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박노자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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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1-15 17:3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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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미군철수 15년 계획 세우자”


리영희-박노자 교수의 만남… 미국의 대북한 침략과 세계정복 야욕을 경계한다


귀화한 박노자 교수가 가장 만나고 싶어한 우리 시대의 지성 리영희 교수. 두 사람이 만나 세계정세와 한반도를 걱정했다. 중국·러시아 침략까지 노리는 미국으로 인해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까지 있다는데….


“한국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굽니까?”


방학을 이용해 잠시 한국에 온 박노자 교수(31·오슬로국립대 한국학)에게, 어느 날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주저없이, 즉각 답이 나왔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리영희 교수(74·한양대 대우교수)였다. 박 교수는 너무나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한 모임에서 잠깐 인사를 드린 적은 있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며 꼭 만나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팬레터’를 보낸 뒤 답장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리영희 선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마지막 민족주의자”라고 평했던 그는, 대담이 끝난 뒤엔 “구한말의 우국지사를 만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리영희 교수도 박노자 교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러시아인으로서 한국 국적을 얻고 현재는 노르웨이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개인사에 호기심도 보였다. 리 교수는 대담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단, 딱딱한 ‘인타뷰’보다는 ‘인간적인 만남’이 좋겠다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고 싶다고 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의 리영희 교수 자택에서 이뤄진 대담은, 그러나 한반도와 세계정세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흐르고 말았다. 노교수는 세상문제와 인연을 끊고 내면세계에 침잠하고 싶다고 했지만, 가공할 만한 전쟁의 위기가 아직은 그를 자유롭게 놔두지 않는 듯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가 느릿느릿했을망정.


장마를 피하러 인도네시아 발리로


리영희 : 거 며칠 전 텔레비전에 나왔었지?


박노자 : 맞습니다. 저희 <아웃사이더> 잡지사 사장이 ‘병역거부’ 양심선언을 하는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리영희 : 잠시 서울에 들어와 있는 동안 그런 모임에도 가야 하고… 바쁘구만요.


박노자 :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바빠도 리영희 선생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그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몇달 전에 쓰신 그 한시 말입니다. ‘부씨광폭 부지기극’(否氏狂暴 不知其極). 부시의 광폭함을 한시로 잘 규탄하신 내용…. 그런데 요즘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리영희 : 나는 하루에 세 시간쯤 산보해요. 뒷산 숲속에 아주 예쁜 공원이 있지. 근데 요새 장마가 져서 비올 땐 못해요. 장마가 져서 비가 오면 신경환자는 아주 죽어요. 온몸이 저리고 잘 때 온몸에 땀이 주르르 흘러.


기자와 박노자 교수가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갔을 때, 리영희 선생은 와이셔츠를 입고 소매 단추를 막 잠그는 중이었다. 그러나 손이 떨려서 그런지 자꾸만 엇나갔다. 장마철엔 신경통이 더욱 도진다는 그는 겨울에는 또 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린다고 했다. 오랜 수감생활로 얻은 병이다. 그래서 몇년 전에는 따뜻한 타이의 한 시골에서 한겨울을 난 적이 있다. 습기가 적은 동남아 지방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낀다. 올 여름에도 조만간 인도네시아 발리로 ‘피난’을 갈 계획이라고 들려준다. 대학 제자가 운영하는 현지의 작은 호텔에서 여름이 끝나는 8월까지 머무를 작정이다.


리영희 : 내가 중추신경이 12cc나 출혈됐었거든. 중추신경이 죽었다고. 그런 환자치고는 이만하면 아주 가벼운 겁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해요.


박노자 : 선생님이 한국에서 중국을 잘 아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싶었습니다. 먼저, 어떻게 해서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리영희 : 6·25전쟁 때 우리 부대가 최전방에서 중공군하고 맞닥뜨리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제대해서 통신사 외신부 기자를 할 때는 중국 혁명이 한창 진행중이었구요. 난 소련의 스탈린식 전체주의와 미국식의 타락부패한 이기주의가 아닌 그 중간에 새로운 인류의 생존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것이 모택동(마오쩌둥)과 그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 모색되는 것이 아닌가 주시했던 거지요. 남들이 ‘중공’이라고 하면서 겁내던 1950년대 말부터 책도 내고 글도 쓰고 했습니다. 80년대까지 그랬어요. 그것 때문에 형무소도 갔지만. 그러나 중국에 큰 체제변화가 온 뒤에는 물러났습니다. 중국이 개방되고 자본주의화되는 과정은 누구나 공부할 수 있고 전문가가 될 수 있잖아요.


