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핵무기 신앙에서의 해방」
8-1. 「핵무기 신앙에서의 해방」(1988년, 반핵)
핵폭발의 참혹성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77년 11월 11일 새벽에 전라북도 이리(裡里, 솜리)시에서 일어난 대폭발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다 나들이길에 이리 시내를 지나게 되면 나는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핵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리시와 핵전쟁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까닭은 내가 한반도의 핵전쟁 가능성의 공포나 심리적 알레르기 상태에서 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자동차로 지나면서 보는 이리시는 11년 전 당시나 그 이전에 내가 보았던 누추하고 질퍽한 시골의 소도시가 아니다. 제법 높은 빌딩도 몇 개는 서 있고, 주택들도 기와집으로 채비되고, 가게도 반듯하고, 도로도 포장되어서 적어도 지나가는 길손의 눈에는 나무랄 데 없는 지방 도시로 발전ㆍ변모되어 있다. 이리공단이 들어서서 얼마쯤은 돈기운도 돌게 된 탓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핵무기와 핵전쟁의 이런저런 일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자동차는 이리 시내를 벗어나 호남평야의 지평선까지 펼쳐진 푸르름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 인간들도 행복해 보이고, 자연도 천지의 축복 속에서 있어야 할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을 누리고 있다. 평화의 모습이다. 당연한 일이다.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 잠시 동만이나마 상념에 사로잡혔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세상이 언제나 이렇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는 나들이의 일로 이리시는 다시 나의 머리에서 사라져버린다.
내가 핵무기와 핵전쟁과 현대의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이리시가 겪은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이다.
1977년 11월 11일 새벽, 이리 철도역에는 그 전날 저녁에 도착한 한 화물열차가 철로변경 지시를 기다리면서 멈춰 있었다. 열차에는 ‘한국화약’공장에서 생산된 60톤의 공업용 화약(TNT)이 3량의 무개화차에 나누어 적재되어 있었다.
3량의 화차에는 그 화물관리의 목적으로 회사가 출장 보낸 화약취급 요원이 각 차량에 한 사람씩,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11월도 중순이면 춥다. 더구나 무개차는 그렇다. 밤을 지샌 세 요원은 아직 날이 새지 않은 어둠 속에 다시 모여 커피를 끓여 몸을 녹이려는 생각에서 먼저 촛불을 켜놓고 물을 얻으려고 화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플랫폼에서 멀리 떨어진 후미진 곳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막 물을 받으려는 순간, 꽝! 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더니, 세 사람의 안막에는 천지간에 불그레한, 이상한, 빛도 아닌 어둠도 아닌 것이 꽉 차 들어왔다.
이것이 빈사상태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로 발견된 한 요원의 회상의 전부다. 그 요원이 들은 꽝! 소리와 함께 철도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이리시 건물의 70퍼센트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사상자들은 미처 확인할 수도 없을 만큼 참혹했다. 이것이 11년 전에 일어난 유명한 ‘이리역 폭발사건’이다. 공업용 화약 60톤이 촛불에서 나는 감지할까말까 한 열기에 감응하는 순간 이리시의 70퍼센트가 하늘과 땅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그 참상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이리시의 하늘은 그전이나 다름없이 푸르기도 하고 구름이 비를 뿌리기도 한다.땅에는 다시 인간이 사는 집들이 들어서고, 풀이 돋아나고, 나비도 벌도 날아다니고 있다.
만약 이것이 핵무기의 투하나 폭발이었다면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핵폭탄의 기초원료인 우라늄 235는 1킬로그램의 폭발력이 TNT 2만 톤과 맞먹는다. 다시 말해서 폭발력의 크기로 같은 1킬로그램 중량의 우라늄 235는 TNT 2,000만 킬로그램의 폭발력과 맞먹는다. 그러니까 이리시의 70퍼센트를 혼적도 없이 날려버린 60톤=6만 킬로그램의 TNT를 핵폭탄으로 치면 3그램짜리가 된다. 반드시 산술적 계산대로는 아니지만 간단한 이해를 위해서 설명하자면 이리시의 그 괴멸적인 파괴를 위해 TNT는 60톤이 필요했는데, 핵폭탄이라면 3그램짜리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인류 최초의 그 초보적인 원자탄이 우라늄 17킬로그램짜리였으니까, 이리시 파괴의 몇백, 몇천, 몇만 배였겠는가 하는 소름끼치는 해답이 나온다. 우리말에 ‘무섭다’는 말이 있은 지 몇천 년이 됐지만 정말로 무서운 일을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
그러나 이리시의 TNT 폭발이 핵폭탄 폭발이었다고 가상할 경우 몇 가지 중요한 유사성과 차이점을 생각해야 한다.
3그램짜리의 작은 핵폭탄이지만 그것이 핵폭탄이었다면 이리시에서는 이 후로도 정상적인 생활은 하기 힘들 것이다. 무서운 방사선 때문에 생존환경은 완전히 오염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폭발로 발생한 방사성 낙진이 이리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지역을 덮었으리라고 본다면 전주ㆍ군산ㆍ정읍ㆍ강경 일대에 미칠 인간과 동물의 생존에 대한 엄청난 위협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그나마 폭발한 지 몇십 년 뒤의 일을 걱정하는 한가한 일이다. 사실은 폭발의 순간에 발생했을 섭씨 100만 도의 열을 생각해야 한다. TNT가 만들어내는 열은 고작 5,000도라고 한다. 이리역에 그 순간에 발생한 열의 수백 배의 열이 생겼다고 가상해보자. 무엇이 남아났겠는가?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광대한 지역에서 27만 명을 소개시켰거나 이주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적어도 30년 동안은 다시는 돌아와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폭발당시 체르노빌에 살았고, 이주 조치가 취해지기까지의 몇 주일 동안 그곳에 살던 주민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자병으로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앞으로 얼마나 원자병에 시달려야 할 것인가? 그뿐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의 상당수가 기형아나 조사자(早死者)라고 한다면, 그들은 그 인생을 얼마나 저주하면서 생존해야 할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조리 안락사의 참혹한 자비심을 베풀어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후일담이 4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것을 말해준다.
