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제노사이드, 끝나지 않았다 / 이유경
로힝야 제노사이드, 끝나지 않았다
이유경 / 국제분쟁전문기자, <로힝야 제노사이드> 저자
지난 2월 초 미얀마-방글라데시 국경 발 영상들이 연일 소셜미디어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영상 중에는 무장해제된 패잔병의 모습이 역력한 이들이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줄지어 이동하는 장면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시기 약 340명이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피신한 이들은 다름아닌 미얀마 서부 라까인 주(Rakhine State)의 국경수비경찰(BGP)들이다.
방글라데시와 국경이 맞닿는 라까인 주는 미얀마의 박해받는 소수민족 로힝야 사람들의 본향이다. 그곳에선 지금 이 지역 주류 종족인 라까인 족 무장단체 <아라칸 군>(Arakan Army, 이하 AA)과 미얀마 군부가 수년째 내전 중이다. 로힝야는 미얀마 전체적으로도 소수종족이고 라까인 주 내에서도 소수종족이다. 현재 진행 중인 라까인 주 내전상황에서 로힝야는 전쟁 당사자가 아니다. 2022년 11월 AA와 군부는 일본의 중재로 비공식 휴전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13일 AA는 휴전을 깨고 이른바 ‘1113작전’을 감행했다. 그날 이래 AA는 무서운 기세로 군부를 몰아치며 영토를 장악해가는 중이다. 국경 넘는 패잔병, 국경수비경찰의 모습은 이같은 AA와 군부간 진행 중인 내전의 결과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모두의 뇌리를 스친 역사가 있다. 바로 7~8년전 이 일대에서 벌어졌던 로힝야 대학살이다. 2017년 8월, 그리고 전년인 2016년 10월 두 해 동안 연달아 벌어졌던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 대학살은 ‘청소작전’(Clearance Op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 당시 학살, 강간, 고문을 피해 80만명이 넘는 로힝야들이 인산인해 피란행렬을 이루며 국경을 넘었다. 아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을 지게 바구니에 몸이 옴폭 담겼던 아이들, 허리가 ㄱ자로 꺽인 노인들,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며 험한 정글 수십 킬로를 죽을 힘을 다해 나왔을 로힝야 남성 그리고 방글라데시 뭍에 이르자마자 주저앉은 로힝야 여성까지, 사지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몸은 제각각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처참했다. 수주간 계속된 탈출 행렬의 충격적 이미지와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들의 끔찍한 증언이 미디어에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세상은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실체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2017년 로힝야 난민탈출 상황을 2차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위기로 규정했다. 방글라데시에 동남부 콕스바자르 국경지대에는 지구촌 최대 난민캠프가 형성됐다. 당시 로힝야 난민 행렬을 촉발했던 대학살의 주범 중 주범이 바로 오늘 패잔병의 모습을 한 라까인 주 국경수비경찰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학살하고 강간하고 불에 던지고 ‘벵갈리’(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민자라는 의미로 로힝야를 비하하는 표현) 혹은 ‘칼라’(Kalar, 피부색 검은 인도계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 ‘검둥이’ 정도의 뉘앙스)라고 조롱하고 축출했던 아비규환의 생존자들이 밟았던 그 피란길을 7년 후 자신들이 그대로 밟을 거라고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반이 지난 오늘 방글라데시 영토에 닿은 국경수비경찰 ‘난민’들을 대면하는 로힝야 난민들의 복잡미묘한 표정과 그들을 향해 휴대폰 카메라를 작동하는 손놀림에서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얀마 범민주진영의 과도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 National Unity Government) 인권부 차관이자 그 자신 로힝야인 아웅 초 무(Aung Kyaw Moe)는 이를 두고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카르마”라고 썼다. ‘업보’라는 것이다.
