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정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제언 - 서구 지배의 종말과 한반도 / 박인규
국제정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제언
- 서구 지배의 종말과 한반도
박인규(프레시안 고문)
1988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창간호 15면에 “국제정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제언”을 부제로 한 리영희의 전면 기사가 실렸다(큰 제목은 “먼저 ‘사상적 평형’을 회복하자”). 한반도의 민주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언론은 국제뉴스를 어떻게 보도해야 하며, 독자들은 언론의 국제뉴스 보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진단과 처방이었다.
그는 “(일반 독자들이 복잡다단한) 국제문제를 잘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반대로 알고 그것을 ‘신념화’하는 것이 정말로 위험한 문제”라면서 “도착된(뒤집어진) 신념체계가 한국 독자 일반의 국제 감각과 국제관을 병들게 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한국 국민들은) 지구상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도 국제적 안목에서 절름발이가 되고 색맹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그 대표적 사례로 베트남전쟁을 지목했다. 베트남 인민의 자주통일 노력을 소련의 세계 공산화 음모로 둔갑시킨 “한국 언론의 ‘베트남 보도’는 진실(의 전달이 아니라) 찬탈”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주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한반도에서는 국제정세의 정확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이미 많은 나라들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떠나 독자적 활로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만이 여전히 미국의 충직한 ‘위성’으로 남아 있다면서, 미국 시민보다도 더 미국의 국가 이익과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정신 상태로는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고 지적했다.
리영희는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는 주체의식이 기조가 돼야” 한다면서 “정신적, 사상적 ‘남’의 상태에서 먼저 ‘나’가 되자. 먼저 ‘나’를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나의 주체적 관점이 확고하게 선 다음에야 국제 사회의 실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리영희는 이 글에서 ‘국제정세의 바른 이해’를 가로막는 근원적 제약으로서 국가권력과 ‘계급적’ 존재(자본권력)에 의한 국제뉴스 통제와 극우 성향인 한국 주류세력의 편견이라는 이중적 굴절과정을 꼽았다. 한국이 국제뉴스의 원천으로 의존하는 AP 등 서방의 국제통신들은 필연적으로 소속 국가의 이익과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기 마련인데, 한국 언론은 이러한 서방언론의 자국 위주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한편으로, 1986년 5월 미국의 전략무기통제협정(SALT) 탈퇴와 같은 중요 기사는 아예 묵살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 간 핵군비경쟁의 위험성에 대한 무지 탓이다. 1980년대 남아공의 인종차별 백인정권에 대한 세계적인 저항운동도 한국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그는 그러므로 기자든 독자든 세계 문제를 대함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면서 다음 일곱 가지를 꼽았다. 첫째, 당사자 쌍방의 입장과 주장을 공평하게 듣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도록 노력할 것, 둘째, 진실이 확인·입증되기 전에는 상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할 것, 셋째, 초강대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되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가 식별하는 노력이 필요, 넷째,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가 관련된 문제에서 맹목적 애국심과 독선적 태도를 경계할 것, 다섯째,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것, 여섯째, 사건과 관계의 ‘역사’를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곱째, 뉴스를 선택, 작성하고 전달하는 신문 사주의 속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뉴스 사주의 이해 관계가 작동하는지 여부).
