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14 <월남> 군정과 대중과 미국의 이음이곡(異音異曲) 속에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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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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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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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66.4.14


 


<월남> 군정과 대중과 미국의 이음이옥(異音異曲) 속에 어디로 갈 것인가?


즉각 민정요구서 키 수상퇴진요구까지 민족의식 점차 짙어


전면 내란 막으면서 전시체제유도만이 수습


 


◇불교도 대(對)정부 4개 조건


①3월 11일 이후의 민중 데모에 참가한 군인, 관리에 대한 처벌 결정의 철회


②체포한 데모 대원의 즉각 석방


③사태수습을 위해 북부에 파견한 정부군 철수


④제헌의회 설치의 공식선포


월남엔 지금 세 가지의 모순이 있다. 사이공엔 10인 군사지도위원회로 대표되는 정부가 있지만 그 정부는 사실상 전혀 행정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은 주인인 월남인보다 손님격인 미국과 그 연합국이 도맡아 감당하고 있다.


다수 월남 대중은 집권군사정권의 퇴진과 외국 원조국의 지나친 개입을 반대하면서 다분히 월남인의 새 정권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전쟁담당자와 대중이 따로 분리되어 제휴보다는 배척을, 조정보다는 충돌을, 수습보다는 파국으로 달리고 있는 게 오늘의 월남 실정이다.


12일 키 수상이 소집한 사이공 전국정치회의는 파국의 가능성을 한층 증대시키고 있다.


불교도를 선봉으로 하는 4파 종교 반정부 통일전선은 12일의 사이공 회의가 「미국 CIA의 앞잡이」라고 비난, 티우-키 체제 타도를 주장하면서 14일 다낭, 후에시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데모를 계획하고 있다.


불만의 진원인 종교세력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전국정치회의를 열고 조기총선을 발표한 키 수상은 『현 정치위기 때문에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며 정부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모든 무력을 사용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밝히고 있다. 전쟁 템포의 약화를 염려하는 미국은 키 수상과 반정부세력의 중간에 끼여 결정적인 태도를 공개하지 못하면서 군사정권이 계속 집권하여 대공전(對共戰)을 추진하기를 강력히 바라고 있다.


워싱턴은 월남에서 믿을 수 있는 건 군부뿐이라는 전제 밑에 키 수상이 물러나거나 계속 집권하거나를 막론하고 군사정권의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신념에 변함이 없다. 결국 사태는 키 정권과 반정부세력 사이의 물리적 충돌이 가져올 예견할 수 없는 결론이 남아있다.


그런 사태에 대비해서 쌍방이 극렬한 무력동원에 주력하고 있다. 티우 원수는 사이공 시에 쿠데타 군으로 이름난 7사단을 진주시키는 한편, 월남 전역에 걸쳐 모든 경찰의 활동을 조정하기 위한 「특별성(特別省)」을 신설, 효과적 무력동원에 주력하고 있다. 북부 반정부 세력의 거점인 다낭과 후에 등지에서는 학생 「특공대」가 조직되고 부녀자에게까지 무기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고 딘 디엠을 몰락시키는데 발화 역을 한 분신자살 희망자가 늘어나 월남 정국의 분위기는 이미 이성이 지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쌍방은 명실공히 전쟁상태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 경우 미국이 작용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디 차관보가 지적한대로 사이공 사태 안정의 기준을 개인보다 군사위원회에 두고 키 수상을 물러앉혀 정면내란을 방지하면서 명분상 불교도의 민선총선 요구를 들어주고 실질상 군사위가 중심이 되는 군부체제를 유지시키는 길이다.


둘째는 12일 베트콩의 탄 손누트 공항 피습과 B-52 전폭기 북폭을 계기로 확전을 한 단계 상승시켜 월남을 완전한 전시체제로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다낭기지를 비롯한 월남인의 태업으로 전쟁 보급에 상당한 차질을 일으키고 있어 군수물자의 하역작업을 미국인이 직접 맡고 있다. 말하자면 전쟁의 급격한 긴장 조처가 없이는 전쟁균형의 유지와 월남 정국의 무정부상태를 도저히 수습할 수 없다.


불교도들이 주장하고 있는 민정이란 것이 「베트남 요구에 적합하고, 베트남 현실에 부합되며, 베트남 전통에 일치」하는 정부형태를 의미하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요구하고 있는 한 미국은 기술적으로 반정부 세력보다는 키 군사정권의 편에서 그 영향력을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 월남 반정부세력은 지하화하면서 그 감정의 표적을 미국에까지 크게 확대시킬 것이고, 장기적으로 이런 대중의 감정적 충돌을 앞에 놓고 미국은 어느만큼 대공전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과 현실을 지속시킬는지 의문이다.


 


<오늘의 월남을 움직이는 주역들>


[반대세력]


최근 월남의 반정부세력은 강-온양파의 불교도를 비롯하여 가톨릭과 호아 하오 등 4대 종파로 대표된다. 이들 각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처한 입장과 성격도 반전, 반군정으로 집약된 듯 해보이지만 자파의 이익과 명분을 무엇보다 우선시키고 있다.


<민족주의자> 티치트리쾅 승. 쾅 승은 그 이름이 풍기는 이미지만큼 강렬한 사람. 철저한 중립 민족주의자다. 다낭에 있는 자혜원은 반정부 「불승의용군」을 조직하려는 쾅 승의 본거. 중부 월남의 토착승인 그는 북부 출신인 온파의 영수 차우 승과 키를 친미반공일변도라고 배격. 『불도 관장 하의 선거를 3개월 안으로 하도록 하면 데모를 안 하겠다』고 존슨을 위협한 그를 미국은 이 난국과 어떻게 조절하여 써먹을 것인지.