나는 가장 최근의 로힝야 대학살인 2017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2017년 이후의 상황을 모두 살펴보는 게 이 로힝야 제노사이드라는 끔찍한 범죄의 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7년 학살은 제노사이드 마지막 단계 즉, 대량절멸의 사건으로 진단되었다.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에 걸쳐 ‘제노사이드 인프라’가 구축됐고, 진화했다. 로힝야들에게 가해진 박해의 무게는 수십년 동안 로힝야들을 짓눌렀을 것이다. 제노사이드는 단시간의 이벤트가 아니다. 마지막 단계라고 해서 끝이 난 건 더더욱 아니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그 정점에서 계속되고 있다.
‘제노사이드’는 ‘종족’(race, tribes)을 뜻하는 그리스어 ‘genos’와 ‘살해’(killing)를 뜻하는 라틴어 ‘cide’의 조합어다. ‘제노사이드’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이는 익히 알려진 대로 유태계 폴란드 법학자인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다. 그는 제노사이드가 “한 민족(종족) 구성원 전체를 즉각적으로 파괴하는 범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보다는 “그 민족(종족) 그룹의 말살을 목표로 한 여러 (탄압)행위를 체계적으로 가함으로써 그 민족(종족) 그룹의 필수적 생활기반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라며 긴 호흡으로 개념화했다. 라파엘 렘킨은 1940년대, 독일 나찌정권의 유태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와(1941~1945)와 오스만투르크 제국 쇠퇴기에 발생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1915~1917)을 국제범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 중요하게는 유사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국제협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고안해낸 용어가 바로 ‘제노사이드’다. 그 범죄를 예방하자며 만든 국제협약이 ‘제노사이드 범죄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이하 ‘제노사이드 방지협약’)이다. 미얀마는 1949년 12월 30일 ‘버마연방공화국’ 시절 이 협약에 서명했고, 1956년 3월 14일 비준했다. ‘비준국가’ 미얀마는 ‘제노사이드 방지협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미얀마가 로힝야를 겨냥해 저지르는 범죄는 로힝야 커뮤니티의 ‘부분 혹은 전체를 말살할 의도’를 가진 국제범죄, 즉 제노사이드 범죄의 교과서적 양상을 보인다. 로힝야만을 겨냥한 각종 제노사이드 정책들, 예컨대 두 아이 초과 출산 금지라든가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여 생계와 생존의 기반을 파탄낸다든가, ‘권리를 갖기 위한 권리’라는 시민권을 박탈하여 한 커뮤니티 전체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정책, 로힝야를 추방하고 불교도 정착촌을 건설하는 정착촌 식민화 정책 등은 제노사이드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1962년 네윈의 군사쿠테타부터 시작하여 ‘국가인종’(national race)의 개념을 도입한 1974년 순혈주의 헌법, 1978의 로힝야 1차 대축출, 1991~1992년의 2차 대축출, 2012 인종청소, 그리고 2016년과 2017년의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에 걸쳐 숨가쁘게 그러나 체계적으로 켜켜이 진행돼왔다.
내가 로힝야 제노사이드 이슈에 눈을 뜬 건 2012년 라까인 주 안에서 벌어졌던 폭력사태 시기다. 그해 폭력사태는 표면적으로는 ‘로힝야 무슬림 대 라까인 불교도’라는 두 커뮤니티의 우발적인 충돌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여러 기록들과 증언들은 이 폭력사태가 매우 교묘하게 기획되고 집행된 반로힝야 폭력이자 로힝야 축출을 의도한 사건이었음을 말해준다. 2012년 폭력사태는 라까인 불교도 편에 섰던 미얀마 군경의 폭력적 개입으로 인해 로힝야 학살로 매듭지어졌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12년 폭력사태를 이미 로힝야 인종청소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폭력의 주무대였던 라까인 주 시트웨 시에서 도심 인구 절반을 차지했던 약 14만명의 로힝야들이 자신의 고향과 일터에서 외곽 게토로 버려지다시피 모조리 축출됐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국내피란민캠프’라 칭했지만 실제 그곳은 ‘수용소 캠프’(internment camp)로 더 많이 불렸다. 도심에서 로힝야들이 지켰던 단 하나의 구역 아웅 밍갈라는 도심 속 고립된 게토가 됐고 로힝야들은 그곳에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었다.