박노자 : 중국의 자본화에 대해 긍정일변도로만 평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지 않겠습니까?


리영희 : 지금 벌어지는 중국의 내부적 변화에 대해서는 내가 연구하고 있지 않거든요. 그 대신 국제관계 속에서의 중국의 움직임 같은 것은 면밀히 지켜보고 있지요. 대통령, 미국 통치집단을 너무 모른다


박노자 : 미국은 지금 대북한 침략계획에 부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중국이 미국과 야합할 가능성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신 것을 봤습니다.


리영희 : 그럴 가능성이 일부분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대만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홍콩 마카오 다음에 남은 게 대만 아닙니까. 중국 국토 원상복구의 대단원을 이루는 거니까. 반면 미국으로서는 대륙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게 대만문제란 말입니다. 하나는 영토문제고, 둘째는 대만 군사화이고 셋째는 대만을 핵무장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죠. 중국으로서는 그 몇 가지를 미국으로부터 양보받아야 할 텐데, 자연히 북한문제에서의 미국의 요구를 대만문제와 바꾸는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거지요. 그게 늘 내가 걱정하는 겁니다. 역사에서 보듯이 중국 민족이 얼마나 우회적으로 술수를 쓰는 데 능한 민족입니까. 1936년 장개석(장제스)이가 모택동 팔로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만주의 군벌 장학량(장쉐량)을 불러들였단 말이에요. 근데 거꾸로 장학량이가 장개석이를 납치해서 감금한 뒤에 국공합작 항일투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박노자 : 그게 유명한 서안사변이지요. 저도 참 걱정입니다. 부시가 혹시 대통령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득표전략의 일환으로 대북한 긴장의 수위를 높이지 않을지….


리영희 : 그렇습니다. 1994년에 클린턴이 북한에 전쟁하려고 했던 그 단계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지요. 부시의 수법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전쟁까지의 과정에서 잘 드러났거든요. 이라크에 대해서 처음부터 전쟁하게끔 전부 계획 세워놓고, 세계원자력기구의 현지조사라든가 대량살상무기 조사를 시킨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어요. 말하자면 긴장의 도를 높이고, 다음에 미국 국민들의 적개심을 높이고, 군대의 준비를 착착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맞추어서 그렇게 가는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부시는 그야말로 깡패예요. 테러리스트예요. ‘깡패가 누구냐’ 하는 행동의 준거로 말할 때, 미국은 조건을 완전히 다 갖춘 나라지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미국 정권 지배자들의 생태적인 본질을 모르는 것이 문제야. 내가 두달 전에 기독교방송과 인터뷰를 하다가 오해를 받았는데….


박노자 : “대통령이 무식하다”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웃음)


리영희 : 그래요. 대통령의 방미외교를 어떻게 생각하냐기에 이렇게 얘기했어요. 미국을 지배하는 통치집단, 그러니까 군·정보국·군수자본·재벌·유대인 호전세력·원리주의 기독교그룹들이 한덩어리가 돼서 전쟁을 해야 미국 경제가 돌아가고 선거에 이긴단 말이에요. 그래야 국회의원들이 자기 주에 군수공장을 설치하고 군수자본 들여와서 취업률을 높입니다. 또 그래야 표가 올라가서 다시 당선된단 말이에요. 이런 집단들의 대표가 부시인데, 그런 집단들의 생태를 전혀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참 무식하다 그런 거지. 근데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완전히 인간적으로 무식한 것처럼 얘기가 돼버렸어.


박노자 :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외교를 보시면서 민족의 생존방법으로 부적합하다는 느낌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리영희 : 그렇죠.


박노자 : 사실 미국에 굽신거리면서 살려달라는 식인데, 그 사람들이 굽신거린다고 살려주겠습니까?


리영희 :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북한에 대해서 전쟁을 해야 할 텐데, 딴소리하면 제 아무리 굽신거려도 소용없고. 그 양반이 미국 가서 갑자기 링컨 존경하게 된다고도 했는데, 또 그게 무슨 소리야? (웃음) 인류사에 존경할 만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링컨의 이미지는 미국 애들이 조작한 거라고.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스피치에서 ‘포 더 피플, 오브 더 피플, 바이 더 피플’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뒤에 보면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종차별을 얼마나 했는데….


