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개인,사회에 요구되는 자기성찰 / cbs 김어준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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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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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대화라는 책을 쓰셨는데, 이 책이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더라고요.

리-그렇죠, 내 의사가 의지가 집필 안 하겠다기보다, 현실적으로 내 기능이 우리말로 중풍이지만 손발 마비됐던 것이 풀리지 않아요, 쓰질 못하잖아요, 이번 ‘대화’만 하더라도 구술로 하면서 아주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받아쓰는 사람을 여러 사람 바꿨어요, 젊은 사람들이 시대적인 현실과 해방과 일제시대 때 얘기는 더욱이나 알 리가 없고, 사람이름도 사건도 역사적 사실도 모르다보니 자꾸 바꾸고 고생이 많았어요.


사회-책을 읽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부모님의 결혼을 말씀하시면서 선비였지만 가난했던 친가, 지방 거부지만 일자부식이었던 외가와의 정약결혼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사람이 자신에 일에 가족을 포함해서 객관적이기 굉장히 힘들지 않습니까, 보통 가족에 대해서나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에 대해서는 예쁘게 미화하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제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리-엄연한 사실이고, 그 지방에서는 다 알려진 거거든요,



사회-이 책을 보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것은 ‘나’는 1차원, ‘너’가 생기면 관계가 2차원이 되는 거고, 나하고 너하고 상관없는 ‘그’ 즉 나와 너와의 평면에 안 들어오는 ‘그’가 생기면 3차원이 된다. 그런데 아무 상관없는 ‘그’의 좌표에 가서 나를 바라보면 그게 자기 객관화고 자기 객관화에서부터 지성에서 출발한다고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계에 대해 얘기할 때도 우리는 항상 세계 밖에 있고, 우리의 인식은 세계 안에 있어야 하는데, 세계로 진출한다고 말하는 인식들 이런 삼차원의 자기 인식이 객관화가 안 된 것,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리-개인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난 살아온 인생관, 신조, 실존적 행동 규범이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항상 ‘나’라는 또는 누구든 자기가 혼자 진공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사는 사회 속에 자기고, 자기가 사회에 작용을 미치고, 그 속에서 들어서 살고 있는 큰 무리라는 사회가 또한 자기에게 작용하고 변화를 요구하는데, 이러므로 해서 모든 개인의 생존은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자기가 항상 다른 타자에게는 내가 다른 타자이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비친 타자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어때야 하는가를 알지 않고서는 건전하고, 진정한 의미의 집단과의 무리 속에서의 객체의 진정한 혁명이랄까,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늘 자기를 캐치해 보려는 의도와 의식적으로 실존적인 노력을 통해서 해왔죠.


사회-자기 객관화는 경험을 통해 얻으신 건가요?



리-해방 이후 전개됐던 우리 사회의 타락, 모순, 온갖 부정돼야 할 성격의 사회를 보면서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 하는 과정에서 자기 객관화가 된 것이죠.


사회-우리 사회가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사회죠?



리-그렇다고 봐야죠.


사회-그것이 역사적 경험하고도 관련이 있을까요?



리-모든 전제와 관계 그리고 사고는 역사적인 것입니다. 우선 왜? 그런 의식이 없었느냐면, 우리는 과거 5백 년, 1천 년을 두고서 우리 사회체제가 모든 개체는 상하관계에서만 주로 존재했어, 개인이 없이 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뭔가 아래위로 권위, 품위, 권력, 충성 이런 것이 다 아래위 관계에서만 있었거든요, 그것에는 개체로서의 권위 이런 것이 용납되지 않고 인정되지 않죠, ‘무엇 속에 무엇’ 상하 질서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오면 역시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속의 돈, 지식, 교육의 차이가 우리 조선인들에게 있었지만, 통틀어서는 일본사람 밑에 조선인이 되는 것이지 횡적인, 입체적인 관계의 관념이 성립할 수 없었고, 해방 이후는 전적으로 혼란을 일으켰던 시대예요, 일정한 철학적과 사상적인 또는 실존론적인 사람의 실생활에 있어 어떤 관계로 형성되는 것이 없고, 군사정권 한 30년 동안에 그거야말로 철저한 명령에 의해 복종하는 대다수의 관계만 있지, 어떠한 상호관계나 입체적인 관계가 성립 안 된단 말이야, 이제 들어서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런 것을 포함해서 민주주의에요, 단위가 큰 NGO가 발언하고, 추구하고, 권리를 주장하고, 상호 간 연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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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고향 얘기하시면서 남북한 경제 개발 격차를 언급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북한은 사실 30년 앞선 공업발전이 있었다. 남한이 60년대 들어서야 면 단위 전기불이 들어왔다는 내용이 있던데요.