2012년 사태를 기점으로 로힝야 이슈에 눈을 뜬 나는 2013년 리영희재단의 취재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어 로힝야 이슈를 밀도있게 본격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 2013~14년 미얀마 라까인 주는 물론 반무슬림 폭동의 현장이었던 미얀마 중북부 멕띨라,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태국 등 로힝야들의 흔적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녔다. 그리고 2017년 대학살 이후로 난민사태로 이어지던 2019년 인도의 로힝야 난민들의 삶까지 취재하고 기록했다. 세상이 몰랐을 뿐 수십년 고통받았을 로힝야들이 직면한 제노사이드 현실은 내게 쓰나미처럼 다가왔다. 특정 커뮤니티를 겨냥한 혐오와 증오는 어디까지 인간성을 파괴할 수 있는지 그 추악한 얼굴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동안 종족과 종교를 매개로 갈등하는 현장을 여럿 보아왔지만 나는 로힝야처럼 이렇게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박탈된 커뮤니티를 본 적이 없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국제분쟁과 인권문제에 천착해온 내게 가장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주제가 되었다. 나는 이 문제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교훈의 무게를 하나의 작업물로 나누고 싶은 맘에 최근 <로힝야 제노사이드>(정한책방, 2024)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 이슈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시기 리영희재단의 기꺼운 지원이 오늘의 책으로 이어졌다. 재단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도 방글라데시에는 100만명 이상의 로힝야들이 난민캠프와 슬럼가 구석구석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다. <로힝야 제노사이드> 앞표지에 담은 여성들, 뒤표지에 담은 두 아이 모두 2014년 취재 당시 난민캠프가 아닌 슬럼가를 찾아다니며 담은 로힝야의 얼굴들이다. 그렇게 찾아간 방글라데시 동남부 모헤시 칼리의 한 슬럼가에서는 70년대 말부터 2012년 폭력사태까지 굵직한 학살이 벌어질 때마다 쫓겨나온 시대별 난민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시민권을 박탈당해 어디에도 등록되지 못한 이들이고, 난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아 어느 NGO에도 등록되지 않은 이들이지만 그들은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로힝야’라는 이름으로 모여 사는 커뮤니티였다.
그리고 또 오늘 라까인 주에는 여전히 약 60만명의 로힝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로힝야에게 모두 적대적인 두 세력간 내전으로 양쪽 모두에게 짓눌리는 중이다. 로힝야를 학살한 군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AA의 전술 또한 로힝야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런 식이다. 라까인 주 북부 부띠동 타운십(마웅도 타운십과 더불어 로힝야 인구가 주류인 두 타운십 중 하나)에서 AA는 로힝야 마을에 거점을 두고 군부를 공격함으로써 군부의 공격을 로힝야 마을로 유도하는 교묘한 ‘로힝야 방패전술’을 채택하고 있다. 그 공격에 희생되는 이들은 다름아닌 로힝야 사람들이다.
AA 지도부는 프로파간다전에 능하고 외교적 술사도 뛰어나다. 영어권 매체나 국제사회와의 소통에서는 로힝야 인권 존중을 말하지만 그들의 모국어 매체에는 ‘라까인 민족주의’의 레토릭이 강하다. 이들이 발표하는 성명에는 로힝야 대신 ‘벵갈리’라 표기돼 있다. ‘벵갈리’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주민’이라는 의미로 로힝야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무엇보다도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역사적 맥락을 모를 리 없는 이들이 로힝야를 벵갈리로 부른다면 그건 단연 ‘제노사이드 용어’(genocidal term)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AA 최고사령관 트완 므랏 나잉이 소셜미디어에 로힝야를 ‘벵갈리’로 칭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쐐기박듯 말한 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나는 AA에 관한 취재를 2013년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하면서 이 무장단체 구성원들의 로힝야를 향한 적대감과 잠재적 위험에 전율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로힝야 제노사이드> 6부 2장. ‘버만화와 이슬람화에 맞서다’에 담았다. 작금의 미얀마 내전 시국에서 강한 군사력과 전투력으로 반군부-범민주진영에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AA의 입지는 주목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로힝야와 갈등하며 군부의 제노사이드 정책과 대학살에 협력자로 동참해온 라까인 족 커뮤니티에 대한 나의 소회를 <로힝야 제노사이드>에서 일부 옮겨본다.
