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릴리대사에게 묻는다」

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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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1-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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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릴리대사에게 묻는다」(1988년 6월 12일 『평화신문』, 자유인)


 


릴리 주한미국 대사에게 묻는다


한국 학생들의 최근의 반미감정표시 문제에 대하여

대사는 학생들이 미국 기관에 대해 “히트 앤드 런 작전으로 ‘홍보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대사가 한국 학생들의 동기와 심정을 곡해하고 있는 전형적인 발언인 듯하다.
최근 미국 정책에 대한 비판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서울대 조성만 군을 비롯해서 미국을 반대하는 수많은 학생들은 모두 20대의 대학생들이다. 그들은 60세의 릴리 대사가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리라고 생각되는 만큼은 자기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청년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그것도 앞으로 40년은 더 살아야 대사의 나이가 될 전도양양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외치는 한국 학생들의 미국정책 비난이 고작 ‘홍보효과’를 노리는 것이겠는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대사는 (또는 미국 정부는) 한국 청년들의 마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광복 이후 40여 년간 사실상 한국을 지배하다시피 해온, 그렇기 때문에 비판이 일절 허용되지 않았던 한 외국인 미국에 대해서 이제 비로소 국민적ㆍ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을 갖게 된 새로운 세대다. 그들은 ‘반미주의자’이기보다 ‘민족주의자’인 것이다.
그 간절한 염원과 정열은 미국인들이 영국 식민지하에서 독립하려 했던 200년 전 보스톤을 중심으로 해서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일어난 미니트맨들의 애국적 충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들에게 정상적 방법으로서의 미국 비판 행동이 허용됐다면 어째서 대사가 경멸조로 비난하는 ‘히트 앤드 런’방식을 택하겠는가? 사실인즉 학생들의 행동방식은 미국의 서울문화원을 점거하고 대사관 대표에게 공개적 의사표시의 기회를 요구했듯이 ‘히트 앤드런’만도 아니다.
대사는 마치 미국의 서부활극 영화에서 등뒤에서 쏘지 않도록 규정한 미국 영화윤리강령 같은 꾸며진 행위규범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은 미국이 서부를 지배할 때의 미국인들의 행위가 영화처럼 그렇게 정정당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 광복 이후 미국이 한국(정부ㆍ국민ㆍ국가)을 주물러 온, 반드시 대사가 주장하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 고차적 수법을 알게 된 것이다. 미국은 ‘히트’하고 ‘런’할 필요 없는 막강한 강자다. 강자는 ‘런’하지 않아도 된다. ‘런’을 경멸조로 비난하는 것은 ‘강자의 논리’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어째서 미국(인)을 상대로 하는 테러가 그토록 많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대사에게는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의 투쟁방식은 ‘히트 앤드 런’이다. 만약 미국이라는 가공할 만큼 막강한 국가가 후진ㆍ약소국가들에 대해 미국이 국가이념으로 내세우는 ‘정의’를 적용했(한)다면 미국(인)에 대한 테러는 사라질 것이다.
강자인 미국은 ‘히트’하고 ‘스테이’(버팀)한다. 약자는 ‘히트’하고 ‘런’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다른 것은 강자와 약자라는 것뿐이다.

