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4호 / 김용진
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김용진 이사, 뉴스타파 대표
이번호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나볼 분은 김용진 이사입니다.
KBS에서 탐사보도팀을 이끌던 기자 김용진은 부산으로 울산으로 좌천된 후, 2013년 2월 뉴스타파팀에 대표로 합류합니다. 사실은 뉴스타파 시즌1부터 논의를 같이 해왔고 KBS 시절에 이미 ‘미디어포커스’를 통해 독립매체에 대한 취재와 소개를 꾸준히 해오신 걸로 아는데요. KBS 시절 김용진 기자의 관심사와 활동, 좌절 등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당시 김용진 기자의 독립매체에 대한 관심은 탐사보도를 위한 그릇 같은 거였을까요?
경찰, 검찰, 법원 등을 출입하며 사건기자로 잔뼈가 굵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사건 취재가 재밌어서 거기에 푹 빠졌죠. 80년대 말, 90년대에는 현총련 파업 등 굵직한 노동사건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노동 쪽 취재도 많이 했습니다. 노동계 블랙리스트 디스켓 최초 폭로, 대한항공 우주사업본부 노동자 비중격천공증 무더기 발병 확인 등이 90년대 초에 한 보도들입니다. 그 시절 우연한 기회에 현대사와 공공기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국가기록원에 있던 일제의 경복궁 해체 도면을 무더기로 입수해 1995년에는 KBS 광복 50년 특집 다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경찰기자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죠. 그 연장선에서 광복 60년 특집으로 ‘누가 일제의 훈장을 받았나’, 광복 70년 특집으로 ‘친일과 망각’를 제작했죠. 2025년에는 광복 80주년 특집도 아마 만들지 않을까요. 아무튼 사건기자 시절 나름대로 재밌게 보냈지만 한계도 느꼈습니다. 구체적으로 출입처와 데일리 뉴스에서 오는 한계였죠.
그 무렵 노조전임을 하게 됐습니다. KBS는 정권의 변동에 따라 춤추는 조직이었고, 저널리즘의 본질에 어느 정도 고민하는 기자라면 공정보도를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확보하려고 자연스럽게 노조로 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돌파구도 필요했고... 그런데 뜻하지 않게 노조전임을 4년 가까이 하게 되고 사측과 싸우다 징계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후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KBS 사장으로 정연주 선배가 오셨어요.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이 섰고, 제가 제작진으로 차출됐습니다. 그때가 제 기자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전기가 됐죠. ‘미디어포커스’를 취재 제작하면서 한국언론의 구조적 문제, 극우기득권 매체의 민낯을 주로 파헤쳤습니다. 동시에 영미권, 유럽 언론의 모범 사례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만들며 퓰리처 수상 언론인과 저명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제작진을 다수 인터뷰했습니다. 이때 탐사보도, 데이터저널리즘, 독립매체 등을 구체적으로 접하게 됐어요. 새로운 길이 보였죠. 이 취재 경험이 자양분이 돼 2005년 KBS에 방송사 사상 최초로 탐사보도팀을 만들고 후배들과 함께 열심히 뛰었죠. 데이터분석을 통한 공직검증 같은 유형의 보도를 한국에서는 처음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KBS 탐사보도팀이 사실상 해체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탐사저널리즘을 수행할 공간이 사라져버렸죠. 이때부터 정권과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탐사보도에 전념할 수 있는 매체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뒤 탄생한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그 고민의 산물이죠.
kbs 탐사보도 기자 시절의 김용진 2011년 위키리크스가 오픈한 미국 외교전문,주한 미국 대사관 작성 전문에 나오는 'KOREA'관련 자료를 분석한 책
김용진 이사님은 작년(2021년) 리영희저널리즘 스쿨 강의에서 리영희의 남북한 전쟁수행능력 비교를 전형적인 탐사보도로 소개하고 탐사보도는 증거가 가리키는 곳을 쫒아가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사님이 생각하는 탐사보도란 무엇입니까? 또 언론에 탐사보도만이 필요한 건 아니지않습니까?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언론환경에서 탐사보도를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요?