<반공정신 커> 탐 차우 승. 월남인구 8할을 점하는 불도의 대부분이 강경파의 보스 쾅 승을 따르고 있는데 반해 불교총무원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탐 차우 승은 극히 소수의 온세력을 대표할 뿐이다. 이북에서 월남한 차우 승은 반공정신이 골수에 박혔지만 그렇기 때문에 디엠 정권 때나 현재의 키 정권에게는 더없이 협조적인 온파다. 그러나 대세가 반정부로 기울어지자 그도 어쩔 수 없이 쾅과 합세, 12일 정치회의에도 불참했다.


<영향력 없어> 흐앙퀸 신부. 고 딘 디엠 정권 하에서 득세하던 가톨릭 세력은 오늘날 월남의 4대 종파 중 가장 하위에 속하는 편.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흐앙퀸 신부다. 친미반공이나 그 역시 군정 타도, 민정 복귀의 대세에 편승, 불교 측과 합세해서 반정통일전선의 한편에 섰다. 결국 정치회의 불참세력에 가담했으나 아직까지 그 영향력은 그늘에 묻혀있는 편.


 


[중립세력]


현 집권자 키 수상 또는 그 전의 군사독재자에게 눈 위에 가시로 여겨지거나 그로 말미암아 거세됐던 월남정치인들의 동향은 미묘하다. 상당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이들은 언젠가는 정권으로의 복귀를 다짐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가 여일하게 정치적으로 중립이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불교도들이다.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교도 신임> 구엔 찬 티 장군. 중부 및 북부 월남주민, 그리고 불교도들의 신뢰를 한 몸에 입은 티 전 1군단장은 다낭을 중심으로 키 수상 통치권 밖에서 치외법권적 소왕국을 형성했었다. 4개 군단으로 나누어진 월남육군 중 2군단의 록 소장, 4군단의 콴 중장 등의 절대적인 동조를 받은 티의 영향력이 수도 사이공까지 미쳤던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독지하는 키 수상에의 반발을 묶은 그는 차기수상 후보로까지 여겨졌었다.


<장군 심복> 구엔 반 만 시장. 키 수상의 총살감으로까지 지목된 37세의 구엔 반 만 다낭 시장은 쫓겨난 1군단장 티 장군의 심복 제1호. 키 정부에 의해 티 장군이 해임된 3월10일 이후 줄곧 일어난 파업과 군인, 경찰관까지 참가한 반정부 시위를 방관 아니면 묵인해왔다. 그래서 키는 그를 관제 빨갱이로 몰아 정부군까지 진주를 시켰었지만 그의 일전불사론에 꺽였음인지 그 일부를 철수. 일단 판정승을 거둔 그의 영향력은 상승 중.


<평화운동자> 후옹 전 수상. 여덟 번째의 쿠데타로 쫓겨 현재 망명 중인 전 수상 트람 반 후옹 씨는 권토중래를 꿈꾸는 여러 실각자들 중의 하나. 그는 지난 7일 우탄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전쟁지양 평화모색」을 위한 회담을 가졌다. 디엠 정권이 무너진 뒤 9번째의 쿠데타 정권인 현 키 수상정권까지 2번 밖에 없었던 민간 출신 수상 중의 한 사람인 후옹 씨가 갑자기 클로즈업된 것은 권력을 앞에 놓고 분규 중의 자국 문제에 어떤 이니시에이티브를 잡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권세력]


10인 국가지도위원회의장(국가원수)인 티우 중장, 키 중장(수상) 그리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1군단장으로 임명된 딘 소장 등 현 정권을 구성하는 집권층의 면모를 다음에 살펴본다.


<사면초가에> 구엔 카오 키 수상. 월남군사정부의 키 수상은 베트콩과 공산주의라는 교전대상 외에 자신의 지배하에 있어야할 세 가지 적-다낭과 후에 지구 군벌, 불교도, 민중의 반전반미사상-을 상대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키를 권좌에 업어 올려놓은 10인 국가지도위 내부에서도 다낭 해병 철수를 계기로 다수인 티우 원수파의 반목을 샀다고 알려졌다. 어쩌면 양파 중 어느 하나가 다른 한 파를 내쫓는 사태까지 벌어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키는 35세의 젊은 재상.


<남부파 대표> 구엔 반 티우 원수. 옥상옥 격의 권부에 앉은 티우 국가원수(43)는 친미반공 면에서 키 수상과 같으나 민중의 규탄대상으론 키보다 더 미움을 사고 있다. 남부파의 대표요 가톨릭 신자라는 것 외에 최근 온파 불교 측이 키와의 합의 아래 제의한 조건마저 듣지 않은 그에 대한 반발은 더 큰 것. 반정부운동자 불처벌, 민정이양성명, 해병 철수 등에 대한 기한부 회답을 거절, 12일 전국정치회의서 34개 정파 중 8개 대표만 참석케 했고, 그 때문에 키와의 사이에 금이 갔다고.


<볼만한 솜씨> 톤 다트 딘 장군. 군사정권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던 반골 티 장군의 1군단 지역이 그의 해임으로 들끓기 시작, 이에 당황한 사이공 정부는 추안 장군에 이어 딘 소장을 그곳으로 보냈다.


딘 장군은 부임 직전 사이공에서 전통적인 반항지방인 북부에 기반을 둔 강경과 광 승과 합류, 동도해서 임지로 떠났다.


디엠 정권 때 사이공 군정장관으로 반정데모 지압을 수행한 그는 『정세가 별로 심각치 않다』고 했으니 그 수완이 두고 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