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매카시즘’」
3-3.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매카시즘’」(1994년,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온통 정치적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광적인 발작 상태로 사회의 몸통과 사지가 뒤틀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눈을 허옇게 까고 입에 거품을 물고,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면서, 스스로 온몸에 유혈이 낭자한 간질병 환자를 보는 것만 같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다. 발광 상태다.국가에 정치는 없고 폭력만이 난무하고 있다. 정상은 간데없고 비정상과 비상식이 지배하고 있다. 조용한 이론과 논리는 밀려나고 우격다짐과 고함소리만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증오와 공포의 원시시대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문제를 둘러싼 격돌 상태가 차츰 화해와 해결의 단계로 접어드는 과정과 병행해서 일어난 변화다. 한반도를 둘러싼 50년간의 국제정세와 환경구조가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전환하려는 사태 발전과 정반대로 대한민국(남한) 사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동(逆動) 현상이다.
금년 초쯤부터 시작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 김일성 북한 주석의 남북 정상회담 제의, 김영삼 대통령의 제의 수락, 그리고 7월 25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의 만남이 가까워지면서 이 간질병 현상은 고조에 달했다. 국민대중의 남북 화해를 향한 희망이 부풀어가자 이것을 깨부수고자 하는 수구 기득권 집단들의 비상식과 반논리는 드디어 폭력으로 화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정치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상황에서 으레 등장하는 것이 수구세력의 유일한 처방인 ‘적색공포증’선동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붉게만 보이는 공포증이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라는 출판물을 그 ‘적색공포증’선동의 대변지로 삼은 이 비정상과 반논리의 폭력은 올해 초부터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지식인들을 하나씩 골라서 조준경에 맞추어 사살해왔다. 한완상이라는 부총리가 그들의 저격탄에 맞아 쓰러졌다. 다음으로 리영희라는 지식인이 조준경에 맞추어졌다.
떨어질 감투도, 잃어버릴 지위나 권세도 가진 것이 없는 리영희가 끄떡않고 버티고 서자, 그들은 다음에는 김정남이라는 권력중추의 인물과 당치도 않게 한승주라는 외무장관에게까지 정밀 조준사격을 퍼부었다. 두 인물은 그들의 사격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감투와 지위와 권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격은 소리만 요란하고 전사자나 부상자가 났다는 소식은 없다.
그러나 비겁하게 등뒤에서 총질하기를 좋아하는 전쟁애호적 수구세력의 총구는 이부영이라는 국회의원에게 조준을 맞추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뒤 ‘조의 표명’시비의 와중에서 깨끗하고 전도유망하고 선비 같은 이 국회의원은 사격뿐만 아니라 난도질까지 당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으리라는 소문이다.
맙소사!
유혈이 낭자한 이부영 의원은 상대방을 손가락질하면서 용감하게 외쳤다.
“한국판 매카시즘!”
“낡은 수법 ‘빨갱이사냥’을 집어치우라!”
“비겁한 마녀사냥!”
이부영 의원이 ‘한국판 매카시즘’이라고 규탄한 지난날의 광적 반공주의ㆍ냉전사상의 신봉자인 기득권 집단은 마침내 그들을 비호하는 국가권력을 움직여 학생ㆍ교수ㆍ노동자ㆍ지식인에 대해 일제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공안정국’이다. 몇 해 전의 군부독재로 되돌아간 감이다.
대북한전쟁을 못해서 몸이 근질근질한 그들 집단들의 적색공포증은 바야흐로 극에 달하고 있다. 몇십 명의 이른바 ‘주사파’ 연관 사병들이 “대한민국 군대의 명령ㆍ지휘계통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대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50년 역전의 전통을 자랑하며, 수백 명의 대장ㆍ중장ㆍ소장ㆍ준장들이 꽉 틀어쥐고 있는 이 나라 육해공군 70만 군대의 명령ㆍ지휘계통이 고작 입대 중인 몇십 명(몇백 명이라 해도 그렇다)의 하급 사병들에 의해 좌우되고, 유린되고, 장악되고, 파괴되고…… 할 수 있는 것이냐?
이런 황당하고도 무계한 소리가 누구의 비판이나 반대도 받음이 없이 함부로 외쳐지게끔 방치된 상태,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런 소리를 듣고도 긍지 있는 우리 군부가 한마디 항변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나 위험성이 있기는 있는 것인가? 내일이라도 우리 군대의 명령계통은 지리멸렬이 되려는가? 그래서야 한시인들 두려워서 국민이 살 수 있겠는가?