A가 B라고 말하고, B가 C라고 말할 때 그것을 단순히 중계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저널리즘은 누구 말이 더 진실에 부합하는지 확증해야 합니다. 탐사저널리즘은 공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 공식 문서와 자료, 여러 이해관계자의 다각도 인터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찾아내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공개해 주권자들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전에 리영희 선생의 남북한 전쟁수행능력 비교연구 논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단순한 눈문이 아니라 탁월한 탐사보도로 다가왔습니다. 과거 군부독재정권이 북한의 군사력을 과장하고 남침 야욕을 수시로 들먹이면서 국내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던 우상의 시기에 리영희 선생은 어느 쪽의 주장이나 의견을 배제하고 우리 정부와 미일 정부의 문서, 공식 간행물 등을 치밀하게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북한 군사력 우위라는 우상을 공식 증거에 입각해서 즉 이성의 힘을 통해 해체한 것이죠. 이것은 현대 탐사저널리즘의 로직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저는 리영희 선생의 논문을 탁월한 탐사보도이자 우리나라 탐사보도의 선구적 모델로 보는 것이죠.
한국 언론의 주된 문제는 정파성과 이윤동기에 매몰돼 있다는 점입니다. 진영논리에 입각해서 또는 소위 ‘정무적 판단’이란 것이 기자들의 마음을 이끌고 갑니다. 결론을 내려놓고 사실을 강약을 두어 짜깁기하지요. 아니면 권력과 자본의 논리와 관점, 그들이 제시하는 자료를 의심없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씁니다. 한국 언론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가장 큰 이유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보도, 삼성 관련 보도죠. 탐사보도는 골대를 정해놓지 않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명백한 증거만을 쫓아갑니다. 그래서 형식상 탐사보도물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탐사보도적 자세는 지금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국 언론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진 이사님에게 독립매체는 탐사보도를 할 수 있는 그릇으로만이 아니라 지금의 언론현실을 타개할 대안으로까지 여겨지는 듯합니다. 이사님은 다른 인터뷰에서도 여러번 밝혔지만 지난번 리영희재단 강의에서도 지금의 언론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독립매체들의 네트워크화, 협업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와 더불어 뉴스타파를 매체로 갖고 있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시즌3부터) 외에 ‘뉴스타파함께재단’이 2020년 따로 출범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이들간의 관계와 역할이 궁금합니다.
현재 한국 기성 언론사의 문제를 소위 ‘자정’ ‘자율’ 등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소유구조 측면에서 비교적 독립적인 몇몇 언론사가 있지만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고요. 디지털, 온라인, 포털, SNS 시대에 공영방송 같은 거대 미디어기업도 전체 여론 시장에서는 n분의 1일뿐입니다. 모든 매체가 모든 일을 하는 고립분산적 활동이 아닌 협업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독립매체들은 소유구조상 그것이 가능합니다. 지난 20년 간 영미권과 유럽에서는 수많은 독립언론이 탄생했고 매우 자연스럽게 독립매체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됐습니다. 미국의 비영리독립매체 네트워크 INN(Institute for Nonprofit News) 같은 경우 설립 당시 30여개의 가맹 언론사가 지금은 400개에 이릅니다. 한국에서도 영리 목적이나 진영논리에 치우지지 않은 독립매체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지난 2005년, 지역의 유력 일간지 유니온 트리뷴 편집국장 출신 닐 모건이 설립하고 탐사보도 서비스를 시작한 ‘보이스 오브 샌디에이고(Voice of San Diego) 이 인터넷 매체는 불과 11명의 인력으로 어느 기성언론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샌디에이고 지역의 부정부패와 공권력의 오남용 등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들은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샌디에이고 지역에 획기적인 탐사저널리즘을 지속적으로 배포한다. 좋은 정부, 사회 진보를 위해 필요한 심층 분석과 지식을 지역민들에게 제공해 시민들의 참여를 늘린다.”
‘뉴스타파함께재단’은 사회적 자산인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의 거버넌스 기구인 동시에 그간 뉴스타파가 수행해온 대학생 탐사보도 연수과정, 데이터저널리즘스쿨 등 교육프로그램과 독립언론 지원사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론칭한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 약칭 ‘뉴스쿨’을 통해 독립언론 창업 인큐베이팅에도 나섰습니다.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다소 거창한 별칭도 붙였는데 말 그대로 독립매체를 양성하고 독립매체의 연대와 협업을 통해 한국 언론생태계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겠다는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리영희재단 저널리즘스쿨 토론회에서 이정훈 교수는 지금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저널리스트의 투쟁은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할 시간을 벌도록,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는 발언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종합일간지 또는 방송매체의 종사자들이 포탈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속보경쟁 속에서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고 그래서 리영희 선생이 말한 60%의 저널리스트와 40%의 지식인으로 스스로를 성장시킬, 그로써 진실에 가까운 기사를 생산할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일까요?
