문제들」, 153쪽). 그리고 그에 따라서 “……1997년까지 200만 명 이상의 군수산업 실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을 토대로 분석을 진행했다(157쪽).
군산복합 이권집단이 지배하는 미국 정부가 이런 대량의 군수산업 고용 축소를 낳을 것이 자명한 군사예산의 지속적 감축을 그대로 집행할 까닭이 없다. 그 상황에서는 미국 정당정치의 권력이동이 반드시 일어난다. 그 경향을 저지하고 다시 군사예산의 증대와 군수산업 고용의 증대책을 표방하는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게 된다. 미국 정치의 이 ‘법칙’은 1995년도에도 관찰되었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1996.5.8), 미국 의회가 행정부가 요청한 국방예산 2,541억 달러에 129억 달러를 더 얹어서 2,670억 달러로 1997년도 국방예산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들어온다(와싱톤 5월 5일발 로이터연합). 공화당 의회는 군수산업 고용의 감축을 막기 위해서 더 많은 무기와 군사 장비의 정부 구입을 결정한 것이다(그 무기와 장비의 필요 여부의 판단은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 논문의 연구자가 ‘냉전 이후’의 세계적 상식을 바탕으로 받아들인 미국 군사예산의 지속적 감축 예상은 빗나갔다. 1997년 군사비는 1995년의 2,526억 달러보다도 훨씬 많은 2,670억 달러로 역상승해, 4년 전 1993년 군사비 2,730억 달러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1993년에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민주당 의회가 구상했던 6년간의 군사비 감축 계획(제5장,〈표 7: 클린턴의 국방예산계획: 1993~98 회계연도〉, 143쪽)은 ‘군산복합체’적 세력인 공화당의 득세로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민주당이라고 공화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현대사에서 미국이 시작했거나 개입한 전쟁은 거의 민주당 정부 시기였다. 공화당과의 대통령 선거ㆍ의회 선거 등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더 많은 군사행동과 군사비(예산) 지출 정책ㆍ공약을 내세워야 한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군사적 성격은 세계의 시대정신과 보편적 상식을 거부한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로 지구상의 4분의 3에 대한 패권을 장악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이 ‘보편적 상식의 거부’는 ‘세계의 상식’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가 거듭 입증한 이 ‘군사주의적 미국’의 특성은, 주로 문서적 자료와 통계를 미국 연구의 주도구로 삼는 정태적 분석방법에 대한 적절한 경고가 되어준다.
미국의 국방(군사)예산이 냉전의 종식과 공산주의라는 군사적 적대자의 소멸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감축될 것이라는 전제와 가정을 토대로 미국 ‘군산복합체’적 경제 및 정책을 연도별 군사예산의 미미한 오르내림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미국 군사비가 ‘탈냉전’ 후 약간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그나마 앞에서 본 바와 같이 5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 가지만), 그 감소는 가상적 제3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목표로 광적인 ‘우주전쟁’을 준비하던 1980년대의 레이건 집권시기 군사예산에 비해서 감소했다는 것일 뿐, 미국 경제ㆍ사회의 군사화라는 관점에서는 아무런 차이나 변화가 없다.
1995년 8월 현재, 미국은 ‘우주전쟁’을 준비해야 할 아무런 심각한 군사적 도전이 없는데도, 군사비로 매주 50억 달러, 매일 7억 달러, 매분 50만 달러, 매초 8,000달러를 쓰고 있다. 미국의 군사예산은 지구상의 미국 이외의 다른 모든 국가들의 군사예산의 총합계에 가깝다. 미국 군부ㆍ정치가ㆍ군산복합 이권 집단들이 미국에 대한 군사 위협적 존재라고 규정하면서, 군사적 수단으로 “최단시일 내에 처치”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1992, 93, 94, 95년 국방부장관의 대의회 보고서) 6개 대상 국가, 즉 이란ㆍ이라크ㆍ시리아ㆍ리비아ㆍ쿠바ㆍ북한의 군사비를 합친 것의 17배가 넘는다(The Defense Monitor, August 1995).
미국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 자신의 문제를 검토한 것이 『군신과 현대사회』의 제9장, 10장, 11장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9장 「1990년대 한국 군수산업의 동향과 ‘경제의 군사화 문제’」는 시기적절한 경고적 내용이다. 남한(한국)과 미국의 무기ㆍ군장비 거래 관계부분에서 다음 지적은 반드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핵심을 적시한 것이다.