리-60대 뒤인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할 때 비로소 면 단위에 전기가 들어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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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해방 전후로 해서 남북한의 경제력을 비교하면 어땠었나요?



리-북한 쪽이 월등했죠, 아예 처음부터 일본 식민지 총독부 정치가 북한을 공업화, 광업화, 산업화하고, 북한 쪽은 일제시대에 이미 식민지 정권정책이 북쪽은 공업화, 남쪽은 농업화였죠, 그러니까 알만하지 않아요? 지금 꼭 남한이 공업화, 북한이 농업화 거꾸로 된 이 상태가 이미 일제 시대에 그랬으니까.


사회-요즘 과거사 청산을 얘기하는데, 해방 직후 미군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소련이 한반도의 독립을 지지하고, 미국이 신탁 통치를 주장 한 것을 미국이 한반도의 독립을 지지했다고 거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리-대부분이 그렇겠지, 우리야 그 당시 산 지식인으로서 정착관계, 국제정치를 연구하니까, 그것이 1945년 해방된 그해 겨울에 있었던 모스크바 삼상회의라는 영·미·소에서 소련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우리를 일본에서 해방시켜서 독립시키자는 약속을 했거든, 거기서 미국은 1904년부터 식민지로 통치했던 필리핀의 전리를 따라서 한국은 미개한 민족이니까 지들이 해왔던 필리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한 30년 신탁 통치하자는 주장을 했지, 영국의 처치는 제국주의자거든, 인도 등 다 쥐고 놓지 않기 위한 그런 제국주의 훈련이 철학이니까, 역시 동의한 거야! 그런데 소련은 약속을 했고, 조속한 시일 내에 독립시키기로 했고, 실제로 조선 인민들은 일본 제국주의에서도 용감하게 싸워왔고, 지식수준도 높다 해서 독립해도 된다고 했던 것인데, 동아일보가 모스크바 삼상회의를 미국이 즉시 독립을 주장하고, 소련 공산주의가 반대했다고 거꾸로 보도했어요, 그래서 데모가 일어난 것이에요, 이것이 남한에서의 민족 분열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첫 출발이죠, 이런 사실들을 한국 사람이 대부분 모르고. 이제 조금 후세대 학자들이 책을 보고 알기 시작했지.


사회-과거사 청산을 법으로 제정한다는 얘기가 많아요, 그런데 그것은 워낙 오래된 이야기고 시대적 한계라는 것도 있으니까,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할지 굉장히 애매하거든요, 예를 들어 홍난파 선생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좋아도 하셨고, 그 정도라면 시대상황도 있었고, 친일이라고 몰아붙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변호하신 부분도 있던데, 선을 어디서 그어야 할까요?



리-참 어려운 문젠데, 가령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군사정권을 지지하라고 할 때 적극적으로 나가서 감투 쓰고, 돈 벌고 하기 위해 한 지식인들이 있고, 예를 들면 교수가 대학에 안전하게 붙어 있으려면 한마디 써서 신문에 내야 했고, 나는 그것에 절대 반대한 사람이니까 피해를 많이 봤지, 그러나 이성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기 생존과 생활을 위해 약간에 마지못해 한 사람들이고, 그럼 그 약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냐, 그것은 계량화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나는 홍난파는 토착적인, 민족적인, 서민적인 정서를 노래로 읊었는데, 그러다가 말기에 일본의 강요에 의해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되니까 몇 가지 작곡을 한 것이지,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제에 직접적인 협력을 거부한 사람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만이 직접 거부한 거예요, 이것을 알아야 해요!