이리시를 중심으로 전라북도 일대에서 지금 태어나는 인생들이 그런 기형아들이라고 상상해보자! 어떻게 그것을 보면서,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건강한 정신과 몸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의 평온을 누릴 수가 있겠는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이리시의 TNT 폭발과 핵무기 폭발 사이에는 그 같은 ‘차이점’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몇 가지 ‘유사성’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인간의 과오, 실수가 그것이다. 이리역 폭발은 전문적ㆍ직업적 훈련을 받은 ‘화약물 취급자’가 그 옆에서 촛불을 켠 데서 비롯했다. 우리는 말할지 모른다.
“바보 같은 놈들! 머리가 돌지 않았으면 어떻게 TNT 부대가 쌓여 있는 사이에서 촛불을 켜는가? 훈련을 받은 전문요원이 아닌가!”
그렇다 그들은 훈련을 받고, 정부가 발급한 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것을 알면 우리는 또 분노할 것이다.
“회사와 간부들은 무엇을 했나? 취급자에 대한 감독이 그렇게도 허술할 수가 있을까? 어째서 유개차에 싣지 않았나? 유개차에 실었으면 덜 추웠을 것이고, 촛불을 켜거나 몸을 녹이려고 물을 끊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어쩐지 그 폭발사건의 모든 앞뒤 일이 정상적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일 같기만 해 보인다. 일이 일어난 뒤에 알고 보면 모든 일이 한결같이 정상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반적 생각으로는 무슨 일보다도 가장 정상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가장 정상적일 것으로 믿고 있는 가공할 핵무기의 주변에서도 사실은 이리역 TNT 주변에서 벌어진 것과 다름없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민족의식의 실상
설마한들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핵국가의 정치가ㆍ군사령관ㆍ과학기술자ㆍ현장 취급자들이 그런 어리석은 실수야 하지 않겠지?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염원이고, 희망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처음부터 소련 정부나 과학자ㆍ기술자들이 그렇게 되도록 설계하고 운영했을 까닭이 없다. 소련은 대륙간 탄도탄 시험발사에서 그것이 궤도를 빗나가는 바람에 원격조종으로 대기권에서 폭발시켜버린 일이 있다. 궤도를 빗나가도록 설계하고, 제조하고, 발사한 대륙간 탄도탄은 아니었다. 1970년대 말경에 소련의 인공위성에 장치된 핵연료 추진장치가 고장을 일으켜, 우주궤도에서 지구상으로 떨어진 사고를 한국 사람들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세상은 온통 그 핵물질이 자기 나라 땅에 떨어질까봐서 핏기를 잃고 공포에 질렸다. 공중에서 그물로 거두는 방법을 토의하기도 하고, 바다로 유도해내는 방법을 마련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서 예상되는 지역에 비상령을 내리고 소개준비를 서두르는 정부(캐나다)도 있었다. 지구상이 발칵뒤집혔다. 핵폭탄에 비하면 사실은 보잘것없는 크기의 것인데도 그랬다. (그러나 이리시 폭발이 고작 3그램의 우라늄 폭발력과 같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세상이 뒤집힐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공위성 핵 발전기의 낙하를 지구상의 전 인류가 핏기가신 얼굴로 걱정하고 있을 때,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것이 머리 위로 내려올 것을 기대하면서 태연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이 지구상 한 나라에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용감한 국민들이었다.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놈의 것이 한국 땅에 떨어지면 재미나겠다”는 생각들이었다.
거짓말이거나 지어낸 말이 아니다. 그렇게 전 인류가 새파랗게 질려 있을 때, 우리나라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 그것도 한국에서 판매부수 1, 2등을 다툰다는 대신문의 사회면 만화는 이렇게 그렸던 것이다.
첫째 칸에서는 그 핵 위성이 사고를 일으켜 궤도를 이탈한다.
둘째 칸에서는 그것이 지구에 가까워온다.
셋째 칸에서는 전 인류가 우왕좌왕 정신을 잃고, 최후의 날을 맞은 기분으로 야단법석이다.
넷째 칸에서는 한 대한민국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을 향해서 빌고 있다. 빌면서 하는 말인즉 “제발 평양에 떨어져주소서!”
이런 만화를 그린 만화가의 ‘반공사상’에는 다만 머리가 수그러질 뿐이다.
한국인들은 소련이 무슨 큰 실수를 하거나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기뻐하는 한심스러운 ‘이데올로기성 정신질환’이 있다. 핵으로 인한 불행이 소련에서만 발생할 까닭이 없다. 같은 과학이론, 같은 무기체계, 같은 군사전략, 같은 지휘계통과 무기관리수칙(SOP)에 따라 핵무기를 다루는 미국도 마찬가지다.(이 말을 들으면 갑자기 섭섭해하는 광신적 반공주의자나 맹목적 미국 숭배자가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도 스리마일 핵발전소에서 핵원료 누출사고가 일어나 주변 생명에 큰 피해를 입혀 발전소가 폐기되었다. 작년 말에는 뉴욕 시의 전력공급을 위해서 건설된 핵발전소가, 자그마치 20억 달러의 공사비로 준공될 단계에서 그 위험성이 지적되어 발전기 한번 돌려보지 않은 채 영원히 폐쇄되었다. 뉴욕 시민들의 거센 반대 때문이다. 그밖에도 같은 예가 많다.
미국 정부와 핵발전소 제조회사 자본가들은 바로 그 같은 위험성 때문에 미국에서 계속 문을 닫고 있는 핵발전소를 원래는 한국에다 서기 2000년까지 44기나 팔아먹을 계획이었다. 지금은 20여기로 수정되었으나 고리 1호기 발전소를 비롯한 몇 개의 기성 핵발전소의 핵 누출 사고는 헤아릴 수도 없다. 우리 정부가 온갖 방법으로 그 사실을 보도관제하고 있지만 몇 해 전에는 지역주민들 을 대거 이주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에 관해서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이미 1985년 12월 20일에 발행한 『핵과 평화─일지ㆍ자료목록해제ㆍ자료』를 구해서 읽어보도록 권고한다. 당신은 아마 엄청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정신을 가누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이 문제를 공해문제의 일환으로 추구하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공해문제연구소’의 정기간행물들을 찾아 읽도록 권고한다. 연세대학교 화학과 출신으로 민주화ㆍ인권운동의 대열에 서 있는 젊은 과학도 최열(崔烈) 씨의 숨은 공로로, 핵발전소를 ‘조국 현대화’의 상징처럼 우겨대던 우리 정부도 이제는 엄청난 피해와 위험을 숨길 수 없게 되였다. 군사용 핵무기의 사고는 더욱 무섭다.