미군 철수 15년계획, 청와대서 외면당하다


박노자 : 얼마 전 노르웨이의 유명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 선생과 전자우편으로 대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도 한민족의 생존전략으로 가장 적합한 게 뭐냐 여쭸더니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미국과 거리를 좀더 두고, 북한과의 민족공조를 더욱 공고화하고, 미군의 철수계획을 구체적으로 연도별로 세우고…. “전쟁 일어났을 때 미국 편에 서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히 하면, 한민족이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영희 :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평양 가기 전에 남북문제에 관심을 가진 20여명을 초대했었어요. 그래서 청와대에 갔는데… 그때가 미국 국방장관이 미군은 통일 뒤에도 주둔한다는 소리를 하고 그럴 때예요. 나는 그랬지. 지금 한반도 위협을 조성하는 원천과 근본원인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래서 나 같으면 김정일 지도자하고 이런 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의하겠다 말했어요. 그 방법은 이랬어요. 총 15년간의 계획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평소에 주장해온 햇볕정책을 경제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 꾸준히 지속해 나간다. 꾸준히 5년을 계속하면 긴장이 낮아질 것이다. 그렇게 5년 착실하게 하면 미군 주둔의 허구성이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 말이야. 그럼 그때쯤 가서 주한미군이 맡고 있는 휴전선에서의 방위 역할을 주한미군을 포함한 국제연합평화유지군으로 교체하는 제안을 하시라. 그럼 부분적으로 그때부터 5년간에 걸쳐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킨다. 그 대신 미국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서 주둔한다고 주장해왔으니까, 북한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전세계적으로 선언하게 하라 이거지. 그럼 미국으로서도 더 눌러붙어 있어야 할 구실이 없어지지 않겠소. 벌써 그렇게 되면 10년 아냐 그동안 상징적으로 휴전선 방위를 국제평화유지군이 맡게 되면 미군의 실체는 없어진 거다 이 말입니다. 그럼 10년 뒤 그 단계에 오면 작전지휘권과 군사관계의 결정권을 한국에 이전시켜라 이 말이야. 그렇게 해서 또 5년을 해나가는 사이에 휴전선에 외국 군대가 있을 필요가 없는 단계까지 남북한에 평화 안정정책을 정립하면 그때는 미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가 5년 동안 다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죠.



박노자 : 상당히 상세한 계획을 잡으셨네요.


리영희 : 근데 김 대통령 얼굴을 보니 안 좋아하더라고.


박노자 : 아, 그랬습니까?


리영희 : 내가 옛날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 아닙니까. 그날 청와대 들어가면서는 반갑다고 악수했는데, 나올 때에는 내 앞에 두 사람 남겨놓고 악수하다 저리 가더라고. (웃음) 저~어리. 그래서 “이거 아니구나” 생각했지. 그걸 김대중 대통령이 제대로 듣고 반응하면 곧장 그 내용이 미국 정보부로 들어가거든. 미국 압력이 두려우니까, 아예 멀리하더라고. 어쨌든 난 15년을 잡는 거예요. 아마 김대중 대통령도 김일성 주석이 94년에 한 얘기를 알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94년에 카터가 평양에 핵문제 해결하러 갔을 때, 미국이 전쟁을 안 한다면 미군의 남한 주둔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길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북한도 그랬는데 우리가 미군철수니 뭐니 하는 얘기할 필요가 뭐 있나 그렇게 생각했겠지. 어쨌든 우리가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15년의 기한을 두고 3단계의 그런 군사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2020년 정도에 통일은 아니더라도 남북한에 전쟁 없는 토대를 구축하고 외국군 철수를 이룰 수 있다는 거지요.


내년 초 미국이 북한 침략할 수도


박노자 : 여태까지 제안된 민족생존의 방안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생각됩니다.


리영희 : 난 내년 초쯤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미국이 착착 전쟁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박노자 : 미군을 남쪽으로 빼돌리고….


리영희 : 나는 그걸 보면서 아 북한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이 가진 장거리포를 미국이 제일 겁내는 거거든요. 그 장거리포의 사거리 내에 있으면 그 피해를 자기들이 보니까. 사거리 밖으로 미군을 빼고 나면 미사일 요격망, 그러니까 미사일 디펜스를 만들어놓은 거나 효과가 같은 거예요. 상대방 공격이 미치지 못하는 데에다 갖다놓으면 피해를 안 볼 수 있으니까. 미국은 대신 우월한 공군력과 미사일로 북한을 맘대로 공격할 수 있단 말이에요. 거기에 대해 북한이 반격을 하면 남한 사람들만 희생된단 말입니다.


박노자 : 그건 미국이 아랑곳하지 않는 문제 아닙니까.