우리 남한 사람들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자에 대한 인식이 형편없어서 일제 시대에 가령 100명이 적극적인 민족항쟁 운동을 했다면, 공산주의자 50명, 사회주의자 20명 그리고 이른바 우익민족주의자 20~30명이야, 지금 일본에서 저렇게 군국주의로 나가고, 대외적 팽창주의로 나가고,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을 과거 대일본 제국으로 만들려는 이런 운동에 주동 세력이 전부 우익인 반공주의자야, 지금 우리 남한의 반공주의자, 우익주의자가 일본의 그것과 협력하고 있는 것이라고요, 아주 중대한 문제지...


사회-6·25로 넘어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일본군 장교 출신 아닙니까?



리-제대로 일본군도 아니야, 만주 괴뢰군이야 이것은 달라!



사회-그 당시 한국군을 기반으로 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속에서 성장하고, 나중에 쿠데타로 이어졌는데, 해방 후 6·25 정도쯤 해서 우리 한국군에 대한 평가로 군이 어떠한 존재였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요인인 것 같아서 여쭤보고 싶어요.


리-일제하에 일본 천황에게 충성 바쳤던 자들이 대부분이 대한민국 국군이라고 하는데, 그거에 80%가 과거에 일본군에 충성했던, 자기 발로 기어들어갔던 자들이에요.


사회-그 가운데서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탄생을 한 것이고, 그랬다면 초기 국가 운영 방식이 일본에서 배운 것을 고스란히 원리로 삼았겠군요.


리-두 가지로 하나는 일본 군대식인 명령식으로 군대절대복종 국가로, 말하자면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식의 규율, 벌칙 이런 것에다가 그리고 절반은 미국이 해방 후 우리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학문적으로 그것을 독재개발이라고 하고, 인간의 일체 권리와 개인의 권리는 다 몰수하고 오로지 명령으로 생산을 올리는 개발독재를 하고, 그리고 미국식의 방법으로 미국이 코치한 대로고, 그 방법을 좀더 구체적으로 낮은 차원에서 인간을 학대하고 고문하고 죽이고, 비인간화하는 따위는 일본 군대에서 배워온 것입니다.


사회-그 시대를 특징짓는 것이 사실은 일본 군국주의와 미국식 개발독재군요, 6·25 일화들을 읽다 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있던데, 회식 때 옆자리에 앉았던 기생이 선생님께서 술이 취한 사이에 없어져서 그 집까지 찾아가 나오라고 하다가 총가지 쐈는데, 거꾸로 훈계를 들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리-내가 참 한심하지... 그때 내가 22살이었으니까, 유치했지... 우쭐해서 술 끼도 있고, 책에 나온 데로 우리 부대 장교 전원이 지리산에서 전투할 때 많이 희생당해서 연대장이 한턱낸 거야, 잿더미가 된 진주에 기생이 어디 있어 아무 데서 데려온 것이지, 그런데 술이 몽롱해지니까, 소위인데 장군 같은 기분으로 우쭐해지니까 모든 여자들이 논개의 후예로 보이지 않겠어, 술 따르는 여자쯤으로 알고 집적거리다 쫓아가서 나오라고 하다가 창피를 당한 것이지, 아무것도 무기라는 것은 없는 송곳 하나 몸에 지니지 않은 기생으로, 술 따르는 여자로 무시하고 그런 요구를 강압적으로 한 나에게 총을 들이대고 있는 나에게 위세 딱 갖추고 훈계하기를 ‘젊은 장교 그러면 못쓴다고’ 했어요, 전쟁이라는 것이 사람을 웃기게 만드는 거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맨 처음 내 스스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함이 있는가! 별것이 아닌 인간에게 얼마나 저렇게 훌륭함이 있는가!, 무기를 찬 내가 얼마나 옹졸하고 한심한 인간인가를 깨닫게 된 첫 계기였어요.


