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사회주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
9-10. 「사회주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1991년 『신동아』, 새는)
-사회주의는 이기적 인간성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인가?1)
상황변화 못 따르는 지성의 고민
지난 몇 해 사이에 일어난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지식인의 상황예측 능력에 대한 회의를 일으켰다. 지식인 사회의 인식 능력한계에 대한 자기확인은 그들을 심한 혼란상태에 몰아넣고 있다. 다소 과장한다면 20세기 말의 ‘지적 카오스’라고 할까. 지식인 집단의 ‘환경예측 능력 상실’의 시대라고 할 것이다.
최근 변화의 일시적ㆍ결과적 현상을 이른바 냉전적 정치관에서만 보는 세계의 자본주의ㆍ보수 이론가들(특히 미국의 그들)은 마치 오늘의 변화에 대한 자신들의 이론적(지적) 예측 능력과 그 예측이론에 입각한 정치적 실천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류가 존재양식의 이상을 그리는 대립적 투쟁은 끝났다고 승리에 도취하고 있다. 그 전형이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역사의 종언』론이라 하겠다.
사회주의 사회 내에서도 지적(사상적) 동요가 크다. 그들의 고민도 자신들의 ‘환경예측 능력’의 결함 내지 상실에 대한 자기비판 또는 반성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도 여러분이 고민했을 그런 지적ㆍ사상적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다. 아직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도 못했고, 나의 두뇌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릴 자격도 없다. 다만,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그 주제에 관해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간청 때문에 마지못해 그동안에 나도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괴로워하는 심정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과 나누게 되었다. 이론이나 확신이라기보다는 나의 근래의 심경에 불과하다. 지적 고민의 고백으로 들어주면 된다.
나는 오늘의 현실 과정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서부터 거슬러 생각했다.
첫 단계는, 인간의 지식과 정신의 갈등, 그리고 인간정신이 과학기술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상태다. 핵무기라는 과학기술의 물질적 괴력(怪力)과 인류파멸의 위협 앞에서, 그 설계자인 지식인이이성적 대응을 하지 못한 단계다. 물리학을 반(反)인간화한 군사력 숭배사상과 그 사상ㆍ제도에 대해서 인류의 생존과 이상의 보호자인 지식인이 그것을 억제할 도덕적 능력을 상실했던 위기다.
둘째는, 이념의 도식화(圖式化)와 도식화된 대립의 절대화다.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 중에서도 정치화한 자본주의(자)와 사회(공산)주의(자)가 상대방의 ‘절대적 부존재’(즉 완전한 파멸)야말로 자신의 절대적 존재의 보장이라는 절대주의적 존재론의 포로가 되었다. 사회적 관계와 인간생존의 상대(주의)적 인식의 가치가 부정되었다. 일종의 결정론이다.
이데올로기의 절대화가 냉전체제를 낳고 그 세계적 구조화로 인해서 개인(인간)의 정신적 자유, 개인으로서 선택할 자유가 부정당한 시대, 인간의 상대적 인식능력의 부정과 개인의 ‘선택적 주체성’의 상실의 시대다. 결정론이 자유의 선택을 거세한 상태였다.
셋째는, 신비화된 사유ㆍ언어ㆍ표현체계가 지식인의 상상력을 억압한 상태다. 전후 제1차적 성격인 핵물질력과 군사력 숭배사상에 입각한 ‘힘의 지배’, 그리고 제2차적 성격인 냉전이데올로기대립의 절대주의와 결정론이 자유로운 사고를 부정하는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인의 사유를 조건짓는 언어와 표현이 스테레오타입화한 상태가 왔다. ‘공식화’한 언어는 생명을 상실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부유한 소수의 권리와 자유밖에 보장된 것이 없는 자본주의 국가 및 제도가 ‘자유민주주의’로 개념화되었다. 또 20세기 말문명사회의 평균적 수준의 의식주생활을 그 사회구성원에게 제공하지도 못하면서 ‘사회주의 낙원’으로 표현되었다. 냉전이데올로기와 그 체제적 언어가 인간정신의 권위인 사유능력ㆍ비판력ㆍ판단력 선택자로서의 주체성을 약탈했다고 할 것이다.