미국의 한국군 통제권(또는 작전권) 구조에서 광주사태에는 일절 책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대사는 미국의 ‘면책’을 입증하기 위해서 한국 시민들에게 한국정부나 군이 밝혀주지 않았던 많은 사실을 들어가며 설명했다. 막연히만 알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적지않은 교육과 계몽이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본인도 미국의 ‘유(有)책임’을 전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광주학살의 하수 군부대인 특전대(공수부대)가 소속한 한국군 제2군사령부가 한ㆍ미 연합군사령관 권한 밖에 있다는 것은 편제상은 사실이다. 미국 장교가 광주학살을 ‘직접 지휘’하지 않았고 ‘현장에 개입’하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대사의 반박대로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점은 광주학살의 책임을 논하는 마당에서는 다만 지엽적ㆍ현장적 문제며 또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으리라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군 병력 중 60여 만을 주한 미군사령관의 지휘권하에 편입하면서 어째서 박정희 정권 이후 반민중적 군부독재체제에 대항해서 일어날 것이 분명히 예상되는 민중적 항쟁을 무력으로 탄압할, 탄압하기 위한, 탄압할 수 있는 그런 부대병력을 그 권한 밖에 남겨두었느냐다. 이것이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그리고 그 의문과 회의와 불신은 ‘미국 장교가 현장에서 지휘를 했느냐?’의 현장적 차원의 가치판단을 훨씬 뛰어넘는 고차적ㆍ정치적 판단이다.
지휘권 밖에 남겨둔 부대와 군사력이 박정희의 1960년 쿠데타이후로 불법ㆍ비합법적 정권타도, 군인집권, 대정부 민중활동, 통틀어 군부정권 보위용이라는 사실은 1960년에 쓴맛을 본 당시의 주한 미군사령관 매그루더 장군이 시인한 바다.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은 그런 정치군(히틀러의 SS 및 SA와 같은)의 자유로운 이동ㆍ투입ㆍ탄압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꿰뚫어 알고 있는 미국이 어째서 그런 지휘권 체계를 편성ㆍ유지해왔느냐 하는 의문이 한국인의 머리에서는 쉽게 가시지 않는 것이다.
제2군사부대가 지휘권 밖에 있었으니까 미국은 책임이 없다는 릴리 대사의 주장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작전지휘권 체제의 정치성 또는 ‘계산된 의도’에 대해서임을 알아주면 좋겠다.

보병 제20사단 투입 승인 문제

릴리 대사는 연합군사령관이 그 지휘권하에 있던 제20사단의 광주투입을 ‘떨어져나간 건 사실’이라고 사실상 인정했으니까 승인 문제는 일단 밝혀진 셈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답변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대사는 “한국 정부가 연합사 휘하의 특정 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필요할 때는…… 한국의 합참의장이 연합사령관에게 통지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요청’인지 ‘통고’인지가 분명치 않다. 그 어느 쪽이냐의 천착은 일단 접어두고서도 더욱 큰 문제가 남는다.
대사는 그 말 뒤에 바로 이어서 “연합사의 목적은 대(對)북한 관계입니다”라고 언명했다. 즉 연합사의 목적과 군사력은 북한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릴리 대사는 미국의 면책을 위해서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첫째, 한국 정부가 제20사단의 이동을 ‘통지’할 때, 북한의 군사공격이 있었는가?
둘째, 한국 연합사가 제20사단을 북한의 개성, 원산 또는 평양으로 이동시켜야겠다고 ‘통지’했는가?
셋째, 연합사령관은 제20사단이 북한의 어딘가가 아니라 남한내의 광주로 간다는 것을 모르고 승인했는가? 만약 모르고 승인했거나 속았다면 미국 육군대장의 체면과 자격에는 손상이 가겠지만 그 책임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는 구실은 될 것이다.
넷째, 군대에서 지휘권 해제나 부대이동은 ‘작전명령(서)’로 이루어진다. 연합사령관은 제20사단 이동과 관련된 작전명령서에 광주 투입(이동)으로 명기돼 있다면 릴리 대사의 말대로 ‘대북한’ 목적을 위배한 이동을 승인한 것이 된다. 그 작전명령서를 대사가 제시할 수 있다면 미국 정부와 연합사령관에 대한 한국인의 사태 해석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여서 말한다면, 대사는 제20사단이 많은 시민을 학살하지 않았으니까 면책되는 듯 말한 적이 있다. 즉 1987년 1월 14일 전(前)미국 대사 글라이스틴이 서울 미국 공보원에서 가진 기자회견 내용을 원용한 적이 있는데, 비록 적은 수라 하더라도 목적과 규정에 위배한 이동으로 말미암은 희생을 그렇게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이지만 많은 학살을 했다면 대사는 뭐라고 변명하려 했을까 궁금하다. 탄압 목적으로 투입된 제20사단의 의사와는 달리 광주 현장의 상황 변화가 소수의 희생자를 내게 했을 뿐이다. 투입의 목적은 공정대와 다름없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그것도 면책의 유력한 변명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

연합사는 한국의 내정(內政)에 어떤 방법으로든 관여해서는 안됩니다라는 말에 대하여

이 구절을 릴리 대사가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그의 실수인 것같다. 차라리 덜 역설했더라면 자가당착과 전후모순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제20사단의 광주 투입 계획을 알면서 승인한 사실로 해서 연합사령관이 한국의 ‘국내 문제’에 이미 간섭한 셈이다. 광주사태는 ‘대북한 관계’문제가 아니니까.