만약 수십 명의 허약한 사병들에 의해서 막강한 세계 유수의 군대가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몇십 년 동안 군부독재를 해온 당사자들과 그들의 권력기반이었던 오늘의 그 수구세력은 무얼 하고 있었던가?
누워서 침을 뱉으려면 조금은 방향을 가늠해서 뱉어내야 할 것이 아닌가? 국민이 조금은 납득을 할 수 있는 선동이어야지! 적어도 군복무 경험을 하지 않은 남자가 거의 없는 ‘국민개병’의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대한민국의 국가권력 기관들이 그런 소리들을 함부로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한심해지는 정신풍토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 모든 작태를 두고 ‘한국판 매카시즘’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매카시즘’이란 무엇인가? 이 달에는 우리 함께 ‘매카시즘’을 연구해보자. 그 형성 과정과 목적, 그것의 본태와 결과 등을 정확히 알아야, 그리고 정확히 알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생태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젠하워까지 ‘빨갱이’로 몰았던 매카시즘
어떤 정치사전은 요약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1908~56)라는 자가 1950년 2월 미국 정부기관에도, 특히 국무부를 비롯한 행정부의 중추적 직위에 205명의 공산당과 그 동조자가 잠복해 있고, 미국 사회의 각 부문을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폭로’ 발언을 했다. 이 폭로식 주장은 정부 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사회를 경련과 발작 상태로 몰아넣었다. 1954년에는 정부와 지식인 사회뿐만 아니라 미국 군대 내에도 다수의 ‘빨갱이’가 있어 미국 군대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그의 비난을 조사할 의회 청문회가 열려, 두 달에 걸친 조사와 증언청취가 소란스럽게 진행됐으나 매카시 의원은 단 한 명의 행정부나 ‘군대 내 빨갱이’의 존재도 입증하지 못했다. 매카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 대통령인 트루만과 현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도 ‘빨갱이 의혹’이 있다고 발설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조작된 주장과 비난으로 수많은 최고 지성인들이 공ㆍ사 각 분야의 직위에서 추방되고 미국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를 거꾸로 모방한 ‘반공독재’의 공포정치로 타락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까지 ‘빨갱이’로 의심하는 광적인 작태를 벌이자 미국 의회는 1954년 12월 매카시 상원의원에 대한 징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매카시 의원은 미국 사회를 상호불신과 발작과 공포적인반공 히스테리로 몰아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목적을 위해 악용했던 상원 내 ‘국내치안분과위원회’위원장직을 해임 당했고, 깊은 좌절 끝에 정신착란증 환자가 되어 1957년 5월 죽었다.
‘매카시즘’의 개요는 대강 이런 것이다.
어떤 이는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극좌’의 공포정치를 실현하는데 30년이 걸렸고,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극우ㆍ반공’의 공포통치를 실행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그런데 자유와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를 ‘광적 반공’의 공포정치로 타락시키는 데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비꼬기도 했다.
극좌 공산주의의 스탈린과 극우 반공주의의 히틀러가 다같이 저지른 대량살육을 미국의 극우 반공주의 매카시즘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반공’의 기치 아래 20여 개 나라를 침공ㆍ침략한 전쟁에서 미국 반공주의는 수백만의 무고한 인간을 살상하고 상상을 초월한 재물을 파괴했다. 공포통치의 수법이나 해악은 극좌와 극우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것이 매카시즘의 교훈이다. 공포통치에서는 극좌와 극우가 ‘one and same’(전혀 다를 것이 없는 한 가지)임을 매카시즘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매카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소련과 공산주의ㆍ사회주의의 세력ㆍ이념ㆍ사상이 동유럽ㆍ중국대륙을 비롯해서 세계의 구식민지 인민들을 사로잡고 미국이 대표하는 의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축소돼간다는 위기의식이 발작적으로 표출된 사상이자 체제였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1950년 6월 말에 일어난) 한국전쟁 때문으로 생각하지만 매카시즘의 뿌리는 그보다 훨씬 깊고 시간적으로 그보다 앞선다.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자’와 맞붙게 된 미국 국민의 경험은 매카시즘을 더욱 광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매카시는 초기에는 인기가 없던 그의 ‘빨갱이사냥’선동에다 한국전쟁 참전의 감정을 이식했다. 그는 “미국 청년들이 공산주의자들의 기관총에 맞아 한국의 골짜기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는데 미국 내의 각 분야에 숨어 있는 공산ㆍ친공ㆍ좌익분자들이 그것을 돕고 있다”는 원시감정적 표현을 덧붙임으로써 아연 미국 국민과 사회를 ‘반공 히스테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매카시 상원의원은 ‘악마적 선동가’의 탁월한 소질을 천성적으로 타고났다. 미국 국민이 5년 동안 완전히 한 사람의 악마적 선동가에게 놀아난 셈이다.