38년 전의 글을 지금 소환하는 이유는 당시 리영희의 문제의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패권국가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적 평화적 한반도의 확립이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특히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으로 확대된 우크라이나전쟁과 올해 2월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본격화된 이란전쟁은 2차 대전 이후 지속돼온 미국 패권의 몰락은 물론 지난 500년간 서방의 세계 지배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중국, 러시아를 필두로 중남미, 아프리카 등 나머지 세계가 서방의 지배에서 벗어나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세계 질서를 만들어낼 기회가 열린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호에 국제정세의 바른 이해를 제언하며 기고한 전면 특집 기사 ‘먼저 “사상적 평형”을 회복하자’ (한겨레신문. 1988. 5. 15.) → 전문보기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동아시아(1945~1975년)와 대중동지역(1979-2021년)에서 전쟁에 개입했다. 한국전쟁은 비겼지만 냉전의 군사화를 통해 서방을 결속시키는 성과를 거두었고, 베트남전쟁은 패배로 끝났다. 미국 역사상 첫 패배였고 전후 서방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초래했으나 미국은 공산 중국과의 역사적 화해, 그리고 페트로달러를 이용한 달러 패권의 확립으로 세계에 대한 지정학적 우위와 금융 통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1979년 1월 이란의 이슬람혁명과 12월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미국의 대중동 군사 개입을 초래했다. 세계 석유자원의 3분의 2 정도를 보유한 중동 지역을 반드시 미국이 통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리전 형식으로 치러진 1차 아프간전쟁(1979-89년)은 소련의 붕괴를 초래했다. 5만 명 이상의 미군 병사가 사망한 베트남전쟁의 여파로 미국은 지상군 해외 파병 대신 이슬람 자원 전사들을 전투요원으로 활용했다. 또한 파키스탄과 사우디가 군사 및 자금 지원을 했고 미국은 스팅어 등 첨단 무기를 제공해 소련의 제공권을 무력화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무너졌던 미국의 군사적 위용을 되찾는 성과를 거두었고 아프간은 ‘소련의 베트남전쟁’이 된 것이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2003년 거짓말(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9·11테러를 지원했고 핵무기를 개발 중)에 근거한 이라크 침공으로 경제적·군사적 자원을 낭비했으며 세계의 신뢰를 상실했다. 이후 2021년 8월 31일 아프간 미군 철수 때까지 이어진 중동에서의 긴 전쟁(Long War)은 2008년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소진됐다.
문제는 2021년 아프간 철수로 영영 끝난 줄 알았던 미국의 전쟁의 시대가 2022년 2월 유럽에서 재개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이 그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미국의 군사 개입이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옮겨온 것이다. 유럽에서의 전쟁 발발은 유럽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다. 1·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유럽인들은 유럽연합 등의 상호 협력을 통해 영구적 평화, 즉 ‘전쟁 없는 유럽’을 달성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서방의 대부분은 푸틴의 일방적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unprovoked war)면서 러시아가 유럽 전체를 군사 정복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허위의식이다. 현실의 실상을 정반대로 알고 있는 도착된 신념체계다. 푸틴의 군사작전은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미국의 졸개로 만들려는 미국의 시도에 저항하려는 불가피한 최후의 반격이다. 그가 불과 15만 명의 병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젤렌스키에 대해 러시아와의 안보 협상을 강제하기 위한 위협조치였다(2차 대전 당시 히틀러는 우크라이나보다 영토가 작은 폴란드 침공을 위해 150만 대군을 동원했다).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22년 3월 터키와 이스라엘의 중재로 평화 협상을 벌여 3월 말에는 협상안이 거의 완성돼 있었다. 그러나 4월 7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 젤렌스키에 압력을 넣어 조약 체결을 무산시켰다. 이후 전쟁은 4년 반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영국과 미국은 다른 나라와의 대등한 공존을 원치 않는다. 오로지 지배를 원할 뿐이다. 그것이 미국이 전쟁을 계속하는 이유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방 대 비서방(West vs. Rest)의 대결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특히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난 수백 년간 지속돼 온 서방의 경제, 사상, 군사, 정치적 지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서방 40개국이 단행한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비서방 140개국은 동참하지 않은 게 단적인 증거다. 서방의 인구는 기껏해야 15% 정도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국제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서방언론을 통해서는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서방언론은 서방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서방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있다. 2차 대전 후 독립한 신생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앞으로도 계속 미국/유럽 등 서방의 노선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격변하는 국제 질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번영의 방안을 도출해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외세의 강요에 의한 개항의 결과가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 비극으로 귀결된 것은 서세동점이라는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주체적 관점에서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세력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위험한 환상이다. 30년 전의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30년 전의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 초강대국이 될 것을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모든 것은 변한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사실 하나뿐이다.’ 세계의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시대에 뒤질 뿐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서방의 지배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아무도 예상 못한 냉전의 평화적 종식과 소련 해체, 그리고 짧았던 미국 단극 시대