릴리 대사가 인터뷰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국군이 보유하는 무기의 사용 목적과 제한에 관한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한국군의 무기는 개인용 휴대 장비류를 제외하면 미국의 ‘군사원조계획’(MAP)으로공여받은것이건 ‘, 해외무기판매계획’(FMS)에 의한 구입품이건 ‘, 잉여무기양도협정’(EDA)에의한것이건, 또는 미국의 라이선스를 사서 제작하는 공동합작 생산품이건 내국인에 대한 학살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것은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 정부가 정권의 국민학살로 말미암은 반미감정ㆍ운동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요구하는 조건이다.
광주학살에 사용된 무기는 그 어느 범주엔가에 속할 것이다. 협정 위반이다. 미국 정부는 광주학살 이후 전두환 씨와 그 정부에게 이 협정 위반을 문책한 일이 있는가? 없다면 미국은 최소한 무기사용협정 차원에서도 ‘묵인’내지 ‘추인’했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주권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하여

대사는 12ㆍ12사건과 광주사태와 계엄령 선포와 관련해 한국정부와 군에 “충고는 할 수 있지만……우리가 명령을 해 (한국 정부가) 정책을 바꾼다는 것은 한국 주권에 대한 모독입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의 주권을 이토록 존중한다는 사실을 릴리 대사에게서 들으면서 한국인으로서 감사와 경의를 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대사가 사용한 ‘명령’이라는 용어가 어떤 뜻으로 사용됐는지가 궁금하다. 아무리 ‘후견ㆍ보호국가’같은 미국이라해도 한국 정부에 대해서 ‘군대식 명령’을 할 수는 없다는 뜻이라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국(정부ㆍ대통령)에 대해서 ‘명령’과 동일 효과를 갖는 각종 방식과 수단의 압력으로 ‘명령’을 대신해온 일은 없는가를 묻고 싶어진다. 대한민국 건국 1948년 이후 그 같은 실례를 들자면 이 지면에는 모두 열거할 수가 없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이 발언에 정말 ‘모독’을 느끼는 한국인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하필 광주학살 행위에 대해서만은 제재 명령(또는 명령에 해당하는 압력)을 안 내렸는지 알고 싶다. 광주 시민과 한국 국민이 ‘모독’을 느낄까봐서였는가? 그랬다면 그것은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 같아서 품었던 감사와 경의마저 삭아버릴까 염려된다.

광주사태의 진상이 미국 관리에 의해서 7년 만에 처음으로 거론됐다는 데 대하여

대사는 “알다시피 7년간 광주사태에 대해 언급된 게 없습니다. 미국이 처음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작년 1월, 당시의 주한 미국대사 글라이스틴 씨가 미국문화원에서 기자들에게 말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미국의 공으로 돌린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하거니와,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 정부가 광주사태에 관해서 무엇인가 해명을 할 상황적 압력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언급한 것인가? 작년 1월은 이미 전두환 정권의 종말을 예견한 미국으로서 곧 닥쳐올 광주학살의 책임 추궁의 아우성을 예견하지 못했다고도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한미 관계의 진정한 개선을 위해서 주한 미국대사가 조금 더 솔직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7년간 광주사태가 언급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7년 동안이나 광주사태를 거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누구인가? 그것은 전두환 정권이었다. 우리는 자기 국내정치의 결과를 모두 외국(인)에게 전가하며 만족할 정도로 무식ㆍ무책임하지는 않다. 그것은 분명히 ‘한국의 정부’였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이 그럴 수 있었던 힘의 근거를 문제 삼지않고 넘어간다면 그것도 ‘진실’을 규명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그래서 또 미국이 관련된다.
미국 대통령이 된 레이건이 1981년 1월, 취임식을 마치기가 무섭게 제일 먼저 백악관으로 불러들인 외국의 강자가 누구인지를, 유능한 것으로 이름난 릴리 대사가 설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광주학살로 권력을 장악한 지 미처 반 년도 안 된 전씨를 백악관으로 불러 어깨를 두드리며 지지를 공약한 사람과 정부와 국가의 이름을, 명석한 것으로 이름난 릴리 대사가 설마한들 잊었을 리가 없다.
미국 정부를 대표해 그 이듬해에는 레이건 대통령 자신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전두환 씨와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의 내용은 주한 미국 대사관에 그 문서가 있을 터이니 여기에 재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실을 밝히자’는 말을 열 다섯 번이나 한 가운데 이것도 너무 지나치게 강조된 경솔한 부분인 것 같다.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유감 표명이 한국 정부에 의해 왜곡되고, 한국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말에 대하여

