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를 처음 만난 책, <우상과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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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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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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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책과 나》
리영희를 처음 만난 책, <우상과 이성>


이우연(한겨레 기자)


“나는 리영희의 아들이 아니다.” 안수찬 전 한겨레 기자는 책 <리영희 프리즘>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자신을 “굳이 따지자면 방계 증손자뻘”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먼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1991년에 태어나 2011년 대학에 입학한 나는 이와 비슷한 문장조차 쓸 수 없다. 리영희와 어떤 계보학적 연결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리영희재단 뉴스레터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자신이 없었던 이유다. 리영희에 관해 쓴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만난 리영희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를 알았을 때 그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그를 책으로만 만났기에 어쩌면 ‘나와 리영희의 책’이라는 주제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대학에 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입학할 대학교와 학과 이름을 포털 검색창에 입력했다. 얼마 전 이 학과 교수를 지냈던 리영희가 타계했다는 기사가 떴다. 부고 기사에 적힌 업적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 읽은 뒤에도 ‘대단한 분이셨구나’라는 생각 정도가 전부였다. 막 입시에서 해방돼 마음은 온통 ‘어떻게 놀아야 할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이듬해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리영희의 이름을 교수나 대학 선배들로부터 듣지 못했다. 학교를 떠난 지도 이미 25년이 지난 뒤였기 때문일까. 그렇게 마음속에 리영희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어딘가 찜찜한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1학년 1학기가 끝나가던 때 리영희를 책에서 처음 만났다. 학교 사람들과 매일처럼 술을 마시며 별다른 내용 없는 이야기로 떠들고 노는 것도 슬슬 지겨웠다. 앞으로 어떤 꿈을 품고 대학 생활을 꾸려가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그 무렵 얼굴을 모르는 선배들이 동문회 페이스북에 리영희에 대한 글을 연달아 올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선배들은 그를 ‘사상의 은사’라 부를까. 마침 오전 수업 뒤 시간이 넉넉히 남은 평일이었다. 궁금증을 풀 기회였다. 학교 도서관 누리집에서 ‘리영희’를 검색했다. 그의 저서가 여러 권 떴지만, 그가 쓴 책을 당장 읽기에는 왠지 겁이 났다. 대신 제목에 ‘리영희’가 들어간 책 가운데 비교적 읽기 쉬워보이는 책을 골랐다. 마침 가장 최근에 나온 데다 여러 사람이 집필한 <리영희 프리즘>이었다. 도서관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고 책상에 앉아 설렁설렁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유명한 <우상과 이성>의 머리말을 만났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뉘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책의 이름을 일컬어 ‘우상과 이성’이라 한 이유다.”

이 머리말을 읽고 어떻게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 처음 읽을 리영희의 책은 <우상과 이성>이어야 했다. 곧바로 책장에서 <우상과 이성>을 찾아 펼쳤다.


리영희평론선 《우상과 이성》 초판본 표지 (한길사, 1977) (출처: 알라딘)


나를 기자로 이끈 <우성과 이성>

마음을 활짝 열어 준 머리말 덕분에 앞서 겁이 났던 마음은 사라졌다. 충효 사상을 강조하던 세태를 비판한 ‘불효자의 변’(1977), 제복과 유행복 등 두 의복을 비판적으로 보는 ‘제복과 유행의 사상’(1974)과 같은 글을 통해 1970년대 사회에 퍼진 이데올로기를 엿보는 재미를 느꼈다. 중국과 베트남전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이 글이 사람들에게 던졌을 충격을 가늠하며 읽어 내려갔다. 어느새 그의 이성에 푹 빠져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 문제에 대한 견해만큼이나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리영희의 태도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를테면 ‘언제부터인지, 어째서인지’(1972)의 이런 대목에서다.

