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21 인민공사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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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3-04-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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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67.2.21


 


[파리 코뮨식] 인민공사의 정체


중공홍란 / ()가 노린 것


 


꿈은 전국토 공사화


 


상해노동자들이 주동 난동으로 실권 탈취


정부와 당을 재조직


 


세계의 거대한 공용인 중공의 문화혁명은 상해코뮨 설치를 계기로 이념면에서는 모택동이 바라는 방향으로의 정지작업이 끝나가고 있다. 한편 권력투쟁의 면에서는 과거의 혁명동지이며 현재 반모세력의 총수인 국가주석 유소기와 중공당총서기 등소평을 관직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한 듯하다. 그러나 중공의 문화혁명이 종결을 짓기까지에는 많은 격동을 겪을 것으로 보이고 있다. 중공문화혁명이 결산단계로 향하는 현 시점은 모(毛)가 바라는 신질서를 위해 오히려 진통기이다. 이에 즈음하여 중공문화혁명의 이념면, 권력쟁취의 면, 권력구조의 인맥의 변화 등을 모아본다.


 


[이념면]


모택동의 문화혁명은 항상 상해에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곤 한다. 지난 1월 5일 상해 노동자들의 호소. 2월5일 상해인민공사의 발족.


상해인민공사는 1871년 파리 노동자들이 겨우 70일 동안 유지했던 파리코뮨 체제를 모방한 것이다. 노동자, 농민, 학생, 군인 등 순수한 무산계급의 대표들로만 구성한 정치체제-, 이야말로 모택동의 영원한 꿈인 것 같다.


「상해를 배워라」(학상해). 모택도의 지시에 따라 흑룡강성, 강서성, 신강성 등 먼 변방에서부터 문화혁명의 전위부대 홍위병들은 파리코뮨 식의 공사 발족을 서두르는 통에 중국대륙은 또 한 번 무정부상태, 혼란, 격동에 휩쓸리고 있다.


도대체 모택동은 그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면서까지 문화혁명을 밀고 나갈 이유가 어디 있을까? 문화혁명을 그가 말한대로 기성체제에 대한 조반(모반)이라면, 조반은 어째서 유리(이치가 있다)하다는 말인가?


중국에는 섭공이 용을 좋아한다는 고사가 있다. 섭공이라는 한 귀공자가 용을 좋아하여 궁전을 온통 용의 그림으로 장식했다. 천상의 진짜용이 그 소리를 듣고 섭공 궁전에 내려와 창안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섭공은 혼백을 잃을 정도로 놀라 도망했다는 이야기다.


모택동의 파리코뮨에 대한 집착은 2천 년 전의 이야기 속의 섭공을 연속케한다. 그는 전 부문에 걸쳐 공사화를 생각했다. 58년 농촌인민공사를 추진한 것은 27년 추수폭동을 일으켜 광동코뮨을 세웠다가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실패로 거듭하면서도 문화혁명을 준비해왔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농촌의 사회주의 교육운동, 사청운동들은 농촌에서 시작하여 도시를 마지막 탈취 목표로 삼는 모택동 전략에 입각한 준비단계였다.


65년5월 해방군의 계급제도 폐지는 군의 공사화를 뜻하며, 문화혁명의 주력부대로서 3백만 해방군을 확보한 공작이었다. 66년6월1일 북평대학에 처음 나붙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대자보를 가리켜 모택동은 「20세기 60년대의 북평 코뮨선언」이라고 평했다. 1월31일 홍위병들의 대연합에 따라 북평인민공사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자, 상해는 2월5일 상해인민공사를 정식 발족하여 선수를 쳤다.


당 이론지 「홍기」는 이것을 「상해 1월 혁명」이라고 부르고, 노동자5, 농민2, 군인2, 학생1, 당 정부기관원1의 무산계급 대표들을 선거로 뽑아 그들에게 전권을 맡겼다.


모택동은 문화혁명 곧 공사화 혁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吉>


 


[권력투쟁면]


권력투쟁을 클로즈업시킨 문화혁명은 국가주석 유소기, 당 총서기 등소평을 공직에서 내쫓고 실권파에 대한 거세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유일파의 뿌리가 아직 강대하여 그들로부터 탈권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을 조반파에서 인정하였다.


당 문화혁명소조의 조원 척본우는 지난 17일 북경대학에 붙은 벽보에서 『유일파의 영향은 아직 상당히 크다. 일부 지방에서는 그를 크게 숭배하여 모(毛) 주석의 초상을 걸지 않고 유소기의 초성을 걸어 놓았다. … 이들을 전국에서 일소하기까지는 아직 요원하다』고 말했다.


이는 조반파에게 철저한 실권파 제거를 위한 단결을 호소하는 것으로 앞으로 실권파에 대한 투쟁은 계속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권파를 완전히 몰아내고 모(毛)가 바라는 문화혁명을 완수하는데는 문제가 남아있는 것으로 관망되고 있다.


중공의 당 중앙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선전부장인 당 기관지 「홍기」 편집장이며 문화혁명소조의 조원인 왕력은 현재의 권력탈취투쟁에서 종래의 지도간부 즉 실권파들을 어떻게 취급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홍위병들의 권력쟁취투쟁이 『일체의 것에 반대하고, 일체의 것을 배격, 일체의 것을 타도한다』는 지나친 경향이 상당이 위헉스런 상황으로 이골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경고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현재까지의 탈권투쟁이 홍위병과 노동자의 혁명 조반파의 손에 의해서만 행해진 경향이 있어, 탈권 후 실제의 운영에 있어서 상당한 혼란이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는 징조가 있기 때문이다.