비관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이미 늦었다고 봅니다. 자본의 지배, 클릭과 조회 수, 24시간 돌아가는 매체 환경, 이윤 동기, 정파성에 매몰된 기성매체에서 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이런 환경에 문제의식을 갖고 반기를 들면 조직 부적응자로 찍힐 뿐입니다. 저는 87년 KBS에 입사해서 30년 넘게 언론계에 몸담고 있지만 예전보다 나아진 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저널리스트의 자질이나 수준, 역량은 더 떨어진 것 같고, 기사의 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복해서 하는 말이지만 기성매체로는 답이 없습니다. 독립언론으로 질적 변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공영방송은 누가 봐도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뛰쳐나와서 뉴스타파 같은 조직을 만들고 해직자들도 돌아가지 않는, 어찌보면 실존적 결단을 하기가 더 분명했을 수 있습니다. 서서히 무기력해지는 지금의 환경에서, 그렇다면 기존 매체에서 뛰쳐나와 독립매체를 꿈꾸거나 뉴스타파함께재단을 통한 협업의 현실은 어떤가요
뉴스타파가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건 사실입니다.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하는 독립매체가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지난 10년간 보여줬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한계가 뚜렷합니다. 뉴스타파 한 곳이 계속 성장하면서 앞으로 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체 언론판을 고려한다면 좀 더 많은 독립언론이 생기고 협업해야 합니다. 뉴스쿨과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를 시작한 이유죠. 지난 3월 뉴스쿨 수강생을 모집했을 때 현직 언론인들이 상당수 지원해서 놀랐습니다. 대부분 현재 일하고 있는 매체에서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었죠. 현재 뉴스타파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들은 대부분 다른 매체에 종사하다 온 사람들입니다. 저는 기성매체에 소속된 많은 언론인들이 현재의 환경에 환멸을 느끼고 저널리스트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앞으로 더 많은 독립언론 탄생의 잠재력이 될 겁니다.
첫 방송 2년 뒤 뉴스타파는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끈질기게 취재해 민주화를위한변호사회와 함께 리영희재단이 수여하는 제2회 리영희상을 수상
뉴스타파는 교육 실습 창업까지를 책임지는 저널리즘스쿨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의 분야는 어떤가요?
지난 3월 시작한 1단계 과정이 6월 하순에 끝났습니다. 일주일에 3일, 하루 3시간짜리 강좌를 총 36강 진행했고, 중간에 1박2일 일정의 워크숍과 비영리 독립언론을 주제로 한 국제 세미나도 열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었는데 19명의 수강생 전원이 1단계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저희들도 강의 참석율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코로나 확진 등의 경우를 빼고는 전원 개근했습니다. 수료생들도 놀라더군요. 학교 다닐 때도 안 한 개근을 했다고... 지금은 수료생을 대상으로 펠로우십과정 참가 지원을 받아서 선발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펠로우십 과정은 탐사보도와 데이터저널리즘 실무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뉴스타파와 기타 전문기관 위탁교육으로 진행할 예정이고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입니다. 펠로우십이 끝나면 희망자에 한해 독립언론 창업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칠 예정입니다. 창업 후 1년간 운영비를 지원하는 계획도 마련해놨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국제관계 저널리스트로 칭했던 리영희를 계승하려는 재단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잘 표현한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는 ‘국제관계 탐사저널리스트’가 더 맞다고 봅니다. 리영희 선생이 활동하실 때보다 지금은 ‘국제관계’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유기적이고 ‘실시간’이 됐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 전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죠. 비근한 예로 우크라이나 전쟁, 윤석열의 나토 참석, 환율전쟁 이런 게 대표적입니다. 이런 시대에 선생 같은 혜안과 통찰력과 취재력을 갖춘 국제관계 저널리스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상상을 가끔 해봅니다. 진짜 기자가 부재한 시대, 그 빈자리의 영향은 무분별한 가짜뉴스와 역정보, 선전선동으로 돌아오고 결국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죠. 리영희재단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열악한 자원과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지식인이나 이미 선생을 잘 알고 있는 시민을 위한 사업보다는 젊은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이 더욱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관계전문 탐사저널리스트로서의 리영희 선생을 이을 수 있는 젊은 국제관계 저널리스트를 양성하고, 이를 통해 올바른 국제관계 뉴스가 대중 속으로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게 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사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 긴 시간 소중한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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