이것은 위 8의 정황과 표리를 이루는 내용이다. 그런 불행한 일이 카터 대통령 정권(1980)에서였느냐, 레이건 정권(1981~)하에서였느냐의 구분은 한국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카터 정권이 그런 유감 표시를 했다 하더라도 레이건 정권에 들어서는 그런말 한마디 들어본 일이 없다. 본원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멸사봉공하는 군부독재 정권이 들어섰는데 ‘미국의 소리’방송 따위로 ‘유감’의 의사 표시를 했다고 미국 정부의 ‘유감’을 진심으로 믿는 한국인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1963년 11월 1일, 남베트남에서 미국의 구미에 맞지 않는 고딘디엠을 소장 장군들을 교사해 폭사시킨 뒤에 미국 정부가 유감의 뜻을 표한 사실을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정변을 사주한 뒤에 역시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관례행사라는 사실도 한국인은 알고 있다. 너무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유감의 뜻을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미국 정부의 면책사유로 삼으려 한다면 한국인은 오히려 미국 정부의 성의를 의심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양측 군인의 합의에 의해 결정하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변명에 대하여

연합사의 육군과 공군은 각기 미국 장성을 사령관으로 하고 한국 장성을 부사령관으로 한다. 해군만이 한국 제독을 사령관으로 하고 미국인을 부사령관으로 하는 편제라는 사실은 우리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한국인은 군대의 ‘부’(副)지휘관의 권한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지 않을 만큼은 군대 사정에 익숙해 있음을 릴리 대사는 알 필요가 있다. 작전지휘권을 쥐고 있는 미국인 사령관에 대해 미국의 지원으로 존재하는 한국 군대의 부사령관이 중대 결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불문가지다 형식논리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은 쌍방 국민에게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광주사태 당시,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CIA 요원의 동태에 대한 오해라는 말에 대하여

광주사태 때 어째서 미국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대기했던가의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북한에게 사태 개입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고 본인은 선의로 해석하고 싶다. CIA 요원 증가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을 비난하는 한국인에게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한국인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국이 약소국가들에서 거듭해온 오랜 실례에서 나온 ‘판단’일 수도 있다. 이에 해서는 미국이 상대방에게 ‘오해’라고 몰아붙일 수만도 없는 많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이익체계로 연결된 약소국가에서 정변을 시도하거나 계획하거나 진행 중일 때, 미국의 군사력이 바로 그 지역 또는 부근에서 시위행동을 하지 않은 예를 본인은 과문(寡聞)ㆍ천학(淺學)의 탓인지 알지 못한다. 다른 대륙에서의 예는 그만두고라도 지금 니카라과ㆍ온두라스ㆍ엘살바도르ㆍ파나마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실을 한국 국민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미국을 대표하는 유능한 외교관의 ‘오해’다.
한국인의 미국의 행동에 대한 ‘오해’는 미국이 그 행동방식을 고칠 때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미국은 한국인들의 ‘오해’에서 배울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주기 바란다. 그러면 그것은 두 국민에게 고루 전화위복이 되고 양국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고 확신한다.

『동아일보』와 주한 미국대사의 합작품으로 보이는 인터뷰 발언에는 아직도 언급돼야 할 사항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지면 제약으로 말미암아 이것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릴리 대사의 건투를 기원하면서.

•『평화신문』, 1988.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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