사회-독도 문제와 엮어서 최근에 미·일에 어떤 군사적 이해가 합치되면서 일어나는 국제적 변화들도 있는데, 일본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리-지금의 상황은 1903년~1905년으로 돌아간다고 보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일제가 중국을 침략할 때 1930년대 상황 같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고, 그때 일본이 대국이라고 생각했던 청나라를 감히 전쟁으로 뭉개버리고, 1905년에는 세계 강대국이라는 최강 육군을 자랑하는 러시아를 뭉개 버려요, 그것은 일본의 침략주의와 팽창주의 의도로 30~40% 정도로 봐, 나머지 60~70%은 영·미의 세계 지배, 즉 아시아 지배의 큰 정책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야, 1905년 가쓰라-태프트 협정으로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미국이 점령할 테니까, 한국은 일본 너희가 점령하라고 하고 동시에 영국이 1902년에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어서 일본을 지원해, 그러니까 미국과 영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을 앞세워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와 전쟁을 해서 완전한 승리로 이끌어 줬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영국은 중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다소간의 이권을 일본에 나눠주고, 이런 식으로 하려고 했던 것을 지금 일본이 단독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큰 역사적인 국제 정치와 모략, 음모, 이권관계의 구도를 보면 미국과 일본이 뭘 하고자 하는 것인지 분명히 들어나, 1867년 일본이 근대화되면서 정권을 천황 정치로 바꾸고 홋카이도 땅을 점령하고 곧 대만을 점령해 동시에 독립국 이었던 류큐라는 지금의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태평양 쪽에 있던 섬들을 점령하고, 이것이 다 미·영의 지원을 받으면서 아시아에서 묵인 받은 거예요, 그러면서 미·영은 중국 대륙에 대한 패권을 확립하게 됐던 것이죠.


사회-그렇다면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해 연속적으로 발언하고, 또 긴장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사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하고의 관계를 강화하고,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을 견제하게 하고 그 속에서 한반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해 줘서 일본이 자신감을 얻고, 이런 구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군요.

리-그렇죠. 극복해야할 문제죠.


사회-단순히 일본이 독도 하나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죠?



리-아니에요, 그런 조금 한 게 아니 예요.


사회-그렇다면 최근 노무현 정권의 외교적 자세 변화는 긍정적으로 봐줘야겠네요?



리-그것도 뭐 기본자세는 마땅히 그렇고, 그러나 표출된 구체적 방식에 있어서는 보다 더 세련돼야 할 필요가 있지, 나는 일본과의 문제를 놓고서 좀 더 우리 국민이 판단함에 있어 신중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자신을 반성 할 줄 몰라, 왜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어! 뺏긴 것에 대해서만 주먹질하고, 삿대질하고, 왜 뺏긴 자신들의 조상과 자기들이 정말로 병신노릇을 했다는 반성은 안 하고, 일제 숙청 잔재의 표시인데 우리나라의 반공 우익정당의 인간들이 청산 반대하잖아! 어떻게 일본에만 청산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 스스로도 청산도 못 하면서! 일본의 극우반공주의자들의 세력이 이런 것을 끌고나가고 있는 거야! 군사력을 확대하고 아세아 제패를 위해 그 세력과 우리 남한의 극우 반공주의자들은 미국을 모시고 극우 반동주의 공동 전선을 지금의 북한에 대해 공동전선을 펴나가자고 했던 것이 우리나라에 거의 7~8할에 이르는 극우 반공주의 우익세력이야! 일본의 그런 세력이 우익반공세력이고,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본의 양심적인 세력 즉 독도니 뭐니 군국주의, 팽창주의 확장을 반대하는 세력이 일본 안에서는 공산당, 사회당 그리고 리버럴한 자유주의적 서양 교육을 받은 이런 세력이에요, 우리 한국 국민들은 착각을 하고 있어, 우익과 좌익이 어느 쪽이 범죄적이냐, 어디가 평화를 깨뜨리고 있고, 어느 쪽이 평화를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쉽게 표현해서 우익과 좌익이라고 할 때 일본인 좌익은 평화를 원하고 일본 평화 헌법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 전체를 극우 반공주의, 군사복구주의, 천황주의, 제국주의자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곤란해, 미국이 그렇게 일본을 몰고 가고 있기 때문에 일본 우익은 자신감을 얻고 신이 나서 꼭 100년 전에 한 길을 가고 있는 거야!



