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일본교과서 논쟁과 우리의 자세]

한일관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1 19:34
조회
3191

6-6. 「일본교과서 논쟁과 우리의 자세(1986년, 역설)


 


 


지금 한ㆍ일 간에 조성된 이른바 일본정부 ‘국정교과서 역사왜곡’을 둘러싼 분쟁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그 원인이 다양하고 그 뿌리는 훨씬 깊다. 지난 몇 달 동안에 나타난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 국민의 반응은 진정한 핵심을 빗나간 느낌이다. 결론을 앞세우자면 일본의 집권세력이 저들의 과거의 제국주의 침략행위를 미화하려는 원인ㆍ동기ㆍ목적은 우리 국가 내부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은 결과만을 보고 원인을 캐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 대한 규탄과 함께 한국이라는 자기 나라에 대한 준엄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 학생들은 옛사람의 이야기라면 경원하겠지만 맹자의 말에 이런 것이 있다. ‘부인필자모 연후인모지’(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 무릇남이나를업신여길때에는나자신이떳떳치못한일을 했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그 말은 다음의 사실을 경고하기 위한 서두이다. ‘가필자훼 연후인훼지 국필자벌 연후인벌지’(家必自毁然後人毁之國必自伐然後人伐之), 즉“한 가문은 반드시 스스로 피폐해진 뒤에야 남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고, 한 국가가 남에 의해서 쓰러지는 것은 이미 그 나라가 쓰러질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이 맹자의 말은 해방 이후 오늘까지의 한일관계의 중요한 일면을 직시하는 것 같다. 이제 차근차근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보자.
일본의 보수적 우익세력 지도자들은 해방 후 37년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멸적 언사를 거듭해왔고, 이번 역사왜곡문제에서도 그랬다. 그 전형적 표현은 ‘일본 식민지 통치와 교육이 대한민국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라는 말로 대표된다. 우리는 이것을 저들의 ‘망언’이라고 규탄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저들의 이 같은 ‘망언’의 내용을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감상적 반응을 잠시 억제하고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보자.
해방 후 이 나라의 정치ㆍ행정ㆍ군대ㆍ경찰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종교ㆍ교육ㆍ법조…… 등 온갖 분야에서 그 상층을 구성해온 인물들의 일제시의 경력을 살펴보자. 식민정치의 분야마다에서 그들을 대행하고 봉사(적극적ㆍ자발적으로) 방조했던 인물들이 해방된 이 나라의 같은 분야에서 그대로 그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주도적 개인과 세력이었던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한 규명은 중요하다. 그것은 이 국가의 정통성ㆍ특성ㆍ국가적 철학과 밀접히 관련된 역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무릇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민족은 신생국가를 건설하는 마당에서 식민통치의 하수인이었거나 방조자였던 ‘인적 요소’는 일단 말끔히 청소했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국가는 과거의 식민통치자와 대등한 민족적ㆍ국가적 대접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와 같은 경우의 다른 민족들은 그렇게 했다.
‘민족정기’의 영원한 확립을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했던가? 역사적 사실에 물어보자. 매국노와 친일분자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기 위해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과 그 집행권력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그들 세력에 의해서 한 사람의 친일파도 처단하지 못하고 거꾸로 처단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35년간,그들과 그들의 부추김을 받은 개인과 세력이 이 나라의 핵심적이고 주도적인 존재는 아니었는지?
과거의 식민통치자들이 그들의 식민통치 교육이 대한민국 국가에 유익했다는 우월감과 업신여김은 이 사실(事實, 史實)을 두고하는 말인지 모른다.측량기술을 가르쳤다거나 ‘정조법’(正條法) 모내기를 가르쳤다는 따위의 저차원적인 뜻으로 하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맹자의 글은 현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과서 분쟁의 흥분은 즉흥적인 독립기념관 건립운동을 낳았다. 그 추진운동 주변의 이름 속에 일본인들이 ‘가르쳤다’는 과거의 친일ㆍ반민족적 행적을 가진 이들의 이름이 적지 않게 보인다는 비난이 있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째서 우리는 다른 신생국가들이 다 갖고 있는 독립(또는 혁명)기념비 하나 37년 동안이나 세우지 못했던가. 그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독립기념관이란 남의 사건에 대한 반응의 흥분 속에서 즉흥적으로 발상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본 교과서 문제가 없었다면 독립기념관의 발상도 없었을 것이라면 그 나라와 민족은 문제가 크다. 바로 이 같은 문제점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 독립기념관은 한낱 ‘전시장’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일본의 침략사를 미화하려는 일본 내 주역들의 성분에 관해서도 우리는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들은 패전자의 제국주의ㆍ국수주의ㆍ군국주의ㆍ식민정책의 책임자들로 지금은 극우ㆍ반공ㆍ천황 숭배자들이다. 그들은 왕년의 ‘대동아공영권’정책의 주역들이며 바로 이또 히로부미의 후예들이다. 이번 역사왜곡 문제를 통해서 그 주역으로 밝혀진 이들 이 다름 아닌 이른바 ‘친한파’들임이 밝혀졌다.이들이 일본 내에서 대한민국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ㆍ세계관ㆍ정책운동을 대표한다.
