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의 중국론을 다시 읽는다 - 사유의 축으로서 제3세계 / 백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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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06-0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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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중국론을 다시 읽는다
- 사유의 축으로서 제3세계 



 


 


 


 



백지운(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1. 중국을 통해 한국을 보다


외국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문제이겠지만, 특히 요즘 시대 한국의 학자로서 중국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번민이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타고난 지리적 면적과 압도적 인구수, 그리고 그 경제 규모와 국제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아무리 학문의 본령이 가치중립에 있다 하더라도 현실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배제된다면 의미 있는 학문이 되기 어렵다. 정치, 경제, 역사 모든 면에서 우리와 긴밀히 관계되어 있는 만큼, 중국에 대한 분석과 판단에는 필경 우리 자신, 즉 한국 사회를 보는 시각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 근자에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면서 중국에 관한 담론이 과도하게 진영 논리로 소비되는 근심스런 현상도 어떤 면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떨어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우리 현실의 일그러진 반영일 것이다.

리영희 선생의 중국 관련 논설은 중국과 그것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확연히 달라진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여전히 시사점이 많다. 선생이라면 오늘의 중국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을 것이며, 정치적으로 소비되기 급급한 중국 언설로부터 어떻게 우리의 문제를 사고하고 시대를 전망하는 사상적 길을 내었을까 궁금해진다. 그의 대표작 『전환시대의 논리』(1974, 창작과비평)와 『우상과 이성』(1977, 한길사)에는 모두 중국 관련 논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냉전의 우상을 깨고 저변에 꿈틀대는 거대한 시대 전환의 논리를 읽어내는 데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심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외신부 기자 출신으로서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진실을 소구해 내는 데 온 힘을 기울였지만, 선생의 중국 논설의 근저에는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작동하고 있다. 스스로도 비유했던 것처럼 루쉰이 말한 ‘철방에 갇힌’ 한국 사회를 깨우고자 하는 외침이 그의 중국론에 투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2. 냉전의 이분법을 흔드는 원심력의 축


그 외침은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냉전의 우상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첫머리에 수록된 글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는 냉전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던 한국 사회에 예고 없이 도래한 데탕트가 야기한 충격으로 시작한다. “닉슨의 중공 방문”이 “중공을 ‘영원한 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던 한국 국민”을 “하늘이 무너질 듯”한 충격으로 강타했던 것에 대해, 그는 냉전 체제에 안주하여 주어진 소임의 십분지일도 하지 못한 지식인과 언론의 타성을 일갈했다.

선생이 볼 때, 미중 데탕트는 1970년대 들어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전후 25년의 세계정세의 변화, 특히 1960년 이래의 10여 년의 변화가 만든 필연적 귀결이었다. 스탈린 사후 미소 간에 맺어진 ‘평화공존체제’. 1969년 정점에 이른 중소 분열, 그리고 중립노선을 추구하는 제3세계 운동, 미국으로부터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유럽 선진국의 흐름 등 냉전의 긴장이 드높았던 1950, 60년대에도 냉전의 논리를 이완하는 원심력이 국제사회 도처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국제사회의 끈질긴 정치적 다원화의 지향”이 미국이 놓은 냉전 궤도의 지반을 갉아먹고 있었으며, 그것이 1970년대 들어 데탕트라는 시대 전환의 추세로 가시화되었을 뿐이다.

