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중립화 통일론의 대두와 논리」

통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1 19:08
조회
893

5-1. 「중립화 통일론의 대두와 논리」(1961년 The New Republic, 21세기)


 


 


서울발.
지난 4월에 일어난 한국 학생혁명 이후 한국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세계적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재평가하는 논의를 하고 있다. 그들은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는 데 일정 공로가 미국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한편, 바로 그 이유로 미국에 대한 남한의 의존적인 현실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그 현실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현재 한국 정부예산의 60퍼센트 정도를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외세의 영향에 반대하는 운동이 노골화 될 수는 없었고 불평의 형식으로 꾸준히 잠재해왔다. 4ㆍ19혁명 전에는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후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민족주의에 대한 이 글은 이 시기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진보적 평론 위주 주간지 『더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의 요청으로 영문으로 기고해 1961년 3월 6일자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이다.
의욕이 새롭게 파동을 일으키고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에 맞선 혁명이 성공하자 남한의 대학생ㆍ지식인들의 자존심과 자기주장의 자세가 더욱 강화되었으며, 젊은 세대의 자기 의식은 적어도 오늘 당장 한국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은 아니라 하더라도 머지않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이념이 될 것이다.
4ㆍ19혁명 이후 새 정부와 일반 대중은 그전에 비해 한국 내정에 대한 사소한 간섭의 표현에도 매우 민감해진 상태다.이처럼 새로워진 민심에 정부는 미국의 대한(對韓) 원조계획이나 집행에 관한 현재의 방식을 재평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미국 측에서 제기되는 비판, 즉 막대한 원조액의 남용과 비능률적인 사용에 대한 책임을 지나치게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가 비난받아온 사실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군사적 측면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법적 지위, 즉 ‘행정협정’에 대해서 더욱 엄격한 집행을 요구한다. 한국인은 대부분 주한미군의 범죄행위에 대해 미국 정부가 지나치게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비판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최근 미국 군사원조사업의 직접적 책임자인 한 장성이 방한 기간 동안 ‘우정 어린 충고’라는 미명 아래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4ㆍ19혁명 이후 새 한국군 참모총장에 임명된 장성이 국군 내에 만연한 부패를 뿌리뽑아야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미국의 장성은 그것이 마치 미국의 책임을 추궁한, 미국 원조정책의 탓이기도 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맥락에서 신임 참모총장의 계획에 제동을 거는 듯한 발언을 했던 것이다.
이에 한국 장성은 “우리는 국가주권의 간섭 여부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군의 한국 주둔 12년 역사상 단 한 번도 이런 전례가 없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한국군 참모총장의 발언 자체보다 그에 대해서 한국 국민이 절대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언론들은 미국 장성의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 아무리 ‘우정 어린’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더라도 “충고와 간섭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논지에서 일치했다(남한 군대의 작전 및 군수 관할권은 주한 미8군사령관의 권한이며, 주한 미8군사령관은 주한 UN군사령관을 겸한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경찰국가적 특징 때문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여론은 완전히 봉쇄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4ㆍ19혁명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도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 일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바로 이와 같은 변화로 말미암아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문제에 대한 행정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이며, 국민 사이에서 일어난 행정 캠페인의 직접적 결과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남한에서의 내셔널리즘의 새로운 징후가 반드시 반미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전과 달리 더욱 독립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원하는 전 국민적 바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표현된 미국의 호의와 공산주의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전쟁 