이제부터 우리나라의 문제와 관련시키면서 그 교훈을 살펴보자.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전쟁노력을 저해하는 적성행위(適性行爲)와 ‘반미국적 행위’를 처벌하는 ‘스미스 법’(Smith Act)을 제정했다. 이것으로써 웬만한 반미국적 행위를 처벌하고 대처하는 데는 충분했다. 형법이 있고 방첩법이 있고 스미스 법도 있다. 그 이상의 법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그 후에 ‘반공법’의 원형이 된 이 스미스 법(국내치안유지법)은 ‘반공’의 이름으로미국의 건국이념인 사상의 자유와 자유주의 정신을 정면으로 유린하는 내용이다. 이 법이 얼마나 ‘반공’이라는 미명 아래 인권과 자유정신을 유린하는 내용이었는가는 트루만 대통령이 그 법률안을 비토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트루만 대통령은 반국가행위, 간첩행위, 정부전복행위, 사보타주 파괴행위 등,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의 여러 법으로도 충분하다고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 법안을 비토했다.
자유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시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문제삼아 처벌하는 일은 절대로(naver) 있을 수 없다. ……이 사상과 논리는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다. 그 까닭은 자유가 다수자(의견)의 박해로부터 소수자(의견)를 보호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의사표시(표현ㆍ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까닭은 그것이 비판(권)을 허용하고 비판은 전체를 진보와 발전으로 이끌어준다는 의미에서 누구보다도 바로 다수자(의견)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트루만 대통령의 이 같은 사리에 밝은 충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회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묵살한 채 두 시간 만에 그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민의 양심을 대표하고 집약했던 의회도 매카시적 광란적 ‘적색공포증’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래도 흥분된 논란 끝에 다음의 구절을 삽입하자는 소수의견이 채택되기는 했다. 즉 “이 법의 어떤 표현도 헌법으로 보장된 출판과 의사표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광란적 반공주의와 공포감에 사로잡힌 집단에 의해 이 조항의 정신은 완전히 유린되고 말았다.
이 법을 토대로 의회 내에 ‘정부전복활동통제위원회’와 하원에 ‘반미국적 활동조사위원회’(The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가 설치되었다.
매카시 의원은 상원 ‘국내치안분과위원회’위원장으로서 이 모든 위원회의 권한을 행사했다.
이 위원회들과 그들 활동의 법적 근거인 여러 법의 조문이나 표현은 여기서 생략한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나라에서 그 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기틀이 되고 그것과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극우선동가에게 놀아난 미국
매카시는 천성적인 선동가였다. 그는 상원의 국내치안분과위원장이 되기 전인 1950년 2월, 젊은 초선의원으로 상원에 진출했다. 그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한 매카시는 한 다발의 종이뭉치를 흔들어 보이면서 선언했다.
“내가 들고 있는 이 서류뭉치에는 국무장관에게 오래전에 그 정체가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국무부의 그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 수립에 관여하고 있는 205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이 있다!”
이것은 폭탄선언이었다. 전 미국이 들썩거렸다. 전국의 정치풍토가 하루아침에 살벌해졌다. 매카시는 그 후에도 장소와 국면을 바꾸어가면서 기자회견을 통해, 때로는 200명이랬다가 때로는 150명이랬다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일관성 없는 소리로 ‘적색공포증’을 부채질했다.
공포에 질린 국무부와 상원의원들은 매카시에게 그 명단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매카시는 그럴수록 공개 요구를 거부하면서 ‘명단’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대중적 공포증, 군중심리적 히스테리는 극에 달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 사회의 일각에서는 젊은 매카시를 영웅시하면서 ‘차기 대통령 후보’운운하는 소리가 일기 시작한다. 극우적 선동은 적중했다.