넷째로, 차라리 위에서 생각해온 사실들을 종합한 견해로서, 나는 지난 반 세기의 냉전시대 지식인이 넓은 의미로서의 ‘구조결정론’에 빠졌던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학적 용어로서의 ‘계급’ 또는 계급관계 및 구속성의 구조라기보다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식인의 온갖 기능과 능력면에서 구조화되었던 현실을 말한다.
사실 나는 세계의 지식인 일반의, 특히 나 자신의 과거 지적활동을 돌아보면서 인간이 과연 ‘이성적 동물’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는 때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의 나는 과거와는 달리 인간이성에 대한 신념이랄까 확신 같은 것이 약화되었다고 고백해야하겠다. 많이 생각하고, 자기비판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렇다고 인간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러 단계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핵전쟁을 회피했다. ‘고르바초프’라는 존경할 만한 사상과 철학과 실천력의 소유자가 이성을 대표하는 것같이 보인다. 끊임없는 전쟁과 전쟁위기 속에서도 인류의 파멸을 회피하려는 군축노력은 끈질기게 계속되었고, 재래무기에서 전략무기의 철패를 향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인간이성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 성취를 가능케 한 이성적 결단은 인류에게 희망을 버리지 않을 만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그러기 위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회의 구조ㆍ체제ㆍ제도, 공식화된 이론체계ㆍ종교화된 신념체계ㆍ절대화된 사회적 선악관ㆍ교조화된 가치구조 등에 판단을 귀결시키지 말고, 그에 대항해서 인간(개인)을 선택의 주체로 확인할 필요성이다. ‘구조결정론’에서 개인의 선택적 권리를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의 변혁은 이 구조결정론의 파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시민이 그들에게 틀림없는 것으로 제시되었던 구조결정론적 이상과 목표 또는 희망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의 지식인 전반을 엄습한 환경예측 능력 상실에 따르는 지적ㆍ사상적 혼돈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 것 같다. 이 불행은 사회주의 국가 밖에서 보고 생각한 지식인의 경우는 차라리 이해될 수 있다. 심각한 불행은 소련ㆍ동유럽국가들의 일급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대부분이 구조결정론이라고 할 이론체계에 빠져서 현실적이거나 이성적 판단을 게을리했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진행을 고정된 사유의 틀로 해석하는 관습에 젖어 있었다는 자기비판이 크다. 소련ㆍ동유럽 사태의 변화 앞에서 혼란에 빠진 나 자신이나 여러분도 대동소이하리라 생각한다.
이제 잠깐 우리 자신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해방 직후의 치열한 좌ㆍ우 노선투쟁은 논외로 하더라도, 예컨대 남한 사회의 자본주의적 제반 부정적 속성과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자동적으로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가 원용되었다. 사회주의에 의한 남한 사회의 전면적 대치는 또 다른 위험한 구조결정론이지만 ‘사회주의적’ 수용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 방법으로 서구자본주의가 인간주의적 자기수정을 이룩하게 된 과정은 상식에 속한다. 그것은 사회민주주의 또는 복지국가 정책이다.
남한 사회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군부와 자본(소유계급)의 극우ㆍ반공주의 체제에 대한 궁극적 대응으로 이론적으로나마 사회주의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 지식인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공산주의를 이상화한 소수도 있었다. 주관적 관점에서 현실의 극단적 부정성 때문에 반대극의 사상과 제도에 심취해버린 극소수의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다. ‘극우’의 구조결정주의와 극좌적 그것의 ‘신념적 대결’ 구조인데, 세상은 이제 그 어느 쪽도 부정당하는 시대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역사는 끝났는가
사회주의는 소련에서뿐만 아니라 동유럽과 중국 등에서도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마르크시즘으로서의 이론적 사회(공산)주의, 혁명기와 스탈린식 사회주의, 그리고 냉전기의 경쟁적 사회주의다. 최근의 소련ㆍ중국ㆍ동유럽에서의 변혁을 놓고, 단지 스탈린식 사회주의만의 패배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전반의 실패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소위 스탈린식 사회주의는 전면으로 부정되었고, 사회주의 일반으로서는 생산력의 조직형태와 제도적 정치형태로서 상당한 근거를 상실했다고 본다.