미국의 핵무기는 전쟁목적에 사용될 경우는 아예 설명조차 필요없지만(그건 뒤에서 설명하겠다), 평상시 상태에서 소련보다도 더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 몇 가지 큼직한 실례를 들어보자.
• 1966년 1월 17일, 미국 영토도 아닌 스페인에 기지를 둔 미국 B-52 초대형 핵폭격기가 KC-135 공중급유기와 공중 충돌했다. 핵폭격기 승무원 중 다섯 명이 즉사하고, 싣고 있던 핵폭탄 네 개가 바다에 떨어졌다. 요행이 작용해서 핵폭탄이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 영해는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폭격기에 실었던 통상폭탄이 폭발했다. 핵폭탄은 대대적인 심해탐색 작업 끝에 회수되었다.
• 1958년 3월 11일,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마스 브라프 폭격연습장 상공에서 B-47폭격기에 싣고 있던 핵폭탄 한 개가 떨어졌다. 핵폭탄의 기폭뇌관의 폭발로 땅에는 자그마치 깊이 28미터의 구멍이 파였다. 다행히 핵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채의 농가가 파괴되었다.
• 1960년 6월 7일에는 매과이어 공군기지에 저장돼 있던 56개 의 보마크 핵미사일 중 한 개가 폭발했다. 격리저장 방식 탓에 전체의 폭발은 방지되었지만 많은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 1961년에는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주 골즈 보로에서 훈련중인 B-52폭격기에서 24메가톤 폭탄이 떨어졌다. 낙하충격으로 인해서, 그 핵폭탄에 장치된 여섯 개의 연결안전장치 중 다섯 개가 터졌는데 마지막 여섯 번째가 작동하지 않은 덕택에 24메가톤의 괴물이 그대로 회수되었다. 그것이 작동했더라면 히로시마 크기의 도시 1,200개 이상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 1968년 1월 21일, 그린랜드의 툴 공군기지에 비상착륙하던 B-52폭격기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싣고 있던 네 개의 핵폭탄은 충돌충격이 적어서 다행히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네 개의 핵폭탄에 장치된 재래식 고폭약은 모두 폭발했다. 바닷속이 아니라 도시나 마을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핵폭발은 없었지만 플루토늄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위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대규모 핵폭탄 사고가 11회 발생했다. 그보다 작은 규모의 사고는 2차 대전 종결이후, 즉 지난 40여 년 사이에 250회나 일어났다.
미국의 공군기와 전폭기들은 한반도 상공과 주변을 언제나 핵폭탄을 싣고 경계비행을 하고 있다. 누구의 머리 위에 떨어뜨리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실수’나 ‘사고’로 인해서도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질 가능성이 항시적으로 있는 것이다. 그런 사고가 없었다는 것은 ‘요행’일 뿐이다. 앞서 소련 인공위성의 핵발전기가 평양에 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 서울의 신문 만화가는 미국의 그 경우를 보면서 평양의 만화가가 “제발 서울에 떨어져주소서!”라고 빌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아마도 “공산주의자니까 그렇다”고 답변했겠지. 그러면 저쪽에서는 뭐라고 말했을까? “광신적 반공주의자는 으레 그런 자들이니까!”슬픈 일이다. ‘반공사상’은 어째서 그런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휴전선 이북에 사는 동포들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정신질환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 간절한 심정으로, 남한인들이 40여 년간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정신질환’에서 하루속히 깨어나주면 좋겠다. 전쟁이 나면 핵폭탄은 공산주의자도 반공주의자도 가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핵폭탄은 북쪽에 사는 ‘조선 공산주의자’의 핵폭탄도 아니고 남쪽에 사는 ‘한국 반공주의자’의 핵폭탄도 아니다. 어째서 남ㆍ북에 갈라져서 살게 된 우리가 ‘소련 공산주의자’의 핵폭탄으로 남쪽이 쑥밭이 되고 ‘미국 자본주의자’의 핵폭탄으로 북쪽의 형제가 숯처럼 그을리기를 빌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어느 쪽의 핵폭탄이나 핵미사일이 이 반도의 그 어느 쪽에 떨어질 때 그것은 1977년 11월 11일 새벽 이리시를 쑥밭으로 만들었던 3그램(TNT 60톤)짜리 핵폭탄이 아닌 것이다. 그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메가톤’짜리인 것이다.
‘사무삼과’(四無三過)에 빠진 국민의식
우리 남한의 국민은 너나 할것없이 ‘사무삼과’(四無三過)에 빠져 있다. 이 낱말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핵에 대해서 무지(無知)하고, 무관심(無關心)하고, 무감각(無感覺)하고, 무민족(無民族)적이다. 핵에 대해서 인간이성을 과신하고, 기계의 정밀성을 과신하고 군사력을 과신한다.
핵무기에 대해서의 제1무(無)는 단지 지식이 없다는 무지의 뜻이 아니다. 핵무기의 성능이나 그 원리나 제원(諸元) 같은 것이야 아인슈타인이나 테일러나 오펜하이머 같은 두뇌가 아닌 바에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나라 땅에 남의 나라 핵무기가 들어와 있으면 자기가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무지를 말한다. 외국의 핵무기가 많이 들어와 있을수록 그만큼 자기가 더 안전하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무지다.