명단 공개 요구를 묵살한 매카시는 훗날 그의 정치적 후원자인 언론계의 왕자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 2세에게 실토했다. 허스트의 자서전에 따르면 매카시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자네도 그 명단이라는 것이 있는 줄 믿었나? 그 정부 내 빨갱이 명단이라는 것 말이야? 명단이 있긴 뭐가 있어. 그저 인쇄된 서류뭉치였지!!” 이것이 극우 반공선동의 대표작이자 전형적인 작품이다. “근거가 무슨 필요가 있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증거를 대라니 같잖은 소리!”이 ‘빨갱이잡이’에서의 증거무용론의 충실한 아류들을 지금 한국에서 본다.
박 뭐라고 하는 가톨릭교 신부이자 지식인이며 서강대학의 총장이라는 어느 ‘빨갱이 사냥꾼’은, 이른바 ‘주사파’소동에서 증거를 대라고 추궁받자 “증거고 나발이고 무슨 필요가 있어. 그렇다면 그런 거지!”라는 뜻의 말을 내뱉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단한 영웅들이다. 매카시스트의 전형이다.
매카시즘의 또 다른 교훈은, 매카시즘은 반드시 극우ㆍ냉전주의ㆍ비이성적 반공주의 언론기관(인)과 결탁함으로써만 위세를 떨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동맹조직은 거짓을 유포하는 체제다.
미국 출판왕국의 제왕이던 허스트와 『타임라이프』(TIME-LIFE) 출판왕국의 총수 헨리 루스는 극우ㆍ반공성전을 선포하고 매카시와 동맹했다. 마치 한국에서 현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필두로, 그밖의 몇몇 신문사 출판왕자들과 한국판 매카시스트들이 ‘빨갱이 사냥 십자군’의 깃발을 흔들면서 모든 자유주의적 성향과 진보적 인사들에 대해 총공격을 하고 있는 동맹체와 같다.
매카시 동맹세력이 ‘반공의 영웅’또는 ‘투사’를 제조해내 선동의 선두에 내세우는 것도 우리의 현실과 같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투사가 다름 아닌 빌리 그레이엄 목사다.
1950년대 초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허름한 천막교회를 운영하던, 누구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부흥선교사 빌리 그레이엄은, 매카시의 정치력과 막강한 허스트계의 신문조직 및 『타임라이프』계 출판언론 조직의 협동작전으로 일약 ‘반공성전의 투사’로 만들어졌다. 이 동맹세력에 전국의 자본이 접근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자본가들이 빌리 그레이엄의 반공주의 기도회와 부흥회에 아낌없이 헌금했다.
‘마녀사냥꾼’이 된 빌리 그레이엄은 1954년, 35만 명의 군중 앞에서 열광적으로 외쳤다.
“여러분! 공산주의가 죽거나 기독교가 죽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군중은 광란했다. 이 양자택일의 반지성적 흑백논리는 미국 사회의 철학이 되었다. 우리는 1980년대에 두 번에 걸쳐 서울의 여의도 광장에서 이 꼴의 한국판을 본다. ‘극우정치인+극우 지식인ㆍ교수들+극우언론+극우종교+자본=매카시즘’의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이 형상을 지금 우리 눈앞에서 보고 있다.
이 ‘매카시+언론계’동맹의 충실한 용병으로 권력에 아부하고 아세곡필하는 많은 수의 이른바 ‘언론인’이라는 지식인이 출세했다. 지성과 직업적 윤리를 배반하고 출세하는 ‘언론인’의 모형이다. MBS 방송망의 풀턴 루이스, ABC 방송망의 조지 소콜스키 등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는 지금, 같은 유형의 ‘언론인’을 『조선일보』와 조갑제(『월간조선』)라는 인물에서 그 모범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용감하게 매카시+극우언론기관 동맹에 대항하여 미국적 자유언론의 정신을 지킨 진정한 언론인들도 있었다. 드루 피어슨, 월터 리프먼, 조지프 올솝과 스튜워트 올솝 형제, 토머스 스토크스, 프레드 프렌들리, 에드워드 머로 등이다. 이런 언론인들은 한국에는 없다. 노엄 촘스키 같은 교수 지식인도 없다.
반공 히스테리와 충성 테스트
시대는 트루만대통령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 정부로 바뀌었다.
