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란 감옥에서 상고이유서를 쓰는것 /고병권
작성자
재단 사무국
작성일
2020-12-30 17:44
조회
2844
....
상고이유서; 비판이란 무엇인가
사유의 존재, 즉 의식의 존재(의식화된 존재)란 자신이 잠들어 있던 곳이 철방,즉 감옥임을 알아차리는 자다. 먼저 깨어나 우리가 감옥에 갇혀있음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감옥임을 증언하고 또 비판하는 자다. 빛이 환상이고 암흑이 현실임을 깨닫는 자다. 나는 그가 철학자이며, 사유자이며, 의식화의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나는 리영희가 서대문형무소의 혹독한 조건에서 아무런 참고자료도 없이 꼭꼭 눌러쓴 "상고이유서"(1978)야 말로 '사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졸은 답변이라고 생각한다(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에서도). 사유가 감옥에 있음에 대한 자각이라면,노예가 노비문서를 찟듯,수인이 법적 명령을 거부하고 논박하는 "상고이유서"야 말로 최고의 철학 텍스트이자 의식화의 증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사유란 감옥에서 상고이유서를 쓰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리영희 자신도 이 글을 가장 아꼈다. "내가 오십년 가까이 글을 써왔는데, 나에게 가장 소중한 글이 뭐냐 돌이켜 볼때, 바로 이 상고이유서라고 생각해"-대화490면
리영희가 손이 굳어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추웠던 영하의 공간에서 아무런 참고자료 없이 2만 4,200자의 상고이유서를 작성했던 것은 출옥의 희망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가 그 글을 쓴 이유는 철방에서 나갈 가능성을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2심 판결문이 1심 판결문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았듯이 대법원에서도 다른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은 없었다. "사실 난 이 상고이유서를 통해 어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1979년 1월 16일에 난 대법원 최종판결은 2심 판결과 다름이 없었지."-대화492면 리영희는 십년 뒤 재판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1989년 한겨레신문 '방북취재기횟'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도 최후진술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재판 같지도 않은 재판에서 뭐 진지하게 최후진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의견도 옳아요. 그런 생각이기는 하지만 재판이 재판답지 않을수록 밖의 사회에 기록이라도 남기고 활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재판이라는 것이 얼마나 반민주적인가 하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소"(1989,9,11).-21세기의 사색46면 즉 그는 '재판' 자체를 '재판'한다는 마음으로 최후진술을 준비한 것이다.
......
이 "상고이유서"의 묘미는 기소의 역전에 있다. 이 글은 법정에 기소된 피고가 법정 자체를 기소하는 기소문으로 볼 수 있다. '우상숭배'(사유의 부재,의식의 부재)를 철학적 죄라고 한다면,리영희는 검사와판사를 비롯해서 법정, 더 나아가 법(반공법) 자체를 철학의 심판대에 세우고 있다. 철학적으로 볼때 사실 우상의 숭배자들은 이미 수감되어 있다. 우상이란 그들이 잠든 채로 갇혀 있는 철방의 이름이다. 선고도 내려졌다. "상고이유서"의 말미에 가면 매우 흥미로운 단어 하나를 만날수 있다. '인식정지증'이 그것이다. 리영희는 담당검사가 한국전쟁 당시, 즉 그의 나이 14세 때의 인식에 머물러 있음을 보았다(14세 때 본 중공군에 대한 인식에서 그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리영희는 이것을 우상에 빠진 이들 일반으로 확대한다. 그는 일본 파시스트들을 예로 들었다. 일본점령군이었던 맥아더(D.MacArthur)의 말을 인용하며,일본 파시즘이 전체 국민을 '아홉살 수준'의 능력 안에 가두었다고 지적했다. 즉 그들이 국민 성숙의 기회와 권리를 박탈("지적 개발의 기회를 억압하고 그 권리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이 '인식정지증'은 칸트가 철학적 책임추궁의 대상으로 삼았던 '미성숙'과 같은 말이다. 감히 따져 물을 수 있는(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철학적 권리와 비판의 권리를 잃었을 때, 법칙에 대한 맹목적 준수자에 머물 때, 칸트는 우리가 미성년자에 머물며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사유란 무엇인가? 리영희는 법 앞에 서야 했다.그러나 그는 또한 법을 앞에 세워 놓았다. 법정에 섰던 그는 또한 법정을 법정에 세웠다. 그는 법 앞에서, 법 이전의 것,즉 선입견(선판단,선재판)을 다루었으며, 법의 비판에 맞서 법 자체를 비판했다. 그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사유의 자리일 것이다.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잠을 요구하는 '법의 한계'에 그는 서있었다. 거기가 우리의 자유,우리의 성숙이 정의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自由人,자유인"의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필자는 다만 가혹한 법률적 한게의 극한까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부딪혔다는 사실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사유의 존재이다.