사회주의에 대해 일정한 애착과 매력을 갖는 나로서도 그 같은 인정에 인색해야 할 이유가 없다. 20세기 말의 오늘날, 문명사회의 인간적ㆍ사회적 필요가 요구하는 생산품목의 총수가 몇백만 종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제 생활의 감각과 지식으로서도 국가단위와 병행해서 사적 생산수단의 활동 없이는 그 많은 자질구레한 종류의 소비품과 서비스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스탈린식’으로 명명된 혁명통치와 전시공산주의 정치형태가 성숙한 사회주의에 적용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것은 대체로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바다. 또 ‘스탈린식 사회주의’만의 패배라는 주장에도 나는 반대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서구식 또는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의 별칭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명칭이야 완곡하게 본질을 감춘 ‘자유민주주의’든 ‘시장경제’든, 또는 막바로 많은 결점의 대명사로서의 ‘자본주의’든, 그런 주장이 진실이기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실패는 사회주의의 실패보다 결코 덜할 것이 없다.
서구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적 민주주의의 승리를 주장하는 소위 ‘역사의 종언’론이 그런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의 종언론으로 대표되는 주장은 구조결정론적 사회제도하에서 수십 년간 교육을 받고 강제되어온 개인들이 현실적 선택에서 주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제도적 구속과 강제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에 입각한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일정한 ‘상대적’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동유럽사회에서 개인의 인간성 회복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승리론자들은 몇 가지 측면에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그 순수한 이론 원형대로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19세기의 경제적 자본주의와 그 정치정책에서 20세기 말의 오늘의 상태에 이르는 과정에서 과연 무엇이,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를 돌아보자. 오늘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의 변증법적 변화ㆍ성장의 구성적 대상인 마르크스 이론ㆍ철학과 사회주의의 도움을 받았다. 오늘의 자유민주주의는 고전적 자본주의의 2분의 1 단위와 사회주의 2분의 1 단위의 결합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그와 같이 사회주의와 마르크스 철학 및 인간관을 거부하고 있는 마지막 자본주의다. 미국의 비윤리적 실정이 그에 대한 반증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적 물질생산의 절정에 달해 있다고 자랑하는 미국 사회는 아직도 전체 사회구성원의 14퍼센트를 ‘빈곤’에서 해방시키지 못하고 있다. 세계 에이즈 환자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사회, 마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초등학교에까지 범죄방지를 위해서 경찰관을 배치해야 하는 사회, 대통령이 취임하면 ‘마약과 범죄와의 전쟁’을 국가목표로 선포해야 하는 사회. 이것이 사회주의를 이겼다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실상이다. 국가총동원적 ‘범죄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 해, 뉴욕 주와 와싱톤 특별구에서만 7,800여 건의 살인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플로리다 주 한 곳에서만 7,000건이 발생했다. 그밖의 주나 지방도 대동소이하다. 그 사회의 극단적 이기주의ㆍ범죄성ㆍ비도덕성ㆍ반인간성ㆍ타락, 이러한 질병은 물질생산의 화려함만으로는 은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항구적인문제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문제는 또 있다. 미국 사회는 자국 내에서는 일정한 인권ㆍ자유ㆍ기회의 평등ㆍ발전ㆍ법치 등을 이룩했다. 내적 민주주의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감정적 독단론이 된다. 그러면서도 국가 외적으로는 약소민족과 후진국가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억압ㆍ간섭ㆍ약탈은 물론, 스스로 원하는 정치체제를 선택할 민족의 자결권을 무력으로 부정하는 방법으로써 미국의 내적 풍요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비윤리성을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인간관 그리고 사회주의적 정책의 상당한 수용이 없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질병이 치유될 수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사회주의가 냉전에서 패배한 것은 의심의 여지없다. 그 전체주의적 제도도 패했다. 그렇다고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인가하면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가 경쟁상대로서 패했다고 단정함으로써 “역사는 끝났다”고 말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식 사고는 자기 환상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끝났는가? 역사는 전혀 끝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위상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계급혁명 이론 및 실천적 전략으로서의 레닌주의는 많은 국가사회적 성격이 국민사회화함에 따라서 그 현실적 효용과 타당성이 부정되고 있다. 사회적 계급(계층)이 지금도 제도화되어 있거나 경제적 불평등이 혹심한 국가들에서는 부분적으로는 레닌주의의 적용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효용성은 20세기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의 이론ㆍ사상은 이른바 ‘후기 마르크스’로 불리는 경제이론의 결함 및 오류와 ‘전기 마르크스’ 이론철학으로서의 ‘인간학’이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전자는 자본주의체제의 자기수정 능력으로 말미암아 19세기 중엽을 기준으로 이론정책의 실효성이 다분히 감소되었지만, ‘전기마르크스’의 철학과 가치관(윤리)은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자기수정의 과정이 요구될 뿐이다. 인간성의 회복을 지탱해주는 이론적 근거로서 ‘전기 마르크스’의 존재론적 인간학은 이 후에도 철학ㆍ윤리적 지침으로 남을 것이다. 환경ㆍ공해ㆍ평화ㆍ발전ㆍ인간가치ㆍ평등ㆍ소외ㆍ시민운동ㆍ저항 등 제도와 체제 내의 이의제기의 요소로서 사상적 효용을 유지할 것이다. 특히 아직도 계급의 해소 내지는 계급의 융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제3세계 지역과 국가에서 마르크스 인간학의 사상적 설득력은 크다.