리영희가 이 글에서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독자적 궤도를 찾아 미국으로부터 떠난 지 오래라고 진단한 것은 이제 와서 보면 다소 성급한 판단이었다. 당시로서는 불과 1년여 뒤에 냉전이 소련의 일방적 양보로 평화롭게 종식될 줄을, 나아가 소련 자체가 15개 공화국으로 해체될 줄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 이후에 미국의 세계 패권이 지속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 글이 쓰여진 1988년 미소 냉전의 평화로운 종말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련은 1989년 유럽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방치했고 동유럽 국가들의 자본주의 전향을 용인했다. 1990년 소련 안보의 최대 위협이었던 동서독의 통일도 받아들였다. 1991년 12월에는 소비에트연합의 15개 공화국이 해체되고 러시아는 그중 한 공화국으로 전락했다. 국토, 인구, 경제 규모는 소련의 절반 정도로 축소됐다. 이러한 사태 전개 또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반면 미국은 1991년 2월 수십 개 나라들의 국제 연합군을 조직해 그 전 해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군대를 격퇴하면서 세계 유일의 슈퍼 파워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다. 나아가 베트남전쟁 패배의 여파로 국내에 만연했던 미 지상군 해외 파병에 대한 우려(베트남 신드롬)를 말끔히 씻어냈다. 바야흐로 미국에 제2의 군사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외쳤고, 다가오는 21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논문을 통해 냉전의 종식으로 세계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역사의 종점에 도달했으며 이제 다른 나라들의 과제는 이러한 미국식 생활방식을 따르는 것뿐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환희와 흥분의 시대는 대략 2000년 무렵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2003년)과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의 군사, 경제적 정당성과 위상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2016년 정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정치가 분열과 교착의 상태로 들어섰음을 뜻한다.
미국 스스로 초래한 패권의 몰락
냉전 종식 이후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았던 미국의 패권이 불과 20년도 안 돼 몰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스스로의 오만과 무지와 망상이 초래한 자멸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이 세계 지배를 둘러싼 유럽 열강들의 내전이었으며 그 결과는 유럽 자체의 쇠락과 미국과 소련이라는 유럽 외곽의 두 초강대국의 출현이었다. 마찬가지로 소련의 일방적 양보에 의한 냉전의 종식을 자신의 승리로 착각한 미국의 지배 엘리트는 미국의 세계 지배 영속을 위해 금융화, 세계화, 민주화를 가장한 정권 교체, 경제 제재 등 온갖 강압적 수단을 동원하다가 스스로의 고립과 쇠퇴를 자초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리영희가 제시한, 세계 문제와 관련해 주의해야 할 일곱 가지 사항 중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인 ‘당사자 쌍방의 입장과 주장을 공평하게 듣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도록 노력할 것’, 그리고 여섯째인 ‘사건과 관계의 역사를 알려는 노력을 하라’는 부분이다. 이 제언을 한국이 아닌 미국(의 지배엘리트)에 적용해 보면 미국이 대립하는 당사자 쌍방의 일방으로서 상대방의 입장과 주장을 공평하게 듣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도록 했는지, 사건과 관계의 역사를 알려는 노력을 했는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 대답은 단연코 ‘노(No)’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17세기 영국 청교도들의 신대륙 이주 이래 자신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세계에 실현하기 위해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가득 차 있다. 이른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선함을 너무나도 확고하게 믿는 나머지 미국의 팽창이 곧 자유의 확산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팽창을 가로막는 세력은 곧 악으로 규정된다. 미국의 팽창이 스스로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는 미국인은 곧 비(非)미국적이라고 규탄받으며 지도적 위치에 오를 기회를 갖지 못한다. 따라서 미국의 국제적 활동에서 외교나 협상은 사실상 아무런 실질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미국의 행위는 자신의 규정 상 곧 선행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침공 후 지난 2004년, 아들 부시 대통령의 선거 책사였던 칼 로브는 이러한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했다. “미국이 하는 일은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현실을 이해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몫이다.” 즉 미국은 자신이 뜻하는 대로 세계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클린턴 행정부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1998년 2월 “만일 우리가 군사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이는 우리가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필수불가결한 국가입니다. 우리는 높이 서서 멀리 내다봅니다.”라며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정당화했다. 한마디로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세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함의 표현이다.