무감각하다. 이른바 상황순치증(狀況馴致症)인데, 파블로프 이론의 강아지처럼, 미국과 정부와 군부의 말을 하도 오랫동안 따르다보니 핵무기의 두려움에 대해 길들어버린 것이다. 정신상태가 멍멍해졌다. ‘메가톤’이라고 해도 공기총알만큼에 대한 감각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니 핵무기, 핵전쟁 위험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까닭이 없다. 철저한 ‘무관심’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1986년 5월 18일, 세계정치의 무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대해 핵무기 폐기를 제안하면서, 그 성의의 표시로 6개월간 소련의 일방적 핵실험 중단을 실시했다가 다시 미국의 대응을 촉구하는 뜻에서 또 6개월간의 핵실험 중단 연기 결정을 발표했다. 세계의 주요 신문들은 첫 번째 조치도 환영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두 번째의 조치는 더 크게 보도하면서 열렬히 환영했다. 평화를 바라는 전인류적(미국을 제외하고) 염원의 표시였다. 그런데 이날의 우리나라 신문들은 이 발표를 묵살하거나 신문지면의 한구석에 파묻어버렸다. 그 발표의 중대성에도 무감각했고 핵무기 관계일반에 무관심해버린 증거다.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없다.
거기까지도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자기 민족이 남의 나라 핵무기ㆍ핵전략ㆍ정치논리ㆍ국가이기주의의 볼모가 되고 노리개가 되어 있는데도 아무런 민족적 자각도 긍지도 저항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앞서의 어느 신문 만화가처럼 동포애도 없고, 민족적 감정도 없다. 어쩌면 이렇게도 철저하고 완벽하게도 민족을 상실하게 되었을까? 광신적 반공주의 교육과 선전 탓이다. 우리에겐 미국만 있고 민족은 없다. 무민족(無民族)주의자들이다.
삼과(三過)도 큰일이다. 첫째가 인간이성, 그중에서도 미국의 이성과 호의에 대한 과신이다. 핵무기를 쥐고 있는 남의 나라 정치가, 육군대장ㆍ해군대장ㆍ공군대장, 주한미군 사령관 등의 호의와 이성을 끝까지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미국 하원군사위원회의 한 보고서 내용을 들려주고 싶다.
남한에 있는 미국 군대의 각급 사령관들은 남한을 세계에서 제일 이상적인 군사훈련장으로 확신하고 있다.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땅,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무제한 사격지역’, 휴전선 북쪽에 있는 사격목표로 가장 이상적인 살아 있는 인간표적, 그뿐이 아니다. 남한은 지구상에서 우리를 쫓아내려 하지도 않고, 심지어 땅을 쓰는 임대료조차 달라고 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다.
그뿐인가? 1982년에 미국 국방성과 정부가 확정한 비밀전략계획은, 중동 산유지역을 확고히 틀어쥐기 위해, 그 지역에서 소련과 분쟁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소련군 역량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시작할 것을 결정했다.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까지 포함한 지상공격 작전의 세부가 미국 언론에 의해 폭로되었다. 북한 공격은 주한미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되고, 국회의 동의가 필요없으며, 미국 군대가 전투할 때는 핵무기 사용이 자동적으로 기정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이 미국 정부의 비밀계획 내용을 일찍이 입수해 1983년 『기독교사상』8월호에 「한반도 주변정세의 질적 변화와 우리의 민족적 과제」라는 논문을 특별기고해서 국민의 경각을 촉구한 바 있다. 그 후 이 글이 기독교, 학생, 지식인사회의 관심을 끌어, 웬만큼 핵전쟁가능성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다음은 기계에 대한 과신이다. 군사기계는 ‘과학기술’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고의과학과기술이응용된 전쟁무기와 그 사용ㆍ관리체제는 거짓이 있을 수 없는(Fool Proof)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컴퓨터의 정수로 제어되는 무기체제는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핵무기 사고에 관한 앞서의 수많은 실례가 입증하듯이 그것은 위험한 신념이다. 실제문제로서는 제일 단순한 것이 제일 확실한 법이다. 정교하고 복잡해질수록 불확실해진다.
한국 국민의 ‘삼과병’(三過病)의 마지막은 군사력 과신이다. 어떤 잘못된 사상이념의 교육과 세뇌를 받았는지, 모든 갈등은 무기와 군사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군사력 과신병이 남북 간의 가능한 평화를 얼마나 방해했고 또 지연시켜왔는가! 냉정한 판단력이 있는 사람의 눈에 지난 오랜 세월은 ‘열병에 들뜬 군국주의’적 상태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1988년 7월 7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6개 항목 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해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ㆍ협조ㆍ번영ㆍ민족공동체 회복을 부르짖은 한참 뒤인데, 텔레비전 방송으로 보여진 어떤 경찰간부회의에서는 최고 책임자가 여전히 “북괴의 남침도발을 막기 위해 철저한 군사력을 포함한 태세”를 갖추라고 호령을 하고 있었다. 군사력 강화는 신성한 예식처럼 불가침ㆍ불가문ㆍ불가항의 국민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 민족 내부문제를 외국의 핵무기를 통해 해결하기를 원하는 한국 국민의 의식수준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대만의 국민당 군부도 1970년대에 남한의 군인 출신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비밀리에 핵무기 제조의 기초작업을 구상 중이었다. 장개석 총통이 생존했을 때다. 후에 부친을 계승해 총통이 된 장경국이 군부의 핵무기 제조계획을 가지고 장개석 총통의 재가를 얻으러 갔다. 계획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난 장 총통은 아들에게 타일렀다.