‘후기 마르크스’는 19세기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 논거를 두었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수용으로 수정된 자본주의와, 아직껏 19세기 서구 자본주의의 수준에도 미달한 국가(지역)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론 사상은 이후에도 지속될 부분(수정과 개혁 과정)과 지양되어야 할 부분으로 병행되며, 이는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풍부화이며 인류 전체의 행복으로 승화되는 의미다. 이를 마르크스주의의 후퇴라고 서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적ㆍ사회적 윤리성의 문제
지난 10년가량의 기간 동안 중국 사회주의 변모를 관찰하면서 나는 적지 않은 실망과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의 최근 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적 인간윤리와 사회윤리의 타락을 목격하면서다. 사회개방이 수삼 년밖에 안 되는 소련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상태를 전한다. 이기주의적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각종 부도덕 행위와 범죄사건의 증대는 아직 자본주의 사회와 비교할 바가 아닌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소련에서는 1970년, 중국에서는 1940년의 사회주의적 인간윤리ㆍ사회윤리의 체질화를 지향했던 사상과 교육, 정책과 제도의 성과에 대해서 심각한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적지 않은 환멸을 느낀다. 사적 소유의 원리와 행동양식은 ‘필연적’으로 인간성품을 퇴폐시키는 것일까. 이론적으로 실제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는 근거로 나는 소유의 대상으로서 물질의 양의 유한성과 소유욕의 무한성의 불일치에서 찾는다.
유한한 물질을 수억의 인간이 무한한 소유욕을 가지고 각축할 때, 그로 말미암은 불평등은 범죄와 타락을 발생시키게 마련이다. 자본주의는 소유욕의 경쟁을 생산의욕을 고취하는 자극제로 활용하는 대신, 그 결과로 불평등ㆍ불공평ㆍ범죄ㆍ타락을 용인한다. 그것은 사유재산제도의 속성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위 ‘시장경제적 생산 및 생활양식’을 미처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사회주의적 인간ㆍ사회윤리와 도덕성이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인식에 소름이끼친다.
그와 관련해서 1976년에 중국의 공업도시 당산(唐山)과 미국의 최대도시 뉴욕에서 일어난 일의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인구 70만의 공업도시 당산은 중국 역사상 최대 최악이라고 기록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며칠 동안 계속된 지진의 파괴와 화재로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다.
그런데 그 참화 속에서 중국 시민이 발휘한 이타주의적 희생정신은 세계에 널리 보도되었다. 훔치는 자도 없고 남을 해치는 자도 없었다. 자신의 신체와 생명에 가해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에 처한 남의 생명과 재물을 구하러 불 속에 서로 뛰어들었다. 숭고한 인간애의 발현이고 이기주의가 배제된 헌신적 영웅주의의 발휘였다. 강제된 행위가 아니라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라는 데서 그것은 도덕적 선이 이룩된 사회라는 외국인 목격자들의 평을 받았다.