사회-최근에 대미관계의 인식이 변하고 있고 촛불 시위 같은 것도 있는데, 그런 것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드세요?



리-너무 늦었지, 이제야 겨우 꿈에서 깬 거야 남한에 인간들이, 전 세계에서 불장난 하는 것은 미국이 다 시작하는 거야, 뿐인가, 미국은 방화범이면서 소방사야, 남의 집에 가서 불 질러 놓고, 불났다 소리지르고, 소방사가 돼서 불총 쏘고, 물총 쏴서 집 다 허물어 버리는 거야, 그러고는 엉뚱한 놈을 방화범이라고 잡아가 지고 다시 미국은 경찰로 둔갑해, 그래서 후세인을 완전히 기소한 거 아냐, 만들지도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만들려고 했다, 화학 살해무기인 생화학무기를 만들고 있다 등 있긴 뭐 있어! 아무것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후세인을 방화범이 아니라고 말해도 미국은 내가 방화범이라고 하면 방화범인 줄 알라는 식으로 잡아넣고, 불난 집에 유가족에게 가서 하나님의 기도를 드려! 불은 계속 타고 있고, 계속 이 순서대로 돌아가는 거야!



사회-80년대로 돌아오면 미문화원 방화 사건부터 비롯된 것 같은데, 대부분의 시국사건의 배우인물 혹은 주동자, 조종자 등 이것의 내막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리-1980년 5월 17일 밤 11시에 일어 난 건데, 계엄령 선포하면서 다 잡아넣고 탱크가 광주로 진입하고, 나는 11시에 느닷없이 검을 옷을 입은 사람들한테 끌려서 지하 3층 암굴 감방에 들어가서 조사받은 내용이 자꾸 김대중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거기서 직사할 정도로 조사받고 몇 달 만에 나와 보니까,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거야! 계엄령 선포는 18일 0시에 하고, 그 전에 우리를 다 잡아넣은 거야! 그러니까 나온 그날 아침 집사람이 신문을 보라고 해서 보니까 내가 광주 폭동에 주모자가 돼 있어, 또 연세대 김동길 교수, 고은 시인, 인명진 목사하고 또 한 두 분 더하고, 그런 식으로 당한거야, 여러 가지 사건은 내 책 때문에 그랬고,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너무나 내 책이 많이 읽히니까 내 글이 젊은이들의 눈을 뜨게하고, 입을 열게하고, 귀로 듣게 하니까 자기들이 몇 십 년 동안 공들였던 극우 반공 폭력적인 통치가 금이 갔다고 하는 그것은 참 묘한 거야!



사회-역대 대통령들을 거의 다 겪으셨는데, 간략하게 특징적으로 말해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리-제왕, 황제 일체의 민주적 절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사회-윤보선 대통령.


리-그 양반은 무력했고.


사회-박정희 대통령.


리-말하자면 범죄자고, 변절자지 왜냐하면, 일제시대에 충성하고 우리 만주에서의 독립군을 쫓아다니고, 해방이 되자 남한에 돌아와서 남로당에 대한민국 국군 내의 비밀 정보 책임자가 되는 거야! 그런데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이 나서 잡히니까, 그 명단을 전부 군영에 갖다 바쳐! 그래서 수백 명에 과거 동지들이 총살당하기도 하고, 엄청난 형무소 살이 하고, 그렇게 변절해, 그 다음에는 굉장한 민족주의자인 척 하면서 복권해요.


사회-전두환



리-그건 깡패고, 지금도 봐 대통령이랍시고 앉아 있으면서 훔쳐 먹은 돈 계속 나오고, 그래도 노태우는 폭로되니까 거의 다 회수 당했지만 전두환이라는 자는 지금도 어딘가 몇천억 숨겨놓고 안 내놓고 있잖아.


사회-노태우



리-물에 물 탄 것 같은 분이고.