“진실로 문제시해야 할 문제는 몇 사람이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데 있지는 않다. 진실로 문제시되어야 할 문제는, 어째서 74억 원의 은행융자가 몇 통화의 전화로 또는 몇 사람의 청탁으로 ‘그리도 쉽게’ ‘그리도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은 채' ‘마치 당연한 일처럼’ 계속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부려먹고 70원을 주고서는 65원을 각종 명목으로 빼앗아버린 소위 ‘악덕 기업주’가 처벌될 것이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30년 동안 그런 경제제도가 당연한 것으로, ‘나라’를 부하게 만든다는 괴이한 경제·사회이론으로 정당화되어 왔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가끔 가다 한두 건씩 사회문제화함으로써 비로소 국민의 눈에 비치게 되는 이 사회제도의 모순·부조리·비리는 다만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면 밝혀지지 않거나 밝혀져도 제도적 개혁을 할 생각을 안 하거나, 그런 비리에 분노를 느낀 시민이 항의를 하지 않거나 하는 것을 ‘국민의 총화’나 ‘사회안정’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문제를 개별 악인의 일탈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한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때까지 내게는 아리송했던 ‘진보’의 개념에 대한 실마리도 얻었다. 리영희는 ‘크리스찬 박군에게’(1976)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런데 우주의 원리는 변화임을 알아야 하네. 균형·정지·고정은 변화의 과정의 어떤 순간·단면의 현상이지 원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사회와 인류의 발전에는 안정도 중요하지만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을 감으려는 태도는 옳지 못하네. 더욱이 일체의 변화를 ‘혼란’으로 단정하면서 그것을 위험시하는 사상은 진정한 안정을 유지할 능력의 결핍을 뜻하는 것일세. 그것은 개선·개혁·발전·진보의 법칙을 거부하는 자세의 변명으로 보는 게 옳을걸세.”

리영희에 따르면 진보는 안정을 깨뜨리는 혼란이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진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을 읽고 기자라는 직업을 처음 꿈꾸게 됐다고 말해왔다. 사실 <우상과 이성>에 실린 글들은 그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쓴 글이 대부분이다. 나는 당시 그가 기자로서 쓴 기사들을 읽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기사를 보고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닌 셈이다. 다만 나는 닮고 싶은 태도를 지닌 지성인이 선택한 직업이 ‘기자’라는 사실에 매료됐다.

교묘하게 스며든 이 시대의 '우상'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리영희가 창간을 주도했던 <한겨레>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성과 우상>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나는 동안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당시 리영희의 글이 지닌 힘은 너무 강력해 정권은 그를 감옥에 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알고리즘을 통해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파편화된 글을 읽는 시대에 누군가의 글이 그때만큼의 파급력을 갖기는 어렵다. 사회의 모순은 더 복잡해졌고, 우상도 더욱 교묘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기자들이 타파해야 할 우상 역시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정훈 신한대 교수가 5년 전 리영희 재단의 ‘리영희 저널리즘을 말하다’ 좌담에서 진단한 것처럼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기 위해 (…) 기사를 양산해야 하는 기자들과 그것을 강요하는 현실”이 기자가 맞서야 할 우상이 됐다. 그날의 기삿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당장의 우선순위가 된 시대에 진실을 탐구하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리영희가 칭한 우상이 “그것에 대해 따져 묻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고병권)이라면, 포털에 종속된 기성 언론의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우상으로 여기며 흐린 눈을 한 것은 아닌지 씁쓸해진다.

최근 언론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우상을 새삼스레 확인한 일도 있었다. 여러 언론사에서 벌어졌던 현대차 기사 삭제와 수정 사태다. 2021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아들의 음주 운전 사고를 보도했던 언론사 11곳은 4년이 지나 광고주인 현대차의 민원으로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한겨레>도 기사 제목을 수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한겨레> 구성원들은 기사 제목 수정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협의 없이 이뤄진 사실에 분노했다. 그러나 더 큰 분노를 불러온 것은 수정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기사 제목 수정을 광고주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로 표현한 경영진의 인식이었다. 편집권을 침범하는 자본 권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상이 드러난 것이다. 노조 성명과 기수별 성명, 담당 기자들의 성명 등이 연이어 나오고 관련 보직자들이 사퇴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러한 우상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지 본격적으로 토론해야 할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15년 만에 다시 <우상과 이성>을 펼쳤다. ‘중국이란 어떤 나라인가’(1973)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일은 중국혁명에 관해서 선입관에 사로잡힌 찬반의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있는 대로 다만 공정하게 관찰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이처럼 단호함으로 가득 찬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어쩐지 머쓱해진다. 나는 과연 스무 살의 내가 꿈꿨던 대로 리영희처럼 살고 있을까. 아니,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이미 내 삶에는 많은 우상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분열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부지런히 공부하며 가닿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을 추구하자. 너무나 당연해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우상을 찾아내고, 그에 단호히 맞서자.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리영희를 닮고 싶어 했던 과거의 나에게도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을까.

오래간만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 보니 리영희는 나에게 ‘성찰의 은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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