후 피폐해진 한국경제에 대한 원조 등은 미국에 대하여 진정한 벗이라는 인식을 한국 대중들 머릿속에 심어주었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은 4ㆍ19혁명의 성공으로 촉발된 미국에 대한 비판적ㆍ저항적인 태도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의미 있는 측면을 보면 한국 지식인들과 대중 사이에서 분단한국의 통일염원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염원은 남북 중립화 통일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놓고 지지시위나 반대시위가 매일 공공 토론장 또는 길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대학생, 교수, 정치인, 공적 여론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인 토론의제가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아직은 새로운 중립화 통일론에 대한 지지세력 분포를 가늠할 여론조사가 행해진 바 없다. 하지만 공공적 토론과 공개적 시위 또는 보도기관을 통해 나타나는 대중적 감정과 개인적 일상대화에서의 인상 등을 종합할 때 웬만큼은 타당한 평가가 가능하다. 요약하자면 이 통일론은 대부분의 대학생과 젊은 인텔리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지층인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인 지도층이나 정권의 안팎에서 오랫동안 세를 누려온 구세대 사이에는 단층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중립화 통일론이 현 시점에서 반드시 지배적인 견해라 하기에는 시기상조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이같이 새로운 국민적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또 하나 서방세계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한쪽 강대국 진영에 예속되거나 속한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의 한쪽 진영에 몰입되거나 예속되는 상태는 다시금 그들의 땅을 세력간 전쟁 또는 위기갈등의 마당으로 제공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뜬 것이다.
남한 국민의 새로운 의식을 촉발시킨 외부적 제반 요인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힘의 균형이 이동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고, 또 하나는 역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웃인 공산국가 중국의 역량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또 과거에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중립주의적 국가군의 역량이 확대되고 그들 간에 단결이 공고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자리잡고 있는 중립주의적인 역량의 증대 등도 들 수 있다.
게다가 한국 국민들의 견해로 보아 만약 6ㆍ25와 같은 전쟁이 재발할 경우 미국이 과연 과거와 같은 확고한 자세를 취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가세한다. 미국 정부의 거듭된 공약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마치 트루만 대통령 집권 당시 한때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세계 규모의 방위선 전략에서 남한은 배제될지 모른다는 의구심 또한 적지 않다. 더욱이 남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립화 노선에 대한 어느 정도의 희망은 케네디 신정부의 대외정책에서의 변화와 앞으로의 전망에도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미국의 신정부는 동북 아시아와 관련된 국가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한국의 중립화를 용인할 정책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이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강력한 내부적 요인들을 증폭시켰다. 예를 들면, 한반도 북쪽과 남쪽 민중 간의 인종적ㆍ민족적 단일 성격에 대한 강렬한 친화적 의식, 38도선으로 찢기고 갈라진 수백만에 달하는 이산가족 문제, 공업 위주인 북한과 농업 기반에 치중하는 남한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지 않고는 경제적 존속이 어렵다는 점 등,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이 새로운 조류에 가세했다. 한국 민족처럼 분단된 땅에서는 그와 같은 상호보존적인 체제가 하나로 통합되지 않고는 건전한 경제적 발전을 이루기 힘들다는 현실 분석과 미래 진단에 기초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통합된 민족적 생존을 위해서는 남북사회에 자리잡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제도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또 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외국 주도적인 군사ㆍ정치적 진영화로부터 가능한 한 거리를 확보하고, 그럼으로써 양쪽 냉전체제들에게도 한반도의 중립화가 그들에게 이익이면 이익이었지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중립화 사상 또는 노선 자체가 반드시 목적은 아니며, 차라리 전쟁위기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방법론적 요구로 인정된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의 중립화(이론)는 일본과 성격이 다르다. 일본 국민들에게 인지된 중립화 이론은 앞으로 발발할 전쟁에 휘말려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또 한국의 중립화이론은 인도네시아나 인도와도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중립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국민들로서 그 같은 정책 추구가 군사진영적인 양쪽 세계의 중간에서 안전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에 기초를 둔다. 또한 한국은 유고슬라비아와도 다르다.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에 의해 추방된 국가로, 국가이익을 보존하고 중립세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강하다.