“중국인은 민족문제를 원자탄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따위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한마디로 대만 군부의 ‘본토수복’용 핵무기 제조계획은 백지화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대만과 남한정부의 핵무기 제조 준비를 걱정하는 세계여론에 따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가 밝힌 장경국 총통의 후일담이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 후에 대만에서 진행된 제반사실들을 놓고 보아도 그랬을 것 같다. 중국민족은, 대륙에 있는 공산주의자도 대만으로 쫓겨와 있는 반공주의자도 뭔가 한국인들과는 다른 데가 있어 보인다. 한국 군부는 그 시기에 해외에 있는 여러 분야의 교포 과학자들을 엄청난 보수로 불러들여 핵무기 제조계획을 서두르는 한편, 프랑스ㆍ캐나다 등 국가에서 핵원료 제련시설을 비밀리에 구입하는 계획을 계약체결까지 했다가 소련을 비롯한 외국의 압력을 받은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포기하는 일이 연거푸 있었다. 박정희 장군이 이 ‘핵무기독자개발’계획을 소위 ‘자주국방’이라는 명분 아래 강행하려 한 것이 카터 정부와 한국정부 간의 알력을 초래한 것은 지금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핵무기 문제에서는 조금 빗나가는 이야기지만 중국인과 한국인의 생각의 차이에 관해서 한 가지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 나는 1960년대부터 중국혁명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한 까닭에 중국어를 공부해야 했다. 일제 중학시절에 일주일에 두 시간씩 중국어는 배웠지만 그것은 다 잊어버렸고 일본어식 중국어로는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이 공부하는 교본으로 한국에 있는 중국(대만)화교 국민학교 국어교과서를 사용했다. 한 학기에 한 권씩, 1년 2학기, 6학년까지 12권이다. 각 권이 26~30단원으로 편찬되어 있으니까 6년간 합계 300여 단원이 된다. 그런데 대만 정부의 국정교과서인 이 화교 국어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감탄한 일이 있다. 300백 몇십 단원 속에 있는 본토의 ‘공산주의’나 ‘공산주의자’들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증오심을 부채질하는 악랄한 내용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한참을 당황했다. 본토를 버리고 도망온, 소위 ‘반공주의 피난민정권’인데 오죽이나 모택동이니, 주은래니, 주덕이니를 미워하겠는가? 이를 갈고 가슴을 쳐도 시원치 않을 천추의 한이 맺혀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대만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느 나라 정부나 군부처럼 자라나는 세대의 교과서에 야비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채질하는 내용의 단원이 300여 단원 속에 단 한 단원도 없다니! 이것은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국적인 사고로 본다면 차라리 한심한 일이었다. 어떤 나라의 어린 제2세 교육용 교과서의 “나는 무엇 무엇이 싫어요!” 따위의, 있었던 것인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가지고 동족에 대한 증오심을 아동들에게 절규하도록 가르치는 단원은 단 한 단원도 없었다. 그 후 중국 본토의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를 얻어 볼 기회가 있었다. 대만의 경우 때문에 가슴이 뛰다시피 하는 감동을 참으면서 살펴보니, 본토의 교과서에도 대만으로 도망간 국민당과 그 지도자들을 인간적으로 매도하고 모독하는 단원이 없었다. 또 한 번 감탄인지 당혹인지 한숨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새어나왔다.
“이럴 수가 있을까!”
그 후 대만과 본토 사이에 전개되는 일을 보면서 나는 쌍방의 국민학교 교과서 내용이 지니는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 깨달음 뒤에야 나는 중국혁명에 관한 연구를 하던 시절에 다소간은 경멸했던 장개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로운 경의를 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제도와 인간들이 중국인과 그들의 그것에 비해서 너무나 왜소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반공주의인데 이렇게 다르다면, 그것은 소위 국민성이라는 건가? 지금도 이 의문은 나의 머리와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우리나라 교과서가 그런 내용이니 그것으로 교육받은 제2세대가 대학생이 된다고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1978년 6월 서울의 한 대학(중앙대학교) 신문사가 그 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이 핵무기를 제조ㆍ보유하는 것을 원하는가?”라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찬성이 89퍼센트나 나왔다. 10명에 9명이 핵무기를 가지기를 원한 것이다.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다”의 사고방식으로 교육받은 이들이 핵무기를 만들자고 할 때, 어디에 누구에 대해서 쓰자는 잠재의식적 또는 의식적 목표는 묻지 않아도 분명하다. 한심하다 못해 소름이 끼치는 핵인식이다.
한국 국민의 의식이 이렇다 보니 미국이 업신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1988년 7월, 서울을 방문한 슐츠 미국무장관과 우리나라 정부의 발언을 들으면서 한ㆍ미 두 나라가 과연 ‘평등’한 우방국인지, 대한민국이 과연 ‘주권국가’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약간의 ‘민주화’덕택인지, 슐츠와 정당 총재들의 대담자리에서 한 야당 총재가 우리 영토에 미국의 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라고 슐츠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슐츠는 미국 정부의 ‘전략적 입장과 원칙’이라는 것을 들어 가부간의 확인을 또 거부했다. 미국대표의 말인즉, 가부간의 확인을 하지 않아야 ‘적’이 미국의 의도를 읽지 못함으로써 판단의 혼란을 일으켜 미국의 핵전략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같은 때에 국회에서 같은 질의를 정부에 제기했다. 정부를 대표해서 답변에 나선 국방부장관은 미국의 ‘전략적 입장과 원칙’을 그대로 되뇌고는 확인을 거부했다. 이런 꼴을 보고 듣는 우리는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서 분노에 가까운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미국 정부의 태도는 끝없이 오만하고, 한국 정부의 자세는 굴욕적일 만큼 비굴하다.
미국은 소련과의 사이에 핵무기와 주요 통상무기에 관한 정보를 공식적으로 교환하고 있다. 우리와 관련해서 말하면, 미국은 남한을 목표로 정하고 시베리아에 설치된 핵무기의 위치와 수량과 성능을 소상히 알고 있다. 소련도 남한에 배치되어 있는 미국의 그것들에 관해서 마찬가지로 소상히 알고 있다. 사실은 북한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가상 적국’인 소련에게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동맹국가인, 그것도 그 땅을 기지로 내어주고 있는 남한 국민에게만은 그 ‘존재 여부’의 확인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땅에 들어와 있는 각종 핵무기의 하나라도 사용될 경우, 북쪽의 동포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초래할 소련의 틀림없는 핵보복 확전으로 인해서 남한의 우리 자신들의 생존이 중대한 위협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우려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땅에 들여놓인 미국의 가공할 ‘최종 무기’에 관해서 알아야 하고, 미국은 답변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마이어 대장은 1983년 1월 23일 서울에 왔을 때, 핵전쟁 발생시의 여러 가지 겁나는 시나리오를 밝힌 끝에 “북한에는 핵무기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공개 기자회견에서 말한 바 있다.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하지 않고 있고, 소련도 중국도 그들의 핵무기를 북한 땅에 들여놓지 않고 있는 터에, 남한에 있는 것이 확실한 미국 핵무기의 성능이나 수량은 차치하더라도 그 ‘유무의 확인’조차 거부하는 미국의 태도는 언어도단이라 할 것이다.