리영희 : 그래서 지금 빼는 거예요. 미국의 간사한 군사전략입니다. “2사단 평택 이남 배치” 얘기가 나왔을 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공식논평을 냈잖아요. “미국의 그런 전략으로 말미암아 남조선 인민에게 피해가 가게 될지도 모를 중대한 사태에 책임져야 한다”고. 정말 위험한 사태입니다. 그건 그렇고 난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오슬로대학은 어떻습니까. 대우는 괜찮습니까?


박노자 : 노르웨이는 고물가 고임금 나라입니다. 임금은 비교적 높지만 세율도 높습니다. 적게는 36%에서 많게는 70%까지 갑니다. 리영희 : 복지국가의 문제가 그건데….


박노자 : 대부분 노르웨이 사람들이 체제에 큰 불만이 없습니다. 그만큼 혜택을 많이 받습니다.


리영희 : 미국적 지배력이 커질수록 전통적인 서구라파 나라들이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겠지요.


히틀러 파시스트가 미국에서 부활한다


박노자 : 요즘 유럽연합이 동구라파를 포함시키지 않았습니까. 폴란드, 체코 등의 나라들이 유럽연합에 완전히 동화되면 그 인구는 곧 4억명이 됩니다. 지금도 유럽연합의 화폐인 유로가 달러에 비해 훨씬 강세를 보이고 신흥시장에서 우세를 보입니다. 러시아 같은 경우는 지금 달러 사용이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습니다. 대신 유로화를 사용하고… 달러로 저축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이 미국에 대한 경제적 반격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리영희 : 그런데 이라크 전쟁과 함께 동구라파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벌써 7개 나라가 미국의 군사기지화됐는데, 이거 호락호락 유럽연합에 넘기지 않을 겁니다. 갈등이 앞으로 심화될 거예요.


박노자 : 진짜 목적은 중국과 러시아 침략이죠.


리영희 : 그럼요. 특히 중국에 대해서 카스피아해에서 파키스탄까지, 흑해에서부터 남부 인도양까지 포위했다구요.


박노자 : 인도와의 관계를 더 강화해서 인도를 괴뢰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리영희 : 파키스탄이 미국화되니까, 인도 총리가 20년 만에 베이징을 찾아와서 우호관계를 돈독히 했다 그래요. 파키스탄과 인도는 옛날 소련과 미국 있을 때 이쪽 붙었다 저쪽 붙었다 해서 알 수 없는데, 하여간 미국은 저 발틱해에서 인도양까지 중국을 포위하는 옛 소련연방을 다 지배하게 됐으니까.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에요.


박노자 : 대륙의 큰 국가들에 대한 침략을 통한 완전한 자원지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리영희 : 자원은 두말할 것도 없고, 완전히 군사전략적인 포위망을 만드는 거지요. 미국이 한번 이렇게 잡으면 뿌리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우리 한국의 어떤 지식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미국은 거머리와 같은 나라다. 거머리 알아요?


박노자 : 사람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대단히 좋은 비유이십니다.


리영희 : 한번 붙으면 배가 터지도록 뺐어먹지 않는 한은 절대 안 떨어지는 나라라는 거죠.


박노자 : 소련과 중국 바로 중간이 키르기스스탄 아닙니까. 지금 미군이 거기에다가도 주둔기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와의 관계를 강화시켜서 나름대로 미국의 장래침략을 예상하고 지금 나름대로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리영희 : 91년에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처부순 다음에 이른바 ‘신세계질서’를 선포했어요. 그러면서 몇 가지를 선언했는데, 첫째는 앞으로는 과거 소련처럼 미국에 대등한 힘을 가진 적대국가의 탄생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의 권위나 이해관계에 동의하지 않는 중소국가들은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처리해버린다. 그것도 싼값으로! 셋째,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세계 전체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우세한 단일국가 군사력을 보유한다. 넷째는 군사적 방법이 필요할 때, 가능하면 유엔의 협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유엔이 동의하지 않을 때는 서슴지 않고 단독군사행동으로 처리한다. 이걸 지금 아들 부시가 그대로 해나가고 있어요. 그 가운데 셋은 거의 돼가고 있고. 잘못하면 1930년대 히틀러나 무솔리니, 프랑코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났던 파시스트의 세계지배 시대가 이제 미국에 의해서 진행되는 겁니다.


“난 민족주의자가 아니야”


박노자 : 거의 제3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몰고간다고 봐야 되지 않습니까. 그 서곡들이 아닙니까. 결국 결정판은 아마 대중국, 대러시아 침략이 아닐까….