‘공산주의의 원흉’인 스탈린도 죽었고(1953.3) 한국전쟁도 끝났다(1953.7).흐루시초프와 말렌코프가 ‘스탈린 비판’을 감행하고 미국에 친선정책을 제의했다. 군사적대결의 무용함과 공산주의 혁명노선을 포기할 용의도 천명했다. 세계는 ‘비스탈린화’로 미ㆍ소의 대결에서 공존과 평화를 모색하는 국면으로 변했다. 매카시즘의 미국적 필요성도 감소되는 객관적ㆍ세계적 추세였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고는 미국의 극우ㆍ반공세력이 환영하는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평화와 정상(正常)을 사랑하는 각 분야의 인사들을 골라내 매카시스트들은 집중사격을 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대립ㆍ투쟁ㆍ증오ㆍ전쟁ㆍ파괴가 평화나 공존 또는 정상보다 값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매카시즘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대통령선거 기간과 당선시에는 매카시즘과 주로 공화당 동맹세력들의 ‘마녀사냥’ ‘빨갱이잡이’소동을 언짢게 생각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미국의 사상풍토의 히스테리를 거역할 수가 없었다. 아이젠하워가 취임하기 이전에 이미 ‘연방정부기관 공무원 충성서약제도’라는 것이 실시되고 있었다. 이것은 각 개인의 사상이나 신념 또는 의견의 자백을 강요하는 제도로, 분명히 미국헌법의 정신과 구체적 조항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공 히스테리’는 그 위대한 건국선조들의 자유정신과 헌법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충성 테스트’제도에 따라 250만의 공무원ㆍ군인과 군속문관 300만ㆍ방위산업에 관련된 과학자ㆍ기술자, 심지어 직공 300만, 합계 850만 명의 미국인이 충성서약서를 제출하도록 강요당했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가?
이 충성서약서는 1922년 이탈리아에서 극우독재자 무솔리니가 집권했을 때 이탈리아의 지식인들에게 강요했던 제도다. 위대한 미국이 극우독재로 전락했다.
‘저 사람의 반공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뜻의 투서 한 장만으로 매카시위원회는 밀고된 사람을 재판 없이 매장할 수 있게 되었다. 밀고자의 이름은 밝힐 필요 없이 밀고된 사람이 처벌받았다. 우리 나라의 최근까지의 ‘반공’제도와 국가보안법과 같다. 가장 비열한 행위인 이웃의 밀고가 ‘성스러운 행위’ ‘애국행위’로 둔갑했다. 중세 기독교(교황청)의 증거가 필요없는 무자비한 마녀사냥과 스탈린 소련의 밀고제도가 미국에서 재현되었다.
이런 광란적 풍토 때문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보안상의 고려’로 1,456명의 유능한 공직자들을 그 자리에서 추방해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언론기관(인)이 매카시즘에 중독되면 어떻게 직무를 유기하는가의 본보기를 본다. 즉 1,456명의 공무원이 다만 ‘보안상의 고려’때문에 해직되었는데도,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문인 『뉴욕 타임스』는 “정부 내에 1,456명의 ‘빨갱이’ 적발, 추방!”이라고 보도했다. 여타의 신문들이 과연 어떤 보도를 했겠는가는 불문가지다.
이른바 ‘언론인’(기관)을 자처한 신문(인)들은 바로 매카시즘의 대열 앞에서 북 치고 대열 뒤에서 나팔 부는 히스테리 선동기관으로 타락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른바 언론기관(인)들의 작태를 그 속에서 본다.
공무원 외에도 유능한 배우ㆍ과학자ㆍ교사ㆍ교수ㆍ작가ㆍ예술인ㆍ방송인ㆍ감독들이 다수 추방되고 박해받았다. 찰리 채플린은 수많은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그의 동료 영화배우로 이 밀고단체(Aware Inc.)의 열성분자였던 레이건이라는 배우는 30년 뒤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한국판 레이건이 앞으로 대통령이 되려는고! 가장 타락한 자가 가장 양명한 자를 추방하는 인간사회의 ‘그레셤 법칙’이 일반화됐다. 만인이 만인 의 감시자가 되었다.