한편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의 역사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예컨대 이슬람혁명이 진행되던 1979년 11월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난입해 52명의 대사관 직원들을 444일간 억류함으로써 미-이란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치외법권 지대인 대사관 난입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보다 26년 전인 1953년 자국의 석유자원 국유화를 단행한 모사데크 이란 총리를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비밀공작을 통해 몰아낸 사실을 아는 미국인은 극히 드물다. 당시 모사데크 축출을 모의한 장소가 미 대사관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모른다. 1979년 1월 해외 망명길에 오른 팔라비 국왕을 그해 가을 미국에 입국시키면서 이란 내에서는 미국에 의한 제2의 쿠데타 시도에 대한 경계심이 발동했고, 이 경계심이 대사관 점거로 이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국제 행위에 대한 미 국민들과 해외 국가들의 인식의 격차가 매우 크며, 갈수록 더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의 자유와 민주,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는 반면 미국이 벌인 전쟁, 비밀공작, 경제제재 등의 피해를 입은 국가의 국민들은 미국을 세계 최대의 깡패국가로 비판한다.
이처럼 세계에서의 미국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데도 미 국민들이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은 리영희가 지적한 ‘계급적’ 존재, 즉 정치권력보다도 우월한 금권세력에 장악된 미국의 제도 언론이 미국의 선함과 정당함을 끊임없이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 미국의 언론계는 정부의 반대와 탄압을 무릅쓰고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보도할 정도의 기개는 있었다(1971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의 금권세력은 언론계는 물론이고 정계까지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호주 출신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하고 보수 성향의 폭스TV를 창설했고, IT재벌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으며 또 다른 IT재벌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했다(X로 개명). 게다가 머스크는 트럼프 2기 정부의 정부효율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미 연방정부를 제멋대로 요리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정계와 언론계는 한 줌밖에 안 되는 극소수 금권세력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국제사회의 정의와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금권세력의 세계 팽창을 지원하고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탈냉전 시대가 ‘전쟁 재개’로 끝장난 이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단극 시대, 미국 유일 패권의 시대, 또는 세계화시대, 탈냉전시대는 끝이 났다. 이제부터 당분간 세계는 갈등과 혼란을 겪을 것이다. 미국이 주도했던 세계화는 이미 오래 전에 힘을 잃었고 앞으로는 주권 국가들 간의 협력과 경쟁으로 보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가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현재 인류를 위협하는 네 가지 위험, 핵전쟁과 기후위기, 경제 불평등과 인공지능의 위험을 인류사회가 함께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사실 냉전 종식 당시에도 국제사회는 보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한 기대가 가장 컸던 나라는 바로 소련이었다. 1985년 소련 지도자로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미국에 대해 대담한 핵군축을 제안하면서 세계 평화를 촉구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소련에 대해 벌였던 살인적인 핵군비 경쟁(스타워스 계획)의 압력 탓도 있었겠으나 ‘핵무기 전면 폐기’라는 고르바초프의 제안은 진심이었다. 핵전쟁에 의한 인류 절멸이라는 재앙을 함께 피하자는 것이었다.