……미국의 대외 군사판매 차관은…… 미국 내의 낡은 군사설비를 처분하는 방법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미국 내 초국적 군수기업은 낡은 설비를 새로운 설비로 교체할 수 있었고, 한편 낡은 시설이 이전된 국가를 미국의 무기체계와 기술체계로 편입ㆍ종속시킴으로써 이를 발판으로 미국의 초국적 군수기업은 해외에서 무기시장을 더욱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의 (무기와) 시설을 이전받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국 내 무기생산이 늘어나면서,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구매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증가하게 된다(296쪽).





이 일반적 사실의 한국적 현실이 제9, 10장에서 주로 ‘율곡계획’(한국군 군비증강 계획)의 분석으로 입증되고, 그 결론으로서 심각한 위험성이 적절히 지적되었다. 3대에 걸친 군부독재 정권 30년 기간에 한국의 대미 예속적 구조는 미국의 세계 어느 다른 하위 동맹국보다도 완벽하게 굳어졌다.
김영삼 대통령(문민) 정부의 한국군 내부 부패에 대한 사정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사실들 중에서도 ‘율곡군비증강계획’의 다음과 같은 무기ㆍ장비 구입 계획이 그 좋은 실례다.

●[표]


미국과 한국 군부가 ‘북한위협론’을 앞세워, 1990년대에는 연간 약 40억 달러에서 신규 무기ㆍ장비 구입 예산은 연간예산(1993년 약 120억 달러)의 3분의 1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북한 군사예산 총액과 맞먹거나 그 2배에 가깝다. 북한 군사비의 평가는 평가의 주체에 따라 다르다. 한국 정부는 1993년 처음 공식적으로 남ㆍ북한 군사비가 2.3 대 1이라고 시인했다. 이 대비는 그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가 통과시킨 예산안 중 군사비가 11.6퍼센트인 21억 6,000만 달러(북한 단위 46억 9,210만 원)인 것을 한국 정보ㆍ국방ㆍ통일부처가 ‘실질 군사비’ 55억 9,000만 달러로 상향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반공ㆍ반북한적 우익세력의 대표적 연구 두뇌기간인 헤리티지 재단연구소(The Heritage Foundation)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통과 군사비 21억 6,000만 달러보다 불과 몇천만 달러 많은 약 22억 달러로 평가했다( 『동아일보』, 1993.8.27). 한국 정부의 과대평가와 헤리티지 재단연구소의 중간을 취한다 하더라도 39억 달러 정도이며, 이것은 남한 국방비의 3분의 1이다. 북한 공식 발표액과 대동소이한 헤리티지 재단연구소의 22억 달러를 취한다면, 남한 군사비는 북한 군사비의 5배가 넘는다. 남ㆍ북한의 군사력을 포함한 종합적 전쟁수행 능력에서 한국 측이 우세하다는 점에 관해서는, 나는 이미 1988년에 발표한 연구논문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 연구: 한반도의 평화 토대 구축을 위한 모색」으로 결론내린 바 있다.
남ㆍ북한의 15 대 1 내지 20 대 1의 경제력ㆍ물질적 격차를 토대로 해 3 대 1 내지 5 대 1의 수준까지 지속적으로 벌어진 남ㆍ북한 군사비의 격차는, 남ㆍ북한 사이의 진정한 평화적 관계 수립과 순조로운 통일의 실현에도 큰 역기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바로 군사적 우열 관계를 극단까지 몰고 가서 북한의 물리적 굴복을 강요하려는 것이 ‘율곡’군비증강 계획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이 위험성은 여기서 지적할 필요조차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이면서도 우리나라 국민이 일반적으로 막연하게 또는 심지어 정반대로 인식하고 있는 이 군사화의 위험성을 『군신과 현대사회』는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깨우쳐준다.



1) 이 글은 이론(1996 여름가을 합본호)에 실린, 김진균 교수의 군신과 현대사회: 현대 군사화의 논리와 군수산업에 대한 연구(문화과학사, 1996)에 대한 서평이다. 여기서는 제목을 새로 달고 내용 중의 일부를 수정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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