지금 남한 정부와 국민들은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단시간에 이룩한 괄목할 만한 경제 재건과 공업화와 그에 따르는 놀라운 경제적 발전에 대해 일종의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최근 수만 명의 재일 조선인이 북한으로 간 일이 있다. 이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공산주의 세계로의 대량 이동의 전력에 비추어 그와는 반대로 자본주의 세계에서 공산주의를 선택해 이동한 최초의 대민족이동이었다. 이는 결코 공산주의의 선전의 승리라고만 일소에 부칠 수 없는 분명한 변화이며, 한국 국민들에게는 놀라운 사실로 비쳤던 것이다.
북한의 발전에 비해 남한의 생존조건은 열악하다. 개인소득이 불과 50달러 정도였던 6ㆍ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비교해보면 적지 않은 향상을 이룩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승만 정권 12년 동안 남한에 제공된 20억 달러의 경제원조는 막대한 액수에 비해서는 현실 상황을 개선하는 데 별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요청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콜론아소시에이트(Conlon Associates)가 동 위원회에 제출한 남북한 경제실정 분석보고서에서 지적한 그대로다.
한국의 신문들은 대중적 여론 형성에 크나큰 힘을 발휘하는 기관이다. 이 같은 영향력을 가진 한국의 신문들이 근래에 와서는 한국경제가 반식민지형으로 몰락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이승만 정권의 특징인 국가 전면에 걸친 부패와 한미 양국의 잘못된 원조지원 및 수급방식 때문에 지난 12년 동안 10여 개신흥재벌을 탄생시킨 반면 실업자군은 급속도로 증대하는 현실적 모순이 거듭되고 있다. 현재 실업자 수는 250만~300만 정도로 기록되는데, 경제활동인구 800만의 나라에서 40퍼센트에 육박하는 고율의 실업자 문제는 바로 한국경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적 위기가 젊은 인텔리 계층과 직업전선으로 나아가야 할 대학생들에게 집중됨으로써 그들이 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지난 시기에 미국을 원점으로 하는 서방적 전통을 교육받았지만 중산층적 존재로 허용되지 못하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남북문제의 중립적 해결에 기대를 거는 면이 없지 않다. 이승만 정권 당시 그리고 현재에도 그들은 남한 사회의 그늘진 존재로 내몰리고 그로 인해 급진화되고 불만에 가득 차 있다. 또 지난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채워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에 대해 한국 중립화 노선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사회집단의 대변인 격인 극우세력과 정부는, 약소국가의 가장 안전한 생존은 어느 한 강대국과의 연대관계로 더욱 유지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미국이나 러시아 어느 쪽도 한반도의 항구적 중립화를 상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중립화의 필수적 전제조건이 되는 정치적 안정 없이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정부나 반중립화론자들이 주장하기를,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파괴공작 요원들을 훈련시켜 남한의 민주주의를 1년 또는 단시일 내에 마음만 먹으면 끝장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 뒤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수구세력은 그로써 중립화사상이나 운동을 반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립화를 주장하는 측은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경제발전은 더욱 중요하며, 사소한 자유나 권리는 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일시 연기할 수도 있고, 상쇄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상과 같은 배경 아래 진행되는 현재의 중립화 논쟁은 현재로서는 초보적 단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승만 정권 뒤에 탄생한 이 민주정부가 현명한 미국의 도움을 받아 훨씬 밝은 희망의 설계도를 제시할 수 있다면 한국 국민들은 지금까지와 같은 국토분단의 비극을 그대로 수락할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 즉 자유와 권리라는 민주적 가치의 일정 부분을 희생하거나 미룬다 하더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또는 적절한 통일의 기회가 올 때까지 현재와 같은 서방식 민주주의의 유지와 확보에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 정서와 욕구의 밑바닥에 강력하게 확대되고 있는 민족통일의 욕구는 아마도 전 국민적인 조류로 계속 흐를 것이며, 제한없이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지금 새로운 사조의 중심에 서 있는 젊은 세대들은 6ㆍ25전쟁에 대한 경험이 없고, 공산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공포가 없다. 그러므로 냉전적 통제나 부자유나 경제적 생존조건의 악화가 계속된다면, 오히려 더 많은 한국 청년들이 장래 국가 지도층이 되어 발언권을 행사하게 될 때 좀더 나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중립화 방식에 의한 통일을 위해서 더욱 자신들의 역량을 국가 운용에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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