소련이 동유럽의 마이웨이를 용인하고 소련 안보의 최대 위협인 동서독의 통일을 받아들인 것도 평화에 대한 염원 때문이었다. 특히 독일이 통일하더라도 나토를 동쪽으로 단 1인치도 확대하지 않겠다는 서방의 약속을 소련은 진심으로 믿었다. 당시 ‘유럽 공동의 집’을 제창했던 고르바초프의 꿈은 소련이 유럽 집단안보의 일원이 되어 다른 유럽 국가들과 대등한 주권국가로서 아무런 안보 우려 없이 서방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미국이 세계 평화를 원했다면 그 방법은 간단했다. 미국과 서유럽의 방위기구였던 나토를 해체하든가, 또는 소련과의 약속대로 냉전 당시 상태로 유지하든가, 아니면 옐친과 푸틴의 요구대로 러시아를 나토에 가입시키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선택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러시아만 쏙 빼놓은 채 1999년부터 나토를 동쪽으로 계속 확대한 것이다. 1990년 당시 16개였던 나토 회원국은 현재 32개국으로 늘어나 이제 러시아를 포위한 형국이다. 그리고 미국은 폴란드, 루마니아 등 신규 가입한 동유럽 회원국 영토에 러시아를 겨냥한 미사일방어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는 러시아의 군사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
미국이 당초 약속을 파기하고 나토를 러시아 국경까지 확대하는 한편 형제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나토의 일원으로 러시아에 대항한 군사세력으로 키워나가는 것을 러시아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 대한 실존적 안보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를 위한 소련의 선제적 양보를 미국은 자신의 승리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유일한 군사적 라이벌 소련의 해체를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한 호기로 생각했다. 미국의 세계 지배를 향한 야욕은 일찍이 1992년 3월 8일 뉴욕타임스에 유출된 기밀문서(Defense Planning Guidance)에 잘 드러나 있다. 당시 폴 월포위츠 등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비밀리에 작성한 이 문서는 소련 해체로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이후 미국의 핵심 목표는 세계 어떤 지역에서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 강대국의 출현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를 해체, 약화시키고 미국의 지배 아래 복속시키는 것이었다. 1999년 이후 러시아를 겨냥해 지속적으로 진행된 나토 확대는 바로 이러한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
물론 1990년대 중반 이후 나토 확대를 둘러싼 미국 내 논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했다. 봉쇄정책을 창안해 냉전 시대의 현인으로 불리는 조지 케넌은 나토 확대는 냉전 시대 이후 최대의 전략적 실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당시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는 이에 반대해 사임했으며 레이건과 부시행정부에서 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던 잭 매틀록도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미러 관계 악화는 물론이고 유럽의 평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찰력 있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9년 나토의 첫 번째 확대는 단행됐으며 이후 미국의 지속적인 나토 확대는 미러 관계 악화의 최대 요인이 됐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전쟁을 불러왔다.
사실 냉전 종식 당시 소련(러시아)이 품었던 미국에 대한 기대(소련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는 일찌감치 1993년부터 배신당하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미국의 지도 아래 진행된 충격요법으로 초인플레 등이 발생해 민생경제가 파탄 나자 러시아 의회(1990년 민주선거로 선출됨)는 급진적 경제개혁의 완화를 요구했다. 이에 대한 옐친의 응답은 대포로 의회를 포격하고 의회를 해산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말살한 폭거였다. 이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는 칭찬으로 화답했다. ‘오믈렛을 만들려면 달걀을 깨야 한다’며 급진적 경제개혁을 방해하는 의회 해산은 정당하다고 옹호했다.
미국이 지시한 충격요법으로 러시아 경제가 2차 대전 때보다도 더 큰 피해를 입고(GDP 40% 감소) 국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결과(남성 평균 수명 60세 이하로) 옐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 재선에 성공한 것은 미국의 수백만 달러의 선거 자금과 선거 전문가를 제공하고 각종 부정선거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1990년대 미국은 러시아의 민생경제를 파탄 내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들은 한통속으로 옐친 치하의 러시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따라서 미국 국민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옐친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했던 훌륭한 인물인 반면, 푸틴은 자국 국민들을 억압하고 해외 정복을 꿈꾸는 폭군으로 인식되고 있다. 러시아인들에겐 정반대다. 옐친은 나라를 말아먹은 무능한 폭군이다. 반대로 푸틴은 ‘구세주 블라디미르’로 불린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일으켜 세우고 무너진 나라의 주권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냉전 종식으로 세계의 주도권을 잡은 미국이 인류사회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할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 황금과도 같은 기회를 걷어차고 스스로의 쇠락을 자초했다. 자국민 전체도 아니고 극소수 상층부 금권세력의 세계 정복을 추구하다가 그 역풍을 맞은 것이다.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가 재기에 나섰고,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1년 상하이협력기구(SCO) 창설, 2009년 브릭스(BRICS) 정상회담 출범, 2013년 일대일로 사업, 2023년 브릭스 정상회담 확대 등 비서방의 협력과 단결을 위한 사업을 펼쳐나가며 ‘국제 관계의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다. 서방은 스러지고 글로벌사우스는 일어서고 있다.
한때 패권국가였던 미국이 상대방의 입장과 주장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사건과 관계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통해 교훈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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