당시 그 현장을 목격한 일본 대사는 귀국 후 일본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만약 그 규모의 대지진이 도쿄에 일어났다고 가정할 때, 일본인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상상하면 다만 소름이 끼칠 뿐이다”라고 술회한 것을 읽었다.
같은 해 가을에 미국의 뉴욕 시에서 12시간의 야간 정전사고가 있었다. 정전은 인간으로서 불가항력의 천재도 아니며 중국의 당산시처럼 전면적 파괴가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의 기술적 결함으로 인해서 일어난 사고일 뿐이다. 이 정전 동안 미국인들은 어떤 행동을 했는가. 미국 내의 신문ㆍ방송ㆍ잡지 들이 그 상태를 ‘연옥’(inferno)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가히 상상할 만하다.
전등이 꺼져 자신의 얼굴이 타인에 의해 식별이 안 된다는, 즉자신이 익명자(匿名者)가 되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뉴욕 시민들은 남의 재산을 파괴 약탈하고, 방화하고 강간하고, 서로 찌르고 죽였다. ‘연옥’이 전개된 것이다.
당산과 뉴욕 시 또는 동경의 그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은 기독교 사회라고 자랑한다. 기독교적 사랑과 이타심을 강조하고 그 종교적 도덕윤리로 교육받는 인간사회라고 자랑한다. 당산은 무신론자의 공산주의 사회다. 기독교(종교)적 도덕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주의적 도덕ㆍ윤리규범으로 사는 사회다. 기독교 사회인 뉴욕 시에서는 고작 정전사고 정도의 사회규율의 해이로 기독교의 기본 도덕규범인 ‘십계명’이 송두리째 배반당했다.
무신론적 사회주의 중국의 당산에서는 거꾸로 기독교의 도덕규범이 자발적으로 지켜졌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사회라는 미국, 그것도 뉴욕 시의 미국인들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회인 중국인들의 극한상황에서의 행동양식은 개인이나 그 사회가 소유하는 부(富)와는 무관함을 말해준다. 오히려 물질적 소유의 평등성(또는 불평등성)의 차이가 그 두 사회에서의 인간 행동양식의 도덕적 차이로 표현됐다고 해석된다.
그러던 중국 사회가 그 낙후된 생산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장경제’(자본주의)를 도입했다. 그러자 몇 해 안 가서 중국사회와 중국인의 행동양식과 행위의 동기 및 목적이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살인ㆍ강간ㆍ강도ㆍ절도ㆍ사기ㆍ횡령ㆍ마약ㆍ매춘ㆍ구걸ㆍ부정ㆍ부패……. 이기주의와 사적 재산소유제도가 성스러운 가치를 부여받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현상이다. 이 양자는 떼어놓을 수 없다. 그것은 불가분의 속성이다.
나는 그 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사회에서 전해오는 같은 과정에서의 같은 사회적 생리현상을 보면서 깊은 회의에 잠기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 소유욕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인가. 마르크스주의의 인간성 존중의 철학사상과 그 물질적ㆍ사회적 환경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인간성을 변화시키기에는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인가. 이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는 그 답변에 고민한다.
사회주의 사회들은 한결같이 전 인민의 육체ㆍ정신ㆍ정서ㆍ감정의 완전한 발육과 발전을 목표로 했고 상당한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랑했다. 또 물질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각 사람이 그의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그 필요에 따라서 소유한다’는 원칙의 사회정의를 실현하려고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가치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식으로 객관적으로 증명된다고 일관하여 주장해왔다.
그러나 소위 ‘인간성 개조’를 위한 소련의 파블로프의 이론과 실험도 사이비 과학임이 드러난 지 오래다. ‘혁명적 인간형’, 어쩌면 지나칠 만큼 도덕주의 경향마저 지녔던 모택동 중국 사회주의의 인간성 개조 노력도 실패했음이 분명하다. 북한의 지도자 중심의 ‘주체사상’을 지도원리로 하는 ‘사회주의적 인간형’도 사회개방에 의한 검증을 받기 전에는 자신있게 주장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생각하곤 한다. 인간성은 본질적인 것으로서 사회환경의 개조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기주의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도를 낳은 바로 그 인간성이다. 도덕주의적 인간과 사회의 실현은 꿈일 뿐이란 말인가.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믿고자 하고 믿기도 했던 나는 비과학적인 이상주의자(또는 심하게 말해서 몽상병 환자)였던가? 지난 얼마 동안의 나의 자기비판과 고민은 이 문제를 놓고 계속되었다.
