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활동에 빛이 되신 리영희 선생님! / 박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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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4-06-02 01:29
조회
1735

잡것들 (리영희) 96x66 한지에 수묵. 2022


나의 창작활동에 빛이 되신 리영희 선생님!



 


 


 


 


박순철 / 추계대 교수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끝난다.”


리영희 선생님의 《우상과 이성》 머리말에서 하신 말씀이다. 개인전도 하고 들썩이는 언론의 평가도 받았지만 늘 혼란스럽고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지?’ ‘니가 뭘 안다고…’‘너는 뭐 때문에 작업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그 즈음이었다. 리영희 선생님의 저 글은 충격이었고 가슴이 뭉클했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중국 출신의 작가 가오싱젠의 창작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가오싱젠은 예술가의 도덕성은 진정성이라 강조했다. 서로 다른 두 분의 말씀을 나는 창작태도에서 어떠한 의도나 목적을 배제하고, 기존의 인식의 틀도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해서 마주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사실 명석하지 못해서 학교 다닐 때 중간정도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래서 내 나이 60넘도록 아직도 매일 책과 씨름을 하고나서야 겨우 그 의미를 파악하는 정도다. 그렇게 꾸준히 한다고 했음에도 갈수록 모르겠고 안개 속을 해매는 중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럴 듯 싶다.


지리산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그곳의 맑은 하늘만 보고 자란 나는 1982년에 미대를 진학 하면서 처음으로 서울의 칙칙한 하늘을 보았다. 첫 대학 생활은 생각했던 만큼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늘 학교근처에는 최루탄가스 냄새가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게 했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통금도 해제하고 두발도 자유롭게 해줘서 당시에 모든 남학생들은 장발에 파마를 할 수가 있고 밤새 에로영화와 프로야구 경기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2학년을 마치고 도망치듯 해병대를 지원하여 입대를 했다. 내가 근무 했던 2사단 해병특수수색대에서 대학 언저리에서 놀았다는 이유로 정훈병이 되었다.


부대장이 준 교재가 당시 윤성민 국방부장관의 책으로 기억된다. 계급이 낮은 관계로 시간이 없어서 준비도 없이 교육 시간에 들어갔다. 소규모의 중대원들이지만, 나는 사실 마이크 울렁증도 있고 자신감도 없었다. 군대서 하라면 해야 하는 상황이니 어쩌랴! 떨리는 마음으로 부대원들 앞에 서서 교육할 교재를 펼치는 순간 나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맨붕이 와서 멍하니 책자만 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을 깬 것은 “그냥 읽어”라는 부대장님의 명령이었다. 그 내용은 ‘하늘에 태양과 같으신 위대한 전두환 각하께서는 …’.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지리산 촌놈에서 깨어나는 사건이었다.


군을 전역하고 다시 복학한 학교는 여전히 3년 전과 동일했다.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시위에 대자보도 쓰고 함께 하였다. 1987년 6.29선언 이후 시위가 사그러들 즈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이후 대학원까지 거의 실기실에서 작업만 했던 것 같다.


내 나이 40대가 되어서 내 고향 지리산을 주제로 작업을 해 보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들었던 빨치산 이야기와 전투가 치열 했던 산 능선에서 탄피를 주워 엿 바꿔 먹었던 그 곳이 떠올랐다. 지리산 부근인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유림면에 이어서 거창 신원면까지 육군 제11보병사단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무차별 학살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가슴 아픈 상처이다. 나의 이모님은 산청군 금서면 방곡마을에서 유일한 생존자였다. 2년간 자료를 모으고 이모님의 생생한 육성을 들었다. 만삭인 이모님은 3발의 총탄을 맞고도 생존하셨다. 그 때의 기억으로 인터뷰를 하시며 몇 번을 혼절 하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울컥하시던 이모님을 생각하면 먹먹한 아픔이 밀려온다. 2004년 2년동안 준비한 작품을 ‘지리산’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그 즈음에 나는 처음으로 리영희 선생님을 《대화》라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지리산 양민학살 현장을 통역 장교로 계시면서 이곳을 지나가신 것도 알게 됐다. 이후에도 《우상과 이성》 등 선생님의 다른 저서를 통해 만남을 이어간다. 진실된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와 같은 용기를 닮고 싶었다. 그래서 이 때부터 몇 년을 인문학 모임을 기웃거리며 5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림만 그렸던 나로서는 모임에 참석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래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렇게 7-8년을 공부하고 어렵게 졸업을 했지만, 아둔하여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그동안 가벼운 재주를 가져서 그것으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지만,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나도 감히 붓끝을 칼끝처럼 세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몇 년전부터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존경하는 분들을 졸필로 옮겨 보았다. 리영희 선생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글을 통해 뵈었기에 사진도 참고하고 나름대로 선생님의 대쪽같은 날카로움을 담고자했는데 부족한 재주로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그렸던 분들 중에 김수영 시인을 기념관에 기증하고, 리영희 선생님이 두 번째다. 졸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시는 가족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2년 '잡것들'의 제목으로 전시된 그림들 (출처: 박순철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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