리영희 선생이 일깨우고자 했던 것은 냉전체제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획일화된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가 볼 때, 미소 진영 대결이라는 냉전의 표층 논리가 그 저변에서 약동하는 다원화의 힘에 의해 흔들리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구조야말로 냉전의 실상이며, 후자에 의해 전자가 해체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전환의 추세였다. 당시 한국 사회가 지구적 탈냉전은 물론 동아시아로 스며드는 데탕트의 흐름에서 기이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었던 것은 냉전의 허위의식에 빠져 국제 정세의 표층에 감춰진 다원화의 힘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당시 선생이 냉전의 우상에 가려진 시대 전환의 논리를 밝히는 시금석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눈에 냉전 시대의 중국은 ‘죽의 장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공위성 발사 성공, 대외원조 사업으로 ‘탄자니아-잠비아 철도’ 건설, 런민비의 국제금융시장 진입에 더해, 1970년의 시점에서 전 세계 55개국과 수교를 달성했고 그중 42개국이 비공산권 국가들이었다. 게다가 머잖아 미국의 반공체제에 편입된 아시아 국가들과 NATO에 가입된 유럽의 미국 동맹국 대부분이 중국과 수교를 맺을 전망이었다. 미국의 대중국 고립정책의 실패는 강대국의 힘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거센 역류가 국제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냉전체제의 저변에서 냉전의 논리를 이반하는 원심력에 주목했던 리영희의 혜안은 미중세력경쟁 체제의 형성으로 또다시 이분법의 사고가 우리의 인식 체계를 지배하는 지금 깊은 시사점을 준다. 세계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강대국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이데올로기에 포장된 허상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를 움직이는 다기한 동력에 실사구시적으로 착목함으로써 시대의 참된 논리를 읽어야 함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3. 중국혁명에 대한 이상과 오판

리영희의 중국 관련 지적 작업들이 이후 한국 사회의 중국 인식과 중국 담론 형성에 어떻게 계승되었을까를 돌이켜 보면, 사실 그 흔적은 미미하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중국 개혁개방의 본격화,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을 직접 마주하게 되고 또 수많은 정보들이 밀려들면서 선생의 지적 성과들은 점차 잊혀져갔다. 무엇보다 마오(毛)와 중국 공산당에 대한 과도한 긍정, 특히 문화대혁명에 대한 낙관적 해석이 이후 드러난 중국의 실상과 부합하지 않으면서 선생의 입지가 급격히 좁아진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보면, 당시 중국혁명에 대해 선생이 범했던 인식의 오류는 지구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마오주의는 20세기 중반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상 중 하나였다. 그것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제3세계 혁명의 교본이었고 프랑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신좌파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전 세계 좌파 진영이 그러했듯, 리영희 선생은 중국혁명을 소련의 관료주의적 사회주의와 대비되는 대안적 혁명 모델로 바라보았다. 특히, 그가 중국혁명에 기대를 걸었던 측면은 인간해방이라는 지점이었다. 소련의 사회주의가 물질적·제도적 혁명에 그친 것과 달리 마오의 혁명은 인간의 사상혁명을 궁극의 목표로 추구했으며 문화대혁명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소련이 범한 사회주의의 역행을 방지하기 위한 계속혁명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중국혁명에 대한 해석의 오류는 편견을 넘어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선생의 이력은 물론 그 자신에게도 깊은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1990년대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이라는 글에서 그는 중국 사회주의의 변모가 가져다준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하면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신의 경도가 해방 이후 좌우익의 극단적 대립 속에 인간의 윤리성이 땅에 떨어진 한국 사회를 살면서 품었던 인간해방에 대한 동경에서 연원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영희의 중국 인식의 오류는 결코 그의 지적 나태함이나 이념적 편향 탓으로 간단히 정리될 일은 아니다. 그것은 냉전 시대 지구적 좌파 운동 진영에서 생산되었던 중국혁명에 대한 지식과 담론이 동아시아 반공 진영의 폐쇄된 사회에서 냉전의 우상을 깨기 위해 분투했던 지식인의 내면과 어떻게 서로 마주치며 녹아들어 갔는지에 대한 맥락을 살피는 복잡한 작업을 요한다. 또한, 중국혁명이 고정불변하는 추상적 대상이 아닌 만큼, 시기별·단계별 변모 양상에 대한 세밀한 분석으로부터 리영희의 판단 착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판단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리영희의 중국론은 (비판을 포함하여) 정당한 재평가와 재해석을 얻게 될 것이며, 설령 그것이 모순적이고 한계를 보이더라도 그 자체로 냉전 시기 한국의 사상 계보 안으로 맥락화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4. 제3세계라는 원심력의 축