소수의 종교적ㆍ사상적 또는 혁명적 순교자만이 생명 탄생의 순간부터 사망의 순간까지 ‘도덕주의적 인간’으로서 90도로 꼿꼿이 서서 살 수 있다. 거의 모든 인간은 더 많은 안일ㆍ쾌락ㆍ소유를 원하는 이기주의자일 수밖에 없음이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사회에서 입증된 셈이다. 그들 대중은 절대로 90도로 빳빳이 선 생존과 행동방식을 오래 수락할 수 없다. 그것을 위한 어떤 제도적 강제나 규칙도 거부한다. 이것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중국 등 사회주의에서 지난 시기에 입증되었다고 나름으로 판단했다.
결국 인간성의 불가(不可) 개조성을 인정하여 이상적 인간과 현실적 인간의 절충적 형태를 수락해야 하지 않을까. 도덕주의적 인간형이 40도 이하로 허리를 굽히면 이기주의가 압도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후자의 허용각도를 30도 정도로 규제하여 전자의 사회가치적 규범력을 60도 정도 이상으로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개인과 사회의 안정 및 평형을 이루는 적정상태가 아닐까. 그 이상의 도덕주의를 요구하면 개인이 반대하고 사회가 무너질 위험성이 크다. 60도의 도덕사회로 만족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참이다.
두 인간형의 사회적 융합
그런 생각은 우리 민족의 재통일문제를 놓고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상주의적 인간형에 경도했다. 강렬한 정의감, 헌신적ㆍ자기희생적ㆍ낭만적 전제주의……. 반대로 이기주의적ㆍ기회주의적ㆍ현실주의 인간형을 경멸하고 혐오한다. 해방 후 신생독립국가 건설사업의 길에서 전자의 인간형이 주로 ‘좌’(左)의 자리에 섰고, 친일파ㆍ민족반역자로 지목됐거나 그런 오명을 입은 후자의 인간형이 ‘우’(右)의 자리로 마주 섰다.
나는 해방 당시 17세로 구제(舊制) 중학 4학년이었던 까닭에 해방 직후와 그 후 몇 해 동안 ‘좌익’을 택한 인물들과 ‘우익’을 택한 인물들의 도덕심의 극단적 대립을 잘 보고 경험했다. 남한의 시민으로서 말하기 거북스럽지만 그 당시 남한에서 좌익노선을 택했거나 북쪽으로 넘어간 인물들이, 해방 당시나 그 후의 남한 사회에서 득세한 인물들보다 인간적 윤리성에서 더 평가받았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자의 인물들은 분단된 북쪽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했고, 후자의 인물들은 남쪽에서 자본주의를 건설했다. 남쪽 사회는 외세의존과 국가주권의 상당한 양도를 대가로 해서 일단 오늘의 자본주의의 경제적ㆍ생산적 성공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 사회의 인간적 윤리성과 사회적 도덕성은 12시간 정전으로 드러난 미국 뉴욕 시의 경우보다 결코 낫다고 장담할 사람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국가가 총동원체제로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ㆍ인간적 윤리성의 부재를 뜻한다. 경제적 부의 심한 불평등적 배분구조를 잠시 접어둔다면, 남쪽 국민의 생활수준이 북쪽 국민의 그것을 능가하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쪽은 반대의 철학으로 나라 만들기를 서두른 결과, 높은 민족적 자존과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도덕적 생존양식, 그리고 동포애가 감도는 순박한 인간형 등의 사회를 실현한 것으로 주장한다. 많은 공평한 관측자ㆍ방문객들에 의해서 그 측면의 사회적 선(善)은 증언되고 있다. 그 대가로서 그 사회는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국민생활 수준에서 훨씬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북쪽사회와 그곳의 인간들이 대진재 때의 중국 당산 시민들처럼 고귀한 이웃사랑과 이기심을 극복한 인간주의적 공동체를 건설했는지 여부까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남ㆍ북한의 인간형과 사회적 현실이 극단적으로 대립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흑백논리와 이치적(二値的) 가치관을 경계해야한다. 남ㆍ북을 대립시켜서 ‘인간다운 생존양식의 도덕적 사회’를 택할 것인가, 또는 ‘돈만 있으면 어떤 물질적 향유도 할 수 있는’ 물질주의적 사회를 택할 것인가라는 식의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다만, 그같이 가치의 대립이 심각한 두 사회가 통일을 지향하는 데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화통일’의 개념과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는 흔히 생각하는 대로 전쟁(군사력)에 의하지 않는 통일이다. 동시에 둘째는, 군사력에 의하지는 않더라도 압도적 힘의 차이에 의해서 ‘병합’ 또는 ‘흡수’했을 때, 국민적 가치관과 신념체계의 정면대립으로 인해서 반란, 또는 장기적인 저항상태로 통일국가의 내부질서가 붕괴의위기에 처하지 않는 그런 순리적 통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ㆍ북이 서로 닮아가야 한다.