리영희 : 한 20년, 30년 뒤가 되겠지만.


박노자 :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이 시대의 마지막 민족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리영희 : 난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가치에 더 충실한 사람이에요. 난 대한민국을 무조건 추워올리고 충성 다하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 쇼비니즘과 맹목적 애국주의 참 싫어해요. 난 지난해 월드컵대회도 개인적으로 안 좋았어요. 그냥 ‘한국 잘한다’는 거하고 ‘대한민국 이겨라’라고 하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나도 이기면 기뻐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흥분하고 감정적인 일치단결을 하는 것은 안 좋아한다고. 히틀러가 써먹을 수 있는 거지요.


박노자 : 지금 미국이 그렇게 돼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리영희 : 왜 뻘건 걸 전부 같이 입고 나오고 똑같이 박수치고 그래야 하냐고. (웃음) 제각기 옷을 입고 나와 “한국 이겨라” 하면 되는 거지. 그래야 인류보편의 평화와 인간과 민족끼리의 사랑이 생기고 그러는 거지. 개개 인간이 전부 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위험한 거야. 게임이라는 건 져도 좋아. 한국이 져도 좋고…. (이 대목에서 옆에 있던 부인 윤영자씨의 한마디로 큰 웃음이 터졌다. “이기는 게 좋지, 왜 지는 게 좋아요 절대 이겨야 돼, 게임은….)


박노자 : 이 위험한 전쟁의 위기시대에 남한 민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부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리영희 : 첫째는 어떻게든 대통령이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미국에 자주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보여요. 이번에 베이징 가서도 북한을 다자회담 속에 나오게끔 설득해달라고 후진타오 주석에게 이야기했다는데, 그건 미국의 대사가 할 소리지, 남한 대통령이 할 소리인가? (웃음)


둘째는 한국 사람들이 세계 지배야욕에 불타고 있는 미국 통치집단의 실체를 잘 인식해야 해요. 그중에서도 냉전시대 국가안보의 기둥이라고 했던 경찰이나 군대 같은 집단들이. 특히 군은 미국의 체제와 훈련과 멘털리티와 인간적 우호관계와 개인적 친소관계로 미국에 딱 붙어 있다고. 이런 체제를 빨리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특히 고쳐야 할 것은 한국의 보수 기독교 수구세력들이에요. 지난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국가적으로 양육된 사람들의 미국 찬양이 아주 위험합니다. 유일신끼리는 완전히 배타적인 거 아니에요. 탈레반이 그렇고 부시가 그렇습니다. 용납하고 타협하고 서로 껴안아줘야 하는데, 톨레랑스가 생길 수 없는 거예요. 국내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 또는 민족간의 전쟁에 박수치는 세력들이 많다는 것, 오히려 부시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이에요.


박노자 :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가진 문제는 없으신지요.


〈금강경〉을 읽으며 인생을 돌아본다


리영희 : 난 좀 내면적인 인생을 살고 싶은데… 자꾸 세상에 문제가 많으면 요청이 많잖아. 빨리 끊고 싶어. 난 요즘 불교경전을 봐요. 그 철학적인 사색이 참 좋아요. 불교는 생각하는 종교란 말이야. 지식인은 불교가 참 잘 맞아.


박노자 : 특별히 애호하시는 불경이나 고전이 있으십니까.


리영희 : 그저 난 ‘금강경’을 보지요. 아무래도 한문으로 읽어야 좋아요. 우린 한문세대니까, 한글로만 쓴 책은 굉장히 힘들어. 한자가 들어 있으면 빨리빨리 읽고. 일본책은 하루면 보는데, 한글소설은 한 사흘나흘 걸려.


박노자 : 저는 금강경에서 아주 감동적인 문구가 많았습니다. 특히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리영희 : “원래 모든 모습들이 다 바로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모습들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그것이 여래를 보는 일, 즉 깨닫는 일이다”라는 말인데, 참 깊지요.


박노자 : 리영희 선생님처럼 모든 역경과 모욕을 참으면서 한반도 주민들을 폭력의 도가니로부터 건지려고 노력하시는 것도 분명히 깨달음으로 가는 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보다 남의 몸과 마음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은, 바로 자아와 중생,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깨닫는 그 경지가 아닌가 싶어요.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리영희 : ‘너의 대한민국’ 책 (웃음) 한 100만부 나갔나? (박 교수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노자 : 하하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안 됩니다. 선생님, 더욱 건강하십시오.


정리·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2003년 7월 17일 한겨레21 제 468호에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