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토론회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단한다>
심층토론회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단한다>
리영희재단 사무국
4월 6일, 리영희재단이 한겨레평화연구소 및 평화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단한다>가 있었다. 재단의 김언경 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이 발제자로,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과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현장 스튜디오의 방청석에는 십여명의 각 단체 회원들이 참석해 토론회를 방청했다.
남기정 교수의 발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의 흐름을 살펴보며 그 의미를 짚어보았다. 정욱식 대표의 발제에서는 대서양의 서유럽 국가들과 한국, 일본, 호주 등의 태평양 국가들이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해나가는 현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후대에 어떻게 규정될까? 신냉전의 시작점일까, 아니면 신열전의 시작점일까? 물론 다들 말하기로는 신냉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토론회에서 다루어진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 강화는 혹시 지금의 상황이 새로운 열전의 시대로 가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미국은 중국이 자신들의 최대 위협이라는 인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고, 그런 인식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군사공조를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쿼드나 오커스 등을 통해 대서양의 나토 국가들을 태평양의 국제정세에 군사적으로 개입시키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중국도 이에 맞서는 군사적·외교적 행동들을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의 시대가 새로운 냉전의 시대를 넘어 다시금 전쟁의 시대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현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에 대한 적어도 몇 가지의 단초를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이 실마리들이 새로운 사회를 향한 어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최소한의 방향성은 제공해줄 수 있다. 이 방향성은 설령 그것이 모두를 설득할만한 어떤 만족스러운 그럼은 못될지언정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결집하고 역동성을 불어넣는 데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그 방향성의 첫 번째는 한미일의 삼자 간의 동맹의 강화를 막는 것이다. 동맹의 심화는 유사시 전쟁의 위험을 크게 높인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를 위해 일본의 식민지배와 관련한 역사 문제를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 최근까지도 한미일 삼자 간의 동맹 결성을 저지하고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라는 분리된 형태로 동맹 관계를 유지시켰던 것은 역사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국제법 위반론을 사실상 수용함으로써 더 이상 양국 간의 역사에 ‘문제’ 따위는 없게 되어버렸고, 이후 한미일 동맹의 심화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 등의 과거사 문제에서 반전평화주의에 입각한 해결방안을 지켜내야 한다. 남기정 교수가 강조했듯이, 지정학은 역사전쟁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미일 동맹을 매개로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일본의 ‘새로운 지정학’은 과거 식민지배와 전쟁을 부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맞서야 한다.
이번 토론회가 찾을 수 있는 평화를 위한 노력의 두 번째 방향성은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남기정 교수는 국제정치학자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규정하고 러시아에 맞서는 전쟁을 자유와 질서를 수호하는 권선징악의 전쟁으로 본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인식은 국제관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규정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선을 수호하는 자신들의 편에 설 것을 강요한다. 정욱식 대표가 말한 태평양-대서양 동맹 네트워크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악마화하는 식의 대립구도는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을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과의 평화는 오직 저들이 두 손 들고 항복 선언을 하는 한에서만 가능할 테니 말이다. 힘으로 저들을 굴복시킬 때까지는 평화의 여지는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위험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부터 최대한 멀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제3의 지대를 확보해야할 텐데, 이번 토론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었다. 한 가지는 반둥회의와 같은 비동맹 운동이다. 20세기 냉전체제에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남미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비동맹 운동을 벌였다. 21세기의 현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질문을 거부하는, 그럼으로써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한 전쟁의 위험을 거부하는 비동맹의 외교를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3의 지대를 만들기 위한 다른 아이디어는 기후위기라는 의제이다. 기후위기는 오늘날 전 인류에게 닥친 심각한 위협이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미국 대 중국이라는 이분법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해가 갈수록 세계 곳곳에서 기후재난은 빈번해지는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대립이 아닌 연대이다. 인간들 사이의 전쟁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버릴 만한 기후위기라는 위협 앞에서 인류는 연대해야 한다. 군비증강은 특히 기후위기와 관련성이 깊은데,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실제 전쟁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무기의 생산이나 군사훈련도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욱식 대표가 언급한 바와 같이 ‘기후정의를 위한 군축’을 새로운 의제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한 평화를 위한 행동의 방향성들은 물론 쉽게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최근 국제정세의 급격한 흐름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해지는 만큼 도리어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는 간단해지고 있다. 바로 전쟁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태호 소장은 토론회 말미에 전쟁을 막는 것만으로도 각국의 지정학적 구상들이 많이 수정될 수밖에 없다며 전쟁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니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전쟁만큼은 막는다는 일념으로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높이자. 이번 토론회에서 찾을 수 있는 방향성이나 그것 말고도 많이 있을 다른 방향성들은 우리의 연대를 도와줄 중요한 쟁점들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어날 뻔한 전쟁 하나라도 못 일어나게 막아낸다면,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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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를 통해 이번 토론회의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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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를 통해 이번 토론회와 관련된 두 발제자의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일관계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은 미래지향적인가?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글로벌 코리아? 덩치만 커진 ‘아메리칸 코리아’(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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