우리 정부의 비굴이 더 큰 문제다. 북대서양조약기구의 15개 미국 동맹국가 정부들의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 유럽 동맹국가들은 자국 영토에 들여오는 미국의 핵무기에 관해서 그 수량ㆍ종류ㆍ위치ㆍ성능ㆍ교체ㆍ명령체제 등에 관한 정보를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다. 그 정보를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국가의 주권의 소재인 국회에 제출하여 동의를 요청한다. 1985~86년에 유럽 국가에서는 미국의 최신 핵무기 퍼싱 Ⅱ형 중거리 미사일이 새로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는 반핵 평화시위가 세차게 벌어졌던 것을 우리는 보도를 통해서 다 알고 있다. 결국은 어느 나라건 국회가 동의를 해버리는 바람에 예정대로 미국 핵무기는 설치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요청하여 주권기관의 동의를 구하는 민주국가의 당연한 법절차를 밟고 있다. 서독 정부는 서독 영토에 설치되는 핵무기는 동독을 목표로 삼을 수 없다는 요구를 미국이 수락하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한 자세이냐! 개인이건 국민이건, 죽는 일이 있더라도 왜 죽는가쯤은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 주권국가이지 대한민국의 실체는 주권국가가 아니다.
34년간이나 한 글자의 수정도 없이 효력을 지속하고 있는 한미방위조약(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북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제4조:상호합의에 의하여 북미합중국이 그 육ㆍ해ㆍ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인접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여하고 북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대한민국은 북미합중국의 육ㆍ해ㆍ공군에게 그 국토를 전면적으로 완전히 한 평의 유보도 없이 벗겨 내맡긴 것이다. 어떤 무기를 언제 어디로 들여오건 들고 나가건, 대한민국은 한마디 물어볼 권리가 없다. 이러고서야 어찌 주권국가라고 헌법에 쓸 수가 있는 가? 미국의 식민지였고, 최근까지도 식민지나 다름없는 필리핀조차 상원에서 1988년 6월 미국의 핵무기 반입과 설치를 반대하는 결의를 통과시킨 바 있다.
필리핀 국민의 이 같은 성숙과 각성과 결의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인임이 부끄러워진다. 필리핀 국민의 의연한 태도에 직면한 미국 정부는 필리핀에 있는 태평양ㆍ아시아 최대 해외기지인 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 해군기지를 싱가포르나 ‘사우스 코리아’로 옮길 계획을 본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괌섬도 언급되었지만 그거야 미국의 본토와 속령이니까 우리가 가타부타할 것이 못된다. 싱가포르는 전체 면적이 580평방 킬로미터로 제주도(1,820평방 킬로미터)의 3분의 1도 안 된다. 북제주군 하나의 면적보다도 작다. 그런 곳에 태평양ㆍ아시아 최대의 미국 핵무기 기지를 옮기겠다는 것은 경제난에 허덕이는 필리핀 정부에 대한 협박적인 구실일 뿐이다. 그리고 싱가포르 정부만 하더라도 영토는 제주도의 3분의 1도 안 되지만 세계의 유수한 자유항 국가로서, 미국의 그런 괴물 같은 무기들을 받아들일 까닭이 없다.
남는 것은 ‘사우스 코리아’다. 왜 하필이면 또 ‘사우스 코리아’ 일까. 남한이라는 나라의 정부와 국민은 미국 군사전략가나 군장성들의 눈에는 지구상에서 제일 고분고분하고 만만한 종족인 모양이다. 아니면 ‘사우스 코리아’의 정부와 지도자가 와싱톤에 불려가서 국민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밀약이라도 맺었다는 말인가?
소련의 군함 한 척이 동해의 공해를 지나가기만 해도 소련이 마치 남한에 대한 전쟁이나 준비하고 있는 양 법석을 떨고 야단들이다. 그렇다면 아시아ㆍ태평양 최대의 가공할 미국의 핵무기 기지가 하나도 아니고 2개나 남한에 들어온다고 할 때 북한과 소련은 어떻게 생각할까?
세계에서 국민적ㆍ국가적 자존심의 그루터기라도 남아 있는 정부나 민족들은 최근 잇따라 미국의 군사기지, 특히 핵무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자 시대에 미국과 맺은 35년간의 기지협정의 갱신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포르투갈이 그렇고, 그리스는 금년 9월 1일부터 실효되는 기지협정의 갱신을 거부하고 미국에게 철수를 요구하는 공식통첩을 7월에 교환했다. 한국 정부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세계 여러 정부들의 의젓한 자세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남침위협’의 근거
미국 정부나 군부의 확인 여부와 관계없이 남한에 미국의 핵무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다만 상식으로서도 너무나 낡은 상식이다. 미국 의회에서의 비밀증언들을 통해서도 알려지고 있고, 북한이 군사행동을 취할 경우에 즉각 ‘심층공격’으로 ‘초전박살’을 내겠다는 위협도 핵무기 선제사용의 의도를 말하는 것이다. (북한이 재래식 군사력으로 남한에 대한 전면적 남침공격을 감행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의 실증적 연구논문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분석 시론」(월간 『사회와 사상』, 창간 9월호)을 참조.) 미국 자체 내에서도 정부 계통이 아닌 중립적이고 독립적이며, 그 신빙성에 정평이 있는 연구기관과 권위 있는 신문들의 평가로는 남한의 미국 핵무기 수는 300개 전후에서 600개 선까지, 시기에 따라서 증감된다. 이 책에 수록된 피터 헤이즈의 조사보고서 「한국에 있는 핵무기─배치ㆍ전략ㆍ지원」은 미국의 한국에서의 핵전쟁 구상ㆍ전략ㆍ명령체계 등등에 관해서, 지금까지 조사 발표된 관련 사실들 가운데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많은 것을 새로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몇 번을 놀라고 탄식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논문에서는 일절 인용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피터 헤이즈의 그 조사보고서에서도 핵무기의 수에 대해서는 다른 출처를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의 종류ㆍ성능ㆍ수량 등을 계산하는 근거와 산출방식을 여기에 따로 설명하겠다.