매카시즘의 교훈은 끝이 없다. 매카시 상원의원과 그에 의해서 동원됐거나 자진 협조하는 ‘마녀사냥꾼’들은 타인의 인격ㆍ품위ㆍ양심ㆍ프라이버시 따위는 털끝만한 가치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구체적 인간의 구체적 행복은 그들이 신봉하는 추상적ㆍ관념적 가치인 ‘반공주의’앞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죽여라!”이 구호만이 매카시스트의 신조였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극좌적 스탈린주의와 지나간 파시스트의 극우적 신조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극좌와 극우는 ‘one and same’(바로 그게 그것)임을 매카시즘은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매카시즘의 반지성ㆍ반이성ㆍ반논리ㆍ반문화적 야만성은 문화활동 전반을 질식시켰다. 문화적 활동의 각 분야에서 순진하고 유능한 인물들이 집단으로 해고된 비극은 앞에서 본 대로다. 영화ㆍ연극ㆍ문학ㆍ과학ㆍ학문ㆍ창작 등의 모든 분야에서 ‘반공주의’외의 것은 바로 ‘공산주의’또는 ‘용공’으로 낙인찍혀 말살당했다.
전국의 공ㆍ사립 도서관에서는 매카시위원회가 시달한 목록에 따라, 공산주의ㆍ사회주의ㆍ자유주의적 성향과 내용의 예술품과 도서가 무더기로 끌어내려졌다. 지식인에 대한 갱유(抗儒)에 문화ㆍ정신적 소산인 예술품과 도서에 대한 분서(焚書)의 재난이 들씌워졌다. 출판사ㆍ서점ㆍ도서관 책임자들은 지레 겁을 먹고 자기들의 지식수준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구미에 맞지 않는 서적들을 그 내용과 관계없이 폐기해버렸다.
우리나라에서 ‘共’자와 ‘社’자가 든 책은 그것이 ‘共同社會……’ 든 무엇이든 간에 공항 세관에서 압수되거나, 장서로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심받던 꼴과 다름없다. 지금 이 시각에도 대학교수들의 교재용 저서가 ‘빨갱이책’으로 압수되고 그 교수들을 구속하겠다는 협박이 국가권력 기관에서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매카시즘은 다양한 견해를 거부한다.
이렇게 서슬이 시퍼렇던 매카시즘의 극우ㆍ반공주의도 운명이 다할 날이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무엄하게도 국민의 절대적 존경을 받는 두 사람의 대통령과 제2차 대전의 몇몇 영웅들을 ‘용공분자’로 중상하기 시작한 시점부터다.
기고만장한 매카시 상원의원과 그 추종자들은 트루만 전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현 대통령에게 도전한다. 두 대통령에게 ‘용공적 의혹’이 있다고 공언한 것이다. 미국 국민의 인격적 존경을 받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장군 겸 국무장관도 같은 모략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인들은 매카시 상원의원이 부르짖는 극우ㆍ반공주의의 정체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매카시즘으로 마취됐던 국민들의 정신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매카시즘의 종막은 1954년 동료 상원의원들과 군대에 대해 ‘용공’조사를 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성큼 다가왔다. 상원의원들은 여태까지 맹목적 반공주의에 박수를 치는 동안 매카시라는 젊은 상원의원을 자신들의 교수형 집행자로 키웠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경악했다.
군대의 제독ㆍ장성들에 대한 ‘용공’비난은 자위책으로 군대를 결속하게 했다. 군대는 반격할 자세를 취했다. 미국 시민들도 자신들이 뽑은 상원의원과,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때 피투성이가 되어 싸운 군장성들을 ‘빨갱이’로 모는 매카시를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매카시의 운명의 날이 왔다.
매카시의 최후
1954년 12월 2일, 새로운 선거로 민주당 지배하에 들어간 미국 상원은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 상원의 전통을 유린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안을 제출했다. 매카시 징계안은 67 대 22로 가결되었다. 이것으로 공식적으로는 매카시의 광적인 극우ㆍ반공주의와 ‘빨갱이사냥’은 끝났다.
그러나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국의 사상ㆍ정치를 휘어잡는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는 스탈린의 소련과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다름없는 국가적 타락을 겪은 것이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재해인가!
참고로, 마지막으로 덧붙여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매카시 위원회나 그밖에 매카시가 주도한 각종 조사위원회가 고발했거나 기소한 ‘공산주의자, 용공주의자’등과 관련된 사건 중 법원의 정식 재판에서 유죄가 입증된 건은 단 한 건도 없다!(로젠버그 원자탄 비밀 누설의혹 사건은 그 후의 일이다)
광적인 극우 반공주의의 괴물 조지프 매카시는 2년 뒤인 1957년 5월, 48세의 나이로 죽었다. 조지프 매카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만은 지금 이 순간에도 48세의 나이로 정력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 『말』, 199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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