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정신'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굽힘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거짓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진실에 충실하기 위해 이성적이고 용기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리영희재단은 '리영희 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이들을 위하여 '리영희상'을 만들었습니다.

제7회 (2019년) 리영희상 - 수상 소감 & 수상자 소개

7회
작성자
재단 사무국
작성일
2021-01-06 13:01
조회
2043

수상소감


 


우에무라 다카시


 



 


() 아사히신문 기자 /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 <주간 금요일> 발행인


 


이번에 영예롭게도 리영희상을 수상하게 된 데 깊은 감명을 얻고 있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저널리스트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저는 생전에 리영희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년 6개월 전인 2017년 6월, 리영희 선생님의 ‘업적’에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1977년 겨울, 리영희 씨가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됐을 때 한국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일체 기사가 안 나왔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을 찾아가 아사히신문 특파원에게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한 바가 있다.” 당시 임재경 선생님은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었답니다.


저는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조사를 해봤습니다. 당시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은 오구리 게이타로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기사를 썼습니다. 1977년 12월 10일자 아사히신문 국제면에 “리영희 전 교수가 반공법으로 신병 송청(身柄 送廳)”이라는 제목의 3단 기사로 게재되었던 것입니다.“ 심각한 ‘사상사건’의 발생은 지식층에 충격의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으며, 언론 자유 투쟁으로 대학과 언론계에서 추방당한 멤버들이 잇달아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 기사를 즉시 복사해서 임 선생님께 전달했습니다. 임 선생님은 40년 전의 기사를 보고 감개무량한 표정이었습니다.


저의 연구실 벽에는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언론탄압사건을 특집으로 다룬 경향신문(2017년 4월 28일호)이 붙어있습니다. 기사가 나오자마자 그것을 벽에 붙여두었습니다. 기사 한복판에 1980년 석방 당시 사진이 첨부되어있습니다. 사모님께서 리영희 선생님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한승헌 변호사가 웃으면서 지켜보는 사진입니다. 암흑의 시대에 양심을 지켜 글을 계속 쓰신 리영희 선생님의 모습은 저를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생전에 뵙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지만, 지금은 이렇게 연구실에 있을 때엔 매일 리영희 선생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아사히신문 오사카 사회부 시기인 1991년, 전 일본군 ‘위안부’ 가 증언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전후 오랜 침묵을 지켜온 전시성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올리기 시작한 사실을 한국언론에 앞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20여년 뒤인 2014년, 저의 기사를 ‘날조’ 기사라고 비방중상 하였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우에무라 맹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전직이 결정된 대학에 “날조기자를 고용하지 마라”는 맹렬한 항의를 하고 인터넷상에서 저에 대한 비방중상을 반복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교수직을 잃었습니다. 심지어는 “딸을 죽이겠다”는 협박장까지 대학에 송부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굴하지 않고 역사수정주의자를 상대로 법정투쟁과 언론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마음대로 날뛰고 행동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를 직시하려는 여러 가지 움직임에 대한 공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에무라에 대한 공격’은 저의 문제만은 아닌 것입니다.


아베 정권하에서 ‘고노담화’가 무력화되고 일본의 침략전쟁에 따른 피해의 기억 계승작업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풍조를 바꿔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있는 위안부문제를 전하는 광장 ‘기억의 터’ 모뉴멘트에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도 이 말을 가슴에 새겨 행동할 것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한 가지 보고 드리려고 합니다. 2017년 가을, 저는 신문노동조합연합과 일본저널리스트회의(JCJ) 동료들과 함께 ‘저널리스트를 지망하는 일한 학생포럼’을 시작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학생들이 같은 곳에서 합숙을 하고 함께 취재도 하면서 서로 논의하는 시도입니다. 제1차는 같은 해 11월 서울에서 진행했으며,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2차는 2018년 8월 히로시마에서, 히라오카 게이 전 히로시마시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히라오카 전 시장은 신문기자 시절에 한국·조선인 피폭자문제를 기사로 하신 분입니다. 제3차는 2019년 2월 오키나와 나하에서 진행했으며, 올해 5월에는 광주 등을 방문해서 민주화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내년 1월에는 규슈에서 조선인강제연행문제를 배울 예정입니다.


동아시아에 친구를 가지고 기억을 계승하며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일본의 젊은 저널리스트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매우 험난한 시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재판은 삿포로와 도쿄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1심은 모두 패소였습니다. 부당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리영희 상을 받게 된 것은 “지지 말고 힘내라”는 한국 저널리즘계의 큰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한국의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수상을 계기로 일본과 한국의 리버럴 세력의 교류가 한층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수상자 소개


 


우에무라 다카시


 


1958년 일본 고치현에서 태어남.


1982년 3월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 졸업.


1982년 4월 아사히신문사 입사. 센다이, 지바지국, 오사카 본사 사회부를 거쳐 테헤란 지국장, 서울 특파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홋카이도 지사 보도부 차장, 도쿄본사 외보부(국제부) 차장, 중국 총국(베이징) 특파원을 거쳐 2009년 4월부터 홋카이도 지사 보도센터 기자로 일했다.


2013년 4월부터 하코다테 지국장을 마지막으로 2014년 3월 아사히신문사를 조기 퇴직.


2012년 4월부터 16년 3월까지 호쿠세이학원대학 비상근강사(시간강사)로 근무.


2016년 3월부터 한국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재직 중. 2018년 9월말부터 진보적인 일본잡지 ‘슈칸킨요비(주간금요일)’ 사장 겸 발행인.


1991년에 한국의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한일을 통해서 첫 보도. 그 기사로 우익에게 거센 공격을 받았다. 현재 도쿄, 삿포로 두 곳에서 명예훼손 재판이 진행 중.


저서로는 단저 <서울의 바람 가운데> (1991), 공저 <만화한국현대사 고바우 영감의 50년> (2003 ),공저 <신문과 전쟁> (2008), 단저 <진실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 > (2016)등이 있다. <진실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는 2016년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됐다.


 


植村隆


1958年 高知県出身


1982年3月 早稲田大学政経学部政治学科卒業。


1982年4月 朝日新聞社入社。仙台、千葉支局、大阪本社社会部を経て、テヘラン支局長、ソウル特派員などを歴任した。 以後、北海道支局報道部次長、東京本社外報部(国際部)次長、中国総局(北京)特派員を経て、2009年4月から北海道支局報道センター記者として勤務。2013年4月からの函館支局長を最後に、2014年3月朝日新聞社を早期退職。


2012年4月から16年3月まで北星学園大学非常勤講師(時間講師)として勤務。


2016年3月から韓国カトリック大学客員教授在職中。2018年9月末より、「週刊金曜日」社長兼発行人。


1991年に韓国の日本軍慰安婦の存在を日韓を通じて初報道。 その記事は右翼に猛烈な攻撃を受けた。現在東京、札幌の二ヵ所で名誉毀損裁判が進行中。


著書には、単著「ソウルの風の中で」(1991)、共著「漫画韓国現代史コバウおじさんの50年」(2003)、共著「新聞と戦争」(2008)、単著「「真実」私は捏造記者ではない」(2016)などがある。 「「真実」私は捏造記者がない」は2016年韓国語翻訳版が出版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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