핵무기는 종류가 여러 가지로, 그 설치ㆍ운반ㆍ투하ㆍ발사 등 방식이 모두 다르다. 야포로 쏘는 핵폭탄, 폭격기로 운반ㆍ투하되는 핵폭탄, 미사일에 장착되어 발사되는 미사일 핵탄두, 전선이나 요지에 매설되는 핵지뢰, 필요할 때 적의 진격로나 장애물ㆍ요새ㆍ건설물에 매설하는 휴대용 극소형 핵폭발물 등등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가 없는 한 이런 다양한 종류의 것을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 수를 개략적으로 판정하는 방식은 그 각종의 무기를 발사ㆍ운반ㆍ투척하는 모체인 전달수단(Delivery System)을 계산하여, 그것이 미국 본토, 유럽의 북대서양 동맹군(NATO), 일본, 필리핀 등 미국 군대가 있는 곳에서 평균적으로 장치되는 핵물체의 수를 곱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기병대 말의 수를 헤아려서, 그 말에 탈(탄) 기병대 병력을 계산해내는 방식이다. 핵무기 장진ㆍ전달수단은 어떤 것이건 그것이 담당할 핵폭발물의 종류ㆍ수 등이 미리 설계 단계에서부터 정해져 제조되고 실전 배치된다. 그 설계는 별로 비밀이 아니다. 그리고 많은 정보를 종합하면 실제로 몇 개의 핵폭발물이 그 수단 1개에 할당되는가의 숫자가 나온다. 전문가들에게는 거의 분명하다.
그런 방식으로 산출된 예로, 1976년에 남한에 있던 핵무기의 종류와 수와 성능은〈표 1〉과 같다.
이런 핵무기 전략을 이 조사연구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표 1] 남한에 있는 미국 핵무기
* The 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 “Korea and U.S. Policy in Korea”, The Defense Monitor, Volume V, No. 1, pp.1~8
한국에 있는 수백 개의 미국 핵무기들은 제한된 용도뿐이다. 그 이유는 북한에는 핵무기가 없기 때문에 북한이 그런 무기를 쓸 가능성에 대비한 억지력으로서의 미국 핵무기의 필요가 없다. 이 사실은 소련과 북대서양동맹(NATO)이 다 같이 전술핵무기들을 갖고 있는 유럽의 조건과는 예리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 군부는 북한의 재래식 공격에 대해서도 그 핵무기들로 제1공격을 가하겠다고까지 위협하고 있다. 미국 군부의 의도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려 한다면 미국은 각종 핵무력에 호소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주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비핵국가에 대해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그런 무기의 사용에 대한 시민 일반의 반대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1975년 6월에 실시된 해리스 여론조사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데도 32펴센트만이 찬성했고, 52퍼센트, 즉 명백한 다수가 그 사용에 반대했다. 미국에 대한 책임추궁도 클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핵무기의 사실상의 독점하에서 심각한 정세 역전에 직면한 상태에서조차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더구나 남한영토에 설치된 핵무기의 사용은 많은 남한인들과 미군병력을 손상시킬 것이며, 그 결과로 야기될 대혼란으로 인해서 오히려 북한의 신속한 승리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낙진은 한국인들만 아니라 일본인들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미국 군부가 확신하듯이, 남한인들이 스스로를 방위할 수 있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국방장관직을 떠나기 조금 전에 제임스 슐레진저 장관은 한국에서의 핵무기 사용을 주장했던 본래의 입장에서 후퇴했다. 그는
오히려 (남북한 간의) 재래식 군사력의 균형상태 때문에 그 사용이 불필요하리라고 시인했다. 그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한국에 있는 미국 핵무기의 철수가 가장 적절한 조치인 듯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무기는 주한미군 보호용인데, 우리 정부는 군사력에서 북쪽이 훨씬 우월하고 남쪽이 언제나 열세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워왔다. 소위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비해서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과 근거는 지난 10여 년간 계속된 한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 및 현대화로 그 근거가 상실된 것 같다.
실제로 한국 정부(군부) 자신의 그것을 입증하는 공식문서들이 근년 들어 공개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한국방위분석연구소’(KIDA, The Korea Instiute for Defense Analysis)와 미국 국방장관의 의뢰를 받은 권위 있는 RAND 연구소가 여러 해에 걸쳐서 시행한 공동연구의 결론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직접 미국 국방장관이 한반도 군사정세의 현재 및 장기적 평가를 위해서 위촉하고 또 채택한 중요한 문서다. 1985년 12월에 미국방장관에게 제출된 이 철두철미한 보고서는 “남한의 군사력이 현재도 우월하고, GNP의 차이가 증대할 장래에는 날로 더 우월해질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남한의 GNP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70년대 중반 이후 무기 구입액이 지속적으로 북한을 앞질렀고, 1983년 현재는 3.11배에 달하고 있다. 레이건 정부의 동맹국 군비증강 정책으로 83년 이후는 이 추이가 더욱 확대되었다.
이 표 작성 이후 1983~86년에 남한이 미국에서 들여온 무기 구입액은 32억 달러에 이르고, 85~89년에는 80억 달러가 예정돼 있다고 한다.1)
●[표 2] 남ㆍ북한 군사비 비교
지난 오랜 군사독재, 유신체제, 군인 출신 대통령 영구집권 체제를 옹호ㆍ변론하는 사람들은 주로 그 타당성과 근거로 북한 군사력이 남한 군사력보다 우월하다는 것과, 그래서 ‘남침전쟁’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강조해온 것이 우리의 기억에 새롭다.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런가? 미국 국방성과 한국군부의 공식적 판단기준으로 채택된 그 「조사연구보고」는 그 반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 1] 남북한 군사비 추세
위의 그림을 수치로 표시하면 다음 표와 같다.