동ㆍ서독의 통일을 평화통일의 모델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정부의 북방정책의 목표가 그렇고, 진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그런 성싶다. 이들은 동ㆍ서독의 ‘평화적 통합’이 앞서 말한 첫째와 둘째 조건을 다 충족할 수 있을 만큼 인간형과 사회성 측면에서 접근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 사실에서 남ㆍ북한 사회는 동ㆍ서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평화통일’의 두 조건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상태다.
동독과 서독은 대전 이후 다같이 과거의 파시스트ㆍ나치주의자들을 체포ㆍ숙청했다. 독일민족의 민족적 정기를 함께 확립한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북쪽은 친일파ㆍ민족반역자의 숙청을 단행하여 민족정기와 자주성을 확립했지만, 남쪽은 불행하게도 숙청되어야 할 바로 그들이 국가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실은 그 후 남과 북의 국가의 성격차를 조건짓는 기본적 요소로 모든 면에 확대재생산되었다. 사회와 민족적ㆍ도덕적 가치가 달라진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서독은 자본주의지만 사회주의사상ㆍ학문ㆍ운동의 전통이 깊고, 사회주의 정당이 허용될 뿐 아니라 집권까지 하는 국가다. 동독은 사회주의지만 서독 자본주의와의 물질적ㆍ정신적 기반을 넓게 공유했다. 서독에는 간첩을 대상으로 하는 법은 있지만 동ㆍ서독 시민의 접촉을 간첩시하는 ‘반공법’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없었다. 그밖에도 공통분모적 조건의 공유가 20여 년에 걸쳐서 다져졌다.
남ㆍ북한 사회는, 쌍방이 그런 노력을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하더라도 10년 이내에는 동ㆍ서독적 수준에 가지 못하리라고 본다. 앞에서 자세히 지적한 것처럼 지금 남ㆍ북한의 사회 내부적 실태는 상호 수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립적이다. 남쪽의 대중은 거의 제도화된 범죄와 소외의 처지에 있지만 일정한 개인주의적 자유를 권리로 여기는 생활에 익숙해 있다. 북한의 전체주의적ㆍ통제적 사회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북한의 대중은 힘에 의해서 병합되는 경우가 아닌 한, 약간의 경제적 혜택의 대가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재 상태의 비도덕적ㆍ범죄적 성격의 남한 사회를 수락하기를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ㆍ북 사회와 국민이 진정한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려면 10여년 또는 그보다도 훨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기 내부적 실태를 동ㆍ서독 사이 만큼이나 변혁해야 한다.
남한은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북한은 시장경제를 수용하여 사회의 기본적 성격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을 거부하는 한 진정한 평화적 통일은 생각할 수 없다. 현재대로의 남한에 의한 북한 통합이 북한 주민에게 불행일 만큼, 현재대로의 북한에 의한 남한 통합도 남한 주민에게 불행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통일의 열정’에 들뜬 통일논의에 별로 찬동하지 않는다.
진정 통일을 앞당기는 일은, 우선적으로 남ㆍ북한의 군사력 감축을 진행하는 과정과 발맞추어서 남ㆍ북의 사회를 서로 융합할 수 있을 만큼 변혁시키는 노력이다.
우리 지식인은 통일문제에서 지금의 열을 식히고 차라리 조금 냉정해지면 좋겠다.
•1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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