당 주석 모(毛)가 지시한 삼결합(혁명군중의 조직과 혁명간부, 군의 책임자의 결합에 의한 투쟁)은 자칫 잘못하면 홍위병에 의해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간부들 중 혁명 조반파에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현재의 탈권투쟁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혁명어 백과]


<혁명> 천명을 바꾼다는 뜻. 천명은 천자의 정치권력을 상징한다. 원래 중국왕조사에 나오는 역성혁명이라는 말이 그 어원이다.


<조반> 난(亂)을 만드는 것. 즉 모반을 말한다. 홍위병들이 스스로 조반파라고 하는 것은 유소기 일파를 실권파로 보고 그들에 대한 난을 일으켜 권력을 탈취하려는 입장을 설명한 것이다. 모택동에 의하면 문화혁명은 현 중공체제 전체에 대한 학생, 군인, 노동자, 농민을 포함하는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집권파에 대한 모반이다. 조반유리는 조반(모반)이 타당하다는 얘기다. 모택동은 이 구절을 홍위병들에게 직접 써주었다고 한다. 중국어로 유리는 이치가 있다는 얘기.


<인민> 모택동은 반드시 노동자와 농민을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거나 프롤레타리아화한 지식인 과기술자를 「인민」이라고 부른다. 이 인민의 한계는 항일전쟁 시절 중공정권 수립, 문화혁명시대로 발전하면서 점점 엄격해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문화혁명 중의 인민은 노동자, 농민, 해방군, 혁명적 학생, 혁명적 지식인, 혁명적 간부들만 가리킨다.


<민주> 대중들이 지도층 간부를 비판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모택동의 지도원칙 민주집중제에서 그와 같은 의미의 「민주」는 거꾸로 당 간부가 대중을 지도하는 「집중」이라는 말과 구별된다.


<대민주> 대중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의견이 백출하는 경우, 대중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옳은 길을 찾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대중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무시하고 강제로 한 노선을 강요할 때 「소민주」라고 한다.


<정치> 역시 범위가 넓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고 할 때 「정치」와는 다르다. 중공에서 「정치」라고 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말하고, 모택동 사상을 말하고, 특히 당의 지도노선을 말한다. 중공에서는 모든 사람의 생활이 전문적인 일을 말하는 「업무」와 「정치」로 구별되는데, 항상 정치가 업무보다 우선한다. 이것을 정치괘수(정치가 지휘한다)라고 말한다.


<문화> 사회학에서 말하는 「생활양식」이라는 뜻과 비슷하다. 중공에서 「문화」라고 하면 생산기술, 생산경험, 노동기술서부터 문학, 예술, 교육과학, 풍속, 습관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것을 가리킨다. 중국 사람들은 보통 문화를 배운다. 문화가 없다, 있다라고 말한다.


<경제주의> 보수가 생산을 촉진시키는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유소기는 인민공사가 농업생산을 결과적으로 저하시킨 원인이 보수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민공사의 실패를 공격하고 보수로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자극할 수 있는 합작사 단계로 농업정책을 후퇴시켰다. 조반파들은 이것을 경제주의라고 지칭하여 공격한 것이다.


<접수> 홍위병들이 어떤 기관의 운영을 맡아서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접수는 단순히 점령만을 뜻하지 않는다.


<접반인> 계승자라는 뜻. 홍위병들을 혁명 접반인이라고 부른다.


<활조> 단순히 산채로 잡는다는 뜻. 홍위병이 팽진을 체포했다는 뉴스는 사실은 활조라는 정도다. 이와는 달리 우리들이 쓰는 체포의 의미로는 「의법체포」라는 말이 따로 있다. 또 중국말로 「검거」는 나쁜 일을 적발 또는 고발한다는 뜻이다.


<검토> 자기비판을 말한다. 「검토합시다」는 비판투쟁하자는 강경한 뜻이 된다. 「검사」는 점검한다는 뜻이다.


 


[문화혁명소사]


65년11월10일 = 문회보, 오금 작(作) 경극 각본 「해서파관」을 비판.


66년4월14일 = 곽말약 자기비판.


5월9일 = 인민일보, 광명일보, 수필집 「연산야화」, 「삼가촌 예기」 비판.


6월10일 = 북평대학에 대학보 제1호 발표.


8월8일 = 당 중앙, 「문화대혁명에 관한 16개 항목결정」


8월18일 = 제1차 홍위병 집회.


9월23일 = 대자보, 유소기 공격.


10월27일 = 대자보, 등소평 공격.


12월27일 = 대자보, 유소기 자기비판내용 발표.


67년1월3일 = 남경 노동자 홍위병 충돌.


1월5일 = 대자보, 도주 공격


1월13일 = 군 문화혁명소조 개편.


1월23일 = 진백달, 북평코뮨 수입지시.


1월31일 = 북평 혁명 조반파 「대연합」 준 비위.


2월5일 = 상해인민공사 발족.


2월8일 = 당 중앙위, 홍위병 귀향령, 초중교 개학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