사회-김영삼



리-철학이 없는 사람이지, 그 대신 한 가지 잘한 것은 있지, 뚝심이 있어서 그 썩어빠진 군대 그러니까 권력의 덩어리로 뭉쳐 있던 불량집단 군대의 기본 조직을 쳐버렸거든, 그러지 않았다면 과거의 썩은 집단들이 영원히 지배할 테니까.


사회-김대중



리-김대중씨는 김영삼씨가 군대를 쳐버린 바탕 위에 들어가서 남북한의 민족 공동체적인 어떤 대 전환을 이룩한 거야.


사회-노무현



리-이제 2년밖에 안 했으니까 왔다 갔다 하고 있잖아.


사회-그럼 지금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생각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리-누구나 다 정치할 수 있는 자격은 있는 거니까, 자기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서 분명한 반성을 해야지... 얼마 전에 TV를 보니까 호남 지방에 민심을 잡기 위해 갔다고, 그러려면 그 사람이 똑바로 이해해야 해 호남지방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혹독한 차별과 멸시와 수탈을 누가 했는가를 아버지가 했다는 것을, 그 전에는 영남, 호남하고 이런 차이가 없었어, 이것이 나는 민족의 절반인 이 상황 속에서 박정희가 또 동서로 민족을 분열 시켰다는 것이 제일 큰 잘못이야!



사회-94년 환갑이 지나서야 뜨거운 물이 나오는 아파트로 처음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국가적으로 보거나 당대의 지식과 지평으로 굉장한 위치를 지니셨지만, 개인적으로 사모님한테는 돈 못 벌고 야속한 남편 아니었나요?



리-물론이죠, 실제로 한심한 남편이지,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겠어! 94년에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곳에 와서 틀면 더운물 나오는 이런 기적 같은 생활을 그제야 하게 됐으니 말이야! 나야 늘 죄송하지 우리 부모님을 26년간이나 모셨잖아 보통일이 아니지...


사회-사모님이 첫 사랑이셨나요?



리-사랑이라는 것보다 중매고, 그 전에는 연애를 따로 안 해봤고,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몰랐지 각박하게 살았으니까, 이 아파트에 와서 애들 결혼시키고, 지난 10년 사이에 나 자신도 경찰서 앞에 지나가도 두렵지 않고, 형무소 앞을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집사람도 마음을 놓고 하지, 그래서 마치 지금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 늙은 나이에 처음으로 진정하게 사람의 마음에 깊이 이런 것에 자기 마음이 들어가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아무 말 없이 사랑의 표시 없이 말하자면 공기와 공기가 합쳐지는 것처럼 물과 물이 합쳐지는 것처럼 하나가 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런 상태예요.


사회-굉장히 파란만장한 시대를 사셨는데,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으세요?



리-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께 효도를 못했다는 것이 후회가 되죠, 물론 집사람도 그렇게 살아오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하고, 그리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한 나의 책임 때문에 사랑이 표현되지 않은 까닭으로 해서 미안하게 생각하죠, 그러니까 공적으로는 고생했지만, 이 사회를 변혁시키는데 내 발언과 책을 통해 수 많은 젊은이들의 정신, 사상, 세계관이 바뀌어서 그 젊은 지식인들 수십만 명이 우리 사회의 주요 요소에서 중심적인 역할들을 하고 있으니까 이만하면 내가 조금은 뭔가 했다는 생각을 하죠.


사회-마지막으로 요즘 세대들은 물자도 풍부하고, 그러나 여전히 자기에 관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는데, 젊은이들에게 한 가지 부탁하신다면.


리-그저 다른 것 다해도 좋아! 그런데 난 그 이기주의적인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멋대로 하고, 모든 부작용과 책임과 사회적 폐해는 전부 남에게, 사회에 돌리는 것은 하지 말고, 사람들과 같이 사는 우리 사회 속에 내가 산다는 것을 알고, 나도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을 갖고,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 생각하고, 자기만이 가치로서 방종하지 말아 준다면 훨씬 더 행복할 거야! 모두가 조화된 행복이 결국은 자기에게 다 돌아오는 거니까!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무서워요.

▶진행:김어준

2005년 4월 2일 CBS라디오 김어준 진행의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방송 풀어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