“오랜 시간 로힝야 말살정책을 펴온 핵심 주체는 당연하게도 역대 미얀마 군부 지배자들이다. 그러나 로힝야들의 본향인 라까인 주의 주류 종족인 라까인 커뮤니티도 이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해온 가해집단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두 커뮤니티 갈등은 흔히 1948년 버마가 독립하기 이전 영국 식민지시대, 특히 2차대전 말미에 해당하는 1940년대 영국과 일본이라는 두 제국이 ‘아라칸’Arakan(현 라까인주)을 포함하여 버마 영토에서 충돌하던 시기로 거슬러 간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좀 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해보면 두 커뮤니티가 아라칸 땅(라까인 주)에서 평화롭게 공존했던 시대를 만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라까인 민족주의자들, 인종주의자들, 극단주의 세력이 로힝야를 타깃삼은 국가폭력에 동참해온 근현대사는 매우 슬프고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두 커뮤니티간 반목의 역사를 잘 알고 있을 군부에게 분열정책은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 됐다.”
매우 우려스럽게도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효율적 수단이 돼온 그 분열정책이 최근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미얀마 군부는 2021년 쿠테타 이후 휩싸인 내전으로 병사 약 3만명을 잃은데다 탈영병 수까지 증가하면서 병력 보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기야 2월 10일 군부는 징집령 시행을 공표했다. 그런데 이 징집령의 첫 희생자 그룹마저 로힝야다. 군부는 4월 미얀마 새해 명절인 띤쟌 물축제 이후부터 징집을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로힝야 마을에서는 이미 2월부터 강제징집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소재 로힝야 디아스포라 그룹인 <영국-버마 로힝야 기구>(BROUK, Burma Rohingya Organizatio – UK)에 따르면 징집령 공표 직후부터 강제징집된 로힝야는 이미 천여명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이들 중 약 100명 정도가 ‘대AA 전선’에 총알받이로 끌려나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군부의 로힝야 강제징집은 계속되고 있다. 강제징집차 마을로 들이닥친 군부를 피해 도망다니는 로힝야들의 셀카 영상까지 나올 정도다. 역대 미얀마의 지배자들은 “로힝야는 미얀마 사람이 아니”라며 시민권을 박탈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미얀마 시민이 아닌’ 로힝야는 징집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총알받이가 필요한 군부는 ‘비국민’ 로힝야를 가장 우선 강제징집하는 극악무도한 전술로 라까인 주에 남아 있는 로힝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으며 동시에 로힝야 커뮤니티와 (AA를 강하게 지지하는) 라까인 커뮤니티 사이 갈등과 분열을 여지없이 증폭시킬 것이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이유경은 2004년 미얀마를 시작으로 네팔, 아프가니스탄, 인도, 이란, 카슈미르(인도령&파키스탄령),
라오스(집속탄), 레바논,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태국 등 아시아 지역 분쟁과 인권
이슈를 화두로 취재해온 프리랜서 국제분쟁전문기자다.
현장 르포와 분쟁의 이면을 탐사하는 보도방식에 천착해왔으며 <한겨레21>, <시사인>, 독일
진보 일간지 <Neues Deutschland> 등에 기고하였다. <한국일보> 국제면 기획 『세계의
분쟁지역』에 다양한 국제분쟁 현안을 5년간(2017~2022) 연재했다. 2013년 <리영희 재단>
취재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어 로힝야 이슈와 북부 카친주 내전 현장을 집중 취재하였으며, <한국
민주주의 연구소> 2021 학술 펠로우로 위촉되어 “연방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의 여정과 도전”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저서 및 역서로는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2007), 『로힝야 제노사이드』(2024), 『봄의 혁명 :
새로운 미얀마를 향한 담대한 행보』(2024, 공저), 『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2010, 역서),
가 있다. 언론의 독립성과 저널리즘이 훼손된 언론 환경을 진실 추구와 탐사보도 기반 정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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