그 모든 오류와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1970년대 리영희의 중국론에는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시각에서 보더라도 요체를 찌르는 혜안이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근원적인 힘은 선생에게 제3세계가 중국을 보는 시각의 축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영희를 함께 읽다』(2017)에서 구갑우는 리영희가 미국이나 소련과 동맹으로 연결되지 않은 제3세계적 시각에서 중국외교를 보고자 했다고 짚었는데, 선생에게 ‘제3세계’란 외교나 국제정치적 전략 분석을 위한 도구를 넘어 일종의 사고의 지남(指南)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백승욱이 말했던 “냉전시대 이분법적 구도에서 불가능한 제3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사유의 분투가 국제정세를 보는 시각에서 미소 대결이라는 냉전의 표면에 가려진 제3세계의 흐름에 주목하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선생의 집요하고도 치밀한 작업들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베트남전쟁을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성전이라 생각하고 미국의 승리를 확신했던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선생만큼은 그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냉전의 논리를 이반하는 원심력으로서 제3세계가 세상을 보는 자리의 기준점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79년 이란혁명 직후 미대사관 인질사건을 비롯한 중동 정세를 분석하면서 “이란 인민의 잠재적 반응을 형편없이 얕잡아본” 미국의 오만함을 비판했던 것도 강대국의 힘으로 좌우되지 않는 제3세계의 원심력에 대한 그의 일관된 관심과 모종의 기대에 기반한 것이었다.

리영희가 당시 마오와 중국공산당을 높이 평가했던 것은 중국이 냉전의 논리를 해체하는 원심력을 읽어내고 그 편에 섰다는 데 있었다. 냉전 초기부터 마오쩌둥(毛澤東)은 미소 두 진영에 귀속하지 않으려는 제3의 장력이 지구상에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간파하고 그것을 중국혁명의 이론으로 전유해왔다. 그것이 바로 1940년대에 제기된 ‘중간지대론(中間地帶論)’으로서 1960년대 ‘두 개의 중간지대론’을 거쳐 1970년대 중국판 제3세계론이라 할 ‘삼개세계론(三個世界論)’으로 정리되었던 것이다. ‘중간지대론’에서 ‘삼개세계론’으로 완성되는 중공의 세계인식은 리영희가 데탕트의 시대적 논리를 읽었던 방식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양자가 착목했던 것은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냉전의 논리를 이반하는 다원화의 힘이었다. 냉전의 논리로 중국을 옥죄었던 미국, 그리고 미국이 구축한 냉전 궤도의 지반을 흔드는 원심력에 기탁했던 중국의 긴 싸움은 결국 중국의 승리로 귀결되었으며, 그 결과가 바로 닉슨의 방중으로 상징되는 미중 데탕트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리영희는 냉전 시기 중국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의 기반은 바로 제3세계를 스스로에 내재화함으로써 가능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이어 출간된 『우상과 이성』에 수록된 글에서 선생은 중국이 1950년대 이후 제3세계 신생국들과 관계를 구축하면서 중국혁명의 이론을 조정하고 자신의 세계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짚어나간다. 1955년 반둥회의에서 저우언라이가 천명한 ‘평화공존 5원칙’이 1960년대 중국이 아시아·아랍·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신생국들과의 관계를 수립하는 기본 원칙이 되고 또 1970년대 제3세계 비공산주의권에 벌인 원조를 통해 제3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놀랍게도 선생은 향후 중국경제가 발전할수록 중국식 원조모델이 서구의 제3세계 원조 방식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며 후진국과 중립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노선을 좌우하는 열쇠가 될 가능성을 짚고 있었다(「중국평화5원칙의 안팎」).

