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재단 이사를 시작하며 / 진영종
리영희재단 이사를 시작하며
진영종 / 성공회대 교수
리영희재단 신임이사를 맡은 진영종입니다. 반갑습니다.
재단 이사를 시작하면서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이런저런 저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79년도에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아마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가 출판금지 되었고, 서점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시기였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그 책들을 다 읽었습니다. 학구열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선배들이 서점에 없는 책을 굳이 가져다가 읽혔기 때문에 읽게 된 것입니다. 처음으로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컸습니다. 우리 삼촌들이 가서 싸웠던 베트남 전쟁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중공’이라고 불렀던 원수의 나라를 이렇게 볼 수 있단 말인가? 최고의 반공교육의 성과물이었던 나와 우리 세대를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이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들로서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이룬 것입니다. 이제 학교에서도 리영희 선생님의 글로써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이룬 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다니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주로 그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리영희 재단의 이사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좀 들고 다시 리영희 선생님의 저작들을 읽을 때는 대학시절에 있었던 그런 『대전환』은 없었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사상, 정신, 추구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리영희 선생님의 저작들을 ‘이 길을 가라’라고 읽었다면 그 후 나이가 들어서는 ‘네 생각과 삶을 고민해라’ 라는 화두를 던진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표현대로 ‘반지성의 본질을 밝혀내고, 진실한 모습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면서 왜 전환시대인지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리영희재단의 이사를 맡게 되면서 여러 생각을 이리저리 하게 됩니다. 우선,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다시 한번 읽기로 했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 이전에 단편적으로 이해했던 내용들을 좀 더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쓰는 당시의 정황이 영향을 미치듯, 글을 읽는 것도 읽을 때의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인 조건들이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 어떤 충격, 가르침, 성찰을 줄까 매우 기대가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다른 느낌, 생각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같은 세대라는 이름으로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똑 같은 관점에서 읽어야 하고, 똑 같은 감명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말하기는 편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르게 받았던 느낌을 나누는 건 각자의 독서를 더 깊게하는 방법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세대별로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는가를 알고 싶습니다. 저의 경험에서도 대학시절과 그 이후, 그리고 지금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읽을 때 받는 느낌과 가르침이 다른데, 우리와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읽으면 우리와는 매우 다른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완전히 정반대의 반응도 있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는 우리세대의 방식으로 리영희 선생님을 가두려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경향에 반대합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기념비가 세워진다면 뭐라고 쓰여지길 바라냐는 질문에 “기념비야 시인이나 작가한테 세워지는 거지 나같이 세상에 딱 붙어서 그때그때의 일을 가지고 글을 쓴 사람이 후대에 남길게 뭐가 있겠나”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50년이 흐른 지금까지 리영희가 읽힌다면 ‘세상에 딱 붙어서 발언한 그것’을 잉태한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걸 찾는 독서를 세대를 아울러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해석도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 선배 이사님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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