우리 정부와 일본정부의 관계 전반이 국교정상화 이후 줄곧 이들을 중계자로 진행되어왔다는 데 그간의 비정상(非正常)의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하필이면 고르고 골라서 이런 전력(前歷)의 개인과 세력이 대한민국을 좋아하는가? 일본 교과서 분쟁은 이 점에서 우리 국가ㆍ사회의 체질검증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계기가 된다.
침략자 미화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심각한 대립을 낳고 있다고 들린다. 극우ㆍ반공ㆍ국가 지상주의자들이 추진하고, 혁신ㆍ좌익 및 건전한 지식인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 국민과 사회의 무비판적 통념인 이데올로기적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방식 및 가치관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교과서 개악문제가 지니는 또 하나의 촛점이다.
이 사실로서 우리는 다음의 인식을 하게 된다. 즉 침략행위 합리화 운동은 일본국민 전체의 책임이기보다는 주로 그런 성분의 개인과 세력의 책임이라는 사실. 우리의 대응 형태에서 이 인식은 여태까지 결여돼 있었다.
일본의 어떤 지도자 개인이나 집권정당 또는 정부의 책임인 것을 일본국민 전체와 단선적으로 연결ㆍ동일시하는 바탕 위에서의 반응은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이 미숙하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이 정치감각의 훈련은 역으로도 타당하다. 우리나라 안의 현상이나 사건 또는 행위에 대해 외부의 비판이 있을 경우를 상정하면된다. 그것이 어느 지도자 개인 또는 정당, 어떤 특정집단 또는 세력, 혹은 정부의 실책이나 책임일 경우가 있다. 온 국민이 그 책임자나 집단과 스스로를 무조건 일체화하여 정당한 외부비판을 무턱대고 ‘반한(反韓)발언’이니 ‘반한행위’니 하는 반응으로 ‘국가’ 나 ‘민족’에 대한 비판과 구분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센티멘털 내셔널리즘이거나 맹목적 애국주의로 전락하기 쉽다. 일본국민 사회 내부에서 역사왜곡 문제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의 정치의식ㆍ정치감각과 우리의 그것을 겸허하게 비교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사회 ‘시민’의 사물에 대한 사고ㆍ판단ㆍ반응은 센티멘트(감정)보다 합리성에 바탕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관점에서도 역사왜곡은 문제를 제기한다. 과거의 침략행위를 합리화하려는 자들의 노력은 일본 내 보수세력의 일본 군사대국화(당장 군국주의화는 아니더라도)를 위한 기초작업이다. 그들은 일본의 과거 침략주의ㆍ제국주의의 상징인 ‘일본 황국군대’의 치부를 페인트칠함으로써 그들이 추진하는 일본 군사대국화 및 그에 앞서는 ‘군비증강’정책에 대한 일본의 젊은 전후세대의 거부반응을 무마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나라의 군국주의화에 반대하는 청소년에 대한 원대한 세뇌공작의 중요한 일환으로 구상된 것이다.
평화산업으로 그 발전ㆍ확대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일본 경제ㆍ금융권력은 이윤 높은 군수산업으로 전환을 추진한 지 오래다. 이 세력의 이익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있음은 당연한 논리다. 보수적 정치ㆍ군사ㆍ경제세력의 합동으로 진행되는 것이 역사왜곡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와 관련될 때, 우리는 이율배반적 입장에 서게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그 산업구조가 군수산업화될 필요성과 미국의 끈질긴 압력의 복합적 결과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같은 강력한 일본 군사력을 대한민국 안보의 필수조건으로 여기는 경향이다. 일본의 집권세력 자민당과 보수세력은 바로 그 명분을 앞세워 역사사실 왜곡을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는 뭐라고 답변해야 할 것인가? 교과서 문제는 이런 현실적ㆍ논리적 구조와 맥락에서 우리 남ㆍ북한 민족 내부문제에 대한 우리의 철학과 정책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감정적 반응의 하나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니 ‘60억 달러 거부운동’이 나옴을 본다. 사실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는 국민 내부에 그 같은 정당한 행동화가 일어나는 것을 극력 무마하려는 인상을 준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 교과서 왜곡작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국가들이 청소년의 의식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향도하기 위한 협동적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건 정부는 특히 그것을 세계적 규모의 반공문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인가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바로 교과서 분쟁이 폭발한 직후, 서울대학교 청장을 역임한 고위인사의 발언이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이 인사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바로 며칠 전에 한일 교과서 협의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실토했다. 우리 정부의 태도가 어째서 미온적인지, 이 한일 교과서 협의작업과는 무관한 일인지도 밝혀져야 할 문제이겠다.
우리나라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아무런 해명도 없이 ‘유관순 누나’가 언제부터인지 사라졌다거나 ‘임진왜란’의 오랜 역사용어가 ‘임진란’또는 ‘임진동란’인가로 바뀌고 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또 중요한 현상이 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한 민족적 분노가 ‘독립기념관’건립운동이라는 매스컴의 선풍 속에 어느덧 그 초점이 바꿔치기된 듯한 최근의 현실이다. 왜 이렇게 흥분에서 흥분으로 치달을까? 교과서 분쟁은 우리 모두가 맑은 정신으로 국민적 자기비판을 해야 할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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