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고 묻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 / 하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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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6-09-02 01:50
조회
209

리영희와 나
‘왜?’라고 묻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



 


 


 


 




하승창(리영희재단 이사,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



리영희는 내게 ‘왜?’라고 묻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선생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거나 가까이 교유했던 것은 아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도 그러했듯, 나 역시 주로 그의 글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 언젠가 딱 한 번 뵌 적은 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만났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도 내가 ‘왜?’라는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은 선생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연은 이렇다.

1980년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해 4월과 5월, 대학에서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고 여러 문화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대학의 보통 모습인 줄 알았다. 남들이 가는 곳에 따라가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저 바라볼 뿐, 그 이유와 까닭을 깊이 궁금해하지 않던 평범한 신입생이었다.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저 당황했을 뿐이었다. 몇몇 친구와 학교 앞 다방에서 만나기로 한 날, 교문을 지키고 선 계엄군을 보고 가까이 가보지도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날 문과대 같은 반 친구가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갔다. 나는 그 유인물을 가방에 넣어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밤늦게 서대문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나서야 꺼내 보았다. 그 친구는 오히려 내게 유인물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경찰이 어떤 단서를 얻으려고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조차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것이라고 둘러대어 그럭저럭 상황을 넘겼지만, 그 일로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이후 나는 정치적·사회적 사건에서 더욱 멀리 떨어져 지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어 든 책이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내가 산 책은 아니었다. 휴교령이 내려지기 전인 5월에 빌려 온 책이었는데, 몇 달 동안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우리 집 한구석에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놓여 있었다. 아마 서클에서 그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했던 것 같다. 정작 책은 읽지도 않고 모임에 나가, 베트남은 통일된 것이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선배에게 어깃장을 놓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시간이 남아 책을 펼쳤다. 중국과 베트남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사실을 전하는 방식도 낯설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책을 읽자고 한 선배 역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책장이 뒤로 넘어갈수록 오히려 흥미를 잃었고, 결국 책을 덮어버렸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도 책은 여전히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우리 집에 있었다. 어느 날 무심코 다시 집어 들고 뒤적이다가 책 뒷부분에 실린 짧은 글들을 읽게 되었다. 그 글들이 내 사유에 가한 충격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파블로프의 유명한 실험, 곧 종소리만 들으면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개의 이야기를 빌려 쓴 글이었다. 무조건적인 이념적 신앙과 권력에 대한 복종은 인간을 자유롭게 사고하는 주체가 아니라 파블로프의 실험에 동원된 개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언론과 지식인들을 향해 쓴 칼럼이었지만, 내게는 바로 나 자신을 향한 말처럼 들렸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 아니 애초에 그런 능력을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에게는 ‘내 생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일은 몹시 아팠다.

그때부터 질문이 시작되었다.

광주에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광주의 이야기는 왜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는가. 우리는 왜 학교에 갈 수 없었는가. 내가 보고 듣고 믿어온 것들은 과연 사실인가.

나는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 5월의 기록을 찾아 읽었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강하자마자 스스로 세미나팀을 만들어 공부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러했듯 나 또한 우리 사회와 정치의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뒤로 시대의 격랑 속에서 살았고, 정보기관과 경찰의 사찰과 수사를 겪으며 두 번이나 감옥에 갔다.

1980년대 내내 금기시되던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으며 이전과 다른 방식의 사유와 실천을 모색했다. 그러나 1987년 이후에는 다시 ‘왜?’라는 질문이 더 자주 떠올랐다.

두 번째 수감 생활을 하면서 1980년 이후의 내 삶을 돌아보았다. 뜻은 갸륵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나의 사유와 실천은 어느새 시대에 뒤처져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한 세기 전의 생각은 그 시대적 조건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20대를 다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진짜 스스로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성찰의 시간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 그 세상의 변화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무슨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가.


(왼쪽) 《전환시대의 논리》 초판본 표지(창작과비평사, 1974) ⓒ창비
(오른쪽)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초판본 표지(두레, 1994) ⓒ두레


그 무렵 리영희 선생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가 출간되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내가 품기 시작한 의문과 생각의 변화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나의 신념에 자신을 가두는 대신 끊임없이 질문하고, 현실의 변화를 읽으며 스스로의 생각까지 의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다시 만난 것이다.

감옥에서 사용하는 봉함엽서는 마음먹고 쓰면 제법 깨알같이 많은 글을 담을 수 있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리영희 선생에게 꽤 긴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마 뒤 선생에게서 답신이 왔다. 엽서에는 글씨가 빼곡했다.

그 엽서를 분명 잘 보관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정확한 문장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선생이 전한 말의 뜻은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몸은 갇혀 있으나 생각은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감옥이니, 자유롭게 사유하라.”

나는 리영희 선생의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사람은 아니다. 《전환시대의 논리》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리고 《우상과 이성》 정도를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가 반드시 배움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앞의 두 권은 스무 살 이후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유의 태도를 가르쳐 준 책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옥중엽서는 그 가르침을 더욱 깊고 오래 남게 했다.

어떤 사람의 가르침은 많은 만남이나 긴 교유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단 한 편의 글이 한 사람을 멈춰 세우고, 단 하나의 질문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리영희 선생은 내게 ‘왜?’라고 묻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 권위에 생각을 맡기지 말 것, 익숙한 신념조차 끊임없이 의심할 것, 그리고 끝내 자기 생각의 주체로 살아갈 것.

나이가 든 지금도 나는 그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내 생각이 시대에 뒤처진 것은 아닌지, 내가 다시 어떤 종소리에 무조건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여전히 ‘왜?’라고 질문하며 살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리영희 선생에게 받은 가장 큰 가르침이며, 선생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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