앞의 여러 통계에서 밝혀지듯이 남한의 군사비가 북한의 군사비에 비해서 월등 클 뿐 아니라, 해마다 격차가 증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 3] 남ㆍ북한 연도별 군사비 비교
이것은 정부가 오랫동안 국민에게 위협적으로 들이댔던 하나의 커다란 ‘신화’의 실체를 밝혀준다. 즉 그들은 북한의 군사비가 GNP의 20퍼센트, 남한의 군사비가 GNP의 6퍼센트이므로 북쪽의 군사력이 3배가 넘으며, 따라서 ‘남침전쟁’위험성이 크다고 선전해왔다. 그런데 그들은 그 주장과 동시에 남ㆍ북의 경제총생산(GNP)에서 남한이 북한의 5배라는 숫자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의 GNP 대 군사비 비율로도 남ㆍ북한 실제 군사비 액수는 30 대 20으로 우리가 1.5배나 크다. 이 사실은 그들이 밝히기를 주저해온 실체다. 이 ‘GNP 대 군사비 비율’은 여러 해 동안 군사독재 정권들의 ‘남침위협’론을 지탱해온 산술적 요술이다.
실제로는, 많은 중립적ㆍ독립적 외국 연구기관들의 남ㆍ북한 GNP 대 군사비 비율평가는 북한 12~15퍼센트, 남한 8퍼센트선에서 일치한다. 이 비율로 본다면 북한을 최고치인 15퍼센트로 잡더라도 남ㆍ북한 군사비 실액은 40 대 15가 된다.
남ㆍ북한 군사력 평가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카터 대통령 정부가 대소ㆍ대공 군사대결 강경정책으로 급선회하면서 북한의 병력과 기본무기 보유량의 수치가 별다른 이유없이 상승 조절되어 발표되었다. 그 후 레이건 정부의 등장과 함께 박차를 가한 대소ㆍ대공 ‘무한 군사력증강 경쟁’정책으로 1983년 발표에서 북한 병력이 그 전해에 비해 한 해 사이에 11만 5,000이 증가된 75만으로 상승 평가되었다. 무기 보유량의 평가도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상승조절 평가되었다. 그와 병행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와 군사력 증강 압력이 가해졌다. 그 결과는 앞서 본 바와 같은 무기 구입비의 급증과 군사비의 압도적 우월로 나타난다.
와싱톤에 있는 권위 있는 군사연구소인 ‘국방정보연구소’가 분석한 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북한 군사비의 아주 높은 수정평가치를 토대로 해서도 미국정부의 ‘무기관리 및 군축담당국’(ACDA)의 평가는 1982년의 군사비에서 남한이 북한에 비해 37퍼센트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48억 달러 대 35억 달러). 런던에 있는 ‘국제전략연구소’(IISS) 조사보고는 1982년 남한의 군사비가 북한에 비해서 2.5배, 즉 43억 달러 대 17억 달러인 것으로 평가했다.2)
맺는 말
우리 정부의 일관된 ‘북한군사력 우위’설과 ‘남침전쟁 위기’설을 이상과 같은 세계의 권위 있는 중립적 연구기관들의 결론들과 함께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미국 국방장관의 위촉으로 한국국방분석연구소와 RAND연구소가 공동 실시한, 그리고 한미 양국 정부의 공식 장기 국방정책 수립의 근거로 채택된 「종합연구 조사보고서」( “The Changing Balance-South and North Korean Capabilities for Long-Term Military Competition,” 1985년 12월)는, 현재의 육ㆍ해ㆍ공군 군사력은 물론 인구, 경제력, GNP의 현재와 전망, 공업ㆍ과학ㆍ기술능력 수준 등 모든 면에서 남한이 북한에 비해 그 종합적 군사능력(전쟁 잠재력)이 훨씬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큰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남한이 열세인 것이 아니라 북한이 열세라는 사실─그것도 현저한 격차로 열세인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새로운 사실, 가려진 이면, 또는 우리 정부와 군부가 ‘퍼센트’로만 표시해온 남ㆍ북한 전쟁 능력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무한한 안도감을 준다. 재래식 종합 전쟁능력에서 우리가 북한보다 훨씬 강하다는 확인은 한국에 와 있는 미국 핵무기의 의미를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정부와 정당, 정책수립 기관들의 안팎에서는 5년 후 전후해서 미군철수와 핵무기 철거 등에 관한 논의가 심심치 않게 제시되고 있다. 미국 군대가 없어도 충분한 자체 방위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의 생사에 직결된 핵무기이면서도, 그 존재와 사용에 대해서 한국의 대통령도 국회도 군부도 아무런 발언권이나 정책결정 참여의 법적 권리도 없는 미국의 핵무기는 안심하고 한국을 떠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미국 정부는 소련과 중국을 통해서 이 같은 중ㆍ장기 전략과 정책을 북한에 충분히 납득시킨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에서는 물론 충분한 사전협의가 있을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7월 7일에 발표한 6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대북한 ‘평화공존선언’도 그 같은 평가와 판단을 토대로 해서 결정된 것으로 믿어진다. 7월 21일에 있은 북한의 ‘남북 불가침선언’ 제의도 이 토대 위에서의 발상으로 믿어진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외국의 핵무기는 떠나도 된다. 외국 군대가 마음대로 장난치는 핵무기의 위협 없이 좀 평화스럽게 살아보고 싶다.
• 『반핵─핵위기의 구조와 한반도』, 창작과비평사, 1988
8-2. 「핵무기 숭배사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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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북한-미국 핵과 미사일 위기의 군사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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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한반도 핵위험의 구조: 그 해부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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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한반도는 강대국의 핵 볼모가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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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1945년 ‘히로시마’ 영원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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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핵은 확실히 ‘죽음’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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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핵무기 숭배사상의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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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핵무기 신앙에서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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