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이라고 슬픔은 조금씩 엷어졌지만, 가끔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선생님, 시계추가 저쪽으로 가더니 안 오네요. 언제나 이쪽으로 다시 올까요?”라고 질문도 하고 싶다.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던 스승은 떠나시고, 긴 겨울은 추웠다.

어떤 서사(序辭) / 고 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3 14:28
조회
2342
어둠의 시간에 그가 있었다.
아픔의 시간에 그가 있었다.
거짓에 길들여지는 시간에 그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간 속에서
그가 있었다가 아니라 그가 있는 것이다.

 

리영희!

 

그는 누구보다 더 이 산하의 아들이다. 그리하여 이 산하의 온갖 곳을 두 발로 걸어온 체험의 영역이 그에게는 유산이 아닌 생명체로 살아 있다. 혹은 38선 이쪽 저쪽 전쟁의 포화 속에서 양심의 꽃으로 피어났으며 혹은 그 전쟁이 휩쓸고 간 초토와 폐허 위에서 유신의 시대의 자막을 한 자 한 자 읽기 시작했다. 나아가 냉전과 독재의 지정학이 만들어낸 우상을 타파하는 진실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삼아왔다. 언제나 그는 진실로부터 시작해서 진실에서 마쳤다. 그의 정신은 잠들 수 없는 밤에 깨여 있고 한낮에도 자행되는 지상의 숱한 기만들과 맞서 지향의 연대기를 찾아내고자 파도쳤다. 끝내 그는 누구의 사상이었고 누구의 실천이었고 또 누구의 전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전환의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현재는 쉬지 않고 과거를 들어올리고 미래를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리영희!

 

그는 한반도의 상공에 날고 있는 각성의 붕(鵬)이다. 이와 함께 그는 한반도와 한반도를 에워싼 모든 힘의 논리를 이성의 논리로 이겨내는 물질적 정화(精華)이다.

 

리영희!

 

그는 그 자신의 확인이며 모두의 기념이다. 그렇지 않은가.

 

 

 

2006년 여름
고은
전체 17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7
"나의 부인을 존경합니다"--김선주 칼럼니스트, 전 한겨레 논설주간
관리자 | 2021.02.25 | 추천 0 | 조회 2855
관리자 2021.02.25 0 2855
16
리영희 선생님을 그리는 단상 하나 (2012년 12월 6일, 최상명)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116
관리자 2021.02.23 0 2116
15
리영희 선생님은 사상의 은사입니다! (2012년 12월 6일, 한양대 동문 조용준)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304
관리자 2021.02.23 0 2304
14
선생님! 선생님과 직접 '대화'하고 싶습니다 (2012년 12월 6일, 강경루 한양대 총학생회장)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527
관리자 2021.02.23 0 2527
13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2012년 12월 6일. 윤관석 의원)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191
관리자 2021.02.23 0 2191
12
어두울수록 별은 맑게 빛나고 험할수록 길은 멀리 열려있다 (2012년 12월 6일, 이도흠 교수)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401
관리자 2021.02.23 0 2401
11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크게 보이는 분 (2012년 12월 6일, 정대철 교수)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091
관리자 2021.02.23 0 2091
10
어떤 서사(序辭) / 고 은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342
관리자 2021.02.23 0 2342
9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 이 시대의 리영희를 만나고 싶다 (2013년 7월 3일 윤창빈님 작성)
관리자 | 2021.02.23 | 추천 0 | 조회 2677
관리자 2021.02.23 0 2677
8
"존경하는 아내" / 정진경
관리자 | 2021.01.18 | 추천 0 | 조회 2847
관리자 2021.01.18 0 2847
7
그리운 리영희 선생님 / 정진경
관리자 | 2021.01.18 | 추천 0 | 조회 2677
관리자 2021.01.18 0 2677
6
그 뒷모습에서 리영희의 자존심을 느꼈다 / 김선주
관리자 | 2021.01.18 | 추천 0 | 조회 2995
관리자 2021.01.18 0 2995
5
故 리영희 선생께 (2016. 10. 9 김형건 님 작성)
재단 사무국 | 2018.10.11 | 추천 0 | 조회 2495
재단 사무국 2018.10.11 0 2495