리영희의 안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미국과 세력경쟁에 돌입한 지금 중국의 전략이 그 기본 기조에서는 냉전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미소 진영 구조에 귀속되기를 거부하는 중간지대와 연대하여 미국의 포위망을 서서히 무력화했던 것처럼, 지금 중국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일대일로’의 거대한 띠로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바깥에서 에워싸고 있다. 비록 ‘제3세계’라는 말 자체는 1980년대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공적 담론장에서 사라졌지만, 최근 ‘글로벌 사우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전후(戰後)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질서와 규범에 도전하는 대항 담론으로 전격 부상하고 있다. 그 상징적인 예가 2023년 9월 15일 쿠바의 아바나에서 개최된 G-77과 중국 정상회담에 시진핑을 대신하여 참석한 중공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리시(李希)의 연설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더 강력한 연대로 위대한 발전을 향하는 ‘남남협력(南南協力)’의 새로운 장을 열 준비가 되었다”고 선포하면서 중국과 개발도상국이 협력하여 글로벌 거버넌스를 “더 정의롭고 평등하게 만들어야 할 소명”을 역설했다. 국제 규범체제의 개혁과 ‘남남협력’을 결합시키는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론은 역사적으로 70년 전 아시아·아프리카의 신생국들과 함께 UN체제의 개혁을 요구했던 반둥회의와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제3세계를 냉전 시대 중국을 분석하는 사고의 축으로 삼았던 리영희의 방법은 오늘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세계전략의 심층 논리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리영희가 마오시대 중국의 제3세계론의 의미를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직면했던 이율배반을 놓치지 않고 착목했다는 점이다. 그는 평화5원칙을 기조로 하는 중국외교의 약점으로서, 제3세계 혹은 중간지대 국가의 정부와 그 인민에 대한 양면적인 관계의 모순이라고 짚었다. 당시 제3세계 신흥국가들의 신생 정부는 대부분 우익적 성향의 민족부르주아 세력이 중심이었다면, 그들 내부에는 반제·반식민을 표방하는 반정부 혁명세력이 지하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중국으로서는 국교 수립이라는 제도적 관계를 맺은 보수 성향의 정부와 우호관계를 전제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 세계혁명을 표방하는 입장에서 그들 국가 내부의 반정부 혁명세력과의 유대를 저버릴 수도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체제가 다른 정부 간의 평화공존과 세계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제3세계 인민과의 연대를 동시에 조절해야 하는 이율배반적 요구가 중국 외교의 아킬레스건임을, 선생은 또렷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예리한 시선은 선생 자신이 중국혁명의 핵심을 관료주의화된 소련혁명과 대비되는 인간해방에 두었던 것과 묘하게 어긋난다. 마치 중국의 외교가 국가 간 관계라는 제도 안으로 포섭되면서 전 세계 인민 간의 연대라는 혁명 본연의 사고가 형해화되는 미래를 예견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스스로 의식했든 아니든, 그는 중국에 대한 비판적 사유의 통로를 외부의 언어가 아닌 바로 중국 자신의 언어로부터 발견하고 있었다.


5. 오늘, 다시 리영희의 중국론을 묻는다

다시 상기하면, 리영희 선생의 중국론은 지구적 데탕트의 기운을 좀처럼 감지하지 못하는 철방 속에 폐쇄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고뇌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로 옥고를 치렀던 그가 「상고이유서」에 적었던 바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과학적 인식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의 안전 및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길”이라는 인식은 21세기의 오늘의 현실에서도 더없이 적확하다. 오늘날, 선생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 연구가 번성했지만, 한국 사회가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과학적 인식 능력’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시대 진영과 이념으로 세계를 가르는 관성적 이분법이 한국 사회의 멘탈리티를 지배하는 우상이었다면, 현재 중국과 우리 자신, 그리고 세계를 인식하는 눈을 가리는 우상은 무엇일까. 혐중적 정서가 기층을 넘어 지성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되는 상황은, 어쩌면 중국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 능력’의 결여로 인해 정확한 비판의 언어를 찾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에 대한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되돌아오고 또 세계에 대한 수준 높은 인식으로 연결되는 그런 중국학과 중국 담론이 필요한 지금, 리영희 선생의 중국론이 특히 무겁게 다가온다.


리영희 선생이 조선일보 국제부 재직 시절 1965년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대해 쓴 연속 특집 기사 '아아의 물결' 중 1편 (조선일보. 1965. 6. 6.)


'아아(亞阿)의 물결' 1~5편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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