리영희를 함께 읽다, 창비
상고이유서; 비판이란 무엇인가
사유의 존재, 즉 의식의 존재(의식화된 존재)란 자신이 잠들어 있던 곳이 철방,즉 감옥임을 알아차리는 자다. 먼저 깨어나 우리가 감옥에 갇혀있음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감옥임을 증언하고 또 비판하는 자다. 빛이 환상이고 암흑이 현실임을 깨닫는 자다. 나는 그가 철학자이며, 사유자이며, 의식화의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나는 리영희가 서대문형무소의 혹독한 조건에서 아무런 참고자료도 없이 꼭꼭 눌러쓴 "상고이유서"(1978)야 말로 '사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졸은 답변이라고 생각한다(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에서도). 사유가 감옥에 있음에 대한 자각이라면,노예가 노비문서를 찟듯,수인이 법적 명령을 거부하고 논박하는 "상고이유서"야 말로 최고의 철학 텍스트이자 의식화의 증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사유란 감옥에서 상고이유서를 쓰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리영희 자신도 이 글을 가장 아꼈다. "내가 오십년 가까이 글을 써왔는데, 나에게 가장 소중한 글이 뭐냐 돌이켜 볼때, 바로 이 상고이유서라고 생각해"-대화490면
리영희가 손이 굳어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추웠던 영하의 공간에서 아무런 참고자료 없이 2만 4,200자의 상고이유서를 작성했던 것은 출옥의 희망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가 그 글을 쓴 이유는 철방에서 나갈 가능성을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2심 판결문이 1심 판결문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았듯이 대법원에서도 다른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은 없었다. "사실 난 이 상고이유서를 통해 어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1979년 1월 16일에 난 대법원 최종판결은 2심 판결과 다름이 없었지."-대화492면 리영희는 십년 뒤 재판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1989년 한겨레신문 '방북취재기횟'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도 최후진술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재판 같지도 않은 재판에서 뭐 진지하게 최후진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의견도 옳아요. 그런 생각이기는 하지만 재판이 재판답지 않을수록 밖의 사회에 기록이라도 남기고 활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재판이라는 것이 얼마나 반민주적인가 하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소"(1989,9,11).-21세기의 사색46면 즉 그는 '재판' 자체를 '재판'한다는 마음으로 최후진술을 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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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고이유서"의 묘미는 기소의 역전에 있다. 이 글은 법정에 기소된 피고가 법정 자체를 기소하는 기소문으로 볼 수 있다. '우상숭배'(사유의 부재,의식의 부재)를 철학적 죄라고 한다면,리영희는 검사와판사를 비롯해서 법정, 더 나아가 법(반공법) 자체를 철학의 심판대에 세우고 있다. 철학적으로 볼때 사실 우상의 숭배자들은 이미 수감되어 있다. 우상이란 그들이 잠든 채로 갇혀 있는 철방의 이름이다. 선고도 내려졌다. "상고이유서"의 말미에 가면 매우 흥미로운 단어 하나를 만날수 있다. '인식정지증'이 그것이다. 리영희는 담당검사가 한국전쟁 당시, 즉 그의 나이 14세 때의 인식에 머물러 있음을 보았다(14세 때 본 중공군에 대한 인식에서 그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리영희는 이것을 우상에 빠진 이들 일반으로 확대한다. 그는 일본 파시스트들을 예로 들었다. 일본점령군이었던 맥아더(D.MacArthur)의 말을 인용하며,일본 파시즘이 전체 국민을 '아홉살 수준'의 능력 안에 가두었다고 지적했다. 즉 그들이 국민 성숙의 기회와 권리를 박탈("지적 개발의 기회를 억압하고 그 권리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이 '인식정지증'은 칸트가 철학적 책임추궁의 대상으로 삼았던 '미성숙'과 같은 말이다. 감히 따져 물을 수 있는(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철학적 권리와 비판의 권리를 잃었을 때, 법칙에 대한 맹목적 준수자에 머물 때, 칸트는 우리가 미성년자에 머물며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사유란 무엇인가? 리영희는 법 앞에 서야 했다.그러나 그는 또한 법을 앞에 세워 놓았다. 법정에 섰던 그는 또한 법정을 법정에 세웠다. 그는 법 앞에서, 법 이전의 것,즉 선입견(선판단,선재판)을 다루었으며, 법의 비판에 맞서 법 자체를 비판했다. 그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사유의 자리일 것이다.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잠을 요구하는 '법의 한계'에 그는 서있었다. 거기가 우리의 자유,우리의 성숙이 정의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自由人,자유인"의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필자는 다만 가혹한 법률적 한게의 극